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법칙은 유연해서 폐지하거나 재검토할 수 있다.

하지만 기하학의 법칙은 그렇지 않다. 여기에는 자유재량권이라는 것이 없다.

하지만 이는 나쁜일이 아니다.

제약은 창의성을 낳는다. 도형이 무엇을 할 수 없는지 말해주는 법칙은 도형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사례 연구와 한 꾸러미로 온다. 튼튼한 건물에서 시작해 쓸모있는 종이, 행성을 파괴하는 우주정거장까지 다양한 디자인 프로젝트에서 기하학은 제한을 가하는 동시에 영감을 불어넣어 준다.
따라서 ˝무엇이든 가능해!˝라는 생각은 잊어버리자. 이것은 어린아이들에게 들려주는 동화처럼 아주 달콤하지만 사실은 말이 안되는 이야기다. 현실은 그보다 더 가혹하고, 그래서 더욱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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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데이 (대형 지도 + 할인쿠폰 증정) - 2020-2021년 전면 개정판 Terra's Day Series 1
전혜진.윤도영.박기남 지음 / TERRA(테라출판사) / 202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여행을 가지 못하는 마음은 여행에세이가 아니라 여행실용서를 보면서 여행계획을 세워보는 시간에 대한 욕심을 내게 한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가보고 싶은 곳은 - 물론 넘쳐나도록 많은 곳이 있지만 그래도 나름 많은 도시를 가 봤고 첫번째 유럽여행의 도착지였던 로마,  서울을 빼고 가장 많이 가봤던 도시 로마, 베드로 대성전뿐만 아니라 차를 타고 지나쳐가기만 했었던 라테라노 대성당과 그 옆에 있는 성녀 헬레나의 성십자가 성당에서 십자가의 길도 했었던 로마를 시작으로 이탈리아의 움브리아 평원을 지나 남쪽으로 가거나 북쪽으로 올라가 유럽이 국경 아닌 국경의 경계선을 넘어 다른 도시로의 여행을 꿈꿔볼 수 있는 이 책을 다시 펼쳐들고 싶었다.

이탈리아데이를 보면서 예전의 여행을 정리해볼수도 있고 그당시 보수공사로 들어가보지 못한 성모마리아 마조레 성당을 가보고 싶은 마음을 담아 여행 계획을 세우는 것은 지금 현재로서는 비현실적이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가리라 생각해서 현실적인 여행 계획을 세워볼 수도 있는 것이다.

 

이탈리아데이는 실용여행서의 가장 기본을 알려주고 있는 책이란 생각이 든다. 자유여행을 하거나 패키지 여행을 하거나 기본적으로 필요한 준비물과 주의 사항은 동일하니 그런 기본적인 내용부터 시작해서 이탈리아 각 도시의 특징들을 설명해주고 있다. 지도는 물론 각 도시를 잇는 기차표를 구매하기 위한 장단점 비교와 예매사이트의 화면예시도 있다. 기본적인 내용에는 이탈리아의 음식도 포함되어 있으며 우리에게 생소한 이탈리아어의 의미 - 기본적인 실용회화를 포함해 - 를 알려주고 미술관을 소개하는 부분에서는 그곳의 대표적인 작품 해설도 같이 들어있다.

대부분의 여행 실용서는 실제 여행을 준비할 때 필요한 부분들이 많이 담겨있는데 확실히 테라의 데이시리즈는 여행지의 먹거리와 기념품들을 포함한 그 지역의 문화에 대한 설명이 세밀하게 담겨있어서 여행 전 준비로도 부족함이 없다. 어쩌면 지금의 내게 언젠가 떠날 여행계획을 세우기에는 딱 맞춤형인 여행서일지도.

