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 展을 보고
<헤세의 예술>을 리뷰해주세요
헤세의 예술 - 예술은 영혼의 언어이다 헤르만 헤세 : 사랑, 예술 그리고 인생
헤르만 헤세 지음, 폴커 미켈스 엮음, 이재원 옮김 / 그책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2년 전 헤르만헤세展에서 보았던 오래된 수동타자기 생각이 난다. 헤세가 사용했던 것으로 유리상자 안에 전시되어 있었다. 이 책의 표지에도 수동 타자기 한 대가 덩그러니 그려져있다. 그 때 전시장에서 본 것과는 다른 것이지만 수동타자기 특유의 묘한 향수를 불러준다. 폴 오스터의 타자기 소리도 들리는 듯하다. 타닥타닥 타다닥.. 한 자 한 자 글자를 불러오며 자신만의 언어를 조합, 재생산해 내는 작업. 작가로 산다는 것, 나아가 예술가로 산다는 것, 그 정신의 근간을 읽을 수 있는 책이 <헤세의 예술>이다. 헤세가 그의 작품을 비롯해 지인과 나눈 편지, 독자와 아들, 비평이나 에세이 등에서 밝힌 예술관의 정수를 엮어서 나온 책이다. 엮은이 폴커 미헬스는 독문학을 가르치고 출판일을 하며 헤세 전집 20권을 최초로 발간했을 정도의 헤세 매니아인데 원래 전공은 의학과 심리학이다. 독특한 이력이다.  

헤르만 헤세 Hermann Hesse는 독일의 시인이지 소설가이다. 나치에 비협조적이라는 이유로 매국노라는 지탄까지 받고 그는 스위스 국적을 딴다. 그의 글은 오랜 방황과 고통의 과정을 겪고 탄생된 것들이다. 기독교집안에서 태어나 신학교에 들어간 그는 모든 강제와 속박을 견디지 못하고 중퇴하고 이런저런 힘든 일들에 몸을 굴리고 자살 미수의 경험도 있다. 정신과적인 심리치료까지 받고 작가의 길로 들어서서 갱생한 그는 작가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사상가다운 면모를 보인다. 불행한 가정생활과 좋지 못한 건강에도 불구하고 40세에 시작한 수채화 그리기를 죽을 때까지 하며 그것으로 생의 기쁨에 매달렸다. 정원을 가꾸고 수채화를 그리는 깡마른 노년의 머리에는 밀짚모자가, 안경 너머 깊은 눈은 노인의 혜안으로 번득이는 것 같았다. <정원일의 즐거움>에서 본 인상이다. 헤세전에서 본 그의 정원 입구에는 '방문객 사절입니다'라는 푯말이 서있었는데 그게 참 인상적이었다. 수채화에도 사람을 일절 그리지 않아 사람에 대한 불신을 표현했듯이. 그런대도 자신의 내면으로 깊이 파고들며 흙과 꽃과 나비와 함께 하려는 노인의 얼굴이 오히려 넉넉해 보였다.  그때 전시장에서 헤세 수채화가 든 액자 두 개와 노벨문학상 수상작 <유리알 유희>를 사왔다.

이 책은 크게 다섯 장으로 나뉘어 헤세의 글귀를 모아둔다. 각 장마다 제목을 두었는데 내용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 예술의 정의 또는 기능과 가치, 예술가 정신, 작가 정신, 작가가 쓰는 언어의 중요성, 고독의 유희로서의 詩-시의 본질. 그는 이성과 감성, 지성과 열정, 온건과 강경한 태도에 있어서 균형 잡힌 저울을 지녔다는 생각이 드는 글귀들을 만날 수 있다.   

첫째 장 [예술은 사랑과 위안이다] 에서 그는 예술에서 새로운 것을 환영하지만 '도덕적인 것, 즉 자신의 사명에 대한 인간의 태도에서는 유행과 개혁을 의심'스럽게 보았다. 그는 정신적인 작업을 '오직 가슴으로만' 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성이 개입되지 않은 예술은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다고 보았다. 특히 구체성에 천착할수록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것에 다가가게 되고 치열한 관찰력이 깊고 풍부한 이미지들을 보여준다는 아래 글귀가 마음에 들어온다. 

   
 

예술가가 진실하고 솔직하려고 노력할수록, 그리고 단 한 번뿐이고 덧없는 것을 겸손하고 충실하게 모방하려고 하면 할수록 그의 작품에서는 영속적인 것이 표현되거나 예감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의 상반신을 더욱 충실하고 비슷하게 묘사하면 할수록, 다시 말해 덜 이상화하고 덜 일반화하면 할수록 그것은 그 묘사된 사람을 전혀 알지 못하는 관찰자에게 보편적인 것, 즉 인간 형제의 이미지, 살아있는 사람, 고통을 겪는 사람,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의 이미지를 더 많이 보여줍니다. 

