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도 없는 내가, 최근 슈퍼스타K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런 영악하고 명민한 프로그램이라니. 하면서. 사실 처음엔 사람들이 슈퍼스타K 얘기할 때는 외국 프로그램인 줄 알았는데 -_- (시즌 1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결정적으로 보게 된 계기는 이문세 때문이었다. 지금 이십대들이 이문세 노래로 대결을 한다는데, 이십대에게는 이문세 노래가 어떻게 소화될지 너무나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급 실망. 이문세 노래에서 제 기량을 제대로 발휘한 출연자는 없었다. 나름의 귀여움이 있긴 했지만. 허각이 물론 잘하긴 했지만, 그 노래는 이문세의 감성과 맞닿아있는 곡은 아니었다. 그 때 한 여자 출연자가, 무려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을 부르는데...
솔직히 좀 놀랐다. 나는 노래의 테크닉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날 슈퍼세이브(심사위원 최고점수)를 받은 허각이 아무리 잘했어도, 그 무대를 기억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 친구는 목 상태도 안좋았고, 고음이 막 매끄럽게 올라가는 친구도 아닌데, 노래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불러내는 모습에 소름이 돋았다. 아. 출연자들이 생각보다 매력적이구나.
그래서 앞부분도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정말이지 압권은 이 장면이었다.
와. 노래를 가지고 노는 실력이 보통이 아닌 거다. (김지수라는 친구는 안타깝게도 지난 주에 떨어졌다. 그렇지만, 곧 어디선가 다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암튼, 이 명민한 프로그램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때론 잔인하고, 때론 영악하고, 때론 무지몽매하고, 때론 가차 없는지를, 여과없이 보여준다. 누군가가 밉상녀가 되어 네티즌으로부터 강한 질타를 받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며, 잘생긴 얼굴로 소녀팬들을 사로잡은 참여자가 심사위원 최하점수를 받고도 실력 있는 친구(위에서 노래하던 지수)를 제치고 올라가는 장면도 극대화해서 보여준다. 욕먹는 지점까지 철저히 계산하고 이용하는 데는, 감탄이 나올 정도다. 그런 속성에 비추어, 다음 진행이 어떻게 될지를 점쳐보는 것도 재밌고, 또 나의 속물근성을 활용해, 하지만 그것은 싹 감추고 쌔한 얼굴로 비난하는 것도 묘한 카타르시스를 가져다 준다.
아, 개인적으로 심사위원은 -_- 이승철은 너무 칼로 자른 듯 심사를 해서 때로는 마음에 들지 않고 -_- 엄정화는 본인이 큰 인상을 받지 않은 경우에는 이승철을 많이 따라한다. 주로 기분이 좋았다, 좋게 들었다, 마음이 좋았다, 많이 안타까웠다, 뭐 이런 심사평들을 하는데, 차라리 서울 예선 첫날 심사한 백지영이 나왔으면 어땠을까 싶었고. 내 마음에 늘 부합하는 심사평을 하는 사람은 윤종신이다. 나는 윤종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음악들과 윤종신이 속해 있는 음악의 세계가 비슷해서일까. 이문세 노래가 끝나고 소신있게 재인에게 높은 점수를 주던 것도, 존박에게 던지던 계산하는 것 같다는 말도, 거의 나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암튼, 이 영악한 프로그램에 나는 매번 기꺼이 진다. 욕하라는 지점에서 욕을 던지고, 감동하라는 지점에서 같이 막 눈물도 흘린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출연자도 그새 정이 들었는지 떨어져서 눈물을 흘리면 같이 속상하고, 어린애들한테 부모님 이야기들을 자꾸만 끌어내는 계산이 천박하다고 생각하지만, 같이 코끝이 찡해지기도 한다. 그나마 유일하게 지지 않는 마지막 자존심은 문자투표를 안한다는건데 (장하다 -_-) 그건 내가 TV가 없어서 생방송을 못보기 때문인데, 다음주부터는 생방송 결제까지 했으니, 다음주엔 재인양을 위해 거침없이 내 100원도 쓸 기세이다.
나도 괜히 노래를 해보고 싶어서 흥얼흥얼 거려보지만, 나는 아마도 1차예선에서 떨어졌을 거라는 의혹이 확신으로 변할 뿐이다. 앞으로 방송이 몇 번이나 남았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우승은 존박이 하겠지만 (나는 이 모든게 존박을 위한 드라마다, 라고 생각하는 주의...) 앞으로도 나머지 친구들이 울고 웃으며 도전하는 모습들을 열심히 지켜볼 작정이다. :)
ps. 트윗에 슈스케 얘기를 많이 했더니 follower가 줄더라. 이제 즐찾이 줄 차례입니까.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