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던 골목에는




이제 그 길은 없다. 나는 여전히 그 길 위에 살고 있지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길은 거미줄처럼 가늘게 얽히고 꼬인 길을 툭 터서 하나로 만든 길이다. 한 사람도 지나가기 어려웠던 길을 이제는 자가용 두어 대가 나란히 달리기도 한다. 공중변소앞에서 다리를 꼬고 줄 설 필요도 없다. 칸칸이 늘어선 방들이모두 층층이 올라가 아파트가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미로 같은 골목에서 길 한 번 잃지 않고 살았던 나는 눈 한 번 휘두르면 끝이 보이는 넓은 길에서 오히려 막막하다. 꿈마다 내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너무 좁아 담벼락이 어깨를 스치는바로 그 길이다. 걸을 때마다 길 위에서 길이 그리워 나는 더러 눈물이 나기도 한다. 42









어렸을 때는 눈이 내리면 마냥 신나고 즐겁더니 나이를 먹으면서는 마음이 애틋해진다. 그게 "괜찮다" 소리를 듣고 난 이후부터 생긴 감정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 소리와 함께내 서른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누구도 듣지 못하는 소리를 비로소 들으면서, 내 삶도 한결 깊어졌다. 춥고 흐린 날, 그게 창밖의날씨는 내가 처한 인생이든 마음을 낮추면 세상 모든 만물은, 그 안에 깃든 마음은 다 괜찮아질 수 있다. 나는 우선 그것만으로도 고맙다.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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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2-06 0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훗날 문학 수업을 받으면서 ‘리얼리즘에 대해 배울 때, 나는반사적으로 이주홍의 못나도 울 엄마를 떠올렸다. 『나도 울엄마는 내게 리얼리즘을 가르쳐준 최초의 책이었다. 그리고 그책이 가르쳐준 의문은 지금도 여전히 풀기 어려운 숙제로 남아있다. 못나고 더럽고 가난하고 지저분한 얼굴로 나타나는 인생의 수많은 진짜 엄마를 나는 어떤 방식으로 껴안아야 할까. 몇번은 품었고, 몇 번은 모른 척 도망쳤던 것 같다. 작가로서도 고민은 남는다. 무엇을 쓸 것인가. 빛과 어둠, 무엇을 증명해야 할까. 어찌할 도리가 없는 삶들에 대해 쓸 때 어떻게 말해야 할까.
희망을 노래해야 하나. 희망을 조롱해야 하나, 인생은 비극이고, 인간은 그 비극을 통해 성장한다는 서사는 궁극의 비극일까, 아니면 희망일까. 나는 지금도 그 답을 잘 알지 못하겠다.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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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뉴브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클라우디오 마그리스 지음, 이승수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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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은 트라키아족과 게타이족의 평정심, 조용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그들의 자유로운 정신, 『일리아스』에서 레소스 왕의 황금무기와그의 눈처럼 희고 바람처럼 빠른 말들을 휘감았던 빛나는 광채를 증언해준다. 이 평정심은 죽음과 친밀하고, 삶을 맹목적으로 숭배하게만드는 두려움과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생겨난다. 트라키아인들은 인간에게 많은 고통을 안겨주는 탄생을 슬퍼하였고, 인간을악에서 해방시키거나 축복으로 인도하는 죽음을 찬양했다. 게타이족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감옥에 가거나 노예가 되느니 차라리 자유롭게 죽음을 선택했다.
이런 평정심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자연의 숨결에 내맡김으로써 스스로를 나뭇잎 같다고 느끼며 나뭇잎처럼 자라났다가 떨어지는 존재로 생각하는 것에서 나오는 걸까, 아니면 영원불멸에 대한 믿음 즉 죽음과 더불어 숨겨진 신 잘목시스 옆에서 영원한 진짜 삶이 시작된다는 확신에서 나오는 걸까? 잠자다가 공격당해 죽은 레소스를 휘감고 있는 황금빛과 흰빛은 밤의 학살이 상처내지 못했던 신념, 그의 적들의 자손인 호메로스가 천년 동안 다시 빛나게 해준 신념의 아우라다. 트라키아 기사는 신념 있는 인물이고 죽음도 그에게 힘을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다. 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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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해서 잊는 소중함

이거 딱 내 마음.

그리고

내가 걸어 온 길처럼. 또 걸어가고 있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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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뉴브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클라우디오 마그리스 지음, 이승수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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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의 배경은 하이두크에게 아름다우면서도 혼란스럽고 야만적인 무질서의 분위기를 주지만, 이것은 정형화된 인습일 뿐이다. ‘발칸의‘라는 말은 모욕적인 어휘에 속하는 형용사다. 예를 들어 야세르 아라파트는 언젠가 레바논과 중동 전체를 발칸화˝ 하고자 한다며 시리아를 비판했다. 거울처럼 깨끗한 사라예보의 길들과 상점가 혹은 소피아의 깨끗한 질서를 보고, 이를 문명의 모델로서 일컬어지는 다른도시들이나 국가들과 비교해본 사람은, ‘발칸의‘라는 말을 찬사의 말로 사용하고자 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스칸디나비아의‘라는 말을찬사의 말로 사용하듯이 말이다. 457



발칸,이라고하면 그 동네의 정치,문화,종교 등등을 알지못하면 이해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어느곳인지 명확히 기억나지는않지만, 보스니아내전의 잔해가 여전히 살벌한 풍경으로 남겨진 지역을 지나쳤었다. 이십몇년이 지나도록 폭격당한 집들의 풍경이 남아있는 모습을 일상적으로 보는건 어떤 느낌일지.
발칸,이라 했을 때 습관적으로 유럽의 화약고라고 떠올리는데.
발칸의, 라는 말은.
역시나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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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2-04 0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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