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려 그때 내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질투를 성공을 부르는 무기로 만드는 데 서툴다.
하지만 질투만큼 효과적인 성공의 파트너도 드물다.
질투의 원인을 명확하게 하고, 비교의 주체는 언제나 자신이 되어야한다.
질투의 본질은 나에게 부족한 재능, 그리고 그것을 채우고 싶다는
인생의 에너지와 맞닿아 있다.
질투라는 빨간불이 켜질 때, 이렇게 생각해 보자.
질투는 스스로를 더욱 현명하게 사랑하라는 마음의 신호이다.
- <습관의 심리학> 중 (곽금주 지음, 갤리온)
모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오랜만의 음성이었다. 내 글을 보고 축하한다는 말씀과 함께 몇가지 물어보고 누군가에 대한 질투의 말을 흘렸는데, 예전에 비해 참 많이 누그러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반면에 나는 그분의 열정이나 욕심, 생의 에너지가 너무 순화된 것은 아닌가, 애잔해지기도 했다. 그게 아니고 자신에 대한 사랑의 확신과 자신감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터를 잡는 것이라면, 괜한 걱정이 아니라, 좋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원소배합으로 이루어져 자신만의 향과 색을 지닌다. 자신과는 다른, 서로 다른 점, 서로 다른 결에 반하여 설레었던 기억이 언제였던가 생각해보라던 이루마의 방송멘트가 라디오에서 들렸다. 왜 너는 나와 같지 않냐고 화내기 전에 나와 달라서 바로 그점을 질투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점이 좋아서 반했던 순간은 기억 저편으로 밀쳐두고서 말이다. 자신의 생에 바라왔고 바라지만 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열망, 그런 생의 에너지에 대한 아쉬움, 그런게 누구든 있게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아니 그러니까 더욱 나 자신을 현명하게 사랑하는 길밖에 달리 무슨 수가 있을까.
큰아이가 감기가 심하게 걸렸는지 생전 병원 갈 일 별로 없던 애가 내일은 2교시 하고 조퇴하고 병원에 가자고 연락이 왔다. 으슬으슬 춥고 목도 많이 아픈가보다. 아직은 봄이라 생각말고 따뜻하게 입고 있으라고 그랬건만 말을 안 듣더니.. ㅠ 주말에 서울에 공연보러 간다더니 저래 아파서 어떻게 가나 싶다. 오늘은 죽이랑 점퍼랑 챙겨서 오후에 가져다 줘야겠다. 어제는 봄비가 정말이지 추적추적 그치지 않을 것처럼 내리더니 오늘은 해가 나고 화창해졌다. 98년 3월30일, 작은 아이를 낳고 병원에 누워있을 때 4월의 첫날에도 어제처럼 그렇게 비가 내렸다. 슬레이트 지붕위로 떨어지는 빗소리에 기대어 아픈 배를 쥐고 있었는데.. 지금은 나보다 훌쩍 커버린 작은아이, 며칠 전 생일촛불 밝혀주었는데, 예전처럼 선물 뭐 해달라고 요구하지 않는 마음이 착하다. 어제는 체육센터에서 시작한 음악줄넘기를 하고 와선 재미있었다고.. ^^ 잔인한 3월 그리고 둘째날을 맞은 4월,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꽃노래나 부르고 있을 처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저 꽃을 준 고운 사람의 마음을 보듬으며 그냥 꽃이라도 위로가 되려나 기대어본다. 허하고 허한 마음에 꽃이라도.
사람들이 정말로 두려워하는 것은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외톨이로 여겨지는 것'이다. 당신은 혼자 있어서 외로운 것이 아니라, 혼자 있지 못해서 외로운 것이다!
루소는 "사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사는 것보다 훨씬 덜 힘들다"고 말했다. 외로움은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가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있을 때 엄습한다. - 마리엘라 자르토리우스의《고독이 나를 위로한다》중에서 -
서울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3월 23일까지
마음의 근력
성공은 능력과 노력이 아니라 '좋은 습관'에서 태어난다. 말하자면 습관은 마음의 근력 훈련이다. 정확한 지식의 토대 위에 멋진 꿈을 세우고 매일 조금씩 마음의 근력을 단련시키자. - 나카이 다카요시의《작심삼일씨 습관바꾸다》중에서-
(고도원의 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