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석의 문장 한국어 글쓰기 강좌 1
고종석 지음 / 알마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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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쇠도 갈닦으면 바늘이 된다 !

 

 

 

글쓰기 관련 책은 내용이 모두 고만고만하다. 일단, 저자는 글을 잘 쓰고 싶은 독자에게 용기를 주면서 말문을 연다.  " 독자 여러분, 좋은 글은 재능이 아닌 훈련에 달렸답니다. 뿌잉뿌잉 ~ "  다음은 글쓰기 책에 대한 독자 반응 패턴이다. ① 독자는 괄약근 꽉 조이며 두 주먹 불끈 쥔다. ② 밑줄 그으며 읽는다. ③ 책을 덮는다. 우우, 이상한 일이다. ④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우심방 좌심실에서 잡초처럼 자란다 ! ⑤ 이런 기분이라면 메이저리그 도루왕 리키 핸더슨처럼 김훈과 장 그르니에의 미문을 훔치는 일은 시간 문제이리라.  ⑥ 시험 삼아 서평 하나 작성해 볼까 ? 목줄을 풀자마자 사나운 손은 득달같이 모니터 앞으로 뛰어간다.  " 하나, 둘, 셋.... 아, 아아. 마이크 테스트. 마이크 테스트. 아아. " 덕담을 곁들여 넉넉하게 별 다섯 개 넣어주리라 ! ⑦ 그런데 모니터 속 커서(cursor)는 망망대해에 떠 있는 동력 없는 땟목처럼 전진할 줄 모른다. 여기까지가 낙담 - 용기 - 좌절'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어떻게 아냐고 ?!  묻지 마라, 눈물이 앞을 가린다.......

 

고종석 문장은 절밥 상차림'처럼 간소하다.  오신채( 번역투 문장 구조, 쓸데없는 겹말, 부적절한 조사 사용, 형용사, 부사, 접속사 과잉 )를 경계해 솎아내다 보니 문장이 독하지 않고 짜지 않다.  그런데 지나치게 자기 절제를 해서 개성이 약하다는 느낌도 든다. 기자 생활을 오래 하면서 글 속에 자기 색깔을 드러내는 것을 꺼려한 탓이리라. 결국 개성 강한 문체'란 변칙의 결과'다. 문장 구조를 강조하면 화려한 수사가 죽고, 수사를 강조하면 구조가 허약해진다. 적절한 분배가 필요하다. 한국어를 정확하게 사용한다는 평을 듣는 고종석이 작년에 숭실대학교 진리관에서 한 글쓰기 강연'을 책으로 묶어서 내놓았다. < 고종석의 문장 > 은 정확한 문장을 쓰기 위한 길라잡이 책'이다. 절대 고수가 입말로 전해주니 귀에 착착 붙는다.

 

고종석도 글을 잘 쓰고 싶은 독자에게 용기를 심어 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 독자 여러분, 좋은 글은 재능이 아닌 훈련에 달렸답니다. 뿌잉뿌잉 ~ " 시작은 고만고만한 글쓰기 실용서와 다르지 않다. 불길한 예감이 스친다. 이 책에서 말하는 문장 강화 훈련은 다른 글쓰기 교본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고종석이 말하는 정확한 문장 쓰기 요령은 다음과 같다. 출판사에서 요약한 내용을 옮긴다.


○ 접속부사를 빼면 문장에 힘이 생긴다.
○ ‘-적的’과 ‘의’는 뺄 수 있으면 빼는 게 좋다.
○ 복수 표현 ‘들’을 남용하지 마라.
○ ‘~ㅁ/음으로써’는 ‘~아/어’로 고치는 것이 좋다.
○ ‘~하는 이유는 ~ 때문이다’는 명백한 오문이다.
○ 단위를 나타내는 불완전명사는 뒤로 빼라.
○ 주어/목적어와 서술어 사이의 거리는 가까울수록 좋다.

 

이 책에서 정작 흥미로운 부분은 문장론'보다는 언어의 본질'에 대한 언급이다. 전작인 < 말들의 풍경 > 과 < 감염된 언어 > 에서 자주 언급했던 내용이지만 다시 한 번 새겨들으니 통쾌한 맛이 있다. 고유어'만이 한글을 아름답게 만든다는 언어 민족주의자'를 보고 있으면 까닭모를 거부감이 든다. 그들은 한자가 배제된 토박이말만으로 된 문장을 쓰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억지를 부린다. 고종석은 " 한자어는 명백한 한국어 " 라고 말한 후, ' 나는 한자어를 절대 안 쓰겠다 ' 라고 말하는 건 아주 바보 같은 짓이라고 말한다. 단어를 고를 때 얌전한 결 무늬 단어'를 주로 사용하는 고종석 입에서 " 아주 바보 같은 짓 " 이라는 표현은 수위가 꽤 놓은 비난'이다. 내가 고종석이었다면 저잣거리 입말로 " 똥 싸고 자빠졌네 ! " 라고 큰소리쳤을 것이다.

 

한글 순혈주의'는 자칫 잘못하면 에고'에 빠질 위험이 있다. 한글은 한자어(중국제 한자어, 일본제 한자어)와 섞여서 오염되었다기보다는 한국어 어휘는 한자어와 섞여서 풍부해졌다. 언어는 순혈보다는 혼혈 과정에서 어휘가 풍부해지는 경향이 있다. 좋은 예가 영어'다. 혈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글 순혈주의자가 보기에 영어는 오염된 언어'에 가깝다. 뿌리말에는 프랑스-라틴계 에서 비롯된 말이 굉장히 많기 때문이다. 고종석은 " 게르만계 단어들에 대응하는 프랑스-라틴 계통의 유의어들이 영어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 듯, 고유어에 대응하는 한자어 유의어들은 한국어를 풍부하게 만듭니다. 그것은 솎아내야 할 찌꺼기가 아니라 품어 안아야 할 자산 (164쪽) " 이라고 말한다. < 섞다 > 와 < 썩다 > 를 동일한 의미로 받아들이는 인간들은 새겨들어야 한다.

 

독일 역사에서 위험한 민족주의가 대두될 때마다 기승을 부린 것은 < 결실의 모임 > , < 성실한 잣나무 협회 > , < 독일 애호협회 > , < 페그네시아 꽃 모임 > , < 엘베강 백조 교단 > 같은 결속체'였는데, 이들은 모두 언어협회였다. 언어협회는 라틴어, 그리스어, 프랑스어가 스며든 독일어를 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어마저도 게르만 순수 혈통을 강조한 것이다. 북한이 언어 순화에 엄격한 이유도 민족주의와 무관하지 않다. 한글 순혈주의자가 주장하는 바에 따르자면 : 인간/人間 이라는 한자어 낱말 대신 사람'이라는 고유어로 대체해야 보기 좋은 문장이 된다. 그런데 < 사람 > 과 < 인간 > 은 비슷한 말이기는 하지만 반드시 동일한 늬앙스는 아니다. 내가 위에서 언급한 문장을 그대로 끌어들이자면 < A문장 : 섞다와 썩다를 동일한 의미로 받아들이는 인간들은 새겨들어야 한다 >와

 

< B문장 : 섞다와 썩다를 동일한 의미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새겨들어야 한다 > 는 비슷하지만 뉘앙스가 약간 다르다. < 인간 > 이라는 낱말은 < 사람 > 이라는 낱말에 비해 보다 공격적이다. < 인간 > 과 < 인간들 > 도 뉘앙스가 각각 다르다. 인간은 집단성에 초점을 둔 반면 인간들은 개개인을 강조한 말이다. 그렇기에 지적을 당하는 입장에서는 " 그런 인간은 새겨들어야 한다 " 는 말보다는 " 그런 인간들은 새겨들어야 한다 " 가 보다 강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마찬가지로 < 값 > 과 < 가격 / 價格 > 은 비슷한 말이지만 똑같은 말은 아니다. 덩치값을 덩치가격'이라고 대체할 수는 없다. 언어는 끊임없이 생성되고 감염되는 운명을 가졌다. 유통되지 않는 언어는 사라진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 이링공 뎌링공 하야 나즈란 디내와손뎌, 오리도 가리도 업슨 바므란 또 엇디 호리라.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 라고 말할 수는 없다.

