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김훈이 감동을 주는 법은 늘 이렇다. 이래서 그를 밀쳐낼 수 없다. 철저하게 비정하게, 혹은 비장하게 읽히다가 책장을 덮는 순간 역시 로맨티스트다운, 서늘한 풍경을 그려주는 방식. 몇번인가 책장을 그냥 덮을까, 하기도 하고 어느 지점에선 먹먹해서 문장을 붙들고 앞뒤로 왔다갔다 머뭇거리기도 하고, 단문들로 빠르게 치고 나가는 문장들을 헤집고 나아가는 일이 그닥 고된 일도 아닐텐데 꽤 더디게 읽혔다. 추상적인 단어와 관념속의 어떤 이미지들이 치고 들어왔다가 또 치고 나가는 걸 반복하는 과정에서 성웅 이순신보다 전쟁터에 나가있는 한 사람이 도드라졌다. 바다이거나 육지, 그 전쟁터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역사적 배경을 초월하여, 시공을 초월한 우리 삶의 보편적 공허함 속에 건재해 있다.  

그 공허함이 부정적인 것일까, 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시비를 가릴 수 없는 저 너머의 지점에 서서 미성숙한 나를 그윽히 바라보며 미소짓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긍정적이어서 오히려 섬뜩하다. 신의 눈길이 그와 비슷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건 그저 안고 가야할 숙명과도 같은, 생을 사는 목숨의 권리에 대한 부채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외롭게 견뎌야할 폭염과도 같다. 폭염이 연일 육신을 누르고 정신마저 지치게 하는 즈음, 그것은 생의 그렇게나 대단한 폭염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것이 생에 마지막 폭염이라 생각하고 살라는 누군가의 말이 생각났다.  

<칼의 노래>는 우리 삶의 무수한 적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온갖 냄새가 창궐하는 전장에서 죽음을 맞는 법에 대한 고찰이다. 적들은 전체적으로 밀려오고, 실체가 없다. 개별적으로 닥쳐올 때마저도 그것은 하나의 전체로서 압박한다. 보이지만 잡히지 않는, 어쩌면 실재하지 않는지도 모르는 것에 무엇을 걸었던지 모르겠다. 오늘도 내 것이 아닌 오욕칠정의 감정들을 부여잡고 번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적들도 '나'가 대적할 대상이 애초에 아닌지도 모른다. 내 것이 아니라면 그냥 놓아버리면 그만인 것을, 미련하게도. '나'를 경멸하고 조롱하는 적들, '나'에게 불친절하고 '나'를 오역하는 세상의 모든 적들, '나'의 총체적인 반군들에게 취할 수 있는 자세가 무엇인가.  

글벗과 저녁을 먹고 매미소리 들으며 평상에 앉아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한달을 살고 죽음을 맞을 매미 - 수매미 - 는 그악스레 울어댔다. 그리 울어대면 장렬한 죽음이 되려나. 한 달 전에 지리산에서 홀로 죽음을 맞았다는 우리 또래 여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의 적은 온몸에 퍼진 암세포였다. 죽음의 방식을 일부 선택한 여인의 이야기가 이순신이 선택한 자연사와 겹쳐졌다. 순간, 그악스레 사는 법을 모르고 아직도 꿈을 꾸고 사는 어줍잖은 나는 그녀가 '얼마나 외로웠을까'를 말했다. 연이어 내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속해 있을 공간에 대해서도 말했다. 아름다운 도시, 아니면 사랑하는 자, 그러니까 적의 품? 지금 살아온만큼의 세월을 앞으로 더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장수시대가 끔찍하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지금부터 무언가 새로운 걸 시작해도 늦지 않다는 말이 된다. 물론 건강이 유지되어야 그것도 가능한 일이다. 실버타운으로 들어가는 날을 벌써 이야기하는 건 어리석다할지 모르지만 그런 걸 대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보장이 없는 시대다. 그러나 나는 현명하지 못하여 현실적인 걸 대비할 줄 모른다. 그냥 적들과 부대끼며 자연사할 것이다. 그정도면 족하다. 장기는 기증할 것이다.  

적은 무수하다. 질병, 배신, 절망, 증오, 죽음...... 그리고 사랑.  
김훈은 책머리에서 사랑은 불가능에 대한 사랑일 뿐이라고 밝혔다. 그러니 적의 이름은 '불가능'이다. 

"사랑이여 아득한 적이여, 너의 모든 생명의 함대는 바람 불고 물결 높은 날,  내 마지막 바다 노량으로 오라. 오라, 내 거기서 한줄기 일자진으로 적을 맞으리. "  

우리가 희망을 걸고 꿈을 꾸는 것들은 생에 최대의 적이다. 그것들은 늘 절망을 안겨주고 잠시나마 비상하던 꿈을 깨게하여 진흙탕에 구르게 한다. 비루한 우리들은 오늘도 꿈을 꾸었고 또 깼다. 내일은 내일의 꿈을 꿀 수도 있겠지만 그것들은 늘 약속을 어기고 절망을 또 심어줄 것이다. 가치는 혼돈을 정의는 오류를 몰고온다. 절박하다. 그 오류와 모순이 최대의 적이다. 김훈은 절박한 오류를 안고 홀로 살겠다고 선언했다, 책머리에.  

그러나 나는 적이 애초에 없었듯 사랑도 애초에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신기루에 불과한, 또는 제멋대로 모양을 바꿔 흐르는 구름떼와 같은 것. 사랑은 그런 게 아니다. "불가능에 대한 사랑", 적은 그런 게 아니다. 살기등등한 적 앞에서 "고착은 곧 죽음(58쪽)"이다. 이순신은 전쟁터에서 적의 화살에 죽는 것이 자연사라고 확신한다. 1인칭 화자 김훈의 언사이지만, <칼의 노래>는 두 인물간의 감정이입과 거리두기가 꽤 적절하다. <칼의 노래>는 '칼의 울음'으로 시작하여 '들리지 않는 사랑노래'로 맺는다. 후자는 다소 김훈답지 않은 소제목인가. 김훈 작품의 매력은 냉소와 절망으로 일관하는 듯하다가 세상끝에서 발하는 처절한 희망으로 치닫게하는 기운이다. 게다가 그는 현실주의자처럼 보이지만 낭만주의자의 밑얼굴을 감추지 못한다.

