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인간은 최악의 고통에서만이 진실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배고픈 사람이,추운 사람이, 질병의 아픔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이, 결코 점잖을수도 없고, 성스러울 수도 없고, 거룩할 수도, 인자할 수도, 위엄이나 용기를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자유를 찾는 자는 제 목에 오랏줄이 감긴 그 사람뿐입니다. 그것을 깨닫는 사람은 심신의 고통을 지금 맛보고 있는 그 사람뿐입니다. 가장 절실한 인간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위대한 장군이나 성직자가 아닙니다. 지금 배고픈 사람, 지금 추위에 얼어죽어가는 사람, 지금 병으로 괴로워 몸부림치고 있는 사람, 온갖 괴로움 속에 허덕이는 사람만이 진실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밤을 사람들은 각양각색으로 새우고 있을 것입니다. 밤은 평안을 위해 있느 ㄴ것이 아니라 인간의 수치와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고통의 시간이기도 한 것입니다.

선생님, 자신을 속이지 말고, 정직하게 앞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선과 악의 기준을 마음대로 정하지 맙시다. 어떠한 구실로도 인간을 구속하는 정치나 도덕을 과감히 쳐부실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만이 가장 착하게 살 수 있습니다. 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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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15-07-27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곳 요양원에서 제가 가장 깊이 느낀 것은 인간은 누구나 다 한형제라는것을 재확인했씁니다. 한솥의 밥을 먹으며 함께 자고 일어나는 환자들의생활이야말로 그대로 공동체입니다. 우리가 자연을 보호하는길, 그리고 인간이 고루고루 잘 살려면, 많이 벌어 남을 돕는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이 적게 가지는 길이 가장 현명한 짓이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앉아서 함께 먹는 식탁은 네 사람입니다. 한가운데 놓인 반찬을 서로 아끼면서 먹다 보면 언제나 남게 마련입니다. 그렇게 남는 반찬은 똘래라는 개가 먹습니다. 필요 이외의 것은 절대 가지지 않을 때,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이 없어질 것입니다.
과잉생산이란 과잉 소유욕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지, 절대 고루고루 잘 살기 위한 방법이 아닙니다. 인간이 도대체 `생산`을 한다는 것이 잘못된 말일 것입니다. 생산은 어디까지나 자연이 만들어 낸 소산이며 인간은 다만 수확을 하는 것뿐입니다. 이 수확의 공정성에서 벗어나 많이 갖게 되면 그것은 도둑이며 강도가 되는 것입니다. 도대체 많이 가져도 된다는 권리는 누가 베풀어 준 것입니까? 하느님이 이 지구를 한자리에 고정시키기 않고 움직여 돌게 한 것은 고루고루 가지게 하기 위한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었습니다.
...... 생산이라는 것, 소유라는 것, 그리고 내 것을 나눠 준다는 자선이란 말들이 쓸데없는 빈말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으면서 그것을 정당화하면서 살아온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가진 것을 `준다고` 하지 말고, `되돌려 준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생산한다는 말은 아예 버리고`받는다`는 말이 옿겠지요.
인간의 고통은 인간 스스로가 만든 것이지 하느님의 잘못은 절대 아닙니다. 188





 
나쓰미의 반딧불이 - 우리가 함께한 여름날의 추억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이덴슬리벨 / 201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었다. 더구나 오늘은 시원한 바람 한 점 없이 뜨거운 햇살만 기세등등하여 온 몸을 녹초로 만들어버리는 그런 날이었다. 한낮에 슬며시 들어오는 바람은 오히려 기운이 더 빠져버리는 뜨거운 것이었고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흘러나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드러누워만 있게 된다. 그래서 평소에도 그러하긴 하지만 오늘은 더 꼼짝하지 않고 드러누워 책을 읽고만 있었다. 아니, 만일 다른 책을 집어들었다면 길게 읽기도 전에 낮잠을 자거나 티비보기에 집중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오늘 내가 읽은 책은 정말 '여름 날'에 딱 어울리는 [나쓰미의 반딧불이]였기때문에 술술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우리집은 뒷편에 하천이 있어서 여름만 되면 개구리 울음소리를 자장가처럼 들을 수 있다. 물론 여름이 채 지나가기 전에 시원한 바람과 함께 시끄럽게 울리는 귀뚜라미 소리도 이제는 정겹게 들린다. 여름이면 마당에 나가앉아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며 시원한 바람에 실려오는 기분이 좋아지는 추억을 떠올릴 수도 있다. 여름날의 무더위와 짜증이 아닌 이런 자연의 멋스러움을 떠올리면 한없이 기분이 좋아지기만 한다.