- 엘스 부허러에게 보낸 편지, 1931년 4월 17일 (70쪽)

 
   

 

둘째 장 [예술가 정신]에서는 '문학의 정신'이라고 바꿔 말해도 되는 글귀들이 함께 있다. 그는 예술은 인류 전 역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과정이었던 승화의 과정으로 역할할 때 바람직하다고 밝힌다. 아니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단언한다. 자신에게도 승화란 '충동의 억압'이었다고 말하며 '인간이 상황에 따라 자신의 충동과 이기적인 것을 초월하고, 정신적이며 종교적이고 문화적인 목표에 봉사하도록 할 수 있다는 사실, 정신을 향한 헌신, 그리고 성자와 순교자들이 있다는 사실이 세계사에서 얻는 긍정적인 힘이라 했다. 그러나 예술가적인 충동과 기질은 억압되어서는 안 되고 고무받아야 하는 것으로 말한다.  C.G. 융(헤세는 융의 제자에게 심리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어떤 재능있는 사람이 자기가 지닌 충동의 힘으로 예술을 발전시킬 때 나는 그의 실존과 행동이 최고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그가 어쩌면 개인으로서는 병적이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정신분석은 예술가들에게는 너무 어렵고 위험합니다." (89쪽)  더구나 완소 문장 하나, 감정, 부드러운 영혼의 떨림과 가벼운 흥분, 이것이 나의 지참금이며 그것을 가지고 나의 삶을 꾸려나가야 한다.(103쪽) 

세째 장 [작가로 산다는 것]에서는 아래 글귀가 소중하다. 

   
 

이 시대는 시대의 목표와 이상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천국이며, 저항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지옥이다. 작가가 자신의 소명에 충실하게 남아 있으려면 성공에 취한 세계에 동조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영혼의 종이고 대변자이며 기사인 것이 작가의 유일한 과제이므로 지금 이 세상에서 고독과 고통의 선고를 받은 것으로 스스로 생각할 수 있다. (중략)  이에 반해 책 읽는 부르주아가 사랑하는 '작가들'은 우글거린다. 이들은 재능과 미감으로 언제나 부르주아가 의도하는 이상과 목표에 따라 오늘은 전쟁을, 내일은 평화를 미화한다. 그러나 진정한 '작가' 중 많은 사람들은 지옥의 공간 속에서 침묵한 채 파멸해간다. 

- <작가의 고백> 1927년

 
   

  

그는 삶에 대한 눈과 귀를 결여한 사람이 작가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쓰며 삶의 경험을 풍부하게 하고 그것을 정확한 자신만의 표현으로 '아름다움이 아니라 진리를 얻으려고' 글을 쓰라고 권한다. 그러면 아름다움은 저절로 따라온다고. 문학이 어떤 목적에 봉사하지 않아야 하며, 개인의 기억을 드러냄으로써 고통의 해소보다는 고통의 강화를 위해 글을 쓰라고. 개성도 중요하지만 성실함과 책임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글귀들도 마음에 들어온다. 부단한 노력과 실천의 문제일 것이다. 

네째 장 [언어의 마법]에서는 특히 이 글귀가 허를 찌른다. "언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는 것은 언어를 육성하는 것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가장 본질적인 것, 즉 진정으로 강하게 체험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여동생 마룰라에게 보낸 편지(1928년 11월)에서 읽혔다. 강렬한 체험, 온몸을 흔들고 파고드는 아찔한 체험. 그것은 기억의 혼란, 인식의 파격, 망상으로부터의 이탈이 이뤄지는 순간이 아닐까. 진정한 언어란 진정한 체험의 표현일 경우에 해당되는 것. 초개인적인 경험, 바늘로 바위를 뚫듯 천착해들어가는 강렬하고 섬세한 경험으로 가득 한 언어이어야 아름답다는 말이다.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망상(?) 아니 소망을 가져본다.

실제로 헤세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이 많다. 2년 전 헤세 전시장에서 그의 시가 음악으로 탄생한 오래된 LP재킷들을 보았다. 그는 시, 특히 서정시의 예찬을 이렇게 한다.  이것은 다섯 째 장 [시, 고독의 유희]에 있다.

   
 

모든 서정시는 개별적인 자아 속에 세계가 반영된 것이며, 세계에 대한 자아의 대답이며 탄식이고 숙고이자 완전하게 의식된 고독의 유희이다.  

- 비평 <헤르만 헤세가 추천하다>  1933년 3월

 
   

'시는 음악이며, 시란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려는 것'이고 '시 속에는 상당한 양의 독이 달라붙어 있는 경우가 많아, 그것은 고통을 유동적인 것으로 만들고, 고통은 매우 친절하게도 서투른 시행을 통해 흘러 나가 사라진다'고 썼다. 1896년, 그러니까 그의 나이 19세 때의 글귀이다. 시를 쓰며 고민과 방황을 했던 청춘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1938년에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는 詩作의 엄준한 책임감과 함께 고통의 작업이라는 의미가 읽히는 글귀가 있다. "전적으로 감정에서 우러나서 시를 쓴다는 것은 망상입니다......오히려 모든 것이 수많은 선택과 노동을 통해, 매우 엄격한 집중 속에서, 그리고 종종 기존의 법칙과 형식에 대한 극히 고통스러운 점검을 통해 써집니다." (194쪽) 