   
 

삶은 집중 속에 있는 것도 아니고 분산 속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모르기는 하되, 삶은 그 전환 속에 있을 것이었다. 개별적인 살기들을 눈보라처럼 휘날리며 달려드는 적 앞에서 고착은 곧 죽음이었다. 달려드는 적 앞에서 나의 함대는 수없이 진을 바꾸어가며 펼치고 오므렸고 모이고 흩어졌다. 대장선이 후미에 있을 때 이물 너머로 바라보면 함대는 적과 마주잡고 쉴새없이 너울거리며 춤을 추는 무도자처럼 보였다. 

나를 이동시키면서 고정된 적을 조준하는 일은 어려웠고 나를 고정시키고 이동하는 적을 조준하기도 어려웠다. 나를 이동시키면서 이동하는 적을 조준하기는 더욱 어려웠으나, 모든 유효한 조준은 이동과 이동 사이에서만 이루어졌다. 내가 적을 조준하는 자리는 적이 나를 조준하는 표적이었다.(58- 59쪽)

 
   

 

학익진을 펼치며 적과의 춤을 추는 이순신을 그려본다. 춤을 추듯 생을 산다면 죽음도 그러한 것이 될 수 있을까. 그러나 다시, 결국 칼로 베어지지 않는 아득한 적을 '내 마지막 바다'로 불러 한줄기 일자진으로 맞이하려는 그를 그려본다. 명과 왜의 협약으로 퇴진하는 왜군을 공을 세우는 기회로 삼지않은 장군이 아니었더라면 임진왜란이 끝나고 경상도땅 정도는 왜의 손에 들어갔을 수 있다고 한다. 현명하기보다 무모하기, 두려움 앞에 두려움 그 자체로 나서기. 적의 칼에 베어져도 전쟁터에 '속하여' 맞는 자연사를 꿈꾸는 그는 어쩌면 적을 가장 사랑한 사람, 주어진 올무의 삶을 누구보다 사랑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나는 지금 나의 전쟁터에 제대로 '속해' 있는가.   

"오사카의 영화여, 꿈속의 꿈이려니." -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검명과 이순신의 그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적 속에 내가 속해 있는 것이다. 만개한 꽃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적들도 한갖 꿈속의 꿈이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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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ng 2010-07-30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가장 밑바닥에서 시작해서 형이상학을 치고 오르는 느낌. 그리고 처절한 외로움. 몇 번을 읽어도 아직까지 잘 정리가 안 되는 것 같습니다.

프레이야 2010-07-30 10:41   좋아요 0 | URL
그의 문장은 처음과 두번째의 느낌이 다른 것 같아요.
결말 부분에서 그 처절한 외로움이 더욱 강하더군요.
삶도 죽음도 결국 홀로 감당해야하는 것이겠지요.

마녀고양이 2010-07-30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끈질기게 대항하는 죽음을 맞고 싶지 않아요. 그건 모든 이의 소원일까요?
너무너무 끈질겨서, 길게 늘어지는, 너무 처절한 그런 죽음은 싫어요.

언니.... 날두 더운데,, 너무 난해해염~ 아하하

프레이야 2010-07-30 10:42   좋아요 0 | URL
매미소리 짜르르~해요, 아침부터.
날도 더운데 그냥 난해하게 이럴 거 없이 단순하게 살까요?
아웅~~ㅎㅎ

비로그인 2010-07-30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 훈은 사람도 문장도 강한 그 마초성?에 괜히 저항감을 느끼게돼요. 그 문장의 힘에 혹하면서도 모음 수필집말고 실제로 소설을 읽은 적은 한번도 없다는.. 그러나 안 읽고 있기엔 아까운 작가겠지요?

프레이야 2010-07-30 20:06   좋아요 0 | URL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지만 언뜻언뜻 보이는 여성성에 오히려
연민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생리에 대한 묘사는 경험해보지도 않은
그가 어찌 그리 더 세세할까요. 자료를 보고 썼다고 하지만 말에요.
내치기엔 매력이 심한..ㅋ
만치님, 더워서 어찌 지내나요?

stella.K 2010-07-30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 이 책을 읽고 리뷰를 안 썼던 기억이 나네요.
이야기의 배경 보단 실존에 더 많은 촛점을 두고 썼다는 생각이 드는데,
리뷰를 어떻게 써야할지 난감하더군요. 그땐 서재질 초기이기도 해서
리뷰를 쓰는 것 자체가 익숙하지도 않았지요.
다시 읽으면 써 지려나?
공무도하를 읽겠다고 하곤 여태 못 읽고 있습니다요.ㅜ

프레이야 2010-07-30 19:59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그리 생각했어요. 실존에 대한 소설.
공무도하, 읽으시면 괜찮다 느끼실 거에요.^^

순오기 2010-07-30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번을 읽었어도 세월이 흐르니 느낌만 남아 있지, 구체적인 감상은 가물가물해요.
김훈은 정말, 이순신과 난중일기의 문장을 사랑했지요.

프레이야 2010-07-30 20:00   좋아요 0 | URL
김훈의 문장은 두번 읽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전 두번 읽진 않았지만 두번 읽으면 확실히 명징할 거 같구요.

hnine 2010-07-30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번에도 우연이 아니었나봐요. 이번에도 김 훈의 글과 프레이야님의 글을 구분 못하며 읽었어요.
'사랑'도 '적 (敵)'이라 함은, 사랑이 곧 집착일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냉소와 절망으로 일관한 것 같으면서 드러내는 낭만주의자의 얼굴이라, 훌륭한 리뷰입니다.