내게 [나쓰미의 반딧불이]는 그런 느낌을 갖게하는 이야기책이다. 이야기는 사카키야마 운게쓰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아이바 싱고와 가와이 나쓰미의 시각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어지고 있는데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들의 이야기가 가장 잘 표현되는 시점의 변화여서 감동이 더욱 커지게 된다.

 

우연히 마주친 시골의 잡화점, 그곳에서 여름의 반딧불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사진을 전공하는 싱고는 여자친구 나쓰미와 함께 그 곳 다케야에서 여름을 보내기로 한다. 다케야에는 야스 할머니와 몸이 불편한 아들, 이름보다는 지장보살님같다고 해서 지장할아버지라고 불리는 겐조 모자가 살고 있다. 이웃에 사는 꼬마 다쿠야와 히토미가 그곳에 웃음을 주고 있고 퉁명스럽기는 하지만 마음을 써주며 정을 주고 있는 불사 운게쓰까지, 시골 마을의 정취와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여름날의 추억이 가득 떠오르게 하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반딧불이와 불꽃놀이, 개울에서의 낚시와 같은 즐거움 가득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있으면서 또 그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아픔과 고통을 잊지 않고 펼쳐놓고 있다.

우연히 만나게 되어 인연을 맺게 된 이들에 대한 깊은 감사와 사랑은, 그들 모두가 각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서로를 위하고 있고 그런 모습에 감동하게 된다. 특히 지장할아버지가 떠나시기 전 마지막 모습을 야스 할머니에게 꼭 보여주고 싶어 한 나쓰미의 마음은 ......

"애초에 정답은 없다. 인생의 모든 분기점에서 조금이라도 나은 방향을 선택할 수 밖에...... 그것이 성실한 삶을 사는 최선의 방식이 아닐까?"(166) 라는 말의 의미를 더 깊게 해주고 있다.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에도.

 

반딧불이를 본것이 언제적이었나... 떠올려본다. 기억도 나지 않을만큼 오래전이었구나, 생각하니 많은 것들이 아쉬워진다. 한여름의 무더위를 피해 가까운 숲속 공원에 가서 시원한 나무 그늘에 앉아 더위를 식히던, 가족과 함께 한 여름날의 추억이라도 더 많이,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여름 밤의 별과 달빛에 실어 보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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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편견
손홍규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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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이 필요한 시절이다. 아름답고 올바른 편견이 절실한 시절이다. 해서 나는 편견을 사랑한다" (287)

 

"다정한 편견"이라는 제목을 듣고는 바로 생겨버린 편견으로 이 책은 왠지 내 맘에 들 것 같아,라는 생각을 했더랬다. 다정한 편견이라니, 작가의 글에서 알 수 있는 '편견'에 대한 이야기를 읽지 않더라도 그가 이야기하는 편견이 무엇인지를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뜻밖에 이 글들은 그의 편협한 세상 경험과 자신의 이야기로 가득차 있음에도 때로는 나의 모습을 보는 듯 했고, 내 친구의 이야기라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했다. 그러고보니 책을 다 읽고 난 후, 내게는 오직 '다정함'만이 남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 대한 이야기는 이 이상 길게 쓰지 못하겠다. 짧은 글이지만 하나의 단편 소설처럼 이야기의 기승전결이 눈앞에 펼쳐지기도 하고, 그 이야기의 뒷 이야기와 나 자신의 이야기가 서로 섞여들어가면서 더 풍성한 이야기를 느끼게 되기도 하는데 이걸 말로 설명할수가 없는 것이다. 화려한 미사여구가 마음을 사로잡는 글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자꾸만 이 책에 담겨있는 이야기들을 손으로 옮겨적어 넣고 싶어진다. 간결함 안에 이토록 많은 이야기와 감성을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해 자꾸만 그러고 싶어진다. 아니, 신형철 평론가의 이야기처럼 손홍규 작가는 "짧은 글에 최선을 다 했기 때문"임을 본능적으로 알아 챈 것이라고 믿는다.

