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우리 신화 - 우리 신들의 귀환을 위한 이야기 열두 마당
신동흔 지음 / 한겨레출판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분명 처음 접하는 내용은 아니다. 어디선가 들었던 내용들, 귀에 익숙한 이름들. 한편으로는 한여름밤 무서움에 떨면서도 이상하게 재밌어하며 지켜보던 전설의 고향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지루하고 졸린 수업시간에 우리의 시선을 잡아두기 위해 술술 풀어주던 선생님의 옛날 이야기 같기도 하고...그래, 분명 많은 부분들이 수업시간에 듣던 옛날 이야기들이 맞은거 같애.

신부님께서 미사 강론시간에 뜬금없이 '제주도에 (잡)신이 얼마나 되는지 아는사람?' 하셨었다. 음... 한 오백여개 되나? 하고 있는데 ... 삼만이 넘는다던가? 몇달전에 들은 얘기를 어찌 기억하겠냐. 정확하지 않은 얘기는 이쯤에서 그만두고. 하여튼 뭔놈의 조상신과 잡신들이 그렇게 많은지. 온갖 신이 다 있는데다가 당집은 또 왜그리 많았을까. 내가 다녔던 중학교 터 역시 당집이 있던 곳이었다. 교가에도 나온다. 서운당~  ㅋㅋ(그런데 나는 그걸 학당의 이름으로 알았었다. 아무리 중학교 1학년 꼬맹이였다 해도 그리알고 교가를 불렀었다니 너무 단순한거 아니었나? ㅡ.ㅡ)

어쨋든우리의 많은 귀신들을 보면서 왜 이리 많냐고 투덜대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으며 '뭔놈의 신이 그렇게 많냐'라는 생각을 해 봤을까? 어릴적부터 양놈들의 귀신은 신화라면서 줄기차게 읽어제끼고 이름을 외워대면서 누가 어떻고 이것의 유래는 어떻고... 사실 그들의 신화이야기는 그저 방탕한 제우스로 인해 생겨난 수많은 자식들의 이야기와 신들의 시기, 질투, 탐욕...기타등등. 머..그런 얘기들이었지 않나?

 

그럼 우리 신은 어떤가.

서양의 귀신들처럼 심심풀이로 내기를 하거나 인간하고 겨루거나 인간을 질투하는 그런 쫌스런 신이 아니다. 이승세계와 저승세계의 구분이 있는 것처럼 인간과 신의 구분이 있지만 결국에 가서는 인간이 죽어 조상신으로 모셔지고 부모를 위해 제 목숨을 버리고 원수를 갚더라도 상대방을 완전히 매장시켜버리는 행위는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이야기들에서 인간 삶의 존재와 죽음에 대한 지혜와 삶의 방식이 담겨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더구나! 우리 조상신들은 우리를 위해 제 목숨을 바친분들이 많다!

이 책에는 양이목사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러한 일화가 또 엄청나게 많지 않은가. 그 유명한 김녕사굴에 얽힌 김녕사또의 이야기는 어릴때부터 얼마나 많이 들어왔는지.

바리데기, 자청비 이야기만이 아니라 옛날 이야기처럼 친숙하게 들어왔던 영등할망 이야기도 곰곰이 짚어보면 섬사람들에게 중요한 고기잡이를 위해 풍랑과 날씨를 알게 해주는 삶의 지혜가 담긴 이야기 아닌가.

이제 우리의 신화이야기를 읽자. 그 속에서 우리 조상들의 삶의 지혜를 읽도록 하자. 시험에 찌들리고 더운 여름날에도 교실에서 땀 삐질거리며 수업을 받아야 했던 우리들에게 숨통 트이게 해주었던 선생님의 구수한 옛 이야기에서 살아나는 우리들의 신화이야기를 이제 우리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들려주도록 하자. 정말 멋진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제 미의 여신이라고 하면 아르테미스를 먼저 떠올리지 말자. 사과 하나 차지하려고 전쟁을 일으키고, 용서가 없는 냉혹한 서양의 귀신이 아니라 자신을 버린 부모를 위해 서역만리 저승까지 기나긴 여행을 하고 돌아온 우리의 어여쁜 누이 바리데기를 떠올리자. 바리데기야말로 진정 우리의 누이같은 아름다운 여신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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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05-05-21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끄적이는 동안 컴이 네번이나 꺼졌다. 그래도 꿋꿋하게 올린다.
누가 우리의 신화 이야기를 풀어내는 걸 막을 수 있단 말인가. ㅡㅡ^

하이드 2005-05-21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해요! 최고요, 치카님! 그런의미에서 추천꾹

chika 2005-05-21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노력을 알아주시는군요!! 고마워요~
(실은..우리 신화이야기 리뷰가 아니었으면 컴을 부숴버렸을지도 몰라요. ㅡ.ㅡ)

진주 2005-05-21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알라딘이 시원찮은가봐요. 저도 몇 번 다운되었어요.
우리 막내 여동생도 자기를 늘 바리데기 공주라고 해요. 우리 민담이 참 정겨워요.

