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엄의 ‘참된 인격‘에 관해서 다양하고 깊이있게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책
주옥같은 교훈들로 가득찬 투자의 명저
필립 피셔의 혜안을 수없이 많이 발견할 수 있는 투자의 고전
워렌 버핏이 ‘투자에 관한 책 가운데 가장 훌륭하다‘고 단언한 책
진정한 ‘투자‘의 핵심을 가르쳐 주는 책
















증시가 연일 오르고 있다.


증시가 이렇게 힘차게 솟아 오른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이렇게 실컷(?) 상승한 뒤에 이르러서야 이러한 결과를 놓고 그 원인들을 새삼 되짚어 보는 건 언제나 별 실익은 없는 경우가 많다.

다만, 이런 증시의 상승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한 사람으로서 이 늦은 밤에도 잠 못 이루며 일말의 자괴감을 느끼게 되는 건 다음의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외국인은 정말로 짧은 기간 동안에 한국증시에 상장된 기업들의 지분을 너무 싼 값에 너무 대량으로 쓸어담았다.
아래 그림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2011년 12월 19일부터 어제까지 증시 개장일 기준으로 '단 60일' 동안에 무려 10조원이 넘는 주식을 쓸어담아 갔다. 그것도 단지 지수를 11.7% 수준의 '미약한 상승'만 일으키면서 말이다.

이게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생각하면 그저 답답하고 한숨이 나온다. 수많은 개인투자자들과 펀드투자자들은 작년 여름 이후에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 강등과 그리스 디폴트 우려등으로부터 촉발된 유럽의 재정위기 등에 휩쓸려 엄청난 금액을 아주 헐값에 결국 외국인의 손에 무절제하게 넘겨준 꼴이 되었고, 결국 언젠가는 이보다 훨씬 더 비싼 값으로 외국인이 가져간 주식들을 되사들일 게 너무나 뻔해 보이기 때문이다.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다.

일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데 대하여 여러가지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겠지만, 여기에 한가지 꼭 덧붙여 지적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한국증시의 내노라 하는 전문가들 뿐만 아니라 증시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증권업계와 자산운용업계에 몸담고 있는 소위 오피니언 리더 분들의 '한심스럽기 짝이 없는 섣부른 오판'이 사태(?)를 이 지경에 이르도록 하는데 크게 일조했다는 점이다. 특히나 작년 여름 금융위기가 불어 닥치면서 주가가 급락하자 말자 '앞으로는 미증유의 약세장이 지속될 것'이라면서 '건전한 상식'(위기는 반드시 극복된다)이 아예 숨쉬지조차 하지 못하도록 목청을 드높여 부르짖었던 사람들을 지금 다시 떠올려 보면, '한국 금융시장의 한심스런 수준'을 재삼 절감할 수 밖에 없고('그들'은 2007년의 그 뜨겁던 호황의 끝무렵에는 오히려 증시가 끝도 없이 오를 것처럼 호도했었다.) 그래서 더더욱 이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괜한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두번째로 드는 자괴감은 조금 더 개인적인 사정에 연유하는 일이이서 좀 더 나의 피부에 와닿는 얘기와 관련이 있다.

대학에 다니면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투자론을 배우고,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비교적 매우 훌륭한 여건 속에서 오랫동안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 경력을 두루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나는 여전히 내나름대로 설정한 '목표에 한참이나 못미치는' 한심스런 수준에서 맴도는 것 같은 '나의 현실'에 대한 답답함 때문이다.

최근에 주변 사람들과 두세번 얘기했던 '흔한 후회'는 가령 이런 것이다. '10여년 전에 삼성전자가 3만원 아래에 머물러 있을 때 가령 1억만 묻어뒀더라면.... 지금쯤엔 적어도 40∼50억은 되어 있었을 것이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꼭 '삼성전자를 놓친 것'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아래의 두 종목만 봐도 그렇다.

인터플렉스라는 종목의 경우에는 불과 3년여 만에 주가가 47배나 올랐다. 그런데 이 종목의 '장래성'을 간파하고 내 나름대로 두달 이상이나 열심히 분석을 했던 때가 2년쯤 전인 2010년 1월 경이었고, 그 당시 이 종목의 주가는 9,000원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나는 이 종목을 열심히 연구분석만 했을 뿐, 단 1주도 보유해 보지 못했다. 아직까지도 계속 처다보고만 있다. 피터린치의 표현을 빌리자면, '한마디로 '꽝'이다.'

'영풍'이라는 종목은 그나마도 나은 경우이다. 이 종목은 8년쯤 전에 4만원 전후에 머무르고 있을 때 '참 좋은 주식인데..... 거래량이 너무나 적다' 싶어 손을 대보지 못하고 계속 구경만 하던 종목이었다. 그러다가 뒤늦게 상승 랠리에 동참해서 꽤나 수익을 얻었던 종목이다. 그런데 2007년에 80만원 언저리에서 모조리 처분한 뒤에 금새 다시 찾아온 절호의 매수기회(2008년 가을 금융위기 당시 18만원대까지 하락)에 구경만 했을 뿐이고, 지금 되돌아보니 이 주식은 2004년 이후 '무려 9년째' 연봉 기준으로 양봉을 계속 그려나가고 있다. 9년 동안 한 해도 연초 대비 오르지 않은 해가 없었다는 얘기다.
 



증시와 종목에 대해서는 언제나 '뒤돌아보면' 너무나 쉽다. 미래를 내다보면 늘 불투명하고 알 수 없는 듯싶지만 '내가 충분히 잘 알고 있는 분야'에만 집중해서 연구하고 분석해보면 그리 어렵지 않게 생각될 때도 있다. 그렇게 건전하게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언제나 '시간의 틀'을 길게 가져가는 데 있는 것 같다. 증시 참여자들 모두 너무 지나친 '단견'에 치우쳐 일을 그르치는 우는 범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벤저민 그레이엄은 그의 책 『현명한 투자자』의 맨 끝 부분을 다음과 같이 아주 인상깊게 마무리했다.

물론 우리는 평소 신중하면서도 기민한 자세로 대처하는 모든 현명한 투자자에게 이와 유사한 화려한 경험을 약속할 수는 없다. 우리는 시작할 때 우스개 소리로 했던 "모든 사람이 부자가 될 수 있다"라는 J.J.Raskob의 슬로건으로 끝맺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증권시장에는 흥미로운 가능성들이 넘쳐나니, 현명하고 적극적인 투자자는 이 떠들썩하고 즐거운 서커스에서 즐거움과 이익을 모두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흥분의 도가니를 보장한다.

그의 책 『현명한 투자자』를 펼쳐보니 구입한 날짜가 1996. 2.26이다. 어느새 세월이 그렇게도 많이 흘러갔구나 싶고, 그동안 나는 뭘했나 하는 자괴감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벤저민 그레이엄과 워렌 버핏의 가르침에 따라 '가치투자와 장기투자'를 고집해 온 덕분에 아직까지도 여전히 '즐거운 서커스에서 즐거움과 이익'을 찾고 있는 것에 위안도 가지게 된다.

벤저민 그레이엄이 '보장한다'고 했던 '흥분의 도가니'는 그동안 서너차례 경험해 봤지만 가장 최근의 경험은 2007년 여름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올해는 10년 전부터 눈여겨 봤었고 5년 전부터 꾸준히 투자해 온 종목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 어쩌면 내 투자 경력에서 매우 인상적인 또 하나의 '흥분의 도가니'가 지금 열심히 만들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요즘엔 '흥미로운 가능성들' 때문에 이래 저래 바쁘기도 하고 조금은 설레기도 하고 그렇다.

밤늦도록 글을 쓰고 보니 제목과는 영 어울리지 않는 '반전'으로 마무리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또 글 제목을 달리 바꿀 생각도 별로 들지 않으니 그대로 둘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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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2 15: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24 1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연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와서 그런지 라디오에서도 은근히 '분위기'를 띄우는 것 같다.
최근 일주일 사이에 1FM을 통해서 21일의 공연 레퍼토리인
[코다이-『갈란타의 춤』, 멘델스존-『바이올린 콘체르토』, 바르톡 -『관현악단을 위한 협주곡』]

운좋게 모두 다 들어본 것 같다. 공연장에서는 과연 어떤 감동이 느껴질지 벌써부터 설렌다.

 * * *

재닌 얀센 ( Janine Jansen ) 내한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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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endelssohn Violin Concerto, Janine Jansen 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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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 콘세르트 허바우 & 정명훈

2012 . 2 . 21 (화) 오후 8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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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2-14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 너무 미인이에요. 평범하지 않은 꽤 아름다운 연주가 될 것 같네요. ㅋ
예술의 전당이라면 우리집에서 가까운 곳이네요. 하지만 여기에 갈 여유가 이번달엔 없을 듯해요.
요즘 딴데에 정신이 팔려 있어요.ㅋㅋ

하지만 후기를 올려 주시면 꼭 보러 올 것입니다.ㅋ

추신 : 지난번 오렌님이 답글 달아 주신 글을 읽고 그 통찰력에 감탄했어요. 다음의 글입니다.
"pek님께서는 분명히 책을 통해 더 지혜로워진 게 틀림없으리라 믿습니다. 다만 '점점 바보가 되는 느낌'은 '기준'이 바뀌었기 때문일 꺼예요. 책을 점점 더 많이 읽을수록 종전보다 훨씬 더 '높은 기준'이 생겨날 테고, 그런 새로운 기준에 비춰봐서 자기 자신이 바보가 되는 것처럼 착각할 뿐이겠지요. " - 정말 이랬으면 좋겠어요.

