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마음이 내키면 꺼내어 아무 쪽이나 펼쳐보는 책이 있다.  

내게는 소노 아야코 여사가 쓴 <사람으로부터 편안해지는 법>, 일명 소노 아야코의 <敬友錄 경우록>이다.  

나는 경우록,이라는 제목이 참 마음에 든다.  

벗(나 이외의 모든 타인)을 공경할 수 있는, 그러기 위한 글이란 뜻이다.  

내 마음에 불화와 모순이 제거되어야 타인에 대한 공경도 가능하다는 말이다.

앞면 표지의 하단에는 붉은 글씨로 이렇게 적혀있다. 

"스트레스 안 받고 내 주위 사람들과 행복한 관계 유지하는 비결" 

이 책을 펼치면 우선 목차를 펴서 지금 내 마음에 도움이 될 제목을 찾는다.  

연륜이 묻어나는 글로 쉽고 구체적이면서 숨어있는 허영에 허를 찌르는 글귀가 많다. 

오늘은 41쪽 '노력하는 이가 주는 곤혹스러움'을 찾았다. 

열심히 노력하는 이는 실은 곤혹스러운 존재이다.  

게으름뱅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은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또 회사나 사회에 마음의 빚이 있으므로 결코 으스대지 않는다.  

그 결과 자신의 본질과 평판이 상당히 일치한다. 

그러나 노력하는 사람은 자신이 정당한 일, 훌륭한 일을 한다고 자부하기 때문에 

타인도 자신처럼 행동하기를, 또 타인이 자신에게 반드시 감사와 칭찬을 해주기를 마음속으로 요구한다. 

- 나의 얼굴, 상대의 얼굴 

(41쪽 노력하는 이가 주는 곤혹스러움)

  

나는 누군가에게 칭찬과 감사의 인사를 내심 요구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본다. 그 모든 게 근거없는 오만함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내 본질보다 못한 평판을 받고 있다고 분개한 적은 없는가. 내 본질보다 나은 평판을 받고 있다면 오히려 위험하다. 그 모두가 잘못일 테다. 나는 나, 딱 그만큼의 나로서 그냥 걸어갈 뿐이라 여겨야한다. 칭찬에 흐느적거리지 않고 비난에 움츠리지도 않아야한다. 그 어떤 말도 '나'를 '나' 아닌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화장실을 가고, 그런 것들 이외의 모든 것은 삶이 내게 주는 보너스라고 생각한다고, 고 장영희 교수도 말했다. 평범한 진리이지만 깊이 와닿았다. 바라지 않으면 부족하지 않다. 원하지 않으면 목 마르지 않다. 

달리지 않으면 지치지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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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8 2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9-06-08 23:34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에요.^^ 저도 늘 흔들리며 살아요.
그게 마음에 병이 되는데도 어리석게 늘 그러죠.
이 책은 몇해 전 제게도 참 좋은 충고가 되었어요.
제가 쓴 리뷰도 있어요. 찾아보세용~

... 2009-06-08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칭찬에 허느적거리지 않긴 쉬운데 (칭찬을 많이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_-;;;), 비난에 움츠러들지 않긴 너무나 어려워요. 가끔 많이 지치는 건 달리고 있다는 증거일까요?

언젠가 부터 이런 종류의 에세이류를--인생의 지혜를 설교하는 듯한--사지도, 읽지도 않게 되었는데, 이 책엔 마음이 많이 끌리네요.

프레이야 2009-06-09 01:37   좋아요 0 | URL
브론테님, 그런지도 몰라요.-_-
퍼질러앉아 좀 쉬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서서히 달리고 싶어질 때까지요.
저도 설교조의 에세이류 별로인데 소노 여사의 글엔 위트와 고정관념의 반전이 넘쳐요.^^

반딧불이 2009-06-09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무서운 말이네요. 수필을 읽어보려고하는데 목록에 담아두어야겠어요. 고마워요. 프레이야님.

프레이야 2009-06-09 01:43   좋아요 0 | URL
이 책엔 이 글을 포함해서 생의 역설과 지혜가 많아요.
가까이 둘만해요.^^ 긍정과 느긋함.

