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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 두 딸과 함께 간 무언뮤지컬!  일명 '비사발'
진짜 대화는 없고 몸으로 모든 걸 말한다. 조금 상세한 중간 스토리는

무대정면 위에 설치해둔 대형스크린으로 살짝 보여준다.

 

5분 지연되어 시작했는데 그전에 사회자의 알림말이 냉방보다 시원하다.

~~ 사진촬영 자유롭게 하시구요, 핸드폰 끄실 필요 없습니다.

물론 진동하실 필요도 없구요. 어차피 안 들립니다.

전화 오면 마음대로 받으시고 나가고 싶으면 나갔다 들어오시고
웃고 떠들고 박수치고 여러분들 좋으실 대로 하세요. 와아~~

 

 

예의를 비롯한 모든 형식을 거부하는 B-Boying Musical 이었다.
제목에서 스토리는 다 나왔고 오로지 심장을 비트하는 다이나믹한 음악과 힘이 넘치는
브레이크 댄스의 연속으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무대배경이나 조명은 좀 조악하다.

춤이, 몸이, 대단하다. 근육이 불끈거리는 게 다 보이고 몸은 또 어쩜 그리
가벼운지 펄펄 날아다닌다. 엄청 연습 많이 했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B-Girl 4명의 춤이 등장하자 열광의 박수소리! 특히 여성분들이 더!

작은 딸은 계속 박수치며 좋아하고 표현 별로 안 하는 큰딸은 무표정하다.

나중에 나오면서는 씨익 웃으며 멋있다고 고백했다.^^
큰딸 학교선생님이 방학 중 뮤지컬 2편을 보라고 해서 예매한 것인데 작은애도
같이 데려오길 잘 했다. 큰애는 동생 데리고 왔다고 투덜거리다 나한테 한소리 듣고..

일주일 후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3매 예매해뒀는데 또 투덜거리면.. ㅠㅠ

 

길거리 비행청소년의 이미지(사회자 왈)로 있던 브레이크 댄스를 무대에 올려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는 저들의 열정은 오랜 기간 발이 부르트도록 연습하고 또

연습하는 발레리나들의 열정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같다고 볼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 무얼까? 단지 취향의 문제일까? 편견?

발레리나보다 비보이들의 춤을 보고 신이 나서 박수치는 10살 작은딸이랑 같이

박수치며 신나게, 잘 한다고 동조했으면서도 살짝 

흔쾌하지만은 않으니, 속으로 뜨금, 난 확실히 덜 젊다는 증거라니까.. 

그게 아닌가?(긁적)  내속의 이중잣대가 문제야.

 

 

<사진은 연극사랑사람사랑 대구까페에서 빌려옴>

 


처음엔 비보이들이 댄스로 점령하고 있는 광장에 발레리나가 쉬 접근할 수 없었다.
그녀는 우월감에 찬 눈으로 그들을 보는 눈치였다.

비보이와 비걸들도 마찬가지로 발레리나가 가까이 오는 것을 싫어하고 밀어낸다.

그들의 문화적 충돌과 반목이 깨어지는 건

한 사람의 멋진 비보이가 손 내민 친절에서 시작하긴 했지만

그녀, 발레리나가 먼저 그들의 춤에 매료된 원인이 크다.
문화적 계급(상당한 이중성과 선입견이 작용한 걸 인정한다)이라는 말이 있나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들이 서로간에 놓인 단단한 벽을 깨고 함께 비보잉을 하는 장면이 멋지다.

고난도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비보이들 개개인 기량이 정말 뛰어났다.
초보들 연습 하다가 부상 당하는 일도 많다고 하던데..

그들의 열정이 훌륭하다.

 

 

조금 아쉬운 건.. 주인공 발레리나와 비보이와의 커플퓨전댄스가 부족하다.
두사람의 조화로운 결합이 뮤지컬 전체의 의미에도 중요하니만큼
두사람이 추는 멋진 춤판이 있었다면 훨씬 좋았을 것을!  그걸로는 약하다, 약해!
다음, 시즌2에서는 연출자가 이것 좀 보강해주십사.

비트 강한 브레이크 댄스는 우리 전통가락(휘모리 같은)과도 잘 어울린다고 하는데...

(연출자는 막간에 나와 요요쇼를 보여주는데 그것도 묘기다.)

 

 

그리고 혀짧은 비보이 한 명이 마지막 장 앞에 잠시 나와 인사와 홍보를 하는데

여기저기서 우습다고 난리였다.

- 제 혀가 좀 짧아서 뭔 말인지 잘 못 알아들으셔도 절대 질문은 하지 마세요. 저도
입 다물고 춤만 추면 제법 멋있다고들 그래요. 전 저의 장점과 당점을 다 말씀드려요...

불끈불끈 저렇게 춤 한번 춰봤으면 좋겠다. 몸치가 무슨... 대리만족으로 그만이다.

충분히 흥분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 Ballerina Who Loves B-Boy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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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7-08-26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유행하는 비보이를 느끼고 오셨네요. 전 제가 먼저 박수치고 난리였을듯. 옆에서 보림이는 '엄마 조용히 좀 하세요' 이런 분위기 랍니다. ㅎㅎ
이 공연을 통해서 비보이를 발레리나와 동격으로 생각하고 싶은 비보이들의 야망이 숨어있다죠?

