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5/400. 해질 무렵 (황석영)
노련한 작가가 어깨에 힘 빼고 '희미한 옛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재개발로 허물어진 달동네(달골)과 영산읍은 주인공 박민수가 벗어나려 애썼던 고향이고 차순아나 윤병구에게는 그리운 장소다. 툭 하면 뽑힐 강아지풀 같이 힘없이 겨우겨우 살아왔던 차순아씨의 이야기를 우희가 읽고 다시 쓴다. 익숙한 이야기 소재이지만 전개나 설정이 부드럽다. 건설광풍의 시대의 '인간적'이지 못했던 건설, 재개발 이야기 (그것도 사십여년에 걸친)인데 '강남몽'이나 '낯익은 세상'과는 다른 시선을 가지고 있다. 모두 지나왔고, 다 떠나버려 회한만 남았다. 얼핏 <사랑과 야망 2015> 같아도, 야망보다는 사랑에, 추억과 고향에, 그리고 해질 무렵 가만히 하늘에 눈길을 가게 만드는 소설이다. 바로 전에 읽었던 '여울물 소리'보다 훨씬 좋다. 우희의 갑갑한 반지하 생활은 어느 고향을 그리는 꿈을 꿀까. 그녀가 강아지풀에 물을 더 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