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김훈이 감동을 주는 법은 늘 이렇다. 이래서 그를 밀쳐낼 수 없다. 철저하게 비정하게, 혹은 비장하게 읽히다가 책장을 덮는 순간 역시 로맨티스트다운, 서늘한 풍경을 그려주는 방식. 몇번인가 책장을 그냥 덮을까, 하기도 하고 어느 지점에선 먹먹해서 문장을 붙들고 앞뒤로 왔다갔다 머뭇거리기도 하고, 단문들로 빠르게 치고 나가는 문장들을 헤집고 나아가는 일이 그닥 고된 일도 아닐텐데 꽤 더디게 읽혔다. 추상적인 단어와 관념속의 어떤 이미지들이 치고 들어왔다가 또 치고 나가는 걸 반복하는 과정에서 성웅 이순신보다 전쟁터에 나가있는 한 사람이 도드라졌다. 바다이거나 육지, 그 전쟁터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역사적 배경을 초월하여, 시공을 초월한 우리 삶의 보편적 공허함 속에 건재해 있다.  

그 공허함이 부정적인 것일까, 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시비를 가릴 수 없는 저 너머의 지점에 서서 미성숙한 나를 그윽히 바라보며 미소짓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긍정적이어서 오히려 섬뜩하다. 신의 눈길이 그와 비슷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건 그저 안고 가야할 숙명과도 같은, 생을 사는 목숨의 권리에 대한 부채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외롭게 견뎌야할 폭염과도 같다. 폭염이 연일 육신을 누르고 정신마저 지치게 하는 즈음, 그것은 생의 그렇게나 대단한 폭염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것이 생에 마지막 폭염이라 생각하고 살라는 누군가의 말이 생각났다.  

<칼의 노래>는 우리 삶의 무수한 적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온갖 냄새가 창궐하는 전장에서 죽음을 맞는 법에 대한 고찰이다. 적들은 전체적으로 밀려오고, 실체가 없다. 개별적으로 닥쳐올 때마저도 그것은 하나의 전체로서 압박한다. 보이지만 잡히지 않는, 어쩌면 실재하지 않는지도 모르는 것에 무엇을 걸었던지 모르겠다. 오늘도 내 것이 아닌 오욕칠정의 감정들을 부여잡고 번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적들도 '나'가 대적할 대상이 애초에 아닌지도 모른다. 내 것이 아니라면 그냥 놓아버리면 그만인 것을, 미련하게도. '나'를 경멸하고 조롱하는 적들, '나'에게 불친절하고 '나'를 오역하는 세상의 모든 적들, '나'의 총체적인 반군들에게 취할 수 있는 자세가 무엇인가.  

글벗과 저녁을 먹고 매미소리 들으며 평상에 앉아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한달을 살고 죽음을 맞을 매미 - 수매미 - 는 그악스레 울어댔다. 그리 울어대면 장렬한 죽음이 되려나. 한 달 전에 지리산에서 홀로 죽음을 맞았다는 우리 또래 여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의 적은 온몸에 퍼진 암세포였다. 죽음의 방식을 일부 선택한 여인의 이야기가 이순신이 선택한 자연사와 겹쳐졌다. 순간, 그악스레 사는 법을 모르고 아직도 꿈을 꾸고 사는 어줍잖은 나는 그녀가 '얼마나 외로웠을까'를 말했다. 연이어 내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속해 있을 공간에 대해서도 말했다. 아름다운 도시, 아니면 사랑하는 자, 그러니까 적의 품? 지금 살아온만큼의 세월을 앞으로 더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장수시대가 끔찍하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지금부터 무언가 새로운 걸 시작해도 늦지 않다는 말이 된다. 물론 건강이 유지되어야 그것도 가능한 일이다. 실버타운으로 들어가는 날을 벌써 이야기하는 건 어리석다할지 모르지만 그런 걸 대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보장이 없는 시대다. 그러나 나는 현명하지 못하여 현실적인 걸 대비할 줄 모른다. 그냥 적들과 부대끼며 자연사할 것이다. 그정도면 족하다. 장기는 기증할 것이다.  