프레이야 2007-08-26 23:34   좋아요 0 | URL
세실님은 정말 그러셨을 것 같아요.ㅎㅎ
나중엔 다 기립하라고 해서 같이 박수치며 박자 맞췄는데 제 앞의 이십대
아가씨 둘은 고함치며 흔들흔들.. 어쩜 그리 자유로운지 부럽더이다.^^

Mephistopheles 2007-08-26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레라는 직종에 있는 사람들도 비보이들만큼이나 몸을 혹사하긴 해요.
그런면으로 보면 두 직종의 사람은 뭔가 통하는 것이 있을지도 모르죠.
그럼 난 비보잉 배워야 하는 것인가.????

프레이야 2007-08-26 23:51   좋아요 0 | URL
그럼요, 강수진의 발이 생각나요.
메피님, 저도 비보잉걸 할래요, 시켜줘도 몸이 따라갈라나..
그게 걱정되지만요. 메피님은 비보이로 어찌 안 되려나..ㅎㅎ
참, 매튜 본의 남자백조들도 넘 멋지던걸요.

라로 2007-08-26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재밌었겠어요.
저도 꼭 보고싶은 뮤지컬인데,,,,
홍대 비보이 전용극장서 보셨나요???여긴 문화도시같으면서도 공연이 넘 없어요.
서울과 대전의 차이를 백화점 뿐 아니라
예술 공연에서 더 뼈저리게 느낀답미다.ㅜㅜ

프레이야 2007-08-26 23:50   좋아요 0 | URL
나비님^^ 여기 부산도 그런점에선 대전과 비슷할 걸요.^^
대전엔 안 왔나봐요. 전 엘지아트센터에서 하는 공연 중 보고싶은 걸
못 보는 경우가 많아요. 최근 것도요..

비로그인 2007-08-27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티비에서 우연히 봤어요
줄거리 보고 꼭 보고싶은 뮤지컬였는데...여기서 듣게 되네요
정말 대사 한마디도 없었나요?? 비보이들의 박진감 넘치는춤과 발레리아의 우아함까지
우와~ 재미있었겠다^^;; 추천하고갑니다

프레이야 2007-08-27 01:42   좋아요 0 | URL
줄거리는 별 것 없구요. 뮤지컬은 춤과노래가 제맛이죠.
그런데 이건 더구나 무언입니다. 비보이들의 춤으로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와~와~ 신나게 심장소리 펑펑~ 그러면서요..^^

춤추는인생. 2007-08-27 0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따님과 즐거운 데이트를 하시고 오셨군요 혜경님^^ 비보이들의 춤들은 정말 환상적이예요 님 비보이와 발레. 둘다 몸의 한계에 도전한다는 의미에서 공통점이 있지요..
아침부터 비가 한방울 한방울 차창에 똑똑 맺혀있다 흘러가네요. 혜경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

프레이야 2007-08-27 09:00   좋아요 0 | URL
님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 여성분들 무지 많이 왔더군요. 커플들이 더 많구요.^^
가녀린 발레리나 보면서 님 생각 났어요.^~* 몸의 한계에 도전!
그런 공통점으로 더 대단해요.^^
와, 정말 환상적으로 잘 추더군요^^ 어젯밤 보고 나오니까 비가 오다
그쳤는지 땅이 촉촉하게 젖어 있었어요. 그곳은 오늘 아침 비가
오나봐요. 여긴 햇볕 쨍쨍이에요. 더위도 순순히 물러가지 않겠다고
그러네요. 오늘도 좋은하루 보내세요.~~~

뽀송이 2007-08-27 0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과 두 따님이 비보이들의 열기를 함께 느꼈다니 대단한데요.^^
저희 집은 아들 녀석들이라 둘다 비보이들의 춤을 무척 좋아합니다.
자신들이 몸치라 역시! 대리만족인 것 같음!!
여기 저기 작은 비보이들의 공연을 보고는 동영상까지 찍어오고 난리도 아니라지요.^^;;
방학이 이런 면에서는 좋은 것 같아요.^^
이제 개학을 했으니 또 짜여진 학교생활에 적응해야겠지요.ㅡㅜ
아직 많이 덥습니다.^^ 건강한 하루 보내셔요.^.~

프레이야 2007-08-27 08:57   좋아요 0 | URL
아들들이 무지 좋아할 것 같아요 ㅎㅎ 역시 남자애들이라 파워풀하지요. 흐뭇 뽀송이님!
아이들 오늘 개학했죠? 큰딸도 교복 입고 무거운 가방 매고 숙제 한 거 챙겨서 나갔어요.
초등생은 이번 토욜에 해요. 뽀송이님도 좋은하루!!

turnleft 2007-08-27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으.. 글만 읽어도 그 리듬이, 비트가 느껴지는 것 같네요.

프레이야 2007-08-27 08:58   좋아요 0 | URL
좌회전님도 비보이 좋아하세요?ㅎㅎ 정말 신나더이다. 부럽기도 하고요.^^

비로그인 2007-08-27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악- 부러워라!
우리나라 비보이팀은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팀이죠. 정말 멋졌겠어요!
서울 살면서도 한번도 안 가본 나는 뭐지?
역시 솔로라서 그런건가... ㅠㅠ

프레이야 2007-08-27 09:28   좋아요 0 | URL
체셔님, 으싸으싸~~ 본고장팀보다 잘한다고 해요.^^
몸이 정말, 무대 위아래로 날아다니더라구요...
제앞에 앉은 여성분 두명(솔로겠죠?^^)은 어찌 자기네들끼리 신나서
덜썩거리던지 부럽더구먼요~~크아!!

