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에서 하룻밤(1disc) - [할인행사]
낸시 사보카 감독, 리버 피닉스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4년 1월
평점 :
품절














쓰러지지 않기 위해 껴안는 포옹












내가 영화를 볼 때 집중하는 곳은 시작과 끝이다. 사람들은 시작점을 영화 타이틀 장면(타이틀 시퀀스)이 끝나고 시작되는 장면으로 인식하지만 영화의 진짜 시작점은 타이틀 시퀀스'다. 타이틀만 송출하는 장면도 있지만 단순하게 화면 위에 덧씌워지는 타이틀 시퀀스도 존재한다. 그냥 의무적인 표기 장면처럼 보이지만 사실 감독은 타이틀에 사용되는 글꼴부터 고심한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 타이틀로 고딕체를 선택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만약에 MZ 신세대 영화랍시고 제목으로 굴림체를 사용했다면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치는 게 상책이다. 


영화의 시작점을 가장 탁월하게 사용한 감독은 알프레드 히치콕이다. 난 이 사람의 타이틀 시퀀스 때문에 종종 미츄어버리곤 한다. 경험을 토대로 말하자면  :  시작점이 훌륭하면 대체로 그 영화는 최소한 본전은 하는 영화'다. 그렇다고 해서 타이틀 시퀀스가 영화 전체의 승패를 좌우할 정도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영화의 시작점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은 감독의 태도'다. 타이틀 글꼴은 그 영화의 전체적은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첫 번째 단서를 제공하고, 타이틀과 오버랩되는 화면들은 전체 이야기를 압축하는 상징적 오브제로 구성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어느 배우의 이름이 먼저 등장하는가를 통해서 감독의 편애와 편파도 읽을 수 있다. 권투 경기에 비유하자면 타이틀 시퀸스는 1회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면 제일 먼저 툭, 던지는 잽과 비슷하다. 그것은 싸우기 위해 던지는 잽이 아니라 일종의 주먹으로 오고가는 인사말이다. 잘해봅시다잉. 잽을 던지며 툭 ! 끗. 시작점이 힘 없이 툭 던지는 잽이라면 끝점(라스트 신)은 KO펀치'여야 할까 ? 꼭 그렇지는 않다. 마지막 장면은 온 힘을 다해 내던지는 강펀치일 수도 있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툭, 치며 작별 인사를 하는 잽이거나 서서 버틸 힘이 없어서 상대를 껴안는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의 끝 중 하나가 바로 낸시 사보카의 << 샌프란시스코에서의 하룻밤, dogfight>> 이다. 영화 제목 dogfight는 가장 못생긴 여자를 꼬셔서 약속 장소에 데리고 오면 이기는 쪼다 게임이다. 제목을 그대로 적용하자면 웨이트리스 로즈(릴리 테일러)는 그 동네에서 가장 못생긴 여자'에 속한다. 그리고 그녀를 선택한 군인은 리버 피닉스다(오, 마이 갓. 리버 피닉스라니).  반전은 없다.  못생긴 로즈는 노래도 못한다. 그럭저럭 못생긴 릴리 테일러와 가장 잘생긴 리버 피닉스의 데이트가 성공적일 수는 없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여운을 남긴 채 남자는 베트남으로 가는 군용 버스에 오르며 혼잣말을 한다. 


" 우리는 어쩌다가 쪼다가 되었을까 ? "  4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다리를 절며 한 남자가 카페 안으로 들어온다. 마술이 시작되는 지점은 지금부터다. 뒤늦게 상이군인이 되어 돌아온 그를 알아본 로즈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 어떤 말도 없이 조용히 끌어안는다. 과장된 기쁨의 표정도, 그렇다고 위안을 가장한 슬픈 표정도 없다. 그 흔한 안부 인사도 없다. 영화는 바로 그 장면에서 끝이 난다. 매우 조용한 장면이었지만 내 심장은 주책없이뛰었다. 아, 시바. 내 심장아. 제발 조용히 하라고. 그것은 서 있을 힘이 없어 어떻게 해서라도 버티기 위해 상대를 껴안는, 드러눕기 일보직전인 권투선수의 클린치 상황 같았다. 


내가 쓰러지지 않기 위해 껴안는 포옹. 아니, 어쩌면 네가 쓰러지지 않기 위해 껴안는 포옹. 영화 << 샌프란시스코에서의 하룻밤 >> 이 그런 영화다. 좋은 영화란 무엇일까 ? 모두 다 대동소이한 말을 할 것이다. 첫 장면과 끝 장면이 훌륭하면 그 영화는 대체로 훌륭하다. 그리고 매우 훌륭한 영화의 특징도 모두 엇비슷할 것이다. 첫 장면과 끝 장면이 훌륭하되 지나치게 힘을 주지 않는 장면. 시작부터 물어뜯을 기세로 주먹을 뻗지 않으며 내내 치열하게 싸우되 끝에 가서는 쓰러지지 않기 위해 주먹 대신 허리를 껴안는 끝 장면. 










■  덧대기


좋은 글이란 무엇일까 ? 모두 다 대동소이한 말을 할 것이다. 첫 문장과 끝 문장이 훌륭하면 그 글은 대체로 훌륭하다. 그리고 매우 훌륭한 글의 특징도 모두 엇비슷할 것이다. 첫 문장과 끝 문장이 훌륭하되 힘을 주지 않은 글이다. 시작부터 물어뜯을 기세로 주먹을 뻗지 않으며 경기 내내 치열하게 싸우되 끝에 가서는 쓰러지지 않기 위해 주먹 대신 상대 선수의 허리를 껴안는 끝 문장이 좋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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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22-03-30 20: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최근 경험한 강렬한 타이틀 스퀀스는 윤당선자가 직접 브리핑 한 ‘대통령 집무실 용산이전‘ 매우 과장된 녹색의 ‘국방부 앞 공원조감도‘ 였습니다

˝국방부에서 합참까지 50m밖에 안 되는데 거리가 과장됐고, 다른 건물들은 그냥 지웠다. 사람으로 치면 얼짱 각도로 찍고 녹색으로 화장한 것과 같다˝ - 배정한 교수

강렬하고 두려운 오프닝 시퀀스

곰곰생각하는발 2022-03-30 21:01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원외교한다잖아요. 몇 조 해 먹겠죠.
사대강 부활한다면서요. 다시 녹조라테 보겠죠. 이거 정말 끔찍한 겁니다.
원전 짓겠죠......
이동차에서 국가비상회의한다잖아요.
뭐 세월호 같은 비극적 사고 하나 터지면..... 이 모든 게 시작도 안 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2-03-30 20: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쩌죠.. 그것은 오프닝 시퀸스가 아니라 제작 발표회인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앞으로 정말 지옥도가 펼쳐질 겁니다.

나와같다면 2022-03-30 20:58   좋아요 1 | URL
아.. 아직 시작도 안한거구나 ㅋ

기억의집 2022-03-30 2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아까 이 페이퍼 읽고 릴리 테일러 검색하다가 딴 길로 샜네요. 저도 이십대는 비디오세대라 왠만한 거 다 봤는데… 리버 피닉스야 우리 세대에선 워낙 유명한 배우라 기억이 박혀 있는데 못 생겼다고 하니 릴리 테일러 궁금하더라구요.

윤이 똘기로 무장한 것처럼 우리도 이제부터 똘기로 무장해야 오년을 버텨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2-03-30 2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여론조사 보니깐 윤석열에게 희망을 품는 기대치가 30%대더라고요. 와... ㅎㅎㅎㅎ 거의 모든 대통령이 시작할 때에는 70%에서 시작하는데 이 새끼는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