적은 무수하다. 질병, 배신, 절망, 증오, 죽음...... 그리고 사랑.  
김훈은 책머리에서 사랑은 불가능에 대한 사랑일 뿐이라고 밝혔다. 그러니 적의 이름은 '불가능'이다. 

"사랑이여 아득한 적이여, 너의 모든 생명의 함대는 바람 불고 물결 높은 날,  내 마지막 바다 노량으로 오라. 오라, 내 거기서 한줄기 일자진으로 적을 맞으리. "  

우리가 희망을 걸고 꿈을 꾸는 것들은 생에 최대의 적이다. 그것들은 늘 절망을 안겨주고 잠시나마 비상하던 꿈을 깨게하여 진흙탕에 구르게 한다. 비루한 우리들은 오늘도 꿈을 꾸었고 또 깼다. 내일은 내일의 꿈을 꿀 수도 있겠지만 그것들은 늘 약속을 어기고 절망을 또 심어줄 것이다. 가치는 혼돈을 정의는 오류를 몰고온다. 절박하다. 그 오류와 모순이 최대의 적이다. 김훈은 절박한 오류를 안고 홀로 살겠다고 선언했다, 책머리에.  

그러나 나는 적이 애초에 없었듯 사랑도 애초에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신기루에 불과한, 또는 제멋대로 모양을 바꿔 흐르는 구름떼와 같은 것. 사랑은 그런 게 아니다. "불가능에 대한 사랑", 적은 그런 게 아니다. 살기등등한 적 앞에서 "고착은 곧 죽음(58쪽)"이다. 이순신은 전쟁터에서 적의 화살에 죽는 것이 자연사라고 확신한다. 1인칭 화자 김훈의 언사이지만, <칼의 노래>는 두 인물간의 감정이입과 거리두기가 꽤 적절하다. <칼의 노래>는 '칼의 울음'으로 시작하여 '들리지 않는 사랑노래'로 맺는다. 후자는 다소 김훈답지 않은 소제목인가. 김훈 작품의 매력은 냉소와 절망으로 일관하는 듯하다가 세상끝에서 발하는 처절한 희망으로 치닫게하는 기운이다. 게다가 그는 현실주의자처럼 보이지만 낭만주의자의 밑얼굴을 감추지 못한다.

   
 

삶은 집중 속에 있는 것도 아니고 분산 속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모르기는 하되, 삶은 그 전환 속에 있을 것이었다. 개별적인 살기들을 눈보라처럼 휘날리며 달려드는 적 앞에서 고착은 곧 죽음이었다. 달려드는 적 앞에서 나의 함대는 수없이 진을 바꾸어가며 펼치고 오므렸고 모이고 흩어졌다. 대장선이 후미에 있을 때 이물 너머로 바라보면 함대는 적과 마주잡고 쉴새없이 너울거리며 춤을 추는 무도자처럼 보였다. 

나를 이동시키면서 고정된 적을 조준하는 일은 어려웠고 나를 고정시키고 이동하는 적을 조준하기도 어려웠다. 나를 이동시키면서 이동하는 적을 조준하기는 더욱 어려웠으나, 모든 유효한 조준은 이동과 이동 사이에서만 이루어졌다. 내가 적을 조준하는 자리는 적이 나를 조준하는 표적이었다.(58- 59쪽)

 
   

 

학익진을 펼치며 적과의 춤을 추는 이순신을 그려본다. 춤을 추듯 생을 산다면 죽음도 그러한 것이 될 수 있을까. 그러나 다시, 결국 칼로 베어지지 않는 아득한 적을 '내 마지막 바다'로 불러 한줄기 일자진으로 맞이하려는 그를 그려본다. 명과 왜의 협약으로 퇴진하는 왜군을 공을 세우는 기회로 삼지않은 장군이 아니었더라면 임진왜란이 끝나고 경상도땅 정도는 왜의 손에 들어갔을 수 있다고 한다. 현명하기보다 무모하기, 두려움 앞에 두려움 그 자체로 나서기. 적의 칼에 베어져도 전쟁터에 '속하여' 맞는 자연사를 꿈꾸는 그는 어쩌면 적을 가장 사랑한 사람, 주어진 올무의 삶을 누구보다 사랑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나는 지금 나의 전쟁터에 제대로 '속해' 있는가.   

