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맨 얼굴이 아니라 마스크로 가린 얼굴에 더 많은 ‘인간성‘이 있다는 엄중한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 1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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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1 16: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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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1 16: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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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감기몸살이 오고 말았다. 매년 이맘때면 그런다. 밤샘도 몇 날 하고 몰아붙여서 마무리한 몇 가지 일들이 후유증을 남기는 것 같다. 병원에 갈까 하다 귀차니즘도 발동하고 좀 꺼려져서 생강차 진하게 마시고 좀 누웠다가 일어났다. 며칠전 고교 동기의 아버지가 향년 87세로 돌아가셨는데 골절로 입원 중 코로나 감염이 되었던 게 원인이라고 해서 너무 놀랐다. 접견도 못했고 빈소도 채 차리기 전에 화장부터 하고 있다고 연락이 왔다. 날도 흐린데 옛생각도 나고 황망하여 마음이 무척 안 좋았다. 하던 일을 어느 정도 마무리해 놓고 토요일 저녁에 장례식장을 찾아갔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친구 빼고 나머지 유가족들은 별로 침통해 하지 않고 의외로 얼굴들이 좋아서 또 놀랐다. 싱글거리는 것까진 좀 아닌 것 같아 이상하다고 여기며 나왔는데, 그 아버지가 병석에 오래 있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재혼하여 가족들 사이가 별로였다는 말이 들렸다. 꼭 그래서만은 아닐테지만 그래도 좀 납득이 안 되고... 한 사람, 한 집의 비하인드 스토리야 어찌 말로 다할까. 아무튼 나라는 인간, 어서 낫고 힘내야 하는데 에고... 연말까지 해야 할 일들이 몇 가지 남았는데...


8월 말부터 10주간 점자도서관에서 성인 시각장애인 대상으로 '테마가 있는 시 감상' 수업을 했다. 원래 상하반기 나누어 하는데 코로나 이후 줄여서 이루어졌다. 개근상 드려야 할 분이 다섯 분 있고 외워서 낭송도 잘 하시고 시를 쓰는 일에도 관심을 보여 쓰시고, 모두 삶에 시가 들어오면서 느끼는 게 많아지신 것 같아 나 또한 감사했다. 매 시간 다른 테마로 시를 골라 소개해 드렸는데 4차시에는 '관계, 타인이라는 의미'를 테마로 했다. 그중 김언의 시 두 가지. 

김언은 1973년 부산 출생이다. 운전중에 들은 EBS라디오 윤고은 시인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서 김언의 시 '미학'을 듣게 되어 시인을 알게 되었다. 














 김언 시집 <모두가 움직인다>







미학 / 김언



나는 혼자서 쉽게 놀지 않는다. 어딘가에 타인을 만들고 있다.

고요하고 거침없이 적을 만든다. 그를 사랑해도 좋다.

그와 무엇으로 대화하겠는가.

 

적당한 간격을 두고 위험에 대해

아름다움을 말하고 있다.

 

나는 혼자서는 쉽게 취하지 않는다.

어딘가에 항상 손님을 만든다. 분노를 만들기 위해 그를 쫓아가도 좋다. 꼭 그만큼의 간격으로

 

누군가를 방문하고 멱살을 잡는다.

나는 혼자서는 쉽게 풀지 않는다. 어딘가에 꼭 오해를 만들고 있다

 

 

 


사람을 만나러 간다 / 김언

 

 

사람을 만나러 간다.

사람을 만난다는 게 전혀 시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도 나의 만남은 지속적이고 끈질기다.

나는 조바심이 많은 문학이다. 징그러울 정도로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이다. 사람을 만나러 간다.

둘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고 가겠는가.

우리는 시적으로 충분히 지쳤다. 둘 사이에

어떤 시도 오고 가지 않지만 우리는 충분히

괴로워하고 있다. 그 얼굴이 모여서

시를 얘기하고 충분히 억울해하고 짜증을 부리고

돌아왔다. 사람을 만나러 간다.

