팡타그뤼엘 제5서
프랑수아 라블레 지음, 권국진 옮김 / 신아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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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프랑수아 라블레(Francois Rabelais)《팡타그뤼엘 제5서》가 번역돼 나왔다. 이 작품은 1979년 을유문화사에서 번역본이 나온 뒤 오랫동안 절판됐다. 라블레의 대표작인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은 작자 미상의 대중소설 ‘가르강튀아 대연대기’에서 착안한 작품이다. 라블레는 1532년에 ‘팡타그뤼엘’을, 1534년에 ‘가르강튀아’를 발표했는데, 이 두 작품을 합본한 책은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이라는 익숙한 제목으로 알려져 있다.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은 거인국의 왕 팡타그뤼엘(Pantagruel)과 그의 아버지 가르강튀아(Gargantua)의 행적을 다룬 연대기 형식의 소설이다. 거인 부자는 음식을 실컷 먹고, 술을 벌컥 마시고, 실없는 대화를 하는 등 소란스러우면서도 유쾌하게 살아간다. 지상의 기쁨을 누리는 데 여념이 없는 거인들의 우스꽝스러운 행보는 금욕적이고 천상의 정신적 가치를 중시하던 중세 사회에 대한 비판이다.

 

‘팡타그뤼엘’과 ‘가르강튀아’는 외설스럽고 반종교적인 작품으로 낙인찍혔지만, 그때는 중세의 낡은 관행들을 뚫고 근대 세계가 서서히 움트던 시대였다. 대중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유토피아적인 희망이 담긴 라블레의 소설을 좋아했다. 소설의 인기에 힘입어 라블레는 1546년에 《팡타그뤼엘 제3서》, 1552년에 《팡타그뤼엘 제4서》를 발표한다. 라블레는 1553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1564년에 저자명이 라블레로 되어 있는 책이 나온다. 그 책의 제목은 ‘선량한 팡타그뤼엘의 영웅적 언행록에 관한 다섯 번째 그리고 마지막 책’이다. 이 책이 바로 《팡타그뤼엘 제5서》이다. 라블레가 쓴 거인 연대기는 총 5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어째서 《제5서》가 전작들과 비교해 많이 주목받지 못하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그동안 《제5서》가 ‘위작’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현재 《제5서》와 관련된 판본으로 확인된 책은 총 세 권이다. 세 권 모두 라블레가 세상을 떠난 뒤에 나왔다. 세 권의 판본을 연도순으로 정리하면, 1562년에 ‘종이 울리는 섬’이라는 제목의 책이 나왔고, 1564년에 결정판인 《제5서》가 나왔다. 나머지 판본은 연대 미상의 필사본이다. 이 필사본은 라블레 사후에 활동한 무명작가가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 《제5서》의 진위에 대한 학자들의 논점은 크게 세 가지 입장으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 《제5서》는 라블레가 쓴 작품이 맞다. 두 번째, 라블레가 《제5서》를 쓰는 도중에 세상을 떠난 바람에 《제5서》는 미완성된 작품이 된다. 그러나 라블레의 필체를 잘 이해하고 있고, 종교개혁 정신을 가진 무명작가가 소설을 완성시켰으며 이 과정에서 약간의 가필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세 번째, 전작과 너무나 다른 문체로 봐서는 《제5서》는 위작이다. 세 번째 입장은 오랫동안 《제5서》를 설명할 때 꼭 거론되었고, 다수의 학자에게 지지받아왔다. 이렇다 보니 《제5서》는 읽을 가치도, 연구할 가치도 없는 작품으로 취급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제5서》에 대한 학자들의 평가가 달라진다. 《제5서》가 라블레의 초고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에 위작이 아닐 수 있다는 의견에 공감하는 학자들이 많아졌다.

 

《제5서》는 《제3서》와 《제4서》의 주인공이자 팡타그뤼엘의 친구인 파뉘르주(Panurge)의 결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술병 신(神)의 신탁을 받으러 항해하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당연히 이 책도 기존에 나온 전작처럼 산만하고 소란스러운 대화가 전개되고, 인물들은 기이한 섬에 당도하면서 황당한 소동에 휘말린다. 그리고 이 책에 나오는 섬 주민들은 ‘새 인간’에 가까운 모습인데, 권력을 남용한 종교인들을 풍자하는 알레고리(allegory)로 볼 수 있다.