 

이미 가본적이 있는 도시, 로마나 아씨시 등의 도시에 대해서는 관광지가 아닌 곳에 대한 기억이 있어서인지 조금 더 많은 정보가 있으면 하는 느낌이었는데 내가 가보지 못한 도시에 대한 이야기는 그저 모든 것이 다 마음설레는 풍경들이고 음식들이다. 가 봤던 도시지만 보지 못한 장소들, 어쩌면 좀 어이없어 보일지 모르겠지만 로마의 성모마리아 마조레도 그렇고 아씨시에서 수바시오산 꼭대기에서 아씨시의 전경을 보느라 시간에 늦어 정작 핵심인 성프란체스코 성당 안에 들어가보지 못했고 피렌체에서는 십년을 넘게 기대하던 우피치 미술관 입성을 못했다. 저마다 다 이유가 있었고 아쉬웠는데 이번에 이탈리아데이를 보면서 새삼 그곳에 가보기 위한 여행 계획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성프란체스코 성당에는 조토의 프레스코화가 유명하다는 이야기만 들었었는데 이 책에는 프레스코 벽화의 순서와 의미가 적혀있으니 미리 기억을 하고 실제 그림을 보면서 아는 척(!)을 해 볼 생각도 해 보면서, 이탈리아 여행의 그날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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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chika > 나랑 똑같네. 아니 어쩜 우리 모두랑.

14년전의 이야기가 지금과 똑같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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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가은 결코 이럭 모습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사연이 어떻건 그윈플렌은 경탄할 만한 성공작이었다. 그는 인간의 슬픔에 대한 신의 가호가 내린 하늘의 선물과 같았다. 어턴 가호일까? 신의 가호가 있듯 악마의 가호도 있던가? 질문만 제기하고 답은 하지 않겠다. 452








사람들의 인상은 의식과 일상으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인상은 신비하게 깎아낸 무수한 삶의 결과이다.그윈플렌이 본 얼굴 주름 중 고통, 노여움, 모욕감, 절망감으로 파이지 않은 것은 없었다. 어떤 아이들의 입은 한동안 먹지 못한 흔적이 역력했다. 어떤 남자는 아버지였고, 어떤 여자는 어머니였으며, 그들 뒤에는 파멸해가는 가족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 얼굴은 못된 습관에서 나와서 범죄로 들어서고 있는 얼굴이었다. 굳이 왜 그렇게 된 것인지 알아야 한다면 그것은 무지와 가난 때문이었다. 그들은 얼굴에는 사회적 압박에 의해 삭제되어 증오로 변해 버린 선의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한 노파의 이마에서는 굶주림이 선명하고, 어느 처녀의 이마 위에서는 매춘이 음산하게 드러났다. 어린 시절의 얼굴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소녀에게도 역시 음울함 뿐이었다. 이 무리들 속에는 무수한 팔만 있을뿐 연장은 존재하지 않았다. 일꾼들은 더 나은 것을 요구하지도 않았지만, 일거리가 없었다. 가끔은 군인 하나가 노동자 곁에 와 앉았다. 가끔은 부상당한 병사였다. 그리하여 그윈플렌은이 광경, 전쟁이라는 유령을 보았다. 한쪽에서는 실업, 다른 쪽에서는 착취, 그리고 또 다른 쪽에서는 노예를 보았다. 몇몇 얼굴에서는 무엇인지 형언하기 어려운 인간이 짐승으로 돌아가는 퇴행 현상을 보았다. 인간이 짐승으로 퇴행하는 것은 높은사람들의 행복이 만들어 내는 막연한 무게의 압박으로 인해 아래에서 생겨나는 것이었다. 이 암흑 속에서, 그윈플렌에게는 빛이 들어오는 환기창 하나가 있었다. 그와 데아 두 사람은 고통의 날 속에서도 얼마간의 행복을 누렸다. 그것 말고는 모든 것이 저주였다. 그윈플렌은 자신의 위에서 권력자와, 부자들과,
멋있고, 위대한 사람들, 우연의 선택을 받은 자들이 무의식적으로 짓밟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는 가진 것 없는 불우한 사람들의 창백한 얼굴 한 무더기를 구별해냈다. 520-521

만약 당신의 치료를 받은 환자가 죽는다면 당신은 사형을 당할 것이오.
만약 병이 치유되면요?
그 경우, 당신을 사형에 처할 것이오.
사람이 죽으면 당신의 어리석음을 처벌하고, 사람이 치유되면 당신의 오만함을 처벌하는 것이오. 두 경우 모두 교수형이 마땅하오. 593


운명은 간혹 우리에게 광기 한 잔을 주며 마실 것을 권한다. 손 하나가 구름 속에서 나와서 알 수 없는 취기로 가득 찬 잔을 우리에게 불쑥 건네는 것이다. 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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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지나간 후
상드린 콜레트 지음, 이세진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책을 읽기 전에는 소설로 읽는 철학의 문제일까 싶었다. 쓰나미같은 파도가 밀려오고 점점 물에 잠기는 집을 떠나 안전한 곳으로 가기 위해 탈출을 해야하는 가족이 있다. 11명의 가족이 타기에는 배가 작아 8명은 배를 타고 떠날 수 있지만 나머지 3명은 남아있어야 한다. 과연 가족에게 강요된 선택은 무엇일까?