향기로운 2007-08-27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흑..부러워요~ 혜경님은 정말 부지런 하세요^^

프레이야 2007-08-27 10:50   좋아요 0 | URL
향기로운님, 덕분에 떠들썩한 분위기에 덜썩거리다 왔지요^^

아영엄마 2007-08-27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공연 보러 갔다 오셨군요. (울 애들은 비보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몰라요~ ^^;;) TV에서 비보이 경연대회 방영할 때 가끔 보는데 젊은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춤 추는 거 보면 너무 부럽더이다.

프레이야 2007-08-27 15:09   좋아요 0 | URL
헤헤 아영엄마님, 울집 작은애는 아마 터울 큰 언니 영향인 것 같아요.
언니는 만날, 초딩이 쳇, 이러며 싫어해도 다 따라가고 싶어해요.
우리도 언제 비보이춤 비슷한 거나 한번 춰볼라나요?^^
 
토끼섬 세상을 배우는 작은 책 15
이원구 지음, 권문희 그림 / 다섯수레 / 2002년 3월
평점 :
품절


 

 이 동화가 처음 세상에 나온 해는 1998년이다. 지금으로부터 9년 전이지만 이 책에 담긴 동화 두 편을 읽으면 마치 1950년대의 세상으로 돌아가 있는 듯하다. 요즘 아이들에겐 낯선 시대배경이지만 그럼에도 요즘 아이들의 정서에도 공감되는 주제를 갖고 있어 친근하게 읽힌다. 작가 이원구는 어쩌면 대개의 여성작가보다 더 부드럽고 아름다운 표현을 살렸다. 그러면서도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삶은 감자처럼 꾸밈없고 소박한 심성을 다루고 있다. 특히 자연을 묘사하는 순화된 문장이 자극적인 글을 접하기 쉬운 요즘 아이들에게 수수한 정서를 느끼게 해 주는 장점이 있다.

 이 책에는 <토끼섬>과 <검둥아, 검둥아>, 두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하드커버지만 책의 두께가 얇고 크기도 좀 작아 손에 쥐기에 맞춤이다. 두 이야기는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모두 소년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남자아이들은 좀 덜 예민할 거라는 편견을 뒤엎는다. 어쩌면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소재로 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소년의 마음이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또다른 공통점은 두 이야기 모두 동물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전자는 동물이 준 기쁨으로 성장을, 후자는 동물이 준 슬픔으로 성장을 하는 일종의 통과의례 같은 것이다. 두 소년의 타고난 선한 심성-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가꾸고 싶어 하는-이 잔잔한 감동을 전한다.

 누구든 수많은 이별을 하며 하루하루를 나아간다. 화자로 나오는 초등 6학년 두 소년의 하루하루는 그런 걸 느끼기엔 너무 젊고 걸음도 빠르다. <토끼섬>의 기영이는 해주할아버지와 모종의 일을 꾸민다. 생명이 없는 섬에 그 아이가 풀어놓은 생명은 목화꽃처럼, 메밀꽃밭처럼 희고 눈부시다. 소년, 나아가 한 사람이 갖는 무목적의 무모한 소망이 얼마나 소중한 결실로 맺히는지, 나아가 좀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어떤 꽃을 피우는지! 베아트릭스 포터의 실화가 떠오른다. 꿈을 갖고 무언가를 하고 두려움에 악몽으로 가위눌리던 소년은 어느덧 중학생이 되었다. 사춘기에 접어든 그 소년은 또 다른 이별을 하고 또 다른 만남을 얻을 것이다.

 <검둥아, 검둥아>의 영수는 키우던 개 점박이를 불의의 사고로 잃고 아픈 마음이 아직 덜 아문 아이다. 닫혀있던 마음을 서서히 풀게 한 건 아버지의 애정보다 소년의 타고난 측은지심이다. 가엾은 생명, 엄마 잃은 생명에 대한 어쩔 수 없는 끌림이었다. 한국전쟁이 시대적 배경인 점으로 미루어, 영수집에 오게 된 검둥이는 전쟁고아를 연상하게 한다. 불쌍하기 그지없는 그 생명을 무뚝뚝하게 대하면서도 챙겨주는 마음 씀씀이가 영수의 뒤통수를 예뻐 보이게 한다. 슬픈 운명의 검둥이와 역시 슬픈 시대에 살았던 영수의 우정이 시대의 아픔과 함께 가슴 아프다.

 삽화는 거친 스케치에 퇴색한 사진처럼 채도를 낮춘 색감이 순박한 멋과 향토적인 느낌을 준다. 가만가만 읽어보면 멋 부리지 않은 글맛과 함께 두 소년의 깨끗한 마음이 순한 맛을 전해준다. 소금 살짝 넣어 삶은 감자 맛이다. 

초등 4학년 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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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24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뚱맞은 질문하나 해도 되나요?
삶은 감자와 찐 감자의 차이는 뭘까요?


