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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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혹시 이 책은 오베라는 사람이 벌이는 코믹극인걸까, 라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오베라는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이 "오베는 59세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변화되어가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노인의 삶을 그리고 있는 것일까, 싶기도 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오베라고 불리는 이 사람은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 모습이 너무 짠해보이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때로는 정말 죽음을 바라고 있는 것일까 의심스럽기도 하다. 가족도 없이 홀로 살아가면서 무뚝뚝한 성격에 원리원칙만 고집하고 한치의 오차도 없이 동네를 순찰하며 규정을 위반하는 차량을 정리하기까지 하는 오베의 모습은 정다운 이웃사촌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도 그 순간부터 오베라고 하는 그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나 자신이 그렇게 무뚝뚝하고 배타적이고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 오랜시간 나를 알고 지낸 사람들의 평에 의하면 선뜻 다가서기 힘들지만 한번 친하게 되면 '변함없다'는 느낌을 주는, 조금은 깊이있게 사귈 수 있는 친구라는 말을 듣곤 하는데다가 쓸데없는 잔정이 많아 매몰차게 거절을 잘 못하고 온갖것에 불평을 해대면서도 도움이 필요하면 해주곤 한다고 들었었기에 트러블메이커처럼 보이는 오베에 대해 알기 시작하면서부터 그가 좋아진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알게 되자 나와는 비교할수도 없을만큼 더 멋지고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의 이야기를 읽어갈수록 오베가 가진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이건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분명 직접 오베를 만나봐야 알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할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그저그런 느낌으로 밋밋하게 흘러가다가 - 솔직히 앞부분에서는 홀로 지내는 노인들의 슬픔과 고통, 괴로움...에 대한 글일까 싶기도 했고 나도 언젠가는 그렇게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좀 안좋았었는데,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오베의 이야기는 너무 유쾌했다. 금세 책장을 넘겨버리게 될만큼 재미있으면서 어느 순간 뭉클해져버려서 마지막에는 괜히 킁킁거리다가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분명 오베는 그러지 않기를 바랐을테지만.

 

"품위라는 건 어른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게 되는 권리라고 할 수 있었다. 스스로를 통제한다는 자부심. 올바르게 산다는 자부심. 어떤 길을 택하고 버려야 하는지 아는 것. 나사를 어떻게 돌리고 돌리지 말아야 하는지를 안다는 자부심. 오베와 루네 같은 남자들은 인간이 말로 떠드는 게 아니라 행동하는 존재였던 세대에서 온 사람들이었다."(371)

이것만으로는 부족한 표현이지만 오베가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조금은 알 수 있다.

오베는 자신만의 강점을 갖고 있고, 품위를 갖고 있었고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강인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상대가 7살짜리 꼬마라도 스스로 철칙을 지키고 있는 모습을 보면 존중할 줄 아는 성품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런 오베를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유쾌하면서도 너무나 감동적인 오베의 이야기는 오베만으로 그 빛을 발하는 게 아니어서 책을 다 읽을즈음 나는 그들이 살고 있는 그곳에 이웃으로 가고 싶다는 부러움이 생겼다. 내가 바로 오베같은, 파르바네 가족과 같은, 루네와 아니타, 지미... 그들과 같은 이웃이 되어줘야한다는 마음보다 그들의 이웃이 되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적인 마음이겠지?

가끔 나는 나 자신의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을 해보곤 한다. 오랫만에 연락이 오는 친구에게도 어제 만났던 사람을 대하는 것 처럼 편하게 대해준다는 이야기를 듣지만 평소 먼저 연락을 하거나 먼저 다가서지는 않는 성격이라 상대방이 연락해오지 않으면 나는 언제까지나 외톨이로 지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이 외롭다는 생각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이고 싶다는 생각은 간절하다. 그러니까 그게 말로만 떠드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존재가 되는 품위를 지니기 위해 조금은 달라진 생활을 해야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하고 있다. 어쩌면 이것이 오베를 만난 가장 큰 감동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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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리차드 브라우티건 지음, 김성곤 옮김 / 비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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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티비에서 캐나다에 대한 언급을 하면서 미국과 비교를 하는데, 원주민과의 전쟁을 통해 그들을 거주지에서 몰아내고 땅을 차지한 미국의 백인들과는 달리 캐나다에서는 서로 공존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서 다문화가 발전한 캐나다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다민족을 받아들인 미국은 닮은 듯 하지만 전혀 다른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를 떠올려본다. 이 책에 실려있는 '잔디밭의 복수'에서 저자 리차드 브라우티건은 '인간으로서의 최초의 기억'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인류'라고 거창하게 이야기할 것 까지는 없지만 왠지 그 모습은 인류의 등장으로 자연의 파괴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듯 했다. 우리의 오랜 역사는 '공존'이라기보다는 지배를 더 원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점철되어 있음을 증명하듯.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는 도대체 어떤 날을 의미하고 있는 것일까.

