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그림자 1 잊힌 책들의 묘지 4부작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정동섭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 하나라고? 맙소사, 누리에타... 소설은 사망해서 땅속에 묻혀버렸어. 지난 번에 뉴욕에서 도착한지 얼마 안된 친구 하나가 말하더군. 미국인들이 텔레비젼이라는 걸 발명하고 있는데 영화관 같은 거라더군. 하지만 집에 있는 영화관이지. 이제 책도, 미사도, 그 어느것도 필요없을거야. 당신 남편에게 가서 소설을 포기하라고 해"

뭐? 뭐라고? 소설이 망해서 땅 속에 묻혀버렸다고?
이 글을 읽으면서 난 나도 모르게 대답하고 있었다. '천만에, 내게는 지금도 여전히 책이 필요하고 미사도 필요해. 앞으로도 그럴꺼야!'

나는 아주 대단한 이야기꾼을 만났다. 불면의 밤을 지새우게 하고, 업무를 잊어버리게 했으며 다른 모든것을 팽개치고 이야기속에 빨려들어가게 마법을 거는 이야기꾼을 만나버린 것 같다. 이 마법을 어떻게 풀지?

"사람들은 너무 말이 많아. 인간은 원숭이가 아니라 앵무새에서 진화된 게 틀림없네"

내 안에 담겨있는 말들은 아마도 앵무새가 떠드는 말밖에 되지 않을거야. 그래서 나는 어렴풋이 머나먼 정열의 나라..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그 나라의 바르셀로나에는 태고적부터 있었다고 해도 믿을 것만 같은 '잊혀진 책들의 묘지'가 여전히 전 세계의 순례자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는 이야기만 하고 가야겠다.
나도 머쟎아 그곳에 가서 잊혀진 책 한권을 입양해 오리라는 환상을 갖고간다.

짧게 이야기남기고 간다 하면서도 망설이는 건, 바람의 그림자가 내 안에 너무나 많은 그림자의 세계를 만들어놔버렸기 때문인가. 뭔가 좀 허전하다. 책 이야기도 아니고 느낌 이야기도 아니고.

어쨋든 이 책은 그가 말하는 것처럼 독서의 즐거움, 자기 영혼을 향해 열리는 문을 탐험하는 즐거움, 허구와 언어의 신비함에 자신을 내맡기는 즐거움, 아름다움과 상상력에 자신을 내맡기는 즐거움을 알게 해 주었다.

 

뱀발. 책을 덮으며 자꾸 영화 올드보이가 생각나는 건 이 책을 무척 흥미롭게 읽기는 했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증오와 분노때문인 것 같다. 잔혹한 아름다운 동화라고 생각하는 건 어울리지 않는 비유일까. 하지만, '희망은 잔인하고 헛되며, 양심이 없으니까' 라며 희망을 너무 믿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희망'을 잃지 않는 시간을 살고 있으메 감사하는 듯한 이 이야기는 결국 사랑을 이야기 하고 있는 듯 하기도하고.  아이구~ 정말 뱀발은 쓸모가 없는 것이다. ㅡ.ㅡ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만두 2005-06-09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ㅡ.ㅡ

chika 2005-06-09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왜 그런 표정을 지으시나요~ (훌쩍~)
바르셀로나로 갈꺼예요~ 오오~ 바르셀로나~!!! ㅠ.ㅠ

물만두 2005-06-09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드보이라니...

chika 2005-06-09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스포일러가 될까봐 설명 못해드려요! 갠적으로 궁금하시면 글 남기시구랴. ㅎㅎ

하루(春) 2005-06-09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드보이라니... 으음.. 알았어요. ^^
 
 전출처 : 난티나무 > 안 에르보 사인과 그림 * 치카님 꺼~



이건 어둡게 나왔네요. 흰 종이 바탕이에요.
맘에 드세요?
저는 그리는 거 보고 딱 치카님 맘에 들겠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들려주는 이야기>의 그림인 것 같아요.
아까 서점에서 첨 봤는데 그림이 참 좋더라고요.
언제 보내드릴 지는 알 수 없으니 재촉하지 마시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내가 네 힘이 되어주겠다" (출애굽 3,12)

========================================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수많은 말을 많이 들어왔고, 좋은 글도 많이 읽었지만 내가 힘들었던 어느 순간에 진실로 살아있는 말로 다가온 것은 성서의 저 말씀이었어요. 괜히 성서구절을 최고로 친다고 해서 골수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진 않겠지요? ^^;;

 

제가 좀 더 어렸을 때, 뭔가 책임을 맡아서 행사를 이끌어가기에는 많이 모자랐던(지금도 그렇지만요) 철없는 시절에 얼결에 주일학교 행사를 총책임졌던 적이 었었습니다. 다들 도와준다고 말은 하지만 책임을 맡아서 모든 걸 기획하고 총괄해야 하는 입장과 건들건들 놀다가 시키는 것만 하는 입장은 분명 틀리지요. 지금은 그나마 경험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런지 건들건들 하며 기획하기도 하지만 몇년 전 그때는 그게 너무도 힘들더라구요.