 

때가 되면 번성하다가 때가 되면 사라지는 것이 종(種)의 운명이듯, 옛말도 때 되면 번성하다가 때 되면 사라진다. 그게 순리'다. 절필을 선언했던 고종석이 이 책에서 자주 했던 말은 " 간결하게 써라 " 이다. 맞는 말이다. 군더더기는 솎아야 한다. 무쇠를 갈닦으면 바늘이 된다. 그 옛날 선인장 가시'는 잎이었다. 펜이 칼보다 강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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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레이 2014-05-25 0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보고싶어집니당~

곰곰생각하는발 2014-05-25 03:02   좋아요 0 | URL
괜츈습니다. 전작들에서 이미 다 한 말이지만 종합적으로 볼 수 있고
잘못된 문장을 바로 고치는 코너도 있어서 재미있습니다.
글쓰기 책 가운데 꽤좋습니다

에피큐리언 2014-05-25 0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磨斧作針

곰곰생각하는발 2014-05-25 03:01   좋아요 0 | URL
음................................

작과 침'이라는 한자 밖에 모르지만
침을 만든다, 라고 하는 걸 보니.. 요한자 쇠를 갈아 바늘을 만드느다는 뜻이군요 ?

에피큐리언 2014-05-26 02:01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마부작침. 이번 글에 딱 맞는 고사성어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5-26 13:28   좋아요 0 | URL
마부작침이라... 찾아보니 도끼를 갈닦아서 바늘을 만든다는 뜻이군요.
글쿤요. 딱입니다 !

수다맨 2014-05-25 0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종석이 언젠가 평론가들도 비문을 많이 쓴다며 지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나마 정확한 문장을 쓸 줄 아는 사람은 정과리와 백낙청 정도 밖에 없다고 했죠.
고종석의 정치적 견해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문장을 쓰는 테크닉과 언어를 보는 감식안은 정말이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5-25 03:03   좋아요 0 | URL
전 고종석 문장이 개성이 없어서 아쉽긴 하지만 문장을 바로 쓴다는 면에서는 명징한 맛이 있어 조습니다. 원래 좀 요리에 오신채 듬뿍 넣어야 자극적이잖아요. 갱성적 문체는 결국 오신체를 넣어줘어어야 사는 측면도 있다고 봅니다.

마립간 2014-05-26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일상 대화에서 가끔 영어단어가 튀어나오기도 합니다. 직업적인 일 분야에서는 더욱 영어가 흔하게 사용됩니다. (제 직업의 기반이 서양에서 유래하여 영어책을 가지고 공부합니다.)

저는 외국어나 외래어가 어떤 언어를 풍부하게 만든다는 것에도 동의합니다. 사람과 인간의 어감에 차이가 있다는 것에도 동의합니다.

그런데, 한글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외국어/외래어를 유입되는 문제보다 적절한 고유 한글이 없어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죠. 전 세계적으로도 고유어들이 사라지고, 이에 대한 평가는 언어 다양성 소실과 언어로 나타나는 문화의 소실이죠. ; 한국 고유어 중심 주의는 그런 의미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3905983

곰곰생각하는발 2014-05-26 13:24   좋아요 0 | URL
영어를 기반으로 하는 직업이면 선망 직업군이겠네요. 후후...

소수 언어는 멸종 위기에 있습니다. 멸종 위기에 처한 종을 보존해야 하듯이 소수 언어도 그리 해야 합니다.
제가 말하는 부분은 소수 언어가 언어가 아니라 오래된 낡은 낱말입니다.
가지를 쳐야 할 필요는 없으나 낡은 단어가 사라진다고 해서 굳이 슬퍼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제가 한글순혈주의자들에 대해서 굉장히 비판적으로 보기 때문에.....

마립간 2014-05-26 13:58   좋아요 0 | URL
영어를 기반으로 하는 선망받던 직업군이었습니다. 이미 지식노동자의 세상도 저물고 있기 때문에 ... 구조 조정을 앞두고 있습니다. (일단 망하면 별 차이 없습니다.)

저와 제 딸을 보더라도 사용하는 단어가 조금씩 다릅니다. 언어는 변화하게 마련입니다. 같은 이야기의 반복이지만, 한국어의 순수성 유지보다 민족/한국어의 정체성 유지가 관심입니다. 대부분의 학자는 우리 나라는 문자가 있고, 역사가 있어 소멸되는 언어와 문화와 달리 봐야 한다고 하지만, 저는 그런가 의심하고 있죠.

순혈은 진화론적으로도 (단일 클론이니)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제가 한글순혈주의(자)라고 느꼈던 상황(사람)은 없기 때문에, 오히려 고유어를 통한 다양성 유지로 보았다는 것이 곰곰발님과 저의 가치판단의 차이죠.

곰곰생각하는발 2014-05-27 00:57   좋아요 0 | URL
넵... 저도 고유어를 통한 다양성 유지'가 맞다고 봅니다.
전 얼, 겨레, 넋... 이런 말 자주 쓰면서 민족주의자 행세하는 글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순혈에 대한 욕망은 위험하니깐 말이죠. 같은 이유로 전 언어는 오염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보기에는 오염이지만 제가 보기에는 시대에 따른 변화 정도겠지요.
옛말을 지킨다고 아르셩... 디리 얄라리 얄리.... 이런 식으로 말할 수는 없잖ㅅㅂ습니까..ㅎㅎㅎ.



