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주의자 선언 -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럴 수도 있지, 뭐 :

 

                                                                   더러운 옷은

            바깥에 내걸지 않는다

                                                     

                                     

 

                                                                                                        양정원이라는 배우가 대세인가 보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1년 전만 해도 그녀 이름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길들여진여우(길들여진 여우는 현재 혜연의 욕망 탐구'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팔 할은 벌거벗은 여성 누드 이미지를 올려놓는데 여전히 예술 작품이라고 뻥을 친다) 는 양정원이라는 인물을 아는 몇 안 되는 인간'이었다.  한 치 앞을 못 봤던 길여는  이름 없는 양정원이 훗날 대세 인기녀가 되어 대중 앞에 나타나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길들여진여우1)는 당시 무명이었던 양정원 사진을 자신인 양 속이고 블로그를 운영했다. 사진 밑에는 깨알보다 큰 멘트가 달리곤 했다. 퇴근하는 길, 피곤한 하루 - 이런 식 말이다. 길여는 싸이월드에서 훔친 일상 속 양정원 사진'을 지속적으로 블로그에 올렸다. 쉽게 말해서 타인의 얼굴과 몸매를 훔친 것이다. 혹하지 않을 사내가 있었을까 ?  수많은 블로거들이 그녀가 운영하는 블로그에 바글바글 몰려들었다, 마치 썩은 시체에 몰려드는 구더기처럼. 황홀했던 거라. 여신의 외모를 한 블로거가 하찮은 블로거가 단 댓글에 일일이 웃으면서 답글을 다니깐 말이다. 식사하셨어요, 날이 더워요, 건강 챙기셔야죠 ? 찡긋 !  햐, 대감집 셋째 딸이 머슴에게 친절한 목소리로 밥 먹었니, 라고 말할 때 느끼게 되는 머슴의 황홀경.

뭐, 그런 느낌. 그녀가 올린 포스트는 대부분 벌거벗은 여자 이미지였다. 그 밑에 달린 댓글은 평균 100개였다. " 꼴불견이군, 이젠 내가 나서야겠어...... "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툭툭 건드리다가 카운터펀치를 한방 날릴 날이 오리라. " 지속적으로 사진을 올리시던데 본인 맞으신가요 ? "  내 질문에 그녀는 특유의 친절로 대응했다. 호호호, 내 사진이 분명하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친절한 대응이었지만 경계하는 태도가 역력했다.  내가 본인이라고 주장하며 올린 길여 사진을 의심한 이유는 셀카'가 아니라는 데 있었다. 누군가가 지속적으로 찍고 있었다. 그러니까, 전속 사진사'가 있었던 것. 무엇보다도 일상 셀카'에서는 있을 수 없는 조명판이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나는 1년 정도 사진을 배운 터'라 사진 속 인공 광원의 사용을 알아차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시 말해서 그녀가 올린 사진들은 사진을 찍어 줄 타인과 조명판이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일반인이 일상적 공간에서 조명판까지 사용하며 사진을 찍는다 ?!  그녀가 올린 사진은 상업 사진에 가까웠다. 폭탄은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길여에 푹 빠진 남성 블로거가 우연히 양정원을 검색하다가 진짜 양정원을 발견한 것이었다. 사실, 그가 찾고자 했던 배우는 영화 << 지슬 >> 에 나오는 양정원이라는 남자 배우였는데 동명이인이다 보니 검색에 걸린 것이다. 길여가 탤런트였나 ???!!

 

접힌 부분 펼치기 ▼

 

 

 

펼친 부분 접기 ▲

 