어떤 결정이 되었든 또 다른 여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는 이 상황에서 소설은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궁금했다. 그런데 이야기는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갔고 이 가족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궁금해 책을 손에서 놓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긴장감과 긴박함, 스릴이 넘쳐나는 가족의 앞날은, 지금 전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코로나19 전염병으로 인한 불안감과 겹쳐서 그런지 지구의 미래에 닥쳐올지 모르는 쓰나미 이후의 세계를 미리 보여주고 있는 듯 해 더 마음 졸이며 읽었다.

 

어느날 갑자기, 아니 실상은 언제나 그렇듯 세상경험 많은 이들의 눈에는 보였던 자연의 징조들은 무시되었고 괜찮다는 말만 믿고 있던 상태에서 갑자기 쓰나미가 밀려왔고 가장 높은 언덕에 있는 마디와 파타네 집만 남기고 모두 물에 잠겨버렸다. 시간이 지나면 물이 빠지기 시작하겠지, 라는 생각으로 기다리며 생활에 적응해보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물이 빠지기는 커녕 오히려 점점 수위가 높아져 아직 물에 잠기지 않은 집마저 침수될 위기에 처해있다.

마디의 가족 11명이 집을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자그마한 배 한 척, 그러나 배에는 8명 이상 탈 수 있는 공간이 없다. 물의 수위는 점차 차올라 선택의 여지가 없는 그들에게 결단은 강요되고... 결국 세 아이를 남겨두고 부모는 배를 타고 떠나버린다. 집에 남겨진 세 아이는 ... 우연찮게도 한 방에서 잠을 자는 중간의 아이들이다. 의외로 부모의 결정은 쉬워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며 아이들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유예를 했을 뿐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자식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어미가 도대체 뭔가. 그녀는 지금까지 파타의 무모함을, 어리석은 희망을, 말이 안되는 시도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나 로테를 잃어버린 사람은 다름아닌 자신이었다. 그녀의 실책이었고, 그녀가 초래한 비극이었다. 왜 하필 로테일까? 언덕 위 집에 남겨진 아이들이 그랬듯이, 이번에도 이유 따위는 없었다. 우연을 어쩌겠는가. 사무치는 슬픔을 어쩌겠는가.(178)

 

이야기는 남겨진 아이들의 생활과 떠난 가족의 이야기가 그려지는 것으로 이어진다. 집에 남겨진 아이들에게도, 떠난 이들에게도 첫날은 견딜 수 있을만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각자의 고통과 위험이 시시각각 다가오게 되고...

그 나날들의 묘사가 세세하고 긴장감 넘치는 공포감을 주고 있어서 글을 읽는 내내 마음을 놓을수가 없었다. 소설은 끝을 향해가고 있는데 도무지 이 이야기의 끝은 없는 것 같았다. 아니, 사실 이들 이야기의 끝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라거나 그들앞에 망망대해만 펼쳐졌다, 라는 것일까봐 더 두려웠다는 것이 맞을것이다.

 

독자의 마음을 알아주는 듯 한박자 쉬어가지만 이야기는 끝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우리는 짐승과 다를 바 없어"라는 탄식이 과연 그들만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는가.

긴장감 넘치는 가족의 고통과 시련에 공포감이 더하며 이야기를 따라가기 급한 독서였는데 다시 곱씹어볼수록 생각해볼거리가 너무 많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선택에 대해 옳다, 그르다 라는 판단이 아니라 우리에게 선택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최선은 무엇일까, 끝까지 포기해서는 안되는 가치는 무엇일까 ... 정말 깊은 생각에 빠져들게 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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