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내가 무심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많더군 -_-


학교에서도 그랬고, 회사에서도 그랬고
나는 거의 '소문의 끝'이었다
(내가 알면 전교가, 전회사가 다 알고 있는?)

그건 사실 내가 타인의 이러쿵저러쿵에 크게 관심을 쏟지 않기 때문임이 크다
그러니까, 내가 정말 관심이 없는 건 아닌데
그냥 살다 보면 주변에서는 이런 저런 일들이 일어나고
나는 늦게 알게 되거나, 혹은 모르고 지나가게 되거나

(에니어그램상으로도 9번은 타인에게 친절해보이지만 의외로 무심하단다
쿡! 찔렸다 그래도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닌데 ;;;)


오늘, 점심에 밥을 먹다가
곧 우리회사로 오는 C의 현재 팀장님의 집요한 삐짐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우리 팀장님 하는 얘기가

그런거 있어, 이뻐하던 애가 나가면 보내긴 보내지만 그래도 얼마나 서운한데
나 E나갈 때 한달 동안 말 거의 안걸었잖아

무심결에 듣던 나는, 아..... 그러셨어요?

화들짝 놀라는 팀장님

팀장님 : 너, 설마 몰랐던 거야?
웬디 : 네, 저 몰랐는데.......
팀장님 : H야, 너도 몰랐니?
막내 : 아니요, 전 알았는데 ;;;
팀장님 : 야....너 심하다
웬디 : 팀장님 저요 E대리가 나간다고 얘기해주려고 저한테 '대리님 요즘 제가 이상해요?' 라고 얘기하는데 제가 '아니요? 하나도 안이상한데요? 왜요? 누가 이상하대요?' 라고 물어서 E대리가 얘기 못했잖아요
팀장님, 막내 폭소
팀장님 : 그럼 너 D가 E 나가는 날까지 말 안건 것도 알았어?
웬디 : 네, 마지막날에............
팀장님 : 야.... 너 진짜 심하다 심해.....-_-


모를 수도 있지 ㅜ_ㅜ 우리 팀장님 혀를 끌끌 차시며, 너무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는 둥...으흑!
내가 원래 그렇다, 옆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말 안해주면 잘 모른다

그치만 나는
상대의 행동에 대한 시시콜콜한 관심보다는
타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은 욕망이 굉장히 강한 편이고,
개인사에 대한 관심보다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이다 (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한다...-_-;;;)
그게 자꾸만, 타인을 규정하는 일로 귀결되어 문제이긴 하지만... -_-


점심을 먹고, 회사로 돌아오며 난 팀장님과 H씨에게 묻는다


웬디 : H씨, 혹시 저한테 삐져서 말 안걸었던 적 있어요?
막내 : 하하하 없는데요?
웬디 : 팀장님, 팀장님은요, 말 안걸었던 적 없으신거죠? 제가 모르고 넘어간 거 아니죠?
팀장님 : 그래, 없다 없어
웬디 : 저한테 삐져서 말을 안하실 예정이면 앞으로는, 이제부터는 말 안걸 거라고 꼭 얘기해주세요, 말 안걸고 그냥 지나가시면 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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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지 2008-07-24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인이랑 싸울 때 대체 왜 삐쳤는지 몰라줘서 답답하다는 여자들이 의외로 많던데,
웬디양님은 어째 반대가 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ㅎㅎㅎㅎ


웽스북스 2008-07-25 01:58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근데 꼭 또 그렇지만은 않긴 한 것 같아요
그런데 친구가 왜 삐졌는지 몰라서 답답해했던 적은 있어요 ㅜㅜ

순오기 2008-07-24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말 안거는 걸, 말 안해주면 모른다니~ 무심함일까 관대함일까?^^

웽스북스 2008-07-25 01:59   좋아요 0 | URL
하하하 그러게요 그러고보니 또 그러네요 ㅎㅎ
그냥 바쁜갑다, 해버리는건가? ㅎㅎ
시간이 오래 지나면 알긴 하겠죠

친구랑 한달동안 말 안하고 산적 있어요
위에 써놓은 저 친구 ㅎㅎ

니나 2008-07-24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양님은 무관심할순 있어도 무심하진 않아요~ 홍홍홍(11시반까지 같이 야근하자는 약속도 철썩같이 지켜주시고~)

웽스북스 2008-07-25 02:01   좋아요 0 | URL
흐흐 2시다! 여전히 열씸히 작업중인거지? 흐흣
난 무식할 수는 있어도 무심하지는 않나봐