+

참... 찰스 세이프의 < 무의 수학, 무한의 수학 > 이라는 책 읽어 보셨습니까 ? 수학에 관심이 있으시니 읽어보셨을 것 같기도 합니다만.... 이게 꽤 재미있습니다. 마침 50% 세일하더군요...

samadhi(眞我) 2014-05-27 0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순혈주의에 가까운 편이예요. 물론 한자어의 필요성은 인정해(사실은 한자를 좋아하기까지 하지요) 급수시험을 준비할 정도니까요. 그럼에도 범람하는 외래어의 유입(유입보다는 무분별한 사용)으로 우리말이 사라지게 될까 겁나고 그게 안타깝고 속상합니다. 비난하거나 조소하고 싶을 때 가끔 외쿡어를 일부러 쓰기도 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5-27 13:02   좋아요 0 | URL
저도 되도록이면 한글을 쓰려고 합니다. 대신 일반적으로 한글처럼 쓰이는 한자어를 저는 한자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무조건 한글로만 써야 좋은 문장이라고 생각해요. 아마 그 사람이 진아 님 댓글 보면 딴지 걸 겁니다. < 편 > 이라는 말도 한자어고, 필요성, 인정, 급수, 시험, 정도, 범람, 외래어, 유입 등등등... 이런 것까지 딴지를 걸면 정말 답이 업습니다.

samadhi(眞我) 2014-05-27 23:02   좋아요 0 | URL
네 그런 사람들이 걸고 넘어질 걸 예상하고 일부러 한자어를 넣었습니다. ㅋㅋ 한자어가 정말 딱 그 느낌을 나타낼 때도 많은데 말이죠. 그리고 저는 감사와 죄송은 잘 쓰지 않습니다. 고맙다. 미안하다. 를 쓰는데 인식의 잘못으로 한글을 쓰면 낮춤말로 여기는 사람들이 기분 나빠할 때 참 안타깝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5-28 04:28   좋아요 0 | URL
유의어와 동의어를 혼동하면 안 되는데 사람들이 유의어를 동의어로 혼동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각 문장마다 딱 맞는 단어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 맞춤이 반드시 한자어도 아니고 한글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때는 한글이 들어가고 어느 때는 한자가 들어가고... 알맞게 쓰면 되는데 그게 좀 부족한 거 같습니다. ^^

엄동 2014-05-27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보고 싶은 책이군요!

늘 생각은 합니다.

난해하지 않게 말하고

간결하게 쓰자고.

곰곰생각하는발 2014-05-27 20:46   좋아요 0 | URL
이 책 글쓰기에 꽤 도움을 주리라 생각합니다.
엄동 님 오랜만이네요.
어디 여행 다녀오셨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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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 다 빈치와 최후의 만찬 / 저자, 로스 킹 > 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대한 역사/예술 논픽션'이다. 책소개 글을 읽으니 저자는 픽션과 논픽션 분야를 넘나들며 작품 활동을 한 모양이다. 국내에 소개된 책으로는 마네를 다룬 < 파리의 심판 > , 미켈란젤로를 다룬 < 미켈란젤로와 교황의 천장 > 그리고 산타마리아 피오레 성당 돔을 설계한 브루넬레스키 이야기 < 브루넬레스키의 돔 > 이라는 책이 출간됐다. 이쪽 분야(예술 논픽션)에서는 솜씨가 꽤 좋은 모양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알라딘 검색창에 두 거장 이름을 검색하면 실감할 수 있다. 다 빈치'라는 이름으로 걸린 상품은 대략 700회 정도이고, 미켈란젤로는 600회 정도'이다. 역사와 예술 분야에 관심이 있는 글쟁이'라면 도전할 만한 글감'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프로이트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에 흥미를 갖고 논문 두 편을 썼다는 점이다. <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유년의 기억 / 1910 > 과 < 미켈란젤로의 모세상 / 1914 > 라는 논문이다.



독수리 내리다

 

다 빈치'는 놀랍게도 젖먹이 때 일어난 기이한 일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내용은 독수리 한 마리가 내려와 꽁지로 다 빈치 입을 강제로 연 후 꽁지를 입 안으로 쑤셔넣었다는 것이다. 일반인'이 그런 소리 하면 " 뻥 치시네 ! " 라며 웃어넘기겠지만 명색이 레. 오. 나. 르. 도. 다. 빈. 치'가 아닌가 ! 엄마 뱃속에 있었을 때 일어난 일을 기억하는 이'도 있는데 젖먹이 때 일을 기억하지 말란 법은 없다. 우우, 이 기억이 사실이라면 정말 이상한 일이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치기어린 허세 정도로 흘려보냈을 이야기지만 프로이트는 독수리 환상에 흥미를 가졌다. 그는 < 레오나르도 다 빈치 유년의 기억 / 1910 > 이라는 논문에서 " 독수리 환상 " 을 분석하면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동성애자'라고 주장했다.

 

프로이트는 꽁지라는 단어인 " coda " 가 남성 성기'를 뜻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결론은 뻔하다. 독수리 환상은 동성 간 펠라티오 환상'이라는 것이다. 지나치게 터무니없는 추측은 아니다.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는 꼴이겠지만, 당시 피렌체는 동성애'로 유명한 도시였다. 14세기 독일에서는 플로렌처(Florenzer)라는 말이 남색'이라는 뜻을 가진 속어로 통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더구나 다 빈치는 독신자'였다. 프로이트는 여러 자료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후 다 빈치'를 (돈에 관심이 많은) 항문성애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쉽게 말해서 돈에 욕심이 많고 자기중심적인, 철없는 예술가'라는 것이다. 아아,  위대한 천재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프로이트에 의해 하,하하하항문에로티스트'가 되었다. 주먹 불끈 쥔 독자도 있으리라.  황당한 추론 전개 과정이지만 미워하지는 말자. " 창조적 설레발 " 이라고 해두자. 



우거지상

 

< 미켈란젤로의 모세 상 / 1914 > 이라는 논문은 < 레오나르도 다 빈치 유년의 기억 > 과는 다르게 창조적 설레발(과잉 해석) 대신 합리적 분석 틀 안에서 자기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이 양반, 관심 영역이 참으로 방대하다. 미켈란젤로는 모세가 하느님 말씀을 새긴 율법 판을 들고 시나이 산을 내려오다가 백성이 황금 송아지를 섬기는 꼴에 격노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워낙 유명한 사건이어서 격노한 모세가 율법 판을 땅에 내던졌다는 사실은 다들 알고 있으리라. 그런데 미켈란젤로가 만든 모세 조각상을 자세히 살펴보면 분노하는 모세'도 아니고 그렇다고 슬픔에 잠긴 모세도 아니다( 그 역도 마찬가지다). 어떤 이는 모세 상에서 분노와 고통과 경멸이 뒤섞인 모습을 보고, 다른 이는 내적 동요를 가까스로 자제하는 평화로운 모세를 본다.

 

조각상은 하나인데 해석은 분분하다. 모세 얼굴 표정은 < 아 > 도 아니고 < 어 > 도 아닌, < 애 > 매모호한 구석이 있다. 프로이트는 모세 표정 읽기'에 집중하는 대신 사건이 발생한 전후 맥락에 주목했다. 그는 율법 판이 놓인 형태를 통해서 모세 상은 분노 상태가 지난 후'라고 판단했다. 프로이트가 주장하는 조각을 짜맞추면 : 모세 상은 분을 삭인 후 모습이다. 분노 감정은 서서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대신 슬픔, 허탈, 참담 따위는 수면 위로 오르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해석은 성서 속 이야기와는 상반된다. 왜냐하면 성격 급한 모세는 황금 송아지 숭배 장면을 보자마자 율법 판을 내동댕이쳤기 때문이다.