비로그인 2009-06-09 0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 님이 좋다고 하시니 그럼 저도 보관함에 쏙.. 오프서점 가서 들춰봐야겠네요.

자기자신으로부터 편안해지는 법은 없나요? ㅎㅎ 그 또한 긍정과 느긋함인가요?

프레이야 2009-06-09 09:22   좋아요 0 | URL
^^ 이게요.. 결국 자신으로부터 편안해지는 법이더군요.
저도 참 잘 안 되는 얘기라~ㅎㅎ 이론과 실천의 간격은 너무 멀어요.

하늘바람 2009-06-09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사실 노력을 많이 안하는 스탈이라 흑흑
많이 와닿네요. 게으른사람의 빚^^

프레이야 2009-06-09 09:57   좋아요 0 | URL
그러니 으스대지 않고 겸손하고 좋잖아요^^
저같은 경우는 게으르면서도 빚 내어놓으라고 안달하지요 ㅎㅎ
오늘 여긴 잔뜩 흐려요. 빗방울이 막 떨어질 것 같아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새초롬너구리 2009-06-09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뒤통수를 치네요. 전 나름 열심히 산다고 생각했는데..그래서 오히려 더 실망감이 컸나봐요. 이 책 사놓고 안보고있었는데 가끔 들여다봐야겠어요.

프레이야 2009-06-09 23:12   좋아요 0 | URL
뒤통수 치는 글귀가 많더군요.ㅎㅎ
아무곳이나 펼쳐봐도 되니까요.
열심히 사는 것, 그게 실망감으로 이어지니 참 슬프죠.

야클 2009-06-09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이 참 맘에 드네요. 페이퍼 내용은 더 맘에 드네요. ^^

프레이야 2009-06-09 23:13   좋아요 0 | URL
야클님, 예쁜 따님의 백일을 축하합니다~(이미 지났겠지만요)
닮았어요. ^^

꿈꾸는섬 2009-06-09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게도 필요한 책인 것 같아요. 바로 담아가요.^^

프레이야 2009-06-09 23:14   좋아요 0 | URL
네^^

라로 2009-06-09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 책 제목에 이끌려 샀는데 정말 만족해요~.
그리고 님의 말씀에 동의해요,,,실은 제가 열심히 노력하는 형이라,,,쿨럭
님의 말씀 추천과 더불어 별찜합니다.꾸벅

프레이야 2009-06-09 23:55   좋아요 0 | URL
나비님, 노력형인 거 정말 그런 것 같더라구요.
전 안노력형이에요.^^

라로 2009-06-09 23:58   좋아요 0 | URL
아이고 깜딱이야!!
댓글달고 추가로 글 올렸더만 님 댓글이~~~ㅎㅎ
얼마전 만치님의 글에 댓글 달때도 그랬는데,,,,ㅎㅎ
지금 이 순간 같은 장소에 있다는게 믿기지 않는다눙~ㅎㅎㅎ
방가방가~. 이제 들어오신거에요????
저 오늘 마더 봤다요,,,암튼

네꼬 2009-06-10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좋아한다고, 언젠가 페이퍼에 썼다구요. (그래서 어쩌라구?) 프레이야님, 이렇게 부르려니까 진짜로 외국어하는 것 같아요.

프레이야 2009-06-10 08:43   좋아요 0 | URL
네꼬님이 프레이야~ 그렇게 불러주심 더 좋다구요.^^
언젠가 쓰신 페이퍼를 못 봤네요.

치니 2009-06-10 16:07   좋아요 0 | URL
저는 네꼬님이 쓰신 그 페이퍼 덕에 이 책을 사 봤다구요. (그래서 어쩌라구?) ^-^
이렇게 두 분이 공감가는 글까지 비슷한 걸 보니, 마음이 한결 따스해져요.

프레이야 2009-06-11 00:31   좋아요 0 | URL
치니님 그랬군요. 아~ 좋아라~
 

     며칠 전 낭독을 시작한 책이다.   (출판사 산지니)

     부제는 '인문과 역사로 습지를 들여다보다'이다.