프레이야 2007-08-24 14:12   좋아요 0 | URL
ㅎㅎ 민서님 삶는 요리는 찌는 요리보다 물의 양이 훨씬 많지 않나요?
저도 불량주부라 잘은 모르겠지만 고구마나 옥수수나 감자나 찐 게
훨씬 쫀득하고 맛나긴 한데 전 그냥 집에서 할 땐 삶게 되더군요.
찌려면 찜용 발이 있어야하니까요..^^ 이거 사면 되는뎅..ㅜㅜ
그나저나 삶거나 찌거나 살짝 짭짤한 감자 먹고 싶네요.^^
앗, 승연님 이제 발견했어요. 윗글의오류를요..
재치있게 찝어주신 민서님..^~*

뽀송이 2007-08-24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요즘 자극적인 동화가 끌려요.ㅡ,.ㅡ
섬세하고, 소박하고, 구수한 동화가 갑자기 먹먹해지는 바람에...ㅡㅜ
님~~~~ 너무 더워요.^^ 냉커피 한 잔 주세요!!

프레이야 2007-08-24 16:46   좋아요 0 | URL
요즘 나오는 동화는 소재부터 진기한 걸 잘 찾아들어가는 것 같아요.
아이들도 그러다보니 자극적인 것에 더 흥미로워하구요.
이 책은 소박한 주제이지만 짧은 글에 압축되어 있는 이야기가 지루하지
않고 읽는 맛도 개운하답니다. 뽀송이님, 시원한 냉커피 대령이오~~
 
잘사는 나라 못사는 나라 - 석혜원 선생님의 지구촌 경제 이야기
석혜원 지음, 고상미 그림 / 다섯수레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이용 경제관련책은 늘 아쉬움이 남았다. 한동안 부자아빠를 강요하는 일련의 실용서들이 부자이지 못한 대개의 아빠들 기를 죽인 적도 있다. 어린이 책에서도 돈을 모으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내용을 보이는 책들이 있다. 목적이 옳으면 과정이 모두 옳은 것일까. 물론 돈의 소중함과 가치를 어릴 때부터 알게 하는 것은 나쁘지 않으나, 심부름이나 집안일 도우기 같은 소소한 일로도 돈으로 대가를 받아 그걸 저축하는 모습을 최고인양 선보이는 책들은 늘 마뜩치 않다. 아니면 동화형식을 빌어 별 내용 없는 이야기를 몇 명의 등장인물이 엮어가게 하면서 설명글이나 만화로 빈자리 메꾸듯 지식정보 면을 채워주는 책도 있다. 그런 책은 조금 더 쉽고 친근하게 읽힐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동화부분은 뛰어넘고 지식정보란만 읽게 되는 경우가 많다.

 ‘용돈 좀 올려주세요’를 쓴 석혜원님의 이 책은 그런 아쉬운 부분을 넘어서 있다. 알토란  같은 내용들을 조목조목 명확하게 짚어주며 알쏭달쏭한 경제관련 용어들까지, 차근차근 읽는 이의 이해를 돕는다. 모두 11장, 46꼭지로 Q&A가 하나의 물결을 타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데, 그 출발은 ‘잘산다는 게 무슨 뜻인가’라는,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물음이다. 쉽고도 어려운 질문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우리의 경제와 세계의 경제로 나아가, 세계화와 지구촌으로 모인다. 목차를 쓰윽 훑어보면 책은 지금 세계경제의 흐름을 읽고 변화에 적응하기를 적극 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06년 4월 초판인 이 책은 미래를 짊어질 어린이 경제인들에게 진취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을 보여주려고 군데군데 중심을 잘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1997년 시작된 IMF 외환위기와 극복에 대한 대략의 내용과  FTA에 대한 현실적인 시각은 그런 면에서 좋은 정보가 될 듯하다. 여러 가지 경제관련용어가 생소하여 좀 어려울 수 있지만 전체 내용을 이해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고 오히려 앞으로의 더 깊이 있는 독서에 도움이 될 것이다. 초등 6학년 정도가 읽으면 좋은 눈높이에서 풀어놓았다. 뒤에는 ‘찾아보기’와 좀 더 기억하기 어려운 ‘경제용어풀이’를 묶어놓았다. 전체적으로 내용을 풀어감에 전혀 딱딱하지 않고 친근한 어투를 쓰며 필요한 도표와 삽화, 사진도 적절히 배치해 두었다. 아이와 선생님이 간단히 묻고 길게 대답하는 형식인데 내용상의 군더더기가 없고, 간지러운 곳을 잘 긁어준다.

 잘산다는 건 가치관에 따라 주관적인 기준이 생기는 것이므로 모두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는 말로 시작한다. 여기서 다룰 ‘잘 살기’는 그 범위를 좁혀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겠다는 것이다. 경제적 의미로 잘산다는 기준은 ‘국민소득’이라는 지표로 가늠할 수 있다고 슬슬 경제이야기를 시작한다. 당연한 순서로 국내총생산과 국민총소득, 그에 따른 경제성장률이 나온다. 우리나라는 1962년에서 1981년 동안 약 30배의 성장률을 보였고 수출은 약400배의 신장을 보였다. 여기서 급성장의 폐해(황금만능, 환경파괴, 근로자들의 희생, 도시인구과열 등)를 아이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책에서도 언급되지만 요즘 우리아이들 중에 돈이면 다 좋다는 식의 생각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아 이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눈치였다.

