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를 보는 식물학자 - 식물의 사계에 새겨진 살인의 마지막 순간
마크 스펜서 지음, 김성훈 옮김 / 더퀘스트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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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현장 감독관들에게 나무들이 나이가 많아 시신을 발견하지 못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물었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세상을 사람들과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는구나."(186)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저자는 법의식물학자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런던자연사박물관의 큐레이터로 근무하면서 경찰에 협조하며 식물을 통해 범죄현장을 조사하거나 시신이 유기된 장소를 찾는 일을 한다. - 물론 현재는 자연사박물관에서 일하지 않고 전문법의식물학자로서 강연 등을 하며 지낸다고하지만.

망자를 기억하고 망자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애도를 표하며 구체적인 범죄사건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는다고 해서 식물학에 대한 전문적인 이야기가 펼쳐지면 내용을 이해하는데 어렵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는데 알기 쉽게 설명을 해 주고 있다. 아니 저자의 전문 영역이 아닌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그 구체적인 방식을 이해할수는 없지만 나무를 잘라내어 대패질을 한 대패날의 불규칙성과 목재의 불규칙한 면이 일치하여 범인을 특정할 수 있다는 - 내가 이해한바로는 이런 내용이었는데, 이런 내용들은 과정의 과학적인 합리성을 이해하는 것은 힘들겠지만 결과로 넘어가는 결론은 이해할 수 있는 것이며 또한 놀랍기만 하다. 

"나무는 그 안에 역사를 기록하죠. 매년 있었던 폭풍, 가뭄, 홍수의 흔적은 물론이고 사람이 손을 댄 흔적들도 모두 충실하게 보존합니다. 나무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나무를 위조하거나 만들어 낼 수는 없죠"(118)


저자가 경험한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파트너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신고한 여성의 경우 첫번째는 합의하에 행위가 이뤄졌기에 DNA를 증거로 사용할 수 없어 두번째는 폭행이었음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는데 숲속으로 끌려가 폭행을 당했다는 피해자의 주장을 증명해 줄 수 있는 꽃가루와 균류포자의 증거제출로 가해자의 자백을 받은 사건이 기억에 남는다. 


과학수사는 날로 진화되고 발전하고 있으며 법의식물학 역시 오랜 시간동안 더 세밀하고 정교하게 발전하고 있지만 여전히 실패의 경험은 남는다고 한다. 저자가 말하는 실패,라는 것은 망자의 시신을 찾아내지 못하는 것 등을 의미한다. 식물의 생장을 통해 수사상 시신이 유기된 장소라 판단이 되어도 그곳의 식물이 훼손된 적이 없다면 그곳에서 시신을 찾을 수 없다는 의미가 되며 범죄자의 자백으로 역시나 시신이 유기된 곳은 그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지만 그것은 법의식물학자로서의 증명일뿐 시신을 못찾는다는 것은 역시나 안타까운 일인것이다. 


영국의 디지털 기록보관소는 없으며 전통방식으로 식물 표본실을 이용해 식물 조각을 식별한다고 하는데 영국의 식물표본 보관의 현실과 예산의 문제 등등에 대한 이야기도 언급되어 있다. 문득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떤지 궁금해지기도 하는데, 식물 표본을 단지 나뭇잎 말린 조각 정도로만 이해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조금은 뜨끔해지기도 하고.

아무튼 '시체를 보는 식물학자'는 범죄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법의환경학이라는 분야에 대한 여러 의미에서 흥미로움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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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네시
수잔나 클라크 지음, 김해온 옮김 / 흐름출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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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이름 피라네시는 18세기 이탈리아의 화가이자 건축가 조반니 바티스타 피라네시에서 따온 듯하다. 그는 16점으로 구성된 '감옥'을 판화로 발표했다고 하는데 지하에 있는 이 감옥들을 보면 계단과 기계장치가 두드러진다. 감옥이라서 그런지 좀 무시무시해 보이는 공간이다"(354)

책을 읽기 전부터 궁금했던 '피라네시'라는 이름의 의미였는데 책의 말미에 옮긴이의 설명이 있다. 아마도 피라네시의 의미를 먼저 알았다면 이 소설에서 말하는 '세계'를 조금 더 빨리,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을까?


