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민이나 김난도가 쓴 힐링-멘토-에세이'는 대중을 철저하게 농락한다. 그들이 말하는 결론은 < 내 탓이다 > 다. " 마음먹기에 따라서 당신이 꿈꾸는, 밝은 미래가 보입니다 ! " 그런데 이 말은 사회 구조 탓을 하지 말고 네 자신이나 알아라 ! 라는 메시지'이다. 꼴값 떨지 말고 주제 파악 하라는 말과 동일어다. 탁산성의 지적처럼 사회적 모순은 " 멈추면, 보이는 것(해결되는 것) " 이 아니다. 구조란 그렇게 느슨한 모래성'이 아니다. 혜민은 과연 남양유업 피해자들에게 " 네 탓 (남양 유업' 횡포) 하지 말고 마음 수양 하면 행복이 찾아옵니다. " 라고 말할 수 있을까 ? 불교에서는 행복을 가르치지 않는다. 겨우 사는 방법을 가르칠 뿐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화평은 < 겨우의 결핍 > 에서 오는 것이지 < 행복의 충만 > 에 있지 않다. 불교는 행복학'이 아니다. 혜민이 말하는 행복론은 가짜다. 자기 자신에게 화살 촉을 향하게 하는 방식'은 노예의 도덕이고 비겁한 자들이 말하는 변명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순응이 아니라 외침/폭로'이다. 나라가 휘청거리면 책임자 처벌은 미뤄둔 채 집안에서 뒹구는 금붙이부터 헌납하는 민족성은 애국이 아니다. 그것은 오랜 식민지 사회'가 만들어 놓은 변형된 조공의 한 방식'이다. 하루 12시간 일해서 120만 원 버는 구질구질한 삶을 자기가 못난 탓으로 돌리면 안 된다. 당신은 못난 아버지도 아니고, 못난 아내도 아니며 철없는 자식도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눈동자의 검은 먹물까지 쏘옥 빼먹으려는 자본가들의 더러운 욕망 탓이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자리'가 없는 것은 부족한 스펙 탓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이다. 그들'을 향해야 한다. 활시위 팽팽하게 당겨라. 허공이어도 좋다 ! 언젠가는 당신이 쏜 불화살'은 누군가의 심장을 관통할 것이다
- 불교에서는 행복을 가르치지 않는다 中

민심은 소수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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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스들과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펀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 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 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월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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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 ! " 라는 구호는 지나가는 둥굴레 박씨'에게 줘야 한다. 아니면 민들레 홀씨'에게 줘도 된다. 저런 식으로 말하는 자들은 운동권 학생들'보다는 오히려 늙고 교활한 정치가'들이 뇌물 먹고 깜빵'에 들어갈 때 능청스럽게 외치는 말투'다. < 정의 > 라는 녀석은 4번 타자'라기보다는 무능한 8번 타자'에 가깝다. 정의는 가뭄에 콩 나듯 어쩌다 한 번 승리하지 항상 승리하지는 않는다. 대의'를 외치는 놈치고 제대로 된 놈 못 봤다. 사소하며 꾀죄죄한 현실적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오로지 거대 담론'만을 말하는 정치가야말로 정말 꾀죄죄한 정치가'이다. 디테일이 배제된 거대담론은 공염불이요, 뜬구름 잡는 소리'이다. 김수영 시인은 시에서 " 왜 나는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 라고 자조섞인 한탄을 쏟아냈지만 이 꾀죄죄한 옹졸함'은 안으로는 자주 독립을, 밖으로는 민주 번영에 이바지하여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한 초석이 된다.
불의에 대한 항의가 반드시 거대 담론일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냇물이 모여 강물이 되고, 강물이 모여 바다를 이루는 법. 그런데 대한민국 남성은 너무 원대한 포부를 가져서 꾀죄죄한 현실 문제'에는 늘 시큰둥하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염통이 태평양만 하다고 착각하는데 사실 대한민국 남성만큼 꾀죄죄한 심장'을 가진 민족도 없다. 데이트 비용을 모두 남자가 부담하는 것에 대해서는 불만이 많아서 속으로는 추렴을 했으면 바라지만 이런 문제 제기'는 엄두도 못낸다. 그저 한다는 소리가 정의 사회 구현'이라거나 약자를 도와야 한다는 소리만 지껄인다. 나는 이런 소리를 하는 놈을 볼 때마다 양아치 팔뚝에 새겨진 " 차카게 살자 ! " 와 뭐가 다른지 궁금하다. 남자가 데이트 비용을 추렴하자는 말은 못하고 쓸데없이 사회 정의 운운하는 것은 꾀죄죄한 남자로 보이기 싫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꾀죄죄한 남자로 보이기 싫어서 허세를 부리는 사람이야말로 꾀죄죄한 인간이다. 중국 사상가 이종오는 < 후흑학 > 에서 얼굴이 두껍고 검은 마음을 한 교활한 놈이 권력을 잡는다고 주장한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얼굴에 철판 깔고 양심에 털을 길러야 한다고 말한다.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당신이 도박사라면 < 정의' > 보다는 < 불의' > 가 승리를 할 것이라는 쪽에 배팅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 이처럼 역사는 대부분 " 불한당들 " 이 만든 세계'이다. 세상은 권력을 독점한 소수가 장악한다. 기쁨은 나눌수록 배가 되지만 권력은 나눌수록 반'이 되기는커녕 아예 사라지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가장 이상적인 민주주의는 권력을 국민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아니라 사라질 때까지 쪼개고 쪼개서 권력 자체를 무력(無力)하게 만드는 것이다. 