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Hermann Hesse)는 인간 내면의 변화를 통해 자아실현을 추구했던 작가다. 이런 이유로 헤세는 동양사상에 관심을 보였다. 그는 석가, 공자, 노자 등 중국의 사상가들과 인도 사상에 심취하는데 이는 소설과 시, 그림을 넘나든 그의 예술혼의 원천이 됐다.

 

 

 

 

 

 

 

 

 

 

 

 

 

 

 

 

 

 

* [품절] 알로이스 프린츠 《헤르만 헤세》 (더북, 2002)

 

 

 

 

 

 

 

 

 

 

 

 

 

 

 

 

 

 

* 헤르만 헤세 《수레바퀴 밑에》 (현대문학, 2013)

* 헤르만 헤세 《수레바퀴 아래서》 (문학동네, 2013)

* 헤르만 헤세 《수레바퀴 아래서》 (민음사, 2001)

 

 

 

 

 

 

 

 

 

 

 

 

 

 

 

 

 

 

 

 

 

 

 

 

 

 

 

 

 

 

 

 

* 헤르만 헤세 《데미안》 (열린책들, 2014)

* 헤르만 헤세 《데미안》 (을유문화사, 2013)

* 헤르만 헤세 《데미안》 (현대문학, 2013)

* 헤르만 헤세 《데미안》 (문학동네, 2013)

* 헤르만 헤세 《데미안》 (민음사, 2000)

 

 

 

 

헤세와 동양사상의 만남은 그의 가족사와 연관돼 있다. 외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선교사로 인도에서 활동했고 어머니는 인도에서 태어나 자랐다. 어린 시절 헤세의 모습은 국내 유일의 헤세 평전인 알로이스 프린츠(Alois Prinz)《헤르만 헤세》(더북)에 잘 나와 있다. 헤세는 열두 살 때부터 시인이 되겠다는 열정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헤세의 부모는 아들의 포부를 무시했다. 1891년 헤세 가족은 스위스의 바젤로 이사했다. 그해 헤세는 부모의 권유에 따라 신학교에 입학했지만 일 년 만에 학교에서 도망쳐 하루 뒤에 벌판에서 발견되었다. 그런 이유로 학교에서 퇴학당했다. 열다섯 살 때 헤세는 자살을 암시하는 글을 썼다가 부모에게 발각되었다. 부모와 잘 알고 지내던 한 목사가 운영하는 조현병 환자들을 위한 사설 요양소에 지냈다. 요양소에 퇴원한 후 일 년 만에 김나지움(Gymnasium: 독일의 인문계 중등교육기관)을 졸업했다. 그 후 헤세는 시계 만드는 공장의 수습직원, 서점 직원을 전전했다. 헤세의 문학을 키운 건 ‘방랑’이다. 젊은 날의 고통과 방황은 헤세 문학의 영양분이 되었고, 그 영양분으로 열매를 맺은 작품이 《수레바퀴 아래서》《데미안》이다.

 

 

 

 

 

 

 

 

 

 

 

 

 

 

 

 

 

 

 

 

* [품절] 헤르만 헤세 《헤르만 헤세의 인도 여행》 (푸른숲, 1999)

 

 

 

이 두 작품은 인간의 내면세계에 중심을 두고 있다. 그 이 두 편의 성장소설에서 주인공들(《수레바퀴 아래서》의 한스 기벤라트, 《데미안》의 에밀 싱클레어)의 입을 빌려 인간의 사명은 진정한 ‘나’를 찾는 데 있다고 강조한다. 헤세는 ‘나’를 찾는 내면의 길을 가기 위해 현실에 맞서 싸웠다. 동양사상은 세계와 자아를 섬세하게 성찰하는 데 도움을 줬다. 헤세의 회상에 따르면 집에 동양인들이 자주 드나들었고, 헤세의 외할아버지는 알 수 없는 말로 그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헤세의 집은 동서양 학문이 만나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의 문학이 동서양을 아우르는 것은 집안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마리아 베르누이(Maria Bernoulli, 헤세의 첫 번째 부인)와 결혼한 헤세는 독일과 스위스의 접경 지역에 있는 가이엔호펜(Gaienhofen)에 정착하여 글쓰기에 전념했다. 1911년 서른네 살의 헤세는 가이엔호펜을 떠나 아주 긴 여행길에 오른다. 목적지는 어린 시절부터 동경해온 인도였다. 그러나 그는 인도 본토에 가지 못했다. 인도의 숨 막히는 더위와 습한 기후, 열악한 위생상태, 그리고 적지 않은 여행비 등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히게 되면서 인도 본토를 여행하려는 계획을 포기한다. 그 대신 실론 섬영국령 말레이반도, 네덜란드령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 섬을 둘러본다. 실론 섬은 1948년에 인도로부터 독립하면서 ‘스리랑카’로 불리게 됐고, 말레이반도 일부는 독립 이후 싱가포르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헤세는 실론 섬과 말레이 반도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수필, 시, 일기 등 다양한 형식으로 적었다. 그의 기록은 1913년에 출간되었고, 이 책은 《인도 여행》(원제: Aus Indien)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지게 된다. 그의 기행문은 식민지 통치하에 비참하게 살아가는 가난한 원주민들, 낙후된 문명, 관광지로 전락한 고대 신전들, 그리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중국인들에 이르기까지 이방인의 눈앞에 펼쳐진 장면을 미화나 첨삭 없이 그대로 보여준다.

