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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섬 ㅣ 세상을 배우는 작은 책 15
이원구 지음, 권문희 그림 / 다섯수레 / 2002년 3월
평점 :
품절
이 동화가 처음 세상에 나온 해는 1998년이다. 지금으로부터 9년 전이지만 이 책에 담긴 동화 두 편을 읽으면 마치 1950년대의 세상으로 돌아가 있는 듯하다. 요즘 아이들에겐 낯선 시대배경이지만 그럼에도 요즘 아이들의 정서에도 공감되는 주제를 갖고 있어 친근하게 읽힌다. 작가 이원구는 어쩌면 대개의 여성작가보다 더 부드럽고 아름다운 표현을 살렸다. 그러면서도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삶은 감자처럼 꾸밈없고 소박한 심성을 다루고 있다. 특히 자연을 묘사하는 순화된 문장이 자극적인 글을 접하기 쉬운 요즘 아이들에게 수수한 정서를 느끼게 해 주는 장점이 있다.
이 책에는 <토끼섬>과 <검둥아, 검둥아>, 두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하드커버지만 책의 두께가 얇고 크기도 좀 작아 손에 쥐기에 맞춤이다. 두 이야기는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모두 소년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남자아이들은 좀 덜 예민할 거라는 편견을 뒤엎는다. 어쩌면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소재로 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소년의 마음이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또다른 공통점은 두 이야기 모두 동물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전자는 동물이 준 기쁨으로 성장을, 후자는 동물이 준 슬픔으로 성장을 하는 일종의 통과의례 같은 것이다. 두 소년의 타고난 선한 심성-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가꾸고 싶어 하는-이 잔잔한 감동을 전한다.
누구든 수많은 이별을 하며 하루하루를 나아간다. 화자로 나오는 초등 6학년 두 소년의 하루하루는 그런 걸 느끼기엔 너무 젊고 걸음도 빠르다. <토끼섬>의 기영이는 해주할아버지와 모종의 일을 꾸민다. 생명이 없는 섬에 그 아이가 풀어놓은 생명은 목화꽃처럼, 메밀꽃밭처럼 희고 눈부시다. 소년, 나아가 한 사람이 갖는 무목적의 무모한 소망이 얼마나 소중한 결실로 맺히는지, 나아가 좀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어떤 꽃을 피우는지! 베아트릭스 포터의 실화가 떠오른다. 꿈을 갖고 무언가를 하고 두려움에 악몽으로 가위눌리던 소년은 어느덧 중학생이 되었다. 사춘기에 접어든 그 소년은 또 다른 이별을 하고 또 다른 만남을 얻을 것이다.
<검둥아, 검둥아>의 영수는 키우던 개 점박이를 불의의 사고로 잃고 아픈 마음이 아직 덜 아문 아이다. 닫혀있던 마음을 서서히 풀게 한 건 아버지의 애정보다 소년의 타고난 측은지심이다. 가엾은 생명, 엄마 잃은 생명에 대한 어쩔 수 없는 끌림이었다. 한국전쟁이 시대적 배경인 점으로 미루어, 영수집에 오게 된 검둥이는 전쟁고아를 연상하게 한다. 불쌍하기 그지없는 그 생명을 무뚝뚝하게 대하면서도 챙겨주는 마음 씀씀이가 영수의 뒤통수를 예뻐 보이게 한다. 슬픈 운명의 검둥이와 역시 슬픈 시대에 살았던 영수의 우정이 시대의 아픔과 함께 가슴 아프다.
삽화는 거친 스케치에 퇴색한 사진처럼 채도를 낮춘 색감이 순박한 멋과 향토적인 느낌을 준다. 가만가만 읽어보면 멋 부리지 않은 글맛과 함께 두 소년의 깨끗한 마음이 순한 맛을 전해준다. 소금 살짝 넣어 삶은 감자 맛이다.
초등 4학년 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