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월요일 아침 조회 시간 때 교장이 쏟아내는 말을 훈화가 아닌 잔소리'로 느끼는 이유는 혼자서 마이크를 잡고 삐약삐약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화를 잘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래야지 내가 말할 때 상대방도 귀를 기울인다. 말이란 소통을 위한 도구이지 불통을 위한 장난감이 아니지 않은가. 노래방에서 가장 꼴불견'인 사람은 마이크를 혼자서 독점하는 인간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꼴불견'은 모처럼 기회를 얻어 노래를 멋들어지게 부르고 있는데 노래의 클라이막스에 끼어들어서 노래를 망치는 인간들이다. 솔직히 말해서 조용필의 < 그 겨울의 찻집 > 을 부르는 이유의 팔 할은 "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 를 목놓아 불러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것 하나 불러보겠다고 익숙하지도 않은 도입부의 멜로디를 기억하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 아아아아아아아. 시부랄 ! " 아아, 웃고 있어도... " 를 부르려고 할 때, 뒤에서 누군가가 여분의 마이크를 들고 부른다면 ?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정말,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상사만 아니라면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다. 깜박이 없이 끼어드는 차량을 볼 때 욕을 안 할 사람이 어디에 있나 ? 대화도 마찬가지다. 마이크 잡고 삐약삐약하거나 절창 부분에서 느닷없이 끼어들 때 말할 기분이 나지 않는다. 결국은 듣기와 말하기'는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다.  

 

- 잊는다는 것의 반대말은 복수다 中

 

 


 

 

 

 

 

 

그것은 술에 대한 모독.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말하자면 사회 생활 할 때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이 " 접대 문화 " 다. 좋게 말해서 여러 사람이 모여 함께 음식을 나눈다는 < 회식 / 會食 > 이지 엄밀히 말하자면 아랫것들이 윗분에게 재롱을 떠는 것이다. 회식비야 법인카드로 긁으면 되니 윗분들은 접대 받는 것을 좋아라 한다. 죽을 맛이다. 노래방 가면 프라이머리의 근사한 레트로 스윙 장르 곡을 부르고 싶지만 윗분을 위해 박상철의 < 무조건 > 을 불러야 한다. 설령 "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 라는 강한 멜로디를 부르고 싶어서 맹숭맹숭한 전반부 멜로디를 참고 부르다가 절창 부분이 다가와서 호흡을 가다듬을 때, 느닷없이 박 부장 새끼'가 마이크를 가로채서 "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대, 나의 사랑아 " 를 불러도 나는 방긋 웃어야 했다. 정말 아아 웃고 있지만 우우, 눈물이 났다.

 

태진아 노래방 기기 성우는 이 바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 채 빵파르와 함께 " 와우, 어디서 좀 놀아보셨군요 !! " 라며 내 노래 솜씨를 칭찬했지만 나는 우울했다. 박부장이 부른 것은 한 소절이었지만 사실 그 한 소절은 < 그 겨울의 찻집 > 의 전부'다. 핫도그 소세기만 빼먹고, 튀김옷만 주는 꼴이다. 윗분은 자기 돈도 아닌 법인 카드로 생색을 내고 아랫것들은 접대하느라 몸이 피곤하다. 하지만 이런 것은 접대 문화에 속하지도 않는다. 진짜 화끈한 접대 문화는 룸살롱이나 방석집'에 가야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술값이 200만 원이 나오는 고급 룸살롱에 가서 아가씨 대여섯 불러서 양주를 마실 때, 그때 비로소 " 그들만의 리그 " 가 펼쳐진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여성 알라디너들은 내 남편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경험한 그들만의 리그'는 얌전한 놈일수록 화끈하게 논다.

 

내가 다니던 회사가 양아치들만 모여서 만든 회사여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양복만 벗으면 환상적인 놀이는 시작되었다. 그렇다고 진짜 양아치들이 모인 집단은 아니었다. 나름 한국 문화 예술 진흥을 위한 인물 파워 랭킹 100위 안에 드는 인물 몇몇이 모여 만든 회사이니 말이다. 며칠 후, 문화 사회면 신문이나 티븨에 불콰한 얼굴로 출연하여 자상한 교양인 흉내를 낼 때는 정말 전날 먹던 꼴뚜기가 튀어나올 정도로 혐오스러웠다. 하여튼, 그들은 룸에만 들어가면 개가 되었다. 부하 직원들이 다 보는 앞에서 아가씨에게 오럴섹스를 시키는 것은 기본이었고, 어떤 양아치는 자기 파트너를 테이블 위로 끌고 가서 말처럼 섹스를 하기도 했다. 포르노 영화 얘기 하냐고 ?  아니다. 본 그대로를 말하는 것이다. 사실 양주를 마신다는 것은 핑계이고 젖가슴을 주무르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난 이 짓이 구역질이 나도록 싫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술에 대한 모독이므로 ! 술 앞에서 감히 젖가슴을 주무르다니, 그것은 마치 경제를 이야기하는데 똥파리가 와이티엔 뉴스룸을 날아다니는 꼴이었다. 내가 분노했던 것은 그들의 질펀한 색기 때문도 아니었고, 눈치없는 똥파리 때문도 아니었다.  술에 대한 그들의 모독 때문이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술을 마시면서 한번도 여자를 주무른 적 없다. 룸살롱에서도 윗분들이 " 곰곰발 ! 어이, 자네 고자인가 ? " 라고 비아냥거려도 나는 손도 잡지 않았다. 화류계에 갓 들어온 막내가 고참 언니 눈치를 슬슬 보다가 내 지퍼를 강제로 열려고 했을 때 나는 단호하게 외쳤다. " 그 ! 것 ! 은 ! 술 ! 에 ! 대 ! 한 ! 예 ! 의 ! 가 ! 아 ! 닙 ! 니 ! 다 ! "