 

《인도 여행》 번역본은 지리적 여행기인 1부 ‘헤세의 인도 여행’과 동양사상을 탐구한 정신적 여정을 정리한 2부 ‘여행 후의 기록들’로 구성돼 있다. 1부와 2부 중간에 헤세의 여행 일지와 메모를 번역한 글이 있다. 책의 2부는 헤세의 저작들을 편집 · 정리한 폴커 미헬스(Volker Michels)가 엮었다. 번역본에는 헤세와 마리아 베르누이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 아들 하이너 헤세(Heiner Hesse)가 한국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도 수록되어 있다. 그는 헤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살았던 스위스 몬타뇰라(Montagnola)에 ‘헤세 박물관’이 들어서는 데 동참했으며 2003년에 세상을 떠났다.

 

 

 

 

 

 

 

 

 

 

 

 

 

 

 

 

 

 

 

 

 

 

 

 

 

 

 

 

 

 

 

 

 

 

 

 

* [절판] 헤르만 헤세 《영혼의 수레바퀴》(이레, 2002)

* 헤르만 헤세 《인도 기행》(범우사, 2006)

*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 인도의 이력서 / 동방순례》(이유, 2014)

* 헤르만 헤세 《헤세의 여행》(연암서가, 2014)

 

 

 

 

《인도 여행》은 ‘Aus Indien’의 완역본이다. 현재 이 책은 절판되었지만, 책의 내용 일부는 따로 번역되어 나왔다. 《인도 기행》(범우사), 《헤세의 여행》(연암서가)‘Aus Indien’의 1부를 번역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영혼의 수레바퀴》(이레)‘Aus Indien’의 2부 일부를 번역한 책이다. ‘Aus Indien’ 2부에 있는 『인도의 이력서』는 헤세가 1937년에 쓴 글인데, 《싯다르타 / 인도의 이력서 / 동방순례》(이유)에 수록되어 있다. ‘Aus Indien’ 번역본이 여러 권 있긴 하지만, 헤세가 바라본 ‘20세기 인도’의 풍경을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는 완역본을 구하기 어려워졌다. 범우문고 시리즈의 《인도 기행》은 ‘Aus Indien’ 1부를 제대로 번역했다고 보기 어렵다. 《인도 기행》의 목차로만 봐서는 ‘Aus Indien’ 1부에 수록된 11편의 시가 빠져 있는 듯하다. 《영혼의 수레바퀴》마저 절판되면서 현재까지 살아남은 ‘Aus Indien’ 2부는 『인도의 이력서』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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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2 15: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1-02 18:35   좋아요 1 | URL
헤세의 인도 여행기에 보면 신전 주변에 장사하는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보는 내용이 나옵니다. 여행지에 장사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으면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관광지’가 됩니다. 이러면 여행을 즐기지 못해요.

레삭매냐 2019-01-02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판 책 사냥꾼 싸이러스님에게 제가
원하는 책도 한 번 의뢰해 봐야겠습니다 ㅋㅋㅋ

알라딘 중고매장에서는 오래된 책들은
아예 취급을 하지 않아서 구할 수가
없는 것 같더라구요.

cyrus 2019-01-02 18:37   좋아요 0 | URL
제가 갖고 싶은 책이 서울 알라딘 중고서점에 있는 경우가 많아요. 만약에 서울 알라딘 중고서점에 제가 원하는 책이 있으면 부탁 드려도 될까요? 그에 대한 보답을 충분히 해드리겠습니다. 저도 레삭매냐님이 원하는 책이 발견하면 사서 보내드릴 수 있어요. ^^

레삭매냐 2019-01-03 09:18   좋아요 0 | URL
싸이러스님 아쉽게도 제가 서울에 거주하지
않는 관계로 싸이러스님의 제안은 들어 드리
지 못할 것 같습니다 ㅠㅠ

한달에 한 번 서울에 나가는데, 그것도 종로점
밖에 안되어서러리요...

아쉽네요 참말로. 예전 같이 자유로운 시절이
라면 모르지만 - ㅋㅋㅋ

cyrus 2019-01-03 12:26   좋아요 0 | URL
괜찮습니다.. 레삭매냐님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도 자유로운 시절에는 종로점, 대학로점, 신촌점에 갔어요. 이중에 자주 가는 곳은 종로점입니다. ^^

혹시 ‘대구동성로점’, ‘대구상인점’에 사고 싶은 책을 발견하면 말씀해주세요. 그 책을 사서 보내드리겠습니다. ^^

안녕반짝 2019-01-02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동네에서 얼마 전에 <싯다르타>가 출간되었더라고요.
문학동네세계문학전집 173번으로요.
아주 오래전에 읽은 터라 나중에라도 다시 읽어보려고요^^

그리고 또 오래전에 지인에게 헤르만 헤세의 <나비>란 책을 선물 받았어요.
그 지인도 헤르만 헤세 팬이었는데 이 책은 사람들이 잘 모른다며 선물해 주었는데 전 아직도 안 읽고 있네요.^^

cyrus 2019-01-02 18:40   좋아요 0 | URL
인도 여행기에서도 헤세의 나비 사랑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도 여행>을 읽으면 <싯다르타>, <유리알 유희>를 이어서 읽어야하는데, 당장 읽어야 할 게 많아서 시도를 못하고 있습니다. ^^;;
 
제0호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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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포크로 비행기 안에서 콩을 찍어 먹으며 파시즘을 걱정하는 사람.” 영국의 신문사 <선데이 타임스>가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에게 보낸 찬사이다. 이 문구는 에코의 산문집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뒤표지에 있다. 유쾌한 성격의 에코는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다. 이 책에서 에코는 자신이 겪은 경험들을 바탕으로 어리석은 세상을 비틀어 보고 있다. 그는 세상의 어리석음에 분노하는 것이라면 웃으면서 화를 낼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세상의 그 모든 어리석음에 대해 불같이 화를 내는 것은 어리석음의 목록을 더 늘어나게 해줄 뿐이다. 짧은 글로 이런 얘기를 쉴 새 없이 풀어내는 에코이지만 그 안에는 허를 찌르는 촌철살인의 웃음이 있다. 글 속에서 그는 여러 표정을 지닌 사람으로 나타난다. 그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엉뚱한 질문을 던지다가 피식 웃음이 나오는 대답을 한다.

