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금요일오후, 노 전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놓기 하루 전날 낭독한 부분이다. 지금의 상황에 와닿는 부분이 있어 옮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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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릴 만한 가치가 있는 정치적 업적을 수행할 능력을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어로 '비르투Virtu'라 부른다. 이 단어는 라틴어 '비르투스Virtus'의 이탈리아어 형태다. 우리말로는 통상적으로 이 개념을 '덕'으로 번역하고 '도덕적 올바름'으로 이해한다. 

정치적 세계에서 인간의 무력함은 충격적인 현상에서 드러난다. 즉 어떤 정치가가 중요하면 할수록, 그 정치인이 더 많은 '비르투'를 가지면 가질수록, 그는 더욱 더 실패할 위험이 크다.    

마키아벨리는 이런 점을 통찰하고는 왜 그런지를 설명한다. 모든 위대한 정치가는 계획을 관철할 수 있게 하는 어떤 가정을 갖고 있다. 이것은 특정한 지도 이념이거나 어떤 성질일 수 있다. 이 성질들은 자연이 그 정치가에게 부여했거나 그가 획득했을 것이다. 마키아벨리에 따르면 일류 정치가는 유리한 기회와 위험천만한 상황들을 일찍 알아차려야 하고 단호하게 이용해야 한다. 그의 영리함은 단순한 적응 능력으로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 만일 그렇게 제한된다면 그는 곧장 기회주의자가 되어 신뢰를 상실할 것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정치가는 반드시 강인한 끈기가 필요하다. 어떤 정황에서도 근본적인 이념과 성질을 견지해야 한다. 그의 성공은 이에 힘입은 것이다. 

그렇지만 언젠가 바로 이 이념과 성질이 일반적인 정치적, 문화적 조건과 더는 맞아떨어지지 않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이념과 성질이 마키아벨리의 표현대로 하면 '시대상황'에 상응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정치가는 비극적 상황에 처하게 된다. 항상 자신의 성공을 이끌었던 태도의 구성 요소를 포기한다는 것은 그 정치가에게는 확실히 부조리하게 보일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 상황은 이 정치가에게 이를 요구한다. 그래서 이 정치가의 실패는 불가피하다. 우리 역시 전혀 다른 내력을 지닌 정치가들에게서 이런 점을 보아왔다. 고집불통 호네커(1912-1994)를 두고 고르바초프가 만들어낸 유명한 문장 "너무 늦게 오는 자는 삶의 벌을 받는다."는 마치 마키아벨리가 한 말처럼 보인다. 

언제, 어떤 정황에서 한 정치가의 삶에서 지금 묘사한 상황이 생겨날지는 아무도 예견할 수 없다. 우리를 그런 비극적 상황들로 몰아가고 그것의 주인이 될 수 없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 마키아벨리는 이 보이지 않는 힘을 옛 로마식 단어로 '포르투나fortuna'라고 부른다. 

'포르투나'는 행운이지만 우연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예상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기분에 따라 변덕이 심한 행운의 여신 포르투나는 전체 르네상스 시기에 걸쳐 '비르투'의 놀라운 창조적 의지의 힘이 그 한계를 보일 때 일어나는 어떤 느낌에 대한 명칭이다. 마키아벨리는 비로소 이 느낌을 정치적 실패가 불가피하는 데 대한 냉정한 분석으로 전이시켜 놓았다. 이 불가피성에 대한 통찰이, 마키아벨리를 마찬가지로 르네상스에서 시작한 근대의 정치적 진보낙관주의로부터 지켜낸다. 아마도 오늘날 우리는 이 지점에서 마키아벨리로부터 가장 많이 배울 수 있을 것이다. 

 

- 지중해 철학기행, 중 p544-547 중략 발췌 


 클라우스 헬트 지음 / 효형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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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09-05-28 0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 노무현 대통령님. 인간 노무현과 정치인 노무현. 인간 노무현으로서의 '어떠한 부분'이 그의 정치적 실패를 가져왔던 것일까요. 아님, 흔한 말대로 주위상황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일까요..지금은 이런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란 건 잘 알지만, 자꾸 묻게 됩니다. 그가 정치적으로 성공했으면 어땠을까.
故 노 대통형님의 하신 말 중에 그런 부분이 있었죠. '운명이다' 이 글을 읽고 보니 자꾸 질문을 하게 되네요.

프레이야 2009-05-28 15:44   좋아요 0 | URL
정치가는 실패가 운명적인 것이라는 말인데, 과연 성공했으면 어땠을까를 상상해보면
멋진 그림이 떠오르지 않는 것도 아니구요. 자꾸 묻게 되는 게 바람직한 현상이라는
생각도 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