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의 사랑>을 리뷰해주세요
헤세의 사랑 - 사랑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헤르만 헤세 : 사랑, 예술 그리고 인생
헤르만 헤세 지음, 폴커 미켈스 엮음, 이재원 옮김 / 그책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헤르만 헤세는 자신을 시인이고 화가이며 정원사라고 불렀다. 그는 비평가들에게 오직 들의 범신론자, 숲의 범신론자, 초원의 범신론자로 불리길 원했다. 헤세의 예술이 인생과 문학의 정신을 노래했듯 헤세의 사랑은 범신론적인 사랑의 노래다. 머무르지 않고 부드럽게 흐르는 사랑, 감성과 지성이 조화로운 사랑, 고난을 승화하고 피어난 깊고 넓은 사랑이다. 그에 의하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데서 출발한 사랑은 자신과 하나인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발전한다. 이것이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하는 이유다. 이웃을 먼저 사랑하라는 '계율'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 말한다. 자기혐오증은 지독한 이기주의의 다른 말이고 그것은 삶을, 사람을, 예술을 사랑하지 못하는 끔찍한 병증으로 발전할 우려가 있어 보인다.  

어느 종교에 얽매이지 않고 어느 프레임에도 갖히지 않은 그는 자유혼과 예술혼을 억압하는 어떠한 것에도 굴하지 않았다. 우울증과 자살충동을 시를 쓰며 견딘 청춘의 시절을 거쳐 불운한 결혼 생활과 아들의 죽음, 사랑과 결혼의 실패와 극복 등, 그림을 그리며 그 모든 고뇌를 승화시킨 그의 성숙된 인생관을 엿볼 수 있는 글들이 <헤세의 사랑>에 묶여있다. 아홉살 연상의 여인과의 첫 결혼생활에서 느낀 어려움을 적은 짧은 글과 스무살 연하의 여인과 두번째로 결혼하여 짧은 인연을 끝낸, 나이 많은 남자로서의 자책이 담긴 솔직한 글이 좀더 인간적으로 읽혔다. 그 외에도 곳곳에서 생의 균형감각을 잃지 않으려는 그의 글들은, 짧게 모아두었지만 충분히 그의 인생관을 드러내어주는 소중한 글귀들이다.

<헤세의 예술>처럼 이 책에도 헤세의 시 몇 수가 들어있다. 음악을 '예술의 영혼'이라고 부른 그는 대위법에 심취하여 스스로 건축에 비유한 고전음악을 흠모했다. 그의 시는 다분히 음악적이다. 그것은 내면의 음률과 유희정신으로서의 희열을 잃지않고 있다. 모자라는 시라도 훌륭한 작곡이 살려준다고 생각한 그의 시가 실제로 음악으로 탄생한 것들이 많다. 문학도 음악에 '속'하는 것으로 본 듯한 그의, 음악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글들이 별도의 꼭지로 이 책에 모여있다. '음악, 심오한 치유의 마술'이라는 장을 별도로 하여둔 것이 눈에 띈다. 헤세의 사랑에는 음악 즉 예술의 영혼이 크게 자리했던 것이다. 또한 삶을, 사람을, 예술을 사랑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노련한 생의 지혜, 즉 무엇보다 우선인 유머의 가치에 대해서는 '명랑함은 사랑 속에 있다'라는 장을 마련하여 말한다. 인생 후반에 얻을 수 있는 혜안이었다. 삶을 얼마나 진지한 명랑함을 유지하며 사랑하려했는지 느낄 수 있다.  

첫장 '인생은 사랑으로 의미를 가지리'에서 읽을 수 있는 헤세의 사랑은 육체와 정신의 조화와 참사랑에 대한 진정어린 고백이다. 그는 사랑을 욕망하고 사랑의 능력에 헌신하기를 동경했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서 인용한 글에서는 우정의 에로스적 측면을 보여줘 산도르 마라이의 글귀 '모든 관계에는 에로스가 들어있다'가 떠오른다. 그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변질되거나 왜곡되는 감정을 경계한다. - '사랑과 욕망은 똑같은 것이 아니다. 사랑은 현명해진 욕망으로서, 사랑은 소유하려 하지 않고 그저 사랑하려고 할 뿐이다.'(20쪽) - 이는 1918년 아들 마르틴의 일기 중에서 나온 글귀다. 아들과 서신으로 주고받았을 시적인 글귀들이 여기 실린 것 이외에도 얼마나 많았을까. 예술혼을 좀 먹는 결혼생활에 대한 회의가 엿보이는 글귀도 있지만 아버지로서 아들과 나눈 대화를 상상해보면 멋지지 않은가. 또 아래 글은 위트가 느껴진다. 

사람들이 아무리 다른 이유를 내세운다고 해도 인생에서 가장 많은 것은 오로지 여자 때문에 하게 된다. 

- <빈둥거린 날> 1926년 

사랑과 예술의 동질성에 대한 통찰이 엿보이는 글도 마음에 들어온다. 예술에서도 개성을 존중한 그는 '개성 없이는 사랑이, 정말로 깊은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것을 모방하고 위조할 수 있지만 사랑만은 그럴 수가 없다. 사랑은 훔칠 수 없으며 모방할 수 없다. 사랑은 오직 자신을 완전히 줄 줄 아는 마음속에서만 산다. 그것은 모든 예술의 원천이다. 

