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는 야채를 싫어했다. 그렇다고 나이 든 지금에 와서 좋아진 것도 아니다. 어렸을 때는 무조건 우기기 내지는 몰래 뱉어내기로 상황을 모면해 왔지만, 지금은 그닥 강요가 없음에도 건강을 위해서라는 미명 하에 꾸역꾸역 집어삼키기는 한다. 하지만 제대로 안 씹어서일까.. 늘 목에 걸려서 코구멍으로 심한 풋내를 내뿜어 날 2중으로 괴롭힌다.
그런데 사시사철 우리 집 식탁에 거의 항상 빠지지 않는 한 가지 반찬(?)이 바로 야채샐러드다. 상상 가능한 모든 종류의 야채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커다란 타파웨어 같은 데 넣어놓고는, 끼니마다 커어다란(정말 크다) 샐러드 접시에 담아 식탁 가운데 턱- 올려놓는 엄마. 다른 식구들은 별 불만 없이 한 접시씩 먹어치우지만 난 정말 고역이다. 게다가 할당량을 조금이라도 못 채우면 날아오는 따가운 시선에 어떻게든 집어 삼켜야 하고.. ㅠㅠ
이럴 때 나의 든든한 동반자가 하나 있다면 바로 온갖 맛의 샐러드 드레싱이다. 어렸을 때도 야채 안 먹는 나에게 그나마 드레싱 맛으로라도 먹이기 위해서 엄마는 수많은 드레싱과 소스를 사들이고 만들어댔다. 그리고 요즘은 내가 직접 나서서 그 일을 하고 있고.. 그래봤자 365가지 맛의 샐러드 드레싱이 있는 건 아니지만 마트에 갈 때마다 새로운 상표나 새로운 재료로 만든 드레싱을 무조건 사들여 시식해 보거나, 어디선가 새로운 드레싱 레시피를 얻으면 시도해본다. 요즘 내가 잘 먹는 건 블루치즈 드레싱. 엄마가 좋아하는 건 참깨 드레싱. 이 두 가지를 섞으면 아주 오묘하면서도 그럭저럭 괜찮은 맛이 난다.
어제 저녁에는 그냥 생야채에서 벗어나 오이&오징어 샐러드를 해먹었다. 너무너무 간단하지만 맛난 샐러드. 우선 오이는 채칼로 가늘게 채썰어놓고, 오징어 1~2마리를 부드럽게 삶아서 적당히 자른다. 그리고 관건인 드레싱. 마늘 1큰술, 식초 2큰술, 설탕 2큰술, 소금 반작은술, 참기름 반작은술의 비율로 만들면 물기가 거의 없이 굉장히 자작한 드레싱이 되는데 이걸 샐러드 보울에 수북히 담은 오이와 오징어 위에 뿌린다. 그러면 잠시 후 오이에서 물이 배어나오면서 적당한 농도의 드레싱으로 변한다. 그 새콤하고 매콤하고 달콤한 맛과 아삭한 오이와 부드럽고 고소한 오징어의 맛이 어우러져서, 평소 어슷썰기한 오이 한 조각 먹기도 힘겨워하던 내가 거의 오이 2개 분량을 먹어치웠다!! 아, 지금도 군침이 돈다. ^ㅠ^
생각해보면 난 그냥 생야채는 씹어 삼키기 힘겨워하지만 그 위에 뭔가 동물성 식품을 얹어서 함께 주면 좋아라~ 하면서 잘 먹는다. 닭고기 샐러드, 새우 샐러드, 소고기 샐러드, 달걀 샐러드, 치즈 샐러드, 또는 파스타 샐러드 등등. 그런 고명이 잔뜩 얹혀 있고 드레싱이 죽이게 맛있는 샐러드라면 아무리 야채를 싫어하는 나라도 대환영이다. 아, 맛난 샐러드가 땡긴다.
일본식 여름 샐러드. 새우를 듬뿍 넣고 드레싱은 간장, 와사비, 마늘로 만든다.
이거 한 접시면 아주 더운 여름에도 금세 입맛이 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토마토와 모짜렐라 치즈, 루콜라로 만든 초간단 샐러드. 비니그렛만 괜찮으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 게다가 좋아하는 아스파라거스를 통째로 튀겨서 곁들여 주면 금상첨화.
프라이드 치킨 샐러드는 TGIF 게 제일 낫다고 본다. 베니건스의 컨츄리 치킨 샐러드는 닭고기가 너무 느끼하고 야채가 부실하며, 결정적으로 온도가 안 맞는다. 핫 샐러드의 최대 장점은 차가운 야채와 갓 튀기거나 볶아낸 뜨거운 고명과의 절묘한 조화인데 베니건스는 늘 실패다.
반면 TGI는 뜨거운 닭튀김과 코를 찌를 정도로 톡 쏘는 드레싱, 야채가 적절히 조화를 이룬다.
요즘 유행하는 꽃샐러드. 어려서부터 꽃으로 만든 음식을 가끔 먹어왔기 때문에 꽃을 먹는다는 데 큰 거부감은 없지만 그렇다고 별로 맛있는 것도 모르겠다. 그냥 하도 여기저기서 해대니까 가끔 먹긴 하는데 어떤 곳은 너무 꽃으로만 뒤덮어놔서 숨이 막힐 정도다. 사실 영양가도 별로 없는데..
타이식 쇠고기 샐러드. 타이 음식을 참 좋아하는 편이라 기회 닿을 때마다 먹는데, 이 쇠고기 샐러드도 맵긴 하지만 아주 맛잇다. 음, 입맛 당기는 타이 음식..
샐러드라고 하기에는 뭐하지만 야채 중에서 그나마 좋아하는 편에 속하는 아스파라거스. 요새는 싱싱하면서도 부드러운 아스파라거스 구하기가 예전보다 어려운 듯하다. 전부 레스토랑으로만 들어가나.. 저 사진처럼 버터로 만든 소스를 듬뿍 찍어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