"오사카의 영화여, 꿈속의 꿈이려니." -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검명과 이순신의 그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적 속에 내가 속해 있는 것이다. 만개한 꽃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적들도 한갖 꿈속의 꿈이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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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ek 2010-07-30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가장 밑바닥에서 시작해서 형이상학을 치고 오르는 느낌. 그리고 처절한 외로움. 몇 번을 읽어도 아직까지 잘 정리가 안 되는 것 같습니다.

프레이야 2010-07-30 10:41   좋아요 0 | URL
그의 문장은 처음과 두번째의 느낌이 다른 것 같아요.
결말 부분에서 그 처절한 외로움이 더욱 강하더군요.
삶도 죽음도 결국 홀로 감당해야하는 것이겠지요.

마녀고양이 2010-07-30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끈질기게 대항하는 죽음을 맞고 싶지 않아요. 그건 모든 이의 소원일까요?
너무너무 끈질겨서, 길게 늘어지는, 너무 처절한 그런 죽음은 싫어요.

언니.... 날두 더운데,, 너무 난해해염~ 아하하

프레이야 2010-07-30 10:42   좋아요 0 | URL
매미소리 짜르르~해요, 아침부터.
날도 더운데 그냥 난해하게 이럴 거 없이 단순하게 살까요?
아웅~~ㅎㅎ

비로그인 2010-07-30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 훈은 사람도 문장도 강한 그 마초성?에 괜히 저항감을 느끼게돼요. 그 문장의 힘에 혹하면서도 모음 수필집말고 실제로 소설을 읽은 적은 한번도 없다는.. 그러나 안 읽고 있기엔 아까운 작가겠지요?

프레이야 2010-07-30 20:06   좋아요 0 | URL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지만 언뜻언뜻 보이는 여성성에 오히려
연민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생리에 대한 묘사는 경험해보지도 않은
그가 어찌 그리 더 세세할까요. 자료를 보고 썼다고 하지만 말에요.
내치기엔 매력이 심한..ㅋ
만치님, 더워서 어찌 지내나요?

stella.K 2010-07-30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 이 책을 읽고 리뷰를 안 썼던 기억이 나네요.
이야기의 배경 보단 실존에 더 많은 촛점을 두고 썼다는 생각이 드는데,
리뷰를 어떻게 써야할지 난감하더군요. 그땐 서재질 초기이기도 해서
리뷰를 쓰는 것 자체가 익숙하지도 않았지요.
다시 읽으면 써 지려나?
공무도하를 읽겠다고 하곤 여태 못 읽고 있습니다요.ㅜ

프레이야 2010-07-30 19:59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그리 생각했어요. 실존에 대한 소설.
공무도하, 읽으시면 괜찮다 느끼실 거에요.^^

순오기 2010-07-30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번을 읽었어도 세월이 흐르니 느낌만 남아 있지, 구체적인 감상은 가물가물해요.
김훈은 정말, 이순신과 난중일기의 문장을 사랑했지요.

프레이야 2010-07-30 20:00   좋아요 0 | URL
김훈의 문장은 두번 읽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전 두번 읽진 않았지만 두번 읽으면 확실히 명징할 거 같구요.

hnine 2010-07-30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번에도 우연이 아니었나봐요. 이번에도 김 훈의 글과 프레이야님의 글을 구분 못하며 읽었어요.
'사랑'도 '적 (敵)'이라 함은, 사랑이 곧 집착일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냉소와 절망으로 일관한 것 같으면서 드러내는 낭만주의자의 얼굴이라, 훌륭한 리뷰입니다.

프레이야 2010-07-30 20:05   좋아요 0 | URL
네, 저는 김훈이 참 낭만적이구나, 생각들어요.
결국 그의 그런 면모가 훨씬 현실적인 게 아닐까 싶구요, 역설적으로.
문장을 조금 수정했어요. 감정이입이 다소 심했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