1962년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예술가로서 작가로서 격동과 고난의 세월을 살아온 헤세를 짧은 글에서 두루 읽을 수 있다. 그는 예술가적 영감과 재능 못지않게 성실함과 책임감 그리고 부단한 연마로 형식을 가다듬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했다. 예술은 무엇보다 사랑과 위안이면서 내면을 파고들어 우주의 근원에 닿는 것이어야 한다. 이 책은 글을 쓰든, 음악을 하든, 그림을 그리든,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아가기로 한 사람들에게 영혼을 밝히는 아포리즘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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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09-07-03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다리던 리뷰였어요. thanks to~

프레이야 2009-07-03 19:13   좋아요 0 | URL
네^^
헤세의 사랑,도 올려야하는데 이러고 있네요.

라로 2009-07-03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이렇게 부지런하세요????리뷰를 몇개나 올리시고!!!!와

프레이야 2009-07-04 00:02   좋아요 0 | URL
서평도서에요^^
참, 그날 그 문제의 리뷰요..(요 아래)
나비님의 기운찬 에너지 받아 특종 먹었어요.
우리 담에 떡 사먹어요.ㅎㅎ

라로 2009-07-04 00:32   좋아요 0 | URL
것봐요!!!제가 상 받을거라 그랬죠!!!!ㅋㅎㅎㅎㅎㅎ
떡 사먹으려면 대전에 오셔야 할듯~ㅎㅎㅎ
 

  

지중해 철학기행 / 클라우스 헬트 

고대희랍과 그리스철학을 지중해 연안의 유적지와 함께 소개한다. 

철학의 발생과 그들의 사유를 따라 의미있는 여행을 도와줄 수 있는, 좀 두꺼운 책.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오히려 못 볼 수도 있다.  

지중해 여행을 꿈꾸다.

 

 

 

  

취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 에쿠니 가오리 

  

물방울처럼 가볍고 산뜻하게 읽히는 책. 

사랑스러운 여인 에쿠니가 사랑하는, 사소한 것들에 대한 사소하지만은 않은 생각들 

 

 

 

 습지와 인간 / 김훤주 

 

 부제 ; 인문과 역사로 습지를 들여다보다. 

 주로 경남일대의 습지에 대한 세밀 보고서로 습지와 환경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한다. 

 관계자들을 찾아 인터뷰하고 함께 습지를 찾아다니며 발로 쓴 글. 

 최대한 객관적인 서술과 수수한 감성의 조합으로 저자의 겸손하고 살뜰한 습지사랑이 읽힌다.

  

 

 그것을 타라 / 조정은 

 기존의 하품나는 교조적 에세이에서 탈피하여 전체가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듯 

 흥미진진하다. 미려하거나 당찬 문체와 곳곳에서 배어나오는 작가의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이 

 가슴에 저릿하게 다가온다. 고난을 겪고 거듭 나며 건져올린 솔직담백한 사유가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힘이 되는 글들을 묶었다. 어느 겨울 밤, 세찬 바람을 옹골차게 견디고 

 그것에 부딪히면서 자신을 오롯이 지키고 명랑하게 밤하늘을 타고 날아 다니는 한 송이 송이의 

 눈꽃송이를 타듯, 그것을 타듯, 그렇게 엄살 부리지 말고 살아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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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누주드, 열살 이혼녀>를 리뷰해주세요
나 누주드, 열살 이혼녀
누주드 무함마드 알리.델핀 미누이 지음, 문은실 옮김 / 바다출판사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신이 만드신 자연은 아주 험하지.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신은 가장 강한 인간도 창조해 냈다는 말씀이지!” 열 살의 누주드가 결혼하여 살 오지 카르지의 집으로 가는 차, 그 차의 운전기사가 한 말이다. 카르지는 '세상의 저쪽 끝'이라는 뜻이다. 한껏 인생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할 소녀가 세상의 저쪽으로 밀려가는 암담한 여정에서 누주드는 그 말을 듣고 이렇게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가 맞다면 신은 나를 잊으신 거야.’

 누주드Nojoud가 틀렸다는 건 이 책을 통해 증명된다. 누주드는 누구도 쉽게 해낼 수 없는 일에 강인하고 담대한 용기를 가지고 뛰어들었다. 처음부터 어떤 사명감으로 행한 일이 아니라 자신의 자유와 행복을 찾기 위한, 살기 위한 일이었다. 열 살 이혼녀 누주드의 구술을 바탕으로 중동전문기자 델핀 미누이가 엮은 이 책은 누주드의 기억을 재구성하여 탄생하였다. 2008년 4월, 법원으로 뛰어들어가는 장면으로 시작하여 악몽같은 결혼생활의 기억까지 누주드의 가족과 그녀 자신의 경험을 전해 듣게 된다. 그녀가 본 이해할 수 없었던 더 어린시절의 일들, 가족들의 알 수 없던 일, 무서운 기억과 따뜻한 기억, 초등학교 친구 말라크 외에 누구에게도 말 못한 꿈과 소망. 그런 기억의 편린들이 실타래를 풀듯 풀려나온다. 이 책은 호기심 많고 질문이 많았던 한 소녀의 용기로 발아한 희망의 메시지이자 참담한 증언이다. 한편 이슬람 세계뿐만 아니라 서구사회의 반성을 촉구하고 오랜 관습과 종교적 계율에 대한 반기와 함께 근본적으로는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할 자유와 인권에 대한 각성제다. 