 

프로이트가 그 사실을 얼렁뚱땅 모른 척 넘어갈 리는 없다. " 그(미켈란젤로)는 부서진 율법 판의 모티프에 수정을 가해서, 모세가 화를 이기지 못해 율법 판들을 부순 것으로 묘사하지 않았으며 반대로 율법 판들이 부서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해서 자신의 분노를 삭이는 모세를 묘사했던 것이다. ( 예술과 정신분석, 프로이트 전집17 154쪽 ) " 프로이트가 보기에 미켈란젤로는 성서 속 모세 이야기를 리메이크하되 모세를 새롭게 재해석하고 싶어 했던 예술가였다.

 

 

 

 

모듈성

 

진화생물학자이자 고생물하자이며 탁월한 에세이스트인 스티븐 제이 굴드는 < 모짜르트와 모듈성 > 이라는 글에서 미켈란젤로의 모세 상을 보았을 때 느꼈던 감정을 이야기한다. 굴드가 보기에 모세는 여러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 산에서 목격한 일에 대한 열정과 격정, 일탈한 백설들에 대한 분노,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깊은 슬픔, 하나의 얼굴에 풍성한 감정들이 조합되었다는 점 때문에 그 조각상은 그토록 숭고해 보인다 ( 여덟마리 새끼 돼지, 364쪽) " 굴드는 복잡한 모세 얼굴에서 모듈성에 관한 명료한 통찰을 얻었다고 고백한다. " 나는 이 조각상을 여러 차례 보면서 매번 그 힘을 느꼈지만, 어떻게 미켈란젤로가 한 얼굴에 그토록 많은 것을 담아냈는지 통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가장 최근의 여행에서 문득, 해답의 단서를 찾아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켈란젤로는 모듈성 원리를 이해했다.

 

조각상의 얼굴에서 한 특징에 초점을 맞추고 나머지를 가리면 한 가지 감정만 보였다. 눈썹이 하나의 메시지를 말하고, 코가 다른 것을 말하고, 입술이 또 다른 것을 말했다. 풍성한 얼굴은 여러 감정 모듈로 분해되지만 전체를 보면 깜짝 놀랄 결과가 나온다. 365쪽 " 무슨 말인가 하면 미켈란젤로는 눈썹은 분노할 때, 입술은 슬픈 감정일 때, 눈은 낙담할 때 표정을 각각 새겼다는 점이다. 굴드의 지적이 맞다면 대성당을 방문한 여행객은 자신이 어느 지점에 촛점을 맞춰 보았느냐에 따라 각각 다른 표정을 읽는다. 눈썹을 보면 화난 표정 같지만 입술 형태를 보면 슬픔에 잠긴 표정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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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05-24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blog.naver.com/ilsnkb/20192053918 (EBS 다큐프라임 동과서 요약)

서양의 사고 ; 대성당을 방문한 여행객은 자신이 어느 지점에 촛점을 맞춰 보았느냐에 따라 각각 다른 표정을 읽는다. - 로 쉽게 설명되는데,

동양의 사고로 보면 열정과 격정, 분노, 슬픈 감정, 낙담의 감정이 뒤섞인 부조화로 볼 것이냐, 풍성한 감정들이 조합되어 숭고로 판단하느냐에 평가가 달라지겠네요. 전자가 아니고 후자인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5-24 15:49   좋아요 0 | URL
재미있군요. 링크 찾아서 보았습니다. 다큐프라임 참... 좋은 프로입니다.
동서가 이렇게 차이가 명확하다니 놀랍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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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 스티븐 제이 굴드 자연학 에세이 선집 3
스티븐 제이 굴드 지음, 김동광 옮김 / 현암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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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와 타자기

 

 

 

 

 

 

 

잘못된 사회적 편향성'에 대해 두 팔 걷고 정열적으로 싸운 과학자'가 있다. 그가 바로 진화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다. 정치와 거리가 직업군 가운데 하나가 과학자'라고 생각하지만 과학자'라고 해서 정치와 무관할 수는 없다.  굴드는 < 인간에 대한 오해 > 에서 " 기존의 아이큐, 우생학, 골상학, 두개계측학 속에 들어 있는 인종, 계급, 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 " 을 낱낱이 깨부순다.  그는 " 편향성 바로 세우기 운동 본부 이사장 " 이라는 명함이 어울릴 만한 위인이다. 워낙 글솜씨가 뛰어나다 보니 그가 똥을 된장이라 해도 믿을 지경이다. 그는 멍청한 롬브로스의 < 범죄자 이론 > 뿐만 아니라 윌슨의 < 사회생물학 > 에 대해서도 편견으로 가득찬 사이비 다윈주의'라며 시간 날 때마다 깐족거렸다.

 

어느 정도였나 하면 : 윌슨의 < 사회생물학 > 이 출간되어 명성을 얻자 하버드대 동료 교수였던 굴드는 ' 사회 생물학 연구회 ' 를 만들어 조직적으로 사회생물학 이론'을 비판했다. 동료 교수의 명성을 시기했다기보다는 보수적 견해에 대한 반격'이었다. 그는 특정 계급과 집단에 대한 우월적 편향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가 보기엔 개똥 같은 소리'였다.

 

 

현상 유지 그리고 일부 집단의 계급, 인종, 성에  따른 특권을 유전적으로 정당화하는 경향이 있다. 역사적으로 강대국 또는 강대국의 지배 집단들은 그들의 권력을 유지하거나 확장하기 위한 지지를 이러한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에서 얻어냈다... ( 중략 ) 이러한 이론들은 1910년과 1930년 사이 미국에서 시행된 단종법과 이민제한법의 시행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나치 독일이 가스실을 만들게 유도한 우생학 정책의 중요한 기초를 제공했다.

 

- 1975. 11. 13일자 [ 뉴욕 리뷰 오브 북스 ] 에 보낸 서신 / 출처, 여덟 마리 새끼 돼지

 

 

만약에 굴드가 한국인이어서 유창하게 한국어를 할 수 있었다면 한국 우파의 아이콘 황우석에 대해서도 신랄한 어조로 퍽유 메시지'를 날렸을 것이다. " 아따, 우석이 무식이 철철 넘치오 잉. 한솥밥 먹는 과학자로써 쪽팔리구만. 도대체 자네가 하는 말은 말이여 막걸리여, 아니면 말방귀여, 뭐시여 ? 과학 분야에서 소숫점 이하 숫자 하나 조작해도 그거시 거대한 대국민 사기요 날조'지, 사소한 오류는 또 뭐시여. 데이터 조작이 무슨 데이터 무제한 에스케이 텔레콤 서비스여 ? 음마, 뭐 이런 개똥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는가 !  변명이랍시고.... 에휴, 잘생겼다. 잘생겼어. 닝기미, 조또 ! " 굴드는 그런 존재다 ! 스티븐 제이 굴드 자연학 에세이 선집 3탄인 <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 > 는 에세이로써 깨알 재미'를 당신에게 선사한다.