봉사자들도 나보다 나이가 많은데다 '봉사자'라는 개념때문인지 도무지 먼저 나서서 뭔가를 하는 역할이 아니라 '우린 시키는 것만 한다'는 태도가 너무 강했고,

나는 뙤약볕에 땀 뻘뻘 흘리며 필요물품 사러 돌아댕기고 무거운거 들고 성당에 헉헉대며 걸어가는데, 본인이 봉사자로 도와주겠다고 한 녀석은 알바때문에 택시타고 댕긴다며 택시비를 받아가고...

역할분담이 좀 있었으면 좋겠는데, 프로그램을 총 기획하고 예산까지 짜고 준비물품까지 챙기고 봉사자 챙기고... 어린 내게는 너무 큰 부담이었어요. 그래서 그게 점차 누적되면서 너무 힘들더라구요.

사무실에 출근해서도 전날의 그 힘들고 암담한 준비 과정때문에 밥도 안먹고 속상해하며 있을정도였지요. 그때 문득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당시 저는 통신으로 하는 신학교리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필요할 때 연락하라던 담당 채점자 신부님의 말이 떠올랐지요. 그래서 망설이다가 호출기번호를 꾹꾹 눌렀습니다. 그때 호출기에서 들려온 신부님의 말이 바로 "내가 네 힘이 되어주겠다"랍니다.

내가 네 힘이 되어주겠다.

나는 그 때, 하느님의 음성을 들은 것 같았다니까요(읔, 이거 또 골수 신앙인같은 발언인가? ^^;;).

어쨋든 그 말의 울림은 정말 대단했어요. 호출기에서 그 말을 듣고는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리고 사무실에서 속시원하게 울어버리고 그 담에 기운을 내어 행사를 무사히 끝냈던 것 같습니다. 내가 받은 최고의 위로이고 가장 큰 힘이 되어준 말이었지요.

그리고 사실... 말없이 뒤에서 잔일을 도맡아 해주신 어르신 선생님들이 계셨고, 한분은 내가 너무 힘들어보인다고 근무시간에 일부러 시간내서 몸보신 시켜준다고 점심 사주러 오시기까지 하셨었고, 봉사자들도 나름대로 피곤한 몸을 이끌고 매일같이 성당에 와서 율동배우고 준비물 점검하며 즐겁게 준비하려 했었고....

아마도 나는 나 혼자만 부당하게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맡았다고 생각을 했었나봐요.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그게 아니었네요.

=============================================

그래서 지금도 나는 내게 가장 크게 남는 말을 떠올리면 "내가 네 힘이 되어주겠다"는 말을 떠올립니다. 뭔가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 옳은 일을 행한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받게 될지 모르는 부당한 불이익이 두려워질 때, 세상에 혼자 버려진 것 처럼 힘들고 지쳐있을 때 이 말을 떠올려요.

그리고 또한 나 역시 그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친구가 되기 위해 노력을 합니다. 신앙인에게라면 하느님의 말씀으로 전하지만, 신앙인이 아니어도 상관없쟎아요. 친구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나는 삶의 가치를 느끼며 행복할 수 있는거고..... ㅎㅎ

또 사무실에서 눈치보며 쓰다보니 말이 꼬이는 것이 느껴져요! 히~ 하지만 뭘 말하고 싶은건지는 아시리라 믿어요. 제가 좀 신앙인인 척 티를 내더라도 이해해주시옵~ ^^


 

 


댓글(8)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물만두 2005-06-07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말씀 간직하고 있는 치카님도 대단하십니다^^

물만두 2005-06-07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또...

stella.K 2005-06-07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치카님, 뭉클 합니다요. 그 신부님 참 멋 있는데요!! 이렇게 나에게 힘이 되어주는 사람은 눈에 드러나지 않고 숨어 있는 것 같아요. 그죠?^^
고맙습니다. 참가해 주셔서.^^

chika 2005-06-07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헤~ 맞아요. 그 담부터 저도 힘을 기르고 있쟎아요. 아자앗~!! ^^

해적오리 2005-06-07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카 언니 , 아마 그때가 언니가 울집에 태영이 데리고 와서 부탁하던 그 때 맞지예?
이글 읽어가난 그때 어가라 해줄 걸 허는 생각이 들엄신게..
경해도 언닌 꿋꿋이 잘 사난 부러어 마시.
경허고 언니 보멍 경해도 신앙이랜 헌거에 대행 좀 다른 시각으로 봐지는 거 닮아.

해적오리 2005-06-07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추천도 해서예...퍼가기도 햄수다.