 예멘은 행복한 아라비아Arabia Felix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그것이 헛된 이름일 뿐이라는 건 책장을 넘기며 오래지않아 느끼게된다. 한 소녀가 회고하는 순수한 기억과 불순한 조짐들이 투명한 창을 통해 보이듯 선명하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비로소 누군가에게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누주드의 해방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누주드의 엄청난 일들은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현실이다. 누주드는 초등학교 2학년, 수학과 코란을 좋아하고 그림그리기를 특히 즐긴다. 책 속에 누주드가 그린 아이다운 그림이 몇 실려있다. 캔디와 초콜릿을 좋아하고 친구들과 밖에서 뛰어놀기를 더없이 좋아한다. 누주드의 꿈은 물과 닿아있다. 강이거나 바다. 특히 바다를 한 번 보는 게 소원이고 거북이가 되어 모래 속에 고개를 넣었다뺐다 해보면 재미있겠단 생각을 하는 순진하고 평범한, 그러나 총명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여성이다.

 엄마와 엄마의 엄마, 언니들이 거부하지 못하고 받아 들여왔던 그 모든 관습과 폭력, 남성중심의 명예- 샤라프(Sharaf)- 에 그녀는 강한 거부감을 갖고 그로부터 탈출을 감행한다. 그것은 목숨을 건 모험이었다. 남자들만을 위하는 계율에 반항하거나 불복종하면 가족과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해도 당연시되는 세상에서 그런 과감한 결단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혼을 원해요” 라고 법원의 판사 앞에서 소리쳤을 때 그녀는 이미 자신을 가두는 세상의 벽에 돌을 던져 자신을 억압하는 것들에 굴하지 않겠다는 뜻을 보였다. 그녀와 유사한 경험의, 아니 더 작은 나이의 소녀들에게 그녀의 이혼소송 승리는 전례없이 커다란 힘이 된다.

 남자들간의 계약으로 이루어진 급작스런 결혼은 누주드가 결혼이라고 하면 어렴풋이 상상했던 그 모든 화사한 꿈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축제와는 더욱 멀었다. 엄마가 입혀주는 니캅(기혼녀가 입는, 눈만 보이고 온몸을 덮는 길고 검은 옷)을 걸치고 머리를 틀어올리며 어른들의 세상, 더이상 꿈을 꿀 수도 없는 암흑의 세상으로 나아가는 자신을 상상한다. 그 잔인한 기운이 현실로 체감되는 순간 그녀는 세상에 혼자 내동댕이쳐진 공포감을 온몸으로 감당해야했다. 사춘기가 되기까지 잠자리를 하지 않겠다던 ‘괴물’(누주드는 남편을 이렇게 회상한다)의 말은 헛된 약속이었고 그녀는 폭행과 끔찍한 고통 속에서 두 달을 버텼다. 그녀의 영리한 작전으로 악마의 소굴에서 탈출을 감행하여 승소한 이 사건은 그동안 예멘의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을 가능하게 했다. 조혼방지법, 여성이 만 17세가 되기까지는 결혼하지 못한다는 법안이 의회에서 압도적인 표 차이로 통과되었던 것이다. 2009년 3월, 누주드가 이혼소송에서 승소한 후 11개월이 지난 후에 이루어진 일이다. 한 사람의 작은 영웅이 큰 일을 해낸 것이다. 기적 같은 일이다.

 오늘 예멘의 수도 사나에서 160명 가까이 되는 사람을 태운 여객기가 인도양에 추락한 뉴스가 들린다. 2주 전 쯤에는 자원봉사자로 예멘에 갔던 한국인 엄씨가 테러집단에 의해 희생되었던 불행한 사건이 있었다. 예멘의 최대 영문 일간지 예멘 타임즈는 최근 기고문을 통해, 인간은 범법을 행하지 않는 한 누구나 순결한 영혼을 갖고 있으며, 종교의 힘을 빌어 테러행위를 정당화하는 일부 단체들의 소행은 용납할 수 없는 일임을 강조하였다. 예멘 타임즈는, 이슬람 세계에서 "어느 한 개인을 이유 없이 죽이는 자는 인류 전체를 파멸하는 죄를 짓게 되며, 한 개인을 구원하는 자는 인류 전부를 구원하는 덕을 베푸는 행위를 한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하는 이슬람의 교리를 함께 역설했다. 누주드를 구원한 아름다운 여성 인권변호사 샤다, 예멘 타임즈 기자, 판사, 그리고 가엾은 두 번째 엄마 도올라. 그들은 진정한 이슬람 교리에 의한 덕을 베풀었다.