 

《제5서》에는 전작에서 볼 수 없는 ‘특별한 글’이 있다. 그것은 바로 ‘칼리그램(calligram, 상형 시)이다. 칼리그램이란 ‘글자로 만든 그림’을 뜻한다. 라블레가 직접 만든 것인지 아니면 《제5서》를 가필한 무명작가가 만든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독특한 글임은 분명하다. 《제5서》 44장에 ‘에필레미’라는 노랫말이 술병 형태의 그림 안에 들어 있다. 에필레미는 포도를 수확할 때 주신 바쿠스(Bacchus)를 찬양하면서 부르는 익살스러운 노래를 말한다.

 

 

 

 

 

 

“오, 신비로 가득 찬 술병 신이여,

난 한쪽 귀로도 그대의 목소리를

듣겠나이다. 당장에, 내 마음이 간구

하는 말을 베풀어주소서. 이처럼

거룩한 성수(聖水)에 인도를 정복한 바커스를 모든 진실을 간직하도다. 성스러운 신주(神酒)여, 그대가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시오. 모든 허위와 모든 기만은 노아의 시대에는 극도의 기쁨이 되지만 그대가 그 비법을 우리에게 베푸나이다. 원하건대, 내 고통을 삭혀주는 아름다운 말을 베풀어주소서.

                 이처럼 한 방울도 잃어버리지 않게 하겠나이다.

                                흰 것이나 붉은 것이나 모두.

오, 신비로 가득 찬 술병 신이여,

난 한쪽 귀로도 그대의 목소리를

듣겠나이다. 당장에.”

 

 

(권국진 옮김, 212~213쪽)

 

 

 

그런데 《제5서》의 역자는 《제5서》의 실제 판본에 실린 칼리그램에 대해서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제5서》가 번역되기 한참 전에 유석호 연세대 불문과 교수는 자신의 라블레 연구서에 《제5서》의 칼리그램을 언급한 적이 있다.[주] 책 14쪽 역주에 ‘호메르스’라는 이상한 단어가 있다.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인 호메로스(Homeros)의 오자이다.

 

 

 

[주] 유석호 《라블레, 새로운 글쓰기의 모험》 (연세대학교출판문화원,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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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농장 세계문학 마음바다 2
조지 오웰 지음, 안경환 옮김 / 홍익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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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홍익출판사에서 나온 조지 오웰(George Orwell)《동물농장》 의 번역은 서울대학교 법학과 교수를 지낸 안경환 씨가 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을 때 초대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내정되었으나 각종 논란이 알려지게 되면서 장관 후보 자격을 스스로 내려놓았다. 《동물농장》 번역본은 안 씨가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시기에 나왔다.

 

이 번역본의 특징은 소설의 장(章, 《동물농장》은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이 끝난 다음에 해설이 나온다는 점이다. 기존에 나온 번역본들의 ‘작품 해설’은 책의 뒷부분에 있다. 소설 텍스트와 텍스트 해설을 교차 배치한 방식이 신선하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각 장에 전개된 이야기들 속에 숨은 의미를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장과 장 사이에 끼인 역자의 해설은 독자의 독해를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이 번역본에 실린 부록은 오웰이 직접 쓴 서문, 특별히 우크라이나 판 《동물농장》 출간을 위해 오웰이 특별히 쓴 서문, 그리고 오웰이 생각하는 정치적 글쓰기의 의미와 그 중요성을 알 수 있는 에세이 두 편(『나는 왜 쓰는가』 『작가와 리바이어던』 )으로 채워져 있다. 문학평론가 정여울 씨와 역자와의 인터뷰 대담도 있는데, 딱히 특별한 내용은 없다. 이 인터뷰 대담은 안 씨가 오웰의 글을 어떤 이유로 좋아하게 되었고, 왜 《동물농장》을 번역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내용으로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렇다 보니 인터뷰에 안 씨의 개인사도 나오는데, 안 씨는 출간 당시 논란이 되었던 《조영래 평전》(강, 2006)을 번역한 일까지 언급했다.

 

 

 《조영래 평전》은 ‘특징 없는 모범생’이었던 저 자신의 엘리트로서의 죄책감과 책임감이 투영된 책이지요.  (228~229쪽)

 

 

이런 것까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있나? 나는 안 씨가 《동물농장》이 아닌 다른 책을 쓰게 된 배경이 무엇인지 궁금하지도 않으며 알고 싶지 않다. 안 씨가 말하는 사족만 빼면 내용이 전체적으로 괜찮은 인터뷰다.