oren 2012-02-15 01:16   좋아요 0 | URL
pek님 댁이 예술의 전당과 가까운 곳이라니 무척이나 부럽습니다. 제가 사는 곳은 그곳과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어서 정말 '큰 맘'을 먹고 가야만 한답니다. 그리고 '후기'에 대한 기대는 정말 언감생심입니다. 저는 아직까지는 그저 음악을 좀 더 자주 듣고 느끼고 즐기고 싶을 뿐, 음악에 대해 글을 쓰는 일은 감히 상상도 해보기 힘들답니다.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음악은 저로서는 도대체 말로는 '설명하기가 너무 힘든' 예술 분야로 느껴집니다. 미술이나 건축이나 조각도 '물론' 마찬가지겠지만요...
* * *
세계에 대한 음악의 묘사적인 관계는 극히 절실하고, 무한히 진실하며, 핵심을 찌른 관계여야 한다. 그러나 음악과 세계의 비교점, 즉 음악이 세계에 대해 모방 또는 재현이라는 관계에 서 있다는 점은 깊이 감추어져 있다. 어떤 시대에도 사람들은 음악을 영위하면서도 이 점을 설명할 수 없었다. 그들은 음악을 직접 이해하는 데 만족하여, 이 직접적인 애해를 추상적인 개념으로서 파악하는 것은 단념해 버린다.
- 쇼펜하우어

oren 2012-02-15 01:16   좋아요 0 | URL
음악의 효과

우리의 세계는 이데아들이 개별화의 원리(개인이 인식가능한 형식)에 들어감으로써 다원성으로 되어 현상된 것에 불과하지만, 음악은 이데아를 뛰어넘는 것이기 때문에 현상 세계에도 의존하지 않고 세계가 존재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는 존재할 수 있다. 즉, 음악은 결코 다른 예술들처럼 이데아의 모상이 아니라 '의지' 전체의 '직접적인' 객관화와 모사이며, 그런 점에서 세계 그 자체와 같고, 곧 다양하게 현상하여 개체의 세계가 되는 이데아들과 같다. 따라서 음악은 결코 다른 예술들처럼 이데아의 모상이 아니라 '의지 그 자체의 모상'이며, 이데아도 이 의지의 객관성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음악의 효과는 다른 예술들의 효과보다 훨씬 강하고 감명 깊은 것이다. 다른 예술은 그림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음악은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789쪽)

-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음악에 대하여] 中에서

2012-02-15 2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밑줄긋기 요약)


1. 예술작품으로 재현된 이데아는 사람의 마음을 각자의 지적 가치의 정도에 따라 끌어당기는 것이다.

2. 그들은 남몰래 언제나 그러한 걸작에 유죄 선고를 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가,
    
자기를 노출하지 않을 수 있다는 자신만 서면, 전부터 마음이 끌리지 않았고, 바로 그 이유로 ······
    오랫동안 억눌러 온 증오심을 터뜨리고 만다.

3. 겸손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명성을 얻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 *

(본문)

그런데 '이데아'는 개념의 적절한 대표라고 정의할 수는 있지만, 순수하게 직관적이고 무수한 개체를 대표하면서도, 또한 철저하게 규정된 것이다. 이데아는 개체에 의해서는 결코 인식되지 않고, 모든 의욕과 개성을 넘어서 순수한 인식 주관에까지 올라간 사람에 의해서만 인식된다. 따라서 이데아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은 오직 천재와 많은 경우 천재의 작품에 자극되어 자기의 순수한 인식력이 고양된, 천재적인 정서를 갖게 된 사람만이 가진다. 그러므로 이데아는 그대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제약 밑에서만 전달될 수 있다. 즉, 예술 작품으로 재현된 이데아는 사람의 마음을 각자의 지적 가치의 정도에 따라 끌어당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 즉 천재의 가장 고귀한 작품은 어리석은 대중들에게 영원히 닫혀진 책으로 머물러야만 하고, 또 폭넓은 심연으로 갈라져 접근할 수 없어서, 마치 왕들의 교제가 서민들에게는 접근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아주 평범한 사람들도 정평 있는 걸작의 권위를 인정하여 자기의 약점을 보이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남몰래 언제나 그러한 걸작에 유죄 선고를 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가, 자기를 노출하지 않을 수 있다는 자신만 서면, 전부터 마음이 끌리지 않았고, 바로 그 이유로 그들을 굴욕스럽게 한 위대한 것과 아름다운 것에 대해, 또 이것들을 창조한 사람들에 대해, 오랫동안 억눌려 온 증오심을 터뜨리고 만다. 그도 그럴 것이 적어도 타인의 가치를 자유롭게 인정하고 반대하지 않으려면, 자신도 가치를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미 중에서도 겸손이 꼭 필요한 것은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이것과 유사한 덕 가운데 겸손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명성을 얻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떻게 해서라도 뛰어난 사람을 찬양하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 덕을 그 사람에 대한 찬사에 덧붙여서, 타인의 환심을 사고 무가치함에 대한 노여움을 진정하려고 한다. 비열한 질투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겸손이란, 장점이나 공적을 가진 사람들이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걸하는 수단으로 취하는 거짓 겸손 외에 무엇이겠는가? 정말로 가지고 있지 않은 자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하지 않는 것은 겸손한 것이 아니라 정직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762쪽∼763쪽)


  - 쇼펜하우어,『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예술 작품의 개념과 이데아'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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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사회를 이해하는데 있어 놓쳐서는 안 될 명저 가운데 한 권

 

 

 

桐千年老恒藏曲(동천년로항장곡)
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불매향)
 - 상촌(象村) 신흠(申欽·1566~1628)


"오동나무는 천년을 늙어도 가락을 잃지 않고, 매화는 일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참으로 고상한 한시가 있다. 그런데 내가 '상금'을 받기 위해 쓰는 글은 추워서 쓰는 글도 아니고, 또 '향기'가 날 리도 없다. 그러니 상금을 받기 위해 내가 허접한 리뷰를 여럿 쓴다고 해서 굳이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를 닮지 못함에 빗대고 나 스스로를 탓할 필요는 별로 없어 보인다.

나는 몇 달 전에 '다독왕에게 주는 상품권 10만원'에 눈이 멀어 벼락치기로 리뷰를 쓴 적이 있는데, 그 때 1박2일의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무려 50편의 리뷰를 썼었다(사내 도서관에 등록된 5,000권에 한해서 해당도서를 '클릭'하고 '리뷰'를 디지털로 등록하는 시스템이었다). '독서 이벤트'가 있다는 사실을 하필이면 마감 이틀 전에 알았기 때문에 일어난 헤프닝이었다.

50편의 리뷰 가운데 16편은 마침 이 곳 알라딘에 올려 놓은 게 있어서 단지 옮겨 붙이기만 했을 뿐이고, 나머지 34편의 리뷰는 일하는 짬짬이 오로지 '리뷰쓰기'만을 중시하여 날림공사를 하듯이 마구잡이로 대충 쓴 것이었는데, 지난 주말밤에 문득 그 '부실공사'를 닮은 리뷰들이 생각나서 무턱대고 한꺼번에 이 곳 알라딘에 '등록'했다.
 
즉흥적으로 마구 쓴 변변치 못한 리뷰들을 굳이 알라딘에 올린 이유를 굳이 합리화하자면, 혹시라도 '책'을 고르기 위해 알라딘의 리뷰를 살펴보게 될 미지의 독자들에게는 그것 조차도 티끌만큼의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떠올렸기 때문인데, 이럴 경우에는 해당 상품(도서)에만 리뷰를 등록하되 즐겨찾는 이웃에게는 '노출'이 되지 않도록 선택할 수 있는 '버튼'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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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내 도서관(The Library) 장서 5000권 돌파 기념 이벤트 발견!


2. '독서왕 다독이'에 이틀 동안 50편의 리뷰를 올리고......




3. 문화상품권 10만원 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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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책 읽고 독후감 쓰고 '상금까지' 덤으로 얻는 건 어쨌든 기분좋은 일인 것 같다.


초등학교에 다닐 땐 '고전읽기 경시대회'에 '선수'로 선발되어 '방과후'마다 학교에 남아서 몹시 어려운 '아동용 고전'을 읽기도 했었는데, 정작 대회에 나가서 얻은 소득이라고는 완전히 '꽝'이었다.(경시대회에 '참여'했다는 것이 전부였다.)

개인적으로 독후감을 써서 '상'을 타 본 건, 사회 초년병일 때가 처음이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23년 전의 일인데, '사내 독후감 대회'가 있었고, 마침 그 때 읽고 있었던 헤르만 헤세의 작품을 '200자 원고지'에 수십장을 빼곡히 써서 응모했는데, 심사위원들이 '원고지의 분량'에 감동했는지 내게 최우수상을 줬고, 나는 사장님으로부터 표창장과 함께 부상으로 '은수저 2세트'까지 받았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총각일 때라 나는 '부모님께' 기쁜 마음으로 은수저를 선물해 드릴 수 있어서 참 뿌듯했던 기억이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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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보에 실린 '독후감'




그 당시 내가 근무했던 회사의 '사보'에 실린 모습을 보니, 저렇게 많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맨 끝에는 (다음호에 계속)이라고 되어 있다. 국한문을 혼용해서 쓴 모습도 지금 보니 이채롭기만 하다.


 
5. 기나긴 독후감(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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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을 쓰면서 '상금'까지도 덤으로 받는 경험을 얘기하자면 단연 '알라딘'을 빼놓을 수 없다. 나는 2004년 가을에 '한 편'의 리뷰 덕분에 운좋게 무려 15만원의 상금을 받은 경우도 있는데, 그땐 정말 '알라딘'이 너무 너무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물론 요즘은 리뷰를 자주 쓰지 않기 때문에 적립금을 받는 일이 매우 드물지만, 어쨌든 (작가가 아닌 일반 사람들이) 책을 읽고 글을 쓴 덕분에 '상금'까지 '덤'으로 받는 일은 언제나 즐거운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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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알라딘으로부터 받은 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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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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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2012-02-06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 드립니다. 일단 기본적인 양이 쌓여야 질이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상금이 업은 아니지만 덤이라고 생각하면 소소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

oren 2012-02-06 16:02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ㅎㅎ

stella.K 2012-02-06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좋은 회사 다니시는군요.
5000권의 장서를 구비해 놓은 회사라니 부럽습니다.
책 정말 많이 읽으시네요.
물만두님도 생전에, 질 보다 양이라고 하셨습니다.
잘 쓰는 건 둘째고 기록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알라딘이 언제 한꺼번에 15만원 준 적도 있나요? 대단하십니다.
저는 지금의 알라딘 적립금 좀 불만인데
언제쯤 이 정책에 변화가 있을런지 모르겠어요.ㅠ
암튼 축하드립니다.^^

oren 2012-02-06 19:53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서 한 때는 '리뷰 하나'로 15만원을 받는 일도 가능했답니다.
저는 그 당시 이주의 마이리뷰에 당첨되어 5만원을 받았는데, 그 리뷰가 이달의 최우수작으로 선정되면서 또다시 10만원을 더 받게 되었답니다. 알라딘의 적립금 제도에 대해 저는 별 관심이 없는 편인데, 혹시 불합리한 점들이 있다면 이용자들이 원하는 좋은 병향으로 바뀔 날이 있겠지요.