방금 문자가 ㅎㅎ 조심히 들어가길, 자면서 기도하마
오늘 고생 많았어 ^_^ 어여 끝내구~

라주미힌 2008-07-25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분이군용.. ㅎㅎㅎ

웽스북스 2008-07-25 02:02   좋아요 0 | URL
조심하세요 ㅋㅋㅋㅋㅋㅋ

무스탕 2008-07-25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째 비슷하신듯..
저도 학교다닐때, 직장다닐때 젤 끝으로 소문 듣는 소문 마무리 지역이었죠 -_-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애들 학교에서 엄마들, 아이들, 선생님들 사이의 무슨 일이 있으면 거의 마무리 즈음에서 듣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웽스북스 2008-07-26 00:43   좋아요 0 | URL
무스탕님도 소문의 끝이군요 ㅋㅋㅋㅋㅋ
저도 앞으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요
어휴, 도무지 그런 거 정보 빠른 사람들은 대단한 것 같아요
제가 소문을 빨리 알 때는, 거의 다 정보 빠른 친구가 옆에 있을 때였던 것 같아요 ㅎㅎㅎ

L.SHIN 2008-07-25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어요. -_-

웽스북스 2008-07-26 00:44   좋아요 0 | URL
저도모르겠어요 에쓰님 ;;;
그런데 그걸 정확히 안다는 것도 참 슬플 것 같구요

그래도 살면서 계속 탐구해 나가야 할 자기자신의 영역같은 거랄까?
그런게 있어야 사는게 또 좀더 재밌구 그러지 않겠어요? ㅎㅎ

Arch 2008-07-25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오지랖이라 안 알려주려고 해도 막 알아내고 그러는데. 그래서 혼자 누가 잘했나 어쨌나 따지기도 하고, 웬디양님은 참으로 속속, 잘 모르겠어요.^^

웽스북스 2008-07-26 00:45   좋아요 0 | URL
아 제가 무심한데 또 집요하기도 해요
일단 궁금해진 건 막 집요하게 물어봐요

다만 궁금해지기 전 단계까지 가는게 힘들다는 건가? ㅎㅎㅎ

아훙 나도 정말 나를 속속 잘 모르겠어요

네꼬 2008-07-25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하하 귀여워 웬디님. 무심한 웬디님. 그래서 사심도 없겠지. (빙긋)

웽스북스 2008-07-26 00:45   좋아요 0 | URL
네꼬님 아직도 주먹 쥐고있어요? (큭큭)

2008-07-28 18: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퇴근길, 택시를 탈까 지하철을 탈까 고민을 하면서 내려왔다
택시를 타면 시간은 단축되지만, 아무것도 못하니까, 사실상 단축이 아닌 것도 같고
죽도록 피곤하면 택시를 타겠지만, 또 오늘은 그렇지도 않고

하여 지하철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 내려왔으나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비가온다, 빗길에 택시를 기다릴 재간이 없으므로
나는 얼른 후두두둑 지하철 역으로 달려들어갔다


오늘 산 심보선의 시집을 가방에 넣어두고 오길 잘했다
예전 토지모임 때 니나가 읽어줬던 시가 좋아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딱 그런 느낌의 시를 읽고 싶은 날이었다











'슬픔이 없는 십오초'
접힌 귀퉁이가 몇개인가
별 다섯개를 주고 싶은 시집



웃는다, 웃어야 하기에
- 심보선

1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래
이 집안에 더 이상 거창한 이야기는 없다
다만 푸른 형광등 아래
엄마의 초급영어가 하루하루 늘어갈 뿐

엄마가 내게 묻는다, 네이션이 무슨 뜻이니?
민족이요, 아버지가 무척 좋아하던 단어였죠
그렇구나
또 뭐든 물어보세요
톰 앤드 제리는 고양이와 쥐란 뜻이니?
으하하 엄마는 나이가 느실수록 농담이 느네요

나는 해석자이다
크게 웃는 장남이다
비극적인 일이 다시 일어난다 해도
어디에도 구원은 없다 해도
나는 정확히 해석하고
마지막에는 반드시 큰 소리로 웃어야 한다

장남으로서, 오직 장남으로서
애절함인지 애통함인지 애틋함인지 모를
이 집안에 만연한 모호한 정념들과
나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