 

 ‘경제성장이 곧 경제발전은 아니다’는 개념에서 올바른 경제발전으로 이야기가 나아간다.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나라는 경제적인 면뿐 아니라 정치적인 면이나 국제경쟁력 등도 따진다는 점, 그리고 경제적인 면으로의 선진국은 1인당 국민소득 수준과 공업화의 정도를 본다는 것이다. 나는 오늘날의 선진국이라면 여기에 환경평가도 첨가되어야하는 게 아닐까 여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국민총생산에 비해 1인당 국민소득은 스위스 같은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니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 기준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13꼭지 ‘돈이 많으면 행복할까요?’의 답변은 감상적이지 않고 현실적이라 믿음이 간다. 1998년 런던의 한 대학교수가 조사한 각 나라별 행복지수의 결과를 언급하는데, 알고 있듯이 1위는 방글라데시다. 2위는 아제르바이잔, 5위는 인도, 미국은 46위, 프랑스가 37위, 그리고 우리나라는 23위로 나왔다. 즉, 빈부의 차이에서 오는 생활수준의 차이가 크거나 치열한 경쟁 속에서 긴장하며 살아야 하는 사회에서는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더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과연 지금의 우리가 방글라데시 사람들의 행복을 정말 부러워할까? '자발적 가난'이 정신적인 면을 넘어 새로운 미덕이 되고 있는 건 풍족함에 싫증나고 경쟁에 지친 자들의 어쩌면 배부른 노래가 아닌가. 인도인들도 가난은 모든 죄악의 근본이라 하고 부 없는 덕은 무의미하다고 했다. 자본주의가 어쩌니 해도 경제적 생활수준이 더 나빠지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니 경제성장으로 이룬 자본의 혜택을 모든 국민이 골고루 누릴 수 있는 나라, ‘다시 말해 국민의 행복 지수가 한 단계 높아지는 나라’를 물려주고 싶은 게 어른들의 바람'이라고 저자는 조심스레 말한다.

 잘사는 나라, 국민 모두의 행복지수가 한 단계 높아지는 나라, 경제발전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나라를 위해 책에서는 우선 경제성장을 이루는 가장 큰 요인으로 무역을 거론한다. 오늘날 세계화니 지구촌이니 하는 용어는 무역의 중요한 결과이기도 하고, 무역은 세계화 전략의 생존수단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무역’이란 말을 처음 쓴 사람은 2천여 년 전의 사마천(출처는 밝혀두지 않아서 갸우뚱)과 실크로드, 동북아 해상무역을 주도한 장보고 등을 언급한다. 오늘날 우리의 수출품목에서의 변화도 일목요연하게 도표화 해 두었다. 또한 수입품목과 그 변화도 도표화하며 ‘수입 먹을거리는 다른 것에 비해 값이 싸니까 국내물가를 안정시키는 역할도 한다’고 지적하고 공산품의 수출을 늘릴 수 있다고도 한다. 지금 우리 농산물이 위협을 느끼는 사태에 대한 또다른 시각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내지 않고, 그것이 석유무기화처럼 식량무기화가 일어날 수도 있느니 이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농민 단체들은 농산물 시장 개방이 식량 자급률을 떨어뜨리는 주요 원인이라고 보고, 농산물 수입이 더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일본처럼 식량 자급률 목표를 설정할 것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고 귀띔해 두었다. 우리 수출 품목 중 특이한 것은, 소전(素錢)이다. 소전은 액면가와 각종 문양이 새겨진 동전을 만들기 전의, 반쯤 만들어진 상태의 동전이다. 세계 각국의 동전으로 만들어지기 위해 수출되는 우리 기업의 소전은 세계 소비 동전의 절반이 넘는다고 하는데 나도 아이들도 새로이 알게 된 반가운 사실이다.

 내용은 잘사는 나라를 위한 세계화로 귀결된다. 정보뿐만 아니라 무역을 통해서 지구상의 모든 나라가 하나의 시장이 되어가는 현상을 세계화로 정의한다. 물론 경제저 의미의 세계화다. 얼마전 어느 님의 서재에서 '아픔의 세계화'라는 말에 공감한 적이 있는데 아이들의 그것을 위해서도 우선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무역과 자본의 거래가 자유로워지면서 상품, 서비스, 자본, 노동 등이 국제적으로 활발하게 오가게 된 오늘날의 지구촌에서 경쟁력 있는 나라, 잘사는 나라가 되기 위해 정부와 기업과 국민이 해야 할 일로 생각을 모으게 한다.

 

 세계화의 시대에 더욱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빠뜨려서는 안 될, 우리전통과 문화에 대한 각별한 지킴이 역할에 대한 언급은 없다. 하지만 세계화의 이름으로 압박하는 자유무역협정과 관련한 현실적인 방안과 피해 보는 측에 대한 구체적 보상 방안에 대한 상기, 그리고 자본과 기술력을 갖춘 선진국의 힘이 커지면서 잘사는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소득차이가 더욱 심해지는 등의 부작용을 간과하지 않게 한 점은 바람직하다. 자본의 세계화와 그 음험한 폐해, 희생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여기 어린이책에서 깊이 언급되지는 않았다. 그러기 이전에 세계시장의 변화에 발빠르게 적응하며 경쟁력을 가진 기업을 수레에 비유하여 수레를 끄는 정부, 뒤에서 미는 개인의 조화로운 작용을 말한 것은 선의로 읽힌다. 그런데 수레를 끄는 게 정부가 맞는지, 이점은 경제에 밝지 않은 나로서는 다소 어리둥절하다. 그래도 여러가지 면에서 고학년 경제관련 책으로 마음에 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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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2007-08-22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다는 평을 언젠가 봤는데 여기서도 봤으니 꼭 보렵니다~