페크pek0501 2012-02-07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놀랐어요. 아니 안 놀랐어요. 오렌님이 책 많이 읽으시고 글 많이 쓰시고 당선 경험도 많으실 줄 알았어요. 제 안목의 탁월함을 믿으면요. ㅋㅋ

"즐겨찾는 이웃에게는 '노출'이 되지 않도록 선택할 수 있는 '버튼'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 - 요딴 생각을 하지 마세요. 섭해요. ㅋ

oren 2012-02-07 13:18   좋아요 0 | URL
pek님께서는 서운해 하실지 몰라도, 제 생각에는 머지 않아 '즐겨찾는 이웃에게는 노출되지 않는 옵션'이 아마도 제공될 것 같습니다. 제가 알라딘 서재지기님께 '건의사항'을 말씀드렸더니 글을 등록할 때 '여러가지 노출 옵션'을 제공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중'이라는 매우 고무적인 답변이 달려 있더라구요. ㅎㅎ

라로 2012-02-07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오렌님 2004년에도 알라딘에 계셨군요!!
알라딘 선배님이셨군요!!^^
글을 써서 상을 받는 사람들이 부럽고 대단해 보이는데 오렌님도 그런 분이셨군요!!^^
저는 글을 써서 알라딘 말고 상 받은 곳이 없어요,,몇 번 이달의 당선작에 뽑혔는데 기분이 좋더군요,,2만원이라도,,ㅋㅋ
그런데 오렌님 너무너무 귀여우세요,,
"그땐 정말 '알라딘'이 너무 너무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여기서 너무 너무 라고 쓰시니까
저와 갑자기 더 가까와지신것 같아요,,제가 원래 너무너무 잘 쓰잖아요,,ㅎㅎㅎㅎ
전 지금도 알라딘이 너무 너무 좋은 곳이라고 생각해요,,^^

oren 2012-02-08 09:31   좋아요 0 | URL
알라딘 경력은 오래 됩니다만 옛날엔 주로 도서구입을 위해서만 이곳을 이용했었답니다. 그러다가 한동안은 리뷰를 좀 쓰게 되었구요. 또 한편으로는 제가 '장기간 동안 잠수' 상태였던 적이 여러번 있었던 것 같아요. 일부러 그러는 것도 아닌데, '노는 데 정신이 팔리다 보면' 6개월씩 혹은 1년씩 '접속'조차 안했던 시기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곳에서 소위 '블로그' 활동(?)을 한 걸로 치자면 저는 풋내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ㅎㅎ

2004년에 알라딘으로부터 받은 상금 15만원은 제게는 '굉장한 거금'으로 느껴지더군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도 잘만 하면 '돈이 되는구나' 싶은 생각까지 들었으니까요. ㅎㅎ
 
독서의 편린들

 

 

 

 











최근에 알라딘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된 (그래서 자꾸 생각나는) 인물이 있는데, 바로 몽테뉴라는 사람이다.

그를 주인공으로 모신 책이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제목을 달고 나온 걸 알라딘을 통해 알았는데, 원제 역시 'How to Live'이다. 부제를 보니 이 '하나의 질문'에 대해 20가지 '몽테뉴의 대답'을 엮어 만든 책인가 보다. 알라딘의 책소개를 좀 더 살펴보니  "몽테뉴 입문서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책"이라고 한다. 여기에다 더욱 흥미를 끄는 '책 소개'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프랑스의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는 어떻게 몽테뉴에게 접근해야 할지 궁금해 하는 친구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그 책은 재미를 찾는 어린아이처럼 읽지 마라. 야심 찬 사람처럼 교훈을 얻으려고 하지도 마라. 그 책은 ‘살기 위해서’ 읽어라.”



이쯤되면 정말 문제의 촛점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몽테뉴에게 접근할 것인가'가 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런데 '몽테뉴의 수상록'을 제대로 읽기 위해 꼭 '입문서'부터 먼저 읽는 게 과연 바람직한 '독서법'인가에 대해서는 여러모로 생각해 볼 여지가 있을 것 같다. '몽테뉴의 생각'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그래서 몽테뉴와 직접 만나서 그의 숨소리를 들어가며 그와 이야기를 직접 나누고 있다는 착각 속에 빠져들만큼 그를 아주 가까이에서 느끼고 싶다면) 무엇보다 먼저 '몽테뉴'가 쓴 책을 직접 펼쳐 읽어보는 게 가장 좋다고 본다.

물론 몽테뉴의 수상록이 워낙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는 두툼한 책이어서 쉽게(?) 집어들지 못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의 책은 난해한 철학책이라기 보다는 '수상록'이라는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어쨌든 '에세이'에 가깝다.(비록 알라딘에서는 '인문학>철학 일반> 교양 철학'이라고 분류해 놓았지만 말이다)

 

 

쉽게 읽기 어려운 책들은 물론 많다. 심지어 소설 조차도 '히말라야의 고봉'처럼 오르기가 불가능한 산처럼 느껴지는 작품들도 있다. 내게는『율리시스』라는 작품이 그런 류의 책으로 보이는데, 이 두툼한 책을 볼 때마다, (젊을 때 나름대로 '암벽등반'을 열심히 배우고 나서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어갈 무렵에 맞닥뜨리게 된) '인수봉'과 같은 거벽 앞에 마주선 느낌이 들곤 한다. 왠지 모르게 '인정해야만 할 것 같은' 미묘한 감정과 '곤란함'과 '막막함'부터 맛보는 것이다.

『평생독서계획』을 쓴 클리프턴 패디먼은 제임스 조이스의『율리시스』에 대해 독자들에게 '세 가지 사항'을 권하고 싶다고 했는데(『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먼저 읽어라,『율리시스』의 경우 먼저 훌륭한 주석서를 읽어라, 주석서를 읽고 나서도 『율리시스』는 읽기가 쉽지 않다. ······ 읽을 수 있는 데까지 읽어라. 그런 다음 책을 내려놓았다가 1년 뒤에 다시 시작하라.), 나는 좀 더 무모하게 (패디먼의 권고를 아예 무시하고) 일단『율리시스』를 틈나는 대로 들춰보곤 한다. 물론 아직은 본격적으로 읽을 엄두는 나지 않지만, 높은 산을 오르고 싶은 '본능' 때문에 봉우리를 힐끔힐끔 올려다 보는 그런 심정을 느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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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프턴 패디먼이『율리시스』에 대해 쓴 글을 조금 더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율리시스』는 침투하기가 불가능한 소설처럼 보인다. 이 높은 산은 단숨에 걸어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만 올라갈 수는 있다. 이 산의 정상에 오르면 아주 풍요로운 광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

이 책은 읽으면 알 수 있는 책이 아니다. 베토벤의 후기 현악 4중주곡들이 오래 듣고 연구할수록 그 풍부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듯이, 오로지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만 그 비밀스러운 뜻을 드러낸다. ······


『율리시스』를 읽으려고 시도했다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모험이다. 또 독자들에게 큰 소득을 안겨줄 것이다.

 - 클리프턴 패디먼, 『평생독서계획』中에서



클리프턴 패디먼이『몽테뉴의 수상록』에 대해 쓴 글도 있다.

 

지난 4세기 동안 고전으로 읽혀 온 역사가 증명하듯이, 독자는 곧 몽테뉴의 매력, 지혜, 유머, 스타일, 정신적 경향에 호응하게 된다. 그는 처음에 견인주의자로 시작했으나, 곧 인간에 대해서 회의적인 견해를 품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냉소적이거나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모든 것에 흥미가 있었으나 그 어떤 것도 확신하지 않았다. 그의 모토는 "나는 무엇을 아는가?" 였다. 그의 상징은 한 쌍의 저울이었다. 그는 카톨릭 신자로 태어나 평생 카톨릭으로 살았고 죽을 때에는 종부성사를 받았다. 하지만 그의 저작은 자유주의 사상이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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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몽테뉴를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아예 (몽테뉴의 입문서보다) 몽테뉴의 수상록부터 먼저 읽으라고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다. 특히 최근에 쇼펜하우어가 쓴 책 속에서 발견한 '책구절'은 나의 이런 (입문서를 거치지 않고 원저작을 직접 읽는 게 좋다는) 평소의 생각을 더욱 굳히는 계기가 되었다. 다소 길기는 하지만 쇼펜하우어의 '몹시도 강렬한' 주장을 여기에 소개해 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사실 나는 어려운 철학책은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못되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철학책'이 재미있게 읽히는 게 '나 스스로도'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최근 몇년 동안 만난 철학자들이라고 해봐야 기껏 세네카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키케로, 그리고 아담 스미스와 쇼펜하우어 정도에 불과하지만, 그들의 책 속에 무수히 등장하는 고대 스토아학파의 철학자들과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도 머지 않은 장래에 다시 만나보고 싶고, 또한 여태껏 전혀 만나보지 못한 철학자들인 하이데거와 베르그송의 책들도 예전에 사놓고 모셔 두기만 했었는데, 요즘 들어서 조금씩 들춰보고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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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의 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철학적 성찰에 있어서는 이상하게도 자기 자신 때문에 생각하고 탐구하고 한 자만이 뒤에 가서 타인의 이익도 되지만 처음부터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정하여진 것은 다른 사람의 이익이 되지 않는다. 사람이 자신을 위하여 생각하고 탐구하고 하는 것은 무엇보다 먼저 일반적인 성의(誠意)라는 성격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사람은 자기 자신을 기만하려고는 하지 않는 것이고, 또 자기 자신에게 씨없는 호도(胡桃)를 주지 않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모든 궤변과 미사여구는 없어지고 그 결과 간단히 기록하여 둔 문장도 그것을 읽으면 읽을 만한 가치가 있게 된다. (500쪽)

