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 展을 보고
<헤세의 예술>을 리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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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예술 - 예술은 영혼의 언어이다 ㅣ 헤르만 헤세 : 사랑, 예술 그리고 인생
헤르만 헤세 지음, 폴커 미켈스 엮음, 이재원 옮김 / 그책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2년 전 헤르만헤세展에서 보았던 오래된 수동타자기 생각이 난다. 헤세가 사용했던 것으로 유리상자 안에 전시되어 있었다. 이 책의 표지에도 수동 타자기 한 대가 덩그러니 그려져있다. 그 때 전시장에서 본 것과는 다른 것이지만 수동타자기 특유의 묘한 향수를 불러준다. 폴 오스터의 타자기 소리도 들리는 듯하다. 타닥타닥 타다닥.. 한 자 한 자 글자를 불러오며 자신만의 언어를 조합, 재생산해 내는 작업. 작가로 산다는 것, 나아가 예술가로 산다는 것, 그 정신의 근간을 읽을 수 있는 책이 <헤세의 예술>이다. 헤세가 그의 작품을 비롯해 지인과 나눈 편지, 독자와 아들, 비평이나 에세이 등에서 밝힌 예술관의 정수를 엮어서 나온 책이다. 엮은이 폴커 미헬스는 독문학을 가르치고 출판일을 하며 헤세 전집 20권을 최초로 발간했을 정도의 헤세 매니아인데 원래 전공은 의학과 심리학이다. 독특한 이력이다.
헤르만 헤세 Hermann Hesse는 독일의 시인이지 소설가이다. 나치에 비협조적이라는 이유로 매국노라는 지탄까지 받고 그는 스위스 국적을 딴다. 그의 글은 오랜 방황과 고통의 과정을 겪고 탄생된 것들이다. 기독교집안에서 태어나 신학교에 들어간 그는 모든 강제와 속박을 견디지 못하고 중퇴하고 이런저런 힘든 일들에 몸을 굴리고 자살 미수의 경험도 있다. 정신과적인 심리치료까지 받고 작가의 길로 들어서서 갱생한 그는 작가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사상가다운 면모를 보인다. 불행한 가정생활과 좋지 못한 건강에도 불구하고 40세에 시작한 수채화 그리기를 죽을 때까지 하며 그것으로 생의 기쁨에 매달렸다. 정원을 가꾸고 수채화를 그리는 깡마른 노년의 머리에는 밀짚모자가, 안경 너머 깊은 눈은 노인의 혜안으로 번득이는 것 같았다. <정원일의 즐거움>에서 본 인상이다. 헤세전에서 본 그의 정원 입구에는 '방문객 사절입니다'라는 푯말이 서있었는데 그게 참 인상적이었다. 수채화에도 사람을 일절 그리지 않아 사람에 대한 불신을 표현했듯이. 그런대도 자신의 내면으로 깊이 파고들며 흙과 꽃과 나비와 함께 하려는 노인의 얼굴이 오히려 넉넉해 보였다. 그때 전시장에서 헤세 수채화가 든 액자 두 개와 노벨문학상 수상작 <유리알 유희>를 사왔다.
이 책은 크게 다섯 장으로 나뉘어 헤세의 글귀를 모아둔다. 각 장마다 제목을 두었는데 내용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 예술의 정의 또는 기능과 가치, 예술가 정신, 작가 정신, 작가가 쓰는 언어의 중요성, 고독의 유희로서의 詩-시의 본질. 그는 이성과 감성, 지성과 열정, 온건과 강경한 태도에 있어서 균형 잡힌 저울을 지녔다는 생각이 드는 글귀들을 만날 수 있다.
첫째 장 [예술은 사랑과 위안이다] 에서 그는 예술에서 새로운 것을 환영하지만 '도덕적인 것, 즉 자신의 사명에 대한 인간의 태도에서는 유행과 개혁을 의심'스럽게 보았다. 그는 정신적인 작업을 '오직 가슴으로만' 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성이 개입되지 않은 예술은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다고 보았다. 특히 구체성에 천착할수록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것에 다가가게 되고 치열한 관찰력이 깊고 풍부한 이미지들을 보여준다는 아래 글귀가 마음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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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가 진실하고 솔직하려고 노력할수록, 그리고 단 한 번뿐이고 덧없는 것을 겸손하고 충실하게 모방하려고 하면 할수록 그의 작품에서는 영속적인 것이 표현되거나 예감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의 상반신을 더욱 충실하고 비슷하게 묘사하면 할수록, 다시 말해 덜 이상화하고 덜 일반화하면 할수록 그것은 그 묘사된 사람을 전혀 알지 못하는 관찰자에게 보편적인 것, 즉 인간 형제의 이미지, 살아있는 사람, 고통을 겪는 사람,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의 이미지를 더 많이 보여줍니다.