     저자 김훤주는 1963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났다. 2006년 12월 마산창원환경운동연합이 주는  

    녹색언론인상을 받았다. 2007년 1월부터는 전국언론노동조합 경남도민일보지부 지부장을 하 

    고 있다. 병들어 누워있는 아내와 아들 딸 하나씩을 둔 가장이다.  

    딱딱한 내용이지만 부드러운 인상으로 읽히는 이유는 그의 문체, 상당히 겸손한 문장과  

    겸양조의 높임체에서 오는 낮고 소박한 태도 때문이다.  도움말을 준 사람들의 말을 인용부호 

                                           를 이용하여 그대로 전하며 과격한 주장도 피한다.

                                           내용도 충실하여 낭독하는 재미가 있다. 

                                           습지와 인간 블로그 http://sobulman.tistory.com 

 

 내용 중에서 이런 시도 나온다. 책이 저자의 표정처럼 순하게 읽히는 비결이다.  

창녕 대지면 석동 출신의 시인 성기각의 시 "토평천"을 옮겨본다.  

 

화왕산 정기 받아 넓은 들 안고 

굽이쳐 흘러가는 맑은 토평천 

토끼풀 가는 모가지에 꽃을 맺는 냇가에 서면 

대지국민학교 나갈 종소리 낭랑하게 퍼져오고 

여름 내내 우리는 

선생님 몰래 멱을 감았다 

돌틈 사이로 메기 잡는 

병우가 냇물 깊은 곳으로 자맥질하면 

꼭순이는 

검정고무신 넘치도록 피라미를 잡았다 

말매미 울어샀는 버드나무 

마파람은 여지없이 거미줄에 걸리고 

수박서리 하러 갔던 홍경이가 멱살 잡혀 돌아오면 

오후 수업 시작종은 사분의 삼박자로 이어졌다 

종소리에 놀라 우리는 제각기 

물에 젖은 깜장빤쓰를 입고 

발목 붙잡는 고들빼기 농로를 지나 

물새궁둥이를 흔들며 교실로 달려갔다.  

 - 성기각,  [토평천]    54쪽

 

토평천은 화왕산 북서쪽 열왕산에서 비롯된다고 되어 있습니다. 고암면 감리못을 거쳐 성 시인의 모교인 석동의 대지초등학교 앞을 지나 소벌(우포)로 나아갑니다. 토평천은 여기서 소벌의 막내 쪽지벌을 지난 다음 낙동강을 향해 느긋하게 흘러갑니다...... 토평천은 경관과 생태가 살아 있습니다...... 그이의 시 "토평천"은 여름철 물가 아이의 일상을 꼼지락꼼지락 보여줍니다...... 성 시인이 1960년생이니까 여기 정경은 '국민'학교 4-6학년, 1970-1972년으로 짐작되는 여름날 학교 풍경이겠지요. 중략... (55쪽) 
 

---------  

시골에서 자란 경험이 없는 나는 이 시에 나오는 단 한 줄도 쓸 수가 없다.  어린시절의 경험을 떠올려 소박하게 건져올린 시어들이 그 자체로 활동사진처럼 생생하다.  말매미 울어쌌는 버드나무, 사분의 삼박자 경쾌한 오후 수업 시작종소리, 물새궁둥이 닮은 아이들의 궁둥이!

내 국민학교 시절을 떠올려봐도 토평천은 아니어도 물이 먼저 생각난다.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서고 완전히 주택가가 되었지만 당시는 소풍만 갔다하면 거기로 갈 정도의 멋진 장소가 학교 뒷산으로 올라가면 있었다. 무주구천동 계곡을 떠올릴만한 물 많고 물 맑고 물 깊은 계곡이 있었고 물소리가 요란했다. 물이 회오리 돌며 하얀 거품을 일으키던 곳에서 삼남매와 친정아버지 이렇게 넷이서 찍은 사진은 우리 네 명이 함께 찍은 유일한 사진이다. 사진 속에서도 물소리가 시원하게 들리는 것 같았는데 그 많던 물은 언젠가부터 다 사라져버렸다.  