 -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제2판 서문 中에서


 

따라서 이러한 입장에 있는 사람과 칸트철학을 이해한 사람과의 관계는 미성년과 성년과의 관계와 같다. 이 진리는 이성비판이 출판되고서 30년 동안은 조금도 역설적인 기분은 없었지만 오늘에 와서는 역설적으로 들리게 된다. 그렇게 된 이유는 칸트를 모르는 자들이 많아지고 칸트의 거작을 소홀하게, 혹은 성급하게 읽든지 또는 간접적인 소개문으로서 읽는 자가 많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시 그들이 올바르게 지도를 받지 못함으로 평범한, 따라서 철학하기에 맞지 않는 두뇌들의 철학적 논의와 또는 무책임하게도 세상 사람들이 이런 무리들에게 천거하는 궤변가들의 철학적 논의를 갖고 다니면서 시간을 낭비하였기 때문이다. 기초적인 여러 개념의 혼란이나 또 총체적으로 이러한 교육을 받은 무리들이 스스로 철학적인 학설을 세우고 멋대로 과대평가하며 자부심에 도취하는 것과 같은 형용할 수 없는 무례함과 저잡성은 바로 여기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그러나 칸트철학을 다른 사람들의 서술에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구제할 수 없는 그릇된 견해에 사로잡힌 자들이다. ······ 그러므로 칸트의 저작은 칸트가 잘못 생각하고 있을 경우에도 그 틀린 경우마저 모두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가 있다. 그는 독창성을 찾고 있기 때문에 모든 참된 철학자에 관해서 본래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들은, 그에 관한 한 최고도로 말할 수 있다. 즉 참된 철학자는 그들 자신의 저서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이고, 다른 사람의 보고에서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비범한 정신을 가진 철학자들의 사상은 평범한 두뇌에 의한 여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형형(炯炯)한 빛을 발하는 양 눈의 위 넓고도 아름다운 이마에서 나온 사상은, 개인적인 목적을 추구하는 둔한 눈초리가 박힌 좁고 압축된 두꺼운 두개골 속에 불편스럽게 밀어넣고, 낮은 지붕을 덮어서 쓸모 있게 만들어 놓으면 힘과 생명을 모두 잃고 전연 다른 것으로 변질되고 마는 것이다. 말하자면 요철(凹凸) 거울과 같아 거기에 비치면 무엇이든 우툴두툴하게 보이고, 자체가 갖는 미의 조화를 잃은 채 조악하게 되어 버린다. 철학적 사상은 다만 그 사상을 수립한 사람 자신으로부터만이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철학을 연구하는 것을 갈망하는 사람은 철학에 관한 영원한 스승을, 그 스승의 저작인 고요한 성전(聖殿) 속에서 구하여야 한다. 참된 철학자들이 만든 저작의 어느 것을 보더라도 그 주요 장절(章節) 속 학설에는 범속한 두뇌의 소유자들이 행하는, 산만하고 사시적(斜視的)인 보고의 백배에 해당하는 것 같은 식견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더우기 이와 같은 범속한 인간들은 대개 그때그때의 유행 철학에 심히 사로잡혀 있거나 자기 자신의 생각 속에 파묻혀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세인들이 제3자의 손에 의해서 서술한 쪽을 더 좋아한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이 경우에는 실제로 친화력이 작용하는 것같이 생각되며 그렇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은 자기와 비슷한 것에 끌리고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가 이야기한 것도 다른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들으려고 한다. 이것은 아마 어린이들이 자기와 비슷한 것으로부터 가장 잘 배울 수 있다는 상호교수의 학설과 동일한 원리 위에 서 있는 것 같다. (506쪽)

 -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제2판 서문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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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몽테뉴의 수상록을 처음으로 접한 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입학을 앞둔 '1980년 겨울'이었던 것 같다. 그 당시 시골의 따스한 온돌방에 배를 깔고 엎드려 그 두툼했던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느라 '밤하늘에 빛나는 별과 함께' 시골의 겨울밤을 만끽하던 그 시절이 몹시도 좋았고 또 그립다. 그 때의 감동을 잊지 못해 나중에는 군대에 가서도 몽테뉴의 수상록을 챙겨 들고 '병영에서의 몽테뉴와의 만남'을 즐겼던 기억도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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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칠 현삼제(古七現三制)......  2004. 2.27 18:43    (http://cafe.naver.com/leadersbookclub/166)

누구는 '고칠 현삼제(古七現三制)'를 취하는 버릇이 있으나, 그것도 오히려 치우친 생각이요,
중용이 좋다고나 할까?

 - 양주동의 면학의 서(書)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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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연히 군대('83-'85)에서 기록했던 독서노트를 발견했는데..
독후감까지 자세히 적혀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더랬습니다.
독서 목록을 보고 나니..고칠현삼제라는 말이 문득 떠오르더군요..
학창시절이나 군대 있을때는 세상 물정도 잘 모르던 때라 당연히 고전들만 찾게 되는
시절인데..젊을 때 고전들을 많이 읽지 못했던게 두고 두고 아쉬움으로 남는군요..
나이 사십 넘어서 이문열 삼국지를 읽어 보니 고교때 월탄 박종화님의 삼국지를 읽던 때의
그 가슴벅찬 감동들은 온데 간데 없고..온갖 권모술수들만 눈에 들어오더군요..
그때 그 유명한 '늙어서는 삼국지를 읽지마라'는 말을 절감했더랬습니다..

제 경우에는 워낙 책을 잘 안 읽기도 했지만,
요즘들어 느끼는 점 하나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실용서적 중심으로 책을 읽다 보니
고전에서 느껴지는 책의 향기 같은 게 없어서 많이 아쉽다는 점입니다.
독서에는 때가 없다고도 생각되지만, 고전을 집어들 여유가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독서에도 때가 있는건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참고 : 입대후 읽었던 책 목록..)

1. 파우스트(J.V.P. 괴테)
2. 소유냐 삶이냐(E.프롬)
3. 단절의 시대 (P.드러커)
4. 백년동안의 고독(G.마르께스)
5. 파리대왕(W.골딩)
6. 적과 흑(상,하)(스탕달)
7. 구토(J.P.사르트르)
8. 아들과 연인(상,하)(D.H.로렌스)
9. 백경(상,중,하)(H.멜빌)
10. 서울 1964년 겨울(김승옥)
11. 어린 왕자(생떽쥐페리)
12. 좁은 문(A.지드)
13. 이중인격(도스토예프스키)
14.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F.니체)
15. 영원한 자유인이 되기 위하여(크리슈나무르티)
16. 이 영원한 삶의 진리를 찾아서(R.M.릴케)
17. 정상에서 만납시다(G.지글러)
18. 데미안(H.헷세)
19. 역사의 연구 Ⅰ,Ⅱ (A.토인비)
20. 국가/소크라테스의 변명(플라톤)
21. 사회경제사(막스 베버)
22. 군주론/리바이어던(N.B.Machiavelli/T.Hobbes)
23. 방관자의 시대(피터 드러커)
24. 수상록(몽테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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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도 한때는 몽테뉴를 무척이나 부러워했던 것 같다. 중세 유럽의 프랑스에서 그림같은 '성'에서 살며, 평생동안 수많은 '책'들을 읽으며, 또 수많은 시간들을 '생각'에 잠겨 지내며 '훌륭한 글'을 듬뿍 남기고 떠난 그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한번쯤 '동경할 만한 이상적인 인물'로 비춰졌을 법하다.  아무튼 나에겐 몽테뉴 하면 무엇보다 먼저 '책과 독서'부터 연상되곤 하는데, '독서명언 100'과 같은 리스트에도 그의 명언은 어김없이 늘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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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명언 100선


주자(朱子)

책을 읽으려면 먼저 마음을 안정시켜 고요한 물이나 맑은 거울 같게 해야 한다. 어두운 거울이 어찌 이치나 사물을 제대로 비출 수 있겠는가.

Mark Twain
(1835~1910)

좋은 책을 읽지 않는다면, 책을 읽는다고 해도 문맹인 사람보다 나을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Daniel J. Boorstin

베스트셀러? 그저 잘 팔렸으니까 베스트셀러겠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Charles Caleb Colton
(1780~1832)

읽는 사람에게 생각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 책들이 많다. 그렇게 된 까닭은 간단하다. 그 책을 집필한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고 집필했기 때문이다.

Gaston Bachelard
(1884~1962)

아침부터 내 책상 위에 쌓인 책 앞에서 책읽기의 신에게 이 독자로 하여금 책을 탐독하게 해 주십사 기도 드린다. 저 높은 하늘에 있는 천당은 하나의 거대한 도서관이 아닐까?

Desiderius Erasmus
(1466~1536)

약간의 돈이 생길 때마다 나는 책을 산다. 그렇게 하고 남는 돈이 있을 때, 비로소 나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산다.

김현

책 읽기가 고통스러운 것은, 책읽기처럼 세계를 살 수 없기 때문이다.

Marcus Tullius Cicero
(106~43 BC)

책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방, 그것은 영혼이 없는 육신일지니.

Jorge Luis Borges
(1899~1986)

도서관은 영원히 지속되리라. 불을 밝히고, 고독하고, 무한하고, 부동적이고, 고귀한 책들로 무장하고, 부식하지 않고, 비밀스런 모습으로.

