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피해자의 엄마입니다










" 조주빈이 공익 근무 요원과 살해 모의를 한 여아의 엄마입니다 ㅡ " 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청원을 올린 피해자의 글을 읽었다. 지옥에서 보낸 9년의 삶은 A4 용지 한 장 분량으로 간략하게 서술되어 있지만 차마 작성하지 못한 문장의 행간을 읽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그 고통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종류의 고통은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범위의 감각이 아니다. 우리가 이 글을 읽고 나서 느꼈던 통증은 피해자 가족이 느꼈을 공포의 1%도 되지 않을 것이다. 비록 이 청원이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한다고 해도 100만 동의를 넘어 1000만 동의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듯이 피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하는 것도 아무 의미가 없다. 가해자-서사를 분석한다는 이름으로 작성된 사회적 외톨이, 상처받은 남성성, 불우한 가정사, 사회부적응 따위는 전적으로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한 결과인데 피해자 우선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법은 공교롭게도 가해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것이 감형의 조건이 된다. 그렇기에 조주빈이 평범한 사람과는 다른 악마라는 서사에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되며 또한 조주빈의 피해자들에게 " 일탈 " 이라는 서사를 부여하며 범죄에 동조하는 행위도 의미가 없다. 오히려 그 행위들은 모두 가해자의 이해를 돕는 서사를 강화하는 힘으로 작용할 뿐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미술평론가 반이정의 페이스북 글1)은 가해자의 변명을 강화하고 동조하는 미러링의 성격을 띤다. 내가 만약에 N번방 가해자여서 신분을 숨긴 채 자신을 옹호하는 글을 써야 한다면 반이정의 페이스북 글을 그대로 복사했을 것이다.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87335 (링크)








조주빈이 공익근무요원과 살해모의를 한 여아의 엄마입니다.

2012년부터 2020년 지금까지 9년째, 살해협박으로부터 늘 불안과 공포에 떨며 살고 있는 한 여자이자 한 아이의 엄마이자 중고등학교 교사입니다.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 잘못된 고리를 어떻게 하면 끊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용기 내어 글 올립니다.

박사방의 회원이자, 개인 정보를 구청에서 빼돌린 공익근무요원이자, 조주빈과 저희 아이 살해모의를 한 피의자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제가 담임을 했던 저희 반 제자입니다. 평소 사람들과 사회적 상호작용을 잘 못하던 그 학생은 담임인 저에게 상담을 자주 요청했었고 저는 진심어린 태도로 대화를 하고 칭찬과 격려도 해주며 여러 차례 상담을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점점 저에게 의존하며 집착하기 시작하였고 일반적인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제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게 되면서 저에 대한 증오가 시작되었습니다. 겉으로는 소심하고 성실하고 똑똑한 학생이었지만 SNS를 비롯한 사이버 세상에서는 입에 담지 못할 온갖 무섭고 잔인한 말을 서슴없이 하는 사람이었어요. 학교에서는 도저히 같은 반에 저와 그 학생을 같이 두긴 위험하다고 하여 반을 바꾸기로 권유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고 자퇴를 하게 되었습니다.

자퇴를 한 이후에도 학교에 커터칼을 들고 찾아와 교무실 밖에서 기다리기도 했었고 교실 게시판을 칼로 모두 난도질 하고 제 사진이 있는 학급 액자의 유리를 깨고 제 얼굴에 스테이플러로 심을 박아 저희 집 앞에 두고 가기도 했고요 아파트 복도에 빨간 색 글씨로 제 주민번호와 가족의 주민번호, 그리고 ‘I Kill You’ 등 크게 낙서를 하고 가는 건 기본이고 집 앞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차 번호판을 떼어가고 사이드 미러를 부수고 가는 등 물리적, 정신적 협박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저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아내 저인 것처럼 글을 쓰거나 제가 없애버린 메일 주소를 똑같이 만들어 저에게 오는 메일을 확인하며 제가 어디서 무얼 샀는지 또 바뀐 전화번호와 집 주소를 모두 쉽게 알아냈고 저의 지인에게 온 메일을 읽고 저인척 하며 답신을 보내기도 했더라고요. 또한 문자와 전화와 음성메시지와 메일 등을 통해 평생 들어보지도 못한 욕과 협박과 잔인한 말을 들으며 저는 불을 끄고는 잠을 들지 못했고 정신과 치료도 받아야만 했습니다.

저에게 오는 모든 연락과 접촉시도를 무시도 해봤고, 경찰에 신고도 해봤지만 그 당시 미성년자여서 솜방망이 처벌이었습니다. 개명도 하고 전화번호를 바꿔도 제 지인보다도 먼저 제 번호를 알아내어 도망갈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는 살살 달래도 보고, 전화가 오면 손을 벌벌 떨며 통화도 해줘보고, 만나달라고 하면 죽기보다 싫어도 만나 주었지만 정상적인 대화는 그때뿐 협박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결혼을 하였고 고통과 불안을 참다 못해 그 사람을 고소하게 되어 2018년 1월부터 2019년 3월까지 복역을 하게 되었지만 수감 중에도 계속적으로 협박 편지를 보냈습니다. 경찰서에 가서 진술을 하는 것조차 심리적 부담이 너무 크고 정신적으로 힘이 들어 더 이상 고소하지 못하였습니다. 출소하기 이틀 전 이사를 했고 하루 전 핸드폰 번호를 바꾸었습니다. 근무하는 학교도 바꾸었고 어디로 옮겼는지 모르게 하고 싶어 두 번째 개명을 하였고 개명한 이름으로 학교를 옮겼습니다. 주민번호도 6개월에 걸쳐 심의를 받아 바꾸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끝난 줄 알았습니다. 이제 모르겠지 못 찾아내겠지 하면서 5개월이 지났을 즈음.... 아파트 우체통에 새로운 저의 주민번호와 딸 아이의 주민 번호를 크게 적은 종이를 두고 갔습니다. 그 사람의 소름끼치는 글씨체를 여기서 또 보게 되다니... 누가 한 명 죽어야 끝나겠구나... 절망하고 또 절망하였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계속 문자와 카카오톡으로 저희 딸을 건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애가 뛰어댕길 정도니까 팔다리 자르면 볼만 하겠네’ ‘오늘 네 딸 진료 보는 날이지?’ ‘니 가족 죽이는 건 합법이지? 기대해’ 등 너무나 익숙하지만 견딜 수 없는 불안과 고통은 끝이 없었습니다. 실형을 살고 나와도 달라진 것이 없는데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모든 협박이 말 뿐이 아니라 실제로 400만원을 주고 조주빈과 살해모의를 했다니요. 아이의 이름, 주민번호, 어린이집까지 모두 다 알고 있는데 이제는 어떻게 도망갈 수 있을까요. 저에겐 이름이 몇 개가 생길까요. 주차장에서 언제쯤이면 맘 편히 집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현관문을 열고 닫을 때 언제까지 불안해해야 할까요. 지금은 아이가 어려 부모가 옆에 있지만 나중에는 그 사람 얼굴도 모르는 우리 아이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면... 전 어떻게 살 수 있을까요. 언제쯤이면 발 뻗고 잘 수 있을까요.