2

바람이 빠진 아버지의 자전거를 타고 천변을 달릴 때
풍경의 남루한 진실이 조금씩 드러난다
꽃이 피고 지고
눈이 쌓이고 녹는다
그뿐이다
그리고 간혹 얕은 여울에서
윤나는 흰 깃털을 과시하며 날아오르는 해오라기
오래전에 나는 죽은 새를 땅에 묻어준 것이 있다
그 이후로 다친 새들이 툭하면 내 발치로 다가와 쓰러지곤 하였다
지저귐만으로 이루어진 유언들이란 얼마나 귀엽던지

한쪽 눈이 먼 이름 모를 산새 한마리
이쪽으로 뒤뚱대며 다가온다
지저귐, 새의 발랄한 언어가 없었다면
끄것은 단지 그늘 속에서 맴도는 검은 얼룩이었겠지만

3

나는 엄마와 가을의 햇빛 속을 거닌다
손바닥을 뒤집으니 손등이 환해지고
따사롭다는 말은 따사롭다는 뜻이고
여생이란 가을, 겨울, 봄, 여름을 몇번 더 반복한다는 거다

가을의 햇빛 속에서
다친 새들과 나와의 기이한 인연에 대해 숙고할 때
세상은 말도 안 되게 고요해진다
외로워도 슬퍼도 엄마의 심장은 디덤디덤 뛰겠지만

빌딩 옥상에서 뛰어내린 한 자살자는
몸을 던지는 순간에 점프! 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의 심장은 멈추기 직전까지
디디덤 디디덤 엇박자로 명랑하게 뛰었겠지만

그늘 속에 버려진 타인의 물건들
끄 흔해빠진 손바닥과 손등들
냉기가 뚜렷이 번지는 여생을 어색하게 견디고 있다
견뎌낼 것이다, 그래야만 하기에

4

내게 인간의 언어 이외에 의미 있는 처소를 알려다오
거기 머물며 남아 있는 모든 계절이란 게절을 보낼테다
그러나 애절하고 애통하고 애틋하여라, 지금으로서는
내게 주어진 것들만이 전부이구나

아아, 발밑에 검은 얼룩이 오고야 말았다

햇빛 속에서든 그늘 속에서든
나는 웃는다, 웃어야 하기에
지금으로서는
내게 주어진 것들만이 전부이기에
지금으로서는




슬픔이 없는 십오초
- 심보선

아득한 고층 아파트 위
태양이 가슴을 쥐어 뜯으며
낮달 옆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치욕에 관한 한 세상은 멸망한 지 오래다
가끔 슬픔 없이 십오 초 정도가 지난다
가능한 모든 변명들을 대면서
길들이 사방에서 휘고 있다
그림자 거뭇한 길가에 쌓이는 침묵
거기서 초 단위로 조용히 늙고 싶다
늙어가는 모든 존재는 비가 샌다
비가 새는 모든 늙은 존재들이
새 지붕을 얹듯 사랑을 꿈꾼다
누구나 잘 안다 이렇게 된 것은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태양이 온 힘을 다해 빛을 쥐어짜내는 오후
과거가 뒷걸음질 치다 아파트 난간 아래로
떨어진다 미래도 곧이어 그 뒤를 따른다
현재는 다만 꽃의 나날 꽃의 나날은
꽃이 피고 지는 시간이어서 슬프다
고양이가 꽃잎을 냠냠 뜯어먹고 있다
여자가 카모밀 차를 홀짝거리고 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듯도 하다
나는 길 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다
남자가 울면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궁극적으로 넘어질 운명의 인간이다
현기증이 만발하는 머릿속 꿈 동산
이제 막 슬픔 없이 십오 초 정도가 지났다
어디로든 발걸음을 옮겨야 하겠으나
어디로든 끝간에는 사라지는 길이다




시들이 대체로 긴 편이라 다 옮기지 못한 시들도 있지만,
이보다 더 마음에 쏙 들어와 박히는 싯구를 가지고 있는 시들도 많았다
잘 모르던 시인이었는데,
요즘의 답답한 마음에 꼭 들어맞는 시가 많아
나는 마치 횡재한 기분이 돼버린다  

지하철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오니 여전히 비가 내리고
나는 여전히 우산이 없어 걸어가는데
빗줄기가 점점 굵어진다
머리칼을 타고 이마로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공단 원피스가 흠뻑 젖어버리자