 

 

책을 읽다가 오자 두 개를 발견했다.

 

 

 ‘영국의 짐승들’ 노래가 예견하는 ‘황금빛 미래’에는 동물들은 인간의 잔인한 지배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노동의 대가로 행복한 공동체의 삶을 누린게 된다는 것이다. (32쪽)

 

 

‘누린게’를 ‘누리게’로 고쳐야 한다.

 

 

부록 「작가와 리바이어던」 216쪽에 제임 조이스(James Joyce)라는 오자가 있다. 《율리시스》를 쓴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 제임스 조이스의 오자다.

 

 

《동물농장》 5장 해설에 오류가 있다. 잘못된 내용이 있는 문장을 인용해 본다.

 

 

 역사에서도 레닌이 죽자 스탈린은 트로츠키를 추방하고 권력을 장악한다. 오웰 자신이 스페인내전(1936~1939)에서 트로츠키파에 가담한 경험이 있기에 스노볼을 비교적 우호적으로 그렸다는 해석도 있다. 레닌은 멕시코에까지 암살단을 보내어 트로츠키를 살해한다. 트로츠키 사후에도 레닌은 계속하여 그를 ‘위험한’ 유령으로 규정하고 그를 핑계 삼아 1930년대 피의 대숙청작업을 단행했다. (84쪽)

 

 

레닌이 죽은 뒤에 스탈린이 트로츠키를 추방하고 권력을 장악했다고 언급된 문장이 있다. 그런데 ‘죽은’ 레닌이 트로츠키를 암살하라고 지시를 내렸다는 문장이 이어서 나온다. 앞뒤가 맞지 않는 내용이다. 생전에 레닌은 스탈린과 그를 따르는 세력이 커지는 것을 경계했다. 그러나 레닌의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트로츠키와의 권력 투쟁에서 승리하면서 당내 유일한 지도자로 자리 잡은 스탈린은 ‘피의 대숙청’을 단행했다. 이 시기에 레닌은 죽고 없다. 레닌은 1924년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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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9 12: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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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7-10 12:18   좋아요 0 | URL
오웰이 <동물농장>을 쓰기 시작한 시기에 이미 소련은 ‘스탈린 제국’이었어요. 그런데 영국의 일부 좌파들은 소련 내 분위기와 심각한 상황들에 대해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어요. 사실 오웰이 ‘독재로 변질된 사회주의’만큼이나 걱정했던 것은 ‘냉전’ 체제 분위기가 올 수 있는 암울한 미래였어요. 오웰이 예상한대로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에 냉전이 시작되었어요.
 

 

 

지난달에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글과 그와 관련된 책들을 찾아 읽었다. 오웰을 다시 만난 6월은 정말 그가 대단한 작가이자 ‘행동하는 지식인’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해준 시간이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다룬 글을 주로 썼고, 골수 좌파로 살아간 삶의 이력 때문인지 모르겠는데 영미 문학사에서 오웰이 언급되지 않은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영미문학에서 오웰이 차지하는 위상을 재고해보는 글을 써보고 싶다.

 

 

 

 

 

 

 

 

 

 

 

 

 

 

 

 

 

 

 

 

* 조지 오웰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 (이론과실천, 2013)

* [품절] 조지 오웰, 박경서 옮김 《코끼리를 쏘다》 (실천문학사, 2003)

 

※ 오웰의 글 ‘Good Bad Books’가 수록된 책은 《코끼리를 쏘다》와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다. 그런데 두 책이 번역한 글의 제목이 다르다. 앞의 책은 ‘좋으면서 나쁜 책’, 뒤의 책은 ‘좋은 대중소설’이라고 되어 있다.

 

 

 

대부분 사람은 오웰의 문학을 ‘좋으면서 나쁜 문학(good bad literature)으로 보고 있는지 모른다. ‘브라운 신부’라는 탐정이 등장하는 작품들을 쓴 영국의 작가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Gilbert Keith Chesterton)‘좋으면서 나쁜 책(good bad book)이라는 표현을 처음으로 썼다. 이 표현을 주목한 오웰은 1945년에 ‘좋으면서 나쁜 책’이라는 제목의 글을 썼고, 이 글에서 그는 ‘좋으면서 나쁜 책’에 속하는 문학 작품들을 언급했다. 그렇다면 체스터턴이 말한 ‘좋으면서 나쁜 책’은 무슨 의미일까. 문학적인 메시지가 부족하거나 문학적인 가치는 떨어지지만, 그래도 읽어볼 만한 재미있는 책을 뜻한다.

