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가'다 : 박민규 편.
나는 가수다 대신 나는 작가다' 라는 코너가 있었다면...
임재범은 확실히 < 잊혀진 전설의 무사 > 캐릭터였다. 고만고만한 군웅할거'의 무림세계'에 임재범'은 홀연히 나타난다. 세월에 장사'가 어디 있는가? 그는 늙고, 병든 모습'으로 등장한다. 갓 아래 빛나는 눈빛 만이 그가 과거의 전설적 무사'였다는 사실을 상기시킬 뿐이다. 지금 6인의 무사'가 그를 말없이 지켜본다. 작은 돌개바람이 바닥에 깔린 마른 모래'를 휘몰다 사그라진다. " 비가 오겠군 ! " 그가 낮은 탁성으로 읊조린다.
" 진정한 무사'는 적의 목을 벨 때, 칼이 우는 노래'를 듣소. 종종... 자신의 목이 베일 때'도 그 소리를 듣지 ! 그것이 무사의 숙명이 아니겠소 ? " 다시, 돌개바람 ! 누가 먼저 칼을 뽑을 것인가 ? 이소라다 ! 이소라가 칼을 뽑는 순간 7인의 칼에 반사된 빛이 허공에서 어지럽게 광무/光舞' 를 춘다. 이젠 돌이킬 수 없다. 그는 외친다. " 누구든, 나의 벼린 칼 끝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 ! " 쿠아아아아아앙 . 무사는 냉정을 잃는 순간 목숨을 잃는 법이다. 하지만 그의 칼이 바람을 가를 때 내는 바람 소리'는 무디어졌고, 촉 또한 무디어졌다. 돌아온 무사의 포효하는 목소리'는 갈라,
졌다. 하지만 변한 것'은 없다. 무디어진 칼과 촉'으로도 그는 무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떠난다. 남겨진 것은 6개의 칼과 머리'다. 전갈이 느린 걸음'으로 피비린내'를 맡으며 다가온다. 돌개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굵은 빗방울이 떨어진다. 후, 두둑. 저, 멀리서 비가 온다. 저, 멀리서 하이에나가 운다. 아, 우우우우우우 ! 아우우우우우 ! 아이콩, 므므므므 무서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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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가수다 > 대신 < 나는 작가'다 > 라는 작가의 문장력' 경연 대회'를 연다면, 임재범이 연기한 절대지존 무림고수' 역은 누가 될까 ? 혹여,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지만 조경란'이나 공지영'을 추천하지는 말라. < 나가수 > 에 < 걸스데이 > 같은 생활 체조 율동가'를 섭외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닐까 ? 절창 대회에서 엉덩이만 들이밀다가 갈 수는 없는 노릇. 신경숙 ? 글쎄 ! 지나치게 대중적이지 않을까 ? 그녀의 발성법은 짧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임재범 역을 할까 ?
단연, 김훈'이다. 그는 느닷없이 문단에 출현하여 < 벼락 같은 축복 > 이라는 찬사를 받던 인물이 아니었던가 ? 그가 무대'를 장악하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그가 무대'에서 한지에 검은 먹물을 쏟아붓는 한 그는 절대지존'이리라. 하지만 그 또한 그리 오랫동안 무대'를 즐길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는 노마드'이므로 ! 그에게는 자전거'가 있으므로 !
그가 떠난 무대'는 다시 고만고만한 군웅의 할거'로 난세'가 될 것이다. 그래도 그 중에서 가장 실력 있는 무사'를 뽑으라면, 나는 < 박민규 > 를 선택하겠다. 그에게는 7단 고음이라는 화려한 스킬'은 없으나 대중성'과 넉넉한 성품이 있지 않은가 ? 그는 윤도현'이다. 웬만하면 떨어질 리 없다. 최소, 3개월 고정'이다. 와와 하지 마시고 예예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우 하지도 맙시다. 아이콩 !