프레이야 2007-08-23 07:59   좋아요 0 | URL
작은도서관님, 굿모닝!! 아이들에게 경제에 대한 균형있으면서도
발전적인 생각을 심어줄 수 있을 거에요. 경제관련 용어들도 이해하기
쉽게 연결고리를 엮어가며 풀어놓아 마음에 들었어요.
모의 FTA 협상도 해봤는데요 흥미로운 시간이었어요. 그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아이들 스스로 느껴보구요.^^

몽당연필 2007-08-23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제교육...넘 어려워요. 저도 받아보지 못한터라..
아이가 1학년이 되면서 어떻게 해야할까...고민만 하고 있다니깐요. ㅠㅠ

프레이야 2007-08-23 14:42   좋아요 0 | URL
몽당연필님, 하기야 우리 어릴땐 뭐 이런 책이라도 있었나요.
요즘 아이들은 좋은책 읽을 게 참 많아 좋겠어요. 그래도 안 읽죠 ㅎㅎ
초등1학년이면 아직 경제개념은 좀 어려워할 것 같은데요.
(중1은 아니죠?^^) 아직 고민하지 않으셔도 될 듯해요.
어린아기랑 더위에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그 숲 속 그 못가에서 동무동무 끼리끼리 샘터어린이문고 7
임홍은 지음, 김종도 그림 / 샘터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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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아이가 어릴 적 그러니까 10년 전인가, 동화읽는어른 모임 행사 중 빛그림 공연을 처음 보았다. 그림책 ‘똥벼락’을 보여줬는데 음성도 구수하고 익살스럽게 연출되기도 했지만 하얀 슬라이드에 표현되는 검은 그림자 뒤의 이야기에 푹 빠졌다. 빛살창으로 비치는 그림자처럼 호기심을 자아내는 것이다. 그 이후, 모 대극장에서 한 그림자 연극에도 데려갔다. ‘피터와늑대’ 그리고 ‘오필리어의 그림자극장’이 마지막이었다. 아이는 그때 참 흥미로워했다. 나도 검은 형체와 실루엣만으로 동작하는 인물들과 배경에 묘한 자극을 느끼며 마음의 현이 훨씬 섬세해짐을 느꼈다. 얼마 전 작은 딸에게는 ‘프린스 & 프린세스’라는 그림자영화 디비디를 사줬더니 재미있어했다.

 아이들과 내가 그림자에 매혹되는 까닭은 잘 모르겠지만 보편적인 감성이 아닐까 싶다.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여백을 채우는 맛도 있을 테고 음성연출과 음악효과에 더 많이 감각할 수도 있을 테다. 요즘, 아이들에게 쉽게 와닿지 않는 지나친 상징이나 교조적인 말들,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색채와 화려한 장식의 그림들 속에서 이런 글과 그림은 어쩌면 너무 수수해서 눈에 띄지 않는 시골길섶 한 구석의 들꽃 같다.

 글쓴이 임홍은은 북한작가로서 이 소박한 동화의 원제는 <동무 동무>이며 1937년 10월 18일부터 25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던 글이다. 그래서 새로 나온 책에서도 그대로 ‘동무’라는 말을 써서 ‘친구’보다 훨씬 정겹게 들린다. 그린이 김종도의 그림은 여러 좋은 어린이책(저 중 고학년)에서 두루 볼 수 있다. '겨레아동문학선집 1'- <엄마 마중>(보리 출판사)에 그린 수수한 흑백 삽화는 김동성의 그림으로 환하게 빛나는 그림책 <엄마 마중>(소년한길)과 비교된다. 물론 김동성의 그림은 그대로 매혹적이다. 그외에도 익살스럽게 그린 '화요일의 두꺼비'나 사실적으로 섬세하게 그린 '전쟁과 소년'의 삽화도 이야기를 돋보이게 한다. 김종도는 특히 토속적인 배경과 우리 아이들의 둥글고 납작한 얼굴을 꾸밈없이 사랑스럽게 그리는 것 같다.


 이 책에서는 동물을 주요 등장인물들로 하는데 각 동물의 특징을 잘 살려 실루엣을 그렸다. 그리고 죽죽 뻗은 나무와 하늘거리는 나뭇잎들, 여린 풀들의 살랑대는 소리까지, 작은 정령들의 숨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숲속 풍경을 검은 그림자들이 담고있다. 배경에는 수채화를 엷게 풀어 단색으로 채색한 또 다른 그림자들을 두어 검정색과 조화로운 그라데이션를 이루는데 단조로운 색감이 깔끔하다. 뭔가 이야기를 잔뜩 품고 있는 것 같은 숲이 고즈넉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며 곱상한 테두리를 한 액자 안에 담겨 있는 느낌이다.

각기 다른 영역에서 각기 다른 성격과 재주를 갖고 살고 있는 네 친구들이 어떻게 우정을 만들고 '그 숲 속, 그 못가에서' 언제나 즐거운 노래가 그치지 않게 되었는지, 술술 읽히는 쉬운 문장과 분단 이전의 우리말을 재미나게 살려놓은 말맛에 빠지게 된다. 이야기 줄거리는 소박하다. 흔히 비슷한 이야기를 어디서 들은 것도 같은 그런 귀설지 않은 이야기다. 낯선 것만 찾을 것 같은 아이들은 친숙함과 익숙함에 흥미를 더 느끼는 경향이 있다. 사슴의 뿔 위에 앉은 까마귀, 사슴 등에 앉은 생쥐 그리고 사슴 발 아래서 뒤돌아보며 목을 쭉 빼고 있는 거북이. 이들이 어떻게 나뭇꾼을 따돌리는지,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같이 통쾌함을 느낄 것이다. 동물보다 우위에 있다고 여기는 사람을 골탕 먹이는 네 명의 친구들이 발휘하는 기지는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발랄한 빛이 난다.