피라네시는 '집'에 살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집'이 아니라 신의 존재라거나 살아있는 유기체같은 느낌의 '집'을 의미하고 있는 듯 하다. 그 집은 신전처럼 조각상이 세워져있고 기둥과 홀이 있으며 그 공간 구성을 알 수 없을만큼 복잡한 미로로 구성되어있다. 세상 종말의 느낌처럼 살아있는 것은 피라네시와 죽어서 뼈가 되어버린 13명과 나머지 사람, 그리고 피라네시와 나머지 사람을 위협하는 악의 존재 16이 있다. 물론 16의 존재는 실존으로 마주친 것이 아니라 그저 말로만 들었을뿐이지만.

또한 집이라 불리는 신전은 때로 홍수로 물이 넘쳐나기도 하며 바닥에는 바닷물이 흐르고 있어서 해조나 물고기로 식량을 조달한다. 

피라네시는 날마다 기록을 하고 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날짜가 아니라 알바트로스가 미로로 들어온 날부터 시작하여 첫째날, 둘째날...식으로 기록이 넘어가고 있어서 도무지 어느 시대쯤의 이야기인지 짐작하기도 힘들다. 


이렇게 피라네시의 이야기는 문명이 있었으나 먼 미래의 어느 날 바다가 육지를 뒤덮고 세상은 그렇게 달라져있다...는 전제로 시작되는 미래의 이야기라고 생각을 하며 글을 읽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이야기가 다른 흐름으로 꺾여버린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중간에 끊지 못하고 끝까지 읽어버릴 수 밖에 없는 이야기의 힘이 있다는 건 바로 그런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실제로 피곤하지 않았다면 밤을 새며 읽었겠지만 졸면서 읽으려니 내용이 뒤섞이는 느낌이라 아침에 일어나면서 바로 책을 펼쳐들었다. 뒤로 갈수록 이야기의 전체 흐름이 파악되는 구조지만 그걸 깨닫게 되는 순간까지의 이야기는 무엇인지 가늠하기 힘들었던 것이 이 소설의 매력이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피라네시라는 이름의 유래를 알게 되는 순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읽는다면 미로의 구조는 그리 복잡한 것이 아니며 이 소설은 훨씬 더 가독성 있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굳이 말하자면 재난 영화가 아니라 한편의 스릴러를 읽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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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모범생 특서 청소년문학 23
손현주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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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선행학습이 안 되는 거라고. 사람은 다 입장이 다르잖아"(157)


분명 이론적으로는 다 알고 있는 것이며 사람마다 다 다르다는 것도 알고 있고 공부가 전부는 아니라고 말하지만 유독 '내 아이'에 대한 것만큼은 그런 생각들이 다 쓸모없어 진다는 것을 느낀다.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친구도 자식의 성적에 대해 별다른 신경을 안쓴다고 말하던 것과는 달리 딸이 국립대학 문과의 수석입학으로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서 어쨌거나 성적이 신경쓰인것은 어쩔 수 없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 아무튼 이런 이야기들말고 '가짜 모범생'은 그냥 좀 전형적인 이야기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쌍둥이의 이야기, 특히 늘 1등만 하던 형의 잘못들 대신 뒤집어쓰는 것도 모자라 형의 자리를 대신하는 삶을 살아가야하는 동생의 이야기는 무엇을 담고 있는지 궁금했다.


가짜 모범생,은 진짜 모범생인 형이 세상을 떠나고 대신 형의 자리에서 형과 같은 삶을 살기를 강요받은 동생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1등급의 성적을 유지하는 형 건휘는 분노조절을 하지 못해 같이 농구경기를 하던 동급생의 목을 조르는 심각한 폭행을 저지른다. 성적만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엄마는 일란성 쌍둥이라는 것을 악용해 폭행을 저지른 것이 건휘가 아니라 동생 선휘인 것으로 바꿔놓으려고 한다. 결국 엄마의 부탁에 형의 죄를 뒤집어쓰지만 어느 누구도 일란성 쌍둥이를 구분못한다고 생각하고 있던 그 때 의식불명이던 친구가 깨어나고 틱장애를 가진 형 건휘의 특징으로 쌍둥이를 정확히 구분해버리고 자신의 목을 조른 형과 동생이 뒤바뀌었음을 밝혀버린다. 그로인해 쌍둥이는 관계가 어색해지기 시작했고 어느 날 형 건휘가 스스로 세상을 떠나버린다. 그것만으로도 충격인데 여전히 엄마는 성적지상주의를 못버리고 형의 1등 자리를 동생인 선휘가 지켜주기를 종용한다. 그렇게 형의 모든 것을 대신하는 살을 살아가야하는 선휘가 우울증에 빠져있어도 엄마는 변하지 않는다. 심리상담을 권유받아도 엄마는 오롯이 선휘의 성적만을 중요시한다. 