프레이야 2010-07-30 20:05   좋아요 0 | URL
네, 저는 김훈이 참 낭만적이구나, 생각들어요.
결국 그의 그런 면모가 훨씬 현실적인 게 아닐까 싶구요, 역설적으로.
문장을 조금 수정했어요. 감정이입이 다소 심했던지요.^^
 

회원신청도서라 어딘가에서 어서 듣고 싶어 기다리고 있는 사람을 위해 되도록 빨리 마쳐주고 싶었다.  어제 제1권을 끝내고 2권으로 들어갔다. 1권에서도 마음에 새겨두고 싶은 글귀가 너무나 많았는데 2권의 시작도 마찬가지다. 사이사이에 유머러스한 일화를 소개하며 라즈니쉬는 자신의 이야기를 쉽게 전한다.  

이 책을 읽으며 특히 어떠한 단어가 갖는 진지한 의미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게 되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지향해야할 것 중, 행복이 아니라 '지복', 심각함이 아니라 '진지함', 다원성이 아니라 일원성 즉 '전체성'. 신이 우리에게 육신을 준 것은 물질주의자가 되라는 것이고 영혼을 준 것은 정신주의자가 되라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어느 하나가 되어서도 안 되고 그럴 수도 없다. 단지 어떤 일을 해도 깨어있는 의식으로 행할 때 무목적성으로 나아가는 현자의 길을 간다고 한다.  바보와 현자의 공통점은 모두 목적없이 행한다는 사실이지만 깨어있거나 그렇지 않거나의 차이점이 있다는 것. 난 지금 깨어있는 것일까, 미몽 속을 헤매고 있는 것일까.   

 

   
 

삶은 매 순간 변한다. 진실로 깨어 있는 사람은 매 순간에 감응한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감응한다. 그는 어떠한 편견도 지니지 않는다. 머릿속에 과거를 저장하고 다니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투명한 거울이 된다. 그리고 그 상황을 통해 행동할 것이다. 그는 감응하는(responsive) 사람이 된다. 이것이 '책임(responsible)'이라는 단어의 의미다. 

나에 따르면 감응하는 사람이 도덕적인 사람이다. 그러나 세상에서 소위 도덕적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감응할 줄 모른다. 

책임(responsibility)이 도덕성보다 더 근본적이다. 이 'responsibility'라는 말에 의해 나는 현재 순간에 감응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나는 이미 마련된 형식이나 그 동안 축적된 선입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행동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순간에 감응할 때 그 행동은 그대를 자유롭게 한다. 이 때 그대의 행동은 항상 선하고 항상 적합하다.  (피타고라스 강론 II, 40쪽, 계몽사 오쇼 라즈나쉬 사상 선집 8)

 
   

 

 

1953년, 21세에 깨달음을 얻은 라즈니쉬의 명상을 따라갈 순 없지만 참으로 지혜로운 이야기들이라 녹음 내내 느껍다. 나같이 아둔한 사람은, 읽을 때만이라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구절들을 따라 좀 지혜로워지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라즈니쉬의 제자이며 인도 푸니에 살고 있는 손민규의 번역도 낭독하기에 참 좋다. 번역 문장이 짧고 간결하여 숨을 고르게 하여 읽을 수 있고 내용이 명확하게 전달되는 이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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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5 0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0-07-25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쉽게 받아들일 수 있으면서 울림이 크죠, 라즈니쉬는?!

후애(厚愛) 2010-07-25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서재에 놀러오세요~
<캡쳐 이벤트>하거든요.ㅎㅎ

blanca 2010-07-25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응하는 사람이 책임 있는 사람이다...아아 명심할래요. 그 동안 축적된 선입견에 행동하는 중이었는데 정신이 번쩍 깨입니다. 고마워요. 프레이야님`

프레이야 2010-07-26 01:31   좋아요 0 | URL
책에선 마호메드와 이슬람교리 중 일부다처제를 언급하더군요.
과거의 상황과 현재의 상황, 시대의 요구에 유연하게 감응하며
대처하는 지혜를 말하더군요. 축적된 선입견은 자기중심적으로
쌓이고 시대정신에 감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거 같아요.
블랑카님 고마워요.^^

마녀고양이 2010-07-25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편견이 없이 사는....... 정말 정말 제게 필요한 말이랍니다.
저는 너무 쉽게 평가를 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평가라는 자체를
없애야 하는데 말입니다. 사람이나 세상은 한단어, 한문장으로 정의할 수 없는데 말입니다.
그져...... 프야 언니. ^^
 
미식견문록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세계음식기행 지식여행자 6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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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영화 ‘카핑 베토벤’ 속 베토벤은 ‘내 영혼은 창자에 있다’고 말했다. 이 말에 담긴 영감을 표현할 예술적 영감이 떠오르진 않는다. 이순신이 ‘나의 애를 끊나니’라고 읊었던 절절함 그 너머의 근원성을 떠올릴 수 있는 정도다. 그것도 관념으로만. 사랑스러운 요네하라 마리 여사는 미국에 사는 두 러시아 망명자의 저서 [망명 러시아 요리]의 구절을 인용해 ‘고향에서 뻗어 나온 가장 질긴 끈은 영혼에 닿아 있다. 아니, 위(胃)에 닿아 있다’ 했다. 애국심이나 민족혼 따위는 2,3순위가 된다. 그녀에게 영혼은 위(胃)에 있는 셈이다. 그녀의 말대로, 아니 망향의 한에 몸부림친 그 두 명의 망명자 말대로 ‘이렇게 되면 끈이 아니라 밧줄이요, 억센 동아줄’이다. 고향, 생명이 뿌리 내렸던 아련한 원초적 그리움의 그곳은 감각의 기억과 굳게 연결되어있다. 내가 알든 모르든, 인정하든 안 하든. 

