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 새로 나왔네요. 표지 바꾸고 저자 이름에도 한 분이 더 합류되었어요. 원래 저자 김새별 님은 제가 이 책을 부산점자도서관에서 낭독녹음할 때만 해도 유품정리사로서 생경한 직업에 사회적으로도 덜 알려져 선입견과 편견에 상처도 입고 힘들게 작업하셨던 분인데 얼마전 티비 모 프로그램에서 나온 걸 보고 무척 반가웠습니다. 한 길을 꾸준히 오래 한눈팔지 않고 정진하며 자신의 일에 자부심과 보람을 느낀다는 게 보였고 여러모로 성장한 모습도 보였어요. 이제 업체도 커진 것 같고 직원도 여럿이겠지요. 제 목소리를 담은 녹음도서가 부산점자도서관에 있고 그걸 들은 한 분이 참 좋았다고 피드백 해 주셔서 또 기뻤던 기억이 납니다. 이 책 권해 드리고 싶어요. 삶의 의미를 돌아보고 지금의 삶에 좀 충실할 수 있는 현실적인 생각도 드는 책입니다. 현장에서 보고 느낀 걸 소박한 문장으로 쓴 책이에요. 새로 나온 책은 표지가 좀 더 강렬합니다.



아래는 예전에 어느 책 소개 코너에 썼던 글


현재 초등학생들이 성인이 되어 사회에 진출할 즈음이면 기존의 직업이 많이 사라져 새로운 직업군에 종사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인공지능이라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기계가 인간의 머리를 대체하여 손과 발이 되어줄 가능성도 더욱 커집니다. 그에 맞게 지금부터 새로운 교육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평생교육 또한 필요하다고 합니다. 성인도 40세 이후, 50세 이후가 되면 재교육을 받아야 하는 새로운 사회 교육 시스템이 정립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나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인간만의 능력이 분명 있을 테지요. 감성이라든지 창의성, 소통과 감사의 영역에서 기계가 일정 부분 대신한다 해도 그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특히 사람이 진정한 마음으로 섬세한 손을 놀려서 하는 작업에 기계가 들어서기엔 한계가 있지요. 이 책의 저자, 김새별은 이름만 보고 여자인 줄 알았는데 남자입니다. 유품정리사라는 직업이 있는 줄도 처음 알았습니다. 이 책의 부제는 ‘유품정리사가 떠난 이들의 뒷모습에서 배운 삶의 의미‘입니다.

​김명민, 하지원이 나왔던 영화 <내 사랑 내 곁에>가 생각납니다. 하지원이 장례지도사로 나왔지요. 저자 김새별은 대학시절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을 목도하고 장례지도사가 되었습니다. 이후 유품정리사가 되어 죽은 사람의 집을 청소하고 유품들을 정리하여 유가족의 손에 넘겨주는 일을 합니다. 장례지도사도 생소한 직업이었지만, 유품정리사는 더욱 낯선 직업입니다. 열악한 직업환경이라는 점은 시작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지만 그래도 지금은 직원도 있고 등록도 되어 있는 전문적인 직업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매일 죽음의 현장으로 출근합니다. 범죄로 사망한 경우와는 달리 고독사나 자살인 경우, 주검은 꽤 시간이 지나 발견됩니다. 그 현장을 몸소 치우는 일은 상상 이상으로 힘든 일일 것입다. 시체가 부패하여 악취가 진동하고 구더기가 들끓고 강아지나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까지 죽었거나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현장을 청소, 소독, 정리하는 일이니 말입니다. 떠난 사람의 흔적을 치우고 남겨진 물건을 정리합니다. 전기장판 아래 깔려 눌어붙은 지폐도 있고 집안 구석구석 오줌이 꽉 찬 소주병도 있습니다.

놀랍게도 고독사는 비단 독거노인들의 일만이 아닙니다. 청년실업자, 지방출신 일류 대학생, 히키코모리 등 사회적 마이너리티들의 목숨 또한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의 무관심만 탓할 수는 없습니다. 유품정리사는 마을 사람들의 편견도 심하게 받습니다. 집주인은 집값이 떨어질까 쉬쉬하고, 유가족은 값나가는 것을 혹여나 놓칠까 전전긍긍하고, 이웃은 장비를 실은 커다란 차가 골목에 들어서는 것부터 꺼립니다. 저자는 몸도 마음도 너무나 고된 일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정적으로도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될 것 같으니 감정노동이 가장 심한 직업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유품정리사라는 직업을 특별히 여겨 보수 면에서 기대를 갖고 문의해 오는 젊은이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직업만큼 투철한 사명감과 냉정한 감성 그리고 참된 인간애를 필요로 하는 일은 없을 듯합니다.

문장이 아름답다거나 특별하지는 않습니다. 철학적 사유를 그럴듯하게 풀지도 않습니다. 그저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오며 보고 느끼고 깨닫게 된 사실을 담담하게 적어냈습니다. 꾸밈 없이 차분한 시선으로 일관합니다. 딸 하나와 아내가 있는 저자 자신의 삶을 비춰보며 가신 자들과 남은 자들의 뒷모습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의미 있는 삶이었다 할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저자 나름의 결론은, 마지막 순간에 우리에게 정말로 남는 건 사랑을 주고 받았던 추억이라는 진리입니다. 자살이나 범죄로 고인이 된 사람들은 주로 혼자 살고 있는 경우가 많았지만, 가족과 함께 거주하고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홀로 살았습니다. 특히 딸가족과 함께 살면서도 고독사한 어느 할머니의 경우는 정말 놀랍습니다. 외로움을 물질적인 사치로 달래고 살았던 것입니다. 떨어져 있는 자식에게 걱정 끼치지 않으려고 지병을 숨기고 홀로 살면서 술병이나 도벽으로 고독을 달랜 아버지들도 있었습니다. 현실적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자신의 꿈으로 고민하다 자살한 청춘들, 사랑이라는 열병으로 죽임을 당한 경우 등 안타까운 사연들. 이들이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을 수습하며 저자가 느낀 점들이 우리에게 거꾸로 삶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향해 걸어갑니다. 그 걸음은 별을 향해 걸어가는 한 발 한 발입니다. 별은 손에 잡힐 듯 떠있습니다. 아주 멀리 있는 별은 사실 가까이 있지요. 늘 우리를 바라보며 낮이든 밤이든 우리의 머리를 밝혀줍니다. 별은 천상에 떠 있는 무덤입니다. 결코 애닯아 할 무엇이 아니라 열심히 뚜벅뚜벅 걸어가야 할 본향입니다. ​그래서 천상병 시인은 ‘하늘로 돌아가리‘라고 노래했을까요.

