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서는 아직 인간이 세계의 주인공이고 사람들은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믿으며, 농부는 수확을 즐거워하고 직공은 솜씨를 자랑하며 상인은 상품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사람들의 운명은 자신에 의해 변화가 가능하며 개척 가능한 것으로, 사람은 자신의 삶의 방식을 스스롱게 내맡겨서 빈곤함도 있지만 서로 돕는 마음도 있고, 수확도 있지만 가뭄과 흉작도 있다. 그리고 선량한 사람들과 함께 악인도 확실히 악인다운 얼굴로 살아가고 있다. 욕망을 감추지 않고 겉모습 따위에 개의치 않고 장렬하게 돌진하는 악인이라도 악인대로 차라리 상쾌하게 살고 죽는 것이 가능한 세계. 이 세계에 등장하는 기계들은 대량생산의 공장제품이 아니며, 기능이 드러나는 즐거움과 수제품의 따뜻함을 지니고 있다. 하늘에도 땅에도 수제 발명품이 돌아다니고 사람들은 그것을 길들이고 수리해 가면서 능숙하게 타고 다니다.

- 미야자키가 '천공의 성 라퓨타'의 기획원안에 기록한 문장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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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양미술 순례 창비교양문고 20
서경식 지음, 박이엽 옮김 / 창비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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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있을 때는 커다란 감동과 먹먹함이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다시 이 책을 들춰보려니 그 가닥을 잡을 수 없는 느낌이 어땠는가 풀어놓기가 힘들다.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힘들다. 머리로 생각하고 마음으로 느낀다 하더라도 서경식이라는 분이 직접 겪은 그 경험은, 아니 그분의 삶은 내 삶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에 그러하겠지.

이 책에 소개된 그림들이 눈에 익은 그림이든 전혀 낯선 그림이든 그것이 중요하지는 않은 것 같다. 온전히 자신의 삶으로 그림을 바라보는 것, 그것을 느낄 수 있다. 왜 책의 제목이 '나의 서양미술 순례'인가를 이해하게 된다.

"이 사나이들은 대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무엇을 쫓고 있는가? 아니면 쫓기고 있는가? 고향에서 쫓겨난 난민인가? 혹은 괴로운 여행을 계속하는 순례자인가?
곰곰이 바라보고 있노라니,
아아, 내가 지금 꼭 이런 꼴이겠구나 하고 생각되었다"-에필로그에서

인쇄된 상본이긴 하지만 몇년 전 외젠 뷔르낭의 '무덤으로 달려가는 베드로와 요한' 그림을 보며 여러 생각을 했었기때문에 더 많은 느낌이 남아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조금 마음이 아프기 시작했다. 우리의 슬픈 역사가 떠오르고, 그 속에서 더욱 더 슬픈 가족들의 이야기가 떠오르고, '내가 지금 꼭 이런 꼴이겠구나'라 생각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에 마음이 먹먹해진다.
부활의 믿음도 없이 모든 희망이 사라진듯한 슬픔과 괴로움속에서 예수의 무덤으로 달려가는 베드로와 요한의 그 절박함이 그때의 마음이었다면, 이제는... 이제는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부활한 예수를 만나 뜨거운 감동을 느끼는 그런 마음이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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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조 사코 지음, 함규진 옮김 / 글논그림밭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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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한 무리의 이스라엘 군인들이 12살인가 13살먹은 팔레스타인 소년을 멈춰세웠다. 그들 자신은 처마에서 비를 피하며, 소년에게 케피예를 벗도록 했다. 그리고 빗속에 서 있으라고...
아마 그 소년에게 그 일은 수없이 겪었던 치욕의 하나일 뿐이었으리라. 그의 성격을 비뚤어지게 할 만큼 가혹한 경험이었지만, 다른 경험보다 더 가혹했는지는... 모르는 일이다. [본문에서 인용]

뜬금없이 이십여년 전 읽은 글이 떠올랐다. 오빠가 읽고 방구석에 처박아둔 리더스 다이제스트라는 잡지를 열심히 읽던 어린시절에 읽은 글이다. 이디오피아의 유대인들이 미국의 도움으로 엄청난 프로젝트를 세우고 현실적인 어려움을 이겨내고 결국 선조들의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는, 모세의 출애굽에 비유되는 엄청난 글이었다고 기억한다.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았던 그 이야기는 지금 내게 어렴풋이 남아있어 나의 상상력이 글을 부풀린건 아닌가, 의심도 해본다. 이디오피아의 유대인이라니!! 하.하.하..!

그런데 책을 읽으며 그게 사실이었구나, 안심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유대인의 자본이 전세계에 퍼져 특히 미국의 막강한 힘을 배경으로 팔레스타인 땅을 빼앗아 차지해버렸다 라는 이야기의 신빙성을 믿게 되니 이디오피아의 유대인이 선조의 땅으로 이주하였다는 얘기도 그럴싸하게 현실화되어버리는 것이다.

아니, 어릴적에 읽은 잡지의 기사가 사실이었다는 사실에 웃다니. 그게 기쁜일인가? ... 아니, 나는 그래서 역시 방관자라는 느낌을 지울수없는 것이다. 겪어보지도 않은 내가 '용서'니 '화해' 니 하는 말들을 꺼낼수는 없다.

