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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평점 :
김 애 란 단 편 , 입 동 :
사상누각
중심은 한자 中과 心으로 구성된 단어'다. " 中 " 이라는 잣대는 좌표와 무게의 중간 위치'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 心 " 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중심은 " 엿장수 마음대로 " 다. 중심은 암세포처럼 상황과 처지에 따라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전이된다. 무릎 통증에 시달리는 사람은 무릎이 그 사람의 중심이 되었다가 당뇨로 발끝이 썩어가게 되면 발끝이 그 사람의 중심이자 전체가 된다. 반복해서 말하자면 中이라는 가치중립적 평가는 온전히 편향된 마음(心)에서 나온다, 결핍이 중심이다 ! 역설적인 상황이지만 : 한쪽으로 평형추가 기울어진다는 것, 다시 말해서 한쪽으로 마음이 쏠리는 것이야말로 완벽한 중심'이다. 그렇기에 온통 마음을 어떤 특정 대상에게 쏟는다는 것은 항상 위태로운 것이다.
김애란 소설집 << 바깥은 여름 >> 에 수록된 첫 번째 단편 < 입동 > 에서는 " 분양면적 이십사 평, 실면적 십칠 평에 지은 지 이십 년 된 아파트 (12쪽)" 를 장만한, " 한동안 집이 생겼다는 사실에 꽤 얼떨떨했(13쪽) " 던 부부가 주인공이다. " 이십 년간 셋방을 부유하다 힘들게 뿌리를 내린 곳(33쪽) " 이니, 그에게 실평수 십칠 평이라는 공간은 아내의 중심'이자 전부이다.
아파트를 얻은 뒤 아내는 휴일마다 베란다에서 계속 무언가를 자르고, 칠하고, 조립했다. 우리가 십 년 가까이 쓴 침대와 의자, 식탁과 수납장을 리폼했다..... 아내는 영우가 톱이나 못, 망치 근처로 오지 못하게 베란다 문을 꼭 잠그고 일했다...... 이사 후 몇 달 동안 집에서 페인트와 접착제, 광택제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북유럽 스타일 가구 ' 또는 ' 스칸디나비아 패브릭 ' 을 알아보다 가격에 낙담한 아내가 나름 택한 자구책이었다. 아내에게는 정착의 사실뿐 아니라 실감이 필요한 듯했다. 쓸모와 필요로만 이뤄진 공간은 이제 물렸다는 듯, 못생긴 물건들과 사는 건 지쳤다는 듯. 아내는 물건에서 기능을 뺀 나머지를, 삶에서 생활을 뺀 나머지를 갖고 싶어했다. 아내가 인테리어에 가장 정성을 쏟은 공간은 단연 거실과 부엌이었다 ( 단편, 입동 16쪽 )
아내의 토포필리아(topophilia, 장소애)는 없는 살림에 이십 년간 셋방살이하면서 겪은, 서러운 결핍의 결과가 반영된 서정이다. 그것은 대학 시절 내내 기숙사에서 살았고 졸업 후에는 학습지 교사로 일하며 독서실을 전전했던, 결혼 후에는 다섯 번의 이사 끝에 얻은 " 내 집 " 에 대한 애착이다. 이 애착은 평형추가 기울어진 곳에 세워진 중심이라는 점에서 불안하다. 아내는 난임 치료를 받다 두 번의 유산 끝에 얻은 영우를 마음에서 밀어내고 그 자리를 그림 같이 예쁜 집을 꾸미는데 정신이 없다.
(영우) 아직 어려서 그런지 글씨를 쓰라고 손에 연필이나 크레파스를 쥐여주면 여기저기 형체를 알 수 없는 곡선을 그리며 아내가 애써 청소해놓은 바닥을 더럽히곤 했다. 평소 언성 높이는 법이 별로 없는 아내는 자신이 힘들여 가꿔놓은 공간을 아이가 어지럽힐 때마다 소리를 질렀따. 어느 때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그랬다 ( 17쪽)
...... 그리고 지난봄, 부부는 사고로 영우를 잃는다. 비로소 아내는 삶의 축이자 중심이 집이 아니라 영우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집에 대한 애착은 거실 바닥에 떨어진 갈색 고무나무 이파리처럼 시든다. 단편 < 입동 > 의 끝은 한쪽으로 기울어져 균형을 잃은, 위태로운 삶을 다시 재건하고자 하는 부부의 다짐으로 끝난다. 부부는 자정이 넘는 시간에 도배를 한다.
- 여보, 저기 종이 운 것 같은데. 다시 해야 하는 거 아니야 ?
- 어디 ?
- 저기.
- 괜찮아. 며칠 지나면 흡착될 거야.
- 저기는 ? 삐뚤어진 거 같은데 ?
- 어디 ?
- 난 잘 모르겠는데 ?
- 아니야, 이쪽으로 살짝 기울어졌어.
- 어, 그러네. ( 33쪽)
부부는 입동을 앞둔 계절 앞에서 생각한다. 기울어져 균형을 잃은 삶도 기울어지게 붙인 도배지를 살짝 떼어 균형을 맞춘 뒤 제자리에 붙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풀이 금방 마르지 않아 교정이 가능한 도배지처럼 기울어진 삶도 ! 첫 번째 소설집 << 침이 고인다 >> 와 두 번째 << 달려라, 아비 >> 에 수록된 단편이 주로 1인용 방에 대한, 셋방(곁방)에 대한 이야기라면 단편 < 입동 > 은 셋방에서 벗어나 집을 장만한 부부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주거 불안정에 따른 불안은 집을 장만했다고 해서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부부는 흉흉한 소문 때문에 고통을 받지만 대출 빚으로 집을 장만한 부부는 집값에 발목이 묶여 이곳을 떠나지 못한다.
스무살 무렵에 글을 쓰기 시작한 김애란은 이제 서른 중반을 훌쩍 뛰어넘었다. 그 시간의 변화만큼 문체도 변했다. 명랑하게 딴청을 부렸던 스무살 소녀는 이제 진지해졌다. 이 변화는 무죄'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입동을 앞둔 계절이 되면 종종 성대 " 도어즈 " 를 찾곤 했다. 한때 사랑했던 사람과 찾던 곳이었는데 이제는 혼자 가게 되는 곳이다. 그때마다 절실히 깨닫게 된다. 공간을 아름답게 채울 수 있는 인테리어는 좋은 가구보다는 함께 있어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생각해 보면, 그녀는 내가 얻었던 가장 좋은, 결이 고운 나무로 만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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