하루(春) 2005-05-22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hika님 리뷰 보니까 얼른 읽어야 겠어요. 지금 읽고 있는 책 다음 다음으로 읽을게요. ^^

chika 2005-05-22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정말 저는 어디선가 한번쯤은 재밌게 들었던 이야기들이 많았어요. ^^
특히 바리데기는... 박재동님이 애니로 만든다고 해서 얼마나 기대했는데요.... 빨리 우리 바리데기 애니를 볼 수 있는 날이 왔음 좋겠어요.

마냐 2005-05-23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 컴이 안 부셔져서 다행. 바리데기 애니는 언제 나오긴 나온답니까....넘 오래 끄시네..쩝.

chika 2005-05-23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바리데기 애니 엄청 기대중이었는데... 보류되다 이젠 소식마저 끊겨버린거 같아요. ㅠ.ㅠ
 
환월루기담 - 단편
이마 이치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4년 11월
절판


그 옛날...
한없이 개화 초창기에 가까운 어느 시대...,
두뇌, 신체능력, 외양 모두 웬만큼 되고... 뭘 시켜도 평균은 하는데...
달리 말하면 뭘 시켜도 엄벙덤벙이고... 재주가 빈곤하며 무엇보다 큰 문제는....
하고 싶은게 암~것도 없어...-15-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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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05-05-21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로 쓰기엔 조금.. 그래서.
여기 표현된 그는 된장집 아들이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된장집 주인이 된 그. 아무것도 하고 싶은게 없는 그가 환월루에서 겪는 기담.
솔직히 전개과정에서는 전혀 이해가 안되는 것들이 많았다. 결론을 보고 나서, 그러니까 한번 다 읽고 나서 다시 찬찬히 되돌아가 읽어보면 그 생략되어 보이는 전개과정이 보인다.
어쨋든 이마 이치코... 뭔가 기묘하게 잡아끄는 매력이 있는 작가이긴하다.

하이드 2005-05-21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풉. 뭘 시켜도 잘해. 라고 나올줄 알았는데, 반전이군요!

chika 2005-05-21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이거 숨은아이님에게 책 받고 차 안에서 펼쳐보다가 웃는 바람에... ㅡ.ㅡ
정말 인상깊더라니까요~ ㅋ
 


내가 조금씩 변해간 건, 사랑받고 있다는 걸 느끼면서였던 거 같아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하느님은 나를 사랑하셨다, 라는 말을 내 가족, 친구들을 통해 느끼게 되면서부터요.

그것이 내 삶의 기쁨이 되는거 같네요.

 

뭔가를 끄집어 내어 길다랗게 글을 쓰다가 ... 지워버렸어요.

(어라, 벌써 하루를 넘겨버리고 있는 시간이네. ㅡㅡ;)

그래요... 아마도 내 안에는 '좌절'이라는 체험이 강하지 않은가봐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건 아마도 세상을 향해 도전하고 한걸음을 내딛는 걸 두려워해서인지도 몰라요.

나는 그렇게 자신감없고 내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만한 패기도 없는 우울한 존재라는 강박관념에 갇혀

여지껏 살아와서인지도 모르고요.



그런데...

나는... 내가 돌고래처럼 넓은 바다에서 자유롭게 살아야 된다는 생각을 해요.

성격유형에서 나의 상징이 돌고래여서 그런 생각에 빠져 있는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바다가 무서운 나는 그속에서 자유롭게 뛰어노는 돌고래가 되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가져야해요.

세상이 무서워 움츠러들기만 하는 내 모습이 파도에 밀리는 바윗덩어리같아서,

그래서 더욱더.

 

 

바다로 들어간 소금인형을 아시죠?

바다로 간 소금인형은 녹아없어진 것이 아니라 온 몸으로 바다를 품었쟎아요.