나는 그제서야 좀 살 것 같았다


그 순간은 오늘의 나에게
슬픔이 없는 십오초가 돼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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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8-07-24 0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교보문고에서 사셨다더니, 이 시집 좋지요?
저도 찜 해놓은 시인, 시집이랍니다.
소개해주신 시도 심상치 않네요 ^^

웽스북스 2008-07-24 17:26   좋아요 0 | URL
네 좋더라고요 ^_^
흐흐흣 hnine님도 사셔서 읽어보셔요

니나 2008-07-24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지요... 흐흐. 근데 나도 집에서 역이 5분거리인데 어젠 왜 비맞을 자신이 없었을까.(이건 내 블로그에 달아야하는 답글같기도ㅎ) 심보선은 동동주에 영혼을 팔은 다음날 상태마냥 어지럽고 휑휑하고 속쓰린 구절이 너무 많아. 가끔 읽을 자신이 안생기는 날이 있을만큼.



웽스북스 2008-07-24 17:27   좋아요 0 | URL
응 그렇더라
시 전체적으로도 그렇지만
한두구절 콕콕 찍히는 것들 윽!

비로그인 2008-07-24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를 잘 읽어내질 못했는데, 참 좋아요.


으이고..이런 시에 좋다는 말밖에 못한다니 전 역시 말초적이며 취향이 변질되어버렸나 봅니다.

다락방 2008-07-24 12:58   좋아요 0 | URL
Jude님.
저도 좋다는 말밖에 할수가 없는걸요.

웽스북스 2008-07-24 17:27   좋아요 0 | URL
저도 잘 읽어내질 못해서
참, 좋아요 라는 말 밖에는

전 역시 단순해요 ㅜ_ㅜ

그래도 쥬드님, 다락방님이 좋아요, 하시니....좋아요 ^^

람혼 2008-07-25 0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집의 구매를 살짝 망설이고 있었는데, 웬디양님의 이 글을 보고 바로 제 몸 안으로 '지름신'이 강림하심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웽스북스 2008-07-25 10:14   좋아요 0 | URL
어쩐지 아침에 지름신님이 람혼님께 잠깐 기거하다 오시겠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ㅎㅎ 그 시집 사실 때까지 저는 검약 모드 웬디가 잠깐 돼있도록 하겠습니다 ㅎㅎㅎ

L.SHIN 2008-07-25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좋은 시들인거 같은데, 글자색이 너무 눈부셔서..결국 중간에 중단..=_=
나중에 생각나면 다시 봐야겠어요.

웽스북스 2008-07-26 00:46   좋아요 0 | URL
아 그랬군요
나중에 다시 볼 에쓰님을 위해
글자색 바꿉니다 흐흣

L.SHIN 2008-07-26 23:28   좋아요 0 | URL
"태양이 가슴을 쥐어 뜯으며
낮달 옆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이 사람의 글 표현, 마음에 드는데요.(웃음)
(결국 다시 읽고 간 LS ^^)

웽스북스 2008-07-27 16:50   좋아요 0 | URL
그렇죠 그렇죠,
괜히 뿌듯한 W ㅎㅎㅎ

네꼬 2008-07-25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시집, 좋구나. 고마워요, 웬디님. 놓칠 뻔했네. (장바구니 직행-)

웽스북스 2008-07-26 00:46   좋아요 0 | URL
으흐흣~ ^_^ 괜히 쫌 기뻐요 네꼬님 ^_^
 



점심에는 밥을 포기하고! (대신 빵)
교보나들이를 다녀왔다

H에게 빌린 닌텐도DS를 돌려주면서
너무 늦어 미안한 마음에 펜을 새로 사서 주려고
실은 인터넷에서 주문해도 됐는데
핑계김에 교보에 가서 보고 사겠다며 나갔는데
인터넷에서 보고 나간 상품이 훨씬 낫더라며

하지만, 전혀 발품판 것이 아쉽지는 않더라며 ㅎㅎ

오프라인으로 책을 잘 안사는데
오늘은 어쩐지 시집을 한권 사고픈 마음에,
그리고 책방띠가 둘러진 책을 들고오고 싶은 마음에
(책을 장식품으로 여기는 것 같으다 어째 ;;;)
K가 추천한 심보선의 시집과 다른 시집 한권을 더 사서
봉투 필요하냐는 말에 '종이로 싸주세요' 라는 말을 굳이 하고는
(그말은 안해도 두권이면 싸주는데 ㅎ)
샌드위치 하나를 사들고 쫄래쫄래 걸어오는 길
(이미 점심시간은 지났고, 오늘은 팀장님 안계신 날이고)