출소를 하자마자 구청에 복무를 하게 된 것도 하늘이 무너질 일입니다. 우리 가족의 안전을 송두리째 빼앗아갔습니다. 개인정보 유출과 협박으로 실형을 살다 온 사람한테 손가락만 움직이면 개인 정보를 빼 갈 수 있는 자리에 앉게 하다니요. 60년 넘게 잘 살아오던 저희 부모님도 이름과 주민번호를 바꾸었고 평생 살던 지역에서 이사를 가셨습니다. 온 가족이 '마지막이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보자'고 하면서 힘들게 노력했던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져버렸습니다. 어떻게 책임지실 건가요.

교육청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교사의 사생활 정보가 왜 모두에게 공개되어야 합니까. 제가 어느 학교에서 근무하는지 이름만 치면 공지사항에 모두 볼 수 있게 해놓은 제도가 불합리하다고 민원을 넣었지만 현재 검토하고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답변만 얻었고 그래서 학교를 옮기면서 또 개명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교사의 인권은 어디에서 보장받을 수 있나요. 조주빈 뿐만 아니라 박사방 회원들의 신상공개를 강력히 원하는 바입니다. 특히 여아 살해모의를 한 공익근무요원 강모씨 신상정보 제발 공개해주세요. 제가 고소를 할 때 강력처벌을 원한다는 탄원서를 썼다는 사실을 강모씨가 조회를 하고서 분노하여 이걸로 계속 협박을 했습니다. 신상공개가 되지 않는다면 지금 이 신상공개를 원한다는 국민청원글을 보고 또 저와 아이를 협박하겠지요. 그 다음에는 정말로 누군가가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습니다. 저도 안전한 나라에서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                                  


1) 다음은 반이정의 페이스북 글이다.




오해가 있는 타임라인이어서 의견 남깁니다. 흔히 '피해자'로 퉁쳐지는 70여 명의 여성은 보도처럼 순진하고 무고한 여성들이 아닙니다. '뿌리 깊은 가부장적 사고' 때문에 피해자에게 잘못이 있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에요. 지금 한쪽으로 쏠린 분위기 때문에 여성의 잘잘못이 거론되지 않는 건데, 저도 이 사건 보도를 보고 처음 듣는 용어들이 있었어요. '일탈계'가 그겁니다. 검색해도 잘 안 잡혀요. 일탈계는 주로 젊은 여성들이 익명이 보장되는 트위터나 인스타에 자신의 성기나 자위행위 장면, 나아가 성관계 사진이나 영상을 올리고 '좋아요'를 받는 계정을 말합니다. 음란물 유포죄로 실정법 위반이에요. 그런 점을 악용해서 '방'을 개설한 남성들이 협박을 하거나 혹은 고액 알바 거래에 응하다가 걸려든 사람들이 언론에서 '피해자'로 소개된 이들의 실상입니다. 여성들의 위법행위라는 약한 고리를 악용한 이가 처벌받아야 하지만 , 형평성 차원 혹은 이번에 신상 공개를 요구한 이들이 내세운 명분처럼 '재발 방지 차원'에서라도 익명 뒤에 숨어 음란물을 유포한 이들도 피해자임과 동시에 당연히 처벌 대상도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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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20-03-30 11: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청원에 동참해 주십시오 !!

雨香 2020-03-30 1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반이정은 왜 저럴까요? 글을 읽다가 반이정 이름을 확인하면 스킵한지 오래되었지만요

곰곰생각하는발 2020-03-30 12:27   좋아요 1 | URL
ㅎㅎㅎ 반이정은 왜 지랄하는걸까요, 라고 잘못 읽었네요. 글세요. 왜 저러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서민 교수 주장의 해악성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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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피해자에 대한 오해가 있어 이 글을 남깁니다










오해가 있는 타임라인이어서 의견 남깁니다. 흔히 '피해자'로 퉁쳐지는 70여 명의 여성은 보도처럼 순진하고 무고한 여성들이 아닙니다. '뿌리 깊은 가부장적 사고' 때문에 피해자에게 잘못이 있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에요. 지금 한쪽으로 쏠린 분위기 때문에 여성의 잘잘못이 거론되지 않는 건데, 저도 이 사건 보도를 보고 처음 듣는 용어들이 있었어요. '일탈계'가 그겁니다. 검색해도 잘 안 잡혀요. 일탈계는 주로 젊은 여성들이 익명이 보장되는 트위터나 인스타에 자신의 성기나 자위행위 장면, 나아가 성관계 사진이나 영상을 올리고 '좋아요'를 받는 계정을 말합니다. 음란물 유포죄로 실정법 위반이에요. 그런 점을 악용해서 '방'을 개설한 남성들이 협박을 하거나 혹은 고액 알바 거래에 응하다가 걸려든 사람들이 언론에서 '피해자'로 소개된 이들의 실상입니다. 여성들의 위법행위라는 약한 고리를 악용한 이가 처벌받아야 하지만 , 형평성 차원 혹은 이번에 신상 공개를 요구한 이들이 내세운 명분처럼 '재발 방지 차원'에서라도 익명 뒤에 숨어 음란물을 유포한 이들도 피해자임과 동시에 당연히 처벌 대상도 맞습니다1). 