 

에코는 악의적인 일이나 잔혹함에 화가 난다면 웃을 수 없다고 했다. 그의 말이 일리가 있다. 요즘 들어 웃음을 줄어들게 만드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다. 온라인에서 의도적이고 악의적인 가짜 뉴스가 급속히 번지고 있다. 공인의 사생활이나 민감한 정책 현안은 물론, 국가 안보나 국가 원수와 관련된 턱도 없는 가짜 뉴스까지 나온다. 요즘의 가짜 뉴스는 과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넓고 빠르게 퍼진다. 이른 시간 안에 불신과 분열을 조장한다. 또 꼼짝없이 가짜 뉴스의 덫에 걸린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다. 가짜 뉴스는 표현의 자유 뒤에 숨은 살인자다. 우리는 악의적인 가짜 뉴스를 보고 웃으면서 화를 낼 수 있을까?[주]

 

에코의 마지막 소설 《제0호》는 에코 특유의 웃음을 생각하면서 읽을 수 없다. 잘 드러나 있지 않다가 어느 순간 일상을 파멸시키는 가짜 뉴스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가짜 뉴스에 현혹되는 과정, 또 그 가짜 뉴스를 만든 인물이 몰락하는 과정을 신랄하게 묘사한다. 안정적인 직업이 없는 글쟁이 콜론나는 창간을 앞둔 신문사 <도마니(이탈리아어로 ‘내일’을 뜻함)> 주필 시메이를 만나게 되면서 창간되지 않을 신문 <제0호> 제작 과정에 투입된다. <제0호> 제작을 위해 자금을 대는 사람은 ‘콤멘다토르 비메르카테’라는 세력가다. 세력가와 주필은 사회 거물들이 궁지로 몰 만한 가짜 뉴스를 만들려고 한다. 주필은 편집 회의에 참석할 때마다 대중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자극적인 기사 작성법을 알려준다. 에코는 이 소설에서 돈벌이나 정치적인 거래를 목적으로 가짜 뉴스를 만드는 황색 저널리즘의 실체를 해부한다.

 

에코는 20년 전부터 《제0호》을 구상했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부패 정치 청산의 물결이 일던 1992년 이탈리아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이 출간된 연도는 1992년이다. 재미있게도 이세욱 씨가 두 권의 책을 번역했다. 《제0호》를 읽으면서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을 느꼈다. 《제0호》에 콜론나는 신문을 함께 만드는 동료들에게 신문 기사를 반박하는 독자의 편지에 반박하는 기술을 알려준다. 그때 콜론나가 반박의 기술을 설명하면서 언급한 편지글은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의 『반박을 반박하는 방법』에 나왔던 글이다. 서양 고전문학 작품과 에코 자신이 과거에 썼던 글 일부를 패러디한 묘사는 독자들에게 쏠쏠한 재미를 안겨준다.

 

 

 

 

 

 

죽음을 앞둔 에코는 《제0호》를 쓰면서 익살스럽게 웃어보지만, 그 웃음이 죽음의 두려움을 달래는 자기 위안이었는지, 아니면 소설의 분위기가 너무 무거울까 봐 애써 웃어주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소설에 간간이 나오는 에코의 유머를 보면 애잔한 마음마저 든다. 《제0호》는 에코의 웃음과 슬픔이 교차하고 있는 소설이다.

 

이세욱 씨는 《제0호》를 ‘음모론에 잘 빠지는 기자와 나쁜 저널리즘을 보여 주는 익살스럽고 풍자적인 이야기’라고 소개한다. 그러나 나는 소설에서 시도한 에코의 풍자를 웃으면서 볼 수가 없었다. 가짜 뉴스를 곧이곧대로 믿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헛소리하면 웃으면서 화를 낼 수 있지만, 가짜 뉴스로 인해 점점 더 파열음을 내는 현실을 보면 그저 화가 날 뿐이다. 가짜 뉴스가 지배하는 세상은 인간의 악의가 얼마나 잔혹하고 야비한지 보여준다. 나는 그런 세상을 향해 정색하면서 화를 내는 방법을 선택하겠다. 웃으면서 화내는 에코의 방식으로 여태 즐겨왔으니 이제는 정공법으로 진지하게 정색할 때다.

