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에는 밥을 포기하고! (대신 빵)
교보나들이를 다녀왔다
H에게 빌린 닌텐도DS를 돌려주면서
너무 늦어 미안한 마음에 펜을 새로 사서 주려고
실은 인터넷에서 주문해도 됐는데
핑계김에 교보에 가서 보고 사겠다며 나갔는데
인터넷에서 보고 나간 상품이 훨씬 낫더라며
하지만, 전혀 발품판 것이 아쉽지는 않더라며 ㅎㅎ
오프라인으로 책을 잘 안사는데
오늘은 어쩐지 시집을 한권 사고픈 마음에,
그리고 책방띠가 둘러진 책을 들고오고 싶은 마음에
(책을 장식품으로 여기는 것 같으다 어째 ;;;)
K가 추천한 심보선의 시집과 다른 시집 한권을 더 사서
봉투 필요하냐는 말에 '종이로 싸주세요' 라는 말을 굳이 하고는
(그말은 안해도 두권이면 싸주는데 ㅎ)
샌드위치 하나를 사들고 쫄래쫄래 걸어오는 길
(이미 점심시간은 지났고, 오늘은 팀장님 안계신 날이고)
거리에 스치는 풍경들을 보며, 이래저래 잡생각들을 계속 하며
가기 싫은 회사로 돌아가는 길
흐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햇빛이 비치는 것도 아닌 오늘같은 날
양산을 쓰고 내쪽으로 오던 아주머니
저 아주머니는 굳이 오늘같은 날 양산을? 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절묘하게도 비가 한두방울 떨어지기 시작한다
내리는 비에 아주머니는 잠시 당황해 하늘을 쳐다보다가
이내 양산을 우산으로 여기고는 안심하며 걸어간다
이렇게 쉬운 용도변경이라니
우산은 커녕 양산도 없던 나는
한두방울씩 내리는 비를 맞으며 계속 걸음을 재촉하며,
내 옆으로 있는, 요즘 투쟁이 한창인 노점상을 본다
지난 주에 보니 정치깡패들이 아주 엉망으로 만들어놨던데
길가에 천막이 아무렇게나 무너져있고
그 위로 숭텅숭텅 지저분해진 하얀 떡볶이들이 던져져있는 걸 보고 속상했었는데
오늘은 투쟁구호를 포장마차에 붙이고 떡볶이를 만든다
아주머니의 오늘 하루는 어떨까, 계속 무사히 이 곳에서 장사를 할 수 있을까
사실 길거리 떡볶이가 없어지면, 노점상분들 뿐 아니라
나처럼 주머니 가벼운 사람들의 저렴하고 간단한 간식거리도 없어지는 건데
그리고 지난 곳은
최근에 뚫은 1300원짜리 커피가게
아이스드립커피가 1300원인데, 나는 그것도 몰랐다
저희는 쫌 진해요- 라는 주인아주머니의 걱정섞인 말에
더 좋아요- 라며 하트섞인 눈빛 날려주고 이번 주부터 마시기 시작했다
앞으로는 특별한 일이 아니면,
5분쯤은 걸어가더라도, 여기서 커피를 마시겠다, 라고 다짐하고
혼자 또, 그래! 운동도 되니 좋은 거야! 라는 합리화도 해보고
그럼에도, 여전히 커피는 100원, 300원인 우리 부모님 보시기에는
이것도 엄청난 사치일 거라고, 그렇게 생각도 해보고
멀어서 싫었던 교보가는 길이
오늘은 좀더 멀어도 좋겠다고 느껴진다
이래저래 사소하게 머릿속을 톡! 치는 생각들에 반응하는 것의 재미
돌아오자마자 온라인으로 닌텐도펜을 주문했고
조금 전 발송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정말, 빠르다
배송비만 내면, 굳이 발품팔 필요 없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기꺼이 발품파는 수고로움 역시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이 되기도 한다
앞으로 일주일에 한번은 점심을 포기하고 교보나들이를 해야지, 라고 결심했다가
도무지 이 결심을 몇번째하는 건지를 떠올리며 웃어본다
근처에 교보말고, 좀더 인간적인 서점이 있어도 좋을텐데
(교보에가면 맨날 길을 잃어버리는 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