 일제시대에 쓰인 점을 봐서 동물을 잡으려드는 나뭇꾼은 일제의 폭압을, 힘없지만 힘을 모으는 동물들은 우리민족을 비유한 건 아닌지. 저학년아이들에게 그런 이야기까지 깊이 하여 이야기의 재미와 흥겨운 감동을 반감할 필요는 없기도 하지만, 3학년 쯤이면 조금 들려주는 것도 좋겠다. 아름다운 이야기와 그림자 그림 중 내가 느끼기에 가장 강렬한 그림이 하나 있다. 강한 보색대비를 이루는 검정과 노랑 배합의 그림으로 깊이 패인 함정 위로 사슴의 한쪽 뒷다리가 끈에 묶여 함정 위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거꾸로 매달려 있는 장면이다. 사슴이 얼마나 놀라 울부짖고 있는지. 글로는 나오지 않았지만 나는 괜히 그런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아이들은 어떤 장면을 최고로 꼽는지 주거니받거니 이야기 해 보면 아이들의 정서를 감지할 수도 있다.

 꾸밈없고 고운 우리말맛이 정겹게 살아있는 글과 한편의 빛그림 연극을 선사하는 이 책은 독후에 극본으로 간단히 써서 역할극을 해보아도 좋은 활동이 될 것이다. 물론 그냥 소리 내어 읽어도 재미나다. 초등 1학년에서 3학년까지 두루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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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21 2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21 2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25 06: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롤리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권택영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절판


내가 미친 듯이 소유했던 것은 그녀가 아니라 나 자신이 창조해 낸 것이었다. 또 다른 환상적인 롤리타, 아마도 실제보다 더 리얼한 롤리타. 실제의 그녀와 겹치고 둘러싸며 나와 그녀 사이에서 둥둥 떠다니며 의지도 의식도 없는 소녀, 정말 그건 그녀 자신만의 삶이 아니었다.-87쪽

내 삶은, 마치 그것이 나와 아무 상관 없는 무감각한 기계 장치인 듯, 힘 있고 일상적인 방식으로 어린 로에 의해 움직였다. 아이들의 세계가 강건하다는 인상을 심어주려는 일념으로 그녀는 아이의 세계와 어른의 세계가 다르다는 것에 대해서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183쪽

치한(the rapist)과 치유자(therapist)라는 말은 글자로는 큰 차이가 없다.... 정상적인 아이-정상적이라는 걸 명심해-는 자기 아버지이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 아이는 아버지에게서 자신이 바라는 막연한 남성을 미리 본다.('막연한'이라니 좋구나, 폴로니우스를 걸고 맹세하지)-204쪽

현명한 엄마(너의 불쌍한 엄마도 살아 있었더라면 현명했겠지)라면-진부한 표현을 용서해라-여자애가 아버지와 접촉하는 동안에 사랑과 이상적 남성형을 형성한다는 것을 알고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북돋아주었을 것이다. -204쪽

나는 역사적으로 보아, 연극을 원시적이고 타락한 형식이라고 믿어 싫어했다. 개별적인 천재는 많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석기 시대 의식 같고 사회 전체의 부조리를 담고 있는 것 같은 예술양식, 예를 들면 독자가 방에 혼자 앉아 기계적으로 술술 외우는 엘리자베스 시대 시처럼 말이다.-272쪽

일어나고 있는 운명은 정말이지 잘 짜인 추리 소설 같은 게 아니다. 그런 소설 속에서 독자는 그저 단서에 잔뜩 눈독을 들이면 된다. 젊은 시절에 나는 실제로 해결의 실마리가 될 만한 곳을 이탤릭체로 강조해 놓은 프랑스 추리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맥페이트의 방식이 아니다. 아무리 그가 어떤 막연한 암시를 감지한다 해도.
(맥페이트는 운명의 여신으로 험버트를 조종한다. 우연에 의해서)-286쪽

본능적으로 나는 화장실이나 전화가 알 수는 없지만 왠지 내 운명을 걸고 넘어지는 대상들처럼 느끼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그런 운명적인 물체들을 갖게 마련이다. 반복되는 경치일 수도 있고, 어떤 숫자일 수도 있다. 신들이 우리에게 중요한 사건을 일으키기 위해 조심스레 선택한 것. 여기서 존은 늘 비틀거리고, 저기서 제인은 늘 가슴이 아플 것이다.-287쪽

웃으면서 하는 친선경기 여행은 패스포트와 스포트의 차이를 지운다. 왜 구태여 멀리 나가야만 우리가 행복해지리라 꿈꾸는가? 환경을 바꾼다는 것은 파국을 앞둔 연인들, 오염된 패들이 의지하는 관습적인 오류가 아닐까-325쪽

그 사나운 환상 속에는 나의 거친 기쁨을 완벽하게 만드는 요소가 있었다. 그 영상은 닿을 수 없고,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오염될 가능성도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미성숙이 나를 왜 매혹하는가, 그것은 순수하고 젊고 금지된 요정의 아름다움이 주는 명쾌함 때문이라기보다 많은 것이 약속되지만 거의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음으로 인해 생기는 틈새를 무한한 완전성들이 메꾸어준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결코 가질 수 없는 분홍잿빛의 위대함이여.-359쪽