그렇게 '살아남은 자의 무게'를 견뎌내며 지내는 선휘에게 어느 날 전학생 은빈이가 타나나는데...


전형적인 청소년 소설의 구성인 듯 하면서도 그 전개 내용이 조금 충격적이기도 했고, 아이의 죽음앞에서도 여전히 성적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엄마의 모습도, 특히 내가 학교를 졸업한 것이 언제적 이야기인데 학교 게시판에 시험 등수를 써 붙이던 것이 여전히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충격을 넘어 경악할 지경이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 하지만 어떻게 아이들을 구속하는 성적은 여전한 것일까.


처음 책을 읽을 때 모든 변화의 시작은 은빈의 등장이라 생각했었는데, 다시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이전에 선휘 스스로 변화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이 가장 큰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형의 죽음 이후 엄마의 소원대로 형의 자리를 대신하지만 그것이 엄마의 소망때문만이 아니었다는 것이 밝혀지지만 이미 그것에 대해 극복을 한 선휘의 마음이 대견하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기도 하는데 정말은 잘 모르겠다. 나 역시 이 모든 이야기에서 한걸음 떨어져있다는 생각을 떨칠수가 없기에. 

하지만 '온전히 자신만의 꿈을 꾸지 못하고 타인의 꿈을 짊어지고 있을지 모르는' 아이들이 없어야 한다는 것은 아이가 있는 사람에게나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나 다 똑같이 바라는 소망이 되어야 할 것 같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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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2200km를 걷다 - 르퓌에서 산티아고 그리고 리스본까지 86일간 여정 또 다른 일상 이야기
김응용 지음 / 지성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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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부터 이건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2,200킬로미터가 얼마나 긴 길인지는 모르겠지만 86일간을 걸어 완주한 길이라고 하니 - 물론 여기에는 산티아고에서 다시 파티마를 지나 리스본까지 걸어간 여정이기는 하지만 - 석달 정도의 기간을 걸어야 하는 길이라 생각하면 좀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래전에 제주 올레길의 세코스를 1박2일동안 걸으며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도 좋고 홀로 생각에 잠겨 걷는 것도 좋았기는 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길을 걸을 때는 몰랐던 육체적 피로였다. 겨우 이틀동안 걸었던 것도 힘들었는데 늘 화창한 것도 아니고 비바람이 불기도 하고 산을 넘을 때는 눈길을 걷기도 해야하는 길을 석달동안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이 결코 쉬운것이 아님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싸늘함이 느껴지는 새벽에 이불밖으로 나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길을 걷지 않아도 날마다 아침 출근을 하는 사람들은 다 알것이다. 


이 책은 순례길에 대한 정보, 준비 이야기는 과감히(?) 생략되어 있고 하루하루의 순례일지 같은 느낌으로 사진과 함께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처음 책을 펼쳤을 때 사진이 많아서 그냥 휘리릭 읽을 수 있는 책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꽤 긴 시간동안 책을 읽었다. 단순하게 그저 길을 걸었을 뿐이고 하루하루의 기록이 날씨와 알베르게와 식사에 대한 것이 80% 이상 담겨있는 글인데 나도 모르게 집중해서 읽게 된다. 

길을 걷는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문득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똑같은 길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화창한 날의 따뜻한 햇살이 비춰지고 누군가에게는 빗물에 잠긴 진흙탕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는 홀로 걸어가고 또 누군가는 도반과의 즐거운 동행이 되기도 한다. 


