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너무 커서 미쳤나 ? :
스포일러 無
귓구멍 깊숙이0)

< 하우스 호러 > 란 말 그대로 " (기괴한) 집 " 이 공포의 주체'가 되는 영화'다. 고전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월리엄 캐슬의 고전 걸작 << 헌티드 힐, 1958 >> 이라는 영화를 제일 먼저 떠올릴 것이고, 젊은 관객이라면 비교적 최근작이라 할 수 있는 << 파라노말 액티비티,2007 >> 를 생각할 것이다.
기괴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독일어 unheimlich에서 heimlich가 하우스( = 내 집 같이 편안한, 고향 같은)라는 의미와 함께 숨기다( = 비밀스럽다, 알 수 없는, 숨어 있는, 위험한) 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unheimlich와 heimlich는 반의어이면서 동의어인 셈이다. 약삭빠른 프로이트가 이 사실을 놓칠 리 없다. 그는 1919년에 < Das Unheimlich > 라는 논문을 써 현대 예술에서 중요한 미학적 개념을 창조한다(개인적으로는 무의식, 전이(역전이)와 함께 프로이트의 가장 중요한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기괴하고 낯선 감정이 되겠지만, 몇 마디로 정의될 성격1) 은 아니지만,
< 낯설다 > 라는 심인에는 역설적이게도 < 낯익다 > 와 연결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접두어 un-은 억압의 표식이다. 그렇다면 unheimlich는 heimlich를 억합한 결과'이다. 즉, 두려운 낯설음(=unheimlich)은 낯익은/친숙한 것(= das Heimisch)을 억압한 결과2) 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귀신은 처녀 귀신도 아니고 사다코3) 도 아니다. 으스스한 밤. 엄마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딸에게 " 내가 네 엄마로 보이니 ? " 라고 되물을 때가 가장 무섭다. 동일자(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족 연대)가 느닷없이 타자화될 때, 그러니까 엄마의 얼굴을 훔친 얼굴 도둑을 마주하게 될 때, 우리는 언캐니한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익숙한 코드가 배신을 때린다는 점에서 하우스 호러 장르'는 프로이트의 언캐니 개념을 다룬다. " 우리는 이미 많은 현대어들이 독일어의 unheimlich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는 점을 알았다. unheimlich한 집은 우리가 흔히 귀신들린 집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집보다 훨씬 더 강력한 표현이다(프로이트, 두려운 낯설음 中). " 즐거운 나의 집이 당신에게 되묻는다. " 내가 네 집으로 보이니 ? " 어느 순간, " home sweet home " 은 " 이눔의 집구석 " 으로 변해서 가족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이층 거실에 놓인 안락의자'가 한밤중에 삐걱삐걱 흔들릴 때, 그것은 더 이상 안락의자가 아니라 안락사 의자다.
집의 배신은 주로 집이 장소4) 에서 공간으로 변하는 시점에서 발생하게 된다. 여기서 공간(空間)은 한자의 구성대로 " 사이(間) " 에 " 구멍(空) " 을 생긴 곳이다. 낯선 타자가 숨어 있기 좋은 곳이다. 한자 間은 그 사실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間은 두 개의 문짝(門)이 닫힌 모양을 보여주는데 문짝과 문짝 사이에 달빛(月이 日로 바뀌었다. 閒과 間은 모두 사이 간이다)이 비치는 형국이다. 문짝과 문짝 사이에 빗장이 걸렸다면 달빛이 새어들어올 리 없지만 달빛이 스며든 것으로 보아 문이 열렸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도 한밤중에 말이다. 누군가가 몰래 잠입하기에 딱 좋은 밤이다.