 

 

 

 

[주] 이세욱 옮김,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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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12-14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사 놓고 아직 읽지 못했어요. 저는 왜 딴 책만 보고 있을까요? ㅋ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은 무척 재밌게 읽어서 리뷰까지 썼었어요. 코믹한 글이 많지요. 그런 저자가 진지하게 소설을 쓰면 어떤 게 될까 궁금해서 구입했는데... 이 해가 가기 전에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내년으로 넘어갈 것 같은... 내년이 코 앞이네요.

cyrus 2018-12-17 13:19   좋아요 0 | URL
알라딘 시점에서는 지금이 2019년이에요. 일년치 알라딘 활동 통계를 낼 때 집계 기간은 12월부터 이듬해 11월까지거든거요.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ㅎㅎㅎ
 
공작부인 이야기
제프리 초서 지음, 김재환 옮김 / 나남출판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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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는 우리나라에선 다소 낯선 작가이다. 그러나 그를 언급하지 않은 영문학사는 존재할 수조차 없다. 초서가 살던 중세 영국의 공용어는 영어가 아니라 프랑스어였다. 프랑스어가 더 고상한 언어로 간주해 대부분의 영국 작가들은 프랑스어로 글을 썼다. 초서는 영어로만 작품을 쓴 선구적인 존재 중 한 사람이다. 이 점에서 그는 ‘영문학의 창시자’로 불린다. 셰익스피어(Shakespeare)가 영문학의 시조로 알려져 있는데, 오랫동안 상식으로 굳어진 이 평가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셰익스피어는 초서의 문학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초서는 인간 행동의 천태만상을 묘사한 글을 썼으며 그의 대표작 《캔터베리 이야기》는 귀족, 성직자, 노동자 등 모든 계층을 망라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중세판 인간 희극’이다.

 

《중세부인 이야기》는 초서의 초 · 중기 작품을 모은 책이다. 이 책에 동명 제목의 장시(長詩) 『중세부인 이야기』, 『명성의 집』, 『새들의 회의』, 『열녀전』, 초서가 쓴 것으로 알려진 단시(短詩)이 수록되어 있다. 이미 언급했듯이 초서는 영어로 글을 썼지만, 영국에서 유행한 중세 프랑스 문학의 형식을 따랐다. 중세 프랑스 작가들은 ‘사랑’을 주제로 한 알레고리 형식의 글을 썼는데, 초서는 프랑스 작가들의 글쓰기 방식을 참고했다. 프랑스와 영국 작가들이 선호한 형식을 ‘사랑의 환상(love-vision)이라고 한다. ‘사랑의 환상’ 이야기는 항상 정해진 방향대로 흘러간다. 처음에 남자 주인공은 자신의 연애에 불만을 드러낸다. 그는 불면증을 해소하기 위해 책을 읽다가 잠이 든다. 그리고 꿈을 꾼다. 여기서부터 진행되는 이야기는 ‘환상’이다. 꿈속의 장소는 아름다운 정원이다. 이 정원에서 주인공은 ‘말하는 동물’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로부터 사랑과 인생에 대한 조언과 충고를 듣는다. 의인화된 동물들은 수많은 상징과 알레고리다.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 주인공이 잠에서 깨어나면서(주인공이 현실로 돌아오는 상황) 이야기는 끝난다.

 

『중세부인 이야기』는 초서가 자신의 문학적 후원자였던 블랜치(Blanche) 공작부인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쓴 작품이다. 초서는 이 작품에서 공작부인을 ‘살아있는 아름다운 여성’으로 묘사하면서 그녀의 성품을 칭송한다. 『명성의 집』은 미완성으로 남았지만, 인생의 무상함을 알레고리 기법으로 풍자한 작품이다. 『새들의 회의』는 ‘사랑의 환상’ 형식을 철저히 따른 작품이다. 이 작품에 나오는 다양한 종류의 새들은 인간의 사랑에 대해서 진지하게 토론을 한다. 의인화된 새들은 귀족과 평민을 상징한다. 『열녀전』은 한 남자를 뜨겁게 사랑하다가 배신당해 불행해진 옛 여인들에 대한 이야기 모음집이다. 이 작품은 사랑하는 남자를 배신하는 여성이 등장하는 《트로일러스와 크리세이드》와 대조적이다. 초서는 《트로일러스와 크리세이드》 제5권 후반부에 악녀에 대한 글을 쓴 자신의 행동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 정숙한 여인을 주인공으로 한 글을 쓰겠다고 밝혔다. 『열녀전』의 ‘프롤로그’에 작가 본인이 등장하는데, 여기에 ‘사랑의 신’에게 핀잔 듣는 초서의 모습이 나온다.

 

 

[초서-cyrus 주]는 크리세이드가 트로일루스를

저버린 이야기를 영시로 써서

여성들이 타락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지?

이제 나[사랑의 신-cyrus 주]에게 한번 대답해 봐.

어째서 너는 여자들을 놓고서 험담만 하고

좋은 소리는 도통 하지 않는 거야?

네 마음속에는 선의라는 것이 없는 거야?

네가 가지고 있는 책 속에는

착하고 정숙한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없는 거야?

네가 새 것 옛 것 망라해서 60여 권의 서적을

소장하고 있다는 것은 하느님도 아시지.

거기에는 로마인들과 희랍인들이

여러 여자들의 삶을 다룬 긴 이야기들이 실려 있는데,

백이면 아흔아홉은 좋은 이야기들이야.

이것은 하느님도 아시는 일이고,

그런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들도 아는 일이야.

 

 

(『열녀전』 프롤로그, 264~279행, 243쪽)

 

 

 

『열녀전』 프롤로그 264~272행은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초서의 자책과 반성을 엿볼 수 있는 구절이다. 그러면서 초서는 다음 구절에 자신이 60권의 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자랑)한다. 과거에는 지금과 비교하면 책이 매우 귀했다. 중세 시대에는 보통 크기의 책 한 권을 만드는 데 수십 마리의 동물 가죽이 필요했고 인쇄술이 없었기 때문에 필경사가 한 글자, 한 글자 공들여 써야 했다. 그야말로 중세 시대의 책은 귀족의 전유물이었다.