캘리포니아 해안의 규모와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제주에서는 이국적인 풍경의 바다를 바라보며 모래사장에 누워 - 때로는 야자수가 곁들여지기도 하는 그런 여름 풍경을 그리며 휴가를 즐길 수도 있다. 그런데 파도타기 좋은 곳으로 알려진, 중문 해수욕장의 멋진 모래사장 해안과 가까운 곳의 언덕이 무너져내릴뻔 했다는 뉴스가 며칠 전 방송을 탔다. 자연 풍경을 그대로 두지 못하고 자꾸만 인간들의 물질적인 이득을 위해 무엇인가를 건축하고 만들어내면서 큰 참사가 생겨날뻔 한 것이다. 그뿐인가. 온갖 곳에서 자연의 복수 - 복수라고 표현하고 싶지는 않지만 '잔디의 복수'가 떠올라서 - 가 이뤄지고 있다.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는 아마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저 멀리 잠녀들의 숨비소리가 들리고 그녀들이 물질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물질을 못하는 우리는 바닷가에서 돌멩이를 밟고 거닐며 보말을 따며 깔깔거리고 웃는 그 순간,과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짧은 단편들을 읽으며 솔직히 '응?'하는 느낌이 드는 글도 많았지만, 몇몇 작품에서는 그 작품이 품고 있는 의미가 진하게 다가오기도 해서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오랜 시간을 두고 한두편씩 읽어내려갔는데 지금은 잘 알 수 없는 작품도, 간혹 읽다가 다시 되돌아가 읽어보니 또 다른 느낌이었던 것처럼 또 다른 진한 느낌을 갖게 되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하게 되는 단편집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샌프란시스코 YMCA에 바치는 경의]이다. 일상을 '시'만을 바라보며 살아갈수는 없지만, 이름없는 시인들의 시로 가득한 멋진 변기를 마주하며 나도 화장실에서 보내게 되는 시간이 점차 많아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잠시 해보기도 하며 의미심장하게 글을 읽었다. 그러고 있으려니 요즘 문학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 떠올라 좀 찜찜해지기도 했지만 - 생태라는 것은 '자연'뿐만 아니라 인간세계의 어느 곳에나 순리를 거스르는 것은 너무나 많은 것을 망가뜨려버리고 만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조만간 다시 이 단편집을 꺼내들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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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07 17: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왜냐하면 그녀를 위해 싸우는 것이야말로 그가 이 세상에서 제대로 아는 유일한 것이었으니까.





이 책을 읽었다면 왜 이 밑줄에 감동을 받는지 알아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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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06 17: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06 17: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보물선 2015-07-06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긴 답변 감사해요. 두번째 숙소가 애월이라 필요할 것 같네요. 결정에 도움이 되었어요~

2015-07-07 1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일주일내내 집에 계시는 어머니를 위해 휠체어 끌고 슬금슬금 동네 마실을 다녀왔다. 집에 반찬 해 먹을 것이 없다는 걸 핑계로 시장까지 가기는 힘들고, 동네 마트에 가서 야채를 사기는 싫고... 버스 정류장에 좌판을 벌이고 집 텃밭에서 따 온 비상품들을 늘어놓고 파는 할머니가 있어서 동네 골목 앞쪽의 버스 정류장까지 갔었던 것이다.