거리에 스치는 풍경들을 보며, 이래저래 잡생각들을 계속 하며 
가기 싫은 회사로 돌아가는 길


흐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햇빛이 비치는 것도 아닌 오늘같은 날
양산을 쓰고 내쪽으로 오던 아주머니
저 아주머니는 굳이 오늘같은 날 양산을? 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절묘하게도 비가 한두방울 떨어지기 시작한다
내리는 비에 아주머니는 잠시 당황해 하늘을 쳐다보다가
이내 양산을 우산으로 여기고는 안심하며 걸어간다
이렇게 쉬운 용도변경이라니


우산은 커녕 양산도 없던 나는
한두방울씩 내리는 비를 맞으며 계속 걸음을 재촉하며,
내 옆으로 있는, 요즘 투쟁이 한창인 노점상을 본다
지난 주에 보니 정치깡패들이 아주 엉망으로 만들어놨던데
길가에 천막이 아무렇게나 무너져있고
그 위로 숭텅숭텅 지저분해진 하얀 떡볶이들이 던져져있는 걸 보고 속상했었는데
오늘은 투쟁구호를 포장마차에 붙이고 떡볶이를 만든다
아주머니의 오늘 하루는 어떨까, 계속 무사히 이 곳에서 장사를 할 수 있을까
사실 길거리 떡볶이가 없어지면, 노점상분들 뿐 아니라
나처럼 주머니 가벼운 사람들의 저렴하고 간단한 간식거리도 없어지는 건데


그리고 지난 곳은
최근에 뚫은 1300원짜리 커피가게
아이스드립커피가 1300원인데, 나는 그것도 몰랐다
저희는 쫌 진해요- 라는 주인아주머니의 걱정섞인 말에
더 좋아요- 라며 하트섞인 눈빛 날려주고 이번 주부터 마시기 시작했다
앞으로는 특별한 일이 아니면,
5분쯤은 걸어가더라도, 여기서 커피를 마시겠다, 라고 다짐하고
혼자 또, 그래! 운동도 되니 좋은 거야! 라는 합리화도 해보고
그럼에도, 여전히 커피는 100원, 300원인 우리 부모님 보시기에는
이것도 엄청난 사치일 거라고, 그렇게 생각도 해보고



멀어서 싫었던 교보가는 길이
오늘은 좀더 멀어도 좋겠다고 느껴진다
이래저래 사소하게 머릿속을 톡! 치는 생각들에 반응하는 것의 재미

돌아오자마자 온라인으로 닌텐도펜을 주문했고
조금 전 발송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정말, 빠르다

배송비만 내면, 굳이 발품팔 필요 없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기꺼이 발품파는 수고로움 역시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이 되기도 한다

앞으로 일주일에 한번은 점심을 포기하고 교보나들이를 해야지, 라고 결심했다가
도무지 이 결심을 몇번째하는 건지를 떠올리며 웃어본다
근처에 교보말고, 좀더 인간적인 서점이 있어도 좋을텐데

(교보에가면 맨날 길을 잃어버리는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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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08-07-23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 동네에 서점이 하나있어요. 다른 서점들 다 나가 떨어졌는데 이 서점만 잘 버티고 유지하더라구요.
근데요.. 저 서점에서 책만 확인하고 그냥 와서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그래요..;;;
정말 급해야 가서 사온다지요. 요즘은 서점도 10% 할인해 주거나 포인트 적립해 주는데 이상하게 직접 사는 일이 적어졌어요..

웽스북스 2008-07-24 02:09   좋아요 0 | URL
저도 원래 잘그러는데
가끔은 오프라인 서점에서도 산답니다
교보 강남점에서는 내돈으로 책을 산적이 없었네요
저도 포인트 집착녀라 말이지요 ㅎㅎ 오늘은 특별한 케이스 ㅋㅋㅋ

미미달 2008-07-23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남 교보지요? 히히
전 그 수많은 인파가 너무 싫어서 서초초등학교 쪽의 뒷길로 걸어간답니다.
거긴 신기할 정도로 사람이 없지만 강남역은 인파의 기에 질린지가 오래인터라 말이죠.^^