미술평론가 반이정의  페이스북 글이다. 현대 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흔히 접하게 되는 이름이다. 미술 평론이라는 것이 대부분 " 보그체 " 스러워서 대부분 무심한 듯 시크하게 외면하곤 했는데 반이정의 미술 평론은 조금 더 무심한 듯 시크하게 생깠던 기억이 난다. 미술평론계의 마광수라고나 할까 ? 그의 글에서 밤꽃 향기 작렬하는 불알후드의 불활 냄새를 맡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여기서 " 불활 " 이 무엇이냐고 묻지는 마시라. 그 불활이 그 불활이니 당신이 생각하는 불활 냄새는 그 불활 냄새가 맞다 하지 않을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지 아니하다 할 수 없다. 오케이 ? 그의 페이스북 글을 읽었을 때 나의 전두엽이 번개처럼 호명한 기억은 박인수 사건이었다. 그는 1950년대 희대의 카사노바였다. 그는 자신을 변론하면서 내가 상대한 여성 중 처녀는 미용사 한 명뿐이었다며 순결의 확률은 70분의1이라고 말해 당대 유행어가 되었다. 재판장은 다음과 같이 선고했다. "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을 보호할 수 있다 (1955.7.22) " 반이정의 주장은 1950년대 박인수의 변론과 재판장의 판결을 그대로 복제한 것이다. 그러니까 눈보라가 휘날리는 흥남부두의 서정을 간직한 과거 지향적 인간인 것이다. 이런 인간이 동시대 예술을 평론하고 앉아있으니 한심할 뿐이다(반이정 씨. 앉아있지 마시고 자빠지세요. 허리 건강에 좋습니다). 반이정 논리는 N번방 가해자 남성의 논리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노예녀는 " 순진하고 무고한 여성 " 이 아니기에 " 당연히 처벌 대상 " 이라는 N번방 가해자의 논리와 반이정의 논리가 다를 것이 무엇일까 ? 이 세상 모든 사건의 피해자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다. 그런데 반이정은 피해자가  N번방 가해자가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원인을 제공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즉,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페이스북 글을 읽다 보면 불활 냄새 때문에 헛구역질을 하게 된다. 정조는 취미(개인의 취향)에 불과하다. 그 옛날, 개화기 여성이었던 나혜석의 말이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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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20-03-29 05: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런 병신이 사회 곳곳에서 꽤 성공해서 살고 있다는 것도 참 한국의 부끄러운 점이 아닌가 싶어요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참 개소리도 가지가지 ㅜㅜ

곰곰생각하는발 2020-03-29 09:39   좋아요 0 | URL
저걸 논리랍시고 지껄이는 거 보고 기절할 뻔했습니다.. ㅎㅎ

Comandante 2020-03-29 09: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반이정이란 사람을 알라딘 서재 통해 처음 알게 되는군요. 밑에 서민 교수 글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0-03-29 09:39   좋아요 0 | URL
몰골 한번 찾아서 보십시오.. ㅎㅎ

프레이야 2020-03-29 18: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기절할 일이 왜 이렇게 많지요. 하기야 요즘뿐이 아니지만요 ㅠㅠ 반이정 찾아봐야겠네요. 처음 듣는 이름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0-03-29 22:21   좋아요 0 | URL
이상한 애 있습니다. ㅎㅎ
 














                              


서  민    코  스  프  레   :








조선일보 없었다면 ?












문빠'가 언론 탄압하는 시대, 조선일보 없었다면 어쩔 뻔


조선일보 

  •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나와 조선일보] [17] 서민
 

아주 오랫동안, 조선일보는 진보의 편에 선 이들에게 공공의 적이었다. 심지어 그들은 조선일보가 우리나라를 후퇴시키는 '악의 축'이라 주장했다. 나 역시 그 말이 옳다고 오랫동안 생각해왔다. 하지만 요즘은 그 주장이 맞는지 점점 헷갈리고 있다. 발단은 국정 농단 시위가 한창이던 2017년 겨울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 농단에 관한 보도 중 가장 볼만한 프로그램은 TV조선의 것들이었다. 알고 보니 TV조선은 가장 먼저 최순실의 존재를 알아챘고, 그에 관한 심층 취재를 하다 정권의 탄압을 받기까지 했다. 그 시절 지겹게 나왔던 최순실의 지하주차장 영상과 옷가게에서 행정관이 휴대폰을 닦는 영상은 TV조선의 작품이었다. 훗날 청와대 대변인으로 재직하며 부동산 투자에 출중한 능력을 보였던 김의겸은 한겨레 기자였던 그 시절, 조선일보에 공개편지를 보낸다. "한겨레가 한 발짝 더 내디딜 수 있었던 건 조선의 선행 보도가 거대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은 겁니다."

조선일보의 가치는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뒤 더 빛을 발하고 있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비롯한 친정부 언론들이 사실을 왜곡해가며 정권에 유리한 방송을 내보내고, '알릴레오' 같은 곳이 언론사로 위장한 채 끊임없이 가짜 뉴스를 생산하며, 이른바 '문빠'라 불리는 문 대통령의 극성 지지자들이 공공연하게 언론 탄압을 자행하는 이 시대에, 조선일보마저 없었다면 큰일 날 뻔했다. 조선일보에는 개인적 고마움도 있다. 2019년 봄, 고(故) 장자연의 증언자를 자처했던 윤지오가 1억5000만원 상당 돈을 챙겨 캐나다로 도망쳤다. 이 사기극이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그녀의 말을 검증 없이 내보낸 언론의 책임이 컸지만, 어느 한 곳도 반성하지 않고 있다. 내가 이 사건에 관한 책을 출간한 것도 언론의 책임을 추궁하고자 함이었으나, 조선일보를 제외한 모든 언론사가 이를 외면했다. 윤지오를 옹호했던 해당 언론사에 묻고 싶다. 진영 논리에 빠져 윤지오를 의인으로 만들어 고인과 국민에게 피해를 입혀 놓고 제대로 된 사과조차 없다면, 댁들이 조선일보를 욕할 자격이 있을까요 ?




