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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보여주는 손가락
김치샐러드 지음 / 학고재 / 2006년 8월
평점 :
품절
처음 네가 그림을 보여준다고 했을 때 조금은 관심이 갔더랬어. 내가 또 그림은 잘 못그리지만, 그래 맞어 그림을 감상하는 것도 잘 모르지만 다른 사람의 감상에 귀기울이는 건 조금 할 수 있거든. 게다가 그런 얘길 듣고나면 나름대로 또 그림을 다시 한번 잘 보기도 하고 말이지.
그래서 그냥 편한 마음으로 네 뒤를 쫓아댕겼어. 어떤 그림들을 보여줄까, 기대감도 생기기 시작했고말야.
근데 그림만 보여주는게 아니었어! 와~ 네 마음까지 열어보여줘서 난 더 좋더라구. 간혹 '그림 보여준다면서 이 무슨 짓이냐!' 라며 책망하는 듯한 말을 내뱉는 사람도 있는 것 같은데 난 오히려 그들이 조금 이해가 안될라고해. 너는 그냥 그림을 보여준다고, 했지 그림을 분석해준다거나 설명해준다거나 작가의 의도를 짐작해보겠다거나..그런건 아니잖아. 안그래?
난 오히려 그림을 보여주면서 네가 느낀 그 마음을 보여줘서 더 좋았는데.....
으음, 그건 그렇고 네 마음을 솔직하게 보여준 것은 좋았는데, 너무 우울海를 좋아하는 것 같더라? 물론 나도 우울海에서 우울을 뒤집어쓰고 잠수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그걸 즐기거든. 그러니까 미친 오필리어를 보면서 비극,비극,비극 만 생각하면 정말 암담해지니까 그럴땐 일부러 자우림을 불러와. '머리에 꽃을 달고 미친척 춤을~' 흥얼흥얼흥얼.
오필리어가 미쳐버린것도 슬픔에만 빠져 지내야 하는 것이 못견디게 힘들어서 그냥 살며시 정신을 놔버린거라 생각이 들어. 나처럼 가끔 미친척 나 자신을 풀어놔버릴만큼 영악하지 못한 오필리어가 너무 순결하고 곧아서 그런거라고 생각하는거지.
그러니까 손가락, 너도 가끔 나처럼 미친척해보렴. 그러면 눈 먼 소녀가 눈으로는 보지 못하는 무지개지만 동생이 맞잡은 손을 통해서든 마음으로 전해지는 체온을 통해서든 눈 먼 소녀만의 무지개를 볼 수 있는것처럼 너도 너만이 볼 수 있는 너 혼자만의 무지개를 보게 될지도 몰라.
마지막에 막달레나의 참회를 보여주면서 희미한 등불빛처럼 희미한 희망 얘기를 했지만 결국... 까맣게, 까맣게 막막해진 네 마음을 닫아버린 것 같아 당황스러웠지만 네가 말했잖아. 뫼비우스의 띠, 얘기말야. 뭐 결국 되풀이 되풀이 되풀이...라고 했지만 우리의 삶은 한없이 되풀이되지만은 않아. 동그란 공이 결국은 굴러가는 것처럼 뫼비우스의 띠도 한없이 우울이 되풀이 되는 듯 보이지만 그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도 되잖아.
네 마음과 내 마음은, 나의 상황은,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도... 모두 확실한 건 없어. 하지만 그거 하나는 분명하잖아. 더 나빠질것도 없다는 거.
좀 엉뚱하겠지만 초롱아귀도 보이지 않고 네 모습도 보이지 않는 새까만 우울海를 바라보면서 갑자기 초롱아귀의 눈과 네 눈이 깜박, 하고 떳다감는 모습이 보이는 듯 했어. 아, 난 이제 완전히 우울海를 즐기며 우울잠수함을 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어. 멋있게 그림 소개를 해 준 네 덕이 큰거겠지? 참, 곁들여서 그림도 좋았어. 말했지? 나름대로 그림책을 즐겨본다고. 그래서 더 즐거운 시간이었어. 그림을 보는 눈,이 따로 있는건가 뭐.
그래서 네게만 하는 말인데... '진심으로 뭔가에 미쳐봤냐'고 물었지? 솔직히... 모두가 뭔가에 미쳐야만 하는건 아니라고 봐. 이거, 진심인데... 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