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창비주간논평을 옮겨놓는다(http://weekly.changbi.com/blog_post_458.aspx). 지난주에 있었던 '대통령과의 대화'에 대한 논평이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TV를 볼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껴갈 수 있는 '현실'도 아니어서 '대화' 내용에 대한 복기를 따라가본다.   

창비주간논평(09. 12. 02) 대한민국은 비상사태다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머리 나쁘고 부지런한 상사가 최악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상사가 독선적인데다가 자신감까지 겸비한다면? 최악의 제곱이라고 해야 할까? 최악 킹왕짱이라고 해야 할까? 지난 11월 27일 밤 35개 채널을 통해 방영된 <대통령과의 대화>를 본 나의 종합적인 소감이다. 청와대 직원들에게 대통령이 내복 입은 것을 슬쩍슬쩍 보여준다는 얘기 등에서는 중간중간 박장대소를 하기도 했지만, 웃음이 허탈로, 또 위기의식으로 바뀌는 데는 몇분이 걸리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진짜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방송을 보니 이대통령이 이전에 비해 확실히 말을 재미있게, 특히 보통 사람들의 피부에 와닿게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정운영에 대한 자신감도 느껴졌다. 시쳇말로 드디어 자기 페이스(pace)를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이 때문에 내 위기의식이 더 커졌다. 물론 위기의식의 뿌리는, 엄청나게 많은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흡수해야 할 대통령직에 어울리지 않는 그의 지적 능력과 파당적(서울·공무원·청와대 중심적) 사고이다.     

부실한 '팩트'로 진솔한 대화 가능할까
이번 방송을 통해서 다시금 확인한 것은, 이대통령의 지적 능력이 실제 나이나 얼굴보다 훨씬 퇴락한 노인의 그것이라는 사실이다. 고정관념과 아집이 강하여 새로운 정보나 지식이 잘 흡수되지 않는 것 같고, 주변의 '현명한' 참모들의 보좌도 거의 먹히지 않는 것 같아서다. 이는 2008년 9월 멜라민 파동이 일어났을 때 식약청을 전격 방문하여 '(한참 대화를 나누고도) 분유에 왜 멜라민 함량 표시가 안되어 있느냐'고 묻던 YTN <돌발영상>을 보면서 처음 들었던 느낌이다. 이번 방송은 이대통령의 발언시간이 길었던 만큼 이런 느낌을 주는 장면이 수두룩했다. 관점의 문제가 아니라 기본적인 사실(fact) 파악에서 문제가 많았다는 얘기다.

단적으로 4대강사업 설명이 그랬다. 홍수 예방을 위해서라는데, 우리나라에서 대부분의 홍수는 22조원을 투입하겠다는 4대강 본류가 아니라 지천에서 일어났다. 한강의 수질이 개선된 것도 잠실, 신곡 수중보 때문이 아니라 하수처리율이 100%에 이르고 경안천, 왕숙천 등 지천 관리를 잘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높이가 10m가 넘어 댐이나 마찬가지인 4대강사업의 보(洑)와 잠실, 신곡 수중보는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 이대통령이 TV 화면을 통해 보여준 문건 '신국가방재시스템 구축방안'은 2007년 당시 건교부, 농림부, 소방방재청 등 9개 부처가 국가방재의 틀을 예방 위주로 짜기 위해 마련한 로드맵으로, 하천 재해예방 사업비는 14조여원이다. 이 역시 본류보다는 상류나 지천 정비에 주안점을 둔 예산이다.

세종시 건설로 인한 행정 비효율이란?
내려야 한다고 말한 법인세율도 2009년 현재 24.2%로서, OECD 30개국 중 22위로 낮은 편이다.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주요국은 하나같이 우리보다 법인세율이 높다. 일찍이 대전으로 이전한 11개 행정기관 공무원도 서울에서 출퇴근하는 것이 아니라 89% 이상 가족과 함께 이주했다. 그밖에도 사실 시비를 할 이대통령의 발언은 많다. 내가 특별히 심각하게 느끼는 문제는 대통령의 취약한 통치자 마인드와 디지털 마인드다. 이대통령은 행정부처의 상당수가 청와대에서 멀리 떨어진 세종시로 이전해 생기는 비효율과 불편에 특별히 예민한 것 같다. 이는 디지털 기술·문화와 권한 위임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인 듯하다.

대리, 과장 소리를 들을 정도로 수시로 각료(부하)들을 불러 세세한 것을 캐묻고, 깨고, 지시하고, 결재판에 붙어온 종이문서에 결재를 하는 이대통령의 스타일을 생각한다면 그가 느낄 불편이 얼마나 크겠는가! 게다가 대한민국 국회 역시 행정부 고위 공무원들을 하릴없이 국회에 장시간 대기시키는 것이 다반사 아닌가! 그렇기에 애국적 일념으로 행정부처를 청와대와 서울 인근에 집중시키려 하는지도 모른다. 행정부처의 지리적 분산으로 인한 대통령과 공무원들의 불편은 보통 사람들에게 확실히 호소력이 있어 보였다.

블랙홀 같은 중앙집중 해소하려면
그런데 세종시는 극심한 서울·수도권 집중을 해소하려는 고육책으로 나온 것이다. 대통령과 세종시로 내려갈 공무원의 불편을 몰라서 만든 정책이 아니다. 한마디로 지극히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나온 특단의 조치인 것이다. 굽은 것을 펴기 위해 역으로 구부린 정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주요 선진국에서 그 유례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은 그 나라의 수도권과 중앙권력이 한국만큼 강력한 블랙홀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종시로 내려간 공무원 대다수가 저녁에는 서울로 올라와버릴 것이라는 이대통령의 우려는 9개 행정부처를 내려보내지 않아야 할 이유가 아니라, 오히려 무리해서라도 내려보내야 하는 이유다. 그만큼 서울의 흡인력이 강하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 우리나라 행정써비스의 핵심 문제는 지리적 근접성이 보장하는 풍부한 면대면(面對面) 소통이 없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단적으로 미국산 쇠고기 관련 논란도, 대운하-4대강-세종시로 이어지는 오락가락 행보에서도 행정부처간 소통의 문제는 한참 후순위다. 분명한 것은 9개 행정부처 공무원은 서울에 살아야 할 인간이고, 내려보내려는 기업, 교육, 과학 부문의 종사자는 지방에 살아도 좋을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도 서울에 본사 본원 본교가 있고, 나름대로의 불편과 비효율이 있고, 강력한 서울·수도권 선호도가 있다.  만약 힘있는 행정부처 대신 떠밀리다시피 세종시로 내려간다면 그들의 가슴에는 2등국민이라는 자괴감이 흐르지 않을 수 없다. 

결과적으로 이대통령의 뒤집기 한판으로 인해 망국병인 '묻지 마'식 서울·수도권·공무원 선호도는 더 강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서울·수도권 주민의 이기주의와 공무원의 편의주의는 잦아들지 않는다. 아파트값 하락을 우려하는 강남과 과천 민심도 마찬가지다. 바로 그렇기에 전 국민을 보고, 전 국토를 보고, 미래를 보는 대통령의 안목과 결단이 필요한 것이다. 공무원의 솔선수범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이대통령은 자신이 서울, 수도권, 강남 주민들의 대통령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의식하는 것 같지 않다.

"믿음을 잃으면 정치는 설 수 없다"
한국은 오랜 중앙집권의 전통과 냉전, 그리고 국가주도의 경제·사회 발전전략으로 인해 중앙권력, 특히 행정권력(규제·촉진권, 재정조달·할당권, 처벌권 등)이 강하다. 따라서 이들의 상당부분이 세종시에 있다는 것 자체가 기업, 연구소, 대학을 끌어당기는 강력한 힘이 아닐 수 없다. 이것만으로는 국가균형발전이 되지는 않겠지만, 이것도 없이, 즉 공무원의 솔선수범 없이 국가균형발전을 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게다가 여야가 오래전에 합의했고, 이대통령 스스로 누차에 걸쳐 확약한 국가대사를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는다면, 도대체 누가 대통령과 정부의 말을 믿겠는가?