국민을 모두 다 고만고만한 놈으로 만드는 것이 진정한 풀뿌리 민주주의'이다. 사회 구조를 도토리 키재기'로 만들어서 누구라도 이길 가능성을 만들어주는 것이 참된 민주주의'이다. 반면 전체주의는 권력을 국민에게 나누기는커녕 빼앗아서 특정 소수에게 몰아서, 권력을 가진 자가 무소불위한 무력(武力)을 가지도록 만드는 체제이다. 전자는 무소불위를 휘두르는 나쁜 권력을 무력(無力)하게 만드는 것이고, 후자는 그 무력(武力) 을 소수가 독점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지금 돌아가는 꼴을 보면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라기보다는 아직은 전체주의적 성격이 짙다고 볼 수 있다.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 조까라 마이싱'이다. 권력은 권력자에게서 나온다.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낭만적 허세를 유포하는 자는 밑바닥에 발 딛지 못하고 계롱산 뜬구름 위에서 공염불만 외치는 자'이다. 권력은 면후/面厚와 심흑/心黑'인 특정 소수'가 장악한다. 학교에서 배운대로 보자면 특정 소수가 권력을 전횡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민의를 반영하는 투표는 다수결의 원칙'를 기본 원리로 하는 체제'이다. 그런데 다수가 아닌 소수'가 모든 권력을 나눠 가지는 구조를 가진 나라를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을까 ? 결론부터 말하자면 면후와 심흑을 가진 자'는 민중을 숙주로 이용한다. 머리 꼭대기'에 앉아서 스틱을 조종한다. 청기 올려 ! 백기 내려 ! 백기 내리지 말고 청기 올려 ! 둘 다 올려 ! 그리고 빤스 벗어 !!! 몇몇 놈이 전체를 다스리는 것, 그러니깐 한국 사회는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웩더독 사회'이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들이 장악한 권력 기관을 이용해서 대중을 바보'로 만들기 때문이다. 내가 김미경, 김난도, 혜민이 내뱉는 지적질'이 못마땅한 이유는 < 네 탓 > 을 해야 할 상황에서도 < 내 탓 > 을 한다는 데 있다. 모든 잘못은 내 탓'일까 ? 비정규직 노동자는 과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 모자라서 그 모양 그 꼴로 살아가는 것일까 ? 노처녀 노총각은 이성에게 어필하는 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결혼을 못하는 것일까 ? 모든 문제를 유심 탓으로 돌리는 여론 플레이는 소수 기득권 세력이 퍼트린 삐라'다. 그들은 행복은 마음 먹기에 달렸으니 사회 탓을 하지 말라고 한다. 그리하면 복되고, 복되고, 복된 삶이 된다나 ? 그런 일은 없다. 그것은 복된 삶이 아니라 고된 삶일 뿐이다. 김미경, 김난도, 혜민'이 쓴 책에서 독자가 얻게 되는 것은 學'(학)이 아니라 虐(학)이다. 자학(自虐')이다. 레비스트로스의 말이 옳다. 사회 구조가 인간을 만든다. 문제는 사회이지 인간이 아니다.
이처럼 다수를 조종하는 특정 소수는 " 네 탓 아닌 내 탓 이데올로기 " 를 퍼트린다. 그들은 모든 권력 기관을 동원하여 네 탓을 하는 인간을 꾀죄죄하게 만든다. 한국형 애국심'은 애국이라기보다는 자학에 가깝다. 국가 이익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욕망'은 개나 주라고 말한다. 이처럼 < 내탓 > 과 < 애국심 > 은 닮은꼴'이다. 자기학대'를 통해서 쾌락을 얻는다. 이처럼 권력형 특정 소수'는 다수를 우민화하는 데 성공했다. 노동자들이 노동자 파업을 고깝게 여기고, 여자의 적은 여자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 그들의 전략이다. 소수가 다수를 장악하는 원리이다. 이제는 더 이상 개천에서 용 나는 경우는 드물다. 성공의 조건이 재능이 팔'이고 환경이 이'라고 했을 때, 성공을 결정 짓는 것은 재능이 아니라 환경이 된다. 재능이 뛰어나서 성공의 80%를 완성시켜도 결국 환경이 뒷받침'을 하지 못하면 실패하게 된다.
하지만 재능이 육'이고 환경이 이'인 놈은 재능이 팔'이고 환경이 영'인 놈보다 성공할 확률이 더 높다. 왜냐하면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미덕은 뒷거래'와 한통속'이다. 학연, 지연, 혈연 그리고 계통과 계열에 따른 이해타산에 분주하다. 그리고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다니는 교회 이름을 들먹인다. 그러므로 성공을 좌우하는 것은 환경'이다. 별 볼 일 없는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재능이 뛰어난 놈은 한 번 실패하면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드물지만 별 볼 일 있는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재능이 별로 없는 놈은 한 번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결국 전체적인 구조는 재능 80% 와 환경 20% 이지만 20%가 전체를 지배하게 된다. 이건희'는 사업 수완이 좋은 노인네'가 아니다. 그가 손을 대서 사업에 성공하거나 실패한 경우는 반반이었다. 이것저것 찔러보다가 그중 하나가 성공하면 그것에 집중 투자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가 빈털털이 벤쳐사업가로 시작했다면 지금쯤이면 알거지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마이다스의 손이라거나 경영의 신'이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그는 다른 이'보다 환경이 좋았을 뿐이다.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재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소수 의견을 무시한다. 소수자에 대한 배려는 없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역설이 존재한다. 대한민국은 소수가 전체를 지배하는 사회'다. 그들은 숙주를 조종하는 스틱 운전자들이다. 대다수는 그들에 의해 조종되는 곱등이'다. 국민의 뜻은 알고 보면 소수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