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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의 몸값 ㅣ 87분서 시리즈
에드 맥베인 지음, 홍지로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3년 7월
평점 :
87분서 시리즈 가운데 하나인 < 킹의 몸값 > 은 아직 읽지 않았다. 읽을 예정이다. 그러므로 이 글은 읽지도 않은 채 미리 쓰는 리뷰'이다. 사실 이 리뷰는 소설에 대한 글이 아니라 구로자와 아끼라가 감독한 < 천국과 지옥 > 에 대한 생각'이다. 이 영화는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별점 체크'는 이 영화에 대한 기록'이다.
천국과 지옥
현대인이 가지는 고전'에 대한 선입견 가운데 하나는 < 고리타분 > 할 것이란 속단'이다. 하지만 고전이 가지는 생명력'은 재미'다. 재미있는 작품이 오래 사랑 받아서 고전'이 되는 것이다. E.M 포스터가 쓴 아기자기한 연애 소설'을 읽다가 보면 고전의 힘은 결국 재미'란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 모든 작품이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만 ! ) 고전 영화에 대한 선입견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평론가들이 뽑은 걸작 고전 영화는 재미가 없을 것이란 생각'을 먼저 한다. 물론 평론가들이 뽑은 작품 중에는 재미없는 걸작들이 수두룩하지만, 적어도 내 기준에 의하면,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이 만든 영화'만큼은 재미있다.
< 숨은 요새의 세 악인 > 은 헐리우드 모험 액션 영화의 기준이 되었다. 조지 루카스가 고백했듯이 < 스타워즈 > 는 < 숨은 요새의 세 악인 > 에서 영화적 서사를 노골적으로 차용했다. 스필버그가 만든 < 레이더스 > 시리즈도 알고 보면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에 대한 오마쥬라 할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 < 7인의 사무라이 > 는 남성 밀리터리 액션 영화의 바이블 같은 작품이다. 후에 루카스와 스필버그'는 아키라의 영화 제작'을 후원하게 된다. 헐리우드가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에게 전하는 " 감사의 뜻 " 이다.
■ 평론가들은 구로자와 아키라'보다는 오즈 야스지로'에게 후한 점수를 주지만 감독의 입장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수많은 감독들이 구로자와 아키라'를 경배했다. 브라보,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에게 영광 있으라 !
< 천국과 지옥 > 은 패러독스와 윤리적 딜레마'를 다룬다. 구두 회사 중역인 주인공은 아이를 유괴한 범인으로부터 몸값으로 3000만 엔'을 지불하라는 협박 전화를 받는다. 마침 그에게는 회사를 인수하기 위해 마련한 5000만 엔 수표가 있다. 하지만 회사 지분 인수 자금으로 마련된 돈을 몸값'으로 지불할 경우 주인공은 파산을 각오해야 한다. 하지만 이 세상 그 어느 부모가 아이가 유괴되었다고 하는데 돈이 아깝다고 망설이고 있을까 ? 이것저것 생각할 틈이 없다. 지구는 독수리 오 형제'가 구하지만 아이는 내가 구한다 ! 공부는 못해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그런데 일이 묘하게 꼬인다.
납치된 아이'는 주인공의 아들이 아니라 집에서 일하는 집사의 아이'였던 것이다. 그러니깐.... 실수로 아이'가 바뀐 것이다. 이 기막한 반전을 감독은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불쑥 꺼내놓는다. 반전에 대한 그 어떤 암시도 없다. ( 지금 생각하니... 암시'가 있기는 했다. )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란 뜻이다. 부성애'를 다룬, 뻔한 납치 활극'은 갑자기 윤리적 딜레마'를 다루면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선과 악에 대한 세계를 다룬다. 주인공 곤도는 ( 소설에서는 " 더글라스 킹 " 이다. )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하지만 이 한숨'은 고약하다. 왜냐하면 범인은 계속 몸값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돈을 주지 않으면 아이를 죽이겠다는 것이다. 안도가 이 협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는 집사의 아들은 결국 곤도의 아들이 아니었다면 겪지 않았을 위험에 처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결과의 원인은 결국 곤도가 가진 부 (富) 때문이다.
자,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자 ! 이제 당신은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서 이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 납치된 아이는 당신의 아이가 아니라 집사의 아들이다. 다행이다, 내 알 바 아닌가 ? 윤리적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아이에게 몸값을 지불하면 지금까지 쌓았던 모든 부와 명예'는 한순간에 추락한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 인간이란 이타적일까, 이기적일까 ? 영화는 시작부터 돌 직구'를 날리면서 시작한다.