2천년 동안 동양 정치사상의 정수로 여겨져온 <논어>에는 이런 얘기가 있다. 제자 자공이 스승 공자에게 "정치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공자는 "무기와 식량을 풍족하게 하고 백성들이 믿도록 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자공이 또 물었다.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버려야 합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무기를 버려라." 자공이 다시 물었다. "남은 둘 중 하나를 또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버려야 합니까?" 공자는 말했다. "식량을 버려라. 믿음을 잃으면 정치는 설 수가 없다."

이대통령은 정말로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혼동하고 있다. 지리적 분산으로 인한 불편과 비효율은 대통령과 국회가 마인드를 약간만 바꾸면 상당부분 해결할 수가 있다. 보수와 진보를 초월하여,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깨어 있는 시민이라면 대한민국 최고권력자의 지적 유고상태와 통치자 마인드의 유고상태에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하며 손을 맞잡고 머리를 맞대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비상사태다.(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09. 12. 02. 

 

P.S. 개인적으로 김대호 소장의 시론과 칼럼에 자주 공감하게 되는데, 그가 쓴 책으론 <진보와 보수를 넘어>(백산서당, 2007), <희망한국 프로젝트>(백산서당, 2007), 그리고 <노무현 이후>(한걸음더, 200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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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09-12-02 21:00   좋아요 0 | URL
1973년에 조직된 삼각위원회가 진단한 '과도한 민주주의'의 대안으로 '절제된 민주주의'의 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그들은 대중이 온순하게 믿고 따를 때야 '진정한 민주주의'가 회복된다며 '민주주의의 위기론'을 외칩니다."대의를 위해 믿고 따르시라 외치는데, 왜들 의심하나이까, 이 연사 목이 터저라 또 외칩니다. 여러분 제발 믿으시와요...", 대중왈 '무슨 소리야?'

로쟈 2009-12-02 23:26   좋아요 0 | URL
소위 '권력' 주변에서도 한숨이 나올 법한 상황이 아닐까 싶어요...

비로그인 2010-02-18 23:25   좋아요 0 | URL
'이는 디지털 기술·문화와 권한 위임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인 듯하다.' 참참참..
예전에 어떤 백수놈이 "그새끼 컴퓨터 못해..."이렇게 욕했었는데 선배답게 위의 문장처럼 정리해 줄수도 있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한국고전번역학회 창립기념 학술대회가 ‘고전번역학 정립을 위한 이론적 모색’을 주제로 지난주에 열렸다고 한다. 발제 내용을 일부 정리해놓은 기사기 있기에 '번역과 번역가' 카테고리를 위해서 스크랩해놓는다. 원론적인 내용이지만, 과제도 많고 갈길도 멀다는 걸 한번 더 확인하게 해준다... 



교수신문(09. 11. 30) “번역 통한 콘텐츠 확충 사업은 인문학 차원의 ‘건국운동’이다” 

고전번역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가운데 한국고전번역학회(회장 송재소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한국고전번역원(원장 박석무)과 함께 지난 27일 성균관대 국제관에서 학회 창립기념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기치는 ‘고전번역학 정립을 위한 이론적 모색’이었다.  

이날 송재소 회장은 기조강연 「한국고전번역의 과제」를 통해 고전번역학회가 풀어나가야 할 과제를 제시했다. 이런 과제는 3가지 주제와 함께 문제제기로 이어졌다. 제1주제는 「한국고전번역의 역사적 고찰」(이동철 용인대), 제2주제는 「번역과 역사변혁」(박상익 우석대), 제3 주제 「일기류 자료의 국역 현황과 과제」(황위주 경북대)였다. 각 주제별로 정채철(단국대), 하원수(성균관대), 김현영(국사편찬위원회)등이 토론을 맡았다. 이날 학술대회의 문제의식을 공유한 송재소 회장의 글과 박상익 우석대 교수의 글을 발췌한다. 

     
    
송재소 한국고전번역학회장(성균관대 명예교수)

무릇 번역의 대전제는 충실한 번역과 정확한 번역이다. 이 문제의 중심에 놓인 것이 직역과 의역의 문제이다. 한국고전의 번역에서 직역과 의역의 문제는 더욱 첨예하게 다가온다. 직역은 원문의 언어구조, 당시의 문화와 관습 등에 최대한 근접하게 번역하는 것인데 자연히 많은 주석이 요구되는 번역이다. 이러한 직역의 대표적인 예가 經書諺解이다.

보다 바람직한 번역은 문자 추종적인 충실성이 아니라 의미의 충실성을 목표로 해야 한다. 즉 원문의 의미를 정확히 살리는 동시에 원문으로부터의 간섭을 덜 받으며 비교적 자유롭게 번역하는 것이다. 이러한 번역을 의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도 적지 않은 문제가 산적해 있다. 어느 선까지 의역해야 하는가. 이 문제가 먼저 대두된다. 한자, 한문은 우리가 오랫동안 사용해 왔기 때문에 타외국어와는 다른 친연성을 지니고 있다. 이 친연성이 오히려 번역의 장애물이 될 수 있다. ‘經濟’ 등의 낱말을 옮길 때가 그러하다. 또 오랜 시간 쓰여 오던 용어를 살려야 할지 풀어야 할지도 과제로 남는다.

문학작품의 번역은 더욱 어렵다. 모든 번역이 그렇겠지만 특히 문학작품의 번역은 재생적이면서 동시에 창조적이어야 한다. 그러자면 원문이 지니고 있는 文體, 修辭法, 語調 등을 염두에 두고 번역해야 되지 내용전달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 이렇게 볼 때 漢文讀解能力만으로는 좋은 번역의 필요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한문독해능력이 중요하지만 여기에 한국어 구사능력, 문화적 교양, 예술적 심미안 등을 두루 갖출 필요가 있다.

번역학이란, 보다 나은 번역을 하기 위한 방법이나 원리를 모색하는 학문이다. 번역의 일반이론에 관해서는, 서구에서 이루어 놓은 번역이론들을 광범위하게 섭취하는 한편으로 ‘한문고전의 번역’이라는 특수성에 입각해 우리 나름의 독자적인 이론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학제적 성격을 가진 번역학의 특성을 고려하여 언어학, 문화학, 미학 등 인접학문과의 상호 협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번역이론의 개발과 함께 중요한 것은 다양한 번역기법의 개발이다.

“기존 번역서 평가하는 시스템 필요”
더 나은 번역을 하기 위해서는 기존 번역서들에 대한 평가 작업도 수행해야 한다. 기존 번역서 평가는 앞으로의 번역의 질을 높이기 위한 중요한 여러 단서를 제공해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 양질의 번역서를 제공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엄밀하고 객관적인 평가가 이뤄지기 위해 평가의 방법과 과정 그리고 결과의 활용 등 평가의 제반 시스템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이 또한 한국고전번역학의 과제로 남는다.