 

 

 

 

 

 

 

 

 

 

 

 

 

 

 

 

 

 

 

* 조지 오웰, 권진아 옮김 《동물농장: 어떤 동화》 (시공사, 2012)

* [일시 품절] 조지 오웰, 최희섭 옮김 《동물농장》 (펭귄클래식코리아, 2008)

 

 

 

 

오웰은 자신의 작품들이 ‘좋으면서 나쁜 문학’에 속할 거라고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그의 대표작 《동물농장》은 ‘좋으면서 나쁜 책’으로 과소 평가받는 듯하다. ‘문학 작품’으로 보기 어려우나, 그래도 읽을 만한 책으로 말이다. 대부분 사람은 《동물농장》을 ‘우화(fable)라고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오웰은 이 소설을 완성했을 때 ‘A fairy story’라는 부제를 정했다. 그런데 《동물농장》이 미국에 출판되자 부제가 삭제되었다. 《동물농장》을 펴낸 영국의 출판사들도 부제를 삭제했다. 어느 영국의 출판사는 아동 도서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대면서 《동물농장》 출간을 거절했다. 아마도 출판사들은 《동물농장》의 부제를 보는 순간 《동물농장》이 ‘어린이를 위한 우화(동화)’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오웰이 살아있을 때 나온 모든 《동물농장》 번역본 가운데 부제가 있는 유일한 번역본은 텔루구어(Telugu language: 인도의 드라비다족이 쓰는 언어) 판이었다.

 

우리는 오웰이 부제를 단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 오웰은 어린이 독자들을 위해 《동물농장》을 쓴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동물농장》이 ‘청소년 필독 도서’로 많이 알려지는 바람에 이 작품의 장르를 ‘아동 문학’이라고 생각하는 인식이 형성되었다. 게다가 독자들은 오웰이 애초에 ‘동물들의 눈으로 인간 세태를 고발하는 우화’를 썼을 거라고 생각한다.

 

《동물농장》은 ‘우화’라고 정확하게 말할 수 없는 작품이다. ‘우화’의 형식을 빌려 쓴 문학 작품이다. 오웰은 자신이 추구했던 사회주의의 이상과 거리가 먼 소련 소비에트 체제에 눈 감은 영국 좌파들, 그리고 ‘연합국’이라는 이유만으로 소련 내의 인권 탄압(1936~1938년에 일어난 반 스탈린파 세력에 대한 대숙청, 1937년에 시작된 소수 민족 강제 이주 정책 등)에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는 영국 언론인 및 지식인들의 태도에 실망했다. 그래서 그는 전체주의로 변질한 소련 소비에트 체제와 국익을 위해 소련과 손잡은 서방 국가들(영국, 미국)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기 위해《동물농장》을 썼다. 우화 형식으로 구성된 이야기 속에 숨어 있는 오웰의 진짜 메시지를 알아차린 영국의 출판사들은 《동물농장》 한 권 때문에 영국과 소련 간의 관계가 껄끄러워질까 봐 출판을 꺼렸다. 심지어 오웰이 작가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준 출판인 빅터 골란츠(Victor Gollancz)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던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마저 오웰의 《동물농장》 출간 제안을 거절했다.

 

《동물농장》이 ‘청소년 필독 도서’ 또는 ‘청소년을 위한 우화’로 많이 알려진 이유는 자명하다. 대부분 독자는 우화 또는 동화의 형태로 소설을 쓰게 된 오웰의 진짜 의도와 이 소설이 나오게 된 역사적 배경을 살피지 않은 채 《동물농장》 텍스트에 성급하게 접근하는 독서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텍스트를 먼저 읽고 난 후 텍스트에 대한 해설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작품의 특징에 따라서 정반대로 읽어야 할 때가 있다. 나는 《동물농장》을 제대로 읽으려면 해설을 먼저 읽고 나서 텍스트에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동물농장》이 ‘문학적 장치(우화, 디스토피아)를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소설’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동물농장》은 ‘좋으면서 나쁜 책’이 아니다. 그것은 문학적인 면에서 매우 뛰어난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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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3 12: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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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7-03 16:33   좋아요 0 | URL
군 복무하기 전에 처음으로 <동물농장>을 읽었어요. 그때는 오웰이 생각했던 대로 소련의 전체주의를 비판한 소설로 보였어요. 그런데 최근 다시 읽으니까 <동물농장>이 자본주의가 최고이며 선이라고 우기는 전체주의적 분위기를 풍자하는 소설로 느껴졌어요. 그런데 좌파를 공격하고 싶은 우파는 <동물농장>을 그저 좌파를 깎아내리는 소설로 치부합니다.
 