또 한 번의 물은 국민학교 4학년 때 작은이모를 따라 서울 사는 큰이모집에 놀러가서 함께 갔던 청평유원지. 그 물은 넓고 깊어 보여 튜브를 타고도 너무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 수영을 못하는 나는 물이 지금도 무섭다. 수영복을 입고 배 볼록해서 인상 쓰고 서있는 옆모습사진이 있었는데 지금은 어디 갔는지 없어졌다. 당시 사촌오빠들과 언니가 그 사진을 보고 놀릴 때면 약이 올라 뾰로퉁하곤 했었다. 흑백사진 속의 아릿한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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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09-06-07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이 녹음하신 거 듣고 싶어요.^^
어릴때 사진보고 놀림 당했던 기억이 있는 저도 늘 약이 올라 뾰로통했었답니다.ㅎㅎ

프레이야 2009-06-07 09:37   좋아요 0 | URL
지금은 얼굴색이 흰편인데 초등저학년 땐 약간 가무잡잡했어요.
특히 이마가 반지르하면서 가무잡잡했지요. 배도 볼록ㅎㅎ
섬님도 뽀로통 ㅋㅋ

반딧불이 2009-06-07 0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좋은 책들을 낭송하시는 것 같은데 저는 멀미때문에 차타고 책을 못보는 체질이라 Ipod을 이용하고 있어요. 혹시 프레이야님의 낭송 파일을 저도 들을 수 있는건가요?

2009-06-07 0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07 2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9-06-07 23:11   좋아요 0 | URL
제가 좋아 하는 일이라 즐거워요. 고맙습니다.^^
 

단선적으로 말하긴 어폐가 있지만, 사람마다 쌓였던 울분과 슬픔이 어떤 계기로 함께 폭발하는 경우가 바로 요즘이다.  그래도 세상은 굴러가고, 굴려가야하고, 밥을 먹고, 사람들을 만나고, 일을 하고, 배설을 해야한다. 눈물도 배설의 방편이 된다면 그래서 속이 다 후련하도록 모조리 쏟아내어 내다버릴 수 있다면... 소통은 역시 어렵고 뒷끝에는 늘 허무함과 외로움만 남는다.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다르지 않는 마음일 거라 위로하고, 독선과 위선의 옴팡한 구멍에 빠지지 않기를 경계해본다. (생전에 언론을 살짝 비꼬는 말이었지만) 말조심하겠습니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등 망자가 남긴 어록 중에서 짧게 치고 들어오는 말의 힘이 강하게 느껴지는 요즘이기도 하다.

오늘 내게 주어진 시간표대로 역시 녹음낭독을 하러갔다왔다. 마음 심란했지만 집중하여 글을 읽는 순간에는 다른 생각이 범접하지 못한다는 장점을 오늘 난 선용한 셈이다. 두꺼운 분량의 책 '지중해 철학기행'을 끝내고 새 책을 시작했다. 앞엣 것이 딱딱한 내용에다 어려운 그리스어, 라틴어, 독일어 단어가 자주 나와 신경써서 발음하느라 턱이 무척 아팠다고 하니까 녹음실의 착한 두 아가씨가 "벌써 또 끝냈어요?"라며 웃어준다. 세상의 이치이기도 하지만, 슬픔과 안타까움의 바로 곁에도 이렇게 작은기쁨과 웃음이 함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쓴웃음이라 해도.

오늘 시작한 책은 좀 가볍고 말랑말랑한 책이라 금방 끝날 것이다. 에쿠니 가오리의 '취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그녀의 소설은 한 권도 읽어본 게 없다. 아무튼 이 책의 원제는 '하찮은 것들'이다. 작가가 살아오면서 좋아하는 하찮은 것들을 소재로 여러 꼭지로 짧게 나눠 적은 가벼운 에세이류다. 그리 문학성 높은 것도, 그리 뛰어난 문장이나 깊은 사유의 맛이 느껴지는 것은 아니지만, 간혹 아래와 같은 내용처럼 뒷통수를 살짝 치는 대목도 있었다. 

-------- 

상처 

   

종종 상처를 낸다. 온갖 곳에다. 