이 밖에도 국가적 차원의 번역 지원 정책을 수립하는 데에 큰 틀의 방향을 제시하고, 고전번역의 활성화를 위해서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등의 사업도 한국고전번역학의 과제라 할 수 있다. 또한 한문고전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은 그 자체만으로도 중요하지만 이 작업은 한문고전을 서구어로 번역하는 일과도 맞물려 있다. 이 경우 번역 담당자는 서구어 전공자들일 터인데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이들이 한문고전을 직접 번역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들에게 믿을만한 결정적인 번역 텍스트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박상익 우석대 교수(서양사)
시인 김수영은 신세대 문학청년들을 ‘뿌리 없이 자라난 사람들’이라고 혹평한다. 일본어를 읽을 줄 모르는 까닭에 세계문학의 흐름으로부터 차단돼 있는 그들에게 가장 결핍돼 있는 것은 ‘지성’이라는 것이다. 그는 산더미같이 밀린 외국 고전들을 우리말로 번역해 한글 콘텐츠를 일본어 못지않게 늘리는 일이야말로 國運에 관계되는 문제라고 지적한다. 김수영의 시대로부터 40여년이 흐른 지금은 형편이 나아졌을까.

일본은 메이지 유신 직후 정부 내에 ‘번역국’을 따로 두고 집약적으로 수만 종의 서양 고전들을 번역했지만, 그들이 19세기말에 번역한 고전들 가운데 아직도 많은 책이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았다. 많은 대학에서 번역을 연구실적으로 인정하지 않을뿐더러, 정체성에 대한 고민 없는 일부 인문학자들은 번역의 필요성에 대한 최소한의 인식마저 없는 실정이다.

2008년 7월 28일부터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거행된 제18차 세계언어학자대회는 소수민족 언어에 대한 언어학적 분석과 보존 계획 수립의 문제를 주요 의제로 삼고, 인간은 자신의 모국어를 사용할 때 가장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21세기에 독창적 문화를 창조하는 일이 무가치하다고 판단하지 않는다면 번역을 통한 한글 콘텐츠의 확충은 결코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다.

다음은 우리 고전의 번역이다. 우리는 올해로 제64주년 광복절을 맞이했다. 우리 인문학은 어떨까. ‘광복’을 기해 우리 인문학도 ‘빛’을 되찾았을까. 안타깝게도 일제 강점기 이전에 ‘우리 인문학’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한 예를 들어보자. 개화기 역사를 다룬 黃玹,(1855∼1910)의 『梅泉野錄』은 원전이 한문이라서 요즘은 대학 졸업자도 읽을 수 없다. 영어권 독자들은 500년 전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지금도 읽을 수 있지만, 우리는 100년 전 ‘우리 것’도 읽을 수 없다. 단군 이래 100년 전까지 우리 선조가 작성한 거의 모든 문헌이 ‘번역’이란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우리에겐 ‘딴 나라’ 책이다. 우리는 언어적으로 우리 자신의 과거로부터 상당 부분 단절돼 있다. 이런 형편이니 1세기 전의 ‘우리 인문학’을 거론조차 할 수 없다.

일제강점기에도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1945년까지 일본어를 국어로 常用하다가 한글을 본격적으로 쓴 지가 이제 겨우 60년이다. 그러므로 ‘모국어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인문학’이란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갓 태어난 아프리카 신생국과 다를 바 없다. 자존심 상하지만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우리 현실이다. ‘빛을 다시 찾은 것’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빛이 비치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인문학에서는 광복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 인문학은 60년 전 ‘탄생’했다.

“40~50대 활용해 번역 사업 매진해야”
얼마전부터 인문학 위기란 말이 유행처럼 나돌고 있다. 하지만 지난 60년 동안 과연 우리 인문학이 잘 나갔던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모국어를 기반으로 한 인문학의 역사가 이제 겨우 60년이라는 냉엄한 현실을 직시한다면 반만년 역사 운운하며 느긋한 허위의식에 안주할 수 없다. 신생국 처지임을 자각하고 새로 시작하는 결연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먼저 끊어진 역사를 연결시켜야 한다. 아직 20%도 해내지 못한, 우리 선조들이 남긴 국가기록물과 개인문집에 대한 번역작업을 빠른 시일 내에 완료해야 한다. 이 작업이 완결돼야 비로소 반만년 우리 역사가 온전히 ‘우리 것’ 즉 한글 콘텐츠로 편입될 수 있다.

인문학 위기론이 팽배한 현시점에서 그나마 인문학 연구 인력이 가장 두터운 층을 형성하고 있는 세대는 40대와 50대로 보인다. 그 아래는 학문후속세대의 단절이 우려될 정도로 ‘실용’에만 몰두하는 형국이다. 정부는 이들 연구 인력이 더 늙기 전에 한글 콘텐츠 확충을 위한 번역 사업에 대대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자칫 시기를 놓친다면 뒤늦게 사업을 추진하려 해도 마땅한 인력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번역을 통한 한글 콘텐츠 확충 사업은 인문학 차원의 ‘건국 운동’이다. 모국어에 대한 비전을 갖지 못한다면 우리는 주권독립 국가의 국민일 수 없다.(정리 최익현 기자) 

09. 12. 01. 

P.S. 한겨레의 기사 탓인지 방문자수와 즐찾이 모두 늘었다. 방문자의 경우 300명쯤 늘어난 듯싶은데, 그래도 며칠 안으로 '원상'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한다. 여하튼 덕분에 총방문자 1맥만명이 코앞에 닥쳤다. 내일은 간단한 이벤트라도 공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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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09-12-01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월말 '한국고전번역원'에서 '계원필경집1'과 '고운집/최치원지음/이상현옮김'이 발행되었습니다. 한국고전번역원(http://www.itkc.or.kr/)
한국고전적종합목록시스템(http://www.nl.go.kr/korcis/)
한국고전종합DB(http://db.itkc.or.kr/itkcdb/mainIndexIframe.jsp)

로쟈 2009-12-01 22:58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기사로는 봤습니다...

펠릭스 2009-12-02 00:08   좋아요 0 | URL
수원시 인구가 110만을 돌파, '중도실용정부'의 행정구역 개편 기준 인구가 100만임을 가만하면, '로쟈의 저공비행'은 대한민국 공중 도시로 곧 탄생 하심이...

이매지 2009-12-01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전문학전집을 하면서 도움이 될 것 같아 가려고 했는데,
일이 너무 바빠서 못 갔는데 기사로라도 접하니 도움이 되네요.
감사합니다 :)

그나저나 백만명이라니. 정말 엄청나네요 ㅎㅎ
미리 축하드려요!

로쟈 2009-12-01 22:59   좋아요 0 | URL
천만명을 넘어선 블러거들도 있는 걸요.^^;
 
출간기념회

파란여우님의 <깐깐한 독서본능>(21세기북스, 2009) 출간기념회 관련기사가 떴기에 스크랩해놓는다. 지난 금요일 저녁 강의를 마치고 인사동 한정식집으로 향했는데, 나는 모임이 언론매체의 인터뷰도 겸하여 진행되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한꺼번에 그렇게 많은 기자들이 와 있을 줄은 몰랐다(서너 팀이 와 있었다). 덕분에 알라디너들만의 오붓한 정담을 나누는 자리가 되진 못했지만 파란여우님의 '파워'는 여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강의로 먹고 사는 나보다 말씀을 더 조리있게 하셨다). 그래도 제목은 '알라디너들의 저녁식사'라고 붙여둔다. 사실 알라디너들이 모여서 저녁을 먹은 자리이기도 했으니까...



한겨레(09. 12. 01) 책 잠시 접고 수다…‘책’ 파워 블로거들의 밤 

“파란여우님이 책을 냈다는데 와봐야죠. 누군가 제게 블로그에 올린 서평들을 모아 책을 내라기에, 제가 그랬어요. ‘파란여우님 정도라면 몰라도, 파란여우도 아닌데, 내가 왜?’” 낱말 하나하나 또박또박 발음하는 그는, 이야기꽃이 한창인 가운데 좀 늦게 합석한 ‘마녀’다.

