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스는 왜 록의 뺨을 때렸나 ?
아카데미 영화제 시상자로 무대에 오른 유명 코미디언 크리스 록은 윌 스미스의 아내 제이다 핀켓 스미스를 상대로 농담을 던진다. 카메라는 이미 크리스 록이 제이다를 향해 농담을 던질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크리스가 입을 떼자마자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윌 스미스 부부를 향한다. 그리고는 모두 다 알고 있다시피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하는데..... 뚜벅. 뚜벅. 뚜벅. 뚜벅 그리고 불꽃 싸다구. 윌 스미스가 크리스 록의 뺨을 풀스윙으로 후려친 것이다. 와우. 가십 천국인 할리우드에서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불꽃 싸다구에 대한 설왕설래가 오갔다.
한국인의 반응은 대체로 피해자가 맞을 짓을 했다와 가해자가 때릴 만하다로 요약할 수 있다. 한국인이 윌 스미스 편에 선 이유는 가족주의다. " 가족을 건드리는 것은 못 참지 ㅡ "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생각도 ?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지만 윌 스미스를 응원하는 사람이라면 이 글은 읽지 않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윌 스미스를 옹호할 생각이 추호도 없기 때문이다. 이 글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 윌 스미스, 이 새끼. 너무 좆같다. " 종종 페미니즘 관점에서 크리스 록의 살인 조크를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 남자는 여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핑계로 윌 스미스를 옹호하는 것이다.
윌 스미스는 가족을 대표하는 남편이자 여성을 지켜야 하는 남자라는 것이다. 놀라운 해석이다. 오히려 이러한 해석은 페미니즘적이라기보다는 가부장제에 대한 열렬한 옹호처럼 보인다. 가족을 대표하는 사람이 왜 반드시 윌 스미스여야 할까 ? 제이다의 인물 파워(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딴 토크쇼 진행자다) 역시 남편 못지 않은 데 말이다. 크리스 록의 조크에 화가 났다면 따귀를 때릴 사람은 제이다이지 윌 스미스가 아니라는 말이다. 윌 스미스는 제이다와 그 어떤 상의도 없이 그녀를 대변한다는 이유로 폭력을 행사한 것이다. 자신의 아내는 의사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모자란 것처럼.
내가 이 사태를 보면서 느낀 것은 윌 스미스의 남성성 과시'였다. 그는 전 세계가 지켜보는 무대에서 " 가족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남자 " 를 연기한 것이다. 그는 크리스 록의 뺨을 때리고는 스스로 자신이 멋져보였을 것이다. 이 초유의 사태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카메라맨이다. 카메라맨은 크리스 록이 무대에 오르면 제이다를 향해 농담을 던질 것이란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 그가 제이다를 향해 입을 떼자마자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카메라는 미리 제이다의 반응을 담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것은 크리스 록의 즉흥적 농담이 아니라 미리 대본에 의해 정해진 발화라는 것을 말해준다. 크리스의 선 넘은 농담이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따귀를 맞을 정도로 해악하다면 그 사실을 미리 알고 용인한 아카데미 관계자들은 더 나쁜 놈들이다. 가족주의의 핵심은 가부장제'이다. 그리고 그 가부장제의 핵심은 폭력적인 아버지'다. 폭력적인 아버지 없이는 가부장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며 권위적인 가부장제 없이는 가족주의도 없다. 한국인이 윌 스미스를 지지하는 이유는 한국 사회가 가족주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가부장제의 오랜 폭압에 길들여져 있어서 아버지의 폭력에 대하여 관대하다. 골때리는 지점이다. 아버지의 폭력을 증오하지만 동시에 아버지의 폭력이야말로 우리 가족을 지키는 힘이라고 믿는 것이다. 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이중적 태도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