웽스북스 2008-07-24 17:49   좋아요 0 | URL
예 강남교보에요
인파가 엄청난데 저는 위치상 다른길로 갈 도리가 없지요 ㅎㅎ

점심시간에는 좀 괜찮아요~ ㅎㅎ

Jade 2008-07-24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웬디양님 글들을 보면 왠지 웬디양님의 하루하루는 아기자기 할 것 같다는 ㅎㅎ

웽스북스 2008-07-24 17:54   좋아요 0 | URL
그럴리가요
저거 야근에 찌들어서 좀비같은 표정으로 쓴 글이에요 ㅋㅋㅋ

다락방 2008-07-24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양님.
강남에 교보는 어디있나요?
전 항상 씨티문고(지금은 GS문고인듯)만 갔거든요. 교보가 어딘지를 몰라서.

서점에 가서 시집 한권을 사들고 오고 싶은, 그런 날이로군요!


근데 저는 시를 잘 읽어내질 못하는 것 같아요. 눈으로 훑고 휘리릭 책장을 넘기는 것 같아요, 저는. 휴..

웽스북스 2008-07-24 17:54   좋아요 0 | URL
아흡, 강남교보는 6번출구로 나오셔서 주우우욱 10분쯤 걸어가시면 되요
5분인가?


시는 저도 그래요, 마음에 드는것만 보죠 ㅎㅎ
 



1

우리 막내 H씨는 다소곳하게 생겨서는, 웃기거나 화가나면 몸을 꼬는 매우 다혈질인
한마디로 내가 매우 좋아하는 스타일의 매력적인 아가씨다 ㅋㅋ

우리 팀장님이 나와 H씨를 짝지워놓고는
둘다 흘리고 부딪치고하는 성격이라 걱정된다고 하셨는데
그날 오후, 우리는 잠깐 회사를 빠져나와
P바게뜨에서 애플파이를 먹기 위해 탁자에 나란히 앉았다

무슨 얘긴가에 또 몸을 꼬며 과격하게 웃다가
그만 뒤쪽에 있는 벽의, 매우 적은 면적을 차지하는 살짝 튀어나온 공간에
그대로 머리를 부딪치고
그 광경을 보며 애플파이를 손으로 뜯던 나는
파이부스러기를 모조리 흘려버렸다

나는 옷을 털고, H씨는 머리를 문지르며
나는 팀장님이 했던 얘기가 생각나 막 웃었다
어쩜 그날, 바로! 흘리고(나) 부딪치고(H씨)


2

그런 H씨가 오늘 해준 얘기

집 근처에서 간판을 보는데 간판 이름이 '윤지의 상실'인거에요
오, 저런 철학적인 이름이라니, 라며,
엄마에게 저것좀 봐, 윤지의 상실이야 라고 얘기했더니

저거 의상실 아니니?


아, 그리고 2탄 3탄도 있었는데, 아흡, 까먹었다


* 회사와서 다시 물어본 생각 안났던 2탄 3탄

길을 가다가 안경점에 붙어있는 '아버지는 칼라렌즈'를 보고
어머, 이제 아버지들도 칼라렌즈를? 이라고 생각했으니
다시 자세히 보니 '예뻐지는 칼라렌즈'

천마표시멘트를 보고, 어? 저건 뭘 표시하는 멘트지? 했다는 ;;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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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족 2008-07-22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라다 방'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던 적이.

웽스북스 2008-07-22 21:04   좋아요 0 | URL
하하하하 별족님 사라다 방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샐러드룸인가요?

별족 2008-07-28 09:13   좋아요 0 | URL
사라, 다방 인데요. 웬디양님.

웽스북스 2008-07-28 14:29   좋아요 0 | URL
어머 별족님, 저 농담한건데 ㅋㅋ

시비돌이 2008-07-22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 이런 것도 있자나요. 저도 어릴때 그런 적이 있는 것 같아요.
이미자가 요리 싸이틀, 이란 플랙카드를 보고 '엄마, 이미자가 요리를 한대'라고 한 적이 있는데, 요즘 같으면 이미자가 요리 사이트를 만드는 줄 알았겠죠. 알고 보니 이미자 가요 리싸이틀이더군요. ^^

웽스북스 2008-07-22 21:04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저 아침에 우리 H씨랑
사라다 방이랑 이미지가 요리사이틀 보고
엄청 웃었잖아요 ㅋㅋㅋ

Jade 2008-07-22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갑자기 저도 P바게뜨에서 애플파이를 먹으며 흘리고 부딪히고 싶어지는데요 ㅋㅋ 저도 그런거라면 안빠지는데 ㅎㅎ