예를 들면 페달을 밟으면 뚜껑이 열리는 쓰레기통, 뚜껑을 열 때마다 뒤쪽에 붙어있는 스프링이 벽에 상처를 낸다. 쓰레기통이란 대개 벽에 붙여놓게 마련이라, 벽을 보호한답시고 방 한가운데 두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리고 사다리. 부엌의 높은 찬장에서 물건을 꺼내거나 전구를 갈아 끼울 때, 계단 위에 있는 창문을 닦을 때는 사다리가 필수품이다. 그런데 사다리는 크고 무거우니까 들고 다니다 보면 떨어뜨리거나 어디에 부딪치기 십상이다. 계단 모퉁이나자신의 무릎에. 

그런 상처에 관해서 나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내가 낸 것이든 남편이 낸 것이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저분한 것과는 다르니까. 

그런데 우리 남편은 정반대다. 저저분한 것보다 상처가 거슬리는 성격인 듯하다. 벽에 난 상처 하나, 내 손에 난 상처 하나도 남편은 절대 그냥 넘기는 법이 없다. 

"그런 조그만 상처 하나에 신경 쓰는 거, 좀 한심한 거 아냐?" 

어느날 나는 그렇게 지적했다. 

"살다보면 물건이든 사람이든 상처가 나잖아. 피할 수 없는 거잖아. 그보다는 지저분한 것에 신경을 쓰는 편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상처는 없앨 수 없지만, 지저분한 것은 치울 수 있으니까." 

"무슨 말씀!" 

남편은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이렇게 대답했다. 

"지저분한 거야말로 피할 수 없지. 그리고 치울 마음만 있으면 언제든 치울 수 있으니까 그냥 놔두는 거야. 하지만 상처는 피할 수 있으니까 조심하라는 거지." 

그말을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사람은 저마다 (같이 사는 경우에도) 어쩌면 이렇게 생각이 다를까. 

"상처야말로 피할 수 없는 거지. 갑자기 생기잖아." 

나는 그렇게 주장했다. 

"생활하다 보면 이래저래 상처를 입잖아. 벽도 바닥도, 당신도 나도." 

그렇게 고집을 부리면서, 왠지 슬퍼지고 말았다. 

 (77-79쪽)

                                          

                                         

  나도 여태껏 에쿠니 가오리와 비슷한 생각이었지만,  

  불현듯, 저자의 남편의 생각에 훨씬 공감된다. 

 

 취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 에쿠니 가오리 / 소담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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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7 2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9-05-28 06:45   좋아요 0 | URL
고쳤어요. 아유, 심장이 그러니 손가락도 말을 잘 안 듣네요.
그렇더군요. 그녀, 64년생, 얼굴처럼 상큼하더군요.
때론 아니 자주 우리 삶에 필요한 것도 가벼움의 미덕이란 생각이 들어요.
진지함이 담긴 가벼움이요!

다락방 2009-05-28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픔과 안타까움의 바로 곁에도 이렇게 작은기쁨과 웃음이 함께 있는 것이다.


인상깊은 구절이에요, 프레이야님.

프레이야 2009-05-28 15:42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고마워요.
오늘도 이리 가슴이 조이고 아픈데 또 좀 나아지겠지요.
 

 지난 주 금요일오후, 노 전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놓기 하루 전날 낭독한 부분이다. 지금의 상황에 와닿는 부분이 있어 옮겨둔다. 

-------------

 

기릴 만한 가치가 있는 정치적 업적을 수행할 능력을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어로 '비르투Virtu'라 부른다. 이 단어는 라틴어 '비르투스Virtus'의 이탈리아어 형태다. 우리말로는 통상적으로 이 개념을 '덕'으로 번역하고 '도덕적 올바름'으로 이해한다. 

정치적 세계에서 인간의 무력함은 충격적인 현상에서 드러난다. 즉 어떤 정치가가 중요하면 할수록, 그 정치인이 더 많은 '비르투'를 가지면 가질수록, 그는 더욱 더 실패할 위험이 크다.    