저자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한 후 늘 갖고 다니던 손수건을 잃어버린 것을 아쉬워한다. 순례길 완주 증명서는 소중히 가방에 담아두고 있지만 그 종이 한장보다 추울때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더위에 흘린 땀을 닦아주며 내내 같이했던 수건이 더 소중한 것인데 그걸 분실한 순간에 바로 찾아보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고 했는데 이런 작은 에피소드가 삶의 자세에 대해 조금은 깊이 생각해보게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출발하는 생장이 아니라 조금은 낯선 프랑스 르퓌에서 출발한 순레길의 여정이 조금은 낯설지만 그 길에서의 이방인의 느낌과 국경을 넘는 순간 같은 이방인이 된 동행에 대한 이야기, 한국인을 바라보는 이방인의 느낌... 이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도 마음에 남는데 언젠가 나 역시 그 길에서 그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쉽지는 않겠지만 아직까지는 '언젠가 나도'라는 마음을 버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이 책을 읽으니 더욱 더. '목적'이 아니라 목표를 갖고 희망을 간직하고 있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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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11-05 0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른 여행자는 나와 어떻게 다르게 느끼나를 보는 재미가 여행기를 읽는 재미인거 같아요. 그러면서 나도 언젠가는이라는 마음을 먹는 것도 즐거운 여행의 시작점일거 같구요. ㅎㅎ

chika 2021-11-05 06:48   좋아요 0 | URL
그런거겠죠? 나도 언젠가 산티아고를! 하고 있지만 사실 제주올레길도 완주하진않았네요 ^^;;;
 
길가메시 서사시 - 인류 최초의 신화 현대지성 클래식 40
앤드류 조지 엮음, 공경희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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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의 산으로 가는 왕이 마음을 바꾸었네

산 자의 산으로 가는 길에 길가메시 왕은 마음을 바꾸었네

그가 하인, 엔키두를 불렀네.

"엔키두, 어떤 인간도 생의 종말을 피할 수 없나니

나는 산에 들어가 이름을 세우리

이름이 세워지지 않는 곳이면, 신들의 이름을 세우리라"

(184, 버전A 산자의 산으로 가는 왕)


이 책은 길가메시 서사시이다. 당연한 이야기를 새삼 다시 되내이는 건, 오래 전에 길가메시 이야기를 서사시 원문으로 읽은 것이 아니라 저자의 해제로 읽은 기억때문이다. 이 책 역시 그렇게 설명이 된 글이 담겨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책을 펼쳤는데 의외로 여러 판본, 빠져있는 글자는 빠진 상태로 번역된, 그러니까 수메르어 원문 번역을 한 원본, 그야말로 진짜 서사시가 펼쳐져있어 길가메시 '서사시'임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인류최초의 신화라 일컬어지는데 모든 신화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문학적인 가치뿐만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도 찾아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리아드와 오딧세이아를 고대의 문학으로만 여겼었지만 하인리히 슐리이만이 결국 그 유적지를 발견하면서 역사적 사건에 대한 관점으로 새롭게 보게 된 것처럼 길가메시 서사시 역시 시간이 지나며 더 많은 것들이 발견된다면 그 내용과 가치가 달라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길가메시는 영웅이라 할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흥미롭게 그의 서사를 읽을 수 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늙어가는 모습과 주위에 탄생의 축복보다 죽음에 대한 애도가 더 커져가고 있어서 그런지 길가메시 서사시를 읽으면서도 자꾸 그런 내용에 더 눈길이 간다. 

처음엔 성경에도 나오는 대홍수 이야기나 죽음을 두려워하는 너무도 인간적인 길가메시의 나약함 같은 내용들이 그 어떤 신화보다 더구나 성경보다도 더 이전에 씌여진 기록문학이라는 것에 충격적인 놀라움을 느꼈던 것이 몇년전인데 지금은 역사적인 것만이 아니라 길가메시 서사시의 원문을 읽으며 문학적인 부분을 더 감상해보고 있다. - 물론 분석을 하거나 문학적 가치를 논할만큼은 전혀 안되지만. 

길가메시 서사시는 기록의 내구성 - 고대의 최초 기록문자는 점토판에 새겨졌다 알고 있는데 그래서 그 기록은 더 온전히 발견될 수 있으며 또한 그래서 길가메시 서사시는 시간이 흐르며 더 많은 판본이 발견될 수 있고 내용이 완벽히 복원될 수 있다는 기대를 해볼수 있다고 하니 그날을 기다리며 현재까지의 길가메시를 읽으며 꾸준히 관심을 가져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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