 그러나 예멘은 내게 이렇게 좋지 않은 뉴스로 기억된다. 아라비아의 남서쪽 모서리 사우디아라비아 아래쪽에 위치한 이 나라는 여성문맹율이 70%를 넘고 어린이 강간과 납치가 흔하며 영아사망율도 세계최고라고 한다. 벗어나기 힘든 도시빈민의 궁핍함 속에서 가족의 입을 덜고 강간을 피하고 부족 간의 모종의 거래와 평화를 위해 여자아이의 조혼이, 더구나 남자들의 선택과 결정으로만 이루어진다니 얼마나 놀랍고 암담한가.

 공화국 예멘은 아직 지역 족장의 힘이 강하고 까트(일종의 마약) 문화가 성행하는 나라다. 물을 많이 먹는 까트 재배가 물이 부족한 이 나라의 물을 더 말라가게 한다. 이 땅의 비극이라고 표현된다. 즐거움을 주는 것이 동시에 나쁜 짓이 되기도 한다는 걸 깨달은 누주드는 이미 세상에 눈을 크게 뜨고 사는 아이다. 이혼 후 그녀는 이전에 어렴풋이 느꼈지만 베일에 가려져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던 일련의 가족사와 가족들이 겪는 내면의 고통을 이해하기에 이른다. 누주드가 정신적인 풍요함과 유머를 겸비한 강인함을 지녔다는 점은 다음과 같은 말에서 드러난다.

   
 

꿈과 비교한다면, 현실은 때로 정말로 잔인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또한 아름다운 놀라움을 품고 있기도 합니다. 오늘 나는 ‘축제’라는 말의 의미를 비로소 이해했습니다. 만약 축제가 단 과자라면, 설탕이고, 비스킷이고, 안을 부드럽게 만든 쿠키일 것입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코코넛 사탕처럼 말입니다.

“이혼식, 결혼 가운데 정말로 가장 좋은 축제에요.” 커다란 곰 인형을 품에 끌어안으며 내가 말했습니다. (146-147쪽)

 
   

 

 실제로 태어난 날을 잘 모르는 누주드는 아마 여덟 살일 수도 아홉 살일 수도 있다고 한다. 이혼이 법적으로 성립된 날을 누주드는 생일로 맞이한다.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이혼 덕분에 나는 많은 일에 눈을 뜨게 되었고, 다른 사람들의 불행을 지금은 더 잘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169쪽) 이렇게 말하는 누주드는 미래에 자기처럼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을 돕는 변호사가 되기 위해 다시 학교에 간다. 똘망한 눈망울로 손을 번쩍 들고 발표를 하는 누주드(책뒷표지에 사진으로 있다)의 미래가 밝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이슬람교리를 어겼다는 이유로, 국제사회에 예멘의 나쁜 인상을 퍼트렸다는 이유로 그녀를 비난하는 세력이 있고 후원자로 나선 변호사 샤다 또한 위험으로부터 몸을 숨겨야하는 처지라 하니 안타깝다.  

  

 이들이 밝은 미래로 가는 길은 여전히 멀고 고난이 가득할 것만 같다. 그래도 국제 구호 단체인 옥스팜Oxfam은 예멘 남부에 문제의 심각성을 알릴 워크숍을 만들겠다고 압박하고 '법적인 결혼 가능 연령'에 대한 의식을 고양하며 ‘안전한 결혼 연령’이라는 말을 더 즐겨쓴다고 한다. 조혼의 위험성은 심리적인 트라우마, 잠자리에서의 치사율, 학교 중도 포기 등이다. 하지만 옥스팜의 임무 또한 위험성에 노출되어 있다. 지역 족장들의 입에 거론되어 표적이 되고 있다고 하니 누주드의 불투명한 미래가 안타깝기만 하다. 곱지않은 시선으로 보는 자들이 너무 많은 가운데 누주드의 용기있는 행동이 바람직한 혁명으로 이어지는 씨앗이 되길 기대한다.   

 

 



<2008년 올해의 여성에 선정된 누주드, 니캅을 벗은 소녀의 얼굴이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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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하늘 2009-07-02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저 안타깝다는 말 밖에는...
누주드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래요...

프레이야 2009-07-02 08:55   좋아요 0 | URL
하늘아래 저런 일도 있다는 게 놀랍지요.
같은하늘님의 바람처럼,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세상이 누주드에게 오면 좋겠어요.

카스피 2009-07-02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들이 신의 이름을 빌어 하는 만행이 이거 하나만은 아니지요 ㅜ.ㅜ

프레이야 2009-07-02 10:57   좋아요 0 | URL
너무 안타까운 일이에요. 종교적계율이나 저들이 말하는 명예라는 게
진정한 의미로 행해지고 있지 않으니..

비로그인 2009-07-02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신과 관습과 본능적 폭압과 이념과.. 기타등등이
여전히 사람들의 삶을 억압하고 파괴하는 것 같습니다.

