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비슷한말은 뱀'이다 : 뱀은 후진을 할 수 없는 동물이다. 오직 곡선 주행에 따른 직진만 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자전거'와도 유사하다. 이러한 뱀의 특성을 잘 알고 있는 땅꾼들은 뱀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그물을 길게 설치해서 길을 가로막는데 이때 길목에 설치된 그물은 뱀을 포획하기 위한 수단이기보다는 단순히 길을 차단하는 역할만 한다. 그리하면 주행로‘가 막힌 뱀은 후진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물을 따라 기어가다가 진짜 그물망에 갇히고 만다. 되돌아갈 수 없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측면에서 시간과 뱀은 유사하다. 그리고 시계는 자전거와 같은 말'이다. 자전거 또한 되돌아갈 수 없는 방향성을 가진 기계가 아니었던가. 시간은 죽어서 뱀으로 환생하고, 시계는 멈추면 자전거로 태어난다. 물뱀이나 사막뱀도 죽으면 각자 물시계와 해시계로 태어난다. 이처럼 돌이킬 수 없는 방향성을 가진 모든 단어에는 시간이 있다. 시간이라는 뿌리말 아래 뱀, 시계, 자전거'가 모인다. 이들은 종과 속, 짐승과 사물의 관계가 모두 다 다르지만 같은 계통, 같은 계열이다. 한통속이다.
- 깻잎 오소리 입말 사전 < 시계 편 > 中
당신이 처음 골랐던 그 시계.
시계 하나 장만하려고 한 적이 있었다. 스무살 때 근사한 스와치 시계'를 가져본 기억이 나서 스와치 시계'를 사려고 인터넷 쇼핑을 했다. 예상은 10만 원 정도'였으나 비쌀 수록 시계'가 근사한 거라. 그래, 나도 이제 돈을 버니 30만 원 정도의 시계를 찰 자격이 있지. 내가 고른 시계는 정말 멋있었다. 저 시계를 차고 다니면 이 세상 모든 소녀들이 날 멋쟁이라고 생각하겠지 ? 남성 패션의 완성은 시계'라고 하지 않던가 ! 좋아, 구입하자. 마지막으로 주소 정보 입력을 하고 결재'를 하려는 순간 망설여졌다. 같은 값이라면 더 좋은 디자인의 시계'를 선택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같은 가격 대비 비교 평가를 한 결과 모 제품의 시계가 더 근사했다. 그래서 그 시계 카달로그를 죽 훑다가 그만 마음에 쏙 드는 시계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설상가상 가격은 더 저렴한 것이 아닌가 ! 120.000원'이었다.
야호, 이런 게 알뜰 구매'구나 !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0'이 하나 더 붙어서 백이십만 원'이나 되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보관함에 넣어두었던 스와치 시계'를 구매하려고 했는데 이게 웬 말인가 ! 그사이 도무지 못 볼 정도로 후진 시계가 되어 있었다. 백만 원이 넘는 시계를 보다가 십만 원짜리 플라스틱 스와치 시계를 보니 마치 인형뽑기 기계 속 상품처럼 보였다. 일단 잠시 시계 구입은 미루기로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다시 백만 원대 시계'를 구경하다가 점점 명품 시계 쪽으로 시선이 옮겨갔다. 모 제품의 ** 시리즈 시리얼 넘버 A326 제품'은 예술이었다. 가격대가 700만 원'을 호가했다. 악어 가죽으로 된 시계줄'은 감동적이었다. 박음질 또한 예술이었다. 숫자 12 아래 다이아몬드 하나가 박힌 제품이었는데 마음에 쏙 들었다. " 아, 정말 아름답구나 ! "
그것은 내 인생의 티.오.피'였다. 며칠 전에 보고는 내 영혼을 빼앗겨버린 백만 원'짜리 시계를 다시 보니 그것 또한 뽑기인형 기계 속 시계처럼 보였다. 쪽팔려서 차고 다닐 수나 있겠나. 허허허. 나는 다시 시계 구입을 포기했다. 그런데 이러한 패턴이 반복되었다. 이번에는 7000만 원대 명품 시계를 보았다. 100% 테엽 시계였다. 숫자 대신 12개의 다이아몬드가 반짝거렸다. 시곗줄'은 금속 재질이었는데 그 품위가 남달랐다. 정말 아름다웠다. " 아, 그래서 사람들이 명품에 빠지는 거구나. " 한 달 전에 본 시계가 생각났다. 700만 원짜리 시계'를 보고 더 이상 이보다 더 아름다운 시계는 없을 것이라고 했던 내 판단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그 시계를 다시 보니, 아.... 이건 어디서 꼴뚜기처럼 생긴 시계'로 둔갑을 한 것이 아닌가 ? 닝기미, 21세기 최첨단 시대에 무슨 악어 가죽 시곗줄이냐.