울보 2005-06-07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꽝하고,,갑니다/

chika 2005-06-07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엥? 태영이영 헐때는 와따 편하게 할때라난. 경허고 그때는 나도 경험이 많은 때주게. 나보단 태영이가 더 고생헌때고. 그보다 몇년 전이라난. 게난 생각해봐봐. 얼마나 어렸을때 해시크냐. 생각행보난...스물일곱 여덟살때쯤인거 닮아. 그때 죽도록 고생해난. 나름대로 배운것도 많고이. ^^
울보님/ 감사함다~ ^^
 
윤도현 - Difference [재발매]
윤도현 노래 / 유니버설(Universal) / 2005년 4월
품절


윤도현이 음반을 냈댄다. 밴드활동을 하는데다 얼마전에는 유럽 투어 콘서트를 한다고 했는데.. 혼자 음반을 냈다고?
난 자칭 윤도현밴드의 팬이다. 그냥 넘어갈 수 없지.
그래서 지금 나는 이 음반을 듣고 있다.
지금 나오는 노래는 뭐지?
아, '길'이구나.
"오- 가야할 길은 아직도 멀기만 하고
아픈 시간들 속에서 어떻게든 가야만해"

첫머리 노래는 '사랑했나봐'이다. 윤도현의 첫번째 앨범은 발라드로 분류됐었지? 아닌가? ^^a
가만.. 윤도현을 첨 알았던게 언제였지?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우연히 보게 된 '하드 락 까페'에서 였다.
연기...는 어설펐지만 노래는 참 좋았던 기억이 나는구나. 돈이없다는 친구녀석이 큰 맘 먹고 보여준 뮤지컬이었어. 그땐 몰랐지만 그 후 윤도현밴드의 앨범을 사면서 그때 노래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았다.
'먼훗날'이란 노래가 힛트를 치고 그가 발라드 가수인 줄 알고 음반을 샀던 애들이 영~ 실망이라는 얘길 할 때, 나는 오히려 윤도현밴드의 팬이 되었다. 그들은 락밴드였고 '이 땅에 살기 위하여'를 외치는 노래꾼들이었으니까.

그런데 2005년 윤도현은 솔로 음반을 냈다.
'타잔'을 부르던 윤도현의 모습일까? 아니, 사랑했나봐를 내세운 걸 보니, 첫번 음반의 '사랑' 분위기를 이어가는거 아닌가?
... 노래를 계속 듣는다. 목소리는 확실한 윤도현이군. 뭐야? 목소리는? 그럼 노래는 윤도현이 아니란 얘기야?
글쎄... DIFFERENCE?
그런 어려운 말 알게 뭔가! 왜 자꾸 십년도 더 된 음반 얘기만 꺼내려 하는거야! 아아아~ 하며 타잔 흉내를 내던 그때는 소박함의 미가 있었고, 십여년의 세월이 흘러 노래를 부르는 지금의 윤도현은 ..

그러니까 지금의 윤도현은 내 머리와 마음을 채우고 있는 그의 음악은 자신이 낼 수 있는 색채를 모두 뿜어내고 싶은 욕심을 한껏 부리고 있는 것이다.
흘려듣고 있어도 '아, 윤도현아냐?'라고 다시 들어보게 되는, 가만히 듣고 있으면 '어, 윤도현이야?'하게 되는 그런 윤도현의 음악이다.
자칭 팬인 나는 오늘 듣고 또 듣게 되겠지.
누가 뭐래도... 좋은 걸 어쩌냐고.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울보 2005-06-04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윤도현 왕펜이랍니다,,후후후
 

 대한민국사 2를 읽는 중입니다. 혹시라도 이 책을 읽으신 분은 그냥 페이퍼를 닫아주시고, 읽어보지 않았다면 좀 길지만 읽어보시길.

무단 전제하면 안된다고 했지만 이건 용서가 되겠죠?

진실을 마주한다는 것이 아픔일때가... 정말 슬픈거 같습니다.

 

================================================================

가슴 찢어지던 전화를 기억합니다.

베트남 전쟁에서의 민간인 학살 의혹이 한창 제기될 무렵, 저는 한 방송사 TV토론에 나간 적이 있었는데 그 때문에 김 상사님의 옛 정우들에게서 많은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런 전화의 대부분은 거친 전화였지만, 한 분의 전화만큼은 달랐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부모님께 송아지라도 한 마리 사드리려고 머나먼 남쪽 나라로 가는 배에 올랐는데, 돈 있고 백 있는 놈들은 다 빠지고 자기 같은 사람들만 어쩔 수 없이 가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고엽제 후유증에 시달리는데, 그런 자신이 용병이고 학살자냐고. 울음섞인 전화에 저의 가슴도 찢어졌습니다.

김상사님.