인권에 관한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지구상 모든 곳에 통용되기를..
누주드와 같은 아이들이 아이다운 삶을 살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프레이야 2009-07-02 23:42   좋아요 0 | URL
어떤 것이든 폭압적인 건 견디기 어려울 것 같아요.
아이다운 삶, 그게 허용되지 않는다니 정말 안타까운 내용이었어요.

라로 2009-07-02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남편과 메신저 끝내고 컴을 끄려다 혹시 리뷰를 을라나 하면서 보고 추천만 누르고 잤는데 지금 읽어보니 참 뭐라 말하기 그렇네요,,,,세상에나,,,,,

프레이야 2009-07-02 23:43   좋아요 0 | URL
추천 ㅎㅎ
메신저는 날마다 잘 하고 있군요. 역시 최강 다정한 커플이야요.
정말 끔찍한 일이 세상에.. 말에요.

꿈꾸는섬 2009-07-03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이런 일이...네요.
누주드의 용감한 행동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이런 아름다운 이혼식은 꼭 이루어져야해요.
리뷰를 보는 내 속이 다 아프기도 하고 후련하기도 하고 그러네요. 실제로 보면 너무 안타까워서 못 볼 것 같아요.

프레이야 2009-07-03 01:34   좋아요 0 | URL
그 어린 아이가 당했을 고통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요.
담담하게 적혀있지만 구술할 때 다시한번 상기되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순오기 2009-07-04 0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호~ 베스트 특종이네요. 축하~~ ^^

이슬람 문화권에서 여자들이 겪는 고통을 다룬 소설로 여럿 있더라고요.
이런 천인공노할 만행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니~ 누주드같은 용기있는 여성들이 많이 나와야 돼요.

프레이야 2009-07-05 13:34   좋아요 0 | URL
헤헤 고맙슴다.^^
어린 여자아이가 정말 용기를 발휘했어요. 진정 살기위해서여요.
 
<눈오는 아프리카>를 리뷰해주세요.
눈 오는 아프리카
권리 지음 / 씨네21북스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권리,라는 작가를 처음 책으로 만나게 되었다. 2004년에 <싸이코가 뜬다>로 한겨례 문학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다.  우선 두가지 제목만 봐도 제목을 좀 특이하게 짓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호기심을 끄는 데는 일단 성공이다. 2000년부터 42개국 여행을 했으며 앞으로 북한을 가보고 싶다는 젊은 작가다. 이건 정말 대단하다. 난 꿈만 꾸고 있으니. 이 책은 저자가 352일 동안 39개국의 곳곳을 여행하면서 써내려간 소설이다. 지도와 함께 세계 여러나라의 유명한 곳을 대리여행하는 재미는 솔솔하다. 그러나 여행안내서 같은 걸 기대하면 곤란하고(기대한 건 아니지만) 그저 소설의 배경으로서 역할한다. 한국에서 유럽, 남아메리카를 거쳐 아프리카, 아시아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의 여정이 이어지는데 그다지 소설적인 공간적배경으로 필연적인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스토리의 전개에 반드시 그 공간이 유효적절하다기보다 그 공간에 스토리가 따라가는 인상이다. 그저 주인공 스무살 청년 고유석의 성장기로서의 긴 여정으로 보면 적당할 듯하다.   

저자가 별로 쓰고 싶지 않았다는 후기에서 그는 여행관을 이렇게 적어둔다. - 여행은 제자리 버티기다. 없음에서 버티기, 외로움에서 버티기, 인생이라는 고통 속에서 버티기. 그에게 여행은 버티기 위한 삶으로, 그런 삶의 훈련으로서 한 몫 하는 것 같다. 여행이 그렇듯, 인생도 대개 있기보다는 없음, 충만감보다는 외로움이 자주 자아를 흔들어 놓는다. 그런 생각은 망상과 혼돈의 시기를 사는 유석에게 여행의 기회를 주게 된다. 유석은 저자 자신의 한 부분 또는 자화상이기도 할 것이다. 가볍고 유머러스한 서술로, 실제 여행을 하면서 겪었고 보았던 일들이 소설 속 에피소드로 재미있게 읽힐 수 있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과의 우연한 만남, 그것이 사건과 인물의 성장에 모종의 역할을 하는데 전체적으로 보면 너무 우연에 기대어 등장하는 건 아닌가싶다. 공간의 이동이 크고 잦고 뜬금없이 바뀌어버리는 통에 혼란스러운 면이 다소 있다. 