William Morris
(1834~1896)

모든 인간 사회가 지녀야 할 즐거운 목표가 있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집, 그리고 아름다운 책이다.

Franz kafka
(1883~1929)

우리 머리에 주먹질을 해대는 책이 아니라면, 우리가 왜 그런 책을 읽어야 한단 말인가.

Robert G. Ingersoll
(1833~1899)

사랑을 배워라, 특히 좋은 책을 사랑하는 것을 배워라. 세상의 모든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보물이 좋은 책 안에 들어있다. 배우고 노력하고 애쓰지 않는다면 그 보물을 찾을 길은 없다.

Ralph Waldo Emerson
(1803~1882)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많은 경우에, 자신의 미래를 만든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Anatole France
(1844~1924)

모든 사람이 칭찬하고 존숭하는 책, 그런 책은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일 가능성이 크다.

Edward G. Bulwer-Lytton
(1803~1873)

과학이라면 가장 새로운 것을 읽고, 문학이라면 가장 오래 된 것을 읽는 편이 좋다.

Steven Spielberg
(1947~ )

한 세대의 독자들이 결국 한 세대의 필자들로 이어질 것이다.

William Shenstone (1714~1763)

조심할지어다. 책에서 얻은 지식이 진짜 세상에서 얻은 지식을 방해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Austin O'Malley (1858~1932)

서평을 하는 사람들, 그들은 출판사가 개최한 서커스 공연에서 일하는 호객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Margaret Walker
(1915~  )

내 나이 여덟 살 때 나는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세상에서 인간 다음으로 가장 놀랍고 훌륭한 것은 다름 아닌 책이라고 말이다.

Marcus Tullius Cicero
(106~43 BC)

정원과 서재를 갖추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필요한 것은 모두 갖춘 셈이다.

Mortimer Adler (1902~ )

모든 책은 빛이다. 다만 그 빛의 밝기는 읽는 사람이 발견하는 만큼 밝아질 수 있다. 결국 독자에 따라서 그것은 빛나는 태양일 수도, 암흑일 수도 있다.

Joe Bob Briggs

어떻게 책을 집필하는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다. 정말로 책을 집필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써야하는지 설명하지 못할 것이다.

Amy Lowell (1874~1925)

책은 책 이상이다. 차라리 그것은 삶 그 자체이다.

Martin Luther (1483~1546)

모든 위대한 책은 그 자체가 하나의 행동이며, 모든 위대한 행동은 그 자체가 한 권의 책이다.

Gustave Flaubert (1821~1880)

어떤 책이 좋은지 판단하는 기준은, 그 책이 얼마나 강한 펀치를 당신에게 날리는가 하는 점이다.


 

 

Henry David Thoreau

한 사람이 책을 읽음으로써 그 얼마나 많은 새로운 시대와 만날 수 있는지!

Paxton Hood

읽을 책을 고를 때는 친구와 사귈 때 못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우리의 습관이나 성격은 친구보다 오히려 책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Henry Ward Beecher

분명히 책은 집을 장식하는 가구나 장식품이 아니다. 그러나 책처럼 집을 아름답게 가꾸어 주는 것도 드문 것이 사실이다.

Katherine Mansfield

같은 책을 읽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때, 책읽기의 기쁨은 두 배가 된다.

Yevgeny Zamyatin

인간이 유인원이기를 멈추고, 결국 유인원을 극복하게 된 날은 아마도, 인류 역사상 첫 번째 책이 집필된 날일 것이다.

Erica Jong

열 살 때 나는 지독한 책벌레였다. 나는 책표지의 저자 사진에 입을 맞추곤 했다. 나와 시간적,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저자들을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 이처럼 놀라운 사실도 없다.

Kin Hubbard (1868-1930)

참고 기다리는 사람이 결국 원하는 모든 것을 얻기 마련이다. 다만, 남에게 빌려 준 책은 제외하고.

구양수
(송나라 유학자)

책읽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 세 가지 장소가 있다. 침상, 말안장, 그리고 화장실.....책을 읽고자 하는 뜻이 진실하다면 그 장소야 무슨 문제이겠는가.

증국번
(청나라 유학자)

진정으로 책을 읽고 싶다면, 사막에서나 사람의 왕래가 잦은 거리에서도 할 수 있고, 나무꾼이나 목동이 되어서도 할 수 있다. 책을 읽을 뜻이 없다면, 조용한 시골 가정이나 신선이 사는 섬이라 할지라도 책읽기에 적당 치 않을 것이다.

율곡 이이

반드시 한 가지 책을 익히 읽어서 그 안의 참된 이치와 뜻을 모두 깨달아 모두 통달하고 의심이 없게 된 연후에야, 비로소 다른 책을 읽을 일이다. 여러 가지 책을 탐내어 이것저것을 얻으려고 분주히 섭렵해서는 안된다.

Austin Phelps

낡고 오래된 코트를 입을 지언정, 새 책을 사는데 게을리 하지 말라.

Mark Twain (1835 - 1910)

건강 도서는 무척 조심해서 읽지 않을 수 없다. 잘못 인쇄된 내용만으로도 죽을 수 있으니 말이다.

H.L. Mencken (1880 - 1956)

책에는 두 종류가 있다. 아무도 읽지 않는 책, 그리고 아무도 읽어서는 안되는 책.

Ralph Waldo Emerson (1803 - 1882)

출간되고 나서 1년 이상이 지나지 않은 책은 절대로 읽지 마라.

Ronald Reagan

정치란 그렇게 나쁜 직업은 아니다. 성공을 거둔다면 많은 보상이 기다리고 있으며, 설혹 실패한다고 해도 책 한 권은 족히 쓸 수 있으니 말이다.

Alan King

사랑과 결혼에 대해 읽고 싶은가? 그렇다면 반드시 다른 두 책을 사서 읽을 일이다.

John Burrough

내가 진정으로 생각하고 싶은 모든 것을 생각하기에는, 내가 진정으로 걷고 싶은 만큼 걷기에는, 내가 진정으로 읽고 싶은 모든 책을 읽기에는, 내가 진정으로 만나고 싶은 모든 친구들을 만나기에는.....나의 하루는 여전히 짧기만 하다.

Walter Bagehot

좋은 책이 집필되는 경우가 왜 이처럼 드문지 아는가? 무엇이든 제대로 알고 집필하는 사람이 그만큼 드물기 때문이다.

Winston Churchill

격언집을 읽는 것은 무지한 사람에게는 무척 좋은 일이다.

홍자성의 <채근담> 중에서.

책을 읽으면서 성인이나 현자를 보지 못한다면, 그는 글씨를 베끼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찰스 램

나는 산책하지 않으면 책을 읽는다. 그저 앉아서 생각만 하는 것은 어렵다. 책이 내 생각을 대신해 준다.

존 로크

독서는 다만 지식의 재료를 줄뿐이다.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사색의 힘이다.

괴테의 <파우스트> 중에서.

만 권의 책을 읽었지만, 여전히 내 몸은 서럽기만 하다.

에드먼드 버크

인생은 매우 짧다. 더구나 조용한 시간은 너무도 짧다. 한 시간이라도 너절한 책을 읽어서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

데 발로

절대로 배반하지 않는 친구를 사귀고 싶은가? 그렇다면 책과 사귀어라.

 

르네 데카르트

좋은 책을 읽는 것은 지난 몇 세기에 걸쳐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과 같다.

존 밀턴

한 권의 좋은 책은 위대한 정신의 귀중한 활력소이고, 삶을 초월하여 보존하려고 방부 처리하여 둔 보물이다.

루소

책의 남용은 과학을 죽인다. 읽은 것을 아는 것이라 생각함으로써, 우리는 한번 읽은 것은 더 이상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버린다. 지나친 독서는 주제넘은 무식꾼을 만들어 낼 뿐이다.

벤자민 디즈레일리

책은 인류의 저주다. 현존하는 서적의 9할은 시시한 것이고 똑똑한 책은 그 시시함을 논평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내려진 최대의 불행은 인쇄의 발명이다.

볼테르

아무리 유익한 책이라도 그 반은 독자가 만든다.

세네카

웅장한 도서관은 오히려 독자를 혼동하게 만든다. 아무거나 읽기보다는 소수의 저자로 한정하는 편이 낫다.

존 킷츠

우리는 훌륭한 책을 많이 읽더라도 저자와 같은 경험을 하기 전까지는 그 내용을 실감하며 이해하기 어렵다.

게오르그 리히텐베르크

세상에서 책만큼 기묘한 상품도 드물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 인쇄되고,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 팔리고,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 장정(裝幀 )되고, 검열되고, 읽힌다. 또한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 집필된다.

사무엘 존슨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읽어야 한다. 일거리처럼 읽은 책은 대부분 몸에 새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윈스턴 처칠

쓸데없는 생각이 자꾸 떠오를 때는 책을 읽어라. 쓸데없는 생각은 비교적 한가한 사람들이 느끼는 것이지 분주한 사람이 느끼지 않는다. 우리는 한가한 시간이 생길 때마다 유익한 책을 읽어 마음의 양식을 쌓아 두어야 한다.

에드먼드 버크

사색 없는 독서는 소화되지 않는 음식을 먹는 것과 같다.

에즈라 파운드

사람이 18세와 48세 때 같은 책을 좋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

세네카

마음만을 즐겁게 하는 평범한 책들은 지천으로 깔려 있다. 따라서 의심할 바 없이 정신을 살찌우게 하는 책만을 읽어야 한다.

존 러스킨

모든 책은 일시적인 것과 영구적인 것, 두 종류로 분류된다.

토마스 홉스

만약 내가 다른 사람들과 같은 정도로 독서를 했더라면, 다른 사람들과 같은 정도밖에 몰랐을 것이다.

안중근

단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

몽테뉴

가장 싼 값으로 가장 오랫동안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것, 바로 책이다.

루소

나는 책을 증오한다. 책은 내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말하는 방법만을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파브르

누구에게나 정신에 하나의 큰 획을 그어주는 책이 있다.