 

특히 문자열 Q W E R T Y(쿼티) 자판 타자기'에 대한 에세이'는 흥미롭다.  과학 분야에서 쿼티 타자기 사연은 백설공주 이야기만큼 유명해서 단골 레퍼토리'로 사용되는 이야기'다. 재레미 다이아몬드의 < 총,균,쇠 > 에서도 쿼티 자판 이야기가 나온다(그 외, 몇몇 책에서도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쿼티 씨의 슬픈 이야기를 접했으나 내가 가진 기억력의 한계로 출처를 까먹었다). Q W E R T Y 자판 배열은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여 타이핑 속도를 최대한 늦추도록 고안한 배열이다. 가장 많이 쓰는 알파벳은 주로 자판 왼쪽에 배치되어 있다. 오른손잡이에게 불리한 배열이다. 특히 알파벳 a 를 왼손 새끼손가락으로 간신히 친다고 생각해 보라. 다섯손가락 가운데 가장 부자연스러운 손가락이 새끼손가락 아니었던가 ?

 

알파벳 a 를 왼손 새끼손가락이 가까스로 닿을 수 있는 끄트머리에 배치하는 행위는 팀에서 블로킹을 담당해야 할 키가 가장 큰 배구 선수를 네트에서 제일 먼 끄트머리에 배치하는 멍청한 감독의 황당한 전술만큼 어이없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옛날 수동 타자기는 타이핑 속도가 빠르게 되면 글쇠들이 엉켜서 망가졌기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속도를 늦추는 방식으로 배열하다 보니 탄생한 것이 쿼티 자판 배열이었다. 나중에는 타이핑 속도 때문에 글쇠가 엉키는 오류를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보완했지만 결국에는 이 비효율적 쿼티 자판 배열이 현재에도 사용되고 있다. 지금 내가 치고 있는 자판 배열도 Q W E R T Y 자판 방식'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Q W E R T Y  자판보다 2배나 빠른 자판 배열 타자기를 선택하지 않았을까 ? 

 

이유는 간단하다.  Q W E R T Y 자판에 익숙한 타이피스트( 타자수, 타자 교사 등등... )가  기득권을 내세워 새로운 것을 도입하는 데 저항했다. 새로운 자판이 도입되면 눈부신 타자 실력(쿼티 자판으로 배운)은 한순간에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타이핑 속도가 2배나 빠르고 타자를 칠 때 드는 힘의 95% 를 절약할 수 있는 새로운 자판 배열 타자기를 익히느니 차라리 불편한 쿼티 자판기를 사용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세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불완전성이 반드시 열성(퇴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 둘째,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a사 기술력'이 b사 기술력보다 뛰어나다고 해서 반드시 a사 제품이 시장을 독점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 ( 대표적인 경우가 VHS 녹화 방식의 승리를 들 수 있다. 베타 방식이 기술적으로 VHS방식보다 앞섰지만 결국에는 패배했다 )

 

셋째, 정치학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변화에는 저항이 따른다는 점이다.  이 장을 읽다가 문득 "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e) " 이라는 사회과학 용어가 떠올랐다.  전방 백 미터 앞에 과속방지턱이 있다는 사실도 알려주는 친절한 GPS를 끈 채 잠시 삼천포로 빠지자.

 

< 경로의존성 > 이란 : " 법률이나 제도, 관습 그리고 과학적 지식이나 기술에 이르기까지 인간사회는 한번 형성되어 버리면 그 후 외부로부터의 다양한 쇼크에 의해 형성시에 존재한 환경이나 여러 조건이 변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종래부터의 내용이나 형태가 그대로 존속할 가능성이 있다. 이와 같이 과거의 하나의 선택이 관성(inertia) 때문에 쉽게 변화되지 않는 현상을 ‘경로의존성’이라고 한다. ( 21세기 정치학대사전, 한국사전연구사'에서 발췌 ) "

 

내가 잘난 척하려고 경로의존성'이라고 어렵게 말해서 그렇지 일종의 귀차니즘'이요, 관성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대표적인 경로의존성 짚단이 바로 공무원 사회'다. 새누리당이 온갖 포악질에도 존나 승승장구하는 이유는 정치적 매너리즘 때문이다. 매워도 다시 한 번 불닭'에 손이 가듯 새누리당 지지자들도 미워도 다시 한 번 여닭'에 투표를 한다. 유권자들은 새누리당이 말하는 " 통합과 쇄신 " 이 그들만의 짜고 치는 공염불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만 알면서도 속는다. 잘못된 선택에 대해서 주머니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 없다는 논리'로 정당화한다. 그놈이 그놈이니 그놈보다 그놈이 낫다는 말이다. 깃발 부대는 그렇게 탄생한다. 그것은 마치 타자기의 글쇠 엉킴 문제는 완벽하게 해결되었지만 여전히 불편한 쿼티 자판 타자기를 고수했던 심리와 동일한 것이다.

 

불편하면 바꿔야 한다. 세월호와 같은 참사를 막을 수만 있다면 처음부터 다시 새로운 자판을 손에 익혀야 한다. 처음은 미미했으나 끝은 LTE급보다 빠른 타자 실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명박과 박근혜, 그리고 새누리당은 쿼티 타자기에 익숙한 유권자가 만든 비극이다. 느리고 불편한  Q W E R T Y 자판 배열 방식 (새누리당) 은 민주주의로 향하는 속도를 늦춘다. 이제 다시 GPS 전원을 켜 본 궤도 안으로 진입하자. 굴드'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굴드니까 ! 굴드가 아니었다면 캄브리아 조개 화석 따위에 대한 글을 읽으며 낄낄거릴까. 굴드는 과학 지식뿐만 아니라 과학자가 갖추어야 할 자세'에 대해서도 말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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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05-22 0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티븐 제이 굴드는 제가 무척 좋아하는 (과)학자입니다. 저는 플라톤-노자 사상을 선호하지만, 진화론에 있어서는 확실히 아리스토텔레스-장자 사상이 맞는 것 같습니다.

한 때 DVORAK를 연습한 적이 있는데, (ㅋㅋ) 이미 QWERTY에 익해진 상태라 연습의 동인이 약하다라구요. 자판 변경도 따로 해야 하고.


곰곰생각하는발 2014-05-23 00:44   좋아요 0 | URL
마립간 님과 저는 독서 취향이 비슷한 가 ㅂㅂ 봅니다.
전 뭐 딱히 영문 자판 사용할 일이 별로 없어서 그냥 그려려니 합니다
개인적으로 ㅂ 자판이 왼쪽 맨 위 꼭대기에 있어 불변합니다.

봄밤 2014-05-22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근혜와 타자기와 힘내라 브론토사우르스라니요! 두 번 읽고 갑니다. 총총.
책 제목 정말 좋네요. 흠흠. 읽어보고 싶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5-23 00:45   좋아요 0 | URL
굴드는 과핵책이지만 어렵지 않아서 과학 상식이 없어도( 대부분 과학책은 어느 정도 밑밥이 깔려야 이해하기 쉬운데.. ) 읽기 쉽습니다. 그게 굴드의 솜씨입니다. 함 읽어보세요 ~ 재미있습니다.

samadhi(眞我) 2014-05-27 0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굴드에게 애정이 솟네요. 사회생물학연구회를 만들었다는 것에 놀라 존경심이 생깁니다. 함께 꼴통들 엿먹이게 굴드랑 친해지고 싶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5-27 12:59   좋아요 0 | URL
굴드랑 사마디 님이랑 궁합이 잘 맞을 겁니다.
참...보기 드문 과학자'예요. 과학자치고는 정말 글을 소설가보다 잘 씁니다.
전무후무할 겁니다.

rendevous 2014-07-14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드워드 윌슨 <통섭> 재밌게 읽었는데 사회생물학에 보수적 관점이 깔려 있단 건 미처 캐치해내지 못했네요... 굴드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사회생물학 연구회 에피소드에서 애정이 마구 샘솟는 ^^ 이 아름다운 인물에 대해 글 쓰는 데 당에 대한 충성심 어쩌구하면서 낮은 출산율의 책임을 대한민국의 여성들의 책임으로 돌리는 김무성 씨가 당 대표로 선출됐다는 대한민국의 관성을 보면서... 힘이 마구 샘솟네요. 용맹정진 공부해서 이 예외상태를 정지시켜야 할텐데...