마키아벨리는 이런 점을 통찰하고는 왜 그런지를 설명한다. 모든 위대한 정치가는 계획을 관철할 수 있게 하는 어떤 가정을 갖고 있다. 이것은 특정한 지도 이념이거나 어떤 성질일 수 있다. 이 성질들은 자연이 그 정치가에게 부여했거나 그가 획득했을 것이다. 마키아벨리에 따르면 일류 정치가는 유리한 기회와 위험천만한 상황들을 일찍 알아차려야 하고 단호하게 이용해야 한다. 그의 영리함은 단순한 적응 능력으로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 만일 그렇게 제한된다면 그는 곧장 기회주의자가 되어 신뢰를 상실할 것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정치가는 반드시 강인한 끈기가 필요하다. 어떤 정황에서도 근본적인 이념과 성질을 견지해야 한다. 그의 성공은 이에 힘입은 것이다. 

그렇지만 언젠가 바로 이 이념과 성질이 일반적인 정치적, 문화적 조건과 더는 맞아떨어지지 않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이념과 성질이 마키아벨리의 표현대로 하면 '시대상황'에 상응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정치가는 비극적 상황에 처하게 된다. 항상 자신의 성공을 이끌었던 태도의 구성 요소를 포기한다는 것은 그 정치가에게는 확실히 부조리하게 보일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 상황은 이 정치가에게 이를 요구한다. 그래서 이 정치가의 실패는 불가피하다. 우리 역시 전혀 다른 내력을 지닌 정치가들에게서 이런 점을 보아왔다. 고집불통 호네커(1912-1994)를 두고 고르바초프가 만들어낸 유명한 문장 "너무 늦게 오는 자는 삶의 벌을 받는다."는 마치 마키아벨리가 한 말처럼 보인다. 

언제, 어떤 정황에서 한 정치가의 삶에서 지금 묘사한 상황이 생겨날지는 아무도 예견할 수 없다. 우리를 그런 비극적 상황들로 몰아가고 그것의 주인이 될 수 없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 마키아벨리는 이 보이지 않는 힘을 옛 로마식 단어로 '포르투나fortuna'라고 부른다. 

'포르투나'는 행운이지만 우연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예상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기분에 따라 변덕이 심한 행운의 여신 포르투나는 전체 르네상스 시기에 걸쳐 '비르투'의 놀라운 창조적 의지의 힘이 그 한계를 보일 때 일어나는 어떤 느낌에 대한 명칭이다. 마키아벨리는 비로소 이 느낌을 정치적 실패가 불가피하는 데 대한 냉정한 분석으로 전이시켜 놓았다. 이 불가피성에 대한 통찰이, 마키아벨리를 마찬가지로 르네상스에서 시작한 근대의 정치적 진보낙관주의로부터 지켜낸다. 아마도 오늘날 우리는 이 지점에서 마키아벨리로부터 가장 많이 배울 수 있을 것이다. 

 

- 지중해 철학기행, 중 p544-547 중략 발췌 


 클라우스 헬트 지음 / 효형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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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09-05-28 0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 노무현 대통령님. 인간 노무현과 정치인 노무현. 인간 노무현으로서의 '어떠한 부분'이 그의 정치적 실패를 가져왔던 것일까요. 아님, 흔한 말대로 주위상황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일까요..지금은 이런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란 건 잘 알지만, 자꾸 묻게 됩니다. 그가 정치적으로 성공했으면 어땠을까.
故 노 대통형님의 하신 말 중에 그런 부분이 있었죠. '운명이다' 이 글을 읽고 보니 자꾸 질문을 하게 되네요.

프레이야 2009-05-28 15:44   좋아요 0 | URL
정치가는 실패가 운명적인 것이라는 말인데, 과연 성공했으면 어땠을까를 상상해보면
멋진 그림이 떠오르지 않는 것도 아니구요. 자꾸 묻게 되는 게 바람직한 현상이라는
생각도 들구요.
 

자신의 내면으로 돌아가서 자유롭고 올바른 자세를 견지한다는 스토아사상은, 정치적 좌절과 그 밖의 모든 불행에 처할 때마다 그들의 마지막 위안이었다.  