앙드레 지드

나는 책을 읽을 때 타인들이 내 책을 그렇게 읽어 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매우 천천히 읽는다.

토마스 제퍼슨

나는 책 없이는 살 수 없다.

토마스 헉슬리

나쁜 책도 쓰려면 좋은 책만큼 어렵다. 왜냐하면 그것도 저자의 영혼으로부터 성실하게 나오기 때문이다.

임어당

기분 좋은 잠과 부담 없는 독서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어느 경우에도 심장의 고동이 부드러워지고 긴장감이 풀리며, 마음은 냉정하게 된다. 최선의 독서는 잠자리 곁에서의 독서이다.

로버트 브라우닝

책은 남달리 키가 큰 사람이요, 다가오는 세대가 들을 수 있도록 소리 높이 외치는 유일한 사람이다.

S. R. N. 샹포르

연애가 결혼보다 즐거운 것은 소설책이 역사책보다 재미있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보르헤스

새들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물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책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다.

로망 롤랑

다급하게 책을 읽는 버릇을 가진 사람은 좋은 책을 천천히 읽어 나갈 때의 묘한 힘을 결코 알지 못한다.

E. 파게

독서는 천천히 해야 하는 것이 첫 번째 법칙이다. 이것은 모든 독서에 해당된다. 이것이야말로 독서의 기술이다.

R. 스틸

독서와 마음의 관계는 운동과 몸의 관계와 같다.

존 로크

독서는 지식의 재료를 공급할 뿐,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어디까지나 사고의 힘이다.

괴테

나는 책 읽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80년이라는 세월을 바쳤지만, 아직까지도 잘 배웠다고 말할 수 없다.

존 러스킨

인생은 짧다. 이 책을 읽으면 저 책은 읽을 수가 없다.

D. H. 로렌스

독서의 참다운 즐거움은 몇 차례고 거듭하여 읽는데 있다.

에머슨

좋은 책을 읽을 때면 나는 3천년은 더 사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리처드 밸리

독서와 황금을 함께 사랑할 수는 없다.

쇼펜하우어

책을 산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이와 함께 읽을 수 있는 시간까지 살 수 있다면 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만 책을 산 것만으로도 그 책의 내용까지 알게 된 것으로 착각한다.

E. A. 포우

책을 많이 읽을수록 독서력은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진다. 독서광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한눈으로 여러 대목을 살피며 읽어 낸다. 그리고 요점만 골라 낸다. 이에 따라 필요한 대목을 스스로 활용할 수 있다.

존 러스킨

책은 한 번 읽으면 그 구실을 다하는 것이 아니다. 재독하고 애독하며, 다시 손에서 떼어 놓을 수 없을 정도의 애착을 느끼는 데서 책의 그지없는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H. D. 소로우

책은 그것이 쓰여질 때처럼, 신중하게 절약해가며 읽어야 한다.

A. 베네트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훌륭한 독서는 불가능하다.

W. D. 하우엘즈

어떻게 해서든지 읽이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읽는 책은 결코 좋은 벗이 되지 못한다.

쇼펜하우어

악서는 읽지 않으려 해도 자주 접하게 되지만, 양서는 반드시 읽고자 해도 기회가 뒤로 밀린다는 것이 많은 독자들이 직면한 현실이다.

안지추

읽지 못했던 책을 읽는 것은 새로운 친구를 얻는 것과 같고, 이미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것은 세상을 떠난 친구를 다시 만나는 것과 같다.

진선유

세상에서 가장 한가로운 일은 배를 타고 유랑하는 것과 술마시고 장기나 바둑두는 것 등이지만, 이런 일들은 모두가 짝을 찾아야 하고 상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글 읽는 것 한가지 일만은 자기 한 사람만으로도 하루를 보낼 수도, 1년을 넘길 수도 있다.

볼테르

성서를 읽은 사람에게 영혼을 의탁하는 사람이 많지만, 성서를 진실로 공 들여 세밀하게 읽은 사람은 그들 가운데 50명이나 될까?

에머슨

번역이 있는데 원문으로 읽고자 고집하는 것은 보스턴으로 가는데 찰스 강을 헤엄쳐 건너려 하는 것과 같다.

베이컨

반대하거나 논쟁하기 위해 독서하지 말라. 내용을 그대로 믿거나 화술의 밑천으로 삼기 위해 독서하지 말라. 다만 생각하고 생활하기 위해 읽어라.

쇼펜하우어

읽은 내용을 하나도 잊지 않으려고 드는 것은, 먹은 음식을 몸 안에 고스란히 간수하려는 것과 다름 없다.

쇼펜하우어

나쁜 책을 읽지 않는 것이야말로 좋은 책을 읽기 위한 조건이다. 인생은 짧고 시간과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몽테뉴

나는 책을 읽을 때 어려운 부분과 만났다고 해서 결코 지나치게 골똘히 생각하지 않는다. 한두 번 고쳐 생각하다가 그냥 버려둔다. 그렇지 않고 어려운 부분을 계속 고집하면 자기 자신과 시간을 모두 잃고 만다.

출처 : http://www.kungr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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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뉴의 수상록은 또 '세계를 움직인 100권의 책'에도 꼽히는 '인류의 유산'이라고 할 만한 작품이다. 『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이라는 책을 쓴 모티머 J. 애들러는 '좋은 책이 우리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을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애들러의 설명에 따르더라도 몽테뉴의 수상록은 (이 세상과 독자 자신에 대해 가르쳐주는) '정말 좋은 책'인 것 같다


 

좋은 책은 열심히 읽으면 그 대가가 있다. 가장 좋은 책이 가장 좋은 것을 줄 것이다. 책으로부터 받는 것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어렵고 좋은 책을 붙잡고 씨름한 대가로 책을 읽는 기술을 향상시켜준다. 둘째, 좋은 책은 이 세상과 독자 자신에 대해 가르쳐준다. 이것이 훨씬 중요한 대가일 것이다. 인생을 배우는 것, 즉, 더 지혜로워진 것이다. 지식이나 정보만 제공해주는 책을 읽고 나서 더 많은 것을 알게 된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더 지혜로워진다는 것은 인생의 영원하고 위대한 진리를 보다 깊이 깨닫게 된다는 뜻이다. (360쪽)

 - 모티머 J. 애들러,『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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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움직인 100권의 책 <동아일보사 신동아 1968년 1월호 별책 부록>

<사상>

001 베다(Veda)(B.C. 1200~1500년경)
002 대장경(大藏經, 三藏, Tripitaka)(B.C. 1200~이래 2500여년 동안 성장 발전)
003 공자(孔子)/논어(論語)
004 플라톤(Platon)/대화록(對話錄, Dialogues)
005 장주(莊周)/장자(莊子)
006 성서(聖書, The Bible)(50~100년경)
007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고백(告白, Confessiones)(400년경)
008 코란(Holy Qu'ran)(640~60년경)
009 주희(朱熹)/사서집주(四書集註)(1252)
010 아퀴나스(Thomas Aquinas)/신학대전(神學大全, Summa Theologiae)(1266~73년경)
011 칼빈(Jean Calvin/그리스도교요강(敎要綱, 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1536)
012 몽테뉴(Michel de Montaigne/수상록(隨想錄, Essais)(1580)
013 데카르트(Rene Descartes/방법서설(方法敍說, Discourd de la methode)(1637)
014 파스칼(Blase Pascal/팡세(Pansees)(1670)
015 칸트(Immanuel Kant)/순수이성비판(純粹理性批判, Ktitik der reinen Vernunft)(1781)
016 헤겔(Georg Wilhelrm Friedrich Hegel)/정신현상학(精神現象學, Phanomenologie des Geistes)(1807)
017 키에르케고르(Sφrn Aabye KierKegaard)/철학적단편후서(哲學的斷片後書, Afsluttende uridenskabeling
efters krift til de philosophiske smuler)(1864)
018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1883~84)
019 베르그송(Henri Bergson)/시간(時間)과 자유(自由)(Essai sur donnees immediates de la conscience)(1889)
020 프로이트(Sigmund Freud)/꿈의 해석(解釋)(Die Traumdeutung)<1900>
021 훗설(Edmund Hussel)/(순수현상학(純粹現象學)과 현상학적 철학시론(現象學的 哲學試論)(Ideen zu einer reinen Phanomenologie und Phanomenologischen Philosophie)<1913~52>
022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논리철학논고(論理哲學論考)(Tractatus logico-philosophicus)<1922>
023 캇시러(Ernst Cassirer)/상징형식(象徵形式)의 철학(哲學)(Philosophie der Symbolischen Formen)<1923~29>
024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과학(科學)과 근대세계(近代世界)(Science and the Modern World)<1925>
025 하이덱거(Martin Heidegger)/존재(存在)와 시간(時間)(Sein und Zeit)<1927>


<역사․지리>

026 헤로도토스(Herodotos)/역사(歷史, Historiai)
027 사마천(司馬遷)/사기(史記)
028 현장(玄장)/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646>
029 마르코 폴로(Marco Polo)/동방견문록(東方見聞錄, The Description of the World)<1298>
030 이븐 바투타(Ibn Battutah)/여행기(旅行記, Rihlah)<1355~56>
031 이븐 할둔(Ibn khald?n /세계사(世界史, Universal History)<1375~78>
032 기본(Edward Gibbon)/로마제국쇠망사(帝國衰亡史, The History of the 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
<1776~88>
033 부르크하르트(Jakob Burckhardt)/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文化)(Die Kultur der Renaissance in Italian)<1860>
034 프레이저(Sir James George Fraser)/금엽지(金葉枝, The Golden Bough))<1911~15>
035 토인비(Arnold Toynbee)/역사(歷史)의 연구(硏究)(A Study of History)<1934~54)