사실 후각이 좀더 원초적일 거라 생각했다. 미각은 후각과 샴쌍둥이 정도 될까. 나같은 몽상가 타입은 맛에도 이상을 그려두기 쉽다. 이래야한다 저래야한다 등등. 실상은 현실에 뿌리내리는 일에 서투른 나는 맛에 대한 이상향이 있지도 않고 내 미각의 고향으로 내세울 수 있는 것도 뚜렷이 기억나지 않는다. 웅숭깊고 뜨듯한 아랫목 같던, 외할머니의 진한 된장찌개 정도? 마리 여사의 표현을 빌자면, 나도 새로운 음식에 열린 미각을 가진 혁신주의자도 아니고 새로운 음식에 미각을 닫아거는 보수주의자도 아니다. 그렇다고 살기 위해 먹는 비관주의자도 아니고 먹기 위해 산다는 낙천적인 족속도 못 된다. 유머감각이 뛰어난 마리 여사의 표현대로 대개의 우리는 살기 위해 먹는 사람과 먹기 위해 사는 사람의 중간 어디쯤에 걸쳐서 살게 마련이지 않나.

아직은 몸에 좋다는 음식보다 혀에 좋은 음식에 더 당기는 나는 그래도 둔하지 않은 혀와 약하지 않은 위를 가졌다고 자만하고 있다. 그렇다고해서 내 혀가 타인에게 반감을 줄 정도로 까다롭지는 않은 것 같은데 몇가지 못 먹는 음식 앞에서 고개를 젓는 나를 가끔 까탈스럽게 보니 그것도 좀 우스운 일이다. 편견은 발이 빠르다 했지만 발 빠른 편견이 또 틀리지 않은 경우도 많으니 뭐라 부정할 수도 없는 일. 그렇다해도 미각을 포함해 모든 감각은 주관적이고 개별적이니 강요하지 마시길. 아무튼 미식가의 대열에 끼지도 못하는 나는 ‘미식견문록’이라는 다소 거창한 제목의 이 책을 내가 원해서 벗에게 선물로 받았었다. (나비님 고마워요)

보드카병 뒤로 돔형의 사원 지붕이 마치 술병의 뚜껑처럼 보이는 하얀색 표지, 어려서부터 공산당원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체코와 프라하에서 살았던 작가의 유년시절 에피소드를 비롯해 러시아어 동시통역사로서 일하며 체험했던 갖가지 일화, 음식에 얽힌 크고 작은 역사와 그 배경에 덧붙인 뼈있는 한 마디들이 술술 읽힌다. 서곡으로 시작해 총 3악장과 그 사이 휴식과 간주곡, 이렇게 음악의 악장 형식으로 글들을 묶어둔 것도 즐거움을 준다. 작은 것이 작은 게 아니란 건 다들 아실테지. '처음 구운 핫케이크에는 멍울이 생기기 쉽다'는 등 두루 인용되는 인상깊은 러시아 속담들과 ‘커다란 순무’등 친숙한 동화와 우화들, 음식과 심리의 배경에 대한 추적 뒤의 독특한 해석, 역사적 사건에 대한 해박함, 그리고 통념의 반전과 의외의 결론이 주는 재미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재미에 비하면 아주아주 조금 못할 뿐이다.

미식가라기보다 대식가라고 자처하는 마리 여사는 미각으로 새겨진 과거의 기억을 오랜 세월이 지난 시점에서 혀 끝에 떠올리며 그 이면에 숨어있던 맛을 곱씹는다. 대개는 사람의 본성과 생의 이면에 붙어있는 달콤하고 씁스름한 맛이겠거니. 여유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면의 맛과, 일례로 염소젖에 대한 미각의 기억처럼, 끝까지 양보하기 싫어하는 천진한 단호함이 솔직하고 유쾌하다. 미각의 기억은 오래되고 집요하며 짧지 않은 생에 하나의 연장선상으로 이어진다. 궤적을 그리는 그것은 성장하며 변화하기도 하고 어떤 계기로 사장되기도 한다. "식욕은 먹는 중에 생긴다." 그리고 먹는 중에 사라지기도 하고. 욕구와 욕망은 채우기 전에는 없어지지 않는 법. 그녀의 미각에 대한 기억과 그 욕망도 채워서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고, 거기서 한 발 나아간 명쾌하거나 아리송한 결론에 씨익 웃음 짓게 된다. 특히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이 깨어지는 경우에도 경쾌하다. 새롭게 안다는 사실은 극도로 불편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늘 반가운 것이다.

러시아와 러시아인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글이 많은데, 곳곳에서 고국 일본에 쓴 소리도 마다않는다. 유연하고 발랄한 마리 여사는 재치있는 글을 통해 다양한 민족의 역사와 종교, 신화를 선들선들 건드리면서 심각한 문투는 취하지 않는다. 감자 이야기를 하다가 작가는 1825년 러시아 최초의 무장봉기를 한 데카브리스트들에 매료된다고 고백한다. 현실에 꺾이지 않고 그것을 깨달음으로써 이상을 관철한 젊은 귀족청년들의 이야기가, 땅속에서 열리는 감자처럼, 드러나지 않지만 깊은 맛이 우러난다고 쓰고 있다. 이 외에도 밝게 자란 사람의 인간미가 느껴지는 대목이 여럿이다.

또한 프라하 외국인학교 시절 엄마가 해다준 주먹밥 한 덩어리에 눈물나게 힘이 솟았다고 고백하는 솔직한 그녀. 음식을 먹으며 '맛있다 쩝쩝' 말하지 말라는 노승의 말은 이쯤 되면 창고에나 넣어둬야한다. 고베 식도락 여행을 간주곡으로 연주한 '미식(美食)견문록' 에서 줄곧 삶의 개성 있는 미식(美識)이 읽히니 나같은 이런 독자도 참 병증인가싶다. 그래도 내게 이 책의 묘미는 그것이다. 이 책에 구체적으로 언급된 마리 여사의 맛의 기억을 내가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인지, 또 나는 관념으로 그것들을 맛볼 수밖에 없었다. 앎은 관념보다 경험이 우선일텐데,라는 말도 어쩌면 선입견이라 밀어붙이고 싶다. 이런 책을 즐독하는 수많은 간접체험자들의 앎은 그럼 어떡하라고.
  