 

초서의 문학 세계, 즉 중세 영문학을 이해하려면 《중세부인 이야기》, 《트로일러스와 크리세이드》, 《캔터베리 이야기》 순으로 읽는 것이 좋다. 특히 《트로일러스와 크리세이드》와 그 다음에 나온 『열녀전』은 ‘중세 여성’을 바라보는 남성들의 관점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중세 문학에서 바라본 여성’을 주제로 책을 읽을 때 이 두 작품을 절대로 빠트려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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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11-23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문 원작인 초서의 <캔터버리 이야기>를
스페인어 전문가인 송병선 교수가 번역한
책을 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좀 이해가
되지 않더라는.

어떤 우여곡절이 숨어 있는 걸까요.

cyrus 2018-11-23 17:13   좋아요 1 | URL
몇 년 전에 서울 알라딘 종로점에서 이동일 교수가 번역한 <캔터베리 이야기> 합본판을 만난 적이 있었어요. 그 때 그 책을 사지 못한 게 아쉬워요. 결국엔 송병선 교수 번역본을 중고로 샀는데, 이동일 교수 번역본을 읽어볼 생각입니다. ^^;;

북프리쿠키 2018-11-24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켄터베리 이야기 책을 사두고 몇달을 삭히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니 급 읽고 싶어지네요.^^

cyrus 2018-11-26 16:52   좋아요 1 | URL
저도 그 책을 2, 3년 전에 샀는데 아직 읽지 않았습니다. ^^;;

oren 2018-11-24 16: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작부인 이야기』에 나오는 블랜치 공작부인은 랭커스터 공작인 ‘존 오브 곤트‘의 부인으로도 유명한 인물이었더군요. 헨리 4세의 어머니였기도 하고요. 셰익스피어의 사극 가운데 가장 재미있는 작품이면서, 동시에 랭커스터 공작(존 오브 곤트)와 헨리 4세가 둘 다 등장하는 작품으로 <리처드 2세>와 <헨리 4세>가 있는데, 저도 최근에 『캔터베리 이야기』를 읽으면서 초서가 ‘존 오브 곤트‘의 아내인 공작 부인과 매우 깊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앍고 깜짝 놀랬더랬습니다.^^

또한, 랭커스터 공작에게 ‘랭커스터‘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도 자세히 알고 보니 그의 부인이었던 블랜치 공작 부인의 아버지 이름에서 따 온 것이더군요. 블랜치(프랑스어로는 ‘블랑쉬‘)의 아버지(글로스몬트의 헨리)는 당시 잉글랜드에서 가장 강력한 귀족이자 국왕의 친구였고, 시인과 예술가들의 후원자이기도 했는데, 그가 다른 후계자 없이 죽고 나자 방대한 영지인 랭커스터 령을 블랜치가 상속받게 되었고, 결국 국왕(에드워드 3세)은 자신의 셋째 아들이자 블랜치의 남편이었던 ‘존 오브 곤트‘에게 랭커스터 공작 칭호를 부여하게 되었더군요. 당시 블랜치는 the Duchess라고도 불렸는데, 당시 블랜치가 잉글랜드에서 유일한 공작부인이기 때문이었다고도 하네요.

고귀한 품성과 뛰어난 용모의 공작 부인은 랭커스터 공작과 함께 9년 동안 행복하게 살지만, 20대에 병으로 급사하고, 남편은 큰 상심에 빠져 국왕조차 ‘슬픔 때문에 아들이 죽을까봐 걱정할 정도‘였다고도 합니다. 이들 부부 사이에는 세 명의 자녀가 어른으로 성장하는데, 유일한 아들인 헨리 볼링브로크가 훗날 동갑내기 사촌이자 무능한 국왕이었던 리처드 2세를 폐위시키고 헨리 4세에 즉위하고요.(에드워드 3세의 장남은 일명 ‘검은 갑주의 왕자‘로 백년 전쟁에서 맹활약하지만 갑자기 요절하는 바람에, 결국 그의 아들 리처드 2세가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고, 숙부인 존 오브 곤트가 섭정을 맡기도 하고요.)

그런데 초서의 ‘저자 연보‘를 살펴보니 아내인 필리파가 ‘곤트의 존(랭커스터 공작)의 부인 밑에서 일했다‘고 나오더군요. 그게 1372년 초서가 29세 때의 일인데, 흥미로운 건 그때는 이미 블랜치 공작부인(1347∼1368)이 사망한 뒤라는 점입니다. 랭커스터 공작은 아내가 죽은 2년 후에 ‘카스티야의 콘스탄체‘와 정식으로 결혼했는데, ‘저자 연보‘에 나타난 초서의 아내는 아마도 그녀 밑에서 일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어쨌거나 나중에 기회가 되면 『공작 부인 이야기』도 한 번 읽어보고 싶군요.^^

cyrus 2018-11-26 17:04   좋아요 1 | URL
oren님은 이미 다른 초서의 작품을 섭렵했으니 <공작부인 이야기>도 무난하게 읽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
 

 

 

다음 주 목요일에 있을 독서 모임을 위해 오랜만에 오르한 파묵(Orhan Pamuk)의 소설을 읽었다. 독서 모임 선정도서는 파묵의 아홉 번째 장편 소설 《내 마음의 낯섦》(민음사)이다. 그런데 내가 읽은 건 파묵의 첫 번째 장편 소설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민음사)이다. 엉뚱한 선택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파묵의 문학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그의 첫 번째 작품부터 봐야 한다. 파묵 본인이 자신의 모든 소설은 이전에 발표한 소설 속에서 태어난다고 언급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 오르한 파묵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민음사, 2012)