<사회>

036 마키아밸리(Niccolo Machiavelli)/군주론(君主論, Il principe))<1513>
037 모어(Sir Thomas More)/유토피아(Utopia)<1556>
038 홉스(Thomas Hobbes)/리바이어던(Leviathan)<1651>
039 록크(Jhon Locke)/통치론(統治論, Two Treatises of Government)<1690>
040 몽테스큐(Charles Montesquieu)/법(法)의 정신(精神)(De l'esprit des loix)<1748>
041 룻소(Jean Jacques Rousseau)/사회계약론(社會契約論, Du contrat social))<1762>
042 스미스(Adam Smith)/국부론(國富論,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1776>
043 말사스(Thomas Robert Malthus)/인구론(人口論, 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1798>
044 마르크스(Karl Marx), 엥겔스(Friedrich 뚷딘)/공산당선언(共産黨宣言, Manifesto der Kommunistischen
Partei)<1848>
045 J. S. 밀(Jhon Stuart Mill)/자유론(自由論, On Liberty)<1859>
046 마르크스(Karl Marx)/자본론(資本論, Das Kapital))<1867~94>
047 레닌(Vladimir Il'ich Lenin)/제국주의론(帝國主義論, Imperializm, kak vysshaya stadiyn kapitalizma))<1917>
048 웨버(Max Weber)/경제(經濟)와 사회(社會)(Wirtschaft und Gesellshaft)<1921>
049 손문(孫文)/삼민주의(三民主義)<1924>
050 히틀러(Adolf Hitler) /나의 투쟁(鬪爭)(Mein Kamft)<1925~27>
051 만하임(Karl Mannheim)/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Ideologie und Utopia)<1929>
052 케인즈(John Maynard Keynes)/고용(雇傭)․이자(利子) 및 화폐(貨幣)의 일반이론(一般理論)(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1936>


<자연과학>

053 쿠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천체(天體)의 회전(回轉)에 대(對)하여(De revolutionibus orbium caelestium)<1543>
054 하비(william Harvey)/혈액순환(血液循環)의 원리(原理)(Exercitatio de motu cordis et sanquinis in animalibus)<1628>
055 뉴톤(Sir Issac Newton)/자연철학(自然哲學)의 수학적 원리(數學的原理)(philosopia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1687>
056 다윈Charles Darwin)/종(種)의 기원(起源)(On the Origin of Species)<1859>
057 파브르(Jean Henri Fabre)/곤충기(昆蟲記, Souvenirs entomologiques)r<1879~1910>
058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상대성원리(相對性原理, Das Relativitatsprinzip)<1913>
059 파블로프(Ivan Petrrovich Pavlov)/조건반사(條件反射, Conditioned Reflexes) <1924>
060 하이젠버그(Werner Heisenberg)/양자론(量子論)의 물리적 기초(物理的基礎)(Die physikalischen Prinzipien der Quantentheorie)<1930>


<문학․예술>

061 호메로스(Homeros)/일리아드(Illias), 오디세이(Odysseia)
062 이솝(Aisopos)/우화(寓話, Fables))
063 라마야나(Ramayana)
064 소포클레스(Sophocles)/오이디푸스왕(王)(Oidipus tyrannos)
065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시학(詩學, Peri poietikes))
066 플루타크(Plutarchos)/영웅전(英雄傳, Bioi paralleroi)<105~115년경>
067 아라비안 나이트(Alf Laylah wa Layiah)<850년경>
068 두보(杜甫)/두공부집(杜工部集)<1039>
069 이백(李白)/이태백문집(李太白文集)<1080>
070 단테(Alighieri Dante)/신곡(神曲, Ladivina commedia) )<1303~21>
071 나관중(羅貫中)/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1321~23년경>
072 셰익스피어(William Sakespeare)/햄리트(Hamlet)<1601>
073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돈키호테(Don Quijote)<1604>
074 밀튼(Jhon Milton)/실락원(失樂園, Paradise Lost))<1667>
075 괴테(Jhoann Wolfgang von Goethe)/파우스트(Faust)<1808~32>
076 포우(Edgar Allan Poe)/괴기담(怪奇譚, Tales of the Grotesques and Arabesques))<1830>
077 스탕달(Stendhal)/적(赤)과 흑(黑)(Le rouge et le noir)<1839>
078 발자크(Honore de Balzac)/인간극(人間劇, La commedie humaine)<1842>
079 워즈워스(William Wordworth), 콜리지(Samuel Taylor Coleridge) /서정민요집(抒情民謠集, Lylical Ballads))<1850>
080 멜빌(Hermann Melville)/백경(白鯨, Moby Dick)<1851>
081 휘트먼(Walt Whitman)/풀잎(Leaves of Grass)<1855>
082 도스토에프스키(Fyodor Mikhajlovich Dostoevskij)/죄(罪)와 벌(罰)(Prestuplenie i nakazanie)<1856>
083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악(惡)의 꽃(Les fleurs 여 mal)<1857>
084 유고(victor Hugo)/레미제라블(Les miserables)<1862>
085 톨스토이(Lev Nikoraevich Tolstoi)/전쟁(戰爭)과 평화(平和)<1864~69>
086 아놀드(Matthew Arnold)/교양(敎養)과 무질서(無秩序)(Culture and Anarchy)<1875>
087 입센(Henrik Ibsen)/인형(人形)의 집(Et dukkehjem)<1879>
088 트웨인(Mark Twain)/허클베리 핀의 모험(冒險)(The Adventures of Huckleberry Finn)<1884>
089 지드(Andre Gide)/배덕자(背德者, L'immoraliste)<1902>
090 조이스(James Joyce)/율리시즈(Ulysses)<1922>
091 엘리오트(Thomas Stearns Eliot)/황무지(荒蕪地, The Waste Land)<1922>
092 릴케(Rainer Maria Rilke)/두이노의 비가(悲歌)(Duineser Elegien)<1923>
093 토마스 만(Thomas Mann)/마(魔)의 산(山)(Der Zauberberg)<1924>
094 카프카(Franz Kafka)/성(城, Das Schloss)<1929>
095 로렌스(David Herbert Lawrence)/채털리부인(夫人)의 사랑(Lady Chatterley's Lover)<1928>
096 말르로(Andre Malraux)/인간조건(人間條件, La condition humanie))<1933>
097 사르트르(Jean Paul Sartre)/구토(嘔吐, La nausee))<1938>
098 까뮤(Albert Camus)/이방인(異邦人, Letranger)<1942>
099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노인(老人)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1952>
100 파스테르나크(Boris Leonidovich Pasternak) /의사(醫師) 지바고(Doktor Zhivago)<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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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몽테뉴와 만나면서 느꼈던 점 한가지는 그는 정말 '호기심'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인간의 마음'이야 말로 '아무리 열심히 들여다 보더라도' 여전히 탐구할 게 끝없이 흘러 나오는 '대우주에 버금가는 소우주'가 아닌가 싶은데, 몽테뉴가 평생 동안 알고 싶어했던 것이 바로 '그 자신'이었다는 점은 호기심 많은 그에게는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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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끄적여 두었던) '호기심'에 대한 글모음


■ 앙드레 코스톨라니

투자자가 된다는 것은 아주 멋진 일이다. 더군다나 나처럼 은퇴의 국면으로 들어간다면 말이다. 사실 그것은 일반적인 직업도 아니며, 성공을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매일 매일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지적 행위이며, 나처럼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필요하게 되는 정신 체조이기도 하다.


■ 랠리 웨이머스 (작가이자 캐서린 그레이엄의 딸)

버펫의 성공비결은 끊임없는 호기심에 있다.


■ 나폴레온 힐

우리의 근육이 운동과 끊임없는 사용을 통해 튼튼하고 탄력적으로 되듯이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 존 템플턴

어린 아이들이 이 세상과 그 복잡한 원리에 대해 갖고 있는 자연스러운 호기심을 북돋아 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는 잊기 쉽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박사는 말하기를
우리는 절대로 이같은 '성스러운 호기심"을 잃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런 호기심과 상상력, 기발함, 그리고 무엇이건 꼬치꼬치 캐물어보는 능력은 우리 스스로 이 놀라운 세상을 향해 마음을 닫아걸어버림으로써 너무나도 쉽게 사라져버린다.


■ 맹자

위대한 사람은 어릴적 마음을 잃지 않는 사람이다.


■ 앤서니 라빈스

인생에서 진실로 성장하고 싶다면 어린아이처럼 호기심을 가지는 법을 배워라. 아이들이 그토록 사랑스러운 것은 경이로운 것을 보고 놀라워하는 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루함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호기심을 가져라.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보면 세상에 하찮은 일은 단 한 가지도 없다.


■ 아이작 뉴턴

나는 바닷가에서 놀고 있는 어린아이와 같다.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많은 진리가 거대한 바다처럼 내 앞에 일렁이고 있다.


■ 몽테뉴

자만심과 호기심은 우리의 영혼의 두 가지 큰 재앙이다. 후자는 우리로 하여금 모든 일에 간섭하게 하고, 전자는 우리로 하여금 어떤 것도 미해결, 미결정인 상태로 두지 못하게 한다.

-『수상록』, 제27장 '우리 자신의 능력으로 참과 거짓을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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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동네 도서관에 갔을 때 발견한 두툼한 '몽테뉴의 수상록'을 펼쳐 보면서 그 책에 푹 빠져 지내던 옛 추억을 다시금 떠올려 본 적이 있었는데, 머지 않아 그를 다시 한번 만나보고 싶다. 그러고 보니 옛날에 읽었던 책은 거의 대부분 국한문 혼용에다가 세로로 된 책이었던 기억도 새삼스럽다. 그 옛날 애지중지 아꼈던 그 책은 도대체 언제쯤 내게서 떠나가 버린 것일까? 그리고 또 독서노트에 적어놓았던 몽테뉴의 수많은 글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래도 사이버 공간에 갈무리해 둔 것도 조금 남아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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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테뉴의 수상록에 대한 기록)

懶怠에 관하여

한가함은 항상 정신을 산란케 한다. - 루카누스

사방에 있다는 것은 아무것도 있지 않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심령은 일정한 목표가 없으면 갈피를 잡지 못한다. 정신에게는 어떤 문제에 전념하도록 제어하고 강제하는 일거리를 주지 않으면 이런 저런 공상의 막연한 들판에서 흐리멍덩히 해매게 된다. 그래서 이런 동요속에서 정신은 헛된 잡상이건 몽상이건 내놓지 않는 것이 없다.