동물농장.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7
조지 오웰 지음, 김기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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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Down and Out in Paris and London)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가 1933년에 발표한 첫 번째 작품이다. 작가가 된 블레어는 이때부터 필명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 이름은 바로 조지 오웰(George Orwell)이다.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줄여서 ‘파리와 런던’)은 오웰의 대표작 《동물농장》과 《1984》에 비하면 인지도가 낮은 편이지만, 사회 비판적인 시선을 유지한 작가로서의 오웰을 이해하려면 《파리와 런던》을 지나쳐서는 안 된다. 조지 오웰이 멸망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은 혼란스러운 세계(스페인 내란과 제2차 세계대전이 연이어 일어나고 전체주의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 1930년대 후반) 한가운데에 우뚝 솟으면서 자란 ‘나무’라고 한다면 이 나무의 ‘씨앗’은 블레어의 모습을 간직한 《파리와 런던》이다. 《동물농장》과 《1984》는 당도(문학적 성숙도)가 높은 ‘열매’라 할 수 있다. 책벌레들은 ‘오웰 나무’에 열린 두 개의 ‘열매’를 너무 많이 먹었다. 같은 열매만 계속 먹을 수 없지 않은가. 그러므로 오웰에 관심 많은 책벌레는 훌륭한 ‘열매’와 ‘나무’를 있게 해준 ‘씨앗’에 주목해야 한다.

 

1922년에 블레어는 영국의 식민지인 버마(현재 미얀마)에서 경찰로 근무했다. 그러나 5년 뒤에 그는 고국의 제국주의적 행보에 회의를 느껴 경찰 일을 그만두었다. 블레어는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위해 프랑스 파리에 살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개고생하기 시작했다. 그는 파리의 빈민가에서 생활했고, 너무나 가난해서 며칠 내내 쫄쫄 굶을 때가 많았다. 그래도 돈을 벌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은 다 해봤다. 영어를 가르치는 가정교사부터 시작해서 파리 호텔 안에서 가장 천한 일로 여기는 접시 닦는 일까지 했다. 파리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블레어는 런던으로 건너갔지만, 그의 형편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블레어는 스파이크(부랑자 보호소를 뜻하는 속어)를 전전하는 부랑자 신세였다. 《파리와 런던》은 파리와 런던에서 가난하게 생활했던 블레어의 자전적인 경험이 반영된 작품이다. 《파리와 런던》이 수록된 문학동네 출판사의 번역본에서는 이 작품을 ‘자전소설’로 소개되어 있는데, 사실을 바탕으로 쓴 ‘논픽션(nonfiction)으로 보는 게 맞다.

 

그렇다면 왜 《파리와 런던》에 주목해야 할까. 오웰의 첫 번째 작품이라서? 맞는 말이긴 한데, 나는 너무나도 당연한 이유를 언급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파리와 런던》은 블레어가 ‘오웰’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문학의 거목으로 자랄 수 있게 만든 ‘씨앗’이다. 이 작품은 파리의 빈민가 풍경과 런던의 스파이크 내부 모습을 그림처럼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 놓는다. 오웰은 그곳에 사는 다양한 하층민들과 부대끼며 살면서 그들의 일상생활과 생각을 관찰하듯이 꼼꼼히 들여다본다.

 

소설의 원제에 들어있는 ‘Down and Out’이라는 표현은 ‘빈털터리’, ‘노숙자 신세’를 뜻한다. 역자는 ‘Down and out’을 ‘따라지 인생’이라고 의역했는데, 이 표현은 작품에 등장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처한 상황이 압축돼 있다. ‘따라지 인생’은 남에게 매여 보람 없이 사는 하찮은 인생을 뜻한다. 말 그대로 ‘노예’처럼 사는 인생이다. 오웰은 호텔의 접시닦이가 현대 사회의 노예라고 말한다(275~276쪽). 그들은 하루에 열 시간 또는 열다섯 시간씩 접시를 닦는다. 호텔에 일하는 요리사와 웨이터들은 접시닦이를 반말로 하대하며 온갖 잡일을 그들에게 시킨다.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일하고 매일 부당한 처우를 받는데도 접시닦이는 노조를 만든다거나 파업을 시도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 오웰은 ‘따라지 인생’으로 살아가는 저임금 노동자, 걸인, 부랑자에 향한 대중의 편견(‘게으르다’, ‘사회에 무익한 기생충 같은 존재’)을 비판하면서 그들도 장시간 저임금으로 살아가는 ‘인간’이므로 이들이 처한 상황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촉구한다.