가령 아래의 인용글 같은 것은 작가도 인용한 글이지만 삶을 사는 우리에게 보편적으로 의미있다.  

 

   
  할바란 우선 일정한 밀도와 끈기와 온도가 될 때까지 재료에 거품을 낸 결과요, 둘째로 이렇게 해서 생긴 여러 가지 거품을 섞은 다음 저어가며 식히는 기술이다. 그렇기에 할바는, 과자의 품질도 맛도 끈기도 재료에 의해서도 아닌, 어디까지나 조리하는 기술에 좌우된다는 것을 말해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93쪽)
 
   


할바는 '터키꿀맛'과 동일한 것 같은데, 영화 '나니아 연대기'에서 눈의 여왕이 소년을 유혹할 때 내놓던 그 하얀가루가 발린 과자가 아닌가싶다. 눈가루를 배경으로 얼마나 빛나던 유혹덩어리였던지. 작가에게는 기가 막히게 맛나다는 할바의 재료가 별거 아니듯 어쩌면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의 재료도 서로 도토리키재기일지 모른다. 비교는 우월감과 동시에 열등감을 자초하는 일이니 금물. 그저 내게 주어진 재료를 조리하는 기술에 성패가 달려있지 않은가. 기술이 좋으면 맛은 당연한 부산물일 테고. 맛만 내려고 성급하다거나 쓸데없는 멋을 부리다가는 낭패를 보는 수가 있다. 맛은 반드시 혀로 보아야 하는 것!

에필로그를 읽다 기발한 아이디어에 한 번 더 웃는다. ‘미모의 적이자 생활습관병의 원흉이라고 지탄받는 지방을 자고 있는 동안 전력으로 전환하는 간단한 장치만 발명된다면, 다이어트 문제와 에너지 문제는 일석이조로 해결되니 그 발명가는 억만장자가 될 것이다.’(245쪽)  그런 사람이 꼭 나타날 것이라 믿는 작가는 귀엽기까지 하다. 대식가라면 당연히 따라올 걱정이 발명의 어머니를 낳은 셈이다.

참, 살라미 소시지를 좋아하는 마리 여사는 뱀파이어의 후손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말도 안 되...지 않는 추측의 근거는 책 속에서 즐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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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3 1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0-07-23 12:52   좋아요 0 | URL
저도 소문에 반해 처음 읽은 작품이에요.
특유의 유머와 통찰이 재미나게 읽혔어요.
다른 작품도 차츰 읽어볼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리뷰만 쓰는 걸로 자동응모인가요?

꿈꾸는섬 2010-07-23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네하라 마리 여사는 작년부터 읽어봐야지만 하고 아직도 안 읽어봤네요. 마음산책 이벤트로 여기저기 쏟아지는 리뷰의 찬사는 정말 안 읽고는 못 버틸 것 같아요. 근데 언제쯤 읽게 될지 그걸 모르겠네요.
정말 좋은 글이에요.^^

프레이야 2010-07-23 19:34   좋아요 0 | URL
리뷰는 아무래도 쓴소리보다 단소리를 더 하게 되니 너무 믿진
마시구요.ㅎㅎ 아니에요. 전 충분히 재미있고 좋았어요.
꽤 유쾌한 글이었어요.
더운날 건강히 지내세요, 꿈섬님^^

순오기 2010-07-25 0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리뷰는 읽고 읽어도 맛나요~~~~~^^
마음산책 이벤트, 리뷰를 쓰면 자동 응모된다고 나와 있어요.
3월에 참 재밌게 읽었는데, 어제 도서관에서 다시 빌려왔어요.^^

프레이야 2010-07-23 21:49   좋아요 0 | URL
영원한 저의 팬, 오기언니 고마워요.ㅎㅎ
저도 이 책을 시작으로 마리 여사의 다른책을 좀 읽어볼까 해요.

순오기 2010-07-23 22:21   좋아요 0 | URL
어제 오늘 '프라하의 소녀시대' 읽었는데 참 좋았어요.
30년이 지나 친구를 만나는 장면에서 눈물도 찔금 나오고...

프레이야 2010-07-24 00:39   좋아요 0 | URL
프라하의 소녀시대, 목록에 둘게요.^^

blanca 2010-07-23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마리 여사가 러시아 통역도 했군요. 글 읽는데 정말 감칠맛나요. 할바 먹어보고 싶어요. 저도 대식가였는데 ㅋㅋㅋ 나이가 들수록 음식에 까탈을 부리게 되요.

이 글 읽다가 처음으로 명동칼국수 먹던 날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 전율했던 기억이 나서 웃고 가요. 좋은 글 감사해요, 프레이야님!!

프레이야 2010-07-23 21:51   좋아요 0 | URL
전 예전엔 참 못 먹는 것도 많고 까다로웠는데
나이들어가면서 대식가가 되더군요.ㅎㅎ
요즘 완전 위대해요ㅋㅋ
명동칼국수, 참 오래전 먹었던 기억이 나요.
대학 1학년 친척집에 갔던 겨울방학이었던 거 같아요.
음식은 여행과 마찬가지로 누구와 먹었던가가 기억의 한 코드가 아닐까싶어요.