데카르트 방법서설을 보니 사회관습/관성/경로의존성에 순응적인 태도를 보이더라고요. 도올 선생님이 쓴 도올심득 동경대전을 보니 데카르트가 30년 전쟁을 겪으면서 사회'안정'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맥락이 있었다고 하는데... 우리 시대의 사회적 무의식은 국민들에게 어떻게 나쁜 선택을 은연중에 강요하는지... 아직도 유교문화 잔재가 남아 있는 것 같고, 대한민국이 아니라 대한제국도 아니고 대한왕국... 예전에 '선덕여왕' 흥행을 보고 박근혜 대통령 당선을 예견하신 고등학교 선생님이 계속 떠오르는 요즘입니다.

rendevous 2014-07-14 21:29   좋아요 0 | URL
우수 리뷰 당선 축하드려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4-07-15 13:30   좋아요 0 | URL

우슈 리브 말입니까 ? 이달의 리뷰 말씀하시는군요... ㅎㅎㅎㅎ. 고맙습니다.
굴드 책이 굉장히 좋습니다. 이 양반의 인간에 대한 오해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재미있어요.
저도 윌슨의 < 통섭 > 재미있게 읽었는데 가만 굴드 말을 들어보니 굴드 말이 맞습디다....
 

 

 

 

 

 

 

후딱 말하기.

 

 

 

 

 

1. 민주화와 민주주의 : 대한민국은 < 민주주의 > 사회가 아니라 < 민주化 > 과정에 놓여 있는 미완성 사회'다.  (올림픽과 월드컵 개최 같은) 굵직굵직한 성공을 자축하는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린 까닭에 < 민주화 > 를 < 민주주의 > 로 착각했다. 성장과 성숙은 동일한 말이 아니다. 중국은 경제적으로 미국을 압도할 만큼 성장했지만 정치적으로는 인큐베이터 속 미숙아'에 속한다. 같은 이유로 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 성공했다고 해서 정치적으로 성숙한 나라'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대한민국을 달리는 기차에 비유하자면 : 대한민국은 종착역(민주주의)을 향해 달리는 중이다. 이제 고작 민주화'라는 이름의 중간역'에 도착했을 뿐이다. 목적지까지는 아직 멀었으니 갈 길 멀다. 최장집 교수가 오래 전부터 경고했던 지적은 옳다. 그는 민주화 = 민주주의'라는 공식은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늦은 감은 있지만 "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 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이 우리 사회에 주는 교훈은 미숙한 민주화 봉합이 한방에 훅, 한방에 훅, 한방에 훅 갈 수 있다는 점이다. 누가 청와대 안주인 노릇을 하느냐에 따라서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가랑비와 이슬비 사이를 오간다. 오락가락한다는 소리'다. 대한민국은 비-민주주의 국가 (非 : 아닐 비) 라기보다는 미-민주주의 국가 (未 : 아직 미)다.

 

2. 설국열차 : 대한민국 인구를 5000만 명이라고 했을 때 이 가운데 경상도 인구는 대략 2000만 명이다. 지역 표'만 잘 관리해도 새누리는 선거에서 항상 승리하게 된다. 설령, 실패한다 해도 본전은 차릴 수 있다. 유권자는 " 미워도 다시 한 번 " 식 투표를 한다. 세월 호'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고 해서 새누리당이 참패할 것 같지는 않다. 유권자 중 싸나이와 가시나'는 전체에서 2/5 를 차지하고, 고령화는 급속히 진행되어 노인층은 젊은층 인구'보다 많다. 유신 시절 사상 교육으로 혁명적 주체가 되었던 젊은이 가운데 소수는  대학 동아리 사상 교육 대신 아버지의 밥상머리 교육을 전수받아 아버지보다 더 아버지스러운 일베'로 태어나 강철 군화 앞에서 삼배한다. 그들에게 전라도는 홍어 좆'이다. 김대중을 제외한, 역대 대통령이 모두 경상도 출신이라는 점은 대한민국이 " 기울어진 운동장 " 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민주주의'라는 꽃은 기울어진 땅에서는 꽃을 피우지 못한다. 어쩌면 대한민국은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한 채 영원히 달리는 기차'에 갇힐 수도 있다.

 

3. 통행이 불편한 길 : 서울 거리에서 장애인을 보기 힘들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같은 이유로 옛날에 비해 동네 바보 형도 보기 힘들다.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 교통사고와 산업재해 비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보니 다른 도시에 비해 거리에 장애인이 많아야 하는데 오히려 보기 힘들다. 이유는 간단하다. 장애인과 동네 바보 형'은 거리에 나오지 않는다. 우선 보행권이 형편없다. 휠체어를 타고 도시 거리를 다니기란 모험에 가깝다. 각하와 5세 훈이 같은 아이는 장애인들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도시 진입 장벽을 허물기보다는 전시 행정과 디자인에만 신경을 썼을 뿐이다. 각하는 청계천과 사대강 사업으로 알 수 있듯이 물장사에 환장했고, 5세 훈이는 서울 행정보다는 유권자의 표를 의식해서 웃을 때 환히 빛나는 하얀 이빨을 만들기 위한 미백 효과에 관심이 많았다. 고른 치아는 그 사람의 계급을 말하는 리트머스'다. 그렇다면 장애인을 거리에서 쫒아냈던 주체는 도시 행정 시스템이 주범일까 ? 그렇지 않다. 장애인이나 동네 바보 형의 보행권을 막는 것은 비단 방지턱이나 계단뿐만이 아니다. 장애인들에게는 비장애인의 시선이야말로 방지턱이나 계단보다 더 높은 진입 장벽이다. 비포장 길'보다 더 불편한 길은 동료 시민들이 장애인과 바보를 바라보는 쥐새끼 눈깔 같은 눈길'이다.

 

4. 상류층과 특권층 : 대한민국 상류층의 과도한 특권 의식도 문제지만 모든 것을 평균값으로만 이해하려는 시민 사회'도 문제'다. 시민 사회가 이건희에게 10만 원짜리 양복을 입으라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폭력이다. 이건희는 1억짜리 양복을 입을 권리가 있다. 그것은 사치가 아니라 성공에 대한 보상'이다. 성공에 대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열심히 일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명박 손자가 입은 패딩 점퍼가 고가'라며 비판했던 모 언론사가 보여준 태도는 지나치게 편협한 자세'다. 대한민국은 북한 사회가 아니다. 그들은 비싼 옷을 입을 권리가 있다. 우리가 자주 착각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상류층과 특권층에 대한 구별이다. 상류층은 정당하지만 특권층은 부도덕하다.