 

《파리와 런던》의 화자는 ‘블레어’지만, 그의 말과 시선은 우리가 아는 그 ‘오웰’과 비슷하다. ‘오웰’이 되려고 하는 블레어는 《파리와 런던》을 통해서 빈부 격차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그 문제에 대한 솔직하고도 비판적 견해를 밝힌다. 투철한 비판 정신에 입각한 오웰의 글쓰기는 《파리와 런던》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Trivia

 

 

* It was a very narrow street—a ravine of tall, leprous houses, lurching towards one another in queer attitudes, as though they had all been frozen in the act of collapse.

 

아주 비좁은 거리였다. 문둥병에 걸린 것 같은 높다란 집들이 마치 와그르르 무너지다가 바싹 얼어붙은 듯 서로에게 비스듬히 묘하게 기울어져 협곡을 이루었다. (128쪽)

 

 

 

→ 문둥병은 한센병(나병) 환자를 멸시하는 의미가 반영되어 있는 구시대적인 표현이다.

 

 

* 프랑스의 전당포는 처음이었다. 웅장한 석조 정문(물론 ‘자유’ ‘평등’ ‘박애’라고 새겨져 있었다. 프랑스는 경찰서 건물에도 이렇게 쓰여 있다)으로 들어가자 학교 교실같이 넓고 텅 빈 방이 나왔다. (151쪽)

 

 

→ 프랑스 국기에 들어있는 적색을 상징하는 ‘Fraternite’를 우리나라에선 흔히 ‘박애’라는 의미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오역이다. ‘Fraternite’는 ‘형제애’를 뜻하므로 ‘우애’로 번역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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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8 13: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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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6-18 16:19   좋아요 0 | URL
오웰은 몸으로 경험한 것을 토대로 글을 쓰는 작가예요. 오웰은 소설가로 유명한데, 사실 그의 진가는 에세이에 있어요. 에세이를 읽으면 맨몸으로 세상에 부딪혀보고, 고민했던 오웰의 사유를 엿볼 수 있어요. ^^

방랑 2019-06-18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물농장 재밌었는데 저는 오웰 작품은 아니지만 멋진 신세계가 더 충격적이었어요.
아. 사이러스님, 책 추천 부탁드려도 될까요?
과학 관련한 책을 읽고 싶은데
과학 잡지도 좋구요
(과학 지식은 거의 없는 편이에요..)

cyrus 2019-06-18 16:23   좋아요 0 | URL
저도 문과 출신이라 과학 지식이 부족해요. 중급 이상의 과학 책보다는 초급 과학 책 위주로 읽었기 때문에 제가 방랑님에게 과학 책을 추천할만한 자격이 되는지 모르겠어요.. ^^;;

제가 읽은 책 위주로 보자면, 초급 수준의 과학 잡지로는 ‘뉴턴 하이라이트’가 좋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뉴턴 하이라이트 시리즈들은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과학 지식들을 소개하고 있고요, 이 책에 그림이 많아서 좋아요.

방랑 2019-06-18 19:13   좋아요 1 | URL
감사해요. 추천해주신 책 읽어봐야겠어요. 비 오네요
벌써 장마인가 싶기도 하고요
저녁 맛있게 드세요.

레삭매냐 2019-06-18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따라지 인생을 어디에 쟁여 두었을
텐데 찾을 수가 없네요.

