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신청도서라 어딘가에서 어서 듣고 싶어 기다리고 있는 사람을 위해 되도록 빨리 마쳐주고 싶었다. 어제 제1권을 끝내고 2권으로 들어갔다. 1권에서도 마음에 새겨두고 싶은 글귀가 너무나 많았는데 2권의 시작도 마찬가지다. 사이사이에 유머러스한 일화를 소개하며 라즈니쉬는 자신의 이야기를 쉽게 전한다.
이 책을 읽으며 특히 어떠한 단어가 갖는 진지한 의미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게 되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지향해야할 것 중, 행복이 아니라 '지복', 심각함이 아니라 '진지함', 다원성이 아니라 일원성 즉 '전체성'. 신이 우리에게 육신을 준 것은 물질주의자가 되라는 것이고 영혼을 준 것은 정신주의자가 되라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어느 하나가 되어서도 안 되고 그럴 수도 없다. 단지 어떤 일을 해도 깨어있는 의식으로 행할 때 무목적성으로 나아가는 현자의 길을 간다고 한다. 바보와 현자의 공통점은 모두 목적없이 행한다는 사실이지만 깨어있거나 그렇지 않거나의 차이점이 있다는 것. 난 지금 깨어있는 것일까, 미몽 속을 헤매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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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매 순간 변한다. 진실로 깨어 있는 사람은 매 순간에 감응한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감응한다. 그는 어떠한 편견도 지니지 않는다. 머릿속에 과거를 저장하고 다니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투명한 거울이 된다. 그리고 그 상황을 통해 행동할 것이다. 그는 감응하는(responsive) 사람이 된다. 이것이 '책임(responsible)'이라는 단어의 의미다.
나에 따르면 감응하는 사람이 도덕적인 사람이다. 그러나 세상에서 소위 도덕적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감응할 줄 모른다.
책임(responsibility)이 도덕성보다 더 근본적이다. 이 'responsibility'라는 말에 의해 나는 현재 순간에 감응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나는 이미 마련된 형식이나 그 동안 축적된 선입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행동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순간에 감응할 때 그 행동은 그대를 자유롭게 한다. 이 때 그대의 행동은 항상 선하고 항상 적합하다. (피타고라스 강론 II, 40쪽, 계몽사 오쇼 라즈나쉬 사상 선집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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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21세에 깨달음을 얻은 라즈니쉬의 명상을 따라갈 순 없지만 참으로 지혜로운 이야기들이라 녹음 내내 느껍다. 나같이 아둔한 사람은, 읽을 때만이라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구절들을 따라 좀 지혜로워지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라즈니쉬의 제자이며 인도 푸니에 살고 있는 손민규의 번역도 낭독하기에 참 좋다. 번역 문장이 짧고 간결하여 숨을 고르게 하여 읽을 수 있고 내용이 명확하게 전달되는 이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