나도 그렇게 세상으로 뛰어들거예요. 그래서 자유롭게 드넓은 바다를 품을꺼랍니다.

=============================================================================

사실 말이지요.... 환희, 좌절, 분노, 희망...이라고 해서 생각해보니

가끔 우연챦게 성당에 가서 성가부를때 노래가 잘 되면 기쁨에 넘치고, 갑작스레 내 목소리가 들리면 '와~ 정말 난 노랠 너무 못불러'라는 생각에 소리도 크게 못내며 이내 좌절하게 되고. '왜! 나는 노랠 못부르는가!' 화가나기 시작하지만, 절대음치가 아니라면 노력에 또 노력을 하여 노래실력을 쌓을수도 있는데 노래 잘 못한다고 입 꾹 다물고 있으니 더욱더 음치의 수치로 가는거다라는 반성을 하지요. 그리고 또 우연챦게 노래가 흥겹고 좋아지면, 나도 연습을 통해 노랠 잘 부르게 될꺼야 라는 희망을 갖게 된다는....

머, 그런 얘기.

================== 그러고보니, 우어우어~  ㅠ.ㅠ

엉성한 글을 쓰는 나의 한계가, 지금 이 페이퍼가 내 또하나의 좌절, 인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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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5-21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흐 치카 축하혀... 너굴님 악세사리하고 사진 한장 부탁혀~

chika 2005-05-21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
어머~ 만두언냐~ 워쩐다요? 저 벤트.... 떨어졌는디용?
 

언젠가부터 엽서쓰기 벤트가 유행하더니 온통 쓰기, 쓰기, 쓰기입니다.

그것도 추천수에 의한 당첨자 선정.

그거... 신경 안쓰고 싶지만 꽤나 신경쓰이는거 아시나요?

어제는 급기야 날나리에게 추천 쩜 해줘~ 라 했다지요. (으흑~ 챙피...하옵~)

그렇게까지 했는데... 역시 안되는군요.

괜히 말했다 싶기도 하고 그런 심정입니다.

즐찾 몇백이 넘는 지기들의 글과 어찌 겨루리~ 라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았지만

아무래도 그것만은 아닌듯합니다.

너무 속이 빤히 보이는 글이라 그런가요? 그래도 나름대로 마음을 담은건데....

 이벤트는 끝났으니 퍼왔습니다. 으흑~ ㅠ.ㅠ

============================================================================

몇년 전 서른즈음에, 저는 김광석의 노래를 많이 들었지요. 그때 한참 서울엘 자주 갈 때여서.. 아시죠? 지방에서 서울 올라가면 번쩍이는 번개...그 자리에서 애들은 나만 보면 김광석의 서른즈음에를 불러대곤 했어요. 예나 지금이나 그 동호회에선 내가 젤 왕언니여서 놀리느라 그랬을까요? ^^;;
- 하지만 그때 녀석들의 진지한 모습과 나를 대하는 태도에서, 정말 '나이 서른'이라는 건 뭔가 새로운 삶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 역시 서른살 이후 구원자로서의 공생활을 했다쟎아요.........

알라딘에서 나는 플라시보님을 많이 봤어요. 그치만 플라시보님은 내가 낯설꺼예요. 그죠? 그런데도 이렇게 플라시보님의 서른번째 생일을 축하하고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뭔가 모르지만, 서른살을 지내온 사람이 서른살을 지내려 하는 사람에게 느낄 수 있는 공감 비슷한거라 여기며 축하 인사를 드려요. ^^

========== 어제 뭔가 이런 비슷한 페이퍼를 쓰다가 컴이 계속 멈추는 행각을 벌여(ㅠ.ㅠ) 결국 포기하고 아침에 다시 쓰는 거랍니다. 그래서... 조금... 뻘쭘해요. ^^;;;

 

나이 서른에 우린 어디에 있을까
어느 곳에 어떤 얼굴로 서 있을까
나이 서른에 우린 무엇을 사랑하게 될까
젊은 날의 높은 꿈이 부끄럽진 않을까
우리들의 노래와 우리들의 숨결이
나이 서른엔 어떤 뜻을 지닐까
저 거친 들녘에 피어난
고운 나리꽃의 향기를
나이 서른에 우린
기억할 수 있을까

나이 서른에 우린 어디에 있을까
어느 곳에 어떤 이름으로 서 있을까
나이 서른에 우린 무엇을 꿈꾸게 될까
아주 작은 울타리에 갇히진 않을까
우리들의 만남과 우리들의 약속이
나이 서른엔 어떤 뜻을 지닐까
빈 가슴마다 울려나던
참된 그리움의 북소리를
나이 서른에 우린
들을 수 있을까

나이 서른에 우린 어디에 있을까, 백창우

 



 다른 건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플라시보님은 나이 서른에...