가지 한무더기에 이천원. 거기에다가 담아주면서 두어개를 더 넣어주신다. 무 처럼 커다란 늙은 호박은 천원. 어머니가 가끔 물건을 사곤 해서 안면이 있는 할머니는 주섬주섬 팔려고 다듬어놓은 호박잎도 싸서 그냥 넣어주신다.

그냥 오기 섭섭했던 어머니는 옆에 앉아있던 할머니가 부추를 한뭉치 바구니에 넣어 둔 것을 보고 부침개나 해 먹을까? 하시길래, 에에에~ 했지만 - 흙이 묻어있고 너무 잘고 시들어보여서 부침개 해 먹기 귀찮다고 사지 말자는 듯이 말을 하다가 문득.

내가 이걸 안사면 오늘 할머니 수입은 0원일지도 모르고, 천원이면 할머니도 좋고 우리 어머니도 좋고 나는 덤으로 살은 찌겠지만 한끼니 부침개로 떼울 수 있는데...라는 생각에 바구니에 있던 부추를 몽땅 천원에 사들고 왔다. - 물론 나는 천원이 적은 돈이라 생각하지 않는, 그러니까 조금 무거운 짐이 있어도 버스타지 않고 버스비 천이백원을 아끼며 걸어서 집으로 가는 그런 사람이니만큼 천원 한 장 허투루 쓰지 않는 사람이라서 할머니에게 적선하듯이 천원어치 부추를 산 것은 절대 아니다.

집에 와서 부침개를 하려고 부추를 살펴보다가 할머니에게 내심 미안해져서 이런다.

씻어놓고보니 여린 부추는 싱싱하고 상한 것 없이 그대로 모두 잘 쓸 수 있는 상태였던것이다. 마트에 가면 그런 부추는 살 수도 없는데다 크고 질기기만 한 것이나 파는데. 아, 그러니까 역시 좌판의 야채를 얕잡아보면 안되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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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5-07-06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이천 살 때 대파를 좌판에서 사려는데 할머니가 한사코 그냥 가져라가고 주셨던 기억이 나요.

chika 2015-07-06 18:00   좋아요 0 | URL
분명 블랑카님의 이쁜 마음을 보셨던거예요 ^^

나와같다면 2015-07-06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좌판에 앉아있는 할머니 보면.. 마음이 짠하고.. 안좋아요.. 당신도 그런것 같네요..

chika 2015-07-07 17:40   좋아요 1 | URL
오래전에 다큐를 하나 봤는데 손주와 사는 할머니가, 일상용품은 지원을 받는데 손주가 좋아하는 과자를 사주기 위해서는 현금이 필요하다며 텃밭에 있는 것을 주섬주섬 싸들고 장터로 가시는 모습이 나왔었습니다.
자본제사회에서 `돈`의 위력은 여러곳에서 나타나지만 할머니에게도 절실한 것이 된다는 것을 느꼈었는데 그 후로 보따리를 풀어놓은 할머니를 보면 마음이 좀 그랬습니다.
 
로마의 일인자 1 - 1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1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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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일인자, 라고 하면 카이사르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까? 문득 내가 얼마나 로마에 대해 알고 있는가, 생각해보게 된다. 얼핏 떠오르는 이름들을 나열하면서 로마의 역사를 떠올려보려 하지만 쉽지 않네.

솔직히 로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읽기도 했고 가끔 일상생활에서 농담처럼 루비콘강을 건넜다라거나 브루투스 너마저!라는 말을 외쳐보기도 하지만 그 역사에 대해서 하나의 흐름을 꿰뚫고 있지는 못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로마의 일인자]는 팩션이다. '가시나무새'의 저자 콜린 매컬로가 쓴 소설이라는 것은 처음 알았다. 단지 '로마'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서, 그것도 다른 작품활동없이 오로지 이 책을 쓰기 위해 자료를 모으고 고증하는데 13년이 걸리고 시력을 잃어가며 완결을 했다는 이야기에 더 이상 알아볼 것도 없이 무작정 집어들어 읽기 시작했다. 그래서 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책을 펼쳐들기 전까지 나는 이 책이 역사에세이인 줄 알았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 너무 심취해있었던 탓일까? 조금은 '위대한 로마'에 대한 이야기에 빠져들 생각으로 책을 펼쳤는데 뜻밖에도 하나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속으로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한번쯤 들어보기만 했던 이름들이 쏟아져나오고 있지만 역사속에 등장하는 그들의 이름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살펴보려하지 않고 오로지 이야기에만 빠져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읽어가다가 문득 또 잠시 멈추게 되었다. 이 익숙한 이름들, 그러니까 내가 그저 카이사르, 마리우스, 술라라는 이름으로 어렴풋이 알고 있는 이들의 역사 속 의미에 대해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았는데 이 이야기에 심취되어 읽어나가는 것이 좋은것일까 싶어진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역사의 흐름을 아는 것이 이 책의 재미를 더해줄까, 아니면 조금은 무지한 상태에서 읽는 것이 더 흥미로울까, 문득 궁금해져버린 것이다.