동일한 정신에서 철학은 고통받는 보에티우스에게 이런 말을 건넨다. 네가 깊은 수렁에 빠졌다고 한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너는 출세와 성공에 매달리지 않았는가. 그것은 네 삶을 행운의 여신 포르투나Fortuna의 손에 맡긴 꼴이다. 행운의 여신의 본질은 성공과 좌절, 존경과 경멸, 즐거움과 괴로움의 오르내림이다. 네 삶은 행운의 여신이 지닌 수레바퀴와 같아서 끊임없이 돌아가면서, 때로는 길게 때로는 짧게 올라가고 내려간다. 자신의 삶을 행운의 여신 손에 맡긴 사람은 갑자기 나쁜 일이 일어나도 놀라거나 한탄해서는 안 된다.  

행운이 여신이 다스리는 세계에서는 근본적으로 참된 행복이란 찾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한다. 행운의 여신의 왕국에서 행복을 찾는 이에게는 믿을만한 안식처가 없다. 행복에 이르는 가장 좋은 처방은 이렇다. 오로지 영혼의 내면에 들어있는 본래의 집, 진정한 고향으로 돌아가라! 

- <지중해 철학 기행> , 클라우스 헬트, 효형출판 (449-4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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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에티우스는 행운의 여신에게 얻는 재물이 진정한 행운의 선물이 되지 못하는 까닭을 묻는다. 철학의 대답은 재물이 인간의 기대를 채워주지(충족시켜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원하는 재물이란 삶의 성공을 보장해주는 것, 곧 善이다. 그것은 다섯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1,자족(충만) - 2,힘(지배력) - 3,존경(사회적,정치적 지위 등으로 자신의 업적을 인정받는 방식) - 4.영광(신체적 장점 등으로 자신의 존재가 어둠이 아니라 환한 빛을 받고 감탄의 대상이 되는 방식) - 5, 편안함, 기쁨, 존재의 즐거움(육체적 쾌락)  그렇지만 이 다섯가지가 인간이 소망하는 것을 가져다주지는 못한다. 인간이 소망하는 것은 지속적이고 완전하며 안정적인 삶의 성취를 보장하는 것, 곧 '선'이기 때문이다. 잡다한 것에 부산떨지 않고 보다 나은 가치를 위해 묵묵히 걸어가야겠다. 가다보면 어느새 그만 가야할 때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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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rnleft 2009-05-23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잡다한 것에 부산떨지 않고 보다 나은 가치를 위해 묵묵히 걸어가야겠다."
마음에 와 닿는 말입니다..

프레이야 2009-05-25 19:59   좋아요 0 | URL
턴님은 그렇게 보입니다. 묵묵히요..

하늘바람 2009-05-23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삶은 행운의 여신이 지닌 수레바퀴와 같아서 끊임없이 돌아가면서, 때로는 길게 때로는 짧게 올라가고 내려간다. 자신의 삶을 행운의 여신 손에 맡긴 사람은 갑자기 나쁜 일이 일어나도 놀라거나 한탄해서는 안 된다.

프레이야 2009-05-25 20:01   좋아요 0 | URL
행운의 여신에 기대어 살아선 안 되겠단 생각이 드는 순간
삶이 좀더 나아질까요? 힘들어질까요?
저도 그 문장이 제일 와닿았어요.

하늘바람 2009-05-23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위의 문장이 인상깊어요

맥거핀 2009-05-28 0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 때 술만 먹으면 '나는 참 즐겁고 싶다' 늘상 그랬었죠.
그리고 즐겁고 싶다는 핑계로 해야할 일들을 많이 안하기도 했구요.

지금은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그런 말 못하기도 합니다만,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들어요. 그때 그런 '즐거움' 또는 행복'이란 걸 방패삼아,
참 여러가지를 안하려고 살았던 건 아닌지. 그게 일종의 자기합리화의 수단이 아니었던 것인지..

아이고..참 맥락없는 댓글이군요. 죄송합니다.

프레이야 2009-05-28 17:18   좋아요 0 | URL
즐겁고 싶다, 그건 행복하고 싶다와 동의어로 들려요.
행복하려면 해야될 일보다 안 해야될 일이 더 많은 게 맞는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해야될 일과 안 해야될 일 사이에서 방황과 갈등을 하는 게 또 우리 사람이지만
의지의 문제겠지요. 제게도 그게 난제입니다.
맥락없는 댓글!, 그거 전 좋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