길가에 핀 꽃 한송이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수 있는 맑은 눈과 

삶의 행복을 마구마구 느낄 수 있는 착한 마음을 갖고 있을꺼라 확신해요.

그리고... 플라시보향 가득 품어내며 오늘도 우리에게 미소를 전해주지 않을까요?



미리... 생일 축하해요.

자그맣지만 정말 이쁘게 피어있는 꽃들처럼 행복하길~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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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05-05-20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카님 너무 슬퍼마오,
그래도 님글을 읽으면서 감동 먹는 사람도 있다오.
내가 능력이 된다면 더눌러 주고 싶사와요,
그러니 너무 슬퍼마세요,,,,
저도 가끔 느끼는 슬픔이지만요,,헤헤 전 제글을 알기에...
님 너무너무이뻐요
꽃이,,ㅎ히

물만두 2005-05-20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나 추천했는데... 이런... 울지마. 치카... 내 이벤트를 기들려^^

비로그인 2005-05-20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했어요!!!

날개 2005-05-20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저는 추천 했었는데....

chika 2005-05-20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히~ 이 글에도 추천을 해주시니 감사할따름임다~ ^^;;;
다음 이벤트는 추천과 또 다른 뭔가를 가미해서.....
으헉~ 아니예요... 제가 하면 뭔가 상당히 꼬여서 복잡해요. ㅠ.ㅠ
좋은 생각 없을까요? ㅡㅡa

마냐 2005-05-20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추천했었어요......(__)

해적오리 2005-05-20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냐, 나 언니 메신저 연락 받고 바로 추천했어. 글 좋더구만,,, 사진도 글쿠,,,
나 한테 칭찬 받으면 그걸로 된 거 아냐?
잘했어 곱하기 100

chika 2005-05-21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흐~
이벤트 끝나고 징징거렸더니 호응이 좋군.. ^^;;

비로그인 2005-05-21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카님 글이 최고!!
 

 

   "살아있는 우리 신화"

 

 

 

내륙 땅에서 포용되지 못하고 절해고도 제주로 떠나왔던 금상. 그 형상에는 제주의 역사가 함축돼 있기도 하다. 바람타는 섬 제주. 그곳은 우리 역사에서 서글픈 유형의 땅이었다. 보살핌 대신 빼앗김에 더 익숙했던 곳. 남다른 물산이 많아 오히려 고통받던 곳. 그 뼈저린 역사는 수많은 저항의 영웅을 낳았으니 그들이 그 땅의 수호신으로 좌정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변방 민중의 삶의 역정과 맞닿아 있는 역사적 영웅의 신화, 그 가운데서 누구보다도 인상 깊은 양이목사 이야기를 만나본다.

 