서민 교수의 조선일보 칼럼을 재미있게 읽었다. 개인적으로 기생충 박사 서민이라는 캐릭터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거두절미하고 단도직입하겠다. 서민 교수는 "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 농단에 관한 보도 중 가장 볼만한 프로그램은 TV조선의 것들이었다 " 고 주장하나 이에 동의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박근혜 국정 농단 보도 중 가장 볼만한 프로그램은 JTBC의 테블릿PC 보도'였고,  그것이 목에 깁스한 박근혜의 뻣뻣한 목을 꺾는 결정타'였다.   뭐, 취향에 따라서는 궁서체스러운 굴림체로 대빵 큰 타이틀을 달고 새빨간 배경색으로 레이아웃하는 조선의 빨간 맛에 감탄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 취존 " 의 문제이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자.   

나는 그가 말한 "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비롯한 친정부 언론들 " 이라는 표현력에 빵빵 터졌다. " 언론들 "  이라는 복수형 표현을 보니 티븨조선을 제외하면 모두 다 친정부 언론으로 생각하는 서민의 아스트랄하며 삼파장 발광 다이오드적 극성에 질려버렸다.  그가 말하는 문빠들이 광장에서 촛불 들고 하루 종일 외쳤던 구호 중 하나는 언론 개혁이었는데 서민의 논리대로라면 문빠들은 오히려 친정부 편파 언론들을 개혁해야 한다고 소리를 지르고 있는 꼴이 된다.  도대체 누구 말이 맞는 것일까 ?  한국 언론이 친정부 편파 언론이라면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제외한 친정부 언론들이 조국에게 쏟아냈던 악담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  

그의 칼럼을 읽고 있으면 마치 < 조선일보와 나머지 그 적들 > 로 읽힌다.   똥 닦는 데에나 쓸모가 있을 것 같은 종이 쪼가리'가 하루아침에 국내 유일의 정론지로 둔갑했으니 천지개벽이 아닐 수 없다.   서민은 앞장서서 효자손 역할을 자청하며 긁고 싶은 곳을 긁어주니 이보다 예쁠 수는 없다.  아흐흐, 귀여워 !  서민은 " 윤지오를 옹호했던 해당 언론사에 묻고 싶다.   진영 논리에 빠져 윤지오를 의인으로 만들어 고인과 국민에게 피해를 입혀 놓고 제대로 된 사과조차 없다면,  댁들이 조선일보를 욕할 자격이 있을까요 ? " 라고 물으면서 끝을 맺는데,  오보의 역사를 놓고 보면 조선일보만큼 화려한 이력이 없다. 

현송월이 총살되었다며 호들갑을 떨다가 다음날 평창올림픽에 현송월이 나타나는 바람에 개망신을 당한 적 있는데, 여전히 조선일보는 정정보도는 고사하고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  서민 씨, 이 정도면 조선일보 욕할 자격 있는 것 아닐까용 ?  그는 조선일보 없었다면 어쩔 뻔_ 이라며 영혼을 팔 것만 같은 용비어천가를 남발하는데 내 대답을 명쾌하다. 조선일보 없었다면 너무 좋을 뻔! 헤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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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20-03-26 11:5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티븨조선 방송에서 가장 웃겼던 것은 < 아내의 맛 > 이라는 오락 프로그램인데 볼 때마다 참 포르노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여성을 식욕으로 전환하는, 여전히 작동하는 남성 판타지.....

파란여우 2020-03-26 13:22   좋아요 10 | 댓글달기 | URL
조선일보와 사주 일가가 고인이신 장자연씨에게 저지른 패악질은 제껴두고 윤지오와 관련한 의문에 자기 책을 엮어 개인적 고마운 인사까지 전해주는군요. 고인을 두 번 죽이는 비열한 행태라고 생각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0-03-26 13:30   좋아요 5 | URL
어, 저도 솔직히 그 꼭지를 쓰려다가(조선일보 방가 일가가 장자연 님에게 했던 패악질을 생각해 보시라 이런) 말았는데... 이해가 안 가요. 윤지오가 장자연을 두 번 죽였다고 화를 내면서 정작 조선일보가 장자연에게 했던 짓은 아무 비판이 없다니...

2020-03-26 1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26 1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극곰 2020-03-26 14: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간만에 알라딘에 왔는데, 저 분이 저렇게 되셨나요? 반어법으로 쓰거나 빈정거린 것도 아니고, 지금은 조선일보에 저런 글을 쓴다고요? 자신의 책도.... 아.. 정말 깜짝 놀랐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20-03-26 14:08   좋아요 1 | URL
저도 처음에는 반어법의 달인이어서 비꼬는 내용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조선일보에 실렸더라고요. ㅋㅋㅋㅋㅋㅋ

막시무스 2020-03-26 14: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조선일보를 보지 않아서 몰랐던 글이네요! 쓰시는 날카로운 글 많이 배우고 생각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0-03-26 14:23   좋아요 2 | URL
조선일보의 그 유명한 인간 어뢰 기사 생각나네요. 천안함 때 조선일보가 맹렬히 주장했던... 그런 조선일보 없었다면 좋을 뻔.