- 엘스 부허러에게 보낸 편지, 1931년 4월 17일 (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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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장 [예술가 정신]에서는 '문학의 정신'이라고 바꿔 말해도 되는 글귀들이 함께 있다. 그는 예술은 인류 전 역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과정이었던 승화의 과정으로 역할할 때 바람직하다고 밝힌다. 아니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단언한다. 자신에게도 승화란 '충동의 억압'이었다고 말하며 '인간이 상황에 따라 자신의 충동과 이기적인 것을 초월하고, 정신적이며 종교적이고 문화적인 목표에 봉사하도록 할 수 있다는 사실, 정신을 향한 헌신, 그리고 성자와 순교자들이 있다는 사실이 세계사에서 얻는 긍정적인 힘이라 했다. 그러나 예술가적인 충동과 기질은 억압되어서는 안 되고 고무받아야 하는 것으로 말한다. C.G. 융(헤세는 융의 제자에게 심리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어떤 재능있는 사람이 자기가 지닌 충동의 힘으로 예술을 발전시킬 때 나는 그의 실존과 행동이 최고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그가 어쩌면 개인으로서는 병적이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정신분석은 예술가들에게는 너무 어렵고 위험합니다." (89쪽) 더구나 완소 문장 하나, 감정, 부드러운 영혼의 떨림과 가벼운 흥분, 이것이 나의 지참금이며 그것을 가지고 나의 삶을 꾸려나가야 한다.(103쪽)
세째 장 [작가로 산다는 것]에서는 아래 글귀가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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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는 시대의 목표와 이상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천국이며, 저항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지옥이다. 작가가 자신의 소명에 충실하게 남아 있으려면 성공에 취한 세계에 동조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영혼의 종이고 대변자이며 기사인 것이 작가의 유일한 과제이므로 지금 이 세상에서 고독과 고통의 선고를 받은 것으로 스스로 생각할 수 있다. (중략) 이에 반해 책 읽는 부르주아가 사랑하는 '작가들'은 우글거린다. 이들은 재능과 미감으로 언제나 부르주아가 의도하는 이상과 목표에 따라 오늘은 전쟁을, 내일은 평화를 미화한다. 그러나 진정한 '작가' 중 많은 사람들은 지옥의 공간 속에서 침묵한 채 파멸해간다.
- <작가의 고백> 192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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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삶에 대한 눈과 귀를 결여한 사람이 작가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쓰며 삶의 경험을 풍부하게 하고 그것을 정확한 자신만의 표현으로 '아름다움이 아니라 진리를 얻으려고' 글을 쓰라고 권한다. 그러면 아름다움은 저절로 따라온다고. 문학이 어떤 목적에 봉사하지 않아야 하며, 개인의 기억을 드러냄으로써 고통의 해소보다는 고통의 강화를 위해 글을 쓰라고. 개성도 중요하지만 성실함과 책임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글귀들도 마음에 들어온다. 부단한 노력과 실천의 문제일 것이다.
네째 장 [언어의 마법]에서는 특히 이 글귀가 허를 찌른다. "언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는 것은 언어를 육성하는 것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가장 본질적인 것, 즉 진정으로 강하게 체험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여동생 마룰라에게 보낸 편지(1928년 11월)에서 읽혔다. 강렬한 체험, 온몸을 흔들고 파고드는 아찔한 체험. 그것은 기억의 혼란, 인식의 파격, 망상으로부터의 이탈이 이뤄지는 순간이 아닐까. 진정한 언어란 진정한 체험의 표현일 경우에 해당되는 것. 초개인적인 경험, 바늘로 바위를 뚫듯 천착해들어가는 강렬하고 섬세한 경험으로 가득 한 언어이어야 아름답다는 말이다.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망상(?) 아니 소망을 가져본다.
실제로 헤세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이 많다. 2년 전 헤세 전시장에서 그의 시가 음악으로 탄생한 오래된 LP재킷들을 보았다. 그는 시, 특히 서정시의 예찬을 이렇게 한다. 이것은 다섯 째 장 [시, 고독의 유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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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서정시는 개별적인 자아 속에 세계가 반영된 것이며, 세계에 대한 자아의 대답이며 탄식이고 숙고이자 완전하게 의식된 고독의 유희이다.
- 비평 <헤르만 헤세가 추천하다> 193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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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음악이며, 시란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려는 것'이고 '시 속에는 상당한 양의 독이 달라붙어 있는 경우가 많아, 그것은 고통을 유동적인 것으로 만들고, 고통은 매우 친절하게도 서투른 시행을 통해 흘러 나가 사라진다'고 썼다. 1896년, 그러니까 그의 나이 19세 때의 글귀이다. 시를 쓰며 고민과 방황을 했던 청춘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1938년에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는 詩作의 엄준한 책임감과 함께 고통의 작업이라는 의미가 읽히는 글귀가 있다. "전적으로 감정에서 우러나서 시를 쓴다는 것은 망상입니다......오히려 모든 것이 수많은 선택과 노동을 통해, 매우 엄격한 집중 속에서, 그리고 종종 기존의 법칙과 형식에 대한 극히 고통스러운 점검을 통해 써집니다." (194쪽)
1962년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예술가로서 작가로서 격동과 고난의 세월을 살아온 헤세를 짧은 글에서 두루 읽을 수 있다. 그는 예술가적 영감과 재능 못지않게 성실함과 책임감 그리고 부단한 연마로 형식을 가다듬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했다. 예술은 무엇보다 사랑과 위안이면서 내면을 파고들어 우주의 근원에 닿는 것이어야 한다. 이 책은 글을 쓰든, 음악을 하든, 그림을 그리든,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아가기로 한 사람들에게 영혼을 밝히는 아포리즘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