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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공포
비비안느 포레스테 지음, 김주경 옮김 / 동문선 / 1997년 5월
평점 :
저녁을 잃어버린 삶
대한민국은 저녁을 잃어버린 지 오래되었다. 장년이 퇴근을 미루고 야근을 하면 " 열심 " 히 일하는 사람이 되고, 청년이 퇴근을 미루고 야근을 하면 " 열정 " 이 되며, 소년이 방과 후 학원을 유령처럼 배회하다가 아빠보다 늦게 집에 오면 " 열공 " 이 된다.
과부하에 걸린 노동 사회를 열심, 열정, 열공 따위로 선전하는 것이 정상적인 사회일 리 없다. 한술 더 떠, 이런 사회를 역동적'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다. 시부럴 놈들, 뭐가 중헌지도 모른 채 국가 브랜드 이미지 광고는 온통 " 다이나믹 코리아 ! " 란 구호만 넘쳐났다. 노동자 계급에게는 "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 " 라고 말하는 현대 카드 광고 카피'는 머나먼 쏭바강 얘기처럼 들린다. 박근혜는 바쁜 벌꿀은 슬퍼할 시간도 없다고 말했다지만 " 슬퍼할 시간 " 마저 없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인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문제'다. 슬퍼한 시간이 많은 사회일수록 그 사회는 건강한 사회'이다.
한국인 모두가 슬퍼할 시간도 없을 만큼 바쁜 것은 아니다. 죽도록 일만 하는 노동자 계급이 있는가 하면, 죽도록 한가한 유한 계급(有閑階級)도 있다. 남는 것이 시간과 돈이다 보니 독서 대신 모히또 가서 몰디브 한 잔 하며 여가를 즐긴다. 반대로 무한계급(無閑階級)은 만화책 읽을 시간도 없다. 미국이 1인당 한 달에 책을 6.6권, 프랑스 5.9권, 중국 2.6권인 반면에 한국은 1.3권으로 최하위권(166위)에 속한다. 더군다나 대한민국 성인의 35%는 1년에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고 한다. 1년에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는 소리는 결국 10년 동안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국민 독서량이 OECD 국가 중 꼴찌인 이유는 " 근성의 문제 " 로 접근하기보다는 " 근로의 문제 " 로 이해하는 쪽이 합당할 듯하다. 책을 읽지 않는 국민을 반기는 쪽은 지배계급이다. 그들은 맑스나 푸코 서적처럼 읽고 나면 말랑말랑한 마음을 딱딱하게 만드는, 석고 반죽 같은 책보다는 고통을 완화시키는 히로뽕 같은 " 최루성 신파 이빠이 감성 졸라 에세이 " 를 읽으라고 주문한다. 최근, 이기주의 << 언어의 온도 >> 가 장기간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내려오지 않는 것은 비극이다. 지배 계급은 피지배 계급의 " 경제적 공포 " 를 이용하여 자신이 속한 계급에게 유리한 제도와 정책을 유지하려 든다.
좋은 예가 원전 마피아들이 탈원전 정책에 반대하며 내세우는 논리이다. 그들은 그동안 원전 정책으로 인해 값 싼 전기료를 공급했는데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전기료 상승이 예상된다면서 경제적 공포를 유포시킨다. 쉽게 말해서 별 탈 없이 무탈하게 돌아가는 원전 시설에 대해서 지나치게 과잉 대응한다는 소리이다. 하지만 위험 시설에 대해서는 < 늑장 대응 > 보다는 차라리 < 과잉 대응 > 이 효과적이라는 사실은 모두 다 공감한다. 엎질러진 물보다는 엎질러지기 전에 컵을 치우는 것이 합리적이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보다는 소 잃기 전에 외양간을 손보는 게 합리적 대응이니까. 삼성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괴담도 지배 계급이 피지배 계급의 경제적 공포를 이용한 사례이다.
국민 기본 소득 정책을 위한 전 단계인 최저 임금 7530원을 두고 : 언론이 자영업자의 몰락, 또는 공장 6곳 중 3곳 폐쇄 검토 운운하며 경제적 공포를 유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원전이 폐쇄되면 전기료가 상승된다고 걱정하기 전에 대기업에게 무상에 가까운 수준으로 공급되는 국가의 전기 정책을 상기할 필요가 있고, 최저 임금을 보전하기 위해 국가 세금 4조 원을 투입하는 것을 걱정하기에 앞서 국가가 대기업에 투입되는 세금 126조가 형평성에 어긋나는 지나친 특혜가 아닌지 재검토하는 것이 순리가 아닐까 ? 자신에게 주어지는 특혜는 당연한 것이고 서민 정책에 투입되는 예산은 포퓰리즘인가 ?
슬퍼한 시간조차 없는 사회보다는 슬퍼한 시간이 주어지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며, 일하지 않고도 빌어먹을 권리를 주장하는 사회가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고 말하는 사회보다 더 빌어먹을 사회에 가깝다. 일하지 않고 빌어먹을 권리만 주장하는 것이 염치의 문제라면 일하지 않고도 빌어먹을 권리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이 정치의 문제이다. 그리고 경제적 공포를 주장하는 놈일수록 배부른 놈일 가능성이 높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