잠자냥 2020-03-26 15:1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와우....... 엄청나네요. 전 저 사람 예전부터 몇몇 글 읽었을 때 좀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여태 책 한 권 산 적 없었는데, 여윽시.... 최근엔 진중권도 조선일보에서 많이 인용해주고 있지요. 조선일보에서 사랑받는 진중권 ㅋㅋㅋ
암튼 문재인 정권을 비판하겠다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조선일보에 저런 글 쓰는 거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글도 참 역겹네요.
그러지 않고도 비판 가능하잖아요. 저 사람도 586인가요?? 휴.... 노답. 조선일보 기생충이 되려나 봅니다 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20-03-26 17:20   좋아요 2 | URL
아마도 밥그릇 나와바리 확장의 영역을 위한 수단이 아닌가 싶습니다. 대학에서 의대 교수면 꽤 월급도 많이 받으실 텐데 굳이 이런 용비어천가를 부를 이유가 있나 싶네요.

이분 논리대로 라면 외신들이야말로 문재인 빨아주는 언론이요, 트럼프는 문빠인 것 같습니다. 오늘 뉴스 보니 캐나다 총리도 전화해서 문재인 쵝오 ! 이런 말 남겼던데... 이 지도자들, 다 문빠네요.

2020-03-26 15: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26 16: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akardo 2020-03-26 20: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부터 좀 아슬아슬하다 싶었는데 이젠 완전히 버렸네요. 기생충 박사란 사람 진짜 기생충이 돼버린 듯. 철수에게 붙더니 결국 이렇게 됐군요. 그리고 조선일보가 근혜 순실 관계 깐 건 권력의 추가 옮겨가는 걸 승냥이처럼 냄새 맡은 것일 뿐이죠. 친이파와 친박파 사이를 아슬아슬 오간 조선이 친이파로 방향전환한 것뿐인데.

곰곰생각하는발 2020-03-26 21:11   좋아요 1 | URL
서민의 칼럼은 맹랑과 명랑 사이인데 도가 넘다보니 구질구질하게 변질이 되었습니다. 그의 논리대라라면
외신은 편파 언론이요, 트뤼도와 트럼프는 문빠가 되었습니다그려.. 허허허....

라로 2020-03-27 02:37   좋아요 1 | URL
곰발 님의 댓글을 읽다가 ‘구질구질‘을 보니가 구더기가 꿈틀대는 느낌이;;;;;;;;; 한글이 참,,,묘한 구석이 있어요! 한글 짱!!

곰곰생각하는발 2020-03-27 10:57   좋아요 0 | URL
이 칼럼은 읽을수록 화딱지 나는 글입니다. 묘한 재주가 있으셔.. ㅎㅎㅎㅎㅎ 효자손 같아요, 이 글. 조선일보 입장에서 보면 서민이 대신 긁고 싶은 곳을 긁어주니 시원하시겠어요. 방가 일가 쪽에서 보면 말이죠.

2020-03-27 14: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27 14: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꼼짝 마, 움직이면 쏜다 !










                                                                                            사례 ① " 꼼짝 마, 움직이면 쏜다 ! " 권총을 든 강도가 A를 위협한다. 사례 ② " 꼼짝 마, 반항하면 죽는다 ! " 주먹을 쥔 강도가 B를 위협한다. 나중에 형사는 범인 몽타주를 작성하기 위해 피해자 A, B를 만나 범인의 인상착의를 묻는다. 누가 더 정확하게 범인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을까 ? B가 범인의 얼굴을 자세하게 기억할 확률이 높다. 반면에 A는 범인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공포의 요소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A는 위험 요소인 총알이 장전된 총구에 (초)집중하느라 강도 얼굴을 놓치게 된다. 시각적 맹점이란 어떤 대상에 집중하느라 시야의 사각지대가 생길 때 발생하는 것. 그렇기에 권총을 든 강도에게 피해를 입은 피해자는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범인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코비드19는 일종의 강도가 손에 쥔 총'이다. 코비드19가 아니었다면 악명이 높기로 유명한 대한민국 총선 이슈로 사회가 들끓었을 텐데 유권자는 총선에는 그닥 관심이 없다. 오로지 코드비19만 노려볼 뿐이다. 왜 ? 총을 든 강도가 무셔워 ~      


그렇다면 이 상황은 여당에게 유리할까, 아니면 야당에게 유리할까 ?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코비드19 이슈는 여당에게 유리하다. < 총선 > 은 과거에 대한 심판의 성격을 띠고 < 대선 > 은 미래 가치에 대한 전망에 투표하는 경향이 있다. 야당 입장에서는 당연히 정부의 지난 실정을 거론하며 정권 심판을 주장해야 유리하다(정권 심판론 프레임은 매우 강력해서 오랫동안 야당에게 유리한 프레임으로 작동했다). 그런데 코비드19는 과거나 미래 따위를 계산할 만큼의 여유를 가지지 못하게 만든다. 왜 ? 총을 든 강도가 무셔워 ~              


지금 당장 내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무슨 놈의 과거 타령(정권 심판)이고 무슨 놈의 미래 가치에 대한 전망 투표인가 !  유권자는 지금, 당장, 여기에서 누가 더 잘하고 있는가를 보게 된다. 문재인인가, 황교안인가 ?  그렇다면 코비드19는 한국인에게만 총을 겨루나 ? 그렇지 않다. 지금 코비드19는 전 세계를 상대로 총질을 하고 있는 중이다. 전세계 인구가 오로지 코비드19라는 녀석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위험한 상태에서의 각인 효과'이다. 전 세계 국가는 국가 브랜드 이미지 상승을 위해 막대한 광고비(로비)를 투자한다. 


국가 이미지 개선을 통해 무역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지금 세계는 코비드19라는 외계인으로부터 맞짱을 뜨고 있는 대한민국에 집중하고 있다. 코비드19관련 뉴스에서 대한민국은 수시로 호명된다. 르피카로는 칼럼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한국은 1950년대 가장 가난한 나라였고 심지어 아프리카 국가들보다 가난했다. 그런 한국은 이제 선진국이며 프랑스는 더 이상 아니다. 이번 위기 속에서 한국은 조직적으로 높은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은 봉쇄와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사람들을 억압하는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진정세를 보이고 있으며 치명률 역시 매우 낮다. 