아닌 게 아니라 한자 < 間 > 에는 몰래, 비밀스럽게, 사이에 끼다, 섞이다, 엿보다, 살피다, 틈을 타다, 범하다의 뜻도 가지고 있다. 공포스러운 집과 관련된 영화들이 대부분 가족의 상실(해체)'을 시발점으로 사건이 발생한다는 것은 눈여겨볼 만한 지점이다. 영화 << 엑소시스트 >>에서 열두 살 소녀 리건이 이상 증세를 보이는 시점은 부모가 이혼하는 시기와 일치한다(리건은 엄마와 함께 산다. 아빠는 간간이 전화로 안부를 묻는다). << 엑소시스트 >> 는 아버지의 빈 자리에 낯선 타자가 침입하면서 발생하게 되는 공포를 다룬 영화'다. 귀신 들린 집을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숨어 있기 좋은 집'이다. 누가 ?! 낯선 자가 !
그렇기에 하우스 호러에서 공포를 양산하는 장소는 모두 숨어 있기 좋은 곳에서 발생한다. 이 공간이 많을수록 공포는 풍부해진다. 하우스 호러 속 지하실과 다락방은 구멍이자 얼룩이자 깊은 밤 열린 문 사이로 소리 없이 스며든 달(月)인 셈이다. 하우스 호러를 대표하는 << 헌티드 힐 >> 시리즈 , << 아미티빌 >> 시리즈, << 컨저링 >> 시리즈가 모두 복층 구조의 주택이라는 점은 구멍으로 작동하는 공간들이 공포의 발화점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즉, 단칸방에서는 하우스 호러물을 만들 수 없다는 점이다. 한국 영화가 유독 하우스 호러물을 생산하지 못하는 데에는 아파트와 빌라로 대표되는 주거 문화 탓이 크다.
타자들이 숨어 있을 곳마저 부족한 공간에서 한국인은 살아간다. 살아갈 터가 좁아질수록 한국인이 느끼는 공포는 공간적 공포가 아니라 경제적 공포'다. 박찬욱 감독이 연출한 영화 << 아가씨 >> 에서 하녀인 김태리가 처음 대저택에 입성했을 때 느끼는 감정은 기이함이다. 하녀의 눈으로 본 으리으리한 대저택은 으스으스한 공간처럼 보인다. 하녀가 아가씨에게서 이 집 이모가 죽은 사연'을 듣게 되었을 때 내뱉은 독백은 인상적이다. " 집이 너무 커서 미쳤나 ? " 이 독백은 이 영화 전체를 요약해 준다. 여러분들의 수많은 조롱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영화를 하우스 호러'라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이 독백을 듣고 나자 내 머릿속에서는 어떤 상상이 빙빙 떠도는 거라.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집은 어디일까 ? 당연히 삼청동 블루하우스. 대문을 열고 나서도 한참을 들어가야 하니 말이다. 공간이 넓다는 것은 그만큼 달빛이 스며들기 좋다는 의미이기도 할 터. 나는 하나의 거대한 시놉시스를 생각했다. 4월 봄날에 죽은 악령이 출몰하여 블루하우스를 배회하는 장면들. 이 영화를 보기 전, 극장 로비에서 세월호 의인 김관홍 잠수사가 자살을 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그래서 그랬을까 ? 하녀의 독백이 유독 강렬하게 다가온 이유. 미치지 않고서야 세월호 사건을 이렇게 방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
0) 제목은 미국 포르노 영화의 문제작 << 목구멍 깊숙이 >> 를 패로디했다. 포르노 영화 << 목구멍 깊숙이 >> 가 목구멍 깊은 곳에 성감대를 가지 여성의 구강 성교를 다뤘다면, 영화 << 아가씨 >> 에서 음란서생인 남성들은 모두 귓구멍에 성감대를 가지고 있다. 책 읽어주는 여자 아가씨(김민희 분)는 귓구멍 깊은 곳에 성감대를 가진 남성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착취되는 여성이다.
1) 미학적 개념이 단 몇 줄로 요약될 수 있다면 그것은 미학이 아니라 미역'이다. 미안하다, 아재 개그'다.
2) 독일어 Unheimlich의 영어식 번역이 uncanny다.
3) 영화 << 링 >>
4) 장소가 채워진 곳이라면 공간은 비워진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