순오기 2010-07-25 04:00   좋아요 0 | URL
우리 민경이도 이 책 읽고, 여행자의 아침과 할바가 제일 먹고 싶다고 했어요.ㅋㅋ

프레이야 2010-07-24 00:46   좋아요 0 | URL
민경이도 읽었군요. 역시 독서맘 닮은 딸이에요.
여행자의 아침식사,는 도무지 얼마나 맛없는지 먹어보고 싶다는? ㅎㅎ
전 고베 식도락 여행이 부러웠어요. 훌쩍~

sslmo 2010-07-23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었어요~
한권을 읽으니 전작을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식욕은 먹는 중에 생긴다.'
이말이 제일 와닿았는데,
황신혜가 한번 먹기 시작하면 옆에다가 밥공기를 퍼 대령해야 한대요.
먹다가 끊기면 입맛이 싹 달아난다나,뭐라나~^^

프레이야 2010-07-24 00:43   좋아요 0 | URL
그 말, 와닿지요.^^ 저도 리뷰에 살짝 언급했어요.
식욕뿐 아니라 우리의 모든 욕구는 그런 성질이 있는 거 같아요.
연예인들은 워낙 식단조절을 하는 사람들이라 눌러뒀던 욕구가
발동하면 제어하기 힘든가 보군요.ㅎㅎ

마녀고양이 2010-07-25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할바 읽으면서 저도 나니아 연대기의 터키 과자 생각났어요.
그리구,, 맛의 환상... 염소젖 이야기 읽구 얼마나 웃었는지.
제가여 알프스 소녀 하이디 읽으면서 똑같은 환상을 가졌는데,
요네하라 마리도 같은 말을 하더군요~ ㅋㅋ

프레이야 2010-07-26 01:28   좋아요 0 | URL
님, 읽으셨군요.^^
맛의 환상, 기억의 환상, 사랑의 환상, 그런 것들 참 우습지요.


라로 2010-07-31 0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의 일년만에 읽으신거????ㅎㅎㅎㅎㅎㅎ
암튼 이 리뷰 당선되면 한턱 크게 쏘세요~~~.ㅋㅎㅎㅎㅎㅎㅎ

22번째 추천은 전데요,,,이상하게 어제부터 짝수~ㅎㅎ


프레이야 2010-07-31 22:23   좋아요 0 | URL
나비님 손수 써서 보내주신 카드꺼정 책갈피에 꽂아서요.ㅎㅎ
다시 보고 감동먹었잖수.
마리 여사, 사랑스러워요.
 

 

자전거의 연애학


손택수


  홀아비로 사는 내 늙은 선생님은 자전거 연애의 창안
자다 그에 따르면 유별한 남녀 사이를 자전거만큼 친근
하게 만들어주는 것도 없다 일단 자전거를 능숙하게 탈
줄 알아야 혀 탈 줄 안다는 것, 그건 낙법과 관계가 있지
나는 주로 하굣길에 여학교 근처를 어슬렁거리다 점찍어
둔 가방을 낚아채는 방법을 썼어 그럼 제깐 것이 별수 있
간디, 가방 달라고 죽어라 뛰어오겠지 그렇게만 되면 만
사가 탄탄대로라 이 말이야 지쳐서 더 뛰어오지 못하는
여학생 은근슬쩍 뒤에 태우고 유유히 휘파람이나 불며  

달려가면 되는 것이지 뒤에서 허리를 꼭 잡고 놓지 못하
도록 약간의 과속은 필수항목이고, 그렇게 달려가다 갈
대숲이나 보리밭이 나오면 어어어 브레이크가 말을 안
듣네 이를 어째 가능한 으슥한 곳을 찾아 재깍 넘어지는
거야 그러고는 아주 드러누워버리는 것이지 어째 허리가
펴지질 않는다고, 발목이 삐끗했나보다고, 아무래도 여
기서 쪼깐 쉬어가는 게 낫겠다고...... 아울러 이 모든 일
엔 품위가 있어야 혀 서화담이 황진이 만나듯인 아니더
래도 서규정*이 직녀를 만나듯은 격이 있어야 된단 이 말
씀이지 이것이 요즘 너희 젊은 것들 잘 나가는 오토바이
나 스포츠카로는 감히 엄두도 못 낼 자전거 연애라는 것
이야 허허허 좋은 세상이란 그런 것이지 젊으나 젊은것
들이 불알 두 쪽만 갖고도 연애를 걸 수 있는 세상이지
그는 술잔을 기울이며 한 말씀 더 남기신다 그런데 그 맛
에 너무 깊이 빠지면 못써, 잘못하면 나처럼 이 나이껏
혼자서 살아야 할 테니께.

* 서규정 [직녀에게], 빛남출판사 1999  

 

---------- 

 

사랑에도 계산이 앞서고 거짓이 팽배한 요즘  

이런 거짓 낙법쯤은 낭만이라 불러도 좋아

중요한 건, 낙법의 품격

삶과 연애하는 것 같다는 말이 듣기 좋았던 건 

연애도 삶도 사랑도 어리버리 제대로 몰랐던 것일뿐  

입술을 깨물며 소리쳐도 채워지지 않는 것들  

삶의, 사랑의, 무수한 적의와 의심과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약함을 사랑하는 법 익히기

그것이 낙법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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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0-07-11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느림의 미학이네요.
맞아요. 사귐에도 격이 있어야 하지요.
님 편안한 주말 되셨나요?

글샘 2010-07-11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낙법의 본질...
살면서 낙법은 알아야 하겠어요. 넘어질 때를 반드시 대비할 것.
이런 시 참 좋죠. 날마다 쓰는 말 그대로가 아름다운 시가 되는 것들...

여름 참 덥습니다. 시원하게 보내시길... 시와 함께...
저는 맨날 시원 C1과 함께인 듯... ㅋㅋ

자하(紫霞) 2010-07-11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만난 몇 안되는 남자들은 모두 자전거를 잘 타는 사람이었군요.

비로그인 2010-07-11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혀 탈줄 안다는 것...으로 읽고 말았네...으이구~미챠미챠~
동태눈깔을 어찌할까요?
동태심보인가보다~ㅋㅋ.