음모와 시기 질투, 아버지의 죽음과 그의 자화상에 얽힌 의문, 반전, 해결 등의 사건전개에 미술 예술론이 전개되는데, 이 부분은 좀 천천히 곱씹어 읽어볼 만하다. 이런 부분에선 진지한데 곧 가볍게 능청을 떨며 전체적으로 너무 무겁지 않은 서술을 이어간다. 저자가 이 소설 속에 담은 예술관에 좀더 귀기울여 보면 흥미롭다.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 이야기이지만 색다른 표현이 눈길을 끈다. 그야말로 '영감님이 오셨다!'라고 외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오기까지 그가 바라는 건, '한 송이 할미꽃이 피어 있는 영감의 무덤을 파헤치는 도굴꾼이 된 심정'에 도취되는 것이다. '그렇게 파낸 영감의 정수를 그의 영혼 안에 집어넣고 그것에 생명을 부여하고 원래의 자리에서 기능하기를 바라고, 호기심과 욕심을 채울 때까지 그는 미친 속도로 영감의 무덤을 도굴'했다.(95쪽)  하지만 금세 유머러스한 문체로 가볍게 날려준다. - 그는 또한 '영감이 재채기를 하며 무덤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렸다'며 '변비 걸린 나, 하지만 언젠가 한 번은 영감님을 몸 밖으로 토해낼 때가 온다. 봉인되면 해제되는 날이 오듯이.' 그는 이렇게 생각하며 끙끙의 시간을 오래도록 가졌다. (96쪽)  이런 식이다.  

눈 오는 아프리카!  이것이 상징하는 건 '영감은 어떻게 오는가?'라는 질문 자체다. 이 물음은 저자가 자신에게,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자신에게 묻는 것일 수도 있다. 모작에 재능이 있는 미술대학 재수생 유석은 칠레의 발파라이소에서 사람들과 벌인 토론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나 같은 예술가의 내부에서는 그동안 단순히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을 조합하고 재구성해서 영감을 탄생시키지. 영감은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상태에서 탄생되지. 전혀 논리적이지가 않아. 나는 어떻게 해서 그러한 영감이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예술가의 내면에 떠올라서 예술가를 무한한 상상의 기쁨으로 충족시켜 주었다가 다시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곤 하는지 궁금해서 미치겠어. (275쪽)

 
   

 

유석이 가장 사랑한다는 에곤실레의 <변용> 등 두루 등장하는 유명작품들, 화가로서 색을 보는 눈, 예술혼을 불러주는 자신의 마돈나, 예술작품 속의 긴장, 위작과 모작에 대한 이야기가 무겁지 않게 나온다. 특히 유석은 <변용>을 보며 인생의 본질에 다가가는 것 같다고 고백한다. 난 이 작품을 보지 못해 모르긴 해도 소설 속에 묘사를 해두었다. 유석은 이 그림을 보며 '예술을 한다는 건 중력을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도 깨닫는다.  "절망으로 절망을 이기려는 사람이 자신 말고도 지구상 어딘가에 또 있었다는 사실에 큰 위로를 받았다"는 구절이 마음에 든다. 스무살 시절, 혼돈과 치기와 자기정체성의 모호함으로 고뇌했던 시간들! 누구에게나 있었을 법한 그 시절의 정신세계를 떠올려 주는 구절들을 만날 수 있는 건 장점이다.  

이 소설에서 저자는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점이 단점이 되기도 하고 기대 충분한 가능성이 되기도 할 것이다. 작품 전체를 이어가는 정신은 '아버지의 세계에서 벗어나기 그리고 다시 들어가기'라는 신화에 가깝다. 어둡고 광막했던 아버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세계시민으로 성장한 듯한 그는 자신 안의 어린아이 - 사소한 감정에 넘어지고 헤맨 아이, 최장거리를 날고 걷고 기어서 온 아이 - 를 떨쳐내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이는 초반에 최교수가 그에게 한 충고를 되돌려보면 두 가지 해답 중 전자를 실천한 것처럼 보인다. - "예술가가 그림자를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니? 태양의 바로 밑에 서거나 암흑 속에 자신을 가둬야 한다." (32쪽)  저자는 종결부분에서 여성성에 좀 더 기울어지는 듯하다. 고향에는 홀로 된 어머니가 그를 기다리며 점심 준비에 바쁘다. 고향이자 어머니는 그를 키우고 나아가게 한 빛과 바다, 빗과 지팡이로 상징된다. 아이다운 영감의 소중함은 강조되고.  

 세계를 돌았지만 성장했다기보다 아이의 얼굴을 하고 돌아온 유석, 그건 역설적인 의미로 '영감은 어떻게 오는 것인가'에 대한 해답처럼 들린다. 여행은 돌아오는 데에 의의가 있다는 말은 흔한 말이지만 몇겹의 의미를 가진다. 여행을 삶으로 등치해두고 보면 그 의미가 더 또렷해진다. 그것은 나그네의 여정을 떠난 자가 고향으로 돌아옴이고, 다시 아이로 돌아옴이다. 이 책 <눈 오는 아프리카>는 여행을 이렇게 말한다. 성장을 통해 아이다운 진정한 영감을 간직하고 보석처럼 빛나는 얼굴로 '빈곤과 행복'이 공존하는 일상의 현실로 돌아옴이라고. 그저 하얀 캔버스일 뿐이었던 '눈 오는 아프리카'는 마음 속에 간직하는 동경의 이미지, 마음의 고향에 가깝다. 그 모든 경계와 습관, 익숙함과 나태함으로부터의 이탈이고 고정관념으로부터의 탈출일 것이다.       