제주성 삼문 안에 살던 양씨 성 가진 장수가 조정의 명을 받아 제주 목사가 되니 사람들이 그를 양이목사라 했다. 그 시절, 제주에서는 일년에 한번씩 백마 백필을 한양에 진상했는데 어느 목사를 막론하고 예외가 없었다. 양이목사가 한 번 두 번 세 번까지 백마를 진상하더니 네 번째 백마 백필을 진상하려다가 딴 마음을 먹었다.
"여태까지 마부들이 진상을 갔다만 이번에는 내가 직접 갖다 바칠터이다"
스스로 말 백 필을 배에 싣고 바다를 건너가 한양에 이르러서는 장에 나가서 다 팔아버리고 그 돈으로 물품을 사서 배에 가득 싣고 돌아왔다.
조정에서 목을 빼고 백마 진상을 기다려도 끝내 오지를 않아 사람을 보내 조사를 해 보니 양이목사가 말을 팔아먹고 돌아간 터였다. 조정에서 불같이 화를 내어 금부도사와 자객을 보내 당장 양이목사의 목을 베오라고 명령을 내렸다. 양이목사는 그 눈치를 벌써 채고 섬 안에서 제일 빠르다는 고동지 고사공의 배를 얻어타고 나와 금부도사의 배를 기다렸다. 이윽고 바다 한가운데서 낯선 배 한 척이 다가와 고사공의 배에 고물을 갖다 붙이니 금부도사의 배가 분명했다.
"어디로 가는 배인고?"
"제주 양이목사님이 유람가는 배요"
그러자 금부도사가 자객을 이끌고 양이목사 탄 배로 펄쩍 뛰어오르며 말했다.
"나라에 진상하는 백마를 가로챘으니 국법을 받으라!"
먼저 자객이 칼을 휘두르며 덤벼드는데 양이목사가 한 손으로 받아치니 자객이 쥐고 있던 칼이 어느새 양이목사 손에 넘어와 있다. 양이 목사가 하늘에 번개 치듯 칼을 한번 휘두르자 자객의 머리가 간곳없고 몸뚱이만 나무토막처럼 바닷물로 떨어졌다. 다시 금부도사가 칼을 꺼내어 벽력같은 소리를 지르며 달려드는데 역시 양이목사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순식간에 칼을 떨어뜨린 채 무릎을 꿇고서 목숨을 비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양이목사가 천둥같은 소리로 호령을 했다.
"금부도사 들어라. 조정 대신들은 백성들에게 좋은 세상을 만들어 잘 살리겠다고 하고 백성은 온 정성을 다해 임금을 모시며 가족처럼 살아보려 하는데, 백성 가운데 불쌍한 것이 제주 백성이라. 일년에 한번씩 백마 백필을 진상하라 하니 임금의 배가 얼마나 크기에 백마를 백 필이나 먹어치운단 말이냐. 임금이 먹는 백마 진상 나도 한번 먹어보려 했더니 불쌍한 제주 백성 생각에 짐승이 목에 걸려 넘어가지를 않더구나. 백마 백필을 육지 백성에게 나누어주고 필요한 물품을 얻어 돌아와 제주 백성한테 준 사람이 바로 나다. 내 한목숨이야 무엇이 아까우랴. 돌아가거든 내가 한 말을 용상에 앉은 임금에게 똑똑히 여쭈어라!"
말끝에 금부도사에게 칼을 내어주니 금부도사가 억수같이 눈물을 흘리면서 칼을 휘둘러 양이목사의 목을 뎅겅 잘랐다. 머리 떨어진 몸뚱이가 물결속으로 떨어지자 어느새 청룡 황룡 백룡이 되어 용왕국으로 스며들어갔다. 고사공이 양이목사 머리를 끌어안아 피를 닦고 가다듬어 금부도사 탄 배에 올려놓으니 몸뚱이가 떨어져나가고 머리만 남은 양이목사가 입을 열어 고사공에게 마지막 소원을 말했다.
"고향으로 돌아가서 내 슬픈 역사를 풀어주면 내가 우리 자손들을 만만대대로 지켜주리라"
금부도사가 서울로 올라가 임금에게 양이목사 목을 바치고 모든 사연을 고하니 임금이 크게 깨닫고 제주에서 해마다 백마 백 필을 진상하는 과업을 면해 주었다. 양이목사는 고사공한테 약속한 대로 신이되어 제주로 돌아와 자손들을 길이길이 지켜주게 되었다.

 

박탈당하고 핍박받는 자들의 설움과 원통을 생생이 간직한, 격정의 파토스가 넘치는 신화다. 마치 이차돈의 죽음과 다시 만나는 것 같은 장면이다. 역사적 배경이나 줄거리만 놓고보면 전설에 가깝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 이야기는 다른 어떤 신화 이상으로 생생한 신성성을 지니고 있다. 남의 것일 수 없는 저항과 자존의 몸부림을 온몸으로 보여준 양이목사는 진정한 민중의 영웅이다. 사람으로 하여금 그한테 자기를 맡기고 그를 통해 일어서도록 하는 성스러운 힘을 드러내고 있다. 보라, 임금을 향해 내뱉는 저 피끓는 외침을! 몸뚱이를 잃은 머리가 토해내는 피 흐르는 유언을! 터럭만 한 타협도 주저도 없는, 몸으로 외치는 그는 우리 신화에서 만날 수 있는 강렬한 남성성의 한 극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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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5-20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215111

숨은아이 2005-05-20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다가 "강렬한 남성성"에서 삐끗. ^^

chika 2005-05-20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감사~ ^^
숨은아이님/ 저도... 좀 삐끗! 했는데 원작자가 그렇게 써놔서요...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