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랜드 작품집 : MOVIE ARTBOOK
김태용.김대식 지음 / 김영사 / 2024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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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만났다 :

영화 << 원더랜드, 2024 >> 는 말 그대로 놀라운 영화'다. 이 영화는 공상과학이라는 외피를 둘렀을 뿐 유사 러브 액츄어리'다. 보는 내내 지루해서 정지 버튼을 누를까 말까 계속 고민하면서 보았다. 참다 참다 참다가는 결국 참치가 될 것만 같은 공포감에 사로잡혀서 결국 마지막 5분을 남겨놓은 상태에서 정지 버튼을 눌렀다. 인내심의 한계라기보다는 항의의 표시였다. 공상과학 장르에서 중요한 것은 공상과 과학이지 멜로가 아니다. 멜로는 공상과 과학이라는 설정이 만든, 다 된 밥상에 숟가락 얹는 역할에 충실하면 그만이다. 숟가락이 만찬의 주인공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영화는 크게 딥러닝 기술로 복원된 탕웨이(에피소드)와 박보검(에피소드)이 중심인 메인 플롯과 주변부의 서브 플롯이 첨가된 옴니버스 형태다. 이 영화에서 주목해야 될 것은 영화가 재현하고 있는 장소다. 죽은 자를 딥러닝으로 복원한 아바타 탕웨이와 박보검이 머무는 장소는 사막과 우주다. 문제는 인물과 장소가 맺는 관계 설정이 농밀하지 못하다는 데 있다. 탕웨이는 직업과 상관 없이 어릴 적 장래 희망이 고고학자였다는 이유로 가상 현실에서는 사막에서 유적을 발굴하는 고고학자가 된다. 박보검은 더욱 황당하다. 비행기 승무원이었던 박보검은 우주비행사가 되어 있다. 장소에 대한 애착이 없다 보니 인물과 장소는 물 위에 뜬 기름처럼 서로 융합하지 못한다.

이 영화에서 사막과 우주라는 공간은 철학적 사유의 공간으로 활용되기보다는 이발소 벽에 걸린 그림처럼 예쁜 장식으로만 활용되고 있다. 스펙타클하기는커녕 입체감 없이 납작하기만 하다. 그러다 보니 공간에 대한 고독과 경외는 보이지 않는다. 단지, 풍경만 이국적인 관광 엽서 같다. 공간이 입체감이 없다 보니 그 공간을 점유한 캐릭터가 납작해질 수밖에 없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이다. 캐릭터가 납작해지는 순간, 그 영화는 망하게 된다. 이 영화를 싸구려 이발소 그림 혹은 500원짜리 관광 엽서로 보이게 만드는 요소에는 배우들의 빛나는 외모도 큰 몫을 차지했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데 생명력은 시들시들하다. 특히, 공유가 연기한 캐릭터는 관객이 이 영화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게 만드는 1등 공신이다.

보다 보면 : 동서식품 카누 광고의 영화 버전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가 등장하는 영화 속 한 장면을 캡쳐 해서 카누 로고를 붙이면 영락없이 동서식품 광고다. 그는 영화에서 영화를 찍고 있는 것이 아니라 광고를 찍고 자빠졌다(박보검-수지 커플은 의류 CF 같다). 그렇다면 이것은 배우의 잘못인가, 감독의 잘못인가 ? 당연히 감독의 능력 부족 탓이다. 지금까지 내가 침에 입이 마르도록(의도적 오기다) 투덜댔던 단점들은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른다.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진짜진짜 문제는 죽은 자와 산 자의 구구절절한 사연(산 자의 사연만 해도 구구절절한데 죽은 자마저 한마디 거드니 구구절절X2인 영화라 할 수 있다)에도 불구하고 사연만 둥둥 떠다닐 뿐 인간에 대한 서사가 전무하다는 점이다.

인간 없는 서사는 곧 서사 없는 잔상만 남는 영화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공유는 영화에 등장하여 카누 광고나 찍고 자빠졌고, 탕웨이는 낙타가 보이는 사막에서 의미 없이 흙만 파고 자빠졌고, 박보검은 중력 없는 공간에서 어화둥둥 떠다니기만 한다. 두 쌍의 메인 플롯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싼 주변인물의 서브 플롯은 겉돈다기보다는 헛돈다. 공유만 헛발질을 하는 것이 아니다. 정유미와 최우식이 소개하는 에피소드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이 영화의 카메오가 아닌 서브 플롯의 주연인데 카메오처럼 소비된다. << 원더랜드 >> 는 AI가 만든 가상 세계를 다룬 영화이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AI가 이 영화를 만든다면 인간이 만든 이 영화보다 잘 만들 수 있을까 ? 후자의 경우에 전 재산 500원을 걸겠다.

■ 덧대어 투덜대기

이 영화를 다룬 언론 기사를 읽다가 빵 터졌다. 다음과 같다. " 연출과 더불어 탕웨이 등 주요 출연진의 절제된 열연은 '원더랜드'의 완성도를 더욱 끌어올려, 구닥다리 신파 멜로 대신 시적인 느낌을 지닌 유럽산 SF수작의 길로 이끈다. 특히 탕웨이는 거의 모든 장면에서 파트너 없이 홀로 연기하다시피 하는데, 그럼에도 박보검-수지 커플을 능가하는 에너지를 발산한다. " 기자는 왜 이 영화를 두고 시적인 느낌을 지닌 유럽산 SF 수작이라고 표현했을까 ? 그것은 아마도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 한국이라는 지역의 정체성보다는 이국적인 이질성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어, 영어, 한국어가 뒤섞여 있고 공간도 사막과 우주다. 한국 영화이기는 한데 한국인으로서 느낄 만한 공감은 없다. 공간에 대한 이해도 낮다. 사막과 우주를 체험한 한국인이 얼마나 있겠나. 좋게 말하자면 세계의 보편성에 근접한 영화라고 표현할 수는 있으나 나쁘게 말하자면 뜬구름 위에서 뒷짐 진 산신령 같은 태도를 유지하는 영화다. 시골로 낙향해서 텃밭 가꾸며 사는 것 같은 정유미의 부모는 숟가락과 젓가락 대신 수저와 포크로 파스타를 맛있게 먹는다. 식탁 위에는 바게트와 와인 잔에 담긴 포도주가 놓여 있다. 생각해 보니 이 영화에서는 식사를 하는 장면이 몇몇 등장하는데 한식인 밥과 찌개가 나오는 장면은 한 장면도 없다. 공상 과학 영화에 쌀밥에 된장 찌개가 등장하면 예쁜 화면을 망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 묻고 싶다. 감독님, 쌀밥이 그렇게 부끄러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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