* [읽을 예정인 책] 오르한 파묵 《내 마음의 낯섦》(민음사, 2017)

 

 

 

파묵은 1979년에 발표한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이 문학상에 수상하면서 본격적으로 터키 문단에 데뷔했다. 내년은 파묵이 터키 문단에 등단한 지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런데 노벨 문학상을 받으면서 세계적인 작가로 알려지게 된 그에게도 무명 시절이 있었다. 파묵이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을 발표했을 당시 터키 문단은 농촌 문제를 다룬 소설을 선호했다.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의 공간적 배경은 농촌이 아니라 터키의 대도시 이스탄불(Istanbul)이었고, 작가의 자전적인 색채가 짙은 일종의 ‘교양소설(Bildungsroman)이었다.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은 문학상을 받은 지 3년이나 지나서야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파묵은 이스탄불에서 펼쳐지는 동 · 서양 문명 간의 충돌, 이슬람과 세속화된 민족주의 간의 관계 등을 주제로 작품들을 써왔다.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은 세계화라는 서양 중심의 거대한 흐름과, 그 속에서 점점 주변부화해 가는 터키의 사회적 분위기를 사실적으로 묘사된 작품이다. 파묵은 첫 소설에서 시간적 배경을 아주 넓게 설정하는 대범한 시도를 하는데, 오스만 제국이 점점 몰락해가는 시기인 1905년부터 시작해서 터키 공화국으로 들어서는 과도기의 1930년대를 거쳐, 고속 성장기에 접어든 1970년대 터키의 모습을 보여준다. 파묵은 3대째 이어지는 제브데트 가족과 그 주변 인물들의 삶과 감정 변화를 세밀하게 묘사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에 얽힌 격동기 터키 사회의 모순과 갈등까지 고스란히 그려낸다.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은 한 가족의 삼대에 걸친 이야기를 통해 터키의 굴곡진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대하소설’ 또는 ‘역사소설’로 볼 수 있다. 이 작품이 19세기 유럽의 교양 소설 형식의 틀로 쓰였기 때문에 ‘교양소설’로도 볼 수 있다.

 

 

 

 

 

 

 

 

 

 

 

 

 

 

 

 

 

 

 

 

 

 

 

 

 

 

 

 

 

 

 

 

 

 

* [아직 안 읽은 책] 괴테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민음사, 1999)

* [아직 안 읽은 책] 헤르만 헤세 《데미안》(민음사, 2000)

* [아직 안 읽은 책] 토마스 만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민음사, 2001)

 

 

 

 

교양소설은 한 인간의 전인적인 ‘교양’이 어떻게 완성돼 가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여기서 말하는 ‘교양’이란 소설 속 주인공이 스스로 자아 정체성을 발견하면서 성장하는 과정을 뜻한다. 그래서 독일에서 시작된 교양소설은 ‘성장소설’이라고도 불린다. 괴테(Goethe)《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 토마스 만(Thomas Mann)《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데미안》등은 독일의 대표적인 교양소설이다.

 

교양소설 속 주인공들은 자기 자신과 세계를 분명히 인식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에 도전적으로 대응하는 젊은이로 묘사된다. 그래서 이 교양소설의 주인공들은 격변하는 현실 간의 대결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내 · 외적 갈등에 고민하는 모습을 보인다. 파묵은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을 모델로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을 썼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 2부에 제브데트의 둘째 아들 레피크와 그의 친구인 외메르무히틴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생활환경, 직업, 사회적 지위는 달라도 모두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서 내면적 혼란을 겪는 인물들이다. 레피크는 자신만의 뚜렷한 삶의 목표를 찾지 못한 채 살고 있다. 무히틴은 시인이지만 제대로 된 시집 한 권조차 펴내지 못한다. 불투명한 앞날과, 자신의 재능에 대한 회의, 경제적 궁핍함 등에 둘러싸여 발버둥치면서 생활한다. 파묵은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에서 서구화와 경제 성장에 가려진 터키 청년들의 고뇌를 생생히 재현한다.

 

 

 

 

 

 

 

 

 

 

 

 

 

 

 

 

 

 

 

 

* 오노레 드 발자크 《고리오 영감》(을유문화사, 2010)

* 오노레 드 발자크 《고리오 영감》(열린책들, 2009)

* 오노레 드 발자크 《고리오 영감》(민음사, 1999)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을 읽어 보면, 파묵이 유럽 교양소설을 오마주(hommage)한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부와 명예를 원하는 외메르를 발자크(Balzac)의 소설 《고리오 영감》에 나오는 라스티냐크와 닮았다고 언급하는 대사가 있다. 《고리오 영감》은 시골 청년 라스티냐크가 파리에 살면서 내면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그린 점에서 교양소설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아직 《내 마음의 낯섦》 읽기를 시작하지 않았지만, 이 작품에서도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에서 보여준 파묵 문학 세계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이 이스탄불 중산층 가족의 삶을 다룬 이야기라면, 《내 마음의 낯섦》은 이스탄불 하층민 가족의 삶을 보여준다. 재미있게도 두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하나로 이어진다.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은 1900년대, 1930년대, 1970년대 이야기고, 《내 마음의 낯섦》은 1960년대에서 2012년까지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다. 두 작품에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들은 터키 근현대사를 관통해 살아간다. 그리고 첫 소설에서 이미 보여주었듯이 《내 마음의 낯섦》에서도 ‘전통-전근대-동양’과 ‘현대-근대-서양’의 사회적 · 문화적 충돌에서 빚어진 갈등과 그에 따른 인물들의 감정 변화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 Trivia