글을 읽고 돌아서면 그 내용이 가물가물해지고 있는 내 기억력을 탓하며 책을 읽어나가고 있는데도 신 평론가가 베스트라고 언급한 그 글들이 제목만 보고도 어떤 내용인지를 떠올릴 수 있는 내가 처음엔 신기했지만, 그만큼 이 짧은 글 속에 글의 제목과 그 내용에 담겨있는 강렬한 울림이 크고 깊었기 때문이리라 생각하니 이제는 너무도 당연하게 느껴진다.

 

오랜 친구를 만나게 되었을 때 별다른 표현은 하지 않아도 친구의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손을 번쩍 올리게 된다거나, 무더운 여름날 짜장이 아니라 비빔면을 끓여서 찬물에 헹구다가 문득 작가의 비빔짜장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라 슬며시 웃게 되기도 하고, 아버지와의 추억과 어머니의 이야기에는 나 자신의 이야기까지 더해서 그 느낌을 두배, 세배로 더 강하게 느끼게 되고... 그런데 왜 어른들은 라면을 먹을 때 꼭 계란을 넣어야 한다고 말씀을 하셨을까? 그 말을 너무 많이 들었던 탓인지 계란을 풀어놓지 않은 순수 라면국물의 맛을 느끼고 싶다가도 면이 다 끓을 때쯤이면 나도 모르게 계란을 풀어놓게 된다. 학생들에게, 친구들에게 유난히 칭찬을 잘 하셨던 아버지는 유독 내게는 그 칭찬이 인색하셨다고만 기억하고 있는데, 다정한 편견을 가만히 손에 들고 뒤적거리고 있으려니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다. 겨울이면 꿀에 절인 홍삼을 드시는 아버지가 급한 성격대로 냉장고에서 꺼내어 차갑게 굳은 것을 바로 녹이느라 뜨거운 물이 식어버린 차를 드시는 것을 보고 내가 먼저 차게 굳은 것을 녹인 후 뜨거운 물을 부어 따뜻하게 해서 드리니 무척 좋아하셨던 기억, 좀체로 뭔가를 부탁하지 않고 직접 하시는 아버지가 그 후로 '네가 하면 따뜻하게 마실 수 있다'하시며 차를 끓여달라고 하셨던 그 기억에 마음이 좋아진다.

다정한 편견을 읽는 것은 그러한 소소하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을 꺼내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추억에 대한 이야기가 지나고 세상살이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뭐든지 잘 까먹는 나에게도 잊을 수 없는 수많은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는 다정한 편견을 읽는 것은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것들을 다시 떠올리며 지금 이 생에서 이뤄야 하는 것들에 대한 다짐을 하게 하는 것이다. 강정마을 구럼비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는 다정한 편견을 읽는다는 것은 구럼비가 파괴되던 날 터져나온 많은 이들의 통곡같은 울음을 기억하고 다시는 그런 만행이 되풀이 되지 않게 해야겠다는 결의를 다지는 것이다.

 

길게 이야기할수록 '다정한 편견'의 짧고 굵은 울림이 줄어드는 것만 같아 이제 정말 그만해야할 것 같다. 이제는 '다정함'만이 남았다고 했는데 그 다정함 안에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는 것은, 그의 글을 읽어 본 사람들은 모두 알아챘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름답고 올바른 편견, 그 화수분같은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으니 나는 '다정한 편견'을 아주 많이 좋아할수밖에 없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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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15-07-25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초에 정답은 없다. 인생의 모든 분기점에서 조금이라도 나은 방향을 선택할 수 밖에...... 그것이 성실한 삶을 사는 최선의 방식이 아닐까? 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