더 만날 것도 없는 사람이 더 만날 것도 없는

사람을 만나러 간다. 시를 얘기하려고

오늘은 내 주머니 사정을 들먹이고

내일은 내 자존심의 밑바닥을 꽝꽝 두드리고

망치나 해머 뭐 이런 것들로 내 얼굴을 때리고 싶은

상황을 설명하고 그럼에도 꺼지지 않는 불씨를 들먹이는

너를 만나러 간다. 사람을 만나러 간다.

너 또한 내일은 사람을 만나러 간다. 꺼지지 않는 불씨를

확인하려고 네가 만나는 사람과 내가 만나는 사람.

거기서 시가 오는가? 거기서 시를 배우는가?

우리의 만남이 전혀 시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도 시에 대한 얘기는 끝이 없다. 억울할 정도로

길고 오래간다. 꺼지지 않는 이 불씨가

시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아니다. 사람을 만나러 간다.




쟝 폴 사르트르(1905-1980)가 말한 즉자존재(사물)와 대자존재(인간)를 떠올려 보면, 인간은 사물과 달리 고정화하지 않는 존재이므로 나를 사물화하고 대상화하여 나의 자유를 제한하는 타인은 내게 지옥이다. 타인이 지옥이라는 말을 오해하면 안 된다. 관계가 왜곡될 때 타인은 지옥이 되는 것이다1943년 카뮈와 교유를 시작했고 이 무렵부터 저항운동을 하는 지하잡지에 기고했다.  1964년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었지만 거절했고 1980년 사망하여 몽파르나스 묘지에 안장되었다. 

태어나서 1년 후 아버지를 잃고 10년 동안 외가에서 살게 되었는데 이때의 기억을 <말Les Mots>에 자전적으로 담아 1963년 발간했다. 사르트르 자신은 <말>이 문학에 대한 고별이었다는 뜻의 말을 여러 번 하였지만 그것은 소설이나 희곡을 쓰는 작품 활동의 중단을 의미하는 것이지 문학적 관심 그 자체를 포기하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이미 1954년부터 쓰기 시작한 이 자서전에 거듭 수정을 가해 다른 어떤 문학작품보다 더 문학적인 문체를 이루어 놓았다는 평을 받는다. 사르트르는 평생 시력이 좋지 않았고 1973년부터는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고 한다. 





나는 천직을 포기했다. 그러나 환속한 것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글을 쓰고 있다. 달리 무슨 할 일이 있겠는가? 

"한 줄이라도 쓰지 않는 날은 없도다."

 이것이 내 습성이요 또 내 본업이다. 오랫동안 나는 펜을 검으로 여겨 왔다. 그러나 지금 나는 우리들의 무력함을 알고 있다 그런들 어떠하랴. 나는 책을 쓰고 또 앞으로도 쓸 것이다. 슬 필요가 있다. 그래도 무슨 소용이 될 터이니까 말이다. 교양은 아무것도, 또 그 누구도 구출하지 못한다. 그것은 아무것도 정당화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산물이다. 인간은 그 곳에 자기를 투사하고, 거기서 제 모습을 알아본다. 오직 이 비판적 거울만이 인간의 모습을 보여 준다. 그뿐 아니라 그 쓰러져 가는 낡은 대궐, 즉 나의 속임수는 나의 성격이기도 하다. 사람이란 신경병을 떨어 버릴 수는 있지만, 자기 자신이라는 고질병에서 치유될 수는 없는 법이다. 아무리 닳고 지워지고 모욕당하고 따돌림당하고 묵살당한다 하더라도, 어린 시절의 온갖 특징은 50대 인간에게 그대로 남아 있다. 대개의 경우 그것들은 어둠 속에 납작 엎드려서 기회를 노리고 있다. 그리고 방심하기만 하면 당장 다시 고개를 들고 변장을 하고는 백일하에 뚫고 나온다. 나는 오직 나의 시대를 위해서만 글을 쓴다고 진심으로 주장하지만, 현재의 내 명성이 짜증스럽다. 내가 지금 살아 있는 이상 그런 명성은 영광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도 족히 과거의 미몽은 보정된 셈이다. 그러나 혹시 내가 아직도 남몰래 그 미몽을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내 생각에는 꿈을 변형한 것 같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채 죽는 기회를 놓쳤기 때문에, 때때로 남의 오해를 받으며 사는 것이 신나는 것이다. (270-271쪽)