 

팩션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아서 재미있다고 소문난 드라마도 잘 보지 않고 소설로는 더더구나 잘 접해보지 않았었기에 조금 더 고민이 되기는 했지만, 결론적으로 나 자신이 대략적인 흐름으로라도 역사적 사실은 알고 읽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역사적 사실도 중요하지만 이 이야기속에 담겨있는 의미는 '사실' 그 자체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역사에서도 그렇지만 로마의 공화정 말기에 권력의 중심부로 들어가기 위한 신진세력의 권모술수와 암투는 나의 상상을 초월하며 그 대서사의 막을 열고 있는 이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가 되어버리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지금으로서는 장엄한 대서사의 문이 이제 막 열리기 시작했으니 일단은 그 감동에만 빠져들어도 좋지 않겠는가, 라는 심정이다.

 

앞으로 계속 글을 읽어가다보면 그 느낌이 더 강렬해지겠지만 로마의 일인자는 정치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다방면에 있어서도 세세하게 그 가치를 발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13년간의 고증을 통해 그려낸 로마의 이야기라는 것에서 미리 짐작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세부적인 묘사에 있어서도 이야기의 흐름에 잘 녹아들어있어 그 웅장함을 은연중에 느끼게 된다.

기원전후 시대의 문화에 대해, 로마의 난잡한 문화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본 것이 많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의 식생활과 조금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성문화까지 일상의 이야기에 녹아들어 있는 글을 읽다보면 정말 그 당시의 로마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만 같다. 노예들의 생활과 빈민촌이라 할 수 있는 수브라의 묘사, 1년에 한 번 있는 축제를 통해 자유분방한 성생활을 즐기는것 뿐 아니라 주인과 노예의 역할이 바뀌는 풍습에 대한 묘사까지 읽다보면 미시사와 거시사가 총체적으로 집약된 '로마' 그 자체를 읽는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제 이 대서사의 서막을 열어가는 인물들이 역사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되는지에 대해 펼쳐지리라 생각하니 그 다음 이야기가 더 궁금해지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그려질 그 인물들의 행적속에서 특히 하나의 수단과 도구처럼 이용되고 있는 수동적인 여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이 펼쳐나가게 될 또 하나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고보니 어쩌면 이 책은 독자 각자의 관심사에 따라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부분이 다르지 않을까 싶어진다. 그만큼 많은 것을 아우르면서도 이야기가 전체적으로 짜임새있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놀라울뿐이다. 물론 그만큼 저자의 고증과 집필 작업이 대단하다는 것을 새삼 다시 느끼게 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책을 읽기전까지는 그래도 내게는 '로마인 이야기'가 너무 위대하게 남아있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건 비교의 대상은 아닌 것 같다. 둘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어서 참고삼아 꺼내보고 싶은 생각은 들지만 이제는 더이상 로마인 이야기가 최고라는 생각을 하지는 못하겠다. 

로마인 이야기를 읽고 난 후, 로마를 여행하게 되었을 때 까타꼼베 근처의 아피아 가도에서 양말을 벗어들고 그 위에 서 있어보는 영광을 누린 것으로 만족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로마의 일인자를 읽으면서 어떤 열망을 갖게 될지 나 자신이 더 궁금해지고있다. 그런만큼 이 대장정의 처음부터 함께 하여 끝까지, 로마의 한 시대를 읽는 즐거운 독서를 할 수 있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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