오웰의 책 읽기는 언제나 즐거움입니다.

cyrus 2019-06-18 16:35   좋아요 0 | URL
오웰이 좌파를 까는 글을 읽으면 속 시원해요. 오웰 본인도 좌파인데 제국주의와 전체주의에 동조하거나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좌파를 비판해요. ^^
 

 

 

장미여, , 순수한 모순이여,

그리고 많은 눈꺼풀 아래

누구의 것도 아닌 잠이 되고픈[1] 마음이여.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의 묘비명이다. 원래는 릴케가 쓴 시였는데, 그가 죽으면서 시는 묘비명이 되었다. 릴케는 장미를 좋아했고, 장미를 예찬하는 시를 썼다. 그가 쓴 수많은 시에 장미라는 단어가 250번이나 등장한다. 릴케가 장미의 시인으로 알려져서 그런지 몰라도 그가 장미 가시에 찔려 죽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여자 친구에게 줄 장미를 꺾다가 손가락에 가시가 찔렸는데, 그 상처에 덧나서 생긴 패혈증에 걸려 죽었다고 알려져 있다.

    

 

 

 

 

 

 

 

 

 

 

 

 

 

 

 

 

 

* [절판] 루 알버트 라사르트 내가 사랑한 시인 내가 사랑한 릴케(하늘연못, 1998)

* [절판] 볼프강 레프만 릴케: 영혼의 모험가(책세상, 1997)

* [절판] 미셸 슈나이더 죽음을 그리다(마음산책, 2006)

    

 

 

릴케가 장미 가시에 찔리는 바람에 한동안 통증에 시달린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패혈증이 아니라 백혈병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유명한 작가들의 최후를 모아놓은 죽음을 그리다(마음산책)는 장미 가시 때문에 영면한 릴케의 낭만적인 최후가 와전된 신화임을 보여준다. 임종에 가까워진 릴케를 진찰한 의사의 증언에 따르면, 릴케는 죽음을 두려워했다. 그는 유서에 죽음이라는 단어를 딱 한 번 썼다. 릴케는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 본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죽음의 순간을 언급했다.

 

 

나는 의사들에 의한 죽음을 원치 않습니다.

나는 나의 자유를 갖고 싶습니다.”

 

(구디 뇔케 여사에게 보낸 편지중에서, 릴케: 영혼의 모험가에 인용됨, 610)

 

 

릴케가 말한 자유가 육신의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다. 어쩌면 릴케는 젊은 시절에 쓴 시에 나오는 구절처럼 자신이 죽으면 영광의 광채(The radiance of Glory)가 내리길 원했을지도 모른다.[2] 영광의 광채가 찬란하게 내려오는 곳은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천국이다. 릴케가 생각한 천국은 장미로 가득한 거대한 정원이 아니었을까.

    

 

 

 

 

 

 

 

 

 

 

 

 

 

 

  

 

* [절판] 루 살로메 선택된 자들의 소망(투영, 2000)

* [절판] 루 살로메 하얀 길 위의 릴케(모티브, 2003)

* [절판] 프랑수아즈 지루 루 살로메: 자유로운 여자 이야기(해냄, 2006)

    

 

 

 

 

 

 

 

 

 

 

 

 

 

 

 

* 릴케 릴케 시집(문예출판사, 2014)

* 릴케 기도 시집들(책세상, 2000)

    

 

 

릴케와 친하게 지낸(또는 연애한) 여성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Lou Andreas-Salomé)다. 루 살로메는 릴케의 인생과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준다. 1899년에 릴케는 루 살로메 부부와 함께 처음으로 러시아를 여행한다. 이듬해에 릴케는 루와 단둘이서 다시 러시아를 여행한다. 릴케의 러시아 여행은 시인으로서의 릴케에게 새로운 전환점이 된다. 선택된 자들의 소망(투영)에 수록된 나와 릴케라는 제목의 글은 릴케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시작해서 그와 함께한 러시아에서의 여정을 상세하게 보여준다. 이 글에서 루는 러시아 여행의 여운이 반영된 릴케의 초기 시집 기도 시집을 분석한다. 이러한 릴케의 시 세계에 대한 루의 지대한 관심은 릴케가 죽은 후에 발표한 하얀 길 위의 릴케(모티브)로 이어진다. 루는 릴케가 자신에 보낸 편지글을 통해 그와의 추억을 되살리고, 정신분석학 관점으로 릴케의 중기 및 후기 시 작품들을 분석한다. 루는 프로이트(Freud)에게 배운 정신분석학을 동원하여 릴케의 시 세계에 반영된 어린 시절 릴케의 모습을 소환한다. 릴케의 어머니는 일찍 죽은 딸을 잊지 못해 어린 릴케를 딸의 대체물로 생각하면서 키웠다. 릴케는 일곱 살 때까지 여자아이처럼 인형을 갖고 놀거나 원피스를 입고 다녔다. 이로 인해 릴케는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었을 것이고, 어머니의 보살핌을 많이 받지 못한 어린 릴케의 마음속에는 어머니에 향한 불편한 감정들이 차곡차곡 쌓여만 갔다. 루는 릴케의 글에 어머니의 모습이 다양하게 변형되어 나타나 있다고 주장한다.