 

(첫문장) 1850년 무렵, 알자스 지방에 살고 있던 한 초등학교 선생이 아이들에게 들볶이다 못해 식료품상으로 직업을 바꾸고 말았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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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1-11-10 15: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에공~감기 빨리 낳으시길요^^
부모님 부고 소식이 잦네요?
시간도 그러할 것이고,계절도 그러한 것일까요?
......저희 동창들도 부모님의 부고 소식을 종종 전해주곤 하더라구요.ㅜㅜ
날이 갑자기 추워졌습니다.
건강관리 잘 하시길요♡

프레이야 2021-11-10 15:53   좋아요 3 | URL
그렇죠. 우리 나이가 ^^
결국 병원 갔다 왔어요. 주사 맞고 약 받고 ㅎㅎ
좀 빨리 나으려구요.
날이 차요. 책읽는나무 님도 감기조심!!

mini74 2021-11-10 17: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엔 결혼식 돌잔치, 지금은 장례식 갈 일이 더 많아지네요. 프레이야님 시 수업 저도 둗고싶네요 *^^*감기 얼릉 나으세요 ~

프레이야 2021-11-10 17:40   좋아요 2 | URL
고맙습니다 미니 님 ^^
주사 맞고 왔으니 언능 나아지겠지요 에구.
시 낭송도 해 드리고 시인 이야기도 하고요 ~

2021-11-10 18: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10 18: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1-11-10 19: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날씨도 추운데 밤샘까지 하셔서 감기 몸살이 걸리셨군요 ㅜㅜ 빨리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프레이야 2021-11-10 19:34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새파랑 님. 으샤!!
감기 조심하세요 ~^^

붕붕툐툐 2021-11-10 2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성인 시각장애인을 위한 시수업이라니, 너무 멋지세요~~
서로에게 풍성한 시간일 듯 하네요~
프레이야님, 얼른 쾌차하시길 빌게용!!🙏
(밑줄친 첫문장 완전 공감이요~ㅎㅎ)

프레이야 2021-11-10 23:17   좋아요 2 | URL
신나게 ~ 붕붕님 고마워요 ^^
시를 좋아히시고 수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마음에 들어하셔서 저도 감사한 일이죠.
좋은 시간이었어요. 마지막 시간에 시 낭송하고 소감도 듣고 울컥하더라구용. 아이들한테 들볶이다 직업 바꾸실라요 ㅎㅎ 계속 국어샘 붕붕님으로 계셔주세요.

희선 2021-11-13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감기몸살 좀 나아지셨는지... 감기몸살은 잘 쉬어야 낫는 듯합니다 그동안 밤새우셔서 몸이 쉬라고 아픈가 봅니다 사르트르 나중에 눈이 안 보였군요 사르트르 이름만 알고 잘 모르지만, 다른 것보다 눈은 중요한데... 눈이 보이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읽어주는 책을 듣고 글을 쓴 사람도 있군요 그런 사람 대단합니다


희선

프레이야 2021-11-13 07:51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아직 헤롱거리고 있어요.ㅜㅜ
어제는 뱅쇼를 만들어 두 잔 벌컥이고 오늘도 계속 생강차 흡입중입니다.
육체적 고통과 한계를 이겨내며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연구하고 예술활동을 하는
위대한 인간들의 업적, 참 존경스럽습니다.

