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누주드, 열살 이혼녀>를 리뷰해주세요
나 누주드, 열살 이혼녀
누주드 무함마드 알리.델핀 미누이 지음, 문은실 옮김 / 바다출판사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신이 만드신 자연은 아주 험하지.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신은 가장 강한 인간도 창조해 냈다는 말씀이지!” 열 살의 누주드가 결혼하여 살 오지 카르지의 집으로 가는 차, 그 차의 운전기사가 한 말이다. 카르지는 '세상의 저쪽 끝'이라는 뜻이다. 한껏 인생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할 소녀가 세상의 저쪽으로 밀려가는 암담한 여정에서 누주드는 그 말을 듣고 이렇게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가 맞다면 신은 나를 잊으신 거야.’

 누주드Nojoud가 틀렸다는 건 이 책을 통해 증명된다. 누주드는 누구도 쉽게 해낼 수 없는 일에 강인하고 담대한 용기를 가지고 뛰어들었다. 처음부터 어떤 사명감으로 행한 일이 아니라 자신의 자유와 행복을 찾기 위한, 살기 위한 일이었다. 열 살 이혼녀 누주드의 구술을 바탕으로 중동전문기자 델핀 미누이가 엮은 이 책은 누주드의 기억을 재구성하여 탄생하였다. 2008년 4월, 법원으로 뛰어들어가는 장면으로 시작하여 악몽같은 결혼생활의 기억까지 누주드의 가족과 그녀 자신의 경험을 전해 듣게 된다. 그녀가 본 이해할 수 없었던 더 어린시절의 일들, 가족들의 알 수 없던 일, 무서운 기억과 따뜻한 기억, 초등학교 친구 말라크 외에 누구에게도 말 못한 꿈과 소망. 그런 기억의 편린들이 실타래를 풀듯 풀려나온다. 이 책은 호기심 많고 질문이 많았던 한 소녀의 용기로 발아한 희망의 메시지이자 참담한 증언이다. 한편 이슬람 세계뿐만 아니라 서구사회의 반성을 촉구하고 오랜 관습과 종교적 계율에 대한 반기와 함께 근본적으로는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할 자유와 인권에 대한 각성제다. 

 예멘은 행복한 아라비아Arabia Felix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그것이 헛된 이름일 뿐이라는 건 책장을 넘기며 오래지않아 느끼게된다. 한 소녀가 회고하는 순수한 기억과 불순한 조짐들이 투명한 창을 통해 보이듯 선명하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비로소 누군가에게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누주드의 해방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누주드의 엄청난 일들은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현실이다. 누주드는 초등학교 2학년, 수학과 코란을 좋아하고 그림그리기를 특히 즐긴다. 책 속에 누주드가 그린 아이다운 그림이 몇 실려있다. 캔디와 초콜릿을 좋아하고 친구들과 밖에서 뛰어놀기를 더없이 좋아한다. 누주드의 꿈은 물과 닿아있다. 강이거나 바다. 특히 바다를 한 번 보는 게 소원이고 거북이가 되어 모래 속에 고개를 넣었다뺐다 해보면 재미있겠단 생각을 하는 순진하고 평범한, 그러나 총명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여성이다.

 엄마와 엄마의 엄마, 언니들이 거부하지 못하고 받아 들여왔던 그 모든 관습과 폭력, 남성중심의 명예- 샤라프(Sharaf)- 에 그녀는 강한 거부감을 갖고 그로부터 탈출을 감행한다. 그것은 목숨을 건 모험이었다. 남자들만을 위하는 계율에 반항하거나 불복종하면 가족과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해도 당연시되는 세상에서 그런 과감한 결단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혼을 원해요” 라고 법원의 판사 앞에서 소리쳤을 때 그녀는 이미 자신을 가두는 세상의 벽에 돌을 던져 자신을 억압하는 것들에 굴하지 않겠다는 뜻을 보였다. 그녀와 유사한 경험의, 아니 더 작은 나이의 소녀들에게 그녀의 이혼소송 승리는 전례없이 커다란 힘이 된다.