 - 몽테뉴, 『수상록』 中에서


友情에 관하여

우정은 전반적이고 보편적이며 그러면서도 절제있고 고른 열이며 거기 거칠고 찌르는 것이란 없이 아주 보드랍고 매끈한 심정이다.

 - 몽테뉴, 『수상록』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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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태어나서 어느 정도 나이가 들게 되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질문이 한번 시작되면 아마도 '삶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결코 중단되는 법도 없을 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그 질문에 대한 완전한 대답을 얻지 못할 듯싶고, 어쩌면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는 과정이 결국 '삶 그 자체'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특히나 '책을 읽는 시간'은 곧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과 대답'을 끊임없이 자기 자신과 나누는 시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우리와는 비교조차 하기 어려울만큼 많은 시간 동안 '책을 읽고 생각에 잠겨' 살았던 몽테뉴를 만나 보는 것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몽테뉴 자신의 노력에 비하면) 특별하게 짧은(?) 시간 동안에 '가장 싼 값으로' 그의 생각과 얘기들을 직접 전해 들을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될 것이라는 확신도 든다.

어쨌든 나로서는 몽테뉴가 그립고 그를 다시 만나보고 싶다. 그리고 여태껏 그를 제대로 만나보지 못한 분들은 언젠가는 한번쯤 그를 꼭 만나 보시기를 권하고 싶다. 훌륭한 안내자의 도움을 받아 가면서 셋이 함께 만나도 물론 좋다. 내가 더욱 추천하고 싶은 방법은 그와 단둘이서 만나는 것이고, 또 가급적 오랫동안 만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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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키케로는 왜 몽테뉴에게 밉보였을까?
    from Value Investing 2013-07-23 14:40 
    30년 만에 다시 읽는 《몽테뉴 수상록》이 너무 재미있다. 오래 전에는 그의 에세이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작품을 거의 접해보지 못한 채 그 책을 읽었으나, 지금에 와서 다시 읽어보니 그의 글 속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이 어느덧 그다지 낯설지 않게 되어 옛날에 그의 글을 읽을 때보다 여러 인물들이 훨씬 더 생생하게 다가옴을 느낀다. 몽테뉴의 수상록에 등장하는 무수한 고대의 유명 인물들 가운데 '그들이 쓴 작품'을 내가 직접 읽어본 경우가 그리 드물지가
  2. 꼬랑지끼리 붙들어매어 놓기로 작정한 것
    from Value Investing 2013-08-07 23:47 
    (밑줄긋기) 우리가 갖는 쾌락이나 재물들은 고통과 불편이 얼마간 섞여 있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쾌락의 샘 복판에 쓴 것이 솟아나와꽃처럼 피어나는 연인들을 괴롭힌다. (루크레티우스)우리의 탐락은 극도에 도달하면 어느 점에서 신음과 오열의 풍이 있다. 이 탐락이 고민 속에 사라진다고 말하지 못할 일인가? 진실
  3. 온 힘을 다해 '자기 자신'을 해부하다가 결국 '인간'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든 책
    from Value Investing 2013-11-18 09:32 
    어떻든 나는 감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말하기로 작정했다. 공표할 수 없는 생각이 있다는 것까지도 불쾌하다. 내 행동이나 상태들 중의 가장 나쁜 것도, 그것을 감히 고백하지 못하는 것이 추하고 비굴한 일이라고 보는 정도로, 그렇게 추한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어느 누구나 고백하는 데는 조심스럽다. 행동에 있어서도 그래야 할 것이다. 당돌하게 실수하는 일은 그것을 당돌하게 고백하는 일로 어느 면에서 보상되고 억제된다. 모두 말하는 것을 의무로
  4. 몽테뉴와 플루타르코스
    from Value Investing 2017-02-08 00:20 
    나는 플루타르크의 저서는 여간해서 놓지 못한다. 그는 너무나 보편적이며 충실하기 때문에, 모든 경우에 우리가 어떠한 하찮은 일을 처리할 때도 그는 우리 일에 참견해 오며, 풍부와 미화의 무궁무진하고 관후한 손을 내밀며 거들어 준다. 나는 그를 애독하는 자들의 글에, 그에게서 따온 부분이 지나치게 눈에 띄어서 울화가 터진다. 그리고 그를 읽어 보기만 하면 내 글의 날개와 허벅다리를 거기서 따오지 않을 수 없다. * * *몽테뉴가 가장 좋아한 작가는 누가
 
 
2012-01-31 15: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01 0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2-02-01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긴 글, 잘 읽었습니다.

존 로크가 말한 "독서는 다만 지식의 재료를 줄뿐이다.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사색의 힘이다." 라는 말이 와 닿네요. 빨리 읽는 것과 생각하면서 천천히 읽는 것의 차이가 크다는 걸 경험했고, 또 읽은 뒤에 그 책의 내용에 대해 사색하는 일의 중요성을 알게 됐어요. 읽었다고 해서 읽은 게 아니더라고요.(읽은 것도 까먹어요.)독서일기를 쓰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저는 쓰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깊은 생각이 아니라서 문제지만요.ㅋ)

같은 책을 반복해서 두 번 이상 읽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저는 밑줄 그어 놓은 문장을 여러 번 읽는 취미가 있어요.
오늘도 커피 마시면서, 이미 다 읽은 책을 들춰 밑줄 그어 놓은 문장을 보면서 마셨어요.
유익한 정보, 많이 얻어갑니다. ^^^

오늘 날씨가 춥네요. 거리마나 흰눈이 쌓여 있어서 전형적인 겨울 같아요. 어제 눈 많이 내릴 때 저는 극장에서 영화 한 편 봤는데, 다 보고 나서도 눈이 오길래 일부러 걸었어요. 우산을 썼지만 옷에 눈 맞고 들어왔네요. 한번쯤 눈을 맞아줘야 할 것 같아서요. 겨울의 선물이다, 그러면서... ㅋ

oren 2012-02-02 22:57   좋아요 0 | URL
답글이 많이 늦었네요. 월말에는 폭설이 오는 바람에 모임을 취소했다가, 다시금 되살려서 '기어이' 모임을 가지다 보니 귀가도 늦어지고 추운 날씨에 고생했답니다. 어제는 예전에 잡아놓은 '기업방문 약속'이 있었는데 혹한에도 불구하고 애써 찾아 갔더니 나름대로 매우 보람이 컸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제/오늘은 '방문결과'를 추스리느라 또 아주 바빴네요.

독서일기를 쓰는 취미는 참 좋은 것 같아요. 예전에는 '나 혼자만의 독서일기'여서 내 마음대로 편하게 썼는데, 알라딘에 서평을 쓸 때는 그러지 못해서 아쉬운 점도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지금도 알라딘에 '힘들여' 글을 올리는 것보다 '내맘대로 끄적거릴 수 있는 독서노트'에 글을 쓰는 게 훨씬 좋아요. 그래서 책을 읽을 땐 (책에도 줄 긋고 열심히 끄적거려 놓지만) 노트에도 이런 저런 글들을 옮겨 적거나,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이 있으면 '독서노트'에 자꾸만 끄적거려 놓습니다. ㅎㅎ

pek님의 독특한 책읽기 방법인 '같은 책을 반복해서 두 번 이상 읽는 것'도 당연히 좋고, '밑줄 그어 놓은 문장을 여러 번 읽는 취미'도 정말 부러워요. 저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한다는 기분으로 책을 읽는 편인데, (그래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초딩 땐 탐정소설과 모험소설을 엄청 좋아했었답니다. 그리고 10대와 20대땐 문학작품도 즐겨 읽었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문학' 쪽으로는 좀처럼 눈길이 가지 않는데, 제 스스로는 (카프카의 말처럼) '내 머리에 주먹질을 해대는' 자극을 받고 싶어서 그러는 느낌도 들어요. 그리고 문학작품은 좀 더 아껴뒀다가, 내 머리에 주먹질을 해대는 게 '미안해 질 무렵'이 찾아오면 그 때부터 '열심히' 다시 읽으려고 해요. ㅎㅎ

추운 날씨에 눈을 느껴보는 것도 좋지요. 갑자기 한겨울에 밀짚모자 쓴 '눈사람'이라도 만들고 싶은 충동이 생깁니다. ㅎㅎ

라로 2012-02-01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 너무 좋아서 별찜했어요!!
[몽테뉴의 숲에서 거닐다]라는 책을 구하고 있는데 아직도 못 구했어요.ㅠㅠ
혹시 그 책은 읽어 보셨나요???
박홍규씨가 쓴 책인데 몽테뉴 읽기에 도움을 받을것 같아서 찾아보는데
벌써 몇 개월째 못 찾고 있어요.^^;
대신 이 책을 찾으면서 눈에 들어 온 [기싱의 고백]을 구했는데 정말 좋더군요.
진지한 님의 페이퍼를 보면 늘 부끄러워집니다.
날씨는 무척 춥지만 따뜻한 하루 보내시고 건강지키시길요~. 감사합니다.^^

oren 2012-02-02 23:08   좋아요 0 | URL
나비님께서 '별찜'을 해주셨다는 말씀을 들으니, 작년엔가 나비님께서 제게 '땡스투'를 활용하는 방법과 별찜 등에 대해서 가르쳐 주셨던 생각이 납니다. [몽테뉴의 숲에서 거닐다]라는 책은 저도 읽어보지 못했답니다.

그리고, 언제나 한결같이 (따스한 봄날의 나비처럼) 사뿐사뿐 여기 저기 날아다니시면서 이것 저것 신경써 주시고 챙겨주시는 나비님께서 갑자기 별명을 바꾸시니 저로서는 (마침 날씨조차 맹추위가 닥쳐 너무 너무 추워서 그런지는 몰라도) 영~ 낯설고 적응이 잘 안되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