지난 27일 밤 인사동의 한 밥집에 책읽기 ‘중독자’들이 모였다. 책에 탐닉하고, 책읽기를 통하여 세상과 소통하는 이들. 이름하여 책읽기의 고수들이요, 정작 본인들은 손사래를 치는 이름, ‘파워’ 블로거들이다. 하루 평균 1100명이 넘는 방문객을 거느린 ‘로쟈’를 비롯하여 온라인서점 알라딘 서재에서 마을을 이루어 거주하는 서재지기들이다.

자기주장 분명한 직장여성 휘모리, 출판사 편집자 아프락사스, 임용고시를 준비중이라는 멜기세덱, 자칭 백수 사회학 박사과정생 무화과나무, 전업주부 기억의집, 대학강사 로쟈, 그리고 포털사 직원인 마녀까지. 



그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인 건 책읽기 마을의 면장으로 불리는 파란여우 윤미화씨의 책 <깐깐한 독서본능>(21세기북스) 출간을 축하하기 위해서다. <…독서본능>은 파란여우의 방대한 독서 기록을 모은 책이다. 파란여우의 생업은 ‘영세 축산업자’다. 충남 홍성의 오두막에서 염소 30마리를 키우며 살고 있는 그는 스스로를 늦깎이 독서가라 했다. 마흔에 책을 읽기 시작하여 비로소 수전 손택과 마르케스, 조지 오웰과 이탁오, 박지원을 만났다고 했다. 5년 동안 그렇게 1000권의 책을 읽었다.

“주경야독이죠. 염소 치는 짬짬이 책을 읽고 또 읽었으니까요. 이른바 ‘안전빵’이라는 공무원 생활을 버리니까 자유를 얻은 대신 가난이 찾아왔어요. 생계를 위해 염소를 키웠고요. 2004년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게 이렇게 서평을 모은 책이 됐네요. 책을 통해 재밌게 놀고 싶었어요. 당시엔 서평이란 거 없었죠. 그렇죠? 로쟈님?”

(로쟈) “그렇죠. 2004년부터 독서 블로거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지요.”

(기억의집) “장정일의 <독서일기>를 두고 독서인생의 첫사랑이라 했잖아요. 그게 저랑 통했어요.”

(파란여우) “그래서 내가 그분과 연애한 줄 아는 분들도 있어요.”

(휘모리) “<깐깐한 독서본능> 리스트 그대로 직장인의 책읽기 목록이 될 것 같아요. 가벼운 책에서 무거운 책까지 다양하니까요.”

성별과 나이, 직업도 다양한 ‘책 중독자’들의 수다는 늦도록 계속됐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책을 통해 세상과 만나는 열정으로 이끄는 걸까.

“직장인으로 살다 보면 드라마 얘기를 할지언정 ‘무슨 책 읽었느냐’며 책으로 소통하긴 힘들 거든요. 정치적으로도, 제가 한 시민으로 하고 싶은 일이 많은데, 그걸 소통할 공간은 많지 않은 거죠. 소비자이거나, 직장인인 나에게 정치적인 활동을 하거나 책을 읽고 공부하는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 온라인인 거죠.”(휘모리)

이들은 사회 이슈에 대해서도 글을 올리고, 때론 ‘시국’발언을 하기도 한다. 정치사회 이슈를 많이 다루는 무화과나무는 요즘 인터넷 글쓰기 환경에 대해 조심스런 우려를 내비쳤다.

“푸코 식으로 말하면, 이명박 정부 들어서, 권력에 예속당하는 주체, 권력에 내면화되는 자발적 메커니즘이 네티즌 사이에 있는 듯해요. 올해 저작권법이 개정됐을 때 우리 책마을 주민끼리도 말이 많았어요. 권력이 포털사이트 자체를 문제 삼기도 했잖아요.”

이들에게 책읽기란 무엇인가. “책은 일종의 필수 조건이라 봐요. 다들 읽고 또 읽어야만 하지요. 책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저는 과거의 문자해독력 같은 거라고 봐요. 책에 대한 수다를 떠는 건 그렇게 독서능력을 갖춘 문화가 형성되면 좋겠단 바람 때문입니다. 그래야 또 당하지 않고 살 수 있겠죠. 좀더 민주적인 사회에서 살 수 있을 테고요.”(로쟈) (허미경 기자) 

09. 11. 30. 

P.S. 기사에서 졸지에 '마냐'님은 '마녀'님이 됐다. 기자가 닉네임을 잘못 알아들은 듯하다(담당기자께 수정하시도록 귀뜀했다). 그리고 파란여우님의 옆자리를 끝까지 지킨 딸기님이 기사에서는 빠졌다(빼달라고 하신 건가?). 참고로, 마지막 발언은 현장 멘트가 아니라 사후의 이메일 질의에 응답한 내용이 간추려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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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9-11-30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의 왼쪽편부터 누구신지 설명을 부탁드리면 실례가 될까요..??^^

로쟈 2009-11-30 20:58   좋아요 0 | URL
왼쪽부터 로쟈, 멜기세덱, 파란여우, 휘모리, 아프락사스, 무화과나무입니다...

푸하 2009-11-30 21:04   좋아요 0 | URL
포토라인에서 자세를 취하고 계신 분들이니 아마도 이름이 밝혀져도 실례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에서 제가 말씀드리면... 하려다가. 먼저 말씀하셨군요.ㅎㅎ~

로쟈님 말씀 참 조리있게 잘 하시던데 그런 로쟈님이 인정하시는 파란여우님이라 어느정도실지 궁금하군요.^^;

루체오페르 2009-11-30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런 자리도 있었군요. 뜻깊은 자리네요.^^
덕분에 닉네임으로만 접하던 분들의 용안을 접견할수 있었습니다.ㅎㅎ

로쟈 2009-12-02 23:25   좋아요 0 | URL
자주 있는 자리는 아니었지요.^^

펠릭스 2009-11-30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기 좋은 사진입니다. 소설가,사진가,음악가,화가,연출가,정치가 등과 다른 느낌입니다.

로쟈 2009-12-02 23:25   좋아요 0 | URL
마을이 다르니까요...

카스피 2009-11-30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알라딘의 파워 블로거 여러분의 얼굴을 처음으로 뵙네요^^ 정말 반갑습니다.

로쟈 2009-12-02 23:25   좋아요 0 | URL
저도 처음 뵙는 분들입니다.^^;

비연 2009-11-30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좋습니다^^

로쟈 2009-12-02 23:24   좋아요 0 | URL
^^

노이에자이트 2009-11-30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 님 얼굴은 전에도 신문에서 봤고...음...다른 분들은 요렇게 생기셨구나...

로쟈 2009-12-02 23:24   좋아요 0 | URL
네, 얼굴 공개가 사생활 침해가 아니라면요.^^

이매지 2009-11-30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디너 '마녀'라고 해서 제가 모르던 고수가 또 있나 싶었어요^^;;

다락방 2009-12-01 08:36   좋아요 0 | URL
저도 알라디너 '마녀'는 누구인걸까...아직 내가 모르는 미지의 분? 이랬어요. 하핫.

무스탕 2009-11-30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사람들, 좋은 시간..
부럽습니다 :)

로쟈 2009-12-02 23:24   좋아요 0 | URL
^^

마늘빵 2009-12-01 0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쿠, 사진이 움직이는 중에 찍혔군요. -_- 난감.