 남자들간의 계약으로 이루어진 급작스런 결혼은 누주드가 결혼이라고 하면 어렴풋이 상상했던 그 모든 화사한 꿈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축제와는 더욱 멀었다. 엄마가 입혀주는 니캅(기혼녀가 입는, 눈만 보이고 온몸을 덮는 길고 검은 옷)을 걸치고 머리를 틀어올리며 어른들의 세상, 더이상 꿈을 꿀 수도 없는 암흑의 세상으로 나아가는 자신을 상상한다. 그 잔인한 기운이 현실로 체감되는 순간 그녀는 세상에 혼자 내동댕이쳐진 공포감을 온몸으로 감당해야했다. 사춘기가 되기까지 잠자리를 하지 않겠다던 ‘괴물’(누주드는 남편을 이렇게 회상한다)의 말은 헛된 약속이었고 그녀는 폭행과 끔찍한 고통 속에서 두 달을 버텼다. 그녀의 영리한 작전으로 악마의 소굴에서 탈출을 감행하여 승소한 이 사건은 그동안 예멘의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을 가능하게 했다. 조혼방지법, 여성이 만 17세가 되기까지는 결혼하지 못한다는 법안이 의회에서 압도적인 표 차이로 통과되었던 것이다. 2009년 3월, 누주드가 이혼소송에서 승소한 후 11개월이 지난 후에 이루어진 일이다. 한 사람의 작은 영웅이 큰 일을 해낸 것이다. 기적 같은 일이다.

 오늘 예멘의 수도 사나에서 160명 가까이 되는 사람을 태운 여객기가 인도양에 추락한 뉴스가 들린다. 2주 전 쯤에는 자원봉사자로 예멘에 갔던 한국인 엄씨가 테러집단에 의해 희생되었던 불행한 사건이 있었다. 예멘의 최대 영문 일간지 예멘 타임즈는 최근 기고문을 통해, 인간은 범법을 행하지 않는 한 누구나 순결한 영혼을 갖고 있으며, 종교의 힘을 빌어 테러행위를 정당화하는 일부 단체들의 소행은 용납할 수 없는 일임을 강조하였다. 예멘 타임즈는, 이슬람 세계에서 "어느 한 개인을 이유 없이 죽이는 자는 인류 전체를 파멸하는 죄를 짓게 되며, 한 개인을 구원하는 자는 인류 전부를 구원하는 덕을 베푸는 행위를 한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하는 이슬람의 교리를 함께 역설했다. 누주드를 구원한 아름다운 여성 인권변호사 샤다, 예멘 타임즈 기자, 판사, 그리고 가엾은 두 번째 엄마 도올라. 그들은 진정한 이슬람 교리에 의한 덕을 베풀었다.

 그러나 예멘은 내게 이렇게 좋지 않은 뉴스로 기억된다. 아라비아의 남서쪽 모서리 사우디아라비아 아래쪽에 위치한 이 나라는 여성문맹율이 70%를 넘고 어린이 강간과 납치가 흔하며 영아사망율도 세계최고라고 한다. 벗어나기 힘든 도시빈민의 궁핍함 속에서 가족의 입을 덜고 강간을 피하고 부족 간의 모종의 거래와 평화를 위해 여자아이의 조혼이, 더구나 남자들의 선택과 결정으로만 이루어진다니 얼마나 놀랍고 암담한가.

 공화국 예멘은 아직 지역 족장의 힘이 강하고 까트(일종의 마약) 문화가 성행하는 나라다. 물을 많이 먹는 까트 재배가 물이 부족한 이 나라의 물을 더 말라가게 한다. 이 땅의 비극이라고 표현된다. 즐거움을 주는 것이 동시에 나쁜 짓이 되기도 한다는 걸 깨달은 누주드는 이미 세상에 눈을 크게 뜨고 사는 아이다. 이혼 후 그녀는 이전에 어렴풋이 느꼈지만 베일에 가려져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던 일련의 가족사와 가족들이 겪는 내면의 고통을 이해하기에 이른다. 누주드가 정신적인 풍요함과 유머를 겸비한 강인함을 지녔다는 점은 다음과 같은 말에서 드러난다.

   
 

꿈과 비교한다면, 현실은 때로 정말로 잔인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또한 아름다운 놀라움을 품고 있기도 합니다. 오늘 나는 ‘축제’라는 말의 의미를 비로소 이해했습니다. 만약 축제가 단 과자라면, 설탕이고, 비스킷이고, 안을 부드럽게 만든 쿠키일 것입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코코넛 사탕처럼 말입니다.

