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영화 <곡성>을 보았다. 재밌는 영화였고 잘 만든 영화라는 점에선 의심할 여지가 없다. 또한, 이 영화가 완벽한 쓰레기라는 것도. 대다수 평론가들이 독버섯에 취한 듯 영화에 홀려 <곡성>의 본질을 놓치고 있다니! 한국 영화 평론은 어쩌다가 이 정도까지 우매하고 천박하고 타락한 걸까. <곡성>의 주제는 한 문장으로 요약 가능하다.
‘니들이 나를 악마로 만들었다.’
이게 나홍진이 <곡성>을 통해 하소연 하고 싶었던 말이다. 영화판의 ‘소문’에 따르면, 나홍진은 인간이 아니다. 악마다. 영화를 위해 영혼을 판 ‘메피스토적 악마’라면 그의 예술혼에 경의를 표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단지 히틀러, 전두환 같은 ‘파시스트 형’ 악마다. 나홍진은 같이 작업하는 스텝들의 인격을 눈곱만큼도 존중하지 않는 걸로 악명이 높다. 그는 주변의 동료들을 ‘목적’이 아니라, ‘도구’로 사용한다. 나홍진은 <곡성>을 통해 자신을 악마라 부르는 이들을 향해 제대로 한풀이를 하신다.
<곡성>은 악의 입장에서 기술한 ‘악의 진술서’다.
피해자 코스프레 ‘악’
나홍진은 영화 후반부에서, 대중이 마치 아무 죄 없는 일본인(악)을 차별하는 것처럼 묘사한다. 더군다나 종구(곽도원)와 그의 친구들은 떼로 몰려 가 일본인을 살해하려 한다. 누가 악이고 누가 선인가? (요리조리 잘도 도망 다니던 일본인은 왜 갑자기 종구와 친구들 앞에 ‘짠’하고 선물처럼 내려온 걸까.) 나홍진은 이방인에 감정이입을 하지 않았을까. ‘나는 아무 죄가 없는데 니들이 나를 악으로 몰았어’
일광(황정민)은 곡성을 벗어나려다 나방떼의 습격을 받고 도로 곡성으로 돌아가, 자신의 과업을 달성한다. 종구를 현혹하기. 일광은 악을 행하고 싶어서 행하는 게 아니라, 강제에 의한 것이었다. 나홍진의 페르소나는 주로 일본인(이방인), 아니면 일광이다. 나홍진은 일광을 통해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나는 원래부터 나쁜 놈이 아니야, 먹고 살려다 보니 그런 건데, 왜 나를 욕해? 나도 피해자라고.’
네 탓이다.
누누이 말하지만, 지배계급에 기생하는 지식인들은 사회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키려고 발악을 한다. <곡성> 역시 마찬가지다. 방에 없는 효진(김환희)을 찾아 나선 종구에게 무명(천우희)은 말한다. “니가 의심했으니까”. 의심하지 않았으면 효진은 악마의 낚시 줄에 걸리지 않았단 말인가. (무명의 말을 믿고, 무명 옆에 죽치고 있었으면 아내와 장모는 살아났을까. 금어초 결계는 도대체 언제 친 걸까? 딸이 나가기 전에? 종두가 나가기 전에? 종두가 나간 후에?)
악마는 사제에게 말한다. ‘네가 이미 의심했잖아.’ 악마의 말은 이런 뜻이다. 내가 악마가 된 것은 나 때문이 아니다. ‘네가 나를 악마로 생각한 이상, 나는 악마가 되었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즉, 내가 악마가 된 것은 내 탓이 아니다., 네 탓이다.’
수호신과 인간들
수호신인 무명(천우희)이나 주인공 종두를 비롯한 마을 사람 모두 희화적으로 묘사되는 것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나홍진이 주변의 인간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나홍진은 자신 외에 다른 사람을 다 ‘바보’로 생각한다. 신? 신이 있으면 뭐할 것인가? 방관자에 불과한데. 너희들이 나를 악마로 만들었으니 나는 기꺼이 악마가 되겠다. 그러니, 싸그리 다 죽여주마. 이게 나홍진의 의식 표면 밑에 깔린 심리다.
나홍진은 영화감독이 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연쇄살인범이 되지 않았을까. <곡성>은 악을 탐구하는 영화가 아니다. <곡성>은 악의 변론서다. 악마의 ‘곡성’에 평론가들마저 놀아나는 것은 실로 끔찍한 일이다. 돈만 되면, 재미만 있으면 그만인가? 너나 할 것 없이 신자유주의에 ‘사로잡힌 영혼’들뿐이다. 나홍진은 오늘날의 도덕적 불감증이 잉태한 악마다.
나약한 사람들에게 자유는 흔히 어둡고 적의에 찬 세계 앞에서 발가벗긴 채 무방비 상태로 서 있는 모습으로 이해되는데, 이런 상황에서 자신을 구원하는 유일한 방법은 낯선 자의 영혼을, 자기 자신의 인격을 깨부수는 것이다.
지그문트 바우만, <도덕적 불감증>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6/0705/pimg_7370211271448344.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