이보다 더 훌륭한 광고 효과가 있을까 ?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호평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조중동은 대한민국 정부가 최악의 코비드 대응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며 오늘도 입에 거품을 물고 욕을 하고 있다.  놀랄 만한 일이다. 만약에 코로나19 사태를 은폐와 무능의 대가였던 이명박근혜 정부가 진두지휘했다면 과연 어떤 재난이 발생할까? 지금 문재인 정부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코로나 펜데믹 시대에 아베가, 트럼프가, 보리스 존슨이 제국의 지도자였다는 점은 이 세계의 불행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하나다. 투표 잘 하자 ! 




+

다음은 << 사피엔스 >> 의 저자 유발 하라리 교수가 영국파이낸셜타임스에 낸 기고문 전문이다. 길지만 명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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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지금 세계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다. 아마도 우리 세대의 가장 큰 위기일 것이다. 앞으로 몇 주 동안 사람들과 정부가 하는 결정은 아마도 앞으로 몇 년 동안의 세계를 형성할 것이다. 그것들은 단순히 우리의 헬스케어(보건)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넘어 우리의 경제, 정치, 문화를 만들어갈 것이다. 우리는 신속하고 결단력 있게 행동해야 한다. 우리는 또 우리의 행동에 따른 장기적 결과를 고려해야 한다. 무엇인가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우리는 '당면한 위협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뿐만 아니라 '일단 폭풍이 지나가면 어떤 세계에 살 것인가'를 자문해봐야 한다. 그렇다. 폭풍이 지나가고 인류는 살아남을 것이고, 우리들 대부분은 여전히 살아있을 것이지만 우리는 이전과는 다른 세계에 살게 될 것이다. 

많은 단기 비상 대책들은 우리 삶에 고착화될 것이다. 그것이 비상사태의 본질이다. 그것은 역사적 과정을 빠르게 한다. 평소에는 몇 년의 숙고가 필요할 수도 있는 결정이 몇 시간 안에 통과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위험이 더 크기 때문에 미성숙하고 심지어 위험한 기술도 이용할 수 있다. 모든 국가는 대규모 실험 대상이 된다. 모든 사람들이 집에서 일하고 원격으로 의사소통을 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 모든 학교가 온라인 수업만 하면 어떻게 될까. 정상적인 시기에는 정부, 기업, 교육위원회가 그런 실험을 하는 것에 결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평범한 시기가 아니다. 이 위기의 시기에 우리는 특별히 중요한 두 가지 선택을 마주하게 된다. 첫째는 '전체주의적 감시'와 '시민의 권한' 사이의 문제다. 두 번째는 '국수주의적 고립'과 '글로벌 연대' 사이의 문제다. 

밀착 감시 사회

전염병을 막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특정 지침을 준수해야 한다. 이것을 달성하는 데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한 가지는 정부가 사람들을 감시하고, 규칙을 어긴 사람들을 처벌하는 것이다. 오늘날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기술은 모든 사람을 항상 감시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50년 전만 해도 러시아 KGB는 2억 4000만 명에 이르는 옛 소련 사람들을 24시간 감시할 수도 없었고, 수집된 모든 정보를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도 없었다. KGB는 요원들과 분석가들에게 의존했고, 모든 사람들을 추적할 만큼 요원을 배치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정부가 인간 스파이 대신 '유비쿼터스 센서'와 강력한 알고리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전투에서 몇몇 정부는 이미 새로운 감시 도구를 배치했다. 가장 주목되는 사례는 중국이다. 사람들의 스마트폰을 면밀히 감시하고, 수억 대의 안면인식 카메라를 사용하고, 사람들에게 체온과 의료 상태를 확인하고 보고하도록 의무화했다. 이를 통해 중국 당국은 의심되는 코로나바이러스 보균자를 신속하게 식별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움직임을 추적할 수 있었다. 다양한 모바일 앱(응용프로그램)은 시민들이 감염자에게 접근하지 않도록 경고해줬다. 이런 종류의 기술은 동아시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최근 이스라엘 보안국에 테러리스트들과 싸울 때 쓰는 감시 기술을 활용해 코로나바이러스 환자를 추적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 관련 국회 소위원회가 이 조치의 승인을 거부하자 네타냐후는 '비상령'으로 이를 통과시켰다.

당신은 이 모든 것에 대해 새로울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정부와 기업들은 사람들을 추적하고, 감시하고, 조종하기 위해 훨씬 더 정교한 기술을 사용해왔다. 그러나 우리가 조심하지 않는다면 최근의 사태는 감시의 역사에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다. 지금의 상황은 그동안 감시 기술 사용을 거부해온 국가에서도 대량 감시 도구를 일상적으로 쓸 수 있다는 우려를 낳을 뿐만 아니라 '근접(over the skin) 감시'가 '밀착(under the skin) 감시'로 급속히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당신의 손가락이 스마트폰 화면을 터치하고 링크를 클릭했을 때, 정부는 당신이 정확히 무엇을 클릭했는지 알고 싶어했다. 그러나 이제 코로나바이러스와 함께 관심의 초점이 바뀐다. 정부는 손가락의 온도와 피부 아래의 혈압도 알고 싶어 한다. 

'이스라엘의 비상 푸딩령'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 중 하나는 우리가 어떻게 감시당하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몇 년 동안 무엇을 가져올지 아무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감시 기술은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며 10년 전 공상과학 소설처럼 보였던 것이 오늘날에는 낡은 아이디어가 되고 있다. 모든 시민에게 24시간 체온과 심박수를 재는 생체 인식 팔찌를 착용하도록 요구하는 가상의 정부를 생각해 보자. 데이터는 정부 알고리즘에 의해 저장되고 분석된다. 알고리즘은 당신이 알아차리기 전에 당신이 아프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그들은 또한 당신이 어디에 있었는지, 당신이 누구를 만났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감염 경로를 빠르게 차단할 수도 있다. 그러한 시스템은 틀림없이 수일 내에 전염병을 멈출 수 있을 것이다. 멋지지 않은가. 