 

5. 군대 육아 : 지랄발랄 하은맘의 닥치고 군대 육아'라는 제목이 눈에 띄어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책소개 글을 살펴 보았다. 군대 육아란 " 끝을 알 수 없는 기나긴 육아 기간을 3년으로 단축해 짧고 빡세게 몰입해 최정예 요원을 길러내는 신개념 육아 방식을 일컫는다. 깊이 있게 ‘치고 빠지기’가 핵심이며, 희생 육아가 아닌 조장과 조원이 최고의 공작원으로 탈바꿈하여 조국의 혁명 전사로 우뚝 서게 될 극히 이기적인 육아라 할 수 있다. ( 책소개 글에서 발췌 ) " 출판사는 육아'를 군대 문화로 희화화해서 발랄하게 표현했지만 이 문장을 좀더 간결하게 내 식대로 표현하자면 " 제품 공정 기간 단축 " 이다. " 짧고 빡세게 몰입 " 은 박정희 시대 때 구로 공단 공장장이 노동자들에게 주문했던 철학이다. 생산 시설을 확장할 생각은 안하고 강도 높은 철야 작업으로 물량을 때우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생리통은 작업 생산 능력을 저하시켰기에 여성 노동자는 반강제적으로 피임약을 먹으며 짧고 빡세게 몰입해서 일을 해야 했다. 이 책에 대해 딱히 비판할 생각은 없다. 실용성을 중심으로 한 자기계발서는 늘 이 모양이니깐 말이다. 하지만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압축 성장 담론에 대한 대중적 지지'다. 세월호 침몰도 알고 보면 과정을 생략한 채 성과만을 내세운 압축 경영이 빚은 참사'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 눈물 흘리며 분노하던 이들이 이 책을 읽으며 격하게 공감하는 이율배반적 모습을 상상하니 끔찍하다. 단 하나뿐인 성장과 육아 과정을 단축 수업으로 퉁치는 쿨한 자세 앞에 할 말이 없다. 책을 읽지도 않은 놈이 지랄한다고 손가락질할 테지만 똥이란 꼭 먹어봐야지 아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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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후딱 말하기 2.
    from 새빨간 활 2014-05-28 09:56 
    후딱 말하기 2 6. 생각하는 갈대와 생각 없는 꼰대 : 대한민국 정치가 쌍팔년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정직한 청년보다 현명한 노인'이 없다는 데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토양에서 뿌리를 내린 아이는 자라서 " 생각하는 갈대 " 가 되고, 어른은 자라서 " 생각 없는 꼰대 " 가 된다. 파스칼은 << 팡세 >> 에서 "인간은 자연 가운데서 가장 약한 하나의 갈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다. "라고 말했지
 
 
snoopy 2014-05-20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럼요. 똥을 꼭 찍어 먹어 봐아야- 아나요. 흐흐흐흐-
1,2,3,4,5번 몽땅 공감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5-21 17:49   좋아요 0 | URL
다음에는 6,7,8,9,10으로 진행하겠습니다. 흐흐

만화애니비평 2014-05-21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아이들을 공장의 부속품으로 만드는 것이 최고인 게 요새 엄마들이라면 미래는..아유

곰곰생각하는발 2014-05-21 17:49   좋아요 0 | URL
전 사람들의 이중잣대가 늘 궁금합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습니다.

octonov 2014-05-21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행복한 아침이네요. 이런 글을 만나게 되다니.. 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4-05-21 17:49   좋아요 0 | URL
누구신지 모르겠사오니 행복하시다니 제 임무는 완성한 것 같습니다.

수다맨 2014-05-22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세월호 사건에 눈물 흘리던 이들이 권위주의나 군대 문화 학습에 다름아닌 매체들에 열광하는 모습 보면 기이하더라구요. 제가 보기에는 눈먼 권력이나 쪼다(!) 지도자보다도, 비극적 현상과 비극의 뿌리를 분별하지 못하는 이들의 태도가 더 끔찍한 것 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5-23 00:49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그 현상 아래 땅속 깊이 박힌 뿌리가 그것과 이것이 하나라는 증거인데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서는 분노하지만 사실 그것의 젖줄인 이것에 대해서는 까마득히 모르고 있습니다.
짜증남....

samadhi(眞我) 2014-05-27 0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각 문단이 시처럼 들리네요 호호호. 마지막 육아책, 인용된 글귀만 보아도 짜증이 마구 솟구치네요. Pink Floyd, Another bricks in the wall 뮤직비디오가 떠오릅니다. 교육제도를 비판한 것이지만. 꽤 닮아있네요. 그런 내용을 책으로 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따름입니다.무식하면 용감하다는 것을 그네와 일당들에게서, 그리고 한국사회 도처에서 발견하곤 씁쓸해집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5-27 12:59   좋아요 0 | URL
그렇죠 ? 참... 세월호에는 울고 이런 책에는 열광하고.... 악의 꽃에 대해서는 분노하면서
막상 악의 꽃의 뿌리가 그것인지도 모르고 그 뿌리에 열광하고...
이건 악순환입니다.
 

 

 

 

 

 

바다 이야기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기 6-3


< 범선의 역사 > 라는 책이 꽂힌 서점 內 모퉁이 앞에서 한참을 망설인 적이 있다. 망설인 이유는 팔 만원이라는 높은 책값 때문이기도 했지만, 내가 이 책을 읽고 나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별로 없을 것이란 실용적 차원도 작용했다.  내가 이 책에 끌린 이유는 범선'이 가지고 있는 우아한 모양새 때문이었다. 범선이야말로 건축 미학의 결정체'였다. 범선은 움직이는 봉정사 극락전'처럼 보였다. 펼쳐진 돛은 아름다웠고 여러 갈래로 이어진 밧줄은 묘한 음악적 운율을 선사했다. 거대한 범선 사진을 볼 때마다 내가 좋아했던 칸딘스키 그림이 생각났다. 고민고민하다가 결국에는 책 한 권 살 돈으로 다른 책 다섯 권을 골랐다. 내가 갖고 싶었던 것은 책이 아니라 범선이었으니깐. 맙소사, 집 한 칸도 없는 놈이 범선을 갖고 싶다니 !

 

" 고고학계의 거장 브라이언 페이건 신작 " 이라고 소개된 < 인류의 대항해 > 는 위와 같은 맥락에서 읽고 싶은 책이다. 바다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바다 위이든 바닷속이든 상관없다. 바다 하니 생각나는 게 있다. 그래서 나는  아직 읽지 않은 책 소개는 잠시 미루고 당신에게 바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련다. 내가 바다를 처음 보았을 때가 아홉 살이었다. 바다는 맑고 투명했으며 조용했다. 한여름에는 물 비린내가 났는데 기분 좋은 냄새였다. 푸른 바다를 생각하면 웃게 된다. 어찌어찌하여 나는 날마다 바다를 볼 수 있었지만 비가 세차게 내리는 날에는 바다를 볼 수는 없었다. 비오는 날, 바다를 보러 식당'까지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깐 말이다. 내가 기억하는 바다는 애답지 않게 월드콘 따위의 고급 아이스크림을 좋아했다.