로쟈 2009-12-02 23:23   좋아요 0 | URL
그나마 아프님이 웃는 모습이어서 이 사진이 골라진 것 같은데요.^^

딸기 2009-12-01 0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동종업계 종사자니까 알아서 빼주신 것 같아요 ^^

로쟈 2009-12-02 23:23   좋아요 0 | URL
그런 건가요?^^

sophie 2009-12-01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갑자기 배가... ㅎㅎ. 보기 좋습니다아~ ^^*

로쟈 2009-12-02 23:23   좋아요 0 | URL
그날 저녁을 잘 먹긴 했어요.^^

푸른바다 2009-12-01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기 좋네요^^ 전 지금 멀리 있어서 그림의 떡이긴 합니다만... 그리고 제가 파란여우님을 모른 걸 보면 알라딘 블로그에대한 탐색을 좀더 해야 겠다는 생각이듭니다^^

로쟈 2009-12-02 23:22   좋아요 0 | URL
아직 알라딘 '초보'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마냐 2009-12-01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헷. 덕분에 제 이름을 찾은 거군요 ㅎㅎ 감사감사.. 그날 제대로 인사도 못드려 아쉬웠어요.ㅎ 정작 저녁식사에 제대로 참여도 못했는디 ㅋㅋ

로쟈 2009-12-02 23:22   좋아요 0 | URL
네, 오랜만에 뵀는데, 말씀도 못 나눴네요.^^;
 

한겨레문화센터의 제안을 받아 교양강좌를 진행하게 됐다(강사들은 겨울에 따로 벌이를 마련해야 한다). 일반인/직장인 대상의 인문학 강좌인데, 1월 13일부터 2월 10일까지 5차례 진행된다(시간은 매주 수요일 저녁 7:30-9:30). 커리큘럼에 대해서 의견을 교환하다가 '현대철학'이 좋겠다는 의견에 따라 10명의 철학자를 추천했고 그 중 다섯 명이 첫 커리로 선정됐다(전공인 러시아문학에 대해서는 다른 곳에서 강의할 예정이다).  

나로선 <로쟈의 인문학서재>에 실은 '철학 페이퍼' 정도의 내용을 바탕으로 인문학 담론에 대해서 주눅들지 않도록, 더 다행스럽게는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 정도를 강의의 목표로 정했다. 곧 내가 읽고 이해한 만큼만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나의 과제다. 커리큘럼은 더 협의가 될 줄 알았는데, 처음 보낸 시안으로 확정되어 아예 공지가 됐다. 흠, 이것도 운명인가 보다. 한겨레문화센터의 홈피에서 강좌에 대한 안내를 옮겨놓는다(http://www.hanter21.co.kr/jsp/huser2/educulture/educulture_view.jsp?category=academyGate6&tolclass=0001&searchword=&subj=F90711&gryear=2010&subjseq=0001&p_selmenu=01). 참고로, 이 소개는 강좌를 기획한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작성한 것으로 나는 관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페이퍼는 분류하자면 일종의 광고 페이퍼가 되겠다.  

인터넷 서평 전문 블로거 '로쟈'가 쉽게 풀어서 들려주는 인문학 이야기.
니체, 지젝 등 어려워서 책장 깊숙히 박아둔 현대철학의 명저를 '로쟈'와 함께 읽어보자!
인문학의 참맛을 느껴보고 싶은 분들과 떠나는 행복한 인문학 여행 강좌!!

인문학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한편으로 불편하게 한다.
인문학은 우리한테 삶의 좌표를 제시하고, 그럼으로써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 바로 행복함이다.
인문학은 우리의 각박한 삶을 성찰하게 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한 생각의 틀을 제공한다. 인문학을 통해 삶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야은 넓어지고 넓어진 시야만큼 생각의 폭도 넓어진다. 삶의 좌표를 찾고 생각을 풍성하게 하기 위해 사람들은 인문학 서적을 펼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내 책장을 덮는다. 어렵기 때문이다. 바로 불편함이다.
책에 나오는 개념들은 애매모호하고 문장들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인문학에 대한 열정까지 포기할 수 없다. 삶의 모든 논리, 심지어 사람을 바라보는 기준까지 '돈의 논리'로 대체되는 작금의 상황은 인문학의 필요성을 더욱 높여주기 때문이다. 

이 강좌는 인문학에서 불편함을 느꼈던 이들에게, 인문학 서적이 너무 어렵다고 느껴 인문학에 대해 부담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인문학의 행복함을 맛보도록 마련된 과정이다.
 
로쟈와 함께 떠나는 인문학 여행, 그 첫번째 여행은 현대 철학이다. 
현대철학자 중 우리 사고의 폭을 넓혀줄 다섯 명의 철학자와 그들의 대표저작 한 권씩을 선별했다. 니체, 발터 벤야민, 장 보드리야르, 들뢰즈, 슬라보예 지젝이 그들이다. 

평소 읽고 싶었지만 어려워서 혹은 시간이 없어 손을 놓고 있던 책들을 놓고 '로쟈'와 함께 책 읽기를 시도해보자. 책에서 이해하지 못했던 내용, 난해했던 내용이 쉽게 풀릴 것이다. <로쟈의 저공비행>으로 유명한 인터넷 서평 전문 블로거 로쟈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할 것이다.
책을 미리 읽어오면 더욱 좋을 것이고, 그렇지 않아도 편하게 들을 수 있다.

5주 동안 로쟈와 함께 인문학의 향연에 제대로 한 번 빠져보자.  



"책을 미리 읽어오면 더욱 좋을 것이고, 그렇지 않아도 편하게 들을 수 있다."는 건 밑줄로 강조까지 돼 있는데, 수강생들이 보통 바쁜 직장인들이라 미처 책을 못 읽어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교재가 될 만한 책을 고를 때 분량이나 난이도도 염두어 두어야 했다(들뢰즈의 경우엔 그래서 소개서를 교재로 골랐다). 그럼에도 '철학' 강좌의 티는 내야 하는 게 나의 애로사항이다. 강의 일정은 아래와 같다.  

1. 1월 13일_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니체의 초인과 영원회귀 



2. 1월 20일_ 벤야민,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폭력비판을 위하여 외> : 벤야민의 역사철학테제와 폭력비판론 



3. 1월 27일_ 보드리야르, <소비의 사회> :  보드리야르와 소비사회의 논리 



4. 2월 3일_ 들뢰즈, <질 들뢰즈>(콜브룩) :  들뢰즈의 초월적 경험론 



5. 2월 10일_ 지젝, <지젝이 만난 레닌> :  지젝의 레닌주의  

 

09.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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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쟈의 러시아문학 기행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12-12 11:10 
    아트앤스터디의 오프라인 배움터(인문 숲)에서 진행하게 될 '로쟈의 러시아문학 기행: 푸슈킨에서 체호프까지' 강좌를 소개한다. 처음에 8주 강좌 제안을 받고, 대학에서 평소에 하던 강의를 압축해서 해보면 좋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그렇게 해서 기획된 강좌다. 평소 러시아문학에 관심을 가졌던 분이라면, 그리고 특별히 '로쟈'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분이라면, 이 참에 러시아 명작들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보셔도 되겠다. 사실 두 시간 강의에서 한 작가와
  2. 셰익스피어에서 쿤데라까지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2-01 14:52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진행하는 '로쟈와 함께하는 인문학 여행' 두번째 강좌 안내다. 첫번째 강좌도 이제 중반을 넘어섰는데, '수강후기'는 아직 모르겠지만 신청시 반응이 좋은 편이어서 연이어 두번째 강좌까지 맡게 됐다. 박수칠 때 떠나라고 했듯이 반응이 좋을 때 그만두어야 하는데 또 요청을 거절할 수가 없어서 몇 가지 주제를 제안했고, 그 중에서 '세계 명작 다시 읽기'가 채택됐다. 5주간 다섯 편의 작품을 읽게 된다. 소개의 멘트는 이렇게
  3. 데리다에서 가라타니 고진까지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3-17 00:51 
    한겨레교육문화센터의 제안에 따라 5월에도 '로쟈와 함께하는 인문학 여행' 강좌를 꾸리게 됐다(http://www.hanter21.co.kr/jsp/huser2/educulture/educulture_view.jsp?category=academyGate7&tolclass=&searchword=&subj=F90754&gryear=2010&subjseq=0001). 어제 낮에 협의를 했는데, 바로 공지가
 
 
2009-11-29 2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29 2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fanet 2009-11-29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런 좋은 기회가 있군요. 듣고싶다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습니다만, 교재가 되는 텍스트들이 (보통 직장인 입장에서는) 만만치 않겠네요. 사실 강의 안듣더라도 저 텍스트들만 다 읽어도 상당히 보람있겠는데요. ^^;;;
흐음...그동안 게으름으로 미뤄왔던 현대철학 다가가기를 로쟈님 도움을 받아 실천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듯합니다만, 제가 따라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한번 도전해 볼까요?