2021-11-13 21: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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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3 21: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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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4 00: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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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4 00: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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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4 13: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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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새로 나왔네요. 표지 바꾸고 저자 이름에도 한 분이 더 합류되었어요. 원래 저자 김새별 님은 제가 이 책을 부산점자도서관에서 낭독녹음할 때만 해도 유품정리사로서 생경한 직업에 사회적으로도 덜 알려져 선입견과 편견에 상처도 입고 힘들게 작업하셨던 분인데 얼마전 티비 모 프로그램에서 나온 걸 보고 무척 반가웠습니다. 한 길을 꾸준히 오래 한눈팔지 않고 정진하며 자신의 일에 자부심과 보람을 느낀다는 게 보였고 여러모로 성장한 모습도 보였어요. 이제 업체도 커진 것 같고 직원도 여럿이겠지요. 제 목소리를 담은 녹음도서가 부산점자도서관에 있고 그걸 들은 한 분이 참 좋았다고 피드백 해 주셔서 또 기뻤던 기억이 납니다. 이 책 권해 드리고 싶어요. 삶의 의미를 돌아보고 지금의 삶에 좀 충실할 수 있는 현실적인 생각도 드는 책입니다. 현장에서 보고 느낀 걸 소박한 문장으로 쓴 책이에요. 새로 나온 책은 표지가 좀 더 강렬합니다.



아래는 예전에 어느 책 소개 코너에 썼던 글


현재 초등학생들이 성인이 되어 사회에 진출할 즈음이면 기존의 직업이 많이 사라져 새로운 직업군에 종사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인공지능이라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기계가 인간의 머리를 대체하여 손과 발이 되어줄 가능성도 더욱 커집니다. 그에 맞게 지금부터 새로운 교육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평생교육 또한 필요하다고 합니다. 성인도 40세 이후, 50세 이후가 되면 재교육을 받아야 하는 새로운 사회 교육 시스템이 정립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나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인간만의 능력이 분명 있을 테지요. 감성이라든지 창의성, 소통과 감사의 영역에서 기계가 일정 부분 대신한다 해도 그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특히 사람이 진정한 마음으로 섬세한 손을 놀려서 하는 작업에 기계가 들어서기엔 한계가 있지요. 이 책의 저자, 김새별은 이름만 보고 여자인 줄 알았는데 남자입니다. 유품정리사라는 직업이 있는 줄도 처음 알았습니다. 이 책의 부제는 ‘유품정리사가 떠난 이들의 뒷모습에서 배운 삶의 의미‘입니다.

​김명민, 하지원이 나왔던 영화 <내 사랑 내 곁에>가 생각납니다. 하지원이 장례지도사로 나왔지요. 저자 김새별은 대학시절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을 목도하고 장례지도사가 되었습니다. 이후 유품정리사가 되어 죽은 사람의 집을 청소하고 유품들을 정리하여 유가족의 손에 넘겨주는 일을 합니다. 장례지도사도 생소한 직업이었지만, 유품정리사는 더욱 낯선 직업입니다. 열악한 직업환경이라는 점은 시작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지만 그래도 지금은 직원도 있고 등록도 되어 있는 전문적인 직업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매일 죽음의 현장으로 출근합니다. 범죄로 사망한 경우와는 달리 고독사나 자살인 경우, 주검은 꽤 시간이 지나 발견됩니다. 그 현장을 몸소 치우는 일은 상상 이상으로 힘든 일일 것입다. 시체가 부패하여 악취가 진동하고 구더기가 들끓고 강아지나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까지 죽었거나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현장을 청소, 소독, 정리하는 일이니 말입니다. 떠난 사람의 흔적을 치우고 남겨진 물건을 정리합니다. 전기장판 아래 깔려 눌어붙은 지폐도 있고 집안 구석구석 오줌이 꽉 찬 소주병도 있습니다.