순오기 2010-07-12 0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전거 연애학이 실린 손택수 시집 <목련전차>엔 내가 무지 좋아하는 시가 많아요~~ ^^
언젠가 한번 만나고픈 시인이기도...
예전에 내가 요 시를 올렸던 거 생각나서 찾아봤어요.
http://blog.aladdin.co.kr/714960143/1914457

마녀고양이 2010-07-12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밤 창을 열고 잤더니, 오늘 열이 있어요...
미열에 내가 둥둥 떠다니는데, 프야 언니의 글을 보니..... 더 둥둥 떠다녀요.

비로그인 2010-07-12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자전거 연애는 좀 해보셨나욤? +_+ (저도 무스탕님 따라서 눈을 초롱초롱 빛내봤어요 ㅎㅎ)

프레이야 2010-07-12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치님 눈은 그냥 있어도 초롱초롱해요.
어제 축구 보느라 날밤 샜더니 아직도 눈이 흐리멍텅
머리가 띵하니 정신 없어요.

마녀고양이님, 열은 좀 어때요? 밤엔 공기가 제법 차서 감기 걸려요.
문 잘 닫고 이불 덮고 자기에요.

오기언니, 목련전차 좋아하시죠? 저 시인, 부산에서 대학원을 나왔더군요.
시에 동래온천도 나오고..ㅎ

마기님, 동태심보는 뭣이래요? ㅎㅎ 산문시 읽다보면 저도 가끔 그래요.

비로그인 2010-07-12 15:17   좋아요 0 | URL
아~~놔 진짜~~
내가 동태눈깔이라고 썼어요?
해태눈깔이라고 쓴건데...
해태랑 동태랑 무슨 상관일까?

에효~진짜~
접시물에 코박아야지 원~~~~~ㅠㅠ

프레이야 2010-07-12 15:20   좋아요 0 | URL
마기님, 해태눈깔은 또 뭣이래요? ㅋㅋ
태자 돌림이네요.

잉크냄새 2010-07-13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느림과 헐거워짐의 미학이라고 해도 좋을까요?

프레이야 2010-07-13 19:41   좋아요 0 | URL
느리게 가는 게 어떨 땐 지름길이기도 하더군요.

2010-07-19 15: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0-07-20 13:52   좋아요 0 | URL
올만이에요.^^
전 여름감기로 고생중이에요. 목이 많이 아프네요.

같은하늘 2010-07-20 0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줄한줄 읽어 내려가는데 어린시절 엄마가 즐겨보던 드라마의 풍경들이 자꾸 생각나요.
교복입은 남학생의 자전거 뒤에 수줍은듯 앉아 있는 양갈래 머리의 여학생~~~

프레이야 2010-07-20 20:36   좋아요 0 | URL
전, 얼마전 신언니에서 이미숙이 그 술도가 사장 유혹할 때
자전거 뒷자리에서 하던 장면들이 생각나서 웃음나요.
걸어서 일부러 자빠지게 하던 장면이요.ㅋ
같은하늘님 전 낙법은 잘 하지 못하지만 그냥 자전거 타는 건
좋아해요. ^^
 



작은 아이 담임 선생님이 붓펜으로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시켰나보다.  

오늘 아이 책상을 정리하다 발견한 글귀. 한지에 세로쓰기로 적어놓았다.   

아마 칠판에 적어주고 그대로 베껴쓰라고 하셨을 거다.^^ 

눅눅하고 후텁지근한 날에 이런 시, 나쁘지 않네.ㅎㅎ

---------

부모님께 

아침 저녁으로 부는 바람이/ 제법 포근하게 느껴집니다./ 매화를 떠올리며 시 한 편/  

적어 올리겠습니다. 

설매사 

꽃샘바람 앞에 남 먼저 피는 바람 

벌 나비 허튼 수작 꺼리는 높은 뜻을 

우러러 천년을 두고 따름직도 하더니라. 

정소파 

 

 늘 건강하십시오.

경인년 오월 

박*령 올림 

 

 

----------- 

아이는 오늘 낮에, 상담 선생님과 한 시간 정도 얘기 좀 하고 집에 오겠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집에 온 아이에게 무슨 이야기를 나눴냐고 물으니 씩 웃으며 그냥 ,이라고만 대답했다. 어떤 이야기? 말하기 좀 그렇나?, 라고 물으니까... 응, 이러며 또 씩~~  지금 말하기 싫으면 다음에 엄마한테 말하고 싶을 때 말해줘, 라고 말하니까 또 씩~ 만족스러운 웃음을 보이며 응, 이라고만 말했다.  

섭섭하다기보다 기뻤다. 아이가 그런대로 잘 자라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상담선생님이랑 얘기하면 참 좋아, 내가 먼저 얘기 좀 하자고 신청했어, 라고 곁들인다. 전에도 몇번 했다는 건 알고 있다. 아이는 지난 달 초경을 시작했고 이번 달에 두번째로 쉽지 않은 걸 치렀다. 큰애는 케이크 사다가 축하도 해주고 그랬는데, 작은애는 뭔가 쑥쓰러워 하고 숨기고 싶어해서 다른 식구에겐 말하지 않았다. 그 일이 여자에겐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다. 그건 살면서 더더 느낄 거다.  

요즘 아침마다 심통을 부리고 나가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오늘 아침에도 좀 늦게 일어나 시간이 촉박한 아이가 머리는 감아야겠고 핀잔 듣고 허둥대며 스트레스 받는 걸 아무렇지 않은 척 달래서 좀 웃겨주고 보냈다. 덩치도 나보다 훨씬 크고 어떤 때에는 나보다 한 수 위에 있는 것 같은 아이라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그렇다. 어제 문우들과 울산에 가 있는 동안에도 '엄마, 오늘 날씨가 참 산뜻하네. 친구랑 밖에 나가 놀래. 여전히 또각이 열심히 찍고 있어. ' 이러며 메시지를 보내왔다. 날씨가 참 산뜻하다고?? ㅎㅎ 무슨 능구렁이 여우 멘트인지... 

