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수도 있지, 뭐 :
더러운 옷은
바깥에 내걸지 않는다
양정원이라는 배우가 대세인가 보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1년 전만 해도 그녀 이름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길들여진여우(길들여진 여우는 현재 혜연의 욕망 탐구'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팔 할은 벌거벗은 여성 누드 이미지를 올려놓는데 여전히 예술 작품이라고 뻥을 친다) 는 양정원이라는 인물을 아는 몇 안 되는 인간'이었다. 한 치 앞을 못 봤던 길여는 이름 없는 양정원이 훗날 대세 인기녀가 되어 대중 앞에 나타나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길들여진여우1)는 당시 무명이었던 양정원 사진을 자신인 양 속이고 블로그를 운영했다. 사진 밑에는 깨알보다 큰 멘트가 달리곤 했다. 퇴근하는 길, 피곤한 하루 - 이런 식 말이다. 길여는 싸이월드에서 훔친 일상 속 양정원 사진'을 지속적으로 블로그에 올렸다. 쉽게 말해서 타인의 얼굴과 몸매를 훔친 것이다. 혹하지 않을 사내가 있었을까 ? 수많은 블로거들이 그녀가 운영하는 블로그에 바글바글 몰려들었다, 마치 썩은 시체에 몰려드는 구더기처럼. 황홀했던 거라. 여신의 외모를 한 블로거가 하찮은 블로거가 단 댓글에 일일이 웃으면서 답글을 다니깐 말이다. 식사하셨어요, 날이 더워요, 건강 챙기셔야죠 ? 찡긋 ! 햐, 대감집 셋째 딸이 머슴에게 친절한 목소리로 밥 먹었니, 라고 말할 때 느끼게 되는 머슴의 황홀경.
뭐, 그런 느낌. 그녀가 올린 포스트는 대부분 벌거벗은 여자 이미지였다. 그 밑에 달린 댓글은 평균 100개였다. " 꼴불견이군, 이젠 내가 나서야겠어...... "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툭툭 건드리다가 카운터펀치를 한방 날릴 날이 오리라. " 지속적으로 사진을 올리시던데 본인 맞으신가요 ? " 내 질문에 그녀는 특유의 친절로 대응했다. 호호호, 내 사진이 분명하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친절한 대응이었지만 경계하는 태도가 역력했다. 내가 본인이라고 주장하며 올린 길여 사진을 의심한 이유는 셀카'가 아니라는 데 있었다. 누군가가 지속적으로 찍고 있었다. 그러니까, 전속 사진사'가 있었던 것. 무엇보다도 일상 셀카'에서는 있을 수 없는 조명판이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나는 1년 정도 사진을 배운 터'라 사진 속 인공 광원의 사용을 알아차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시 말해서 그녀가 올린 사진들은 사진을 찍어 줄 타인과 조명판이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일반인이 일상적 공간에서 조명판까지 사용하며 사진을 찍는다 ?! 그녀가 올린 사진은 상업 사진에 가까웠다. 폭탄은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길여에 푹 빠진 남성 블로거가 우연히 양정원을 검색하다가 진짜 양정원을 발견한 것이었다. 사실, 그가 찾고자 했던 배우는 영화 << 지슬 >> 에 나오는 양정원이라는 남자 배우였는데 동명이인이다 보니 검색에 걸린 것이다. 길여가 탤런트였나 ???!!
이리하여 타인의 얼굴을 훔친 길여의 사기 행각은 만천하에 발각되고 말았다. 재미있는 현상은 그 이후'였다. 양정원이라는 이미지에 홀라당 마음을 빼앗겼던 블로거들이 사기꾼 길여를 옹호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부분은 " 그럴 수도 있지, 뭐 " 자세로 일관했다. 어떤 추종자는 이 사태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며 불행이 길여에게 찾아온 것에 대해 무릎 꿇고 사과를 하기도 했다. 누구에게 ? 맙소사, 길여에게 ! 사과가 아니라 애원이요, 신파'였다. 제발, 떠나지 마세요. 우리 다시 시작해요 ~ 나는, 한순간에 마리아를 핍박하는 갈라리 병사'로 추락하고 말았다. 이 황당하고, 황당하고, 황당한 상황 앞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 인간은 어떤 상황에 대해 엉뚱한 < 똥수 > 를 자주 둔다 " 는 점이었다. 인공지능 알파고가 계산이 불가능한 똥수를 가끔 두듯이 말이다. 사기꾼 길여의 허언증에 놀아난 피해자가 길여를 지지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 길여의 거짓을 인정한다는 것 > 은 결국 < 거짓말에 놀아난 어리석은 자신을 인정 > 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범죄에 대한 옹호는 이런 식으로 이루어진다. 신안 교사 성폭행 사건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2)도 결국은 자기 합리화가 작동한 결과'다. 마을 주민의 범죄를 인정한다는 것은 마을 주민이기도 한 자신에 대한 비판이다. 국가주의, 집단주의, 가족주의가 위험한 이유이다. 우리가 남이가로 상징되는 가족주의의 핵심은 이것이다. 더러운 옷은 바깥에 내걸지 않는다. 개인주의자는 연대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집단주의자는 은폐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통계 조사에 의하면 가족주의를 중시하는 국가는 개인주의를 옹호하는 국가보다 부패지수가 높다고 한다. 나는 개인주의3)를 옹호한다.
1) < 그것이알고싶다 > 에서 리플리 증후군'에 대한 취재를 한 적이 있는데 내 이웃이 직접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에게 제보를 해 그 사건에 대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최종 편집에서는 삭제되었다.
2) 모 주민은 이번 사건에 대해 퉁명스럽게 " 젊은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 라고 말해서 논란이 됐다.
3) 개인주의라기보다는 독립주의라는 말이 더 와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