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작가 토미 바이어의 소설이다.
요즘 <피타고라스 강론 2> 녹음과 함께 이 책은 초벌편집이 거의 완료되어 간다. 낭독녹음 중에도 무겁지 않은 필치로 재미나게 읽혔고, 의외의 위트있는 결말도 괜찮았다.
누구나 복권당첨의 꿈을 한 번쯤 꿔봤을 거다. 620만 유로의 로또당첨이 된 어느 날, 갑자기 부자라는 버거운 이름표를 달게된 마흔살 가량의 남자. 의사 아내가 머리로만 사는 남자라는 불만을 가지고 있는 줄 까맣게 모르고 살았던 남자. 아내 대신 음식을 만들며 음악작업실에서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꿈꾸는 남자. 그런 남자에게 찾아온 분에 넘치는 행복도 서서히 일상이 되어가고 어찌보면 그 대가를 치르는 이야기다. 소중한 것들을 하나둘 잃어간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모두 잃기만 하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걸 얻기도 한다.
어찌 보면 복권당첨이라는 진부한 설정을 출발로 하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그다지 진부하지 않다. 특별한 것 없는 소소한 사건들이 펼쳐지는데 그때마다 주인공 남자의 솔직한 심리가 보여 재미있다. 사랑, 연애, 결혼, 우정, 가족, 성공, 그리고 행복이란 것에 대해 이전에는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들이 수면위로 뜬금없이 떠오르는 방식이다. 그런 이야기가 로드무비처럼 주인공 로베르트 알만의 시점에서 줄곧 이어진다. '알만'은 독일어로 '누구나', '아무나'의 뜻을 가졌단다. 화려하거나 특별히 긴장감을 주는 사건은 없다. 풍경묘사가 멋진 것도 아니고 문체가 대단히 매력적인 것도 아니다. 단지 주인공 남자의 변해가는 심리가 솔직하게 전해진다는 점이 책장을 자꾸 넘기게 한다.
이 장편소설은 어쩌면 믿음과 불신의 이야기, 과거와 현재 미래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행운과 행복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마지막 장에서 총체적 적군(내가 쓴 이 단어는 내용을 읽어보면 이해할 수 있어요) 이 묻는 "앞으로 어떻게 사실 거죠?"라는 말에 "살던 대로 살아야죠" 라고 말하는 남자가 목록을 작성하고 그 안에 여러 항목 중 어린이후원, 자신감과 고양이 등을 포함한 건 재미있다. 우리는 늘 뜻밖의 일들을 만나고 그럴 때마다 안절부절 당황하지만 그런대로 무던히 또 넘어간다. 행운과 불운은 샴쌍둥이 같다. 어느 한쪽만 안아주기엔 부족하다. 행운이 왔다고 다 행복한 건 아니고 불운이 왔다고 다 불행한 것도 아니다. 소소하거나 거창하거나, 행운과 불운, 한 몸의 그 낯선 방문자를 어떻게 맞아들여야 할까, 그게 늘 숙제다. 잔잔한 호수의 수면처럼 크게 요동치지 않고 안으로 약간의 일렁거림만 간직하며 흐뭇해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애초에 내것 아닌, 감정들에 휘둘리지 말고 차분히.
어젯밤부터 이상하게 바람이 시원하다. 폭염이 갑자기 꺾인 듯. 이러다 다시 기승을 부릴지도 모르지. 이번 토요일이 벌써 입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