아주 친밀한 폭력 - 여성주의와 가정 폭력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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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전역에서 지금도 10분에 한 명꼴로 매 맞는 아내들이 계속 생기고 있다. 넓은 의미의 ‘아내 폭력’ 즉 언어와 정서적 폭력(욕설, 혐오 발언, 위협 등), 성적 학대까지 포함할 경우 더 커지리라 생각된다. ‘아내 폭력’의 문제를 더 이상 남의 일로만 치부할 수 없다. 결국 ‘아내 폭력’에 대한 우리의 안일한 생각이 폭력의 악순환을 더욱 부추기기 때문이다.

 

흔히 폭력을 쓰는 남편은 심리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가정 폭력 전문가들은 남편이 분노의 충동을 잘 조절하지 못해 자신의 좌절감과 스트레스를 손쉬운 가족 구성원에게로 향한다고 주장한다. 만만한 대상을 찾아 그 대상에게 자신의 상처(분노나 좌절감)를 폭력적인 방법으로 해소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내 폭력’은 단순히 분노조절 능력 결여로 생기는 형태가 아니다. 남편은 폭력이라는 수단을 통해 가장으로서의 권력과 통제의 힘을 드러내겠다는 무의식적 소망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남편은 자신이 가정 내에서 주도권을 확실히 가지고 있다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폭력 남편은 자신의 행동이 심각한 ‘범죄’로 인식하지 못한다. 폭력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 일은 아내를 통제하기 위한 가부장제의 의무다.

 

폭력 남편을 처벌하는 과정에서 가해자로서의 인권 보호에 대한 주장이 끊이지 않는다. 고소당한 ‘아내 폭력’ 가해자들의 입장은 이렇다. 아내를 때리지 못하게 하는 법의 개입이 가정을 파괴할 수 있고, 남편의 권리를 무시한다. ‘아내 폭력’뿐만 아니라 성폭력 사건의 원인을 피해자 탓으로 돌리고, 왜 가해자의 입장(또는 인권)을 존중하는 이유는 뭘까? ‘아내 폭력’을 피해 정도가 심한 ‘부부싸움’으로 인식하면, 남편 폭력의 심각성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리고 피해자들의 심정도 이해하지 못한다.

 

이렇게 말하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내 폭력’을 “아내가 맞아도 싸다”는 식으로 얘기한다. 가장인 남편이 가정을 다스리는 차원에서 어쩌다 폭력을 쓰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남편의 폭력으로 사망하는 아내들이 있다. 그녀들의 죽음이 어쩌다 일어난 과실치사로 정당화될 수 있을까?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는 아내들은 죽음의 위협 속에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 피해 아내들은 폭력이 두려워 남편의 비위를 최대한 맞추려 한다. 자신 스스로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는 데서 오는 무력감, 짓밟힌 자존심, 자녀들 앞에서의 수치감 등으로 인해 자신의 삶이 무너져 내리는 경험을 한다.

 

피해 아내들이 폭력 남편과의 이혼을 망설이는 가장 주된 이유가 ‘자녀 문제’이다. 아이들로부터 아버지를 빼앗는다는 죄의식과 아이들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자신을 때리는 남편을 쉽게 떠나지 못한다. 정희진은 남편에게 맞고 사는 아내 자체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체면 문화’가 ‘아내 폭력’ 피해자들을 보호하지 못하게 하는 또 다른 원인으로 꼽았다. 이혼하는 여성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선입견이 차츰 사라지고 있으나 여전히 ‘아내 폭력’으로 이혼하는 여성에 향한 선입견은 피해 아내들의 발목을 잡는다. 이혼 뒤에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가정을 파탄하게 한 여성’으로 비난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아내 폭력’의 실태는 가부장제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반영한다. 남편이 가장으로서 모든 식솔을 통제하고, 그 가장의 권위에 도전할 때 가차 없이 주먹을 휘두르는 일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은폐된다. 여성의 몸이 남성의 소유라는 인식 때문에 여성 폭력은 범죄로 인식되기 어려웠다. ‘아내 폭력’ 피해자들이 당한 고통을 고통 그 자체로 감싸 안지 못하고, 아내로서의 자격상실 문제로 받아들이는 논리 속에 함축된 의미는 위험하다. 혈연 및 부계 중심의 가족에 익숙한 사람들은 가정의 외형의 틀이 유지되면 가정을 지키는 것이고, 그 틀을 해체하는 것이 가정파괴라고 믿는다. 가정 유지가 여성으로서의 인권이 폭력에 희생된 아픔보다 우선해도 좋다는 것을 은연중에 지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정말 무서운 일이다. 가정은 일상생활을 오랫동안 같이 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타인의 시선이나 힘이 미치기 어려운 그 공간이 폭력적일 때 개인이 받는 상처는 더 깊고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만들고 지켜야 할 가정은 육체적 · 정신적으로 폭력적이지 않고 가족 구성원 서로를 존중하는 분위기가 있다. 평화로운 가정을 만드는 데 기여한 아내를 상처 입히고, 그 가정마저 파탄시킨 남편은 마땅히 처벌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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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2-01 21: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일 찌질한 놈이 자기 와이프에게 폭력 쓰는 놈입니다.그런 놈은 또 강자에겐 비굴하게 굴거든요.

cyrus 2017-02-02 10:19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아내를 대놓고 무시하는 태도도 싫습니다. 이런 사람은 아내가 자신을 타일러도 크게 언짢아합니다.

푸른희망 2017-02-02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스에서 읽다가 일단 멈추고 집에서 천천히 읽었습니다. 누구도 만족할 수 없는 폭력이 왜 자꾸 반복될까요?

cyrus 2017-02-03 12:36   좋아요 0 | URL
‘가정폭력‘ 문제를 아내 탓으로 돌리는 잘못된 인식이 사라져야 합니다. 가해자와 제3자가 피해자에게만 폭력 문제의 책임을 떠넘기면 법적 처벌이 약해집니다. 그래서 ‘가정 폭력‘이 비일비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