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요하네의 우산
김살로메 지음 / 문학의문학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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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곳에서라면 어디에나 있는 ‘관계’. 그 다양한 맥락 속에 거짓과 위선, 희망과 진실이 한데 엉킨 삶의 모습이 있다. 김살로메의 소설집 《라요하네의 우산》에는 관계 맺기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인간 사이의 관계 맺기는 이 소설에서 중요한 핵심이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 속에서 서로의 상처를 캐고 보듬는 가운데 얻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이 작품은 보여준다. 관계의 본질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은 운명적으로 자신의 타자가 된다. 작가는 “내 안의 위선과 진실, 내 안의 악마성과 순진성 사이에 소설이 존재”[1]한다고 말한다. 이런 이중성 때문에 일상의 삶은 흔들리고 부서진 것이 되며, 때로는 그것마저 실재감을 잃어버린 환상으로 빠져들기도 한다. 타인과의 관계 맺기 역시 불모와 불가능, 변질로 끝나기 십상이다. 자아의 정체성이든, 타자와의 관계든 거기에는 ‘고통스럽고 부끄러운 일’[2]이 깃들여 있다. 그럼에도 작가는 ‘고통스럽고 부끄러운 일’을 공감하고 탐색하는 자세가 삶을 구성하는 능동적인 힘임을 믿는다.

 

『알비노의 항아리』의 주인공들은 빙 둘러 가는 접촉을 통해 힘겹게 관계 맺고 있다. 남편과 아내는 너무 다르다. 남편은 굳건한 일상의 틀을 지키면서 평범하게 살아가지만, 아내는 피부와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하는 알비노(Albino)라는 희귀 질환을 겪고 있다. 이 병의 원인에 대해 사람들의 이해가 부족하다 보니 아내는 태어날 때부터 환영받지 못하고 선입견 속에 살아간다. 일상의 세계는 인간끼리의 접속이 힘들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위험에 노출돼 있다. 아내의 소변을 정력제로 확신하는 남편의 어머니는 말해지지 않은 부부 사이 마음의 틈을 점점 벌어지게 한다. 언제 깨질지 모른다. 아무리 완벽하다고 생각하지만 언제 깨질지 모른다. 그러나 마침내 부부는 서로 참다운 사랑을 확인함으로써 합일될 수 있는 관계에 도달한다.

 

『암흑 식당』은 자신에게 부과된 강제적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인간의 욕망을 보여준다. 우리 자신들이 모순적으로 겪고 있는 내면적 그늘을 남다르게 포착해내는 깊이를 내보이고 있다. 암흑 식당은 형상이 유발하는 선입관과 현혹이 완전히 차단되는 장소다. 그래서 지겨운 일상에서 눈을 돌려 암흑 식당 안에서 이루어지는 관계는 은밀해서 달콤하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의 가면을 벗기 위해 진짜 가면을 쓴 암흑 식당 손님들의 기이한 관계 맺기는 타인의 욕망 대상이 된다. 섹스는 이성적 합일을 완성할 수 있는 가장 극적인 체험이지만, 이 소설에서는 섹스조차도 그토록 열망한 사랑의 확인이 아니라 현대인의 불행을 보여준다.

 

작가는 『라요하네의 우산』에서 불안한 인간의 내면을 무심하게 드러내면서 동시에 조각난 사건들을 보여주면서도 어떤 가능한 자기만의 세계를 그려낸다. 소설의 등장인물 샌드리는 시메트리(symmetry) 증후군에 시달린다. 그녀는 ‘균형’이라는 이미지에 사로잡혀 있고 그 이미지의 압박감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이 소설에서 언급되는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은 샌드리가 자신의 삶 속에 묻혀 있는 상처를 되돌아보게 하는 거울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자기 앞의 생》은 합리적인 우리 삶의 심층에 자리 잡은, 남모르게 앓고 있는 고통에 주목하는 문학 고유의 영역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평범하게 보이는 일상적 관계의 뒷면에는 잊힌 상처가 있다. 그것은 선천적으로 기형적인 육체의 아픔일 수도, 인간 사이에서 주고받는 고통의 기억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모두는 상처라는 이름으로 서로 소통할 수 있다. 《라요하네의 우산》의 매력은 요란스런 사건의 전개 대신 일상생활 속 아픔과 극복 과정을 잔잔한 어투로 복원해 내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나타나는 정신적 상처와 결핍의 모습은 생활을 통해 간간이 새어 나오는 슬픔이다. 있는 그대로, 자신을 상대방에게 속이지 않고, 또 자신을 속이지 않고, 자신의 나약함을 상대방의 결점을 그대로 받아들여 이해하고 안아줄 수 있는 것. 그것이 이 소설집에서 확인할 수 있는 상처 치유력을 가진 정신적 약재들이다. 관계의 어긋남에서 비롯된 상처란 다시 관계 속에 던져져야만 진실하게 아물어 갈 수 있다.

 

 

 

 

[1] 작가의 말, 317쪽

[2] 『라요하네의 우산』 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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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2-03 14: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럼요..관계함으로써 상처가 없을 수가 없죠..서로 생채기를 내고..다시 보듬고..그래서 아물고 ...그러므로써 관계가 더 단단해져야하거든요..문제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이거 없다면 관계 자체가 성립하지 않으니까요. 가급적이면 서로가 상처를 주고 받기보다는 위로와 헌신과 희생으로 오고가면 더 좋겠지요.....

cyrus 2017-02-03 17:13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면 감정이 상하는 일을 피할 수 없습니다. 살면서 겪어야 할 일입니다. 서로 간에 감정이 다치지 않도록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정말 중요합니다. 이게 안 되면 어렵게 맺은 관계를 회복하기 어려워요.

페크pek0501 2017-02-03 15: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고통스럽거나 부끄러운 일’이 나만의 경험이 아니고 다른 누구도 겪은 일이라는 걸 확인할 때 위로가 됩니다. 그래서 요즘 공감하는 친구가 참 필요한 거구나, 친구 없는 사람은 외롭겠구나, 생각하게 되어요.
제일 듣기 싫은 말 중 하나는 ‘복에 겨워 그러는거야.˝라는 말이에요. 같은 일이라도 사람에 따라서 느끼는 강도가 다름을 놓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 모두요...

cyrus 2017-02-03 17:16   좋아요 0 | URL
오늘 본 인터넷 뉴스 내용인데요, 30대 이후부터 친구 수가 줄어든다고 합니다. 저도 20대 후반을 살아오면서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나를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는 친구가 소중한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2017-02-03 16: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03 17: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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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4 09: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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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4 10: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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