로쟈 2009-11-30 09:33   좋아요 0 | URL
네, 제가 그 도전에 보탬이 되면 좋겠숩니다.^^;

2009-11-30 0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30 0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ophie 2009-11-30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러시아문학 강의도 공지해 주세요.

로쟈 2009-11-30 15:29   좋아요 0 | URL
네, 거긴 아직 공고가 뜨지 않아서요.^^;

펠릭스 2009-11-30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물 사진을 좋아 하는데요.
레닌과 지젝이 무슨 말을 했나 궁금하죠. 빠져보고 싶은데요.


로쟈 2009-11-30 15:29   좋아요 0 | URL
좀 묵직하긴 한데, 두 사람이 흥미로운 만남을 가졌습니다.^^

2009-11-30 15: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30 15: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정서방 2009-11-30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읽고 싶은데, 듣고 싶은데, 지르고 싶은데... 눈팅만 하기 싫은데, 연초라면 시간이 날것도 같은데... 아 오늘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저 한숨만 내쉬네요.

로쟈 2010-02-24 18:49   좋아요 0 | URL
다음 기회는 놓치지 마시길.^^

turk182s 2009-12-01 0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같은 사람은.. 텍스트가 가까이 하기엔 너무멀어요,,지젝,들룆즈,벤야민..들으러가면 꾸벅,,졸것 같네요..

로쟈 2010-02-24 18:49   좋아요 0 | URL
네, 한두 분 조는 분도 계셨습니다.^^;

비로그인 2010-02-24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아쉬워요.. 전 이걸 너무 늦게 알았네요...
혼자 읽기가 엄두가 안나는 책들이어서 그이름들과 혼잣말 지껄이는 중이었는데.
뭐...장기 레이스라고 생각하고 천천히 뒤따라가겠지만 제가 읽은 책이 적다는 자괴감이 자꾸 생겨납니다.

로쟈 2010-02-24 18:48   좋아요 0 | URL
아, 모르고 계셨군요.^^;

비로그인 2010-02-24 22:18   좋아요 0 | URL
네~ 모르고 있었어요.. 알았다면 당연히 갔을텐데...
선생님 알기 시작한건 아트앤부터입니다.
너무 늦었죠? 그러니 좌절해야 할까여?

로쟈 2010-02-24 20:19   좋아요 0 | URL
늦긴요. 아직 살아갈 날이 많이 남았습니다.^^

비로그인 2010-02-24 22:24   좋아요 0 | URL
히히..감사합니당^^ 열심히 공부해서 칭찬받고 무럭무럭 성장하는 모습도 보여드릴게요^^.
 

서재일에 복귀하자 마자 해치우려고 계획한 일의 하나는 올해의 마지막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작성하는 것이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의 웹진을 찾으니 아직 철학과 과학, 교양 분야의 추천도서가 올라와 있지 않지만, 그냥 나대로의 추천도서로 다 채워넣기로 하고서 '12월의 읽을 만한 책'을 꼽아본다.   

1. 문학  

신경숙 작가가 고른 문학분야의 책은 이기호의 <사과는 잘해요>(현대문학, 2009)이다. 이미 소개 페이퍼를 올려놓은 적이 있고 해서 군말을 더 필요없을 듯. 추천의 변은 이렇다. "<사과는 잘해요>는 젊은 작가 이기호의 첫 장편소설이다. 그 동안 단편소설 모음집인 <최순덕 성령충만기>,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두 권은 펴낸 바 있다. 이 작가는 출발부터가 독자로 하여금 책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하려는 듯 작품을 읽는 동안 웃음이 만발하게 하는 유머로 무장하고 등장했다.(...) <사과는 잘해요>는 제목에 등장하는 ‘사과’보다는 ‘죄의식’이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소설이기도 하다. 이 작가의 독특한 화법이 여전히 웃음과 가독성을 불러일으키는 한편 웃을 수만은 없는 둔중한 근원적인 아픔이 남는 작품이다. 우리가 흔히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과’의 집단성과 사회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그 사과의 집단성과 사회성의 올해의 사회적 이슈이기도 하기에 여러 모로 음미해볼 만하지 않나 싶다.   

2. 역사 

이덕일 소장이 고른 역사분야의 책은 우동선 외, <궁궐의 눈물, 백 년의 침묵>(효형출판, 2009)이다. 이렇게 거명되지 않았다면 나로선 그냥 흘려보냈을 책이다. 궁궐의 역사가 눈물의 역사이기도 한 것은 다음의 소개를 통해 알 수 있다.  

"아마도 궁궐만큼 식민지 시대의 상흔을 고스란히 간직한 현장을 찾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궁궐의 눈물, 백 년의 침묵>은 이토록 수많았던 궁궐 전각들이 식민지 시대를 거치는 100년 동안 어디로 사라져갔는지를 추적한 책이다. 19세기 말 북궐도형(北闕圖形)에 그려진 경복궁 내 전각 수는 모두 509동이었다. 그러나 식민지 시대를 거치고 남은 전각의 수는 불과 40동에 불과했다. 그 많은 전각들이 어떻게 사라졌으며 어디로 갔는지 체계적 연구가 부족한 것은 의아한 일이다.  

창경궁을 동물원인 창경원으로 만든 것은 일제가 조선의 궁궐을 어떻게 대접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심지어 경희궁의 정전인 숭정전과 임금의 침소였던 회상전이 남산의 일본계 사찰 조계사(曹谿寺)로 팔려나가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데 쓰였던 사실이나, 일본인 상대 요정에 팔려가 기생들의 놀이터가 된 사실, 고종이 평양에 세웠던 황궁인 풍경궁(豊慶宮)이 일제의 군사기지로 전락했던 사실들은 일제의 궁궐 훼철이 의도적이고 조직적이었음을 보여준다." 

조선조의 궁궐을 소개하는 윤돌의 <우리 궁궐 산책>(이비컴, 2008)의 부제가 '정겨운 朝鮮의 얼굴'인 것과 사뭇 대조된다. 아마도 예비적으로 읽어야 할 책은 홍순민의 <우리 궁궐 이야기>(청년사, 1999)일 듯싶다. "울에 남아있는 조선왕조의 5대 궁궐인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경운궁(덕수궁)의 역사와 그곳에 살았던 왕들의 이야기. 저자는 궁궐이 세월의 풍상을 지나면서 훼손된 과정,특히 일제에 의해 의도적으로 파괴된 사실을 지적하면서 조선왕조의 왕궁 문화를 촘촘히 되살리고 있다."고 소개된다.   

3. 철학  

나대로 고른 철학분야의 책은 리처드 번스타인의 <한나 아렌트와 유대인 문제>(아모르문디, 2009)이다. 예전에 아렌트에 관심을 갖고 있을 때 눈길을 맞춰둔 책인데(번스타인은 지명도 있는 철학자로 국내에 몇 권의 책이 소개된 바 있다) 이번에 아렌트 전공자인 선욱 교수의 번역으로 읽어볼 수 있게 됐다. 겸사겸사 국내 연구자들의 논물을 모은 <한나 아렌트와 세계사랑>(인간사랑, 2009)와 엘리자베스 영-브륄의 <한나 아렌트 전기>(인간사랑, 2007)도 같이 읽을 책으로 꼽아놓는다. 사실 영-브륄의 전기는 재작년에 <정치의 약속>(푸른숲, 2007)과 함께 '12월의 읽을 만한 책'으로 골라놓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방대한 분량의 책을 손에 집어들 여유가 없었는데, 내달엔 그 일부라도 펴보고 싶다.  