 

 이 작품이 구체적 사실로 구성된 역사소설적인 면이 다분히 있지만 이에 허구적 요소를 가미한 점에 대해, 파묵은 “역사는 순수하고 순결한 상상력을 부여해 준다.” 라고 밝히면서 이후의 작품에서도(예를 들면 《내 이름은 빨강》, 《하얀 성》등) 실제 역자와 허구를 버무리는 작업을 계속하게 된다.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 2권에 ‘작품 해설’이 실려 있다. 543쪽에 ‘실제 역자와 허구를 버무리는 작업’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역사’의 오자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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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1-21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에서도 노벨문학상 작가가 나올만한데 안타깝네요...

cyrus 2018-11-22 17:00   좋아요 1 | URL
국제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작가가 없다는 게 아쉽죠. 그런 작가가 되려면 ‘한국적인 색채가 있으면서도 서양적인 색채도 띄고 있는 문학 작품’을 써야 할 것입니다(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쉽게 말하면, 한국 작가가 쓴 소설인데도 직접 읽어보면 서양문학 작품을 읽는 느낌이 나는 작품인 거죠. 파묵의 소설을 읽으면서 그가 왜 노벨 문학상을 받은 건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가 쓴 대표작들은 터키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서양문학에 영향을 받은 작품들입니다. 아마도 노벨 문학상 심사위원들은 터키 출신 작가의 소설을 읽었을 때 이질감을 느끼지 않았을 것입니다. ^^

카알벨루치 2018-11-22 17:06   좋아요 0 | URL
그렇게도 볼수있겠군요 사이러스님 글을 읽으면서 터키출신작가도 노벨문학상을 받는데 왜 우리나라 출신작가는 못 받았을까 이 생각이 스치고 지나가더랬어요! ...역쉬 Sㅣ루스 박사님이십니다!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8-11-21 15:4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날마다 이 정도 퀄리티를 뽑아내는 정보를 제공한다면, 알라딘에서 사이러스 님 월급을 줘야 하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boooo 2018-11-21 17:19   좋아요 1 | URL
공감합니다. ㅎㅎ

카스피 2018-11-22 11:08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공감합니다2 ^^

cyrus 2018-11-22 17:11   좋아요 0 | URL
별 말씀을요.. ㅎㅎㅎㅎ 요즘 알라딘/북플에 깊이 있는 글을 쓰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그런 분들이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
 

 

 

러시아 문학은 약 천 년의 역사를 가졌다. 러시아 문학에 대해서 논하면 도스토옙스키나 톨스토이를 가장 많이 떠올릴 것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제목으로 잔잔한 어조로 우리의 마음에 위로를 주는 푸시킨은 국민 시인으로 추앙받는다. 19세기 러시아 문학은 푸시킨과 고골, 투르게네프,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체호프로 맥을 이어가면서 그 황금기를 구가한다. 특히 이 시기의 러시아 문학은 사회 현실을 농도 짙게 반영하는 사실주의 문학으로서 세계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 이정식 《시베리아 문학기행》 (서울문화사, 2017)

* 김진영 《시베리아의 향수 : 근대 한국과 러시아 문학, 1896-1946》 (이숲, 2017)

* 이광수 《유정》 (애플북스, 2014)

 

 

 

민중성이 짙고, 사상성이 강했던 러시아 문학은 일제 강점기 조선의 민중과 지식인들의 마음을 울렸다. 조선 지식인들이 바라본 러시아는 근대화될 조선의 미래가 그려진 ‘유토피아’였다. 생경한 서양문화를 접한 조선 지식인들은 러시아를 ‘제1세계’로 받아들였다. 특히 조선 지식인들은 시베리아를 방랑과 자유의 공간으로 인식했다. 조선인의 러시아행은 피식민지인의 위치로서 겪는 좌절감을 ‘자유와 해방’에 대한 희망으로 바꾸려는 식민지 조선 탈출의 여정이었다.

 

춘원 이광수는 1914년 6개월 동안 바이칼 호수 근처에 생활한 적이 있으며 시베리아와 바이칼 호수를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 《유정》을 썼다. 소설은 양부, 양녀 관계로 살아온 최석과 남정임, 두 남녀의 비극적 사랑을 다루고 있다.  최석은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함께 했던 친구의 친딸 남정임을 맡아 기르는 교사이다. 그러나 정임은 석을 좋아하게 되고, 석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는 정임과의 애정 관계를 벗어나기 위해 조선을 떠나 시베리아로 향한다. 석이 홀로 향하는 시베리아는 세속의 혼잡한 일, 그것으로부터 비롯된 정신적 고통을 잊을 수 있는 안전지대이다. 그는 그곳에서 자살을 감행한다.

 

 

 

 

 

방대하면서도 눈부실 정도로 화려한 러시아 문학의 황금기에 가려진 작가를 꼽자면, 프세볼로트 미하일로비치 가르신(Vsevolod Mikhailovich Garshin)이다. 가르신은 1880년대 중후반에 활동했던 작가였고, 생전에 20여 편의 소설을 썼을 정도로 많은 작품을 남기지 않았다.