- 비평 <호들러의 작품> 1915년 7월 

그가 삶을 얼마나 사랑하고 애정으로 정원일을 하듯 아꼈는가는 셋째 장 '행복이란'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는 타고난 방랑감각을 사랑했고 진정한 방랑자로서 살아가길 원했다. 방랑자는 모든 즐거움이 덧없다는 것, 한 때뿐이라는 걸 알기에 잃어버린 것을 오래 바라보고 있지 않고, 좋다고 생각한 그곳에 바로 뿌리내리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고요하며 진지하게 즐거운, 그리고 언제나 작별을 고할 수 있는 방랑 감각"을 예찬한다. 그는 자신을 '불성실과 변화와 환상의 숭배자'라고 칭하고 사랑도 고여있는 물이 되지 않도록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우리의 사랑이 고착되고 성실과 미덕이 될 때, 그것은 내게 의심스러운 것이 된다."(방랑 1918/19, 55쪽)  이는 '사랑할 때 가능한 것들'이란 장에 실려있는 글귀다.  

헤세의 사랑은 헤세의 행복과 동행할 수밖에 없다. 그의 행복론은 '삶이 우리에게 주는 것을 거부하지 않고 삶이 허용하지 않는 것은 바라지 않는, 삶의 기술'이다. 에리히 프롬이 자기애에서 출발하여 형제애를 거쳐 박애까지 다양한 사랑의 기술을 통찰했듯 그는 행복과 사랑의 기술을 말하며 결국 "삶의 기술"을 말한다. 그의 글을 보면 삶의 풍요는 영혼의 풍요에서 오는 것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가 육체의 행복을 간과한 것은 아니다.)   

무의식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욕망과 죄의식을 건져올려 우리 의식 내에서 영혼의 교류가 생겨나야 건강하고 행복한 영혼의 체험을 할 수 있다는 글귀는 인상적이다. 고여있는 물은 썩기 쉽고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고 하던가. '너의 존재를 작고 깊은 호수라고 상상해 보라. 표면은 의식이다.'로 시작하는 문장인데, 삶을 비유적으로 보듯, 이 또한 비유적인 표현으로 사유의 깊이가 그윽하다.  

(중략)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한 번도 밝은 표면으로 나오지 못하고 아래에서 썩어가고 고통스러워하는 수천수만 가지 것들을 자기 안에 품고 있다. 썩어가고 고통을 당한다는 이유로 그것들은 계속해서 영혼에 의해 거부당하며 의심과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이것이 모든 도덕의 의미이다. - 해롭다고 인식된 것은 위로 올라와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해롭지도 이롭지도 않은 것이다. 모든 인간은 자기 안에 자신의 것이지만 위로 올라와서는 안 되는 것들을 지니고 있다. 그것들이 위로 올라오게 되면 불행이 있을 것이라고 도덕은 말한다. 그러나 아마도 행복이 있을 것이다!  

- <묵상> 1918/1919년 

   

이 책에는 새기고 싶고 다시 여러번 생각하게 하는 글귀들이 많다. 아무 장이나 펼쳐 읽어도 좋고 아무 데서나 펼쳐 읽어도 좋다. 하드커버이지만 책의 크기는 작고 가벼워 가방안에 넣어다니기도 좋다. 한두 줄의 글귀에도 잔잔한 감동이 오고 대가의 깊은 눈과 귀와 입이 느껴진다. 사랑은 성숙된 인간의 이상이다,라는 글귀 또한 반전정신과 관련하여 그 모든 불화와 갈등에 대한 해답으로 읽힌다.

이 책의 표지에 부제가 이렇게 씌어있다. '사랑하는 사람은 행복하다.'라고. 정말 그럴까. 그렇다면 사랑함으로 인해 치러야하는 슬픔과 괴로움과 외로움 또한 더 높은 가치를 위한 것으로 승화시키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사랑의 열정이 살아있다면 그것이 세상의 고귀한 일에 쓰임으로서 사랑의 가치가 드높아진다는 내용의 글귀가 오래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우리가 흔히 말하듯, 행복이 정말 삶의 목표일까. 행복하기 위해 산다면, 다음 글귀는 행복이라는 철없는 꽃송이 앞에서 또 우리를 얼마나 겸손하게 하는가.  

인간은 행복에 대한 갈망으로 가득 차 있지만 행복을 오랫동안 견디지는 못합니다.  

- 1946년의 신년인사 

불행은 우리가 그것을 긍정함으로써 행복이 된다. 

- <귀스타브 플로베르와 조르주 상드의 서신 교환>에 대한 비평 1919년 11월   

 

 덧 : 표지를 떼어버리면 훨씬 좋다. 자주색 하드커버에 세밀화로 그린 식물 한 가지가 흑백으로 그려져 있다. 저 위의 표지를 걷어내면 보인다. <헤세의예술>도 마찬가지로 표지를 걷어내면 파란 바탕에 흑백으로 그린 수동타자기가 보이는데 그게 훨씬 마음에 든다. 표지그림이 소중한 글귀에 비해 값싸보였기 때문이다. 오자가 하나 있는 것도 조금 걸린다. 그럼에도 별 다섯을 주고 싶은 책이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9-07-07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단 도서로 별 다섯개 짜리 책을 받으시다니 좋으시겠구만요. 생각할거리를 많이 주는 책이네요.
아프지말고 병원 다녀오세요..

프레이야 2009-07-07 09:30   좋아요 0 | URL
만치님 여기 오늘 장맛비 퍼붓고 있어요. 빗소리가 시원해요.
병원 좀 있다 가봐야겠어요. 흑흑..

2009-07-07 1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9-07-07 19:13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비로그인 2009-07-07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생에서 가장 많은 것은 오로지 여자 때문에 하게 된다.
맞아요.. 하하


프레이야 2009-07-07 19:13   좋아요 0 | URL
한사님도 동감하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