놀랍게도 고독사는 비단 독거노인들의 일만이 아닙니다. 청년실업자, 지방출신 일류 대학생, 히키코모리 등 사회적 마이너리티들의 목숨 또한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의 무관심만 탓할 수는 없습니다. 유품정리사는 마을 사람들의 편견도 심하게 받습니다. 집주인은 집값이 떨어질까 쉬쉬하고, 유가족은 값나가는 것을 혹여나 놓칠까 전전긍긍하고, 이웃은 장비를 실은 커다란 차가 골목에 들어서는 것부터 꺼립니다. 저자는 몸도 마음도 너무나 고된 일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정적으로도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될 것 같으니 감정노동이 가장 심한 직업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유품정리사라는 직업을 특별히 여겨 보수 면에서 기대를 갖고 문의해 오는 젊은이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직업만큼 투철한 사명감과 냉정한 감성 그리고 참된 인간애를 필요로 하는 일은 없을 듯합니다.

문장이 아름답다거나 특별하지는 않습니다. 철학적 사유를 그럴듯하게 풀지도 않습니다. 그저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오며 보고 느끼고 깨닫게 된 사실을 담담하게 적어냈습니다. 꾸밈 없이 차분한 시선으로 일관합니다. 딸 하나와 아내가 있는 저자 자신의 삶을 비춰보며 가신 자들과 남은 자들의 뒷모습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의미 있는 삶이었다 할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저자 나름의 결론은, 마지막 순간에 우리에게 정말로 남는 건 사랑을 주고 받았던 추억이라는 진리입니다. 자살이나 범죄로 고인이 된 사람들은 주로 혼자 살고 있는 경우가 많았지만, 가족과 함께 거주하고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홀로 살았습니다. 특히 딸가족과 함께 살면서도 고독사한 어느 할머니의 경우는 정말 놀랍습니다. 외로움을 물질적인 사치로 달래고 살았던 것입니다. 떨어져 있는 자식에게 걱정 끼치지 않으려고 지병을 숨기고 홀로 살면서 술병이나 도벽으로 고독을 달랜 아버지들도 있었습니다. 현실적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자신의 꿈으로 고민하다 자살한 청춘들, 사랑이라는 열병으로 죽임을 당한 경우 등 안타까운 사연들. 이들이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을 수습하며 저자가 느낀 점들이 우리에게 거꾸로 삶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향해 걸어갑니다. 그 걸음은 별을 향해 걸어가는 한 발 한 발입니다. 별은 손에 잡힐 듯 떠있습니다. 아주 멀리 있는 별은 사실 가까이 있지요. 늘 우리를 바라보며 낮이든 밤이든 우리의 머리를 밝혀줍니다. 별은 천상에 떠 있는 무덤입니다. 결코 애닯아 할 무엇이 아니라 열심히 뚜벅뚜벅 걸어가야 할 본향입니다. ​그래서 천상병 시인은 ‘하늘로 돌아가리‘라고 노래했을까요.

저자는 에필로그 뒤에 부록으로 유품정리사가 알려주는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7계명‘을 적어둡니다.
정리해봅니다.

1. 삶의 질서를 세우기 위해 정리를 습관화하세요.
쓸모없는 물건은 과감히 버리거나 주변사람들에게 나눠주라는 말입니다.
사는 공간을 단순하고 청결하게 유지하라는 말입니다.

2. 직접하기 힘든 말이 있다면 글로 적어보세요.
당신이 떠나고 난 뒤 상실의 고통에 빠져 힘들어할 사람들을 위한 작은 배려가 됩니다.

3. 중요한 물건은 찾기 쉬운 곳에 보관하세요.
유품 정리 시 모르고 버려질 수 있다는 사실. 가족들에게 미리 알려두는 방법도 좋습니다.

4. 가족들에게 병을 숨기지 마세요.
모르고 있었던 자식이 죄책감에 시달려 마음의 병을 얻고 괴로운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5. 가진 것들은 충분히 사용하세요.
아낀다고 모으기만 하고 자신은 누리지 못하는 건 어리석은 일입니다.
가진 물건은 잘 사용하고 필요 없는 물건은 과감히 버리며 삽시다.