   
 

어머니라는 빛을 통해 아버지라는 그림자를 지운다. 어머니라는 바다를 통해 아버지의 죄를 씻는다. 어머니라는 빗을 통해 아버지라는 동요를 잠재운다. 어머니라는 지팡이를 통해 아버지라는 미로를 헤쳐 나간다. 마침내 아이는 어머니라는 빛과 바다와 빗과 지팡이 없이도 아버지 안으로 들어가는 법을 배운다. 아이는 앞을 보지 못한다. 색깔도 구분하지 못한다. 하지만 아이는 영감을 이용해 소박함과 인정, 빈곤과 행복이 있는 곳으로 언젠가 들어갈 것이다. (4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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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oad Not Taken

-Robert Frost




Two roads diverged in a yellow wood,
And sorry I could not travel both
And be one traveler, long I stood
And looked down one as far as I could
To where it bent in the undergrowth;

Then took the other, as just as fair,
And having perhaps the better claim...
Oh, I kept the first for another day!
Yet knowing how way leads on to way,
I doubted if I should ever come back.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가지 못한 길

노랗게 물든 숲속의 두 갈래 길,
몸 하나로 두 길 갈 수 없어
아쉬운 마음으로 그곳에 서서
덤불 속으로 굽어든 한쪽 길을
끝까지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다른 쪽 길을 택하였다. 똑같이
아름답지만 그 길이 더 나을 법하기에.
아, 먼저 길은 나중에 가리라 생각했는데!
하지만 길은 또 다른 길로 이어지는 법.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먼먼 훗날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 쉬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어느 숲속에서 두 갈래 길 만나 나는 -
나는 사람이 적게 다닌 길을 택했노라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게 달라졌다고  ('축복' 98-99쪽)

 

 장영희 선생은 이 시를 번역할 때 왜 

 "가지 못한 길"로 하셨을까. 

 "가지 않은 길"이 더 맞을 듯한데... 

   

  이 책에 김점선 화가가 그려넣은 그림이 오늘따라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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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06-24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좋은 십니다^^

프레이야 2009-06-24 19:27   좋아요 0 | URL
흔히들 알고 있는 시이지만 오늘 아침 다시 읽어보며 전과는 다른 생각이 들었어요.^^

하늘바람 2009-06-24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를 처음 만났을 때 참 좋다 했어요
그땐 어려서 특별히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의미가 없었어요. 고등학교 때여서
하지만 살아갈 수록 점점
가지 못한 길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의미가 생겨나네요
수많은 길들이요

프레이야 2009-06-24 19:27   좋아요 0 | URL
살면서 점점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생각이 나네요.
왜 가지 않았을까. 용기가 없어서? 우물 안 개구리여서?

hnine 2009-06-24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번 보면 열번 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시 같아요.
오늘은 마지막 두 줄이 특히 눈에 들어오네요.
사람들이 많이 간 길을 택하는 사람이 있고, 적게 간 길에 끌리는 사람이 있고,
그것이 그 사람 일생에 많은 차이를 가져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요.

프레이야 2009-06-24 19:29   좋아요 0 | URL
마지막 두 행이 의미있지요.
사람들이 잘 가지 않은 길을 택한 사람, 그를 우린 영웅이라 부를 수도 있을까요.
소소한 의미로 봐도 그런 사람은 쉽지 않지요.

무해한모리군 2009-06-24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역시 마지막 두행이 오늘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네요.
많은 사람이 다닌 길을 선택해서 그런가..

프레이야 2009-06-24 19:30   좋아요 0 | URL
저도 많은 사람이 다닌 길을 아무 생각 없이 선택했던 것 같아요.
다시 살라면 좀 다르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또 어떨지 저 자신도 모를 일이죠.^^

비로그인 2009-06-24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뒤돌아보지 말자!가 모토랍니다. 단순(혹은 무식)하게, 씩씩하게!

프레이야 2009-06-24 19:30   좋아요 0 | URL
만치님!! 야호! 그거에요.
뒤돌아보면 소금기둥이 될거에요.
묵묵히 앞으로 가는 거에요, 우리.

2009-06-25 1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25 19: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9-06-26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지 않은 길이 아니라 가지 못한 길~~~을 하나라도 줄여봐야지요.
그래서 주말에 부산역으로 고고~~~ 알죠?^^

프레이야 2009-06-26 01:21   좋아요 0 | URL
에너지 오기언니~~~ 역시~~~
넘 좋아요. 대환영이야요!
뽀송이님에게도 낼 연락해보려구요.^^

향기 2009-06-26 0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좋아하는 두 사람 ㅎㅎ
프레이야님 페이퍼보고 저도 방금 질렀어요 ^ ^

프레이야 2009-06-27 08:47   좋아요 0 | URL
호호~ 마음에 쏙 드실거에요^^

꿈꾸는섬 2009-06-27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등학교때 이 시를 늘 품고 다녔었는데 시처럼 살고 있진 않네요.ㅎㅎ
하지만 아직 가야할 길이 남아 있는거죠?

프레이야 2009-06-27 08:48   좋아요 0 | URL
가야할 길이 보이지 않을때가 더 불행한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