 

릴케는 라는 이름을 가진 두 명의 여성을 만났는데, 한 명이 앞서 언급한 루 살로메다. 또 한 사람은 릴케와 십여 년 동안 친하게 지낸 화가 루 알베르트 라사르트(Lou Albert-Lasard)이다. 릴케는 그녀를 룰루(Lulu)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룰루는 1952년에 릴케를 회고한 책 ‘Wege Mit Rlike(릴케와 함께 걸은 길)를 발표했는데, 이 책은 릴케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재혁 교수의 번역본으로 나왔다. 1993년에 소유하지 않는 사랑(범조사)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본이 처음 출간되었고, 1998년에 내가 사랑한 시인 내가 사랑한 릴케(하늘연못)라는 새로운 제목으로 재출간되었다.

 

이 책에서 룰루는 루와 릴케의 관계를 언급하는데, 그녀의 남자다운 기질과 활동적인 모습을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는 듯한 어조로 묘사한다. 루 살로메가 악녀의 대명사로 알려지게 된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그녀는 한 마디로 날카로운 오성과 활기찬 기질을 겸비한 여성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감성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어딘가 지나치게 분석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루 살로메는 나이나 겉모습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음에도 그녀 특유의 타오르는 생동감 덕분에 여전히 그녀를 사모하는 사람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루가 내뱉은 한 마디의 경멸조의 말에 눈물을 흘린 나머지 단안경을 땅바닥에 떨어뜨리던 한 사내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녀의 눈길은 엄청난 힘을 발하고 있었다.

    

 

(루 알베르트 라사르트, 내가 사랑한 시인 내가 사랑한 릴케중에서, 77쪽과 80)

 

 

김재혁 교수는 라사르트의 회고록이 릴케 연구서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평가한다. 볼프강 레프만(Wolfgang Rebmann)이 릴케 평전을 쓸 때 참고한 문헌 목록에 라사르트의 회고록이 포함되어 있다. 당연히 루 살로메가 쓴 회고록도 참고 문헌 목록에 들어있다. 루 살로메와 루 알베르트 라사르트의 책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으면 독자는 릴케라는 시인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또 그의 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몰랐을 것이다. 그런데 이 세 권의 번역본 모두 구할 수 없게 됐다. 예전에 썼던 글에 한 차례 언급한 적이 있는데, 절판된 책을 사람으로 비유하면 고인이나 다름없다. 릴케가 세상을 떠난 날 다음에 아침 신문에 실린 부고 한 줄 빌려 절판된 세 권의 책을 추도하는 짤막한 글을 남겨본다.

 

 

릴케 평전은 죽었고, 그가 쓴 시만 홀로 남아 있다! [3]

 

 

 

 

 

 

[1] 내가 사랑한 시인 내가 사랑한 릴케릴케: 영혼의 모험가를 번역한 김재혁 교수는 묘비명의 마지막 구절을 누구의 것도 아닌 잠이고픈 마음이여라고 썼다. 잠이고픈이라는 표현이 어색하게 느껴져서 잠이 되고픈이라고 고쳐 써봤다.

    

 

[2]

늙은이는 생각하고 있었다.

언젠가 나도 쉬게 되리라, 이렇게 편안히

젊은이도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죽을 때도 영광의 광채가 내리기를.

 

(해넘이의 마지막 인사중에서, 송영택 옮김, 릴케 시집, 19

 

 

[3] 원문: 릴케는 죽었고, 세상만이 홀로 남아 있다! (Rilke est mort, que le monde reste seul!,내가 사랑한 시인 내가 사랑한 릴케,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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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5-21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서체로 물어보는 건데, 이 정도 함량의 글을 돈 한 푼 안 받고 쓰면 손해보는 기분 들고 그런 건 없어요??

cyrus 2019-05-21 19:44   좋아요 1 | URL
글 쓰는 재미로 하는 거죠. 예전에 저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무슨 대가나 인정을 바라면서 글을 쓰면 글 못 써요. 보상(인정)받아야 한다는 욕구를 가지는 것도 좋긴 하지만, 너무 거기에 집착하면 번뇌가 되고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해탈하기로 했습니다...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