저자는 에필로그 뒤에 부록으로 유품정리사가 알려주는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7계명‘을 적어둡니다.
정리해봅니다.

1. 삶의 질서를 세우기 위해 정리를 습관화하세요.
쓸모없는 물건은 과감히 버리거나 주변사람들에게 나눠주라는 말입니다.
사는 공간을 단순하고 청결하게 유지하라는 말입니다.

2. 직접하기 힘든 말이 있다면 글로 적어보세요.
당신이 떠나고 난 뒤 상실의 고통에 빠져 힘들어할 사람들을 위한 작은 배려가 됩니다.

3. 중요한 물건은 찾기 쉬운 곳에 보관하세요.
유품 정리 시 모르고 버려질 수 있다는 사실. 가족들에게 미리 알려두는 방법도 좋습니다.

4. 가족들에게 병을 숨기지 마세요.
모르고 있었던 자식이 죄책감에 시달려 마음의 병을 얻고 괴로운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5. 가진 것들은 충분히 사용하세요.
아낀다고 모으기만 하고 자신은 누리지 못하는 건 어리석은 일입니다.
가진 물건은 잘 사용하고 필요 없는 물건은 과감히 버리며 삽시다.

6. 누구 때문이 아닌 자신을 위한 삶을 사세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기 전에 많은 사람들이 겪는 것이 다른 사람에 대한 원망이라고 합니다.
그럴 바엔 이기적이더라도 자신을 위한 삶을 사는 게 낫습니다. 내가 잘 살아야 남도 도울 수 있습니다.

7. 결국 마지막에 남는 것은 사랑했던 사람과의 추억입니다.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남기세요.
당신의 마지막 순간을 따듯하게 감싸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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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1-07 16: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7계명은 인상적이네요. 캡쳐해놨습니다 ^^
5번 6번 7번이 너무 좋네요~!!

프레이야 2021-11-07 17:44   좋아요 3 | URL
그죠 새파랑 님. 1,2,3,4번도 현실적으로 아주 중요한 팁 같아요. 평소 정리하는 생활. 실제로 유품 정리하다가 장판 아래나 액자 뒤에 숨겨둔 걸 발견했다고 해요. 얼마전 뉴스 생각 나네요. 중고 냉장고 아래에 거금을 숨겨둔 사연요. 가족들에겐 어떤 식으로든 숨기지 않고 뭐든 알려두는 게 좋겠습니다. 글로 마음도 적어두고요.

북다이제스터 2021-11-07 19: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생각보다 유품정리사가 주변에 많더라구요.
집을 깨끗하게 정리해 주시는 분들이 유품정리를 겸하는 경우가 많은 걸 주변을 보며 알았습니다.
그만큼 우리에겐 정리해야 될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프레이야 2021-11-07 19:47   좋아요 2 | URL
그동안 많이 생겼나 봐요. ^^
그리고 필요한 직업인 것 같다는 생각 들더라구요. 의외로 유가족이 유품을 거부하는 일도 많고 그걸로 분쟁이 되는 경우도 있나 봐요. 한 가지 일에 꾸준히 매진한 분이 새삼 존경스럽더군요. 험한 경우도 많이 겪어야 해서 엄청 에너지 빼앗기는 일일건데 말이죠.
정말 수시로 정리하며 살아야겠어요.

mini74 2021-11-07 2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번부타 7번까지 모두 마음에 와닿아요.
저는 하나 더 욕심내자면 예쁜 속옷입고 가고 싶어요 ㅎㅎㅎ

프레이야 2021-11-07 22:15   좋아요 2 | URL
ㅎㅎ 그럼요. 그러자구요 우리.
누가 그러더라구요. 항상 이쁜 속옷 입고 나간다구요. 길에서 어떻게 사고 날 수도 있고 그럼 병원 응급실 가면 옷이 드러날건데 그러면서요.

hnine 2021-11-08 04: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디에 적어놓아야겠어요.
마지막이 언제가 될지 미리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오늘이 더 소중해지네요.
그 ‘오늘‘을 많이 웃으며, 속 끓이지 않으며 살기로해요.

프레이야 2021-11-08 04:37   좋아요 1 | URL
앗 안 주무시고. 일찍 일어나신 건가요. 오늘을 하루하루 즐겁게 쌓으면 일주일 한달 일년이 되겠어요 ^^

happiness 2023-10-25 0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독서평 읽고 후기는 처음 남겨봅니다. 아빠와 작별한지 1년. 아직도 유품정리를 못했고 못하겠고 그저 슬프고 아프기만 합니다. 책 꼭 읽어볼께요. 혹시 독서동아리 하시면 같은 회원 하고 싶네요. 후기글 감사합니다!🙏

2023-10-25 09:4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