 

누군가가 수작(隨酌) 이란 술 따를 수에, 술 따를 작'이라며 그짓의 정당성을 말했을 때에도 나는 말했다. " 부장님, 그것은 비겁한 변명입니다. " 누누이 다시 강조하지만 그것은 술에 대한 모독이므로. 나는 술 마실 때 술만 마신다. 절대 누구를 만진 적 없다. 노래방에서 뒹군 적은 있고 놀이터 공터 모퉁이에서 뒹군 적은 있으나 술집에서 강제로 손을 잡거나 그런 짓은 하지 않았다. 그것은 내 스스로가 만든 주도'였다. 그래서 나는 술자리에서 흑심을 품고 상대방을 조물딱거리는 것을 못 보는 성격이다. 손버릇 나쁜 직원이 술만 마시면 여직원에게 스킨십을 하길래 대들다가 팔이 빠지고 어깨뼈가 부러져서 두 달 간 깁스 신세를 진 적도 있고, 속초에서는 상을 엎어서 뜨거운 도치알탕 국물이 내 바지 속으로 들어가서 혼쭐이 난 적도 있다. 그, 그그그그것은 술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은가 ?

 

나는 이처럼 술을 무시하는 인간이 싫다. 술은 마시지도 않으면서 내 팔에 얼굴을 파묻고 혼자 발기되어서 안달이 났던 그 친구에게 실망했던 이유는 그가 술 앞에서 예의 없이 굴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사과할 필요는 없다. 술에게 사과하라. 앞으로는 곱게 술만 마셔라. 모텔에서는 공부하지 말고 섹스나 하고, 술집에서는 남의 몸 건들지 말고 술만 처먹는 게 예의다.

 

 

 

 

 

 

+

일주일에 두 번만 술을 마시기로 결심했다. 이번 주는 두 번 마셨다. 결심을 한 날이 이틀 전'이다. 결국 날마다 마신 꼴이다. 지난 주말에 동생이 왔길래 대형 마트 가서 고량주를 잔뜩 사가지고 왔다. 장이모우 감독의 < 붉은 수수밭 > 은 모옌의 < 홍까오량 가족 > 이 원작이다. 그들은 술을 빚는다. 그리고 술 기운에 용기를 얻어 일본군에 대항하여 싸운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평소에는 꾀죄죄하지만 술만 먹으면 용기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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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시경 2013-11-27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걱~제가 모르는 새로운 세계...말로만 듣던 세계를 이리 리얼하게 보여주시다니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1-27 19:00   좋아요 0 | URL
제가 좀 리얼합니다.. ㅋㅋㅋㅋ

rtour 2013-11-27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저 정도로 개인가요? 공개적으로? 심각한 뵨태들이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1-27 19:27   좋아요 0 | URL
200만 원 지불하니 뽕을 뽑겠다는 거 아닙니까.
처음부터 진도가 쎈게 아니에요.
양주 한병 놓고 깨작깨적거리면
뽀뽀도 못하게 합니다. 그러다가

양주 몇 병 시켜서 몇 백 오르면
마담이 화끈하게 놀라고 아가씨들에게 귓속말 하고 갑니다.
아가씨들은 하기 싫어도 그짓을 해야 하고.....
그런식으로 한번 단골이 되면 좀더 강도가 쎄지는 겁니다.

Forgettable. 2013-11-27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술 땡긴다. 일주일 2회 음주가 이리도 지키기 힘든 약조였다니. ㅠㅠ

곰곰생각하는발 2013-11-27 20:46   좋아요 0 | URL
저도 넉넉한 결심이라 생각했는데...
어제는 눈이 올것같아서 일부러 마셨는데, 어제는 안 오고 오늘 올 것 같네요.
제가 눈 오면 반드시 술을 마셔줘야 하거든요.
집에 싱싱한 굴 있는데... 이거 무지 땡길 것 같습니다.

rtour 2013-11-27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싱싱한 굴..묵고 싶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1-27 21:25   좋아요 0 | URL
전 왜... 포장마차에서 조개 채 들어서 구워 먹는 굴 있잖습니까. 고거 먹고 싶어요. 지글지글 끓여서..
생굴은 그닥 맛을 잘 모르겠고.... 찬 소주에.. 참, 저 이번에 고랭주 사가지고 왔습니다.
대형 마트 갔더니 잔뜩 있더라고요... 5병 사가지고 있는데 이틀 동안 한병 마셨음..
아, 근데 내 체질은 아닌 거 같어요. 아, 써서... 이거 원...
고량주엔 확실히 기름진 탕슉 이런 거 있어야 합니다.
담엔 중국음식 배달시켜서 함 먹어봐야겠어요...

rtour 2013-11-28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고량주는 탕슉이 제 격. 안주 궁합도 다 따로 있어요~안되면 튀김이라도!

곰곰생각하는발 2013-11-28 00:38   좋아요 0 | URL
다음에는 오징어 튀김 사다가 먹어야 겠어요. 지금 굴 하고 먹었는데...
아이. 이거 써서 못 먹겠음...

Forgettable. 2013-11-28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싱싱한 굴엔 역시 소주!!!!!!!!!! 아 며칠 전에 굴이랑 사케 먹었는데 이 조합도 괜춘하더라구요. 뭐 이쁜이랑 마시니깐 무슨 술이든 무슨 안주든 술술 넘어가더라만. 여튼 굴에 소주 한잔 사주세요 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3-11-28 02:11   좋아요 0 | URL
굴 좋죠. 비싼 거 사달라는 말 안 하시니 다행입니다.
굴소주 좋죠. 다음에 굴소주 먹으러갑시다...

2013-11-28 09: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28 1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30 0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30 1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