6. 누구 때문이 아닌 자신을 위한 삶을 사세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기 전에 많은 사람들이 겪는 것이 다른 사람에 대한 원망이라고 합니다.
그럴 바엔 이기적이더라도 자신을 위한 삶을 사는 게 낫습니다. 내가 잘 살아야 남도 도울 수 있습니다.

7. 결국 마지막에 남는 것은 사랑했던 사람과의 추억입니다.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남기세요.
당신의 마지막 순간을 따듯하게 감싸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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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1-07 16: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7계명은 인상적이네요. 캡쳐해놨습니다 ^^
5번 6번 7번이 너무 좋네요~!!

프레이야 2021-11-07 17:44   좋아요 3 | URL
그죠 새파랑 님. 1,2,3,4번도 현실적으로 아주 중요한 팁 같아요. 평소 정리하는 생활. 실제로 유품 정리하다가 장판 아래나 액자 뒤에 숨겨둔 걸 발견했다고 해요. 얼마전 뉴스 생각 나네요. 중고 냉장고 아래에 거금을 숨겨둔 사연요. 가족들에겐 어떤 식으로든 숨기지 않고 뭐든 알려두는 게 좋겠습니다. 글로 마음도 적어두고요.

북다이제스터 2021-11-07 19: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생각보다 유품정리사가 주변에 많더라구요.
집을 깨끗하게 정리해 주시는 분들이 유품정리를 겸하는 경우가 많은 걸 주변을 보며 알았습니다.
그만큼 우리에겐 정리해야 될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프레이야 2021-11-07 19:47   좋아요 2 | URL
그동안 많이 생겼나 봐요. ^^
그리고 필요한 직업인 것 같다는 생각 들더라구요. 의외로 유가족이 유품을 거부하는 일도 많고 그걸로 분쟁이 되는 경우도 있나 봐요. 한 가지 일에 꾸준히 매진한 분이 새삼 존경스럽더군요. 험한 경우도 많이 겪어야 해서 엄청 에너지 빼앗기는 일일건데 말이죠.
정말 수시로 정리하며 살아야겠어요.

mini74 2021-11-07 2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번부타 7번까지 모두 마음에 와닿아요.
저는 하나 더 욕심내자면 예쁜 속옷입고 가고 싶어요 ㅎㅎㅎ

프레이야 2021-11-07 22:15   좋아요 2 | URL
ㅎㅎ 그럼요. 그러자구요 우리.
누가 그러더라구요. 항상 이쁜 속옷 입고 나간다구요. 길에서 어떻게 사고 날 수도 있고 그럼 병원 응급실 가면 옷이 드러날건데 그러면서요.

hnine 2021-11-08 04: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디에 적어놓아야겠어요.
마지막이 언제가 될지 미리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오늘이 더 소중해지네요.
그 ‘오늘‘을 많이 웃으며, 속 끓이지 않으며 살기로해요.

프레이야 2021-11-08 04:37   좋아요 1 | URL
앗 안 주무시고. 일찍 일어나신 건가요. 오늘을 하루하루 즐겁게 쌓으면 일주일 한달 일년이 되겠어요 ^^

happiness 2023-10-25 0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독서평 읽고 후기는 처음 남겨봅니다. 아빠와 작별한지 1년. 아직도 유품정리를 못했고 못하겠고 그저 슬프고 아프기만 합니다. 책 꼭 읽어볼께요. 혹시 독서동아리 하시면 같은 회원 하고 싶네요. 후기글 감사합니다!🙏

2023-10-25 09: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https://www.dongsuh.co.kr/03_maxwell/scrap.asp?idx=668

동서커피 사외보 기자가 인터뷰하고 가서 실은 내용.
5년 전 기록을 새삼 여기에 기록해 둡니다. 이런 때가 있었네요. 