단언컨대, 매탈이야말로 완벽한 물질이었다. 내가 방금 본 이 시계야말로 명품 시계다 ! 더 이상의 시계'는 없다. 끗. 그런데 이러한 선언도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파텍에서 나온 30억 짜리 시계를 본 것이다. 시곗줄이 모두 다이아몬드로 박혀 있는 명품 시계였다. 최고의 시계 장인'이 일 년에 걸쳐 만든다고 했다. 정말 보면 볼 수록 눈부셔서 도저히 볼 수 없었다. 일 주일 전에 본 7000만 원짜리 시계가 정준하'라면, 이 시계는 원빈'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내 장바구니에 담겨져 있던 최초의 스와치 시계'를 클릭해 보았다. 30억짜리 시계를 보다가 30만 원짜리 시계'를 보니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결국 나는 시계 구매'를 아예 포기하게 되었다. 내가 이 경험에서 절실히 깨달은 것은 욕심은 끝이 없다는 점이다. 비교 평가'는 곧 다음과 같은 망상을 심어준다.
①남의 떡이 커 보이는 법이고 ② 싼 게 비지떡이며 ③ 비싼 게 좋은 거라는 착각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욕망을 자꾸 업데이트 시키도록 만든다. 30만 원짜리 고급 스와치 시계'를 사려고 할 때 자본-국가'는 나에게 메일'을 하나 보낸다. " 고객님, 이왕 같은 가격 대비 만족할 수 있는 명품 시계 카탈로그'를 보내드립니다.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 그런데 막상 같은 가격 대비 시계는 달랑 하나이고 나머지는 심장을 뛰게 만드는 고가의 시계들로 진열을 한다. 그것이 바로 자본 욕망 시스템'이다. 여기에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한다. 사실 가장 좋은 제품'은 처음 구매하려고 했던 그 소박한 제품'이다. 자기 수준에 맞는 소비'가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아마 이 글을 여기까지 읽은 사람들은 < 당신이 처음 골랐던 그 시계 > 라는 제목을 떠올리며 이 글의 주제가 " 분수에 맞는 소비 생활 " 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틀렸다. 나는 시계가 아니라 사랑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어쩌면, 오늘 밤은 눈이 올지도 모르니깐 말이다. 이 글은 소비심리학에 대한 글이 아니라 사랑학개론'에 대한 글이다. 내가 잃어버렸던 십만 원짜리 스와치 시계'는 내 첫사랑에 대한 은유였다. 내가 그 시계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은 첫사랑에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세월이 흘렸다. 한 여자를 만났다. 근사한 시계였다. 첫눈에 반했다. 1년여의 구애 끝에 그 시계를 내 손목에 찼을 때, 그 벅찬 감동을 아직도 기억한다. 하지만 시계가 자꾸 고장이 나자, 나는 비싼 시계에 눈독을 들였다. 악어 가죽으로 만든 시계는 황홀했다. 그 시계를 보자 내 시계는 낡고 초라했다. 화를 내는 일이 많아졌다. 그럴수록 나는 점점 비싼 시계에 눈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손목에 차고 있던 낡은 시계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하게 되었다.
그 시계를 다시 사고 싶었으나 오래 전에 이미 단종되어서 생산이 중단된 시계였다. 그때 깨달았다. 시계는 다른 제품과 비교를 하면 안 된다는 것, 아버지의 초라한 어깨가 부끄럽다고 다른 아버지의 견장을 욕심내면 안 되듯이, 내 시계가 낡았다고 다른 시계를 탐하면 안 된다는 사실. 시계를 잃어버리면 시간도 멈춘다는 사실. 하느님이 하신 말씀은 옳다. 네 이웃의 시계를 탐하지 마라. 그 말은 곧 다른 제품의 시계 카달로그'를 훔쳐보지 말라는 말이다. 눈이나 펑펑 왔으면 좋겠다. 펑펑 울기 좋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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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 글을 필사'하셨다. 뭐 이런 잡문을.....
내 글을 필사하시는 분들이 워낙 많아서 감동 따위는 없다만,
앞으로는 저작권을 행사해서 필사하는 분들에게는 1000원씩 받을 생각이다.
전문을 필사할 경우 2340원
두 줄 필사할 경우 1450원
요약 정리 1000원
한 줄 필사 750원....
피도 눈물도 없는
박근혜 정권 아래에서 공짜는 없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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