물론 단점은 이것이 무시무시한 새로운 감시 시스템에 합법성을 부여할 것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CNN' 링크보다는 '폭스뉴스' 링크를 더 클릭했다는 것을 안다면, 그것은 내 정치적 견해와 어쩌면 내 성격까지도 알려줄 수 있다. 특정 영상을 보면서 내 체온, 혈압, 심박수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관찰할 수 있다면 무엇이 나를 웃게 하고 무엇이 나를 울게 하는지, 무엇이 나를 정말로 화나게 하는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분노와 기쁨, 권태와 사랑은 열과 기침과 마찬가지로 생물학적 현상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기침을 확인하는 기술로 웃음을 식별할 수 있다. 기업과 정부가 우리의 생체 정보를 일괄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하면 그들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우리를 훨씬 더 잘 알 수 있고, 


그들은 우리의 감정을 예측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감정을 조작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팔 수도 있다. 제품이든, 정치든 말이다. 이런 생물학적 모니터링은 캠브리지 분석가의 데이터 해킹 전술을 석기시대 것처럼 보이게 할 것이다. 모든 시민이 24시간 생체 인식 팔찌를 착용해야 하는 2030년의 북한을 상상해 보자. 만약 당신이 위대한 지도자의 연설을 듣고 있는데 팔찌가 당신이 분노하고 있다는 징후를 포착한다면, 당신은 끝장이다. 물론 당신은 비상사태 동안에만 임시 조치로서 생체 감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일단 비상사태가 끝나면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새로운 비상사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임시 조치는 영구적으로 비상사태를 방지하려는 고약한 습관을 가질 것이다. 


예를 들어 나의 고국인 이스라엘은 1948년 독립전쟁 기간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는데, 이것은 언론 검열과 토지 몰수에서부터 푸딩을 만드는 특별 규정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임시 조치를 정당화했다. 독립전쟁은 오래전에 끝났지만 이스라엘은 결코 비상사태 중단을 선언하지 않았고, 1948년의 '임시 조치' 중 많은 것이 그대로 남았다. (그 '비상 푸딩령'은 2011년에서야 자비롭게 폐지됐다.)  심지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이 제로(0)로 내려갈 때도 데이터에 굶주린 일부 정부들은 바이러스의 제2 확산이 두렵거나, 중앙아프리카에서 진화하는 새로운 에볼라 변종이 있기 때문에 생체 감시 시스템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당신은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우리의 사생활을 둘러싼 큰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위기가 전투의 정점이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사생활과 건강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할 때 보통 건강을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비누 경찰'은 필요 없다

사람들에게 사생활과 건강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사실 이 문제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잘못된 선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생활과 건강을 둘 다 누릴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건강을 보호하고 전체주의적 감시 체제를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에게 힘을 실어줌으로써 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을 막을 수 있다. 최근 몇 주 동안 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을 막기 위해 가장 성공적인 노력을 한 나라는 한국, 대만, 싱가포르 등이다. 이들 국가도 추적 앱을 어느 정도 사용했지만, 그들은 광범위한 테스트와 투명한 자료 공개, 똑똑한 시민들과의 협력에 훨씬 더 의존해왔다.  중앙집중식 감시와 가혹한 처벌만이 사람들이 지침을 따르도록 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사람들이 과학적인 사실들을 들을 때, 그리고 사람들이 공권력을 믿고 이런 사실들을 말할 때, 시민들은 그들의 어깨너머로 지켜보는 '빅 브라더' 없이도 옳은 일을 할 수 있다. 자기 동기부여를 하고 정보력 있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감시받는 무지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비누로 손을 씻는 것을 생각해보자. 이것은 인간의 위생에 있어 가장 위대한 발전 중 하나다. 이 간단한 행동은 매년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한다. 우리가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과학자들이 비누로 손을 씻는 것의 중요성을 발견한 것은 19세기 들어서였다. 이전에는 의사와 간호사조차 손을 씻지 않고 한 수술에서 다른 수술로 옮겨갔다. 오늘날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매일 손을 씻는 것은 '비누 경찰'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사실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나는 바이러스와 박테리아에 대해 들어봤기 때문에 비누로 손을 씻는다. 이 작은 유기체들이 질병을 일으킨다는 것을 이해한다. 그리고 비누가 그것들을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런 수준의 준수와 협력을 이루기 위해서는 신뢰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과학을 믿고, 공권력을 믿고, 언론을 믿어야 한다. 지난 몇 년 동안 무책임한 정치인들은 의도적으로 과학, 공권력, 언론 등에 대한 신뢰를 훼손했다. 지금 이처럼 무책임한 정치인들은 권위주의로 가는 길을 찾기 위한 유혹을 받을지도 모른다. 대중이 옳은 일을 하는 것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일반적으로 수 년 동안 침식된 신뢰는 하루아침에 재건될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평범한 시간이 아니다. 위기의 순간에는 마음 역시 빠르게 변할 수 있다. 


형제들과 몇 년 동안 심한 말다툼을 할 수도 있지만, 일단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갑자기 신뢰와 호의의 숨겨진 저수지를 발견하면서 서로 도우려 한다. 감시 체제를 구축하는 대신 과학과 공권력, 언론 등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다시 쌓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분명히 새로운 기술도 활용해야 하지만 이 기술들은 시민들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 나는 내 체온과 혈압을 재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그 자료가 강력한 정부를 만드는 데 사용돼서는 안 된다. 그 자료는 내가 좀 더 정보에 입각한 선택을 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하루 24시간 동안 자신의 의학적 상태를 추적할 수 있다면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건강상의 위험이 되었는지뿐만 아니라 어떤 습관이 내 건강에 도움이 되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만약 내가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에 대한 믿을 만한 통계를 접근하고 분석할 수 있다면, 나는 정부가 나에게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그리고 정부가 전염병과 싸우기 위해 올바른 정책을 채택하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감시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이러한 감시 기술은 정부뿐만 아니라 개인들이 정부를 감시하는 데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따라서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는 시민권과 관련한 중요한 시험이다. 앞으로 우리 각자는 근거 없는 음모론과 자기 잇속만 차리려는 정치인이 아니라 과학적 자료와 의료 전문가를 신뢰하는 쪽을 택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면서 우리의 가장 소중한 자유를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