 

 

 

 

 

 

 

 

 

 

 

 

 

 

 

* [e-Book] 가르신 《나흘 동안》 (이북코리아, 2013)

* [e-Book] 가르신 《시그널》 (이북코리아, 2017)

* [e-Book] 가르신 《붉은 꽃》 (위즈덤커넥트, 2018)

 

 

 

1877년에 러시아와 터키 간의 전쟁이 일어나자 가르신은 의용군으로 입대한다. 그러나 그는 전장에서 다리에 상처를 입었는데,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쓴 첫 작품이 바로 단편소설 《나흘 동안》이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소설은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되어 있다. 전쟁 중에 크게 다쳐 대열에서 이탈한 병사가 나흘 동안 겪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다리를 심하게 다쳐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병사는 나흘 동안 전사한 터키 병사의 시체 옆에서 지내게 된다. 병사는 시체가 썩어가는 장면을 눈앞에 보면서 전쟁의 참상을 깨닫는다.

 

 

 사내에게는 이미 얼굴이 없었다. 뼈에서 밀려 내린 것이다. 나도 몇 번이나 두개골을 손에 잡아본 일이 있고, 머리의 표본을 여러 개 만든 일이 있지만, 이 무서운 해골의 웃음은, 영원한 웃음은, 여태까지 느끼지 못한, 기분이 나쁘고 추악한 것으로 느껴졌다. 반짝이는 단추가 달린 군복 차림의 이 해골은 나를 몸서리치게 했다.

‘이것이 전쟁이다. 이것이 전쟁의 모습이다.’

  나는 생각했다.

 

(가르신, 《나흘 동안》 24쪽)

 

 

소설은 전사자의 시체가 썩어가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민중이 희생당하는 전쟁의 참상을 극대화한다. 가르신은 이 데뷔작 한 편으로 명성을 얻는다. 그러나 그의 전성기는 오래 가지 못한다. 그는 정신 발작에 시달렸고, 정신병원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붉은 꽃》은 작가의 정신병원 입원 경험을 토대로 한 단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정신병원 내부의 음울한 풍경과 분위기가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 역시 군인인데, 그는 자신을 병원을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차르(Tsar, 러시아 황제)의 감독관이라고 주장한다. 병원 관계자는 이 군인을 정신병자로 규정하고, 그를 독방과 비슷한 병실에 강제로 보낸다. 군인은 의사와 면담하면서 자신과 같이 불행한 사람을 고문하고, 가둬 두기만 하는 감시 보호 체제의 기능에 의문을 드러낸다. 그러나 의사는 그의 말을 ‘정선이 불안정한 환자’의 헛소리로 치부하고, 대충 흘려 넘긴다.

 

시간이 지날수록 군인은 범상치 않은 언행을 한다. 자신은 ‘보이지 않는 공’의 형태 속에 있고, 자신이 그 공의 중심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공이 부여하는 힘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군인은 정신병원 내부 안에 있는 정원에 핀 ‘붉은 꽃’에 집착한다. 그는 이 붉은 꽃에서 ‘신비하고 강한 힘의 흐름’을 느꼈다면서, 언젠가는 꽃이 세상을 파괴할 것으로 생각한다. 군인이 보기에 붉은 꽃에는 신에게 대항하는 사악함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군인은 붉은 꽃에 사로잡혀 망상과 환상에 끊임없이 시달린다. 결국, 그는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꽃을 제 손으로 파괴하기로 결심한다. 군인은 기어이 꽃을 꺾는 데 성공하지만, 다음 날 아침에 숨을 거둔다. 그토록 파괴하고 싶었던 꽃을 손에 꼭 쥔 채. 그의 얼굴은 무척 평화로워 보인다. 군인에게는 꽃을 파괴하는 일이 본인이 만족할 수 있는, 자유와 해방을 찾기 위한 ‘의무’였을 것이다. 그런데 ‘정상’의 위치에 있는 의사들, 그리고 작품 밖에 있는 독자의 시선에는 그의 행동은 ‘비정상’으로만 보일 뿐이다. 정상과 비정상으로만 나누는 이분법적 판단은 개인이 자유와 해방을 찾는 방식을 일차원적으로 보게 만든다. 소설은 인간의 사소한 행위마저 일차원적으로 보는 ‘정상-비정상’으로 선을 그은 경계를 허물고 비웃는다. 이러한 도발적 글쓰기는 주류의 경계에 벗어난 ‘광인’이라면 할 수 있는 방식이다.

 

가르신도 《유정》의 최석, 그리고 《붉은 꽃》의 병사처럼 죽음을 숨 막히는 세상에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최후의 탈출구로 여겼던 것일까. 가르신은 계단에 몸을 던져 자살을 시도했고, 부상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33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 심현정, 이은희 옮김 《세계 단편소설 베스트 37》 (혜문서관, 2012)

 

 

 

《시그널》은 가르신 사후에 발표된 단편소설이다. 이 작품의 결말은 《나흘 동안》 《붉은 꽃》과는 다르게 감동적인 여운이 있다. 《세계 단편소설 베스트 37》에 ‘신호’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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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10-02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르신이 종이책으로 나온 건 없나보구나.
세계 단편소설 베스트 한 번 읽어봐야겠네.
우리 땐 저런 책이 없었는데. 기껏해야
손바닥만한 삼중당이 고작일까?
그나마 난 그걸 보지도 않았다.
내가 모르는 단편들이 많이 있네.^^

cyrus 2018-10-02 17:50   좋아요 0 | URL
우리 집에 ‘세로쓰기’로 된 세계 단편소설 전집이 있어요. 그 책에는 요즘 잘 번역되지 않은 작가들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어요. 그 중 한 편이 가르신의 소설이었어요. 전집이 창고에 있어서 확인하지 못했지만, 아마도 그 책에 <붉은 꽃>이 수록되어 있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