기말시험 치고 나서 약속대로 또각이를 사줬더니 며칠 째 제이름을 영문으로 찍어내느라 바쁘다. 내것도 찍어달라고 했더니 색깔을 선택하라더니 3개만 찍어줬다. ㅋ 아무튼 오늘 아이가 상담 선생님을 자진해서 찾고 이야기를 나누고 긍정적으로 스트레스를 다룰 줄 아는 모습을 보고 그냥 대견했다. 의미있는 타인, 성장에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나는야 팔불출엄마^^ 중학교 교복 입기 전 중부지방 살만 좀 빠지면 좋겠다. 언니처럼은 못 돼도 조금이라도 빠져야할 텐데 아직 식욕이 너무 왕성하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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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0-07-05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는 내내 마음이 따사로와짐을 느껴요. 프레이야님의 공주님이 그려져서...스스로 상담선생님을 찾아 갔다는 것도 참 귀엽고^^;; 대견하네요. 또각이가 뭔가 했어요 ㅋㅋ

프레이야님, 제 딸은 고작 세 살인데 벌써 제가 잘 키우고 있는 건지 의심이 들 때가 종종 있답니다.-..-

프레이야 2010-07-05 21:29   좋아요 0 | URL
저도 늘 모자라는 엄마에요. 감정을 주체 못하고 퍼붓기도 하구요.ㅠ
또각이도 아이가 이곳저곳 알아보더니 굳이 일본제 말고 국산 중에서
여러모로 괜찮은 걸로 골라 사달라고 하더군요. 1등 하면 사달라고 했지만
결과와는 상관없이 그냥 사줬어요. 제이름을 골백번도 더 찍고 앉아있는게
어찌나 웃기는지요.

꿈꾸는섬 2010-07-05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너무 대견해요. 상담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는게 좋다고 말하는 걸 보니 정말 잘 자란 것 같아요.^^

프레이야 2010-07-05 23:57   좋아요 0 | URL
가끔 이래요, 얘가.
의젓한건지 의뭉한건지.ㅎㅎ

2010-07-06 0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0-07-06 19:35   좋아요 0 | URL
아름다운 님, 8개월 난 아가라면 정말 보드랍고 이쁘지요.
젖병을 빠는 모습에서 안쓰러움을 느낀 님은 놀랍게도 엄마다운 걸요.
네, 그렇게 아무 거리낌없이 사랑받는 능력이 있던 까마득한 시절이
누구에게나 있겠지요.^^
늘 통통공주를 예뻐하시는 님, 지금은 덩치가 얼마나 커졌는지
제가 안아주기보다 안겨야돼요. 아마 가냘픈 님을 한 손에 들지도 몰라요.^^

순오기 2010-07-06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정말 엄마보다 한 수 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
우리도 큰아이는 케익에 속옷 선물로 축하했는데
둘째는 민망해해서 살짝 넘어갔어요. 5학년 3월에 바로 시작해서 안스럽기도 했고...

프레이야 2010-07-07 01:04   좋아요 0 | URL
둘째딸 일찍 했군요.
오늘은 친구한테 병아리 한마리를 얻어와 종이상자에 담아놨네요.ㅋㅋ
자꾸 빠져나와선 기웃거리고 다녀요.
다시 넣어주려고 잡으니까 으스러질 것 같아 제대로 잡지를 못하겠어요.
너무 연약하고 보드랍고 작아요.

전호인 2010-07-06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아이들의 소소한 일정에 절로 웃음이 흘러나옵니다.
그렇게 그렇게 아이들은 성장하고 있는 거지요.
해람이도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근데 또각이가 뭐에요?
전혀 모르겠다는....ㅠㅠ

2010-07-06 1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10-07-06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또각이 열심히 찍고 있어,,,가 뭐에요????( ")

저희 딸아인 중2인데도 아직 안하고 있어요.
저는 내심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어요,,ㅎㅎㅎ
그런데 제 딸아이도 엄청 내성적이고 숨기고 싶어할것 같긴 한데
만약 아이가 한다면 생리 시작한 날짜를 새긴 목거리를 선물할거에요. 14K로다가.

*령이 정말 대견하네요,,,,독립을 잘 하고 있는것 같아요,,,,
누구나 스스로 성장해야 하는데,,,그 어려운 길을 잘 시작하고 있는것 같아요~.
자식복이 많은 레야님이 부러워잉~~~~.^^

프레이야 2010-07-06 19:40   좋아요 0 | URL
우잉? 14K 목걸이에 날짜를 새겨서요?
역쉬 나비님의 아이디어는 반짝반짝 해요.
전 그냥 말로 떼우고 지나갔어용.
또각이는 국산 상표명인데요, 왜 있잖아요? 플라스틱테잎에 이름찍어서
붙일 수 있는 거요. 그거에요.ㅎㅎ

마녀고양이 2010-07-06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비님이 저랑 같은 생각하시네요. 저두 또각이가 뭘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아,,,,, 날씨가 산뜻하네... 너무 이쁜 표현이예요. 저도
꼭 써먹겠어요. 우리 코알라도 저렇게 멋지게 성장해야할텐데.

프레이야 2010-07-06 19:41   좋아요 0 | URL
또각이는 위에 나비님 댓글 답글 보시와요.ㅎㅎ
오늘도 날씨가 산뜻했지요, 마녀고양이님.^^
마음도 늘 산뜻하자구요, 우리^^

같은하늘 2010-07-09 0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아이들은 뭐든 빨라서...
그래도 기다려 줄줄 아는 프레이야님 같은 엄마를 둔 따님들이 얼마나 행복할까요?
저 같으면 빨리 얘기하라고 했을것 같은데...^^

프레이야 2010-07-09 07:13   좋아요 0 | URL
요새 사춘기라 애가 감정기복이 심해요.
스스로 그걸 다스리려는 흔적이 보여요.^^

2011-02-25 1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25 1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25 2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