공교롭게도 아렌트에 대한 관심이 주기성을 띠게 됐는데, 되짚어보면 얼마전에 읽은 아감벤의 <목적 없는 수단>에서 아렌트의 '우리 난민들'(1943)이란 글이 인용된 걸 보고 관심이 되살아난 것이기도 하다. "아렌트는 자신이 겪은 난민 혹은 무국적자의 조건을 뒤집어 이 조건을 새로운 역사의식의 패러다임으로 제시한다"(24쪽)고 아감벤은 적었다. 우리시대의 정치철학적 패러다임이 '시민'이나 '민중'이 아니라 '난민'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아감벤의 주장에 공감하게 되면서 덩달아 아렌트의 난민론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출간돼 나온 그녀의 유대인론에 대한 관심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4. 정치/사회   

강정인 교수가 고른 정치/사회분야의 책은 라틴아메리카 전문가인 이성형 교수의 <대홍수>(그린비, 2009). 저자의 책으론 봄에 나온 <라틴아메리카의 문화적 민족주의>(길, 2009)에 이어진 것이다. 책의 내용은 '라틴아메리카, 신자유주의 20년의 경험'이란 부제가 집약해준다. 부제만 보자면, <신자유주의 이후의 라틴 아메리카>(모티브북, 2008)란 책과 같이 묶일 수 있겠다. 간단한 소개는 이렇다.  

"이 책은 1992년 외채 위기 이후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에서 진행된 신자유주의 개혁의 명암과 최근의 중도좌파 정부에 의한 신자유주의 타개 경험을 다루고 있다. 이 지역 국가들은 신자유주의 개혁을 도입하면서 실업의 증가, 고용의 불안, 사회적 양극화 등으로 인해 심각한 사회경제적 시련과 좌절을 겪었다. 이 책의 제목 ‘대홍수’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으로 인해 파괴된 삶의 터전을 상징하는 단어다."

 

해서, '타산지석'이 될 만하다는 게 추천의 변이다. 모처럼 라틴아메리카 지역에 관한 책이 언급된 김에 몇 권 더 꼽아본다. 애두아르도 갈레아노의 <수탈된 대지>(범우사, 2009)는 라틴아메리카 500년사를 다룬 이 분야의 고전으로 이번에 개정판이 나왔다. 그리고 <라틴아케리카의 근대를 말하다>(그린비, 2008)는 <대홍수>가 포함된 '트랜스라틴' 시리즈의 첫권으로 나온 책으로 "‘근대성’을 비판적으로 성찰해 서구중심주의를 벗어나려는 라틴아메리카 지식인들의 논쟁을 담았다. ‘라틴아메리카의 근대가 언제부터였는가’라는 주제를 인류학, 역사학, 지리학, 문학 등의 학제적 연구를 통해 해명한다. 주로 서구학계에서 만들어진 근대성 담론을 비판한다." 이 역시 우리의 근대성 논의에 시사점을 제공해줄 수 있겠다. 그리고 김영길의 <남미를 말하다>(프레시안북, 2009)는 저널리스트의 생생한 현장 리포트이다. 몇 권을 겹쳐 읽으면 대략 라틴아메리카의 좌절과 희망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볼 수 있겠다.  

5. 경제/경영 

이준구 교수가 고른 경제/경영 분야의 책은 토드 부크홀츠의 <유쾌한 경제학>(리더스북, 2009). 예전에 <유쾌한 경제학>(김영사, 1997)이라고 나왔던 책이 다시 출간된 걸로 보인다.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김영사, 2009)가 개정판이 나온 것처럼. 추천의 주된 이유는 저자의 글솜씨에 있다. "경제학 서적 중 토드 부크홀츠가 쓴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만큼 오랫동안 스테디셀러의 위치를 차지해 온 책은 극히 드물다. 경제학에 대해서 알고 싶은데 무슨 책을 읽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바로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는 답이 자주 나온다. 이 책에서 보여준 부크홀츠의 글 솜씨는 정말이지 감탄을 금치 못하게 만든다. 그 책의 속편 격인 <토드 부크홀츠의 유쾌한 경제학>에서도 그의 번뜩이는 재치는 유감없이 발휘된다." 그래서 뛰어난 책은 아니지만 경제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이 흥미롭게 읽어볼 만하다는 것.    

6. 과학 

나대로 고른 과학 분야의 책은 저명한 뇌과학자인 마이클 가자니가의 <왜 인간인가?>(추수밭, 2009). 이미 전작인 <윤리적 뇌>(바다출판사, 2009)와 함께 소개 페이퍼는 올려두고 나는 원서까지도 도서관에서 대출해놓았지만 아직 읽을 짬을 못 내고 있는 책이다. 역시나 바쁘겠지만 12월엔 시간을 좀 낼 수 있으면 좋겠다.  

 

대중성에서 가자니가의 책에 밀리긴 했지만 대니얼 데닛의 <자유는 진화한다>(동녘사이언스, 2009)는 뇌과학과 인지과학이 마음의 철학에 어떤 통찰을 던져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저작으로 개인적으론 12월의 독서목록에 올려놓은 책이다. 뇌과학 입문서로 출간된 데이비드 린든의 <우연한 마음>(시스테마, 2009)와 개리 마커스의 <클루지>(갤리온, 2008)도 같이 읽으면 좋을 만한 책. 기묘한 뒤죽박죽으로 진화된 뇌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클루지>는 작년에도 '12월의 읽을 만한 책'으로 골랐었는데, 뇌과학에 대한 관심 또한 주기적인 모양이다(그만큼 주기적으로 이 분야의 책들이 나오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겠다).   

7. 예술 

김춘미 교수가 추천한 예술분야의 책은 정준호의 <이젠하임 가는 길>(삼우반, 2009)이다. 제목만으론 감을 잡을 수가 없는데,' KBS 'FM 실황음악' 진행자 정준호가 이야기하는 음악과 예술'이 부제다. 추천사에 따르면, "음악해설가 정준호는 좋은 작품을 고르고, 그것을 연주한 사람들의 연결고리, 작품이 만들어지던 당시의 사건들, 다른 장르에서 일어나고 있던 일들, 작곡가가 그 작품의 첫 번째 음을 적기까지 있었던 많은 일들의 입체적 맥락을 풍부하고 맛깔스럽게 드러내 놓았다. 이 책에서는 따로따로 알고 있던 사실들이 입체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음악 안으로 녹아들어가는 과정을 읽는 큰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음악에 과문한 탓에(FM도 듣지 않는 탓에) 저자는 생소한데, 이미 <말이 먼저 음악이 먼저>(삼우반, 2006)을 출간한 이력이 있고, '현대 음악의 차르'에 대한 평전 <스트라빈스키>(을유문화사, 2008)도 쓴 바 있다. 왜 제목이 '이젠하임 가는 길'인가? 저자의 답변은 이렇다. 