책을 읽는동안 마음이 불편했다. 어찌되었든 나는 방관자로서의 수치심 비슷한 것을 안에 담아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4.3사건 얘기만 나오면 빨갱이놈들 얘기 꺼낸다며 화를 내시는 어머니에게 뭐라 대꾸할 수 없고, 4.3때 희생당한 분들의 증언들을 보고 읽으면서 역시 아무런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그런 느낌이다. '끔찍하다'라는 말조차 나는 그것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으로서 그저 머리속을 맴도는 추상일 뿐이다.

이스라엘이 자본의 권력을 배경으로 삼아 팔레스타인 땅을 빼앗았고, 종교적인 문제까지 맞물려있어 분쟁이 끊이지 않을 수 밖에 없다, 어린 소년들까지 자살폭탄테러에 이용하고 있는 끔찍한 현실, 폭탄테러로 무고한 지역주민 수십명이 사상... 등등의 이야기들에 대해 감히 뭐라 얘기하기 힘들다. 이 책을 읽어버렸으니 말이다. 치욕과 복수심에 불타는 어린 소년의 마음에 평화를 주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화해'니 '용서'니 하는 말들을 쉽게 내뱉는 사람들은 나처럼 그 끔찍한 일들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용서와 화해, 평화를 외쳐야 할 것이다. 한쪽이 가해자이고 한쪽이 피해자인 것이 아니라 모두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일수밖에 없었던 제주 4.3 사건의 희생자들인 우리 부모님들이 이제는 그 상처를 치유하며 상생의 길을 찾아가는 것 처럼 팔레스타인 지역의 분쟁이 사라지고 평화의 날이 오리라 믿고 싶다.

아직 여전히 평화로운 희망의 미래는 있는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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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10-27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서 팔레스타인에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면서,
4.3 희생자들을 추모하면서 ...

추천 하나는 접니다. ㅋ

chika 2004-10-27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고맙습니다.

복수가 복수를 낳는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어떻게 하면 끊을 수 있을까요... 가자지구의 어딘간에서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아이들이 서로 어울려 잘 지낸다는 얘기도 들은적이 있는데요.. 정말 평화가 깃들기를 기도합니다.

내가없는 이 안 2004-10-27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팔레스타인을 보면서 우리의 4.3 항쟁을 떠올리셨군요.
저도 추천합니다. ^^

릴케 현상 2004-10-27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chika 2004-10-28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곰곰이와 곰돌이 국민서관 그림동화 8
로버트 잉펜 지음, 문우일 옮김 / 국민서관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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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쓸모없다는 말이 어떤 뜻일까 곰곰이는 아직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몇년 전에 본 비디오가 생각납니다. 낡아빠지고 세련되지도 못한 꼬마 인형이 주인에게 버림받고 같은 이유로 버림받은 강아지 인형과 둘이서 절망하지 않고 새로운 주인이 될 친구를 찾아 길을 떠나는 얘기라고 기억을 합니다. 물론 제대로 기억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어딘가 다친 강아지 인형이 낑낑거리자 꼬마 인형이 자신이 입은 스웨터의 털실을 풀어 강아지를 꿰매주던 장면은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갖은 고난과 역경을 견뎌내고.. 둘은 새로 입양(?)되어 친구의 품에 안기게 된다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직도 곰곰이는 세계적인 곰이며 곰돌이는 쓸모없는 곰으로 남아있을까요? 정말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같습니다. 부드러운 그림은 오래전부터 곁에서 친구가 되어 준 곰인형의 푸근함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곰곰이와 곰돌이의 대화는 행복하고 즐겁지 않습니다. 그래서 곰곰이처럼 나도 가만가만 생각을 해야만 합니다. 내게 특별한 것과 정말로 쓸모없는 것은 무엇일까.

어린 친구들이 어떤 느낌일지는 전혀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내게는 이 그림책이 '짧은 글 긴 여운'으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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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날면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항상 똑같은 시선으로 보면 세계는 변하지 않습니다. 칭칭 얽매여 있는 것으로, 흔들리지 않는 것으로, 자신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일 뿐입니다. 그렇지만 시점을 바꾸면 세계는 좀 더 유연한 것이 되고,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 갖가지 모습을 보여 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 TELEPAL, 1989년 7월 15일 호, 미야자키 하야오 인터뷰에서, 미야자키 하야오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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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의 작품에는 항상 멋진 비행선이 등장한다. 나우시카의 메배에서 라퓨타의 똥파리비행기(ㅡㅡ; 조카녀석들은 그렇게 부르면서 무척 좋아한), 플랩터라고 하는 비행기도 나오고... 토토로에서는 고양이버스가 하늘을 난다. 물론 토토로와 함께 멋진 비행을 하기도 한다.  키키는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며, 하늘을 날지 않는 돼지는 평범한 돼지일뿐이라는 유명한 대사를 남긴 포르코는 그의 애용기 사보이아로 하늘을 멋있게 누빈다.  아, 코난이 타고 다니는 그 느려터진 플라잉 머신 ^^;

와 - 하늘을 날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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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4-10-26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자를 다르게 두개 만들었습니다...


숨은아이 2004-10-26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를 기울이면"과 "고양이의 보은"에선 바론과 함께 날고, "센과 치히로"에선 용과 함께 날고... ^^

chika 2004-10-26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글 올리고나니 저도 그게 생각나더라고요~ 굳이 또 덧붙이자면 on your mark에선 방사능으로 인한 돌연변이 인간- 천사던가요? ^^; - 이 맑은 하늘을 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