 

바다가 어떻게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냐고 ?! 착각하지 마라. 바다는 사내아이 이름이다. 아이가  식당에서 날마다 보는 방송은 뽀로로'였다. 식당 손님이었던 나는 프로야구 중계 방송을 보고 싶었으나 차마 아이가 넋을 놓고 보는 채널을 돌릴 만큼 야물딱지지 못했다. 바다가 좋아하는 애니'는 뽀로로'였다. 나는 프로이트 학파에 속하는 일반인'이었기에 바로 뽀로로 정신 분석에 몰입했다. " 뽀로로, 저 녀석은 외모 컴플렉스가 강한 놈이군. 깨알처럼 작은 눈에 대한 외모 컴플렉스가 인격 장애. 대따 끈 잠자리 안경은 새우 눈을 숨기기 위한 전략이다. 그리고 안경과 하이바는 대두(大頭)를 숨기기 위한 패션 아이템.  3등신을 4등신으로 보이게 만들거등. 인기란 게 그래. 다 한철이다. 거품 같은 거야. 지금은 뽀통령이지만 커 봐라. 뽀로로의 3등신은 코찔찔이 아이들에게는 인기'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뽀로로가 어른이 되면 매력없는 수컷이 된단다. 그나저나 뽀로로도 어른이 되면 대머리가 될 팔자'군. 하이바 오래 쓰면 정수리부터 털 빠진다.  "  

 

쫑긋 ! 바다의 눈은 텔레비젼 모니터를 향하고 있었으나 귀는 내가 하는 말을 귀담아 듣고 있었다.  아이가 귀담아 듣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말을 조심해야 했다. 그래서 뽀로로는 심각한 하체 비만이어서 페니스가 살 속으로 함몰되어 성기 왜소증이 의심된다는 치명적 비극은 말하지 않았다. 어른으로서 아이의 동심은 지켜줘야 하니깐 말이다.  아, 참 ! 바다에 대한 소개가 늦었다. 내가 자주 가던  식당 < 바다네 생선 조림 가게 > 외아들 이름이 바다'다. 이 식당에서 늘 밥을 먹었는데 외아들이었던 바다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숙제를 하고, 티븨를 보고는 했다. 당시 바다는 머리를 사자 갈기처럼 길러서 노랗게 물을 들인 아이였는데 드럼을 배우고 있었다. 아이의 꿈은 롹커'였다. 그런 아이에게 학교에서는 동요 나부랭이나 가르치고 있으니......

 

바다처럼 머리를 길러서 묶은 아이 아버지는 강원도 좌파'여서 대한민국 정규 교육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그와 나는 민노당 지지자여서 죽이 잘 맞았다. 식당 일이 끝나면 좌파 감자 아저씨와 나는 문을 걸어잠그고 막걸리를 마셨다. 주로 허각보다 인기 없는 각하를 욕했다. 그는 아이가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대안학교에 보낼까 모색 중이었다. 나는 그를 " 강원도 좌파 감자 아저씨 " 라고 불렀다. 부부는 늦은 나이에 바다'를  얻었기에 아이를 끔직하게 사랑했다. 그런데 부부에게는 근심이 하나 있었다. 아이가 말이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아이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의사 표현을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거나 가로젓는 것으로 해결한다고 했다. 그 일 때문에 담임 선생으로부터 상담을 받기도 했다고. 나는 오히려 과묵한 아이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아이를 볼 때마다 아이스크림을 사주었는데 항상 제일 비싼 이천 오백원짜리 아이스크림만 골라서 내 애간장을 태웠다.

 

건방진 녀석, 얻어먹는 주제에 ! 나는 시위하듯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고르기에 앞서 먼저 오백 원짜리 비비빅'만 골랐다.  그것은 마치 중국집에 가서 " 오늘은 내가 쏜다. 먹고 싶은 것 마음대로 다 시켜 ! 난 짜장면 보통. 요즘 사교육비가 장난이 아니야. 대한민국은 먹고사는 게 문제야.   " 이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했다. 하지만 바다는 눈치가 없어서 아이스크림계의 깐풍기'만 골랐다.  어느 날, 바다가 내게 말했다. 그 아이 입에서 나온 가장 긴 말이었다. " 난... 맛 없던데,  아저씨는 비비빅이 제일 맛있어요 ? "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어른스럽게 대답했다. " 아니... " 아이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나도 커서 아저씨처럼 부자가 되고 싶어요. 아이스크림 많이 먹어야지...... "

 

아저씨는 부자'라, 아저씨는 부자라....... 눈물이 앞을 가렸다. 가끔 그 꼬맹이 녀석이 보고 싶다. 건방지게 날마다 얻어먹는 주제에 제일 비싼 아이스크림만 고르던 녀석. 그 녀석과 함께 속초 청초호 엑스포 공원 앞에서 동해 바다를 바라보며 아이스크림을 먹고는 했다. 바다'라는 이름 참 좋다. 바다라면 다 좋다. 멸치도 좋고, 대구도 좋고, 모비딕도 좋고, 개복치도 좋고, 바다 위에 뜬 범선도 좋고, 바다를 향한 항해도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삼천포로 빠지는 이야기도 좋다. 삼천포의 반대말은 지피에스'다. GPS로 목적지를 찾아가는 것만큼 끔찍한 여행도 없다. 나침판도 없던 시절에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바다에 길을 냈을까 ? 그 망망대해에서 말이다. 궁금하다면 < 인류의 대항해 > 란 책을 펼쳐보면 될 것 같다. 책 안에 해답이 있다고 한다.  ( 역사 분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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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손 2014-05-18 0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삼천포의 반댓말은 GPS'

아미치겠따 ㅋㅋㅋㅋ

예전에 순진한 나였으면
이런 글재간에 너에게 홀랑 반했겠지만
이젠 나도 예전의 그 내가 아니라그!

ㅋ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4-05-18 19:54   좋아요 0 | URL
사랑이라는 감정은 늘 변하기 마련이지.
이해한다.

만화애니비평 2014-05-18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뽀로로로,..
어제 봉하마을에 자봉하러 가었는데, 거기 한 분이 생일이라
다른 봉사자가 사온 축하케익이 뽀로로임..엄청난 악파펭귄!

곰곰생각하는발 2014-05-18 19:55   좋아요 0 | URL
자원봉사 가시면 가서 뭐하시나요 ?

만화애니비평 2014-05-19 08:31   좋아요 0 | URL
잡일도 하고 이래저래 도와주죠
최근에는 장군차잎을 따서 녹차 만드는 일, 묘비 화단조성,
보통 때는 제초를 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5-19 18:56   좋아요 0 | URL
음.. 나름 보람된 일이군요. 일종의 조합 형태의 봉사'군요.

소년에로학난성 2014-05-19 0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주국제영화제 당시의 전주는 무척 붐볐지만 그와는 별개로 잠시나마 많은 것들을 잊게 해 준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삼천포의 반댓말은 GPS군요!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4-05-19 18:56   좋아요 0 | URL
오, 인산인해를 이루었군요.
좋은 거 마니 드셨습니까....
시간 되면 같이 갔으면 좋았을 걸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