이리하여 타인의 얼굴을 훔친 길여의 사기 행각은 만천하에 발각되고 말았다. 재미있는 현상은 그 이후'였다. 양정원이라는 이미지에 홀라당 마음을 빼앗겼던 블로거들이 사기꾼 길여를 옹호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부분은 " 그럴 수도 있지, 뭐 " 자세로 일관했다.  어떤 추종자는 이 사태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며 불행이 길여에게 찾아온 것에 대해 무릎 꿇고 사과를 하기도 했다.  누구에게 ?  맙소사, 길여에게 !   사과가 아니라 애원이요, 신파'였다.   제발, 떠나지 마세요. 우리 다시 시작해요 ~     나는,  한순간에 마리아를 핍박하는 갈라리 병사'로 추락하고 말았다. 이 황당하고, 황당하고, 황당한 상황 앞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 인간은 어떤 상황에 대해 엉뚱한 < 똥수 > 를 자주 둔다 " 는 점이었다. 인공지능 알파고가 계산이 불가능한 똥수를 가끔 두듯이 말이다. 사기꾼 길여의 허언증에 놀아난 피해자가 길여를 지지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 길여의 거짓을 인정한다는 것 > 은 결국 < 거짓말에 놀아난 어리석은 자신을 인정 > 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범죄에 대한 옹호는 이런 식으로 이루어진다. 신안 교사 성폭행 사건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2)도 결국은 자기 합리화가 작동한 결과'다. 마을 주민의 범죄를 인정한다는 것은 마을 주민이기도 한 자신에 대한 비판이다. 국가주의, 집단주의, 가족주의가 위험한 이유이다. 우리가 남이가로 상징되는 가족주의의 핵심은 이것이다. 더러운 옷은 바깥에 내걸지 않는다. 개인주의자는 연대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집단주의자는 은폐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통계 조사에 의하면 가족주의를 중시하는 국가는 개인주의를 옹호하는 국가보다 부패지수가 높다고 한다.  나는 개인주의3)를 옹호한다.





​                                   

1)    < 그것이알고싶다 > 에서 리플리 증후군'에 대한 취재를 한 적이 있는데  내 이웃이 직접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에게 제보를 해 그 사건에 대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최종 편집에서는 삭제되었다.

2)     모 주민은 이번 사건에 대해 퉁명스럽게 " 젊은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 라고 말해서 논란이 됐다.

3)    개인주의라기보다는 독립주의라는 말이 더 와닿는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6-06-12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특이한 상황이네요. 저는 남자들이 타인의 얼굴을 도용한 블로거를 욕할거라고 생각했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6-13 13:58   좋아요 0 | URL
욕하는 인간도 있었죠. 하지만... 상당수는 적극 옹호하더라고요..
특이한 상황이 아닙니다. 전 이게 굉장히 흔하다고 생각됩니다.

samadhi(眞我) 2016-06-12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일이 있었군요. 사기꾼들 간은 돌로 만들어진 건지 거 참 단단하기도 하네요. 언젠가 드러날 일을 참 잘도 우기네요.
군중폭력은 정말 잔인하지요. 집단의 힘을 믿고 도덕성을 지워버리는 무지. 끔찍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6-13 13:57   좋아요 0 | URL
이 인간은 특히 뻔뻔했죠. 끝까지 오리발 내밀며 법적 투쟁한다 하다가 결정적으로 문제가 발생하자..
사과 한마디도 없이 다음날, 다른 블로그 만들어서 운영하더군요...

만화애니비평 2016-06-12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억이란 아름다운건만 존재하지 않는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6-13 13:56   좋아요 0 | URL
씁쓸한 추억..ㅋㅋㅋㅋㅋ 토닥토닥 ~

무해한모리군 2016-06-13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팬블로그에 내가 그 스타와 안다로 시작해서 관련물품을 팔거나 콘서트 티켓 같은 것을 웃돈주고 파는 장사를 하면서 본인이 일명 `시녀`군단을 거느리는 자리에 오르는 사람들을 종종 목격합니다. 제 경험치로는 모두다 거짓말쟁이들이었지요... 그런데 또 위에 말씀하신 것처럼 모든 것이 밝혀지고 사기행태가 들어나도 그녀들을 옹호하며 남는 추종자들이 있는 것이지요. 평소에 이것이 늘 이해가 안되었는데 위의 말씀을 듣고보니 다소 이해가 되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6-13 13:55   좋아요 0 | URL
여왕을 모시는 시녀 군단이라... 마음에 드네요.
이러한 현상은 거의 모든 발각행위에서 벌어지고는 합니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죠. 자신이 되고 싶은 롤모델이었는데.. 쓰레기였다 ?!
이걸 못견뎌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