“이혼식, 결혼 가운데 정말로 가장 좋은 축제에요.” 커다란 곰 인형을 품에 끌어안으며 내가 말했습니다. (146-147쪽)

 
   

 

 실제로 태어난 날을 잘 모르는 누주드는 아마 여덟 살일 수도 아홉 살일 수도 있다고 한다. 이혼이 법적으로 성립된 날을 누주드는 생일로 맞이한다.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이혼 덕분에 나는 많은 일에 눈을 뜨게 되었고, 다른 사람들의 불행을 지금은 더 잘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169쪽) 이렇게 말하는 누주드는 미래에 자기처럼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을 돕는 변호사가 되기 위해 다시 학교에 간다. 똘망한 눈망울로 손을 번쩍 들고 발표를 하는 누주드(책뒷표지에 사진으로 있다)의 미래가 밝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이슬람교리를 어겼다는 이유로, 국제사회에 예멘의 나쁜 인상을 퍼트렸다는 이유로 그녀를 비난하는 세력이 있고 후원자로 나선 변호사 샤다 또한 위험으로부터 몸을 숨겨야하는 처지라 하니 안타깝다.  

  

 이들이 밝은 미래로 가는 길은 여전히 멀고 고난이 가득할 것만 같다. 그래도 국제 구호 단체인 옥스팜Oxfam은 예멘 남부에 문제의 심각성을 알릴 워크숍을 만들겠다고 압박하고 '법적인 결혼 가능 연령'에 대한 의식을 고양하며 ‘안전한 결혼 연령’이라는 말을 더 즐겨쓴다고 한다. 조혼의 위험성은 심리적인 트라우마, 잠자리에서의 치사율, 학교 중도 포기 등이다. 하지만 옥스팜의 임무 또한 위험성에 노출되어 있다. 지역 족장들의 입에 거론되어 표적이 되고 있다고 하니 누주드의 불투명한 미래가 안타깝기만 하다. 곱지않은 시선으로 보는 자들이 너무 많은 가운데 누주드의 용기있는 행동이 바람직한 혁명으로 이어지는 씨앗이 되길 기대한다.   

 

 



<2008년 올해의 여성에 선정된 누주드, 니캅을 벗은 소녀의 얼굴이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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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하늘 2009-07-02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저 안타깝다는 말 밖에는...
누주드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래요...

프레이야 2009-07-02 08:55   좋아요 0 | URL
하늘아래 저런 일도 있다는 게 놀랍지요.
같은하늘님의 바람처럼,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세상이 누주드에게 오면 좋겠어요.

카스피 2009-07-02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들이 신의 이름을 빌어 하는 만행이 이거 하나만은 아니지요 ㅜ.ㅜ

프레이야 2009-07-02 10:57   좋아요 0 | URL
너무 안타까운 일이에요. 종교적계율이나 저들이 말하는 명예라는 게
진정한 의미로 행해지고 있지 않으니..

비로그인 2009-07-02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신과 관습과 본능적 폭압과 이념과.. 기타등등이
여전히 사람들의 삶을 억압하고 파괴하는 것 같습니다.

인권에 관한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지구상 모든 곳에 통용되기를..
누주드와 같은 아이들이 아이다운 삶을 살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프레이야 2009-07-02 23:42   좋아요 0 | URL
어떤 것이든 폭압적인 건 견디기 어려울 것 같아요.
아이다운 삶, 그게 허용되지 않는다니 정말 안타까운 내용이었어요.

라로 2009-07-02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남편과 메신저 끝내고 컴을 끄려다 혹시 리뷰를 을라나 하면서 보고 추천만 누르고 잤는데 지금 읽어보니 참 뭐라 말하기 그렇네요,,,,세상에나,,,,,

프레이야 2009-07-02 23:43   좋아요 0 | URL
추천 ㅎㅎ
메신저는 날마다 잘 하고 있군요. 역시 최강 다정한 커플이야요.
정말 끔찍한 일이 세상에.. 말에요.

꿈꾸는섬 2009-07-03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이런 일이...네요.
누주드의 용감한 행동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이런 아름다운 이혼식은 꼭 이루어져야해요.
리뷰를 보는 내 속이 다 아프기도 하고 후련하기도 하고 그러네요. 실제로 보면 너무 안타까워서 못 볼 것 같아요.

프레이야 2009-07-03 01:34   좋아요 0 | URL
그 어린 아이가 당했을 고통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요.
담담하게 적혀있지만 구술할 때 다시한번 상기되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순오기 2009-07-04 0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호~ 베스트 특종이네요. 축하~~ ^^

이슬람 문화권에서 여자들이 겪는 고통을 다룬 소설로 여럿 있더라고요.
이런 천인공노할 만행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니~ 누주드같은 용기있는 여성들이 많이 나와야 돼요.

프레이야 2009-07-05 13:34   좋아요 0 | URL
헤헤 고맙슴다.^^
어린 여자아이가 정말 용기를 발휘했어요. 진정 살기위해서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