코로나 사태로 도서관 강의와 녹음도 한동안 봉쇄하여
점자도서관 낭독녹음도 뜸한 지 2년이 다 되어 갑니다. 
이제 위드 코로나로 가면서 내년부터는 
아니 빠르면 12월 정도부터 다시 열심히 하기로 스스로 약속합니다. 
눈이 좀 안 좋으니 무리되지 않도록 살살 달래가면서.
김훈의 <연필로 쓰기>
절반 정도 녹음하고 중단한 상태인데 어서 마저 해야겠습니다.
236쪽 중간 10번 파일 중간쯤에서 멈추었네요.
문학동네 이연실 편집자의 책입니다.


 













나는 세종로 네거리에서 광화문, 경복궁, 청와대 그리고 북악산, 북한산 쪽을 바라보는 내 고향 서울이 경관을 사랑한다. 이 경관 속에서 인공의 구조물들은 산하의 리듬에 안겨 있어서, 거칠게 돌출하지 않는다. 인간세의 핵심부가 자연의 한가운데 둥지를 틀면서 조화와 질서를 이루는데, 이 절서는 억압적이지 않다. 거듭되는 난세에도 나는 이 경관을 바라보면서 정의롭고 강성한 공화국의 앞날을 생각한다. 이 경관은 음풍농월하는 유산객의 산수가 아니고, 은밀한 향토의 명승지가 아니다. 이 공간은 지속과 생성의 힘이 분출하는 서울의 정치적 공간이다. 조선 개국의 엘리트들은 이 공간을 왕조를 버티는 존재의 축선으로 삼아서 북악의 산세가 낮아지는 남쪽 사면에 경복궁을 건설했다. 500여 년 후에 조선총독부는 경복궁 신무문 밖 후원을 헐어서 이 축선의 노른자위 부분에 조선총독의 집무실과 관저를 지었다. 역대 조선총독들과 해방 후에 진주한 조선주둔군 사령관 하지 중장, 그리고 이승만 이후의 모든 대한민국 대통령들이 이 자리에서 집무하고 기거했는데, 여기가 바로 지금의 청와대이다. 역사의 지층은 단순명료하지 않다.

 (235-236쪽)


연필은 내 밥벌이의 도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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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 컬렉션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 기념판) - 전11권 - 가난한 사람들 + 죄와 벌 + 백치 + 악령 +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석영중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1월
평점 :
품절


성평등 감수성까지 보완하고 원작에서 빠뜨린 부분 하나 없이 수록했다니 더욱, 묵직한 장정에 소장 가치 돋굽니다. 알림 신청하고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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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11-01 19: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우와~ 부러워용!! 전 자랑질 기다립니다~ㅎㅎ

프레이야 2021-11-01 22:00   좋아요 2 | URL
ㅎㅎ 요거 22일 발매더라구요.
알림 오면 제까닥~

희선 2021-11-02 0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나오는 날 기다려지겠습니다


희선

프레이야 2021-11-03 12:47   좋아요 1 | URL
넵. 기다리면 오겠지요 ^^

페크pek0501 2021-11-03 1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흠흠~~ 겹치는 책이 몇 권 있는데 그래도 독서광들은 아마 구매할 것 같네요.
전 11권, 탐납니다. ^^

프레이야 2021-11-03 12:48   좋아요 1 | URL
그쵸 ^^ 알라디더들은 이게 병이에요 병. 큰 지름신이 오랜만에 강림하셔서 맞아들여야 하겠죠.

서니데이 2021-11-05 23: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사셨군요. 북펀드 보다 그냥 구매하는 게 더 나은 것 같은데요... 하려다 목표금액 달성했다고 하니, 그쪽도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번엔 그냥 지나가려고요. 집에 책이 많아서요.
프레이야님, 즐거운 주말과 기분 좋은 금요일 되세요.^^

프레이야 2021-11-06 09:39   좋아요 1 | URL
서니 님 저도 그냥 미리 알림 신청만 해 뒀어요. 22일 나온대요 ^^ 진짜 안 읽고 둔 책만 읽어도 배부를건데 또 지름신이 수시로 강림하니 큰일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