글로벌 연대의 필요성

우리가 직면하는 두 번째 중요한 선택은 국수주의적 고립과 세계적 연대 사이에 있다. 전염병 그 자체와 그에 따른 경제 위기는 모두 세계적인 문제다. 그것은 오직 세계적인 협력을 통해 효과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바이러스를 물리치기 위해서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정보를 공유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인간이 바이러스에 비해 가질 수 있는 큰 장점이다. 중국의 코로나바이러스와 미국의 코로나바이러스는 인간을 감염시키는 방법에 대해 정보를 교환할 수 없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에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많은 귀중한 교훈과 대처법을 가르쳐 줄 수 있다. 이탈리아 의사가 밀라노에서 이른 아침에 발견한 것은 저녁 무렵이면 이란 테헤란에서 생명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 정부가 여러 정책 사이에서 망설일 때 이미 한 달 전에 비슷한 딜레마에 봉착했던 한국인들로부터 조언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일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협력과 신뢰의 정신이 필요하다. 각국은 공공연히 정보를 공유하고 겸허하게 조언을 구해야 하며 그들이 받는 자료와 통찰력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또한 진단 키트와 인공호흡기 같은 의료 장비를 생산하고 보급하기 위해 세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국가들이 의료 장비를 사재기하고 자국에서만 비축하려 하는 대신에 세계 각국이 공동으로 노력한다면 의료장비 생산을 더 가속화하고 이것이 더 공평하게 분배될 수 있을 것이다. 전쟁 중에 국가들이 주요 산업을 국유화하듯이,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인류의 전쟁은 우리에게 중요한 생산라인을 '인류화'하도록 요구할지도 모른다. 


코로나바이러스 사례가 거의 없는 부유한 나라는 나중에 도움이 필요할 때 다른 나라들이 도와줄 것이라 믿고 많은 환자가 발생한 나라에 귀중한 장비를 기꺼이 보내야만 한다. 우리는 의료진을 모으기 위한 비슷한 세계적인 노력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현재 영향을 덜 받는 국가들은 의료진을 세계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으로 보낼 수 있다. 그들은 어려운 시기에 도움을 받을 수 있고, 귀중한 경험을 얻을 수도 있다. 전염병이 이동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도움은 반대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할 수 있다.  경제 분야에서도 세계적인 협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경제와 공급 사슬의 세계적 특성을 감안할 때 각 정부가 다른 정부들을 완전히 무시한 채 자신의 일만 한다면 그 결과는 혼란과 심화되는 위기가 될 것이다. 


우리는 세계적인 행동 계획이 필요하고, 그것을 빨리해야 한다.  또 다른 문제는 여행에 관한 세계적 합의에 도달하는 것이다. 몇 달 동안 모든 해외 여행을 중단하는 것은 엄청난 어려움을 일으킬 것이고,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전쟁을 방해할 것이다. 국가들은 과학자, 의사, 언론인, 정치인, 사업가 등 필수 여행자들이 국경을 계속 넘도록 협력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출국 전에 여행자를 사전에 모니터링하는 방식으로 세계적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신중하게 선별된 여행자만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다고 신뢰한다면, 당신은 그 여행자들을 당신의 나라로 기꺼이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불행히도 현재 세계 각국은 이런 일을 거의 하지 않는다. 집단 마비가 국제사회를 사로잡고 있다. 어른들이 없는 것 같다. 


이미 몇 주 전에 공동의 행동 계획을 마련하기 위한 세계 지도자들의 긴급회의를 예상했다. 그러나 주요 7개국(G7) 정상들은 최근 겨우 화상회의만 했고, 아무런 결실을 거두지 못했다.  2008년 금융위기와 2014년 에볼라 전염병과 같은 이전의 글로벌 위기에서 미국은 글로벌 리더의 역할을 했다. 그러나 현재의 미국 행정부는 지도자의 직무를 포기했다. 그것은 인류의 미래보다 미국의 위대함에 대해서만 훨씬 더 신경을 쓴다는 것을 매우 분명하게 했다. 미국 정부는 심지어 가장 가까운 동맹국들도 버렸다. 유럽연합(EU) 국가에서 미국으로 오는 여행을 금지했을 때 그 과감한 조치에 대해 EU와 협의하는 것은 고사하고 사전 통지도 하지 않을 만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미국은 새로운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독점권을 얻기 위해 독일 제약회사에 10억 달러를 제시했다는 의혹도 받았다. 


지금의 정부가 결국 방침을 바꿔 세계적인 행동 계획을 내놓더라도 그동안 책임 지지 않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며, 모든 책임을 남에게 떠넘기고 모든 공로는 자기에게 돌리는 지도자를 따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만약 미국이 남긴 공백을 다른 나라들이 메우지 않는다면 현재의 전염병을 막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것의 유산은 앞으로 몇 년 동안 국제관계를 계속 악화시킬 것이다. 그러나 모든 위기는 또한 기회다. 우리는 현재의 전염병이 지구촌의 분열로 야기되는 심각한 위험을 인류가 깨닫는 데 도움이 되기를 희망해야 한다. 인류는 선택을 해야 한다. 우리는 분열의 길을 걸을 것인가, 아니면 글로벌 연대의 길을 택할 것인가. 만약 우리가 분열을 선택한다면 이것은 위기를 연장시킬 뿐만 아니라 아마도 미래에 더 심각한 재앙을 초래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세계적인 연대를 선택한다면 그것은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승리일 뿐만 아니라, 21세기에 인류를 공격할지도 모르는 모든 미래의 전염병과 위기들에 대한 승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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