지난 3년 간 진실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진실은 귀중한 것이지만 진실과 마주선다는 것은 아주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점을 배웠습니다. 일본인들이 일본군의 성노예로 끌려간 위안부 할머니들의 존재를 인정하느 ㄴ것이 고통스러운 일인 것처럼, 미국인들이 노근리를 비롯한 한국전에서의 민간인 학살을 인정하는 것이 고통스러운 일인 것처럼, 우리가 베트남에서의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의 진실과 마주서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고통스러운 일을 우리는 지금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너무나 당혹스러운 진실을 마주하는 우리의 고통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죽임을 당한 사람들, 또는 사랑하는 가족들을 잃고 힘겨운 생을 살아내야 했던 생존자들의 고통에 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김상사님도 민간인 학살이라는 말에는 부르르 떨며 분노하셨지만, 김 상사님을 비롯한 파월 장병들이 베트남전에 개입한 것이 이제와 생각해보면 베트남 사람들에게 본의 아니게 큰 아픔을 주었다는 점은 동의 하셨쟎아요. 그런데 저는 베트남전으로 고통받은 사람들이 베트남에만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박정희의 정략적인 파병으로 한국사회에 군사독재가 강화되고, 우리 사회 전체가 하나의 병영이 되었다는 거창한 이야기는 접어두겠습니다. 그러나 착하디 착한 우리 남편이 월남 1년 갔다 오더니 영 딴사람이 되었다는 친구분 사모님의 말씀이나, 월남 갔다 온 뒤에는 내 눈에 너무 살기가 등등하다고 한동안 가족도 나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는 김상사님 말씀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미안함을 전하는 마음은 일차적으로는 우리가 피해를 준 사람들에게 사죄하는 것이지만, 꼭 피해자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한번도 전쟁의 상처를 치유한 적이 없이 전쟁을 정당화하고, '기념'해온 우리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제 저희 진실위원회에서는 베트남에 (가칭)평화역사기념관을 세우는 작업을 하려고 합니다. 평화역사관을 짓는 일은 저희가 심부름이야 하겠지만, 저희 진실위원회만으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또 그렇게 되어서도 안됩니다. 김 상사님, 김 상사님이 청춘의 가장 중요한 시기를 보낸 그 땅을 김 상사님을 모시고 한번 다녀왔으면 합니다. 김 상사님의 소중한 추억이 어린 곳이기도 하고, 또 김 상사님과 가족들의 고통의 뿌리가 내려 있기도 한 그곳, 그리고 김 상사님과 김 상사님의 옛 전우들, 아니 당신들을 그곳에 보낸 자들로 인해 엄청난 고통을 당해야 했던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을 김 상사님과 함께 다녀오고 싶습니다. 이것은 저만의 바람이 아니라 지난 일주일 제가 만난 모든 베트남 사람의 간절한 바람이기도 합니다.

고통이란 함께 나눌수록 가벼워지는 법입니다. 그것을 완전히 치유할 수는 없겠지만 당신과 서로 총을 겨누던 사람들이 3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서로 고통을 나누며 당신과 친구가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저희가 베트남에 가니까 역사의 진실을 찾는 사람들이 왔다고 호치민시의 역사학 교수 여러 분이 나와주셨습니다. 놀랍게도 그분들의 대부분은, 정말 옆집 아주머니처럼 생긴 역사박물관장님을 비롯해서 젊은 사람들만 빼놓고는 항미전쟁 기간에 총을 든 베트콩 출신이었습니다. 그분들은 아픈 역사로 만나 것도 인연이라며 어떤 이유로 만나든 인연을 더욱 소중히 발전시켜가고 싶어하십니다.

저희가 평화역사기념관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것은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가셨던 문명금, 김옥주 두 분 할머니께서 생전에 저희에게 수천만 원의 큰 돈을 남기고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두 분 할머니께서는 베트남에서 한국군에 의해 불행한 일을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정부의 생활보조금과 민간단체에서 모아 드린 귀한 돈을 전쟁으로 고통을 당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썼으면 한다고 저희게 보내신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쓰라리게 전쟁의 고통을 당하셨던 두 분 할머니께서 똑같이 전쟁의 고통을 당한 베트남의 이름 모를 사람들을 위해 당신들의 전 재산을 남기셨습니다. 고통의 연대, 고통받은 자들이 서로 아픔을 나누며 힘을 모을 때 고통은 가벼워지고, 또 다른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는 일도 막을 수 있습니다. 김 상사님, 평화 역사관 계획이 구체화되는 데로 곧 찾아뵙겠습니다.

2003년 1월 25일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산사춘 2005-09-13 0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전했던 울 아부지는 베트남전 이야기를 거의 피하는데,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인지
베트남에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고 가끔 말씀하시죠.
저도 읽고 아부지께 선물해 드려야 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