이제 비슷하게, 얼핏 스치던 광채, 현실의 약속-유혹적으로 그런 척할 뿐 아니라 고상하게 지키던 약속-이 모든 것을 우연은 망가뜨린다. 창백하고 사랑스런 작가의 더 왜소한 인물들로 바꾼다. 나의 환상은 프루스트적이고 프로크루스테적이다.-360쪽

잘 알려진 인물이 소설이 진행되는 동안 이런저런 발전을 거친다 해도 그의 운명은 우리의 마음속에 새겨져 있고,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친구들이 우리가 그들을 위해 마련해 준 논리적이고 관습적인 패턴에 따라 움직여주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X는 그가 늘 우리에게 들려주었던 이류교향악과 전혀 다른 불멸의 음악을 만들 수 없다. Y는 결코 살인을 할 사람이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Z는 결코 우리를 배반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런 것들을 속으로 미리 다 정해 놓고는 어떤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가 우리 생각을 얼마나 잘 따르고 있는지 확인하며 만족해한다. 덜 만날수록 더 그렇게 된다.-361쪽

우리가 정해 준 운명에서 빗나가는 경우 반윤리적이고 변칙적이라고까지 생각한다. 은퇴한 핫도그 장사가 가장 위대한 시집을 출간해 내었다고 밝혀질 경우 우리는 차라리 그 이웃을 모르는 편이 나을 뻔했다고 생각한다.-362쪽

'죽는다는 것이 아주 두려운 것은 왠지 알아? 완전히 혼자가 된다는 거야' 무릎은 기계적으로 아래위로 움직이고 있었지만 나는 내가 그녀의 마음속을 조금도 모르고 있다는 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끔찍스런 청소년의 은어 뒤, 그녀의 깊은 마음속에는 정원이 있고, 황혼이 있고, 궁전의 문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곳은 내 비참한 몸부림과 누더지같이 더럽혀진 몸은 결코 들어갈 수 없이 금지된 곳, 희미하고 사랑스런 공간이었다.-388쪽

선의였다! 그녀는 자신의 연약함을 고질적으로 성급함과 지루함으로 감추었다. 반면에 나는 불쾌감을 느낄 정도로 인위적인 음성을 사용하면서 필사적으로 초연한 듯 얘기했기 때문에 듣고 있던 롤리타는 더 이상 대화가 불가능해질 정도로 무례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 나의 불쌍하고 상처받은 아이여!-~388쪽

나는 일이초쯤 현실로부터 유리되었던 것 같ㄷ. 아, 여러분의 흔한 죄인들이 그러하듯 있던 일을 모두 지워버리려는 그런 뜻은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나는 그가 흘린 피 한 방울 한 방울이 모두 내 책임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아주 잠깐, 나는 내가 부부의 침실에 있는 듯한 착각을 했고 침대 위에서 병든 샬로트를 보았던 것 같다. 퀼티는 굉장히 병든 사람이다.-415쪽

내가 들은 것은 바로 아이들이 노는 소리였다. 대기가 너무도 맑아서 이 뒤섞인 소리들의 화음 안에서, 장엄하고 미세하고, 아득하면서도 요술처럼 가깝고, 솔직하면서도 신성하게 신비스런 아련한 소리들 속에서 때때로 까르르 터지는 선명한 웃음, 탁 치는 방망이 소리, 장난감 마차가 덜그럭대는 소리들이 간간이 들려왔다, 그러나 환히 떠오르는 골목마다에서 아이들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보기에는 나는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 ... 그리고 그때 나는 알았다. 가망없이 가슴 아픈 것은 내곁에 롤리타가 없어서가 아니라, 저 소리들의 어울림 속에 그녀의 음성이 더 이상 들리지 않기 때문임을.-420쪽

그리고 클레어 큐를 동정하지 말아라. 사람은 그와 험버트 험버트 사이에서 어느 쪽을 선택해야만 했고, 또 험버트가 몇달이라도 더 살기를 원했다. 그렇게 해야 험버트가 너를 후세 사람들의 마음속에 심어놓을 게 아니냐. 나는 들소와 천사들, 오래가는 그림 물감의 비밀, 예언적인 소네트, 그리고 예술이라는 피난처를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이 너와 내가 나눌 수 있는 단 하나의 불멸성이란다, 나의 롤리타.-4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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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21 2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21 2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진달래 2007-08-23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가 선물해달래서 선물해주곤 전 아직 못 읽어본 작품이에요.
논란이 좀 되는 작품 같던데 맞나요? ^^;;

프레이야 2007-08-23 10:46   좋아요 0 | URL
무척 흥미로운 문체에요. 물론 원문해독이 안 되니 번역의 힘만 믿지만요..
당대에 논란이 많이 되었던 건 내용의 외설스러움보다 표현의 극단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나보코프의 뜻은 그걸 넘어 그 위에 있었어요.
인간본성의 외로움, 연약함. 미학적인 상징과 은유들, 빛나는 말장난들,
고전에 대한 지식과 현실적인(당시의) 법안들에 대한 상식이 바탕되어
읽히는, 좋은 책이었어요. 고전의 힘!
진달래님, 좋은 아침이에요. 바람이 좀 선선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