아키라 감독은 이 장면을 실내극처럼 꾸몄다. 1시간 동안 실내에서만 진행되는 무대극은 오로지 거실에서만 이루어지는데 거실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브레히트의 연극 무대처럼 텅 비어 있는 것이다. 무대 위 오브제는 전화와 커튼이 전부다. 하지만 감독은 이 빈약한 소품으로 기막힌 서스펜스를 창조한다. 커튼'은 주인공이 처한 심리 상황'을 잘 전달한다. 주인공은 갈등이 고조될 때마다 커튼 앞에 서 있다. 마음의 문(커튼)을 열 것인가, 아니면 닫을 것인가 ? 자신이 선택할 결정은 과연 윤리적으로 옳은 것일까, 옳지 않은 것일까 ? 커튼을 열면 빛은 들어오고 닫으면 실내는 어두워진다. 양심을 위해 커튼을 젖힐 것인가, 아니면 재산을 위해 이웃의 비참을 위하 커튼을 닫을 것인가. 하루에도 열두 번, 생각이 바뀐다 ! 천국(빛)과 지옥(어둠)이 교차한다. 그것은 마치 주인공이 처한 마음 같다.
연극 무대처럼 진행되는 전반부는 지루할 틈이 없다. 정교하게 세팅된 카메라 동선과 오랜 팀 워크로 짜여진 배우들의 동선은 씨줄과 날줄처럼 정교하게 교차하며 화면에 생명력을 부여한다. 절제된 탱고와 같다. 카메라 동선이 남성 무희'라면 배우들의 동선은 여성 무희 같다. 남성 무희가 절도 있게 발을 뻗어 앞으로 나아가면 여성 무희는 뒤로 절도 있게 한발짝 물러난다. 그런가 하면 뱀장어들처럼 비비꼬이다가도 어느 순간에 마술사의 매듭처럼 순식간에 풀린다. 이 세련된 움직임은 이 영화를 걸작으로 만들었다. 이 < 실내극 > 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만든 < 로프 > 를 연상케 한다. 늙은 뱀처럼 움직이는 카메라'는 우아하다 : 빠른 것은 경쾌하지만 느린 것은 우아하다.
그런가 하면, 후반부는 < 실외극 > 이다. 전반부가 다분히 연극적 상황극'이라면, 후반부는 형사들의 고군분투를 다룬 다큐멘타리적인 성격이 강한 현장극'이다. 감독은 자극적인 기교를 버리고 사건을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과정을 무뚝뚝할 정도로 묵직하게 보여준다. 영화와 소설을 모두 보거나 읽은 사람'이 전한 말에 의하면 전반부는 원작에 충실하고 후반부는 일본의 상황'에 맞게 영화적 각색'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내용이 약간 바뀌었다 해도 성격은 87분서 시리즈'가 가지고 있는 미덕에 충실한 연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묵직하고 담담한 추적'은 87분서 경찰 시리즈'가 가지고 있는 리얼리티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 한국 영화 < 파괴된 사나이 > 는 < 천국과 지옥 > 에서 나오는 그 유명한 인질 교환 장면을 그대로 베낀다. 결과는 예상대로 흘러간다. 흉내를 낼 수는 있지만 아우라를 얻을 수는 없다. < 파괴된... > 은 그 유명한 장면을 그저 그런 장면'으로 연출한다.
< 본 시리즈 > 와 같은 현란한 추적'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이 영화는 밋밋한 추적극이 될 수도 있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기막한 반전이나 화려한 액션'에 익숙한 장르 소설 독자'라면 에드 맥베인의 < 87분서 시리즈 > 는 따분할 수가 있다. 하지만 자극적인 양념으로 범벅이 된 비빔 냉면'만 먹다 보면 담백한 모밀 국수의 맛이 그리울 때가 있다. < 천국과 지옥 > 은 우아하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소설이 궁금해진다. 하지만 너무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구로자와 아끼라'는 평범한 것을 걸작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다. 물론 그는 좋은 원작을 골라내는 매서운 눈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 소설 제목은 < 왕의 몸값 > 이 아닌 < 킹의 몸값 >으로 출간되었다. 소설 속 구두 회사 중역 이름이 " 더글라스 킹 " 이기에 < 왕의 몸값 > 이라고 하면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다는 염려에서 < 킹의 몸값 > 이라고 정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부자연스럽다. 중의적 의도'를 생각하면 < 왕의 몸값 > 이 더 근사하지 않나 ? 뭐, 그냥 그렇다는 것이지, 딴지'를 걸자는 뜻은 아니다. 난 아무래도 < 왕의 몸값 > 이 좀더 하드보일드하며, 비장미'가 있어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