웽스북스 2008-07-22 21:05   좋아요 0 | URL
이거 제 자랑은 아니지만
제가 그래도 H씨보다 부딪치는건 좀 덜합니다 ㅋㅋㅋ

바람돌이 2008-07-22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재받을 거 두건. 전자결재 하나, 서면결재 하나 이렇게 들고있다가 전자결재 올릴려니 교감샘이 말했어요. 지금 교장샘 안계시니까 나중에 오후에 받으라고... 대답 찰떡같이 네~~ 하고는 서류들고 교장실 내려갔어요. 전자결재 안되는 교장샘이 사인은 어떻게 하라고...ㅠ.ㅠ

웽스북스 2008-07-22 21:05   좋아요 0 | URL
하하하하 바람돌이님
이건 남일이 아니잖아요 ㅜ_ㅜ

Arch 2008-07-22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말실수하면 우리 엄만데. 엄만 잘못 읽는게 아니라 말을 맘대로 조합하는 능력이 탁월하죠. 웬디양님 주위에는 좋은 분들이 많은거 같아요. 다소곳하던 분이 흘리고 부딪히는 면까지 있다니.

웽스북스 2008-07-22 21:06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 H씨가 생긴건 진짜 참한데
초다혈질이에요 ㅎㅎㅎ

실은 외모말고는 한순간도 다소곳하지는 않아요

hnine 2008-07-22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재미있네요.
저도 바로 그 흘리고 부딪치고 가끔 그러다가 다치기까지 하는 타입이랍니다~ ^^

웽스북스 2008-07-22 21:06   좋아요 0 | URL
ㅋㅋㅋ 어떤 분이 자전거 타다가 넘어진 이후로 자전거를 못타신다길래
제가 우리 H씨는 그럼 걸어다니지도 못한다고 얘기했다지요

저보다 잘넘어지는 사람 처음봤어요

Mephistopheles 2008-07-22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근래 들었던 우수개 소리 중에
놀부젼 놀부 마누라 흥부 밥주걱으로 싸다귀 날린 내막이 가장 웃겼습니다.
"저 흥분되요..." 이 한 마디..

웽스북스 2008-07-22 21:07   좋아요 0 | URL
그러게, 부모들은 애들 이름 지을 때 좀 고민을 해야한다니까요 ㅋㅋㅋ

흥부가 무슨죄야~

다락방 2008-07-22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윤지의 상실! 최고예요!
ㅎㅎ

웽스북스 2008-07-22 21:08   좋아요 0 | URL
그쵸그쵸 윤지 의상실보다
훨씬 맘에 드는 이름 아닌가요? ㅎㅎ

무스탕 2008-07-22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웬디양님은 둘이서 나눠서 흘리고 부딪치고 그러죠. 저는 혼자서 그거 다해요..;;
말 실수하면 우리엄마표 킹왕짱이 하나 있어요.
경월소주를 월경소주로 읽으시더이다..

웽스북스 2008-07-22 21:08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 어이쿠 어머님~ 월경 소주라니

저도 혼자 다해요
단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는 게 중요한거죠 ㅋㅋ

니나 2008-07-26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뒷북인데 어제 쟈철서 120 광고서 '서울에서 별을 볼 수 있는 천문대는?'을
'서울에서 변을 볼 수 있는 천문대는?' 이라고 처음에 읽고 깜짝 놀랐다며... ㅋ

웽스북스 2008-07-27 16:52   좋아요 0 | URL
이런 뒷북쟁이! ㅋㅋㅋㅋㅋ 120은 다산 콜센터? 우리 굿바이언니가 술먹고 그렇게 외쳐대던? 다산콜센터는 시민들의 교통신고만 받는게 아니라 이렇게 세심하게 뒷간문화까지 챙겨주시는 곳이로구나 ㅎㅎㅎ

하양물감 2008-07-29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뒷북인데요....버스정류장에서 [방귀 금속]을 보고 엄청 웃었는데, 알고 보니 [조방 귀금속]이더라구요, '조'가 전봇대에 가려서 안보였다는 --''
 
페다고지 - 30주년 기념판 그린비 크리티컬 컬렉션 15
파울루 프레이리 지음, 남경태 옮김 / 그린비 / 200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매우 정리가 잘된 입문서를 읽는 느낌이랄까 (좋아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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