박민규는 < 삼미슈퍼스타즈 >를 락 버전으로 불러서 청중평가단 1위'에 오르는 영광도 맛보기도 했으며 < 지구영웅전설 >과 < 카스테라 > 는 그럭저럭 무난한 점수를 얻었다. 하지만 다음 무대에서 부른 < 핑퐁 > 에서는 죽을 쓴다. 연이은 비슷한 느낌의 노래와 창법'으로 청중평가으로부터 좋은 호응을 얻지 못한 것이다. 그러자 그는 비장의 카드'를 내놓는다. 이소라가 < 넘버 1 > 으로 분위기'를 반전하듯이 말이다. 그는 펑크 락'을 버리고 재즈 소울 발라드'를 선택한다. 그가 선보이는 작품은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 다. 우우 ?! 와와 !
" 신사숙녀여러분! 다음 무대'는 이 무대의 비쥬얼'을 담당하시는 박민규 씨'입니다. 의외로군요. 비장의 무기인가요 ? 슬픈 소울 발라드'로 돌아왔습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 "
무대는 어둡다. 핀 조명'이 무대 위의 고독한 하이에나 박민규'를 비춘다. 그는 이소라 흉내'를 내며 고개'를 37도 왼쪽으로 기운 후 의자에 앉아 있다. 잠자리 안경 속에 찢어진 그의 눈은 감은 것인지 뜬 것인지 모를 만큼 째진 눈이다. 이때 재즈 피아노 선율이 조용히 흐른다. 그는, 부른다 !
눈을 맞으며 그녀는 서 있었다.
그해의 첫눈이 내린 날이었고,
열아홉 살이던 내가...
정확히 스무 살이 되던 날이었다.
길고 쓸쓸히 이어진 빈 논과 드문,
드문 서 있던 나무들...
낯설다. 분위기 반전을 노린 계획은 어쩌면 잘못 둔 패착'이리라. 펑크와 락 창법을 뺀 소울 풍의 노래'에, 관중은 우우 ( 하지 맙시다 ) 예예 ( 하지 맙시다 ) 한다. 하지만 그가 누구이던가 ? 시작은 불안했지만 서서히 본 궤도'에 오른다. 그는 지금 조용히 노래를 부르지만 절정 부분'에서 자신의 주무기'인 창법을 구사하리라. 역시나 예상은 적중한다.
여자든 남자든 그런 대부분의 인간들은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전구와 같은 거야. 전기만 들어오면 누구라도 빛을 발하지, 그건 빛을 잃은 어떤 전구보다도 아름답고 눈부신 거야. 그게 사랑이지. 인간은 누구나 하나의 극을 가진 전선과 같은 거야. 서로가 서로를 만나 서로의 영혼에 불을 밝히는 거지.
P.185
서서히 그의 색깔을 드러낸다. 그리고는 절정 부분에서 이렇게 방방 뛴다.
알아 ? 추녀를 부끄러워하고 공격하는 건 대부분 추남들이야. 실은 자신의 부끄러움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인 거지... 보잘것없는 여자일수록 가난한 남자를 무시하는 것도 같은 이유야. 안 그래도 불안해 죽겠는데 더더욱 불안해 견딜 수 없기 때문이지. 보잘것없는 인간들의 세계는 그런 거야. 보이기 위해, 보여지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봐줄 수 없는 거라구. 그래서 와와 하는 거야. 조금만 이뻐도 와와, 조금만 돈이 있다 싶어도 와와, 하는 거지.
P.220
그가 혼신의 힘을 다해 와와'라는 가사'를 지르자, 청중평가단 또한 와와 한다. 이 정도면 임재범이 부른 약간 촌스러운 퍼포먼스다. 그는 무릎을 꿇고 < 누가 나를 위로하지 ? .... 바로 여러분 ! > 을 외치는 것이었다. 그는 다음과 같은 가사'로 청중평가단의 여심을 사로잡는다.
미녀가 싫다기보다는 미녀에게 주어지는 세상의 관대함에 나는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뭐랄까, 그것은 부자에게 주어지는 세상의 관대함과도 일맥상통한 것이란 기분이 들어서였다.
P.315
노래는 끝났다. 그는 무대'를 떠났다. 종합 점수 4위'였다. 그는 살아남았다. 500명의 청중평가단 가운데 여성은 300명이었다.
p.s 나는 작가다 2편은 성석제'입니다. 참고로 2편에서 박민규는 자폐아'로 나옵니다. 그는 하루종일 " 내 손은 백만 불짜리 손... 내 손은 백만 불자리 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