“16세기 이탈리아 다성 음악의 절정을 이루었던 팔레스트리나는 몬테베르디라는 새로운 시대의 총아에게 자랑스럽게 자리를 내어준다. 이들의 이야기를 20세기 초에 한스 피츠너라는 독일 작곡가가 오페라로 만들었다. 피츠너의 ‘예술가 오페라’는 후배인 힌데미트가 <이젠하임 제단화>를 그린 중세 화가 마티아스 그뤼네발트를 주인공으로 오페라를 쓰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뤼네발트의 그림에 나오는 세바스찬과 안토니우스 성인은 브람스의 변주곡과 드뷔시가 쓴 극 부수음악의 주인공이다. <이젠하임 제단화>는 이 책을 가로지르는 핵심 코드이다.”(6쪽) 

 

8. 교양 

나대로 고른 교양서는 윤미화의 <깐깐한 독서본능>(21세기북스, 2009)이다. '파란여우'님이란 닉네임이 아직은 더 친숙한데, 알라딘 마을 면장님의 책을 리스트에서 빼놓긴 어려운 일이다(내 책은 리스트에 못 올려놓더라도). 하지만 그런 '정치적' 이유는 부수적이고, 책은 보기 드문 하중과 함량을 자랑한다. 책읽기를 통해 깐깐한 '교양'이 무엇인지 경험해보고 싶은 독자들에게 강추할 만하다. 덧붙여 요즘 독자층이 부쩍 늘어난 듯싶은 유네하라 마리 여사의 <대단한 책>(마음산책, 2007)도 같이 읽어봄 직하다. 요네하라 마리 독자들에겐 말이 필요없는 '대단한' 독서기. 거기서 더 여유를 부릴 수 있다면, 크리스티아네 취른트의 <책>(들녘, 2003)까지 손에 들어볼 수 있겠다. '책에 대한 책'으로 네버 엔딩 책 얘기이다...  

9. 실용 

손수호 논설위원이 고른 실용서는 고다마 사에의 <유기동물에 관한 슬픈 보고서>(책공장더불어, 2009)이다. '유기동물'이란 주제를 다룬 드문 책인 듯싶은데, 저자의 사연은 이렇다고. 

“1997년 봄, 회사 근처 선로 옆에 하늘색 쓰레기 봉투가 버려져 있었다. 봉투에는 ‘죽은 개’라는 종이가 붙어 있었고, 빨간 목걸이를 한 하얀 개가 죽어 있었다. 이 아이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책은 이런 물음에서 출발해 동물의 존엄성에 눈을 돌리고 있다. 출발은 유기동물 문제가 심각한 일본이다. 무책임하게 버려져 살처분 운명을 맞는 동물은 1년에 개 16만 4,209마리, 고양이 25만 5,628마리에 이른다고 한다. 저자는 그러나 개인적인 슬픔과 안타까움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유기동물에 관한 사진전.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곳곳에서 전시회를 열어달라고 요청했다. 그 곳에서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발언이 나오기 시작했다. 동물의 생명에 대한 사람의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고. 책은 사진전을 옮겨 놓은 형식이다. 

저자가 내미는 책의 결론은 이런 것이라고 한다. “반려동물에게 인간과의 우정과 신뢰는 삶의 모든 것이다.” 생각보다 무거운 울림을 던져주는 책이다. 이 번역본을 낸 출판사 '책공장더불어'는 ‘동물전문 1인 출판사’인데, 리디아 히비의 <동물과 이야기하는 여자>를 시작으로 하여 <펫로스, 반려동물의 죽음> 등 오직 동물을 주제로 다룬 책만을 여러 권 출간했다. 어느 정도 고정독자층도 형성된 듯싶은데, 이런 전문/특수 분야를 전담하는 출판사들이 좀더 많아지면 출판계도 좀더 다양해지고 풍성해지겠다는 생각이 든다.    

10. 다윈주의 

끝으로 내 맘대로 고르는 주제는 '다윈주의'로 잡았다. 물론 올해가 다윈 탄생 200주년이었던 걸 고려해서다. 아직 <종의 기원>과 <인간의 유래> 새 번역본이 나오진 않았지만, 최근에 두툼한 <다윈 평전>(뿌리와이파리, 2009)가 출간되어 분위기를 살리고 있고, 그밖에도 몇 권의 관련서가 더 나왔다. 개인적으론 마이클 셔머의 <왜 다윈이 중요한가>(바다출판사, 2008)을 손에 들어보려고 한다. 그건 그의 신작 <진화경제학>(한국경제신문, 2009) 때문에 다시금 상기하게 됐기 때문이다. 다윈과 다윈주의 관련서들이 몇 권 출간될 듯하므로 해가 넘어가도 '다윈'은 여전히 출판계의 화두가 될 듯싶다. '놀랍고 색다른 이야기'들이 더 많이 쏟아지길 기대한다... 

09. 11. 29.  

P.S. 올해의 마지막 고전은 이지(이탁오)의 <분서>(한길사)이다. 1, 2권이 2004년에 나왔고, 속편은 2007년에 번역되었다. <이탁오 평전>(돌베개, 2005)은 조금 뒤적여보았지만, 나는 <분서>를 챙겨놓진 않았는데, 그건 책이 2004년 '당신이 없는 사이에' 출간된 사정과 관련이 있다. 러시아에서 돌아왔을 때 나는 이 책에 대한 아무런 식견을 갖고 있지 않았다('이탁오'란 이름만 들어보았을 정도). 그러다 문학평론가 정여울씨의 책에서 인상적인 독후감을 읽고 관심을 갖게 됐고, 피에르 부르디외가 <호모 아카데미쿠스>(동문선, 2005)의 서문에서 그 책을 자신의 '분서'라고 일컫는 걸 보고 흥미가 이어졌다. 하지만, 역시나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분량의 책은 아니어서 독서는 미뤄두고 있다. 이번에 골라놓는 것은 파란여우님의 강추 덕분이다(독후감은 <깐깐한 독서본능> 참조). 면장님은 이렇게 적었다. 

"분서를 읽는 동안 슬프고 외로웠다. 분서 속의 이지가 자꾸 술을 권했음을 고백한다. 다수와는 다른 사상을 지녔다는 이유로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결국에는 스스로 목에 칼을 그어 죽은 인간 이지의 고독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해서, 이지를 읽을 독자라면 냉장고에 술병을 댓 병 대기시킬 것을 권한다."(<깐깐한 독서본능>, 187쪽)  

볼과 함께 시작한 우리의 한 해는 술병과 함께 저물어갈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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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9 15: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29 2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펠릭스 2009-11-29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강하시니 좋습니다.
영화 '2012'처럼 지구 환경의 급변때는 '홍수'가 동반되더군요.
'룰라'의 '신자유주의' 대한 극복에 대해 읽고 싶군요.

로쟈 2009-11-29 21:34   좋아요 0 | URL
여러모로 반면교사가 되는 나라들입니다. 우리도 그 나라들의 반면교사가 될지도 모르겠구요...

sophie 2009-11-29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돌아오셨어요? ^^
저는 <말이 먼저 음악이 먼저>가 눈에 띄네요. 여기 미술사 전공하는 학생 얘기를 들어보니 수업에서 그림에 영향을 받은 음악을 감상하고 미술과 음악에 대해 얘기한다고 합니다. 예전에 오히려 미술, 음악이 넘나들기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이상적인 수업인 것 같아 양해를 구하고 청강을 하기로 했는데 무소르그스키의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를 한 답니다. 공부 좀 좋이 해야겠어요. ^^

로쟈 2009-11-29 21:35   좋아요 0 | URL
흠 너무 일찍 컴백한 건가요?^^; <보리스 고두노프>에 대한 강의는 저도 듣고 싶은데요...

수유 2009-11-29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반려 동물의 죽음이나 유기견 이야기, 학대받는 동물들, 로드킬 당하는 동물들의 이야기를 읽기는 쉬운 일이 아니랍니다..애써 외면하기도 하지요..

<이젠하임 가는길> 눈에 들어오네요^^

로